소설리스트

52화 (52/402)

생일 노래 불러줘요?

빠앙! 빵빵!

주말의 도심은 꽉 막혀있었다. 차 안에는 강우와 이재원이 앉아있었다. 이재원은 운전석에 강우는 조수석이었다. 강우가 힐끗 이재원을 보았다. 이재원의 표정은 잔뜩 신나 있었다.

“뭐가 그리 신났어요?”

“신이 안 나게 생겼냐? 네가 그날 형들 표정을 봤어야 했는데. 진짜 고깔모자만 씌웠으면 완벽했는데 말이지.”

이재원의 얼굴에는 후련함이 가득했다. 늘 자신을 무시하고 깔보는 이복형들이었다. 하지만 이번 일로 전세가 역전됐다. 아버지인 이철금 회장은 이재원의 능력에 흠뻑 빠져들기 시작했다.

“좋았겠네요. 나도 속이 다 후련하네.”

“다 네 덕분이다.”

이재원이 강우의 어깨를 툭 하고 쳤다. 이재원은 지난 삼우 건설의 인수합병을 막아 그룹의 큰 피해를 막았다. 그리고 이번 관보 철강의 부도 건을 미리 예견하고 회사의 유동부채를 깔끔히 정리했다. 이철금 회장은 이제 이재원을 다른 눈빛으로 보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냥 굴러들어온 돌이 아니라 박힌 돌을 모조리 걷어낼 수도 있는 존재로 말이지.’

강우가 이재원에게 물었다.

“그래서 생일 선물은 좀 받았어요?

재벌 집 2세의 생일 선물은 과연 무엇인지 궁금한 강우였다. 이재원의 입꼬리가 스르륵 올라갔다.

“곧 받을 예정이지. 아주 큰 놈으로.”

“집이요? 아니면 건물?”

이재원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대진 미디어를 선물로 달라고 했지.”

“와···. 역시 스케일이 다르네.”

“스케일은 무슨 대진 미디어니까 회장님도 단번에 수락한 거지. 아무래도 그룹 내에서 핵심 사업부서는 아니니까. 내가 대진 미디어 사장을 하고 싶다니까 꼴통들도 히죽거리며 웃더라.”

강우가 피식하고 웃었다.

“그 사람들은 가만히 놔둬도 알아서 미끄러질 사람들이니까 신경을 쓰지 말아요.”

“뭐···. 지금은 그 둘이 잘나가는 건 사실이지.”

이재원의 말대로였다. 이철금 회장의 큰아들은 현재 대진 싱크굿이라는 브랜드 런칭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룹의 모태가 되는 사업인 만큼 가장 큰 신임을 받는다 볼 수 있었다. 차남은 삼우 건설의 인수합병에 열을 올리다가 물을 먹은 상태였다. 하지만 다시금 다른 건설 회사를 인수하겠다며 열을 올리는 중이라 했다.

“확실히 지금으로만 보면 형이 제일 뒤처진 건 맞네요.”

“맞아. 그룹 내에 지지 세력도 그렇고 내가 제일 처져 있지.”

강우가 눈을 빛냈다.

“조급해하지 말고요. 내 말대로 천천히 준비해요.”

“알겠다.”

이재원이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룹을 손에 넣겠다는 목표를 세우기는 했었지만, 사실 막막했었다. 하지만 강우의 도움으로 조금씩 손에 잡힐듯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도착하려면 얼마나 남았어요?”

“음···. 한 30분? 주말이라 그런가? 진짜 막히네. 그냥 지하철 타고 올 걸 그랬나.”

“그러게요.”

강우가 도로를 보며 의자에 몸을 묻었다.

“그럼 나 잠깐 눈 좀 붙일게요. 어제 강용이랑 놀아주느라 늦게 자서요.”

“어, 도착하면 깨워줄게.”

강우가 두 눈을 감았다. 막히는 도로 상황에 지루함을 느낀 이재원이 라디오를 틀었다. 그리고는 볼륨을 낮추었다.

-국회는 관보 철강의 부도 사태를 두고 곧 청문회를···.-

라디오에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재원이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주파수를 변경했다. 쉬는 날마저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나 보다.

“오? 노래 좋다.”

이재원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곡을 흥얼거리며 따라불렀다. 눈을 감고 있던 강우가 피식 웃었다.

‘이 형 노래는 영 아니네.’

이른 정오의 햇살이 강우의 얼굴로 쏟아져 내렸다. 미간을 살짝 좁힌 강우가 이내 스르륵 잠이 들었다. 잠시 후, 이재원이 강우를 툭하고 쳤다.

“강우야.”

“도착했어요?”

강우가 눈을 부스스 떴다. 눈앞으로 이재원의 오피스텔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잠든 사이 더위를 느낀 강우의 이마에 땀이 조금 맺혀있었다.

“소화제 챙겨 왔지?”

이재원이 히터를 줄이며 물었다. 강우가 창문을 열고 차가운 바람을 입안 가득 담았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강우가 자세를 고쳐앉았다.

“농담한 거 아니었어요?”

“진심이었는데. 우리 엄마가 너 초대한다고 한 몇 개월을 요리학원에 다녔거든. 나름 철저히 준비한다고 말이지.”

강우가 이재원을 보며 슬쩍 웃었다. 생각해보면 집에서 밥을 얻어먹은 적도 없다고 했었다.

“밥 한 끼 해주시는데 요리학원까지 다니셨어요? 이거 기대되는데요?”

“요리학원을 몇 군데를 다녔는지 몰라. 처음에는 자꾸 학원을 옮기길래 왜 그런가 했는데 어제 이유가 밝혀졌다.”

“이유요?”

이재원의 얼굴이 약간 창백해졌다. 그리고는 한 차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긴말할 거 없다. 너도 가서 먹어봐.”

“네.”

강우가 도저히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윽고 지하주차장에 주차를 끝낸 강우와 이재원이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띵.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강우와 이재원이 문 앞에 섰다. 이재원이 크게 심호흡을 하더니 벨을 눌렀다.

딩동. 딩동.

-누구세요?-

듣기만 해도 아우라가 느껴지는 고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재원이 인터폰 카메라에 얼굴을 스윽 들이댔다.

“엄마, 나.”

-재원이구나? 버···. 벌써 왔어?-

김세아의 목소리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들어갈게요.”

-재···. 재원아 잠깐.-

이재원이 거침없이 현관문을 열었다. 온갖 음식 냄새와 진한 기름 냄새가 현관 밖으로 쏟아지듯 밀려 나왔다.

“엄마, 괜찮아요?”

이재원이 집안으로 들어서며 소리쳤다. 그러자 주방에서 김세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재원아, 아직 준비가 안 돼서 그런데 나가서 좀 놀다 오면 안 될까?”

이재원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강우를 향해 말했다.

“강우야, 일단 내 방에 들어가 있어 봐. 아무래도 내가 수습을 좀 해야겠다.”

“형이 무슨 수습을 한다는 거에요? 라면 하나도 못 끓여 먹는 사람이.”

강우가 피식 웃으며 거실로 걸어갔다. 거실의 옆쪽에 있는 커다란 주방은 그야말로 전쟁터였다. 온갖 재료들과 조리도구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 가운데는 여전한 미모를 뿜어내는 김세아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박강우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강우의 인사에 김세아가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 지난번 마주쳤던 때가 떠올랐을 것이다. 엄마를 이모라고 속였으니 민망할 만했다.

“어머니, 편하게 대해주세요.”

“맞아, 강우는 내 친동생이나 다름없어. 그러니까 엄마한테도 아들이지.”

이재원이 강우의 말을 거들었다. 김세아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천천히.”

강우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왕년의 스타 김세아의 미모는 여전했다. 물론 강우 어머니의 미모도 만만치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러면 저기 앉아서 비디오라도 보고 있어. 엄마가 금세 만들어 줄게.”

“뭐 만들어요?”

이재원이 주방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이런저런 재료를 확인했다. 김세아가 요리하며 오늘의 메뉴를 설명했다.

“응···. 파스타랑 스테이크도 좀 굽고 감바스하고 샐러드랑.”

“그냥 파스타 하나 해주면 되는데. 엄마 힘들게.”

이재원이 툴툴거리며 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주방의 한쪽에 내려놓았다. 이내 앞치마를 두른 이재원이 주방에 난입했다.

“같이해요. 엄마, 혼자 하다가는 날 새겠네.”

“아니야. 엄마가···.”

“그냥 같이해요.”

이재원이 무심한 듯 김세아의 옆에 섰다. 강우가 그 장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저렇게 툴툴대고 있지만, 이재원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상기되어 있었다.

‘좋은가 보네.’

입가에는 숨길 수 없는 미소도 떠올라 있었다. 사실 이재원에게 지금 순간은 기적과 같을 것이다. 지금껏 서로의 정체를 숨기며 살았던 모자였다. 두 사람이라고 다른 가족과 같은 평범한 일상이 그립지 않았겠는가. 다만 시작부터 어긋난 모자 관계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인제 와서는 그 관계의 회복이 싹을 피우고 있었다.

“아우 짜. 엄마 이거 물 좀 더 넣어야겠네.”

이재원이 파스타 면을 삶은 면수를 맛보며 말했다. 김세아는 한술 더했다.

“그래? 짜?”

김세아가 통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수돗물을 틀더니 냅다 부으려 했다.

“어머니, 잠깐만요!”

강우가 다급히 김세아를 말렸다. 이재원과 김세아의 시선이 강우에게로 쏟아졌다.

‘하···. 요리학원 다녔다고 들은 거 같은데.’

강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외투를 벗고는 주방으로 다가갔다.

“원래, 스파게티 삶을 때 물에 소금을 조금 넣어서 그럴 거예요.”

“아! 맞다.”

김세아가 생각났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재원은 여전히 이해 못 한 표정이었다. 강우가 스윽 이재원에게 손을 내밀었다.

“줘봐요. 앞치마.”

“어? 어어···.”

이재원이 앞치마를 푸르더니 강우에게 내밀었다. 강우가 능숙하게 앞치마를 둘렀다. 그리고는 주변을 훑어보았다.

“일단 제가 파스타랑 감바스를 할 테니까요. 어머니가 샐러드랑 스테이크만 구워주세요.”

“아니에요. 내가 밥을 차려주고 싶어서 부른 건데.”

김세아가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강우가 씨익 웃었다. 요리를 잘하는 어머니의 영향 탓일까? 강우는 요리도 제법 잘했다. 아니 남자치고는 꽤 잘하는 편이었다.

“같이 만들어서 먹으면 더 맛있죠. 도와드릴게요.”

“아···. 이러면 실례인데.”

강우가 손을 휘휘 저으며 웃었다.

“아니에요. 둘째 아들이랑 같이 밥해 먹는다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재원이 형 생일이잖아요. 저도 한몫하는 거로 치면 됩니다.”

“어쩜 이리 싹싹하고 예의가 바를까.”

김세아가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이재원이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네. 너희 집 첫째아들인 나는 맨날 가서 가만히 앉아서 밥 얻어먹고 오는데. 우리 집 둘째 아들은 좀 많이 달라?”

“형, 거실에 가서 비디오나 보고 있어요.”

강우의 말에 이재원이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거실로 가 소파에 앉았다. 강우와 김세아가 요리를 시작했다. 강우가 주도적으로 나서자 주방이 금세 정리되기 시작했다.

“강우야, 요리 진짜 잘하네. 아줌마가 배워야겠어.”

“집에서도 가끔 부모님하고 동생한테 요리도 해주고 그러거든요.”

“어머? 강우 어머니는 좋겠다. 아들이 해주는 음식도 먹고.”

김세아가 이재원을 보며 싱긋 웃었다. 그러자 이재원이 툴툴거렸다.

“엄마도 요리 못하면서.”

“아들?”

이재원이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이윽고 요리가 하나둘씩 완성되기 시작했다. 아일랜드 형식의 주방에 널려있던 재료들이 하나둘씩 자취를 감추었다. 집안으로 금세 향긋한 음식 냄새가 차올랐다.

“우와! 이게 다 뭐야?”

이재원이 크게 감탄하며 식탁 의자에 앉았다. 강우와 김세아도 앞치마를 푸르며 자리에 앉았다.

“아 참. 잠깐만.”

김세아가 생각났다는 듯 어디로인가 사라졌다. 이윽고 김세아가 양손에 케이크와 샴페인을 들고 나타났다.

“우리 아들 생일인데 기념해야지.”

“.....”

이재원의 눈가가 살짝 붉어졌다. 이재원이 콧등을 쓰윽 훔치며 코를 훌쩍였다.

“애도 아니고 케이크는 없어도 되는데.”

강우가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가지고 온 백 팩에서 선물을 꺼냈다.

“그럼 어른이니까 선물도 필요 없겠네요.”

“선물? 야 어른도 선물 좋아하거든?”

강우가 이재원에게 스윽 선물을 내밀었다. 이재원이 단숨에 받아들더니 포장을 뜯으려 했다.

“있다가 뜯어봐요.”

“아···. 궁금한데.”

이재원이 못 참겠다는 듯했지만, 이내 선물을 한쪽에 놓았다. 김세아도 커다란 선물꾸러미를 이재원에게 내밀었다.

“재원아, 엄마도 선물 샀어.”

“아···.”

이재원이 김세아의 선물을 받으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강우가 빠르게 촛불을 켰다. 샴페인은 이재원과 김세아의 잔에만 따랐다. 강우는 오렌지주스로 대신했다.

“생일 노래 불러줘요?”

강우의 말에 이재원이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민망하게 노래는···.”

그때, 김세아가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우리 아들이라는 가사를 부른 김세아가 눈시울을 붉혔다. 이재원의 얼굴에 행복함이 가득 차오르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이렇게 행복한 생일날은 처음이야. 회장님한테 대진 미디어를 달라고 했을 때보다 지금이 더 행복해. 고마워 두 사람 모두. 이제 소원 빌게요.”

이재원이 잠시 눈을 감더니 소원을 빌었다. 그리고 촛불을 훅하고 붙었다.

“자, 먹자.”

식사가 시작됐다. 이재원이 대번에 강우가 만든 파스타와 감바스를 큼지막이 덜어갔다. 강우가 피식 웃으며 스테이크를 집어왔다. 요리를 못한다고 하지만 고기 굽는 거 정도야 하겠지 싶었다.

‘음···.’

하지만 그 기대는 단번에 무너졌다. 소금과 후추 맛의 향연이었다. 강우가 슬쩍 오렌지주스를 마셨다. 이재원이 씨익 웃었다.

“음식은 입에 맞을까 모르겠네.”

김세아의 말에 강우가 파스타를 먹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네 입에 맞습니다.”

김세아가 활짝 웃으며 기뻐했다. 이재원이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차피 강우가 한 거잖아.”

김세아가 이재원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아들?”

이재원이 슬쩍 접시로 고개를 내렸다. 강우가 입술을 꽉 깨물며 웃음을 참았다. 그렇게 극과 극의 맛을 자랑하는 식사 시간이 끝났다.

“그럼 강우야, 집에서 놀다가.”

“네.”

설거지를 끝낸 김세아가 나갈 채비를 했다. 수수한 옷차림에 모자를 쓰고 선글라스를 착용한 모습이었다.

“엄마, 어디 가게요?”

“응, 요리학원. 오늘 강우랑 요리해보니까 너무 재밌더라고. 앞으로 우리 아들 밥은 이 엄마가 책임질게.”

그 말을 끝으로 김세아가 집을 나섰다. 이재원이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강우가 이재원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요리라는 게 하다 보면 금세 늘어요.”

두 사람이 거실로 자리를 옮겼다. 이재원이 소파에 앉더니 탁자 위에 놓인 서류를 집어 들었다.

사라락. 사라락.

서류를 넘기는 이재원의 표정은 심각했다.

“주말인데 일해요?”

“이제부터 대진 미디어의 운명은 내 손에 달렸으니까.”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진 미디어의 그룹 내 위치는 모호하다는 표현이 맞았다. 이재원의 첫째 형이 진행하는 대신 씽크굿 브랜드 런칭 사업과 맞물리는 사업도 있었다.

‘유동부채를 줄이는 과정에서 사내 유보금은 다 빠져나갔을 거고. 이제부터는 수익을 내야 자금의 덩치를 키워갈 수 있겠지.’

강우가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대진 그룹에 대한 기억은 굵직한 것만 떠올리는 강우였다. 자세한 사업내용이나 그룹의 상황은 알 수 없었다. 강우가 떠오르는 미래의 기억들은 자신과의 관계가 멀어질수록 단편적이었다. 하지만 지금껏 떠오른 굵직한 정보들이 있었다. 강우가 기억을 차분히 조합하기 시작했다.

‘대진 미디어라···.’

대진 미디어의 현재 주력사업은 교육용 영상을 비디오로 제작하는 것과 대진 출판사와 마찬가지로 학습지를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진 출판사가 주도적인 입장이었다.

사라락. 사라락.

이재원은 서류에 집중한 채 정신이 없었다. 이윽고 생각을 정리한 강우가 입을 열었다.

“형, 내 말 좀 들어봐요.”

“어?”

이재원이 서류를 내려놓았다. 강우가 눈을 빛냈다.

“지금 대진 미디어의 가장 큰 문제는 대진 출판사와 사업영역이 겹친다는 거죠?”

“그렇지. 솔직히 부속 사업부라고 취급받을 때도 있으니까.”

강우가 짧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앞으로 미디어 사업은 점점 네트워크 위주로 흘러갈 거에요. 인터넷이 점점 보급되고 있고, 예전과는 다른 양상으로 사업의 방향이 흘러가겠죠.”

“그래서?”

이재원이 눈을 빛냈다. 강우가 이런 표정을 지을 때마다 엄청난 정보가 흘러나오고는 했다.

“대진 미디어의 체질을 확 바꿔야 해요. 콘텐츠 확보에 머물지 말고 네트워크 사업에 손을 뻗어봐요.”

“음···.”

이재원이 깊은 생각에 잠겼다. 강우의 조언은 여기까지였다. 똑똑한 이재원이니 분명 무슨 말인지 금세 이해할 것이었다. 이윽고 이재원이 긴 숨을 뱉어냈다.

“하···. 너 진짜 외계인 아니지?”

“글쎄요.”

강우가 씨익 웃으며 텔레비전을 틀었다. 이재원이 보던 미드 에스파일이 재생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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