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7화 (47/402)
  • 너 배우 해도 되겠더라.

    똑똑.

    강우와 친구들의 시선이 문으로 향했다. 신원주가 살짝 미간을 좁혔다.

    “뭐지? 합방인가?”

    이 시절의 노래방에서는 흔히 말하는 합방이라는 게 있었다. 특히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이었다. 먼저 작은 창문 너머로 안쪽을 탐색한다. 그 뒤 마음에 안쪽의 상대방이 마음에 드는 경우 노크를 하는 것으로 시작되고는 했다.

    “춘배야, 그냥 우리끼리 놀자.”

    신원주가 문 쪽을 바라보며 거부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김춘배의 얼굴에는 묘한 기대감이 떠올라 있었다.

    “기다려봐. 예감이 좋아.”

    알 수 없는 김춘배의 말에 강우와 신원주가 고개를 갸웃했다. 김춘배가 심호흡하더니 문을 벌컥 열었다. 열린 문 사이로 노래방의 화려한 조명이 흘러들어왔다. 그 빛을 등지고 한 명의 남성이 서 있었다. 한여름인데도 깔끔한 양복을 입은 남성은 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저···. 조금 전에 노래를 부른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을까요?”

    남성의 말에 김춘배의 얼굴이 크게 흔들렸다. 하지만 이내 강우를 돌아보았다. 남성이 눈을 크게 뜨며 감탄했다.

    “오오···. 훌륭해,”

    남성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남성은 곧장 강우에게 돌진했다. 그리고는 노래방 책을 스윽 강우에게 내밀었다.

    “한 곡만 더 해줄 수 없을까요?”

    “네?”

    강우가 미간을 살짝 좁혔다. 다짜고짜 찾아와서는 한 곡만 더 해달라니 무슨 소리란 말인가. 하지만 남성의 표정은 정말 진지했다.

    “강우야, 이거 캐스팅이다.”

    김춘배가 어느새 다가와 강우에게 귓속말했다. 강우가 ‘뭐?’ 하는 표정으로 김춘배를 보았다. 김춘배가 강우를 향해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한 곡 더 해봐. 빨리.”

    “아니 나는···.”

    거절하려던 강우가 뚝 말을 멈췄다. 김춘배의 표정이 그 어느 때보다 상기되어 있었다. 강우가 책을 탁 덮었다. 강우가 남성을 향해 물었다.

    “일단 신분을 먼저 밝히시는 게 먼저 아닐까요?”

    “아···. 미안합니다. 내가 지금 너무 흥분해서.”

    남성이 양복 안주머니를 마구 뒤지기 시작했다.

    툭. 툭.

    안주머니에서 볼펜, 수첩 등이 우수수 떨어졌다. 그 모습에 강우가 피식 웃었다. 등장부터 그랬지만, 정신없는 스타일의 사람이었다.

    “자 여기 있습니다. 제 명함입니다.”

    강우가 남성이 내민 명함을 받았다. 그리고는 쓰윽 명함을 확인했다.

    [나인 엔터테인먼트. 매니저 김성현.]

    ‘매니저였어?’

    강우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 시기의 연애 기획사에 제대로 된 캐스팅 매니저가 있을 리 없었다. 물론 거대 기획사는 제외하고 말이다. 강우가 스윽 김성현을 바라보았다. 김성현이 상기된 표정으로 노래방 책을 탁하고 펼쳤다.

    “노래 한 곡만 더 부탁해도 될까요?”

    그런 김성현을 향해 신원주가 툭 말을 뱉었다.

    “아저씨, 죄송한데요. 사기꾼 아니에요?”

    “사···. 사기꾼이요?”

    신원주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잖아요. 갑자기 매니저가 들어와서 캐스팅이라니 이상하잖아요.”

    “학생들 알고 온 거 아니었어요?”

    “네?”

    신원주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김춘배가 신원주를 향해 씨익 웃었다.

    “여기 건대잖아. 노래방 캐스팅의 성지 건대.”

    김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고 있군요. 여기서 캐스팅된 가수가 몇몇 되죠. 그 이후로 노래 좀 한다는 사람들은 다 여기로 모입니다. 저 말고도 기획사 매니저들도 많고요. 저기 보이죠?”

    김성현이 문 쪽을 가리켰다. 몇몇 사람들이 방 안을 힐끔 보고 있었다.

    “하···. 어쩐지 굳이 여기로 오자고 하더니.”

    신원주가 허탈하게 웃었다. 김성현이 주섬주섬 떨어트린 수첩과 볼펜을 들었다.

    탁.

    김성현이 수첩을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이름이 강우라고 했죠? 연예인 해볼 생각 없습니까?”

    김춘배가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강우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래. 그럴 줄···. 네?”

    김성현이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물론 가끔 연예인을 하지 않겠다며 거절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단칼에 자르는 경우는 드물었다.

    “혹시나 해서 그런데. 아저씨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나인 기획사 몰라요? 우리나라에서 엄청나게 큰 기획사. 아 맞다. 이현희 알죠? 그 사람도 내가 발굴한 거예요. 놀랬죠?”

    김성현이 열변을 토해냈다. 그 순간 강우는 살짝 지끈거리는 머리에 미간을 좁히고 있었다. 김성현의 표정이 더욱 난감해졌다. 강우가 김성현을 스윽 바라보았다.

    ‘저 사람이 바로 그 김성현이라고?’

    대형기획사 매니저로 시작해 대형기획사를 창립한 전설적인 인물이 눈앞에 있었다. 강우가 김춘배를 힐끗 바라보았다.

    ‘일단 사기꾼은 아니네.’

    그리고는 속으로 짧게 한숨을 쉬었다. 늘 연예인이 하고 싶다는 친구였다. 지금 눈앞의 기회는 김춘배에게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춘배야, 내가 줄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인 거 같다. 잘 붙잡아 봐라.’

    강우가 마이크를 붙잡았다. 그리고 다시 노래를 시작했다. 선곡은 역시나 임상청의 노래였다. 미래의 기억 속이나 지금이나 강우의 최애 가수였다.

    “이럴 수가···.”

    강우의 노래에 취한 김성현이 멍한 표정으로 감탄을 했다. 그리고는 열심히 강우를 보며 메모를 시작했다.

    “키는 187 정도에 몸무게는 좀 나가 보이는군. 하지만 살을 빼면 더 보기 좋은···. 아니야 지금도 남성적이고 좋군. 아직 고등학생이니 젖살이 빠지고 근육을 만들면 남성성을 어필할 수 있겠어. 목소리도 중저음이고 오! 고음도 엄청나군.”

    남성의 중얼거림에 신원주가 뭐 하는 사람이냐는 듯 웃었다. 그렇게 강우의 노래가 끝났다.

    “학생, 진짜 재능 있어요. 조금만 더 가다듬으면 정말 좋은 가수가 될 거예요. 우리 회사 와서 오디션이라도 한번 보는 게 어때요?”

    강우가 김성현을 보며 입을 열었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그래, 당연히 조건이 있어야죠. 부모님 모시고 와도 돼요. 계약서도 공개 가능···.”

    강우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여기 있는 제 친구랑 같이 오디션 볼 수 있게 해주시죠.”

    “응? 친구?”

    김성현이 김춘배를 바라보았다. 김춘배가 멍한 표정으로 강우를 바라보았다.

    “가···. 강우야.”

    김성현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 정도야 어렵지 않죠. 시간 내서 같이 와요.”

    * * *

    잠시 후, 강우와 친구들이 노래방을 나왔다. 시간은 어느새 제법 흘러 주변이 어두웠다. 김춘배는 멍한 표정으로 노래방을 돌아보았다. 사실 김춘배는 이 노래방을 수십 번이고 찾았다. 놀이공원은 물론이고 강남 길거리도 얼마나 돌아다녔는지 모른다. 오디션에 지원하는 족족 서류심사조차 통과 못 하던 김춘배였다. 그래서 이런 식의 캐스팅이라도 노린 것이다

    “강우야, 잘했다. 춘배 저 표정 봐라. 넋이 나갔네. 나갔어.”

    신원주가 강우의 어깨를 툭툭 치며 대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강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사람 하나 살리는 셈 치는 거지.”

    김춘배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노래방의 간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김춘배가 짧게 한숨을 뱉어냈다.

    “하아···.”

    강우가 김춘배를 불렀다.

    “땅 꺼지겠네. 빨리 와. 밥이나 먹으러 가게.”

    김춘배의 시선이 스르륵 강우를 향했다. 그리고는 성큼성큼 다가왔다. 김춘배의 얼굴에는 만감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강우야, 진짜 고맙다.”

    “뭐···. 친구끼리···.”

    강우가 멋쩍음에 머리를 긁적였다. 김춘배가 강우를 부러운 듯 바라보았다.

    “맨날 괴물이라고 한 거 취소할게. 넌 진짜 천사다.”

    “아우 닭살 돋아 그만해.”

    강우가 팔뚝을 마구 비볐다. 김춘배가 스르륵 고개를 떨궜다. 그리고는 자신의 손에 들린 명함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강우를 바라보았다.

    “강우야, 요즘 복잡할 텐데 미안하다. 나중에 너 시간 될 때 말해줘. 언제든지 괜찮아.”

    “알겠어. 너무 늦게 가면 그러니까. 조만간 한번 가자.”

    “진짜?! 강우야!”

    김춘배가 환하게 웃으며 강우를 껴안으려 했다.

    “야야! 하지 마!”

    강우가 질색하며 김춘배를 밀어냈다. 신원주가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툭 말을 뱉어냈다.

    “일단 노래는 안 되니까. 춘배, 너 당장 연기학원부터 알아보자.”

    신원주의 말에 강우의 입꼬리가 실룩였다. 하지만 김춘배는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표정이었다. 빗을 꺼내더니 머리를 쓰윽 빗었다. 그리고는 입꼬리를 스르륵 말아 올렸다.

    “사실 가수보다는 배우가 꿈이었지.”

    잠시 정적이 흘렀다. 김춘배가 어깨를 으쓱했다.

    “연기학원 이미 다니고 있었다고. 요즘은 보컬학원도 다니고. 연예인은 모든 것에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고나 할까?”

    김춘배가 멋들어진 미소를 지었다. 또다시 정적이 흘렀다.

    “......”

    “......”

    강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배고프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 * *

    강남의 청담동에 강우와 김춘배가 나타났다. 교복을 입은 두 사람의 주변으로는 한껏 차려입은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우와···. 역시 강남이라 이건가?”

    김춘배가 입을 벌린 채 감탄했다. 강우가 슬쩍 주변을 보니 화려한 패션을 자랑하는 젊은이들이 가득했다. 일명 오렌지족으로 90년대를 강타했던 키워드 중 하나였다.

    “어디 보자. 저쪽으로 가면 되네.”

    강우가 명함에 적힌 주소를 확인하고는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커다란 빌딩이 있었다. 강우와 김춘배가 빌딩으로 걸어갔다.

    “학생들 여기는 어떻게 왔어?”

    입구를 지키던 경비아저씨가 대번에 두 사람을 막았다. 살짝 찌푸린 얼굴이었다. 아마 이곳을 자주 찾는 팬들로 오해한 듯했다. 강우가 품에서 명함을 내밀었다.

    “김성현 매니저님을 찾아왔습니다.”

    경비아저씨가 명함을 보더니, 강우와 김춘배를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는 인터폰을 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네, 로비입니다. 여기 김성현 매니저님을 찾아온 학생들이 있네요.”

    이윽고 수화기에서 남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경비아저씨가 강우를 먼저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그 정도 키에 훤칠하게 생긴 남학생이네요.”

    그다음으로 김춘배를 바라본 경비아저씨가 입꼬리를 실룩였다.

    “아. 네네···. 얼굴이 조금 긴···. 아 맞습니다. 남학생.”

    툭.

    인터폰을 내려놓은 경비아저씨가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잠깐 기다리고 있어 봐. 곧 내려온단다.”

    강우와 김춘배가 로비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주변을 힐끗거리니 로비의 안쪽으로 이런저런 사진들이 붙어있었다. 모두 이 기획사의 소속 연예인들이었다. 그중에는 인기 있는 걸그룹의 사진도 있었다.

    “설마, 오늘 보고 가는 걸까?”

    김춘배는 이미 정신이 없어 보였다.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말이다. 강우가 김춘배의 어깨를 툭 쳤다.

    “연예인 보러 왔냐?”

    “아···. 맞다.”

    김춘배가 멋쩍게 웃었다. 이윽고 ‘띵’하는 소리가 들리고 엘리베이터에서 김성현이 나타났다. 헐레벌떡 뛰어왔는지 바지에 넣었던 셔츠가 밖으로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오래 기다렸지?”

    김성현은 지난번보다는 가벼운 옷차림이었다.

    “아니요. 방금 왔습니다.”

    “그래? 일단 올라가자.”

    김성현이 경비아저씨를 보며 꾸벅 인사했다. 경비아저씨도 모자를 벗어주며 인사를 받아주었다.

    “너희 온다고 해서 다 준비해놨다. 긴장하지 말고 있는 실력 다 보여줘 알겠지?”

    김성현이 강우와 김춘배의 어깨를 두들겨주었다. 강우가 김성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확실히 기억하는 대로 괜찮은 사람이긴 하네.’

    미래의 기억 속에서도 김성현은 기획사 사장치고는 인품이 좋기로 유명했었다. 그래서 강우가 김춘배를 믿고 맡기기로 한 것이기도 했다.

    띵.

    엘리베이터가 열리자 기획사의 입구가 보였다.

    “아직은 여기랑 위에 두 개 층만 사용 중이야, 그런데 곧 이 빌딩을 매입할 예정이지.”

    김성현이 물어보지도 않은 회사 자랑을 했다. 김성현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다른 회사들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여기는 오디션 겸 연습실이 있는 층이다. 오늘 너희는 여기서 오디션을 볼 거야.”

    달칵.

    문을 열고 들어가자 넓은 연습실은 텅 비어있었다. 앞쪽으로 놓여있는 기다란 탁자가 의자 몇 개가 있었다. 중간에는 덩그러니 스탠드형 마이크가 놓여있었다.

    “저기 앉아서 조금만 기다려봐.”

    김성현이 한쪽에 있는 철제의자를 가리켰다. 김성현이 문을 닫고 나갔다. 강우와 김춘배가 나란히 앉았다.

    “후···. 떨린다. 강우 너는 멀쩡해 보인다?”

    “나야, 떨어지든 말든 상관이 없으니까.”

    김춘배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강우가 자신을 위해 억지 오디션을 보러왔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태연한 강우의 모습은 놀라울 뿐이었다.

    “하···. 나도 너처럼 좀 덤덤했으면 좋겠네.”

    “아니지 넌 떨려야지. 네 인생이 걸린 문제인데. 춘배야, 긴장해라.”

    “와? 긴장 풀어주는 방법 한번 참신하네.”

    김춘배가 픽 웃었다.

    벌컥.

    그 순간, 문이 열리고 몇 명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얼굴 가득 냉랭한 표정이 가득한 사람들이었다. 맨 뒤로는 김성현이 들어왔다. 김성현이 강우와 김춘배를 향해 손을 불끈 쥐며 힘내라는 제스처를 했다.

    ‘사람은 좋네.’

    자리에 앉은 사람 중 중년의 남성이 입을 열었다.

    “김 대리, 시작해.”

    김성현이 꾸벅 인사를 하더니 강우를 바라보았다.

    “박강우 군.”

    강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마이크 앞에 섰다. 김성현이 준비된 반주 CD를 틀었다. 이미 사전에 강우와 의견을 나눈 선곡이었다. 잔잔한 발라드가 흘러나왔다. 강우의 입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오···.”

    지루하게 앉아있던 오디션 담당자들이 살짝 놀라는 표정이 됐다. 중앙의 중년 남성은 손으로 턱을 괴고는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윽고 중년 남성이 손을 들었다.

    “그만, 더 들어 볼 것도 없겠군.”

    그리고는 주변의 담당자들을 향해 의견을 물었다. 중년 남성의 질문을 받은 담당자들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힐끗 강우를 보며 만족스럽게 웃기도 했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없는데.’

    강우는 속으로 픽하고 웃었다. 강우는 연예인이 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윽고 강우가 철제의자에 돌아와 앉았다. 김춘배가 크게 심호흡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춘배야.”

    “엉?”

    김춘배가 살짝 놀라며 강우를 돌아보았다. 강우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노래는 안 돼. 알겠지? 연기로 승부를 보자.”

    “음···. 알겠어.”

    김춘배가 잠시 고민하더니 알겠다고 했다.

    “다음은 김춘배 군.”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김춘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강우가 김춘배의 등을 툭 하고 쳤다.

    “화이팅.”

    “어어···.”

    김춘배가 뻘쭘하게 마이크로 향했다. 중년 남성이 서류를 보더니 날카로운 표정을 지었다.

    “김춘배 군도 노래할 건가?”

    김춘배가 결심한 듯 크게 심호흡을 했다.

    “아닙니다. 저는 연기를 하겠습니다.”

    “연기? 우리 회사는 가수들 위주로 키우는 회사라는 걸 알고 온 게 아닌가?”

    “네, 하지만. 연기 파트도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중년 남성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는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 자네 말대로 연기자 파트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니까. 한번 보기나 하지.”

    그 말을 끝으로 김춘배가 크게 심호흡을 했다.

    “후우···. 가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김춘배의 표정이 돌변했다. 중년 남성과 담당자들이 움찔하며 몸을 뒤로 젖혔다.

    ‘맙소사···.’

    김춘배의 뒷모습을 보던 강우가 움찔하는 담당자들을 보며 오싹한 기분을 느꼈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고 김춘배의 입에서 대사가 흘러나왔다.

    “날 조사하려던 인구조사직원의 간을 포도주 안주로 먹어버렸지.”

    숨이 막히는 정적이 오디션장 안으로 흘렀다. 김춘배의 입에서 영화 양들의 정적에 출연한 칸니발의 대사가 줄줄 흘러나왔다. 긴장마저 풀린 김춘배의 연기는 그야말로 칸니발 그 자체였다.

    “.......”

    “.......”

    중년 남성을 비롯한 담당자들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강우도 놀란 눈이 되었다. 김춘배의 재능은 강우가 보기에도 범상치 않아 보였다.

    짝짝짝.

    “잘했다!”

    침묵을 깨고 김성현이 손뼉을 쳤다.

    “김 대리.”

    하지만 중년 남성의 눈빛에 움찔하며 자리에 앉았다.

    “흠흠···. 고등학생치고는 훌륭하군. 자네도 여기까지 보겠네. 두 사람 모두 집에 돌아가 있으면 연락을 주지.”

    강우가 피식 웃었다. 그렇게 말을 하는 중년 남성의 표정에는 숨길 수 없는 놀라움이 가득했다.

    “강우야 어때? 나 좀 잘했어?”

    자리로 돌아온 김춘배가 언제 그랬냐는 듯 떨었다. 강우가 엄지를 '척'하고 들었다.

    “그래, 너 배우 해도 되겠더라.”

    김춘배가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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