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듯한 된장찌개나 끓여주세요.
끼이익.
서울대병원 앞에 이재원의 차가 멈춰 섰다. 문이 열리고 강우와 강용이가 내렸다.
지이잉.
창문이 내려가고 이재원이 소리쳤다.
“강우야, 주차하고 갈 테니까. 응급실에 들어가서 기다리고 있어!”
“네, 형.”
이재원의 차가 주차장으로 사라졌다. 강우가 물끄러미 서울대병원을 바라보았다. 순간, 머리가 지끈 아파져 오며 또다시 기억이 떠올랐다. 병마로 고통받던 강용이의 어린 시절이었다.
“......”
강우가 물끄러미 강용이를 바라보았다. 어린 강용이는 커다란 병원 건물을 보며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형아, 건물이 엄청 크다.”
“응···.”
“저기에 전부 아픈 사람들이 있는 거지?”
“그렇지···.”
강용이의 얼굴에 옅은 안타까움이 떠올랐다.
“사람들 아픈 거 싫은데···.”
“그래, 다들 치료 열심히 받으면 나을 거야.”
“응.”
강우는 강용이를 데리고 곧장 응급실로 향했다. 야심한 밤이었지만, 응급실은 온갖 환자들로 가득했다. 강우가 접수대로 향했다.
“어디가 아파서 오셨어요?”
“제 동생이 아픕니다.”
“그럼, 여기에 접수하고 기다려 주세요.”
간호사가 강용이에게 다가와 열을 쟀다.
“37도네요. 열은 없네요.”
강우의 입술이 바짝 말랐다.
“얼마나 기다려야 합니까?”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일단 접수를 하고 이쪽에 앉아계시면 담당 선생님이 오실 거예요.”
간호사가 강용을 힐끗 바라보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이는 강용이었다. 그에 비해 응급실 안은 그야말로 난리 통이었다. 이 상황에서 강용이 먼저 진료를 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응급실을 찾아온 사람들은 누구나 급한 환자들이었다.
“.....”
강우가 접수를 마치고 강용이와 응급실의 한쪽에 앉았다. 강용은 병원도 나들이라며 좋아하고 있었다. 하지만 강우의 표정은 어두웠다. 미래의 기억 속에 강용은 병원을 정말이지 싫어했다.
“와~ 사람 많다.”
강용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강우가 강용을 쓰다듬었다.
“우리 강용이는 아프지 말아야지.”
“웅, 형아.”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났다. 주차를 마친 이재원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강우야, 접수는?”
“했어요.”
“그래? 얼마나 기다리래?”
“모르겠어요.”
이재원의 얼굴에도 긴장감이 가득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호들갑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강우라면 달랐다. 이미 강우의 미래를 내다보는 듯한 능력을 몇 번이고 겪지 않았던가. 그리고 강우의 선택은 늘 옳았었다.
“강용이 어디가 아픈 건데?”
강우가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친형제나 다름없는 이재원이었다. 숨길 이유가 없었다.
“아무래도 신장 쪽인 거 같아요.”
“뭐?! 신장? 그냥 독감 같은 게 아니고?”
이재원이 강용이의 이마를 짚었다.
“열은 심하지 않은 거 같은데.”
“재보니까 37도 조금 넘어요. 그런데 이런 미열이 상당히 오래갔어요.”
“그래?”
이재원이 잠시 생각에 빠지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통화 좀 하고 올게.”
“네.”
“걱정하지 말고 있어.”
이재원이 강우의 어깨를 툭툭 쳐주었다. 강우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재원이 응급실 밖으로 나갔다. 몇 분 후. 응급실로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타났다. 그 뒤로는 황망한 표정의 할아버지도 함께였다.
“강우야!”
아버지가 강우를 발견하고는 달려왔다. 강용이가 부모님과 할아버지를 보고는 반가워했다.
“할아버지! 아빠! 엄마!”
“강용아!”
어머니가 강용이를 안아주었다. 할아버지는 강용이의 이마를 짚으며 걱정스러워했다.
“우리 강아지 많이 아픈 게야?”
“형아가 나 아프대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아버지가 강우를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얼굴에는 작은 의아함이 떠올라 있었다.
“접수는 했어?”
“네, 했어요.”
아버지가 할아버지를 힐끗 보더니 물었다.
“네가 모셔오라고 해서 오긴 왔다만···. 도대체 왜 그러는 거니?”
“아빠, 예전에 제가 한 말 기억하시죠?”
“네 말을 믿고 따라 달라는 거?”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할아버지가 여행에서 부쩍 힘들어하셨어요. 돌아오고는 더 힘들어하셨고요. 더 늦기 전에 종합검진을 한번 받아보는 게 좋겠어요.”
“으음···.”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 역시 할아버지의 건강 상태가 염려스러웠던 차였다.
“그럼 강용이는?”
“요즘 들어 강용이가 계속 미열이 난 거 기억하시죠?”
“기억하지.”
“오늘 저랑 집에 있다가 몸이 안 좋아 보이길래 옆구리를 눌러봤더니 많이 아프다고 하더라고요.”
아버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강우의 친가 쪽으로 흔히 말하는 가족력이 있었다.
“그럼 차라리 예약을 잡고 정식으로 진료를 보는 게 어떨까?”
“서울대에서 예약 잡고 진료 한번 보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요. 그러면 너무 늦어요. 강용이도 할아버지도요.”
단호한 강우의 표정에 아버지가 잠시 침묵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아들의 말을 들어 잘못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알겠다. 네 뜻대로 하자. 아빠는 이번에도 너를 믿는다.”
“감사합니다.”
그때였다.
“박강용 환자분?”
강우가 벌떡 일어났다. 차트를 든 간호사가 다가왔다.
“보호자세요?”
“친형입니다.”
간호사가 힐끗 강우의 뒤쪽을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손을 들었다.
“제가 애들 아버지입니다.”
아버지를 발견한 간호사가 물었다.
“신장에 문제가 있으신 거 같다고요?”
“아···. 네···.”
경황이 없는 아버지가 말끝을 흐렸다.
“원래부터 병력이 있으셨나요? 아니면 다른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셨나요?”
“아닙니다. 오늘이 처음입니다. 다만 아이가 옆구리가 아프다고 합니다. 저희가 가족력도 있고요.”
아버지의 말에 간호사의 표정이 애매해졌다. 신장병을 진단받기도 전에 신장이 아프다 하니 의아한 것이다.
“알겠습니다. 일단 안에서 대기해 주세요. 담당 선생님이 곧 봐주시러 올 거예요.”
“네, 알겠습니다.”
간호사가 돌아갔다. 이번에는 아버지가 할아버지의 이름을 접수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났다.
“......”
“......”
아버지와 강우는 의자에 나란히 앉아 침묵하고 있었다. 어머니와 할아버지는 그새 잠든 강용이를 보살피고 있었다.
“어? 오셨어요?”
그때, 이재원이 돌아왔다.
“재원이구나? 애들 데리고 와줘서 고맙다.”
“그런 말 마세요. 제가 이 집 큰아들 아닙니까?”
이재원의 말에 옆에 있던 인물의 눈이 살짝 커졌다.
“아···. 인사드려라. 여기가 내 아버지시다.”
이재원이 할아버지를 보더니 깜짝 놀랐다. 그리고는 구십 도로 꾸벅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이재원이라고 합니다.”
“반갑구나. 강우 친한 형이라고?”
이재원이 넉살이 좋은 웃음을 지었다.
“네, 그냥 손자처럼 생각해 주세요,”
“허허···. 그래그래.”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마친 이재원이 어머니를 보며 꾸벅 인사를 했다.
“어머니.”
“그래, 재원아.”
어머니가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인사를 받아주었다. 이재원이 어머니를 안심시켰다.
“저 있으니까.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우리 재원이 든든하다.”
그 순간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가 나타났다. 얼굴 가득 피로감이 가득했다. 응급실에서 악전고투를 벌였을 탓일 것이다.
“박강용 환자분?”
“네, 여기 있습니다.”
아버지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강용이를 데리고 왔다. 의사가 강용이를 살피기 시작했다.
“신장에 문제가 있는 거 같다고요?”
“네.”
의사가 차트를 보며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 겁니까?”
“근래 들어 미열이 계속 있었습니다. 또 옆구리가 아프다고 합니다.”
의사가 강용이를 힐끗 보더니 다시 물었다.
“고열 증상은 없었다는 말씀이시군요. 혹시 소변을 봤을 때 거품이 심하게 낀다든지 아니면 혈뇨를 본다든지 하거나 몸이 심하게 부은 적은요?”
“그런 적은···. 잘 모르겠습니다.”
아버지가 긴 숨을 뱉어냈다. 온통 일에 치여 바쁜 나날을 보내는 것이 가장이었다. 아들의 자세한 하루까지 들여다볼 수 없는 자신에게 무력감을 느꼈다. 그러자 어머니가 나섰다.
“선생님, 아침이나 저녁마다 소변에 거품이 낀 적은 있어요. 하지만 혈뇨는 본 적이 없고요.”
“혹시 단백뇨 검사 스틱으로 단백뇨 수치를 재본 적이 있습니까?”
의사의 질문에 어머니가 고개를 저었다.
“검사를 해본 적이 없어요. 이번이 초진이에요.”
의사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일단 간단한 소변검사부터 하겠습니다. 그리고 혈액도 좀 뽑겠습니다.”
의사가 강용이에게 다가와 팔과 무릎 부분을 꾹 눌러보았다. 그리고는 강용이에게 물었다.
“이름이 강용이지?”
“네.”
“그래, 지금부터 선생님이 강용이 몸을 좀 누를 거야. 아픈 데가 있으면 꼭 말해줘야 해. 알았지?”
“네, 선생님.”
의사가 강용이의 등 쪽 옆구리를 꾹 눌렀다.
“아야!”
강용이가 아파하자 의사가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는 이곳저곳 더 눌러보았다. 하지만 다른 곳은 반응이 없었다.
“일단 한 가지 증상만으로는 정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습니다.”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의사가 잠시 고민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럼 지금 당장 응급한 증상은 없으니 소변검사와 혈액검사 정도만 하고요. 여기서 진료 예약을 잡아드릴 테니까. 자세한 검사는 돌아가셨다가 신장내과 진료를 보시고 진행하는 게 좋겠습니다.”
사실 의사의 말이 맞았다. 증상이 없으니 응급실에서의 처치보다는 정식진료를 보라는 것 말이다. 하지만 강우는 한시가 급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신은 미래의 기억을 알고 있지 않은가.
강우가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오늘 입원해서 정밀 검사를 받아보고 싶습니다.”
의사가 미안한 표정이 되었다. 환자 가족의 절실함을 알겠지만, 본인도 방법이 없었다. 이곳 서울대는 전국에서 온갖 중증 환자가 몰리는 곳이다.
“죄송하지만, 지금 소아 병실이 가득 차 있어서요.”
“일반 병실은요?”
“그곳도 마찬가지입니다.”
강우의 입술이 바짝 말랐다. 강우가 이토록 서울대에 집착하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미래의 기억 속 강용이를 봐주었던 서울대의 교수를 만나야 했기 때문이다.
‘그 교수님이 한국에서는 제일가는 권위자라고 했어. 강용이의 일이니 무조건 최고의 의사에게 진료를 받게 하고 싶어.’
그 순간이었다. 응급실의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이재원을 불렀다.
“도련님.”
이재원이 고개를 돌리더니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아. 정 비서님. 오셨어요?”
“네, 도련님.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제가 너무 늦은 시간에 부탁했죠. 그보다 아까 부탁드린 일은요?”
“회장님께서 도련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재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의사를 가리켰다.
“그럼 부탁해요.”
“네.”
짧게 답한 정 비서가 의사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품에서 명함을 꺼내 들었다.
“안녕하십니까? 대진 그룹 비서실의 정지환이라고 합니다.”
“네? 대진 그룹이요?”
명함을 확인한 의사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 비서가 절도 있는 자세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 선생님.”
비현실적인 상황에 의사가 정 비서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갑자기 재벌가 비서라니.
“네?”
“12층 VIP 병실이 비어있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정비서의 말에 의사가 깜짝 놀랐다.
“네? VIP 병실이요?”
“네, VIP 병실.”
정 비서가 젠틀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지금 당장 박강용 환자를 VIP 병실로 올려주시죠.”
“아···. 네네. 잠시만 기다려 주시죠.”
의사가 간호사를 불렀다. 간호사가 다가와 의사의 말을 듣더니 눈을 크게 떴다.
“네? VIP 병실요?”
“그래, 자리 있나 확인해봐. 빨리.”
“네, 선생님.”
간호사가 황망한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잠시만요.”
이재원이 간호사를 불러세웠다. 간호사가 몸을 돌려 이재원을 바라보았다.
“네?”
“여기 있는 박재봉 어르신도 함께 입원 절차 밟아주시죠.”
“네? 아! 네네.”
간호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황급히 안쪽으로 들어갔다. 의사가 헛기침하더니 아버지를 향해 꾸벅 인사를 했다.
“그럼 입원 잘하시고 쾌차하시길 빌겠습니다.”
“네, 고맙습니다.”
아버지가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의사가 이재원을 힐끗 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고는 응급실 안으로 돌아갔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형.”
강우가 이재원을 불렀다. 이재원이 민망한 듯 볼을 긁적였다.
“병실이 없다잖아. 아···. 그리고 입원비는 걱정하지 마라. 내가 누구냐? 대진 그룹 막내아들 이재원 아니냐?”
VIP 병실의 입원비는 매우 비쌌다. 12층의 VIP 병실은 정치인이나 재계의 거물들만 입원하는 곳이었다. 이재원은 그런 곳을 강우 가족을 위해 선뜻 제공해 준 것이다.
“......”
강우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재원에게 부담을 준 미안함과 또 고마움에 말문이 막혔다. 어머니가 울컥 고마움을 느끼며 이재원의 손을 잡아주었다.
“재원아, 고맙다.”
“아니에요. 어머니 제가 이 집 큰아들이잖아요. 나중에 따듯한 된장찌개나 끓여주세요.”
“그래. 그래야지.”
아버지가 이재원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차마 말로 하지 못할 고마움에 긴 숨을 뱉어냈다.
“고맙다. 재원아.”
자신을 향한 강우 가족의 고마움에 이재원이 민망함을 느꼈다.
“아이, 참! 진짜 다들 왜 그러세요? 저 이 집 큰아들 아닙니까?”
이재원의 말에 강우가 스르륵 미소를 지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환하게 웃었다.
* * *
널찍한 병실 안에 강용이가 누워있었다. 작은 환자복을 입은 강용이의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형아, 우리 집에 언제 가?”
보호자 석에 앉아있던 강우가 부드럽게 웃었다.
“이제 검사 결과 다 나왔으니까 조만간?”
“빨리 집에 가서 미니카 시합해야 하는데···.”
강우가 픽하고 웃으며 강용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제 진짜 아픈 데 없지?”
“응! 이제 진짜 멀쩡해. 하나도 안 아파.”
강우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할아버지와 강용이가 VIP 병실에 입원한 지도 벌써 한참이 지났다. 강우가 강용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다행이지.’
강우의 걱정과는 달리 강용이의 신장에서 큰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소량의 단백뇨가 검출됐다. 서울대 신장학과 교수인 김 건 박사의 말로는 이대로 방치했으면, 어찌 됐을지 모른다고는 했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병원에서 주는 약도 먹고. 당분간은 식단 조절도 하고.’
그렇게 신장이 다 자라는 성인까지 조심한다면 별문제가 없을 것이라 했다. 먹을 것을 예전만큼 못 먹게 된 강용이의 불만이 있었지만, 그 정도는 참아야지 어쩌겠는가. 기억 속 강용은 평생 식단관리를 했었지 않았던가.
“병원 밥 진짜 맛없어. 집에 가서 엄마 밥 먹을래.”
“당분간 음식 조절해야 하는 거 알지?”
“하아···.”
강용이가 잔뜩 싫은 표정이 되었다. 강우가 말없이 강용이를 바라보았다. 강용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형아, 할아버지는?”
“기다려보자.”
할아버지는 종합검진을 받으셨다. VIP 병실의 위력은 막강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최고의 의료진이 담당했다. 결과는 불행 중 다행이었다.
‘위에서 종양을 발견했지.’
강우가 떠올린 또 다른 기억은 바로 몇 년 후에 있었던 할아버지의 장례식이었다. 현충원에서 진행된 엄숙한 장례식은 온통 슬픔으로 가득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유는 위암이었다. 너무 늦게 발견하신 나머지 손쓸 틈도 없이 돌아가셨지.’
하지만 강우의 활약으로 미래는 바뀌었다. 종양은 초기에 발견됐고, 할아버지는 수술 날짜를 잡으셨다. 다만 걱정은 할아버지의 연세가 많다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바로 오늘이 할아버지의 수술 날이었다.
“......”
“......”
병실 안으로 정적이 흘렀다. 강우와 강용이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그리고 잠시 후.
드르륵.
병실의 문이 열리고 아버지가 들어왔다. 잔뜩 긴장한 아버지의 표정에 강우가 벌떡 일어났다.
“아버지! 할아버지는요?”
아버지가 얼굴을 쓸어내렸다.
“방금 수술 잘 끝나셨다. 지금 회복 중이셔.”
“아아···.”
안도감에 힘이 풀린 강우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해냈다. 미래를 바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