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2화 (42/402)
  • 형아도 사고 싶은 거 하나쯤은 사도 돼

    덜컹. 덜컹.

    달리는 지하철의 안으로 강우와 강용이 그리고 미나가 나란히 앉아있었다. 강우와 미나의 사이에는 강용이가 앉아있었다.

    “강용 짱이 너무 귀여워요. 저도 이런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말도 안 통하건만 미나는 강용이를 너무 귀여워했다.

    “형아, 누나가 뭐라고 하는 거야?”

    “어, 우리 강용이 귀엽대. 강용이 같은 동생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네.”

    강용이가 씨익 웃으며 미나를 향해 눈웃음을 지었다.

    “나도 미나 누나 같은 누나 있었으면 좋겠다!”

    강우가 머리를 긁적이며 통역을 해주었다. 미나가 활짝 웃었다. 미나의 말을 강우가 통역하고 강용이의 말도 강우가 통역했다. 강우는 말 그대로 인간 통역기가 된 상태였다.

    치이익.

    이윽고 전철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고 미나가 앞장서서 내렸다.

    “이쪽이에요.”

    역을 나서자 온갖 상점들이 눈에 들어왔다. 미나가 강우를 향해 물었다.

    “어디부터 구경하시겠어요?”

    “음···. 동생이 피규어를 좋아해서요.”

    “아···. 피규어.”

    미나가 강용이를 보며 싱긋 웃었다. 역사 앞을 지나 아키하바라의 중심부로 들어가자 강우와 강용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와···.”

    “형아, 짱이다!”

    온갖 가전제품과 게임상점 그리고 장난감 상점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강용이의 마음이 급해졌다. 강우의 손을 잡아끌며 당장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와! 우와!”

    장난감 상점 안에는 온갖 피규어를 비롯해 다양한 장난감들이 있었다. 강우가 슬쩍 피규어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강용아, 이거 어때?”

    강우가 강용이 좋아할 법한 피규어를 권했다. 강용이 심각한 표정으로 피규어를 보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형아, 사실 사고 싶은 게 있어.”

    “그래? 뭔데?”

    강용이가 진지한 표정으로 한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척하고 무언가를 가리켰다.

    “미니카 산다고?”

    강용이가 가리킨 곳에는 미니카가 가득했다. 90년대의 초등학생들을 강타한 모터를 통해 달리는 미니카였다. 강용이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응, 우리 반에 친구 한 명 있는데 걔네 아빠가 일본에서 사다 준 모터로 맨날 1등 해. 맨날 지니까 화나서 이거 꼭 살 거야.”

    “하하하.”

    강우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강용이의 표정이 너무 심각했기 때문이다.

    “왜 웃어? 형아 나빠.”

    “아···. 미안.”

    강용이가 신이 나서 쇼핑을 시작했다. 역시나 강용이의 취향답게 주인공인 매그너스가 아니라 소닉을 고르기도 했다. 미니카 쇼핑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미니카의 심장인 모터였다.

    “와···. 무슨 종류가 이렇게 많아?”

    모터의 종류는 참 다양했다. 강용이의 콧잔등에 땀이 송송 맺혔다. 무언가에 집중하거나 심각한 상황에 나오는 버릇 같은 것이었다. 강용이는 한참이나 모터를 골랐다. 신중 또 신중했다.

    “이 모터는 찬우도 없는 거야. 이거면 내가 이길 수 있어.”

    “아···. 그 친구 이름이 찬우구나?”

    “어. 기찬우!”

    강용이의 두 눈에 승부욕이 차올랐다. 물론 강우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일은 몰라도 강용이의 일이었다.

    “내 동생이 어디 가서 지는 거 나는 못 보지. 그래 사자. 형아가 다 사줄게.”

    “지···. 진짜지?!”

    “그럼!”

    강용이가 신이 나서는 모터를 고르기 시작했다. 오늘만큼은 강우도 돈을 아끼지 않았다. 사랑해 마지않는 하나뿐인 동생이었다.

    “이것도 산다?”

    “어, 사.”

    강용이가 움찔하더니 다른 모터를 집어 들었다.

    “이것도?”

    “응.”

    강용이가 짚는 족족 강우의 허락이 떨어졌다. 강용이의 표정이 날 듯이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여관방에만 있던 답답함이 일순간 사라지는 듯했다.

    “두 사람, 진짜 사이가 좋아 보여요.”

    강우와 강용이의 쇼핑을 지켜보던 미나가 부러워할 정도였다.

    “하하···. 그런가요? 저희가 좀 사이가 좋기는 합니다.”

    강우가 멋쩍게 웃는 사이 강용이의 쇼핑이 끝났다. 작은 체구 가득 들고 있는 미니카 용품들에 강우가 피식 웃었다.

    “여깄습니다.”

    마지막으로 계산을 마치고 세 사람이 장난감 가게를 나섰다. 강용이의 손에는 커다란 플라스틱 박스가 들려있었다. 그 안에는 조립을 마치고 나온 미니카 소닉이 들어있었다. 박스의 한쪽으로는 초경량 타이어와 여러 개의 모터까지 들어있었다.

    ‘하···. 아주 있을 건 다 있네. 이러니 애들이 좋아할 수밖에.’

    강우가 힐끗 강용이를 바라보았다. 얼굴 가득 만족감에 차 있었다.

    “강용아, 다 샀어?”

    “어, 형아.”

    “진짜 피규어는 안 사도 돼?”

    강우가 슬쩍 권했다. 강용이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내 거만 다 사면 형아 거는 못 사잖아. 난 이거면 충분해.”

    “자식···.”

    강우가 강용이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트렸다. 강용이가 ‘으으~’ 하는 소리를 치며 몸을 빼냈다. 강우가 다음 목적지를 향했다. 남재식이 부탁한 게임 타이틀을 사가기로 한 것이다.

    “아이고~ 무겁다.”

    강용이가 박스를 들고 끙끙대자 미나가 도와주려 했다. 하지만 강용이는 단호했다.

    “내가 들 수 있어요.”

    강우가 피식 웃으며 통역을 해주었다. 미나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슬쩍 주변을 둘러보자 상점들의 네온사인이 하나둘씩 들어오고 있었다.

    “와~ 형아 이거 봐.”

    강용이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거리 가득 번쩍이는 네온사인의 물결은 어린 강용에게 인상 깊었나 보다. 강우가 강용이의 어깨에 손을 둘렀다.

    “형아랑, 해외에 나오니까 참 좋다 그치?”

    “응, 형아랑 있어서 더 좋아.”

    강용이가 눈을 반짝였다. 강우가 그런 강용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래, 많이 경험해보고 많이 느껴봐라. 그게 너에게 큰 도움이 될 거야.’

    반짝이는 네온사인을 보며 강용이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때, 미나가 강우를 보며 물었다.

    “다음은 게임용품점이죠?”

    “아···. 네.”

    주변을 두리번거리니 게임을 사기 위해 멀리 갈 것도 없었다. 사방이 온통 게임 가게와 전자제품 가게 천지였다.

    “일단 저쪽으로 가요.”

    미나가 친절히 안내하기 시작했다. 강우와 강용이가 미나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무거운 플라스틱 박스를 들던 강용이가 끙끙대기 시작했다.

    “형아가 들어줄까?”

    “아니, 나도 이제 2학년이야.”

    “어?”

    강우가 멍한 표정을 하는 사이 강용이가 플라스틱 박스를 들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강우가 피식 웃어버렸다. 어느새 강용이도 자라고 있었다.

    “강용아, 같이 가.”

    “빨리 와. 형아.”

    강우가 도착한 곳은 작은 게임 가게였다. 하지만 안쪽으로 들어서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온갖 게임 타이틀이 벽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강우가 빠르게 타이틀들을 훑어내렸다.

    “강우 상은 게임을 좋아하나 봐요?”

    미나의 질문에 강우가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도 좋아하고요. 한국에 있는 친구 부탁이기도 하고요.”

    “친구요? 강우 상은 참 친절한 사람이군요.”

    강우가 멋쩍음에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는 게임 타이틀을 열심히 고르기 시작했다. 미나는 그새 강용이의 옆에 있었다.

    “게임이다.”

    강용이가 게임 가게 내부에 틀어진 화면을 응시했다. 생각해보면 기억 속 미래의 강용이는 강우의 게임 친구이자 동료였다. 대작 게임이 나올 때마다 밤을 새우며 같이 했고, 온라인 게임이 나오면 같이 열심히 레벨업을 하고는 했다.

    ‘아직은 어려서 힘들겠지만. 얼른 커서 형아 게임 친구 해줘라.’

    터울은 지지만 강용이가 커 갈수록 더 많은 접점이 생기던 형제였다. 지금의 강용이가 귀여웠지만, 내심 빨리 자랐으면 하는 마음도 들었다. 상념에서 벗어난 강우가 남재식이 부탁한 게임 타이틀을 찾기 시작했다. 역시나 한국에 정발되지 않은 것들이었다. 잘 팔리지 않아 보따리 장사들이 가지고 오지 않는 유니크한 게임 타이틀이었다.

    “강용아, 형아, 다 골랐다.”

    “응, 형아.”

    강용이와 미나가 강우에게 다가왔다. 미나가 강우의 손에 들린 타이틀을 보며 호기심을 드러냈다.

    “친구분이 참 게임을 좋아하시나 봐요.”

    “네, 엄청 좋아하죠.”

    강우가 씨익 웃었다. 그러자 미나가 의아한 듯 물었다.

    “그런데, 강우 상은 아무것도 사지 않는 건가요?”

    “제거요?”

    “네, 강우 상도 가지고 싶은 게 있을 건데 전부 남의 것만 사서 물어보는 거예요.”

    강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생각해보니 자신에게 너무 관대하지 못한 강우였다. 아버지의 첫 월급날 샀던 CD플레이어가 1년 가까이 강우가 자신을 위해 산 것의 전부였다.

    “음······.”

    강우가 물끄러미 게임 가게의 한쪽을 바라보았다. 미래의 기억 때문일까? 강우는 기억 속과는 다르게 자신을 너무 억제하고 있었다.

    “형아도 사고 싶은 거 사. 아빠가 돈 많이 줬잖아.”

    강용이가 강우의 옆으로 슬쩍 다가와 말했다. 자신만 잔뜩 산 것이 마음에 걸렸나 보다. 강용이가 강우의 손을 꽉 붙잡았다. 그리고는 엔조이 스테이션이 진열된 곳으로 이끌었다.

    “강용아, 형아, 괜찮아.”

    “아니야. 안 괜찮아.”

    강용이가 고개를 저었다. 강우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강용이가 단호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엄마가 그랬어. 형아가 우리 가족을 위해서 노력했다고. 성적도 올렸고, 아빠도 도왔다고. 그러니까 형아도 사고 싶은 거 하나쯤은 사도 돼.”

    “강용아···.”

    강우가 뭉클한 감정을 느꼈다. 항상 어리광만 부리고 엄마 품에만 있는 강용이라 생각했다.

    “빨리 사. 오늘 아니면 못 산다?”

    강용이가 짐짓 어머니 흉내를 내며 허리에 손을 척 올렸다. 강우가 픽하고 웃어버렸다.

    “알겠어. 산다. 사.”

    강우가 엔조이 스테이션이 담긴 박스를 집었다. 묵직한 무게에는 강용이의 마음이 담겨있는 것 같았다.

    “이거 다 주세요.”

    강우가 계산대로 다가가 계산했다. 생각보다 비싼 가격에 마음이 저릿했다. 하지만 강용이의 매서운 눈빛에 무를 수도 없었다. 게임 가게를 나오니 강용이가 배를 만지며 씨익 웃었다.

    “형아, 나 배고파.”

    “그래?”

    마사토의 집에서 밥을 먹은 지도 제법 시간이 흘러있었다. 일본인 특유의 소식 문화 덕분일까. 준비된 음식은 맛있었지만, 양이 적었다.

    “저녁은 같이 먹기로 했으니까. 간단하게 배만 채우고 가자.”

    “좋아!”

    강우가 미나를 바라보았다.

    “강용이가 배고프다고 해서요. 간단히 뭐 먹을 곳이 없을까요?”

    “아~ 그럼 이쪽으로 가요.”

    강우와 강용이 그리고 미나가 근처의 디저트집에 들렀다. 자리에 앉자 미나가 강우에게 메뉴판을 내밀었다.

    “먹고 싶은 거로 시키세요. 여기는 제가 살게요.”

    “네? 아닙니다. 안내까지 했는데 제가 사야죠.”

    미나가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가 강우 상과 강용 짱에게 먹을 것을 사주라며 돈을 조금 주셨어요.”

    “그러면 메뉴는 미나 상이 먹고 싶은 거로 시키죠. 저랑 강용이는 아무거나 잘 먹거든요.”

    강우가 강용이를 보며 물었다.

    “우리 강용이 아무거나 다 잘 먹지?”

    “당연하지!”

    강용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미나가 킥하고 웃었다. 그리고는 메뉴판을 신중히 고르기 시작했다.

    “이거 괜찮을까요?”

    “네, 괜찮습니다.”

    메뉴를 고를 때마다 강우에게 물어보는 미나였다. 강우가 픽하고 웃었다. 이럴 거면 미나에게 메뉴 선정을 맡긴 의미가 없었다.

    “주문이요~”

    결국, 강우와 강용이의 동의 끝에 고른 메뉴가 주문됐다. 강용이는 옆에 놓은 플라스틱 가방을 연신 쓰다듬었다.

    “그렇게 좋냐?”

    “어, 이제 일본 여행 끝.”

    강용이가 눈을 찡긋하며 웃었다. 강우가 웃음을 터트렸다. 이윽고 주문한 디저트가 나왔다. 강우의 것은 기다란 유리잔에 담긴 파르페 같은 것이었다.

    “와···. 맛있네.”

    한입 먹은 강우가 감탄을 터트렸다. 강용이의 것은 그보다 작은 과일주스였다. 어린이 특전으로 작은 케이크까지 있었다. 미나는 강우와 같은 메뉴였다.

    “와? 입에서 녹는다.”

    강용이가 케이크를 먹으며 행복해했다. 강우가 파르페를 크게 한 입 떠먹었다.

    “형아, 입에 묻었다.”

    “아···.”

    강우가 휴지로 입을 쓰윽 닦았다. 그리고는 미나를 보며 물었다.

    “오늘 종일 안내해 주느라 피곤하시죠?”

    “아니요. 강용 짱이 너무 귀여워서 시간 가는 줄도 몰랐어요. 사실 근래에 집에만 있어서 답답도 했고요.”

    강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종일 강우와 강용을 쫓아다니며 친절히 안내해 준 미나였다.

    “나중에 마사토 아저씨랑 한국에 한번 놀러 오세요.”

    미나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간단히 배를 채운 뒤 세 사람은 다시 밖으로 나왔다. 어느새 어둑해진 길거리로 네온사인이 더욱더 짙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강용아, 어떻게 할까? 마사토 아저씨네로 돌아갈까 아니면 구경 더 할래?”

    “으음···.”

    강용이가 우물쭈물했다. 강우가 픽하고 웃으며 강용이의 손을 잡았다.

    “가자. 구경 좀 더 하고가.”

    “형아, 최고!”

    강용이가 엄지를 들며 신이 났다. 강우와 강용이 그리고 미나는 한참을 더 아키하바라를 돌아다녔다. 강용이는 사지 않는다던 피규어를 하나 더 얻어냈다. 미나는 그런 강용이를 보며 연신 귀엽다고 했다.

    “강우 상,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택시를 타고 가는 게···.”

    잠시 후, 강우의 등에 강용이 업혀있었다. 종일 돌아다닌 강용이 잠들어버린 것이다. 강우의 등 뒤로 강용이의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다. 귓가에 들리는 옅은 숨소리에 두 다리에 힘이 솟아올랐다.

    “괜찮아요. 지하철로 돌아가죠.”

    미나가 강우의 손에 있는 짐을 덜어주었다.

    “고마워요.”

    “아니에요. 빨리 가요.”

    그렇게 지하철을 타는 내내 강용이는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마사토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깨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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