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5화 (35/402)

왜? 무슨 일인데?

강우와 친구들은 김춘배의 CD플레이어를 사기 위한 여정에 올랐다. 4인의 파티원이 뭉치자 용던도 무서울 게 없었다. 특히나 파티의 리더인 강우의 강함은 나머지 3명의 파티원에게 든든한 방패였다.

“일단 주변부터 싹 돌아보자.”

강행군이었다. 주변의 가게란 가게는 빠지지 않고 돌아다녔다. 그렇게 한참을 발품을 팔고 나서야 김춘배는 원하는 것을 손에 넣었다.

“드디어 나도 샀다.”

김춘배가 소나사의 B-330을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다. 강우가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배고파. 이제 밥 먹으러 가야지.”

“그래.”

김춘배가 새로 산 CD플레이어를 소중히 담아 가방에 넣으며 답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한쪽으로 수많은 노점상이 늘어서 있었다.

“저기 가서 떡볶이나 먹자.”

강우가 노점상을 가리켰다. 강우와 친구들이 노점분식집으로 향했다. 근처로 다가가자 향긋한 떡볶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구수한 튀김 냄새는 덤이었다.

“아줌마, 떡볶이 3인분이랑 튀김 2인분 주세요.”

“내가 좀 보탤게. 더 시켜 먹자.”

남재식이 양말에서 꺼낸 돈을 김춘배에게 내밀었다. 김춘배가 돈을 물끄러미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냥 내가 살게. 아줌마 떡볶이랑 튀김 1인분씩 더 주세요.”

“왜?”

남재식이 이해 못 하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주인아줌마가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

“학생들 사고 싶은 건 샀어?”

남재식이 고개를 끄덕이며 조금 전 있던 일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주인아줌마가 감탄하며 남재식의 말을 받아주었다.

“험한 일 당할 뻔했네. 아줌마가 특별히 많이 줄게.”

하얀색 반점이 있는 녹색 그릇에 비닐봉지가 씌워졌다. 비닐봉지 위로 떡볶이가 담기기 시작했다. 기름 속으로 다이빙을 했던 튀김도 영롱한 자태를 드러냈다.

싹둑. 싹둑.

능숙한 가위질 솜씨에 튀김들이 분리되기 시작했다. 주인아줌마가 몇 개의 접시에 나눈 음식을 강우와 친구들의 앞쪽으로 놓아주었다.

“내가 특별히 많이 줬어요. 맛있게 먹어요. 학생들.”

장정 4명의 식성은 대단했다. 순식간에 그릇이 비워졌다. 김춘배는 떡볶이 양념마저 맛있다며 싹싹 긁어먹었다.

“아 배부르다.”

노점을 벗어난 강우와 친구들이 지하철역으로 돌아왔다. 중간에 지나쳐온 전자 상가의 상인들은 돌아가는 강우와 친구들에게는 무관심했다. 친구들의 손에 들린 쇼핑 봉지가 이미 목적을 달성했음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덜컹. 덜컹.

흔들리는 지하철 안으로 강우와 친구들이 나란히 앉았다. 김춘배는 이어폰을 귀에 꽃은 채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얼마 후 흥이 잔뜩 오른 김춘배가 노래를 흥얼거렸다. 주변의 사람들이 괴상한 표정으로 바라보았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옆으로 좀 가봐.”

신원주와 남재식이 김춘배로부터 슬쩍 멀어졌다. 김춘배가 두 사람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남재식이 강우를 보며 물었다.

“강우야, 오늘 우리 집에 놀러 올래?”

“집에?”

남재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엉, 오늘 일도 고맙고. 내가 맛있는 거 살 테니까 가서 게임하고 놀다가 가.”

“너 집이 어딘데?”

남재식이 자신의 집 주소를 열심히 설명했다. 강우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거기 우리 집 방향인데?”

“어? 진짜?”

남재식이 눈을 크게 떴다. 남재식의 설명대로라면 강우와 남재식의 집은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아니 강우의 집인 오성맨션을 지나쳐 조금만 올라가면 바로 남재식의 집이었다.

“와···. 그걸 여태껏 몰랐던 거야?”

“하. 그러게.”

강우와 남재식이 서로를 보며 실소를 흘렸다. 하지만 그럴 만도 했다. 야자가 끝나고 나면 늦은 밤이었고. 각자 다른 골목을 이용해 집으로 향했던 것이었다.

‘사실 집을 물어볼 만큼 친했던 것도 아니었고.’

잠시 생각을 한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사토의 일도 잘 마무리됐으니 수능 모의고사 전까지는 시간이 남았다.

“그래, 가자.”

“진짜지?”

남재식의 얼굴이 대번에 밝아졌다.

“나도 간다!”

신원주가 자신도 합류한다고 선언했다. 이윽고 신원주와 남재식은 오늘의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가는 길에 뭐 사갈까?”

신원주의 말에 남재식이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이내 입을 열었다.

“시장에서 닭이나 한 마리 튀겨 갈까?”

“못해도 두 마리는 튀겨야지.”

신원주의 말에 남재식이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오늘 내가 다 산다.”

“오? 진짜지?”

강우는 그 장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친구들과의 시간은 또 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강우가 슬쩍 삐삐를 내려다보았다.

‘이 사람은 엄청 바쁜가 보네.’

강우가 한동안 연락이 없는 이재원을 떠올렸다. 그래도 무소식이 희소식이라지 않던가.

“아···. 못 참겠어.”

강우의 옆쪽으로 앉은 남재식이 바이오 아자드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케이스를 양쪽으로 벌렸다.

딸깍.

양쪽으로 벌어진 케이스 사이로 CD가 진주처럼 영롱한 자태를 드러냈다. 남재식의 얼굴에 황홀감이 차올랐다.

“오오!”

남재식이 탄성을 뱉어내며 매뉴얼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양쪽으로 펼쳤다.

“어디 보자. 바이오 아자드···.”

남재식이 제법 괜찮은 일본어 실력으로 매뉴얼을 해석해가기 시작했다. 신원주가 살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오? 재식이 너 일본어 할 줄 알아?”

“어, 게임 때문에 혼자 공부 좀 했다. 그리고 나 제2외국어 일어잖아.”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 제2 외국어를 선택하는 양서 고등학교였다. 김춘배와 남재식은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택했다. 강우와 신원주는 독일어였다.

“그다음은···.”

남재식이 잔뜩 집중해 매뉴얼을 해석했다. 하지만 점점 어려운 단어와 문장에 얼굴을 찌푸렸다. 그 순간이었다.

“클로즈 유어~”

흥이 극에 달한 김춘배의 입에서 그리 크지 않게 노래가 터져나왔다. 문제는 삑사리가 났다는 것이었다. 강우와 신원주 남재식의 얼굴이 창피함으로 물들었다. 그런 친구들의 얼굴에 김춘배가 이어폰을 뺐다. 그리고는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무슨 일인데?”

* * *

해가 반쯤 모습을 감춰 노을이 지고 있었다. 토요일의 시장 안은 수많은 사람으로 북적이고 있었다. 시장에서 밖으로 나온 강우와 친구들의 손에는 먹을 것이 잔뜩 들려있었다.

“먹을 건 충분하지?”

강우의 물음에 친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우가 집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오늘 밤 자고 가도 된다고 허락받았다. 오늘은 반드시 널 꺾는다.”

신원주가 강우를 가리키며 비장한 표정이 되었다. 김춘배는 통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아니, 게임 이기고 지는 게 그렇게 중요해?”

순간, 강우와 신원주 그리고 남재식이 김춘배를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동시에 소리쳤다.

“당연하지!”

김춘배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시장을 벗어나 조금 걷자 오성맨션 앞에 도착했다. 강우가 친구들을 향해 말했다.

“기다리고 있어 봐.”

“어. 천천히 나와.”

강우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덜컥 문을 열고 들어섰다. 조용한 집안으로 텔레비전 소리만 들려왔다. 강우가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섰다.

“강우 왔구나.”

거실에는 할아버지가 앉아계셨다. 강우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엄마랑 강용이는요?”

“안방에 강용이 재우러 들어갔다.”

“네, 할아버지.”

강우가 안방으로 다가가 슬쩍 문을 열었다. 열린 문틈 사이로 엄마 품에 파고들어 있는 강용의 모습이 보였다. 깊은 침묵 속에서 강용의 쌕쌕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강우가 낮게 어머니를 불렀다. 어머니가 몸을 살짝 틀더니 강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강우보고 밖으로 나가 있으라는 손짓을 했다.

달칵.

강우가 조심히 문을 닫고 나왔다. 그리고는 소파에 앉아 잠시 어머니를 기다렸다. 거실의 창문 너머를 힐끗 보니 친구들이 모여 있었다. 그새 서로를 향해 장난을 치느라 여념이 없었다.

“강우야, 왜?”

어머니가 강용이를 재웠는지 밖으로 나오셨다.

“저 친구네 집에서 자고 와도 돼요?”

“친구? 원주네?”

강우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재식이라고 바로 저 위에 살아요.”

“재식이?”

“네, 원주랑 춘배도 자고 간대요.”

어머니가 잠시 생각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다녀와.”

“네, 엄마.”

강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가 재빨리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할아버지 다녀오겠습니다. 오늘도 자고 가시죠?”

“그래, 주말 동안 있다가 가기로 했다.”

“네, 저 오늘은 친구네에서 자고 와요.”

“그래, 실컷 놀다 오려무나.”

할아버지가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강우가 꾸벅 인사를 하고는 현관을 나섰다. 계단을 내려가 집 밖으로 나가니 친구들의 시선이 쏟아졌다.

“야. 가자.”

강우가 남재식을 툭 건드렸다. 남재식이 깜짝 놀라더니 안경을 치켜올렸다.

“어어···.”

남재식이 앞장서서 집으로 안내하기 시작했다. 정말 남재식의 집은 강우의 집에서 가까웠다. 걸어서 오 분 정도를 걷자 오층 높이의 빌딩이 나타났다.

“여기야. 우리 집.”

남재식이 빌딩의 옆쪽으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작은 은색 철문이 있었다. 반은 유리창이고 반은 철인 문이었다.

덜컥.

남재식이 열쇠로 문을 열고 잡아당겼다.

끼이익.

낡은 쇳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그리고 진한 남자의 향기가 뿜어져 나왔다. 강우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들어와.”

강우가 남재식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그리고는 놀란 눈이 되었다. 문을 들어서자 천장이 낮은 공간이 나타났다. 강우가 허리를 반쯤 숙여야 했다. 그 공간은 시멘트로만 발라진 공간이었다. 옆쪽으로는 작은 수도꼭지가 툭 튀어나와 있었다.

“어어···.”

신발을 벗고 들어서자 단칸방이 나타났다. 성인 남성 4명이 들어서면 좁아 보일 정도의 공간이었다. 강우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5월임에도 불구하고 냉기가 가득한 공간이었다. 안으로 들어선 강우는 또 다른 의미로 놀라고 말았다.

“와! 이게 다 뭐야?”

사방이 게임 포스터였다. 몇 개의 책장에는 온통 게임 타이틀이 꽂혀있었다. 방의 한구석에는 낮은 탁자가 놓여있었다. 그 위에는 텔레비전이 두 개나 놓여있었다.

“이게 다 게임기야?”

텔레비전의 아래쪽으로는 온갖 게임기가 놓여있었다. 잼익스부터 시작해서 슈퍼 게임콘 시리즈 그리고 소나사의 엔조이 스테이션은 물론 경쟁사라 불렸던 네가사의 네턴까지. 흡사 게임 박물관에 온 듯했다.

“내 취미가 게임기 모으는 거거든”

남재식이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강우가 멍하니 방을 둘러보는 사이 신원주와 김춘배도 들어섰다.

“미···. 미쳤다!”

신원주 역시 깜짝 놀라며 흥분하기 시작했다. 김춘배는 코를 부여잡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아···. 냄새.”

강우가 남재식을 향해 물었다.

“그런데 너 여기서 혼자 살아?”

“어.”

어린 나이에 자취라니 강우가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니 방 안은 생각과는 달리 깨끗했다.

“강우야, 이리 와봐. 내가 컬렉션 보여줄게.”

남재식이 강우를 이끌었다. 그리고는 책장에 꽂힌 게임 타이틀들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이거 내가 전부 정품으로 모은 거다.”

남재식의 컬렉션은 정말 대단했다. 게임기별로 구분한 게임 타이틀이 출시일에 맞춰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일단 좀 먹고 게임을 하자.”

좁은 방으로 4명이 둘러앉았다. 그 가운데로 작은 공간이 나올 정도였다.

찌이익.

시장에서 사 온 통닭이 자태를 드러냈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사온 햄버거와 감자튀김도 모습을 드러냈다.

치이익.

남재식이 콜라를 따고 각자의 컵에 콸콸 따라주었다. 이윽고 강우와 친구들이 잔을 들었다.

“마셔.”

꿀꺽꿀꺽.

강우와 친구들의 목젖이 꿀렁거리며 콜라가 식도를 타고 넘어갔다. 강우와 친구들이 동시에 ‘캬’ 하는 소리를 내며 잔을 내려놓았다. 이윽고 음식을 어느 정도 먹자 남재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다려봐.”

남재식이 텔레비전의 전원을 켰다. 그리고 엔조이 스테이션과 네턴의 전원도 넣었다.

위이잉.

게임기의 소음이 방 안으로 울려 퍼졌다. 남재식이 씨익 웃었다.

“하고 싶은 게임 있냐? 말만 해.”

“일단 바이오 아자드부터 해보자.”

신원주의 제안에 남재식의 표정이 대번에 밝아졌다. 남재식 역시 애가 타던 차였다.

“오케이.”

새로 사 온 바이오 아자드가 엔조이 스테이션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신원주가 벌떡 일어나 방 안의 불을 껐다. 가뜩이나 침침하던 방안에 어둠이 찾아왔다.

“불은 왜 끄는데?”

김춘배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리고는 한쪽에 있는 이불을 뒤집어써 코밑까지 잡아당겼다. 냄새가 난다던 조금 전의 사실은 그새 까먹은 듯했다.

“시작한다.”

음침한 노래가 나오더니 게임이 시작됐다. 화면으로 게임의 배경 줄거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친구들의 긴장감이 극에 달했다. 강우가 긴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엠비엘이라는 회사에서 연구하다가 잘못돼서 좀비가 생겼다는데?”

친구들이 ‘으으’ 하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강우의 말이 이어졌다.

“그래서 그거 조사하러 주인공이 파견된 거라는데?”

친구들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게임이 시작됐다. 조작하는 것은 게임기의 주인인 남재식이었다.

“와씨! 대박!”

남재식은 연신 감탄하며 캐릭터를 조종했다. 이윽고 캐릭터가 복도를 지나던 순간이었다.

와장창!

“으악!”

“미친!”

게임 속 복도의 창문이 깨지고 괴물이 난입했다. 남재식과 신원주가 기겁하며 비명을 질렀다.

“아 다른 거 하라고!!!”

김춘배는 아예 이불을 뒤집어쓰고 숨었다. 그 순간, 강우는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었다.

‘일본어가 술술 읽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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