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9화 (29/402)
  • 기무치가 아니라 김치입니다

    다음 날 아버지는 새벽부터 부산스러웠다. 등산을 위해 짐을 싸고 있었다. 어머니는 졸린 눈으로 아버지의 옆에 앉아있었다.

    “아휴~ 여보 대충 싸요. 어차피 잠깐 올라갔다 내려오는 거잖아요.”

    어머니의 말에 아버지의 얼굴이 사뭇 진지해졌다.

    “안 돼. 산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거든.”

    아버지는 여벌 옷부터 구급약 그리고 요즘 들어 조금씩 모으고 계시던 등산 장비를 챙기고 계셨다. 아버지의 옆에서 배낭을 싸던 강우가 피식 웃었다. 기억 속 미래에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의 짐 싸기는 마치 신성한 의식 같았다. 출장 짐을 쌀 때도 등산 짐을 쌀 때도 그 꼼꼼함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강우야, 이것도 챙겨.”

    아버지가 무언가를 강우에게 내밀었다. 힐끗 바라보니 색이 많이 바랜 암벽 등반용 카라비너였다. 강우가 카라비너를 받아들었다.

    “아빠가 설악산에 다닐 때 썼던 거야. 나중에 아들이랑 산에 가게 되면 주려고 했던 건데. 이제 주게 됐네.”

    “아···.”

    아버지의 얼굴로 만감이 교차했다. 아들에게 자신의 분신과 같은 물건을 물려준 감회였다. 그리고 강우는 그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잘 간직할게요.”

    “그래 주면 고맙지.”

    두 부자의 훈훈한 모습에 어머니가 슬며시 미소 지었다. 아버지가 짐을 모두 싸고는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강용이는?”

    “아직 자요.”

    아버지와 달리 강우의 짐 싸기는 간단하고 빨랐다.

    “조심히 다녀와요. 둘이 좋은 시간 보내고요.”

    잠시 후, 강우와 아버지가 배낭을 메고 어머니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섰다. 산뜻한 새벽공기에 아버지의 얼굴이 환해졌다.

    “가자.”

    “네.”

    거리는 한산했다. 해가 덜 떠올랐는지 고즈넉한 일요일 새벽이었다. 강우와 아버지가 버스 정거장에 도착했다. 산에 갈 때는 항상 넉넉히 시간을 잡고 움직이는 아버지였다. 아마 산으로 향하는 설렘을 최대한 오래 느끼고 싶었나 보다.

    끼이익.

    버스가 새벽안개를 헤치고 나타났다. 강우가 먼저 탑승을 하고 그다음은 아버지였다.

    찰그랑.

    아버지의 손에서 동전이 요금함에 쏟아져 들어갔다. 힐끗 요금함을 확인한 기사가 이번에는 강우와 아버지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등산 가시나 봅니다.”

    기사의 말에 아버지가 기다렸다는 듯 답했다.

    “네, 우리 아들이랑 도봉산 갑니다.”

    “좋겠습니다. 요즘 애들은 등산 싫어하던데요.”

    기사의 얼굴로 옅은 부러움이 스쳐 지나갔다. 아마 아들 혹은 딸을 떠올렸나 보다. 아버지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우리 아들이 요즘 애들이랑은 좀 달라요.”

    “좋으시겠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강우가 속으로 미안한 마음을 가졌다.

    ‘이렇게 좋아하시는데 진작 같이 갈 걸 그랬나···.’

    이윽고 버스가 출발하고 아버지가 살짝 비틀거리셨다. 강우가 빠르게 아버지를 부축했다. 아버지가 힐끗 강우의 배낭을 보더니, 민망함에 헛기침했다.

    “흠흠···. 갑자기 출발해서 놀랐네.”

    강우가 말없이 웃었다. 사실 아버지의 배낭은 강우의 배낭보다 훨씬 무거웠다. 강우의 짐까지 한참을 자신의 배낭에 넣으신 탓이다. 강우는 자신의 배낭에 짐을 더 넣겠다고 했지만, 아버지는 초심자를 배려한다며 그러신 것이다.

    “이쪽으로 앉아요.”

    “그래.”

    한산한 새벽 버스에는 자리가 많았다. 강우와 아버지가 버스의 맨 뒤로 가 앉았다. 배낭을 벗고 각자의 다리 사이로 놓았다. 얼굴까지 닮은 두 부자가 같은 자세로 앉아있었다. 몇 안 되는 승객들이 그런 두 부자를 보고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닮긴 닮았나 보네.’

    강우가 속으로 픽하고 웃었다. 이윽고 버스를 갈아탄 강우와 아버지가 남산의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 로비로 들어선 아버지가 곧장 프런트로 향했다.

    “405호 미스터 마사토 호출 부탁합니다.”

    “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프런트 직원이 전화기를 들어 마사토에게 연락을 넣었다. 그리고는 이내 수화기를 아버지에게 내밀었다.

    “마사토, 접니다. 지금 로비에 있습니다.”

    잠깐의 통화가 끝나고 약간의 시간이 지났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에서 마사토가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었다.

    “많이 기다리게 해서 미안합니다.”

    아버지가 손사래를 치며 아니라고 했다. 이윽고 마사토를 힐끗 본 강우가 고개를 푹 숙이고 몰래 웃음을 지었다. 마사토는 말 그대로 완전무장 상태였다. 마사토가 아버지에게 자랑하듯 배낭을 열어 보였다.

    “장비도 다 챙겨 왔습니다.”

    복장은 아버지와 비슷했다. 등산용 옷에 등산화 그리고 등산 가방. 하지만 차별화는 배낭 안에 있었다.

    ‘카라비너에 해머에 자일에···.’

    도봉산 최정상에라도 오를 기세에 아버지가 올라가는 입꼬리를 참지 못했다.

    “마사토, 정말 암벽이라도 탈 생각입니까?”

    “아···. 아닙니다. 오랜만에 가는 산이라 설레어서 말입니다. 예전 분위기라도 내볼까 했습니다.”

    마사토가 민망한 듯 웃었다.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깊게 공감했다. 호텔을 벗어난 강우와 두 아버지는 남산을 걸어 내려갔다. 그리고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도봉산에 도착했다.

    “좋군요!”

    마사토가 양팔을 벌리며 산 공기를 만끽했다. 아버지 역시 산에 오니 생기가 가득해지셨다.

    “일단 올라갑시다.”

    아버지가 강우를 배려해 초보용 코스인 마당바위를 가자고 했다. 하지만 강우는 고개를 저었다.

    “저 튼튼해요. 두 분, 가시고 싶은 코스로 가요.”

    아버지가 살짝 걱정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만장대 밑까지 가보자.”

    아버지와 마사토가 강우를 바라보았다.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등산이 시작됐다. 아버지와 마사토는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세월이 흘러 다시 만난 두 중년의 젊은 날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나 보다.

    “허억···. 허억···.”

    산을 한참 오르자 마사토가 힘겨워했다. 뒤를 묵묵히 따르던 강우가 앞으로 다가갔다.

    “배낭 들어 드릴까요?”

    강우의 말에 마사토가 화들짝 놀랐다. 그리고는 손을 저으며 극구 사양했다.

    “괜찮아. 내 배낭인데 내가 메야지.”

    아버지도 놀란 눈으로 강우를 보았다. 너무나도 멀쩡해 보이는 강우의 모습이었다.

    “강우야, 너 안 힘들어?”

    “멀쩡한데요?”

    강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등산이 중간지점에 온 지금까지 강우는 아무런 피로감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주세요.”

    강우가 마사토의 배낭을 다시 달라고 했다. 하지만 마사토는 극구 거절했다. 강우가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났다. 등산이 이어지자 강우가 점점 앞으로 치고 나왔다. 결국, 강우가 속도를 냈다.

    “먼저 갈게요.”

    괴물 같은 강우의 체력에 아버지와 마사토가 멍한 표정이 되었다. 강우가 빠르게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말처럼 굵은 두 허벅지에서 끝없이 힘이 솟아올랐다. 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이 입을 벌리며 강우를 바라보았다.

    “어머? 저 총각 봐?”

    “허벅지 봤어?”

    잠시 후, 등산객들의 뜨거운 시선을 받으며 강우가 산 정상에 올랐다. 시간을 재보지는 않았지만, 기네스에 오르지 않았을까 싶었다.

    휘이잉.

    산 정상에는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그 시원한 바람에 강우의 이마에 맺혔던 땀이 스르륵 흩어져버렸다. 땀이 식자 온몸에 활기가 돌았다.

    ‘지금이라도 운동선수로 전향해?’

    강우가 자신의 능력에 실소를 흘렸다. 강우가 적당한 곳에 앉아 아버지와 마사토를 기다렸다.

    “헉헉···. 강우야!”

    한참이 지나고 아버지가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이윽고 그 뒤를 마사토가 기어 오듯 나타났다. 아버지의 얼굴에 승리했다는 안도감이 스쳐 지나갔다.

    “괜찮으세요?”

    강우가 아버지를 먼저 부축했다. 그리고는 마사토에게 다가가 팔을 부축해 정상에 도착했다.

    “제가 졌군요.”

    마사토가 아버지를 보며 패배를 인정했다. 나이를 먹어도 똑같은 남자들의 승부욕에 강우가 피식 웃었다. 아버지와 마사토가 정상에서 선인봉을 바라보았다.

    흘러가 버린 두 사람의 젊음이 남아있는 봉우리였다.

    “마사토.”

    “정식.”

    아버지와 마사토가 감격에 젖은 듯 서로의 이름을 불렀다. 세월이 지나 가장이 되고 거친 사회의 풍파에 이리저리 치이는 두 가장이었다. 하지만 이곳 도봉산에 있는 봉우리는 움직임 없이 두 사람을 기다려 준 것이다.

    “우리 꼭 성공합시다.”

    “네, 서로 신뢰를 바탕으로 꼭 성공하는 겁니다.”

    아버지와 마사토가 뜨거운 악수를 하였다. 강우가 아버지와 마사토를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미래의 기억보다 두 분은 훨씬 끈끈한 믿음을 가지셔야 한다.’

    IMF라는 파도에서 좌초되지 않기 위해서는 말이다. 아버지와 마사토가 한참을 서서 도봉산의 여러 봉우리를 보았다. 그리고는 동시에 후련한 듯 긴 숨을 뱉어냈다.

    “내려가죠.”

    “네, 그러시죠.”

    아버지와 마사토가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살짝 휘청였다. 땀이 식어버린 탓인지 피로해 보이는 두 사람이었다. 강우가 입꼬리를 올리며 아버지와 마사토에게 다가갔다.

    “배낭, 제가 들게요.”

    아버지가 살짝 움찔하더니 배낭을 풀러 강우에게 내밀었다. 아들에게 남자의 자존심을 내세울 이유는 없었다. 아들은 언제든지 기댈 수 있는 그런 존재니까. 아버지가 마사토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으음···.”

    마사토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남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은 마음과 남자의 자존심 때문이었다. 강우가 부드럽게 웃으며 마사토의 배낭을 뺏듯이 낚아챘다.

    “괜찮습니다. 남는 게 힘이라서요.”

    마사토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 강우가 배낭을 양팔에 걸쳐 멨다. 그리고 힘차게 걸음을 옮겼다.

    “우리도 가죠.”

    아버지와 마사토가 강우의 뒤를 따랐다. 아직 정상에서의 여운이 남았는지 아버지와 마사토는 말이 없었다. 강우는 올라올 때와는 달리 보조를 맞추며 천천히 내려왔다.

    “막걸리 한잔하시겠습니까?”

    “좋습니다.”

    산의 입구에 내려온 아버지가 술을 권했다. 기억 속 마사토는 술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의 마사토는 거절하지 않았다.

    “파전에 막걸리 한 병 주세요.”

    아버지의 주문에 가게주인 아주머니의 손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강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막걸리 한 병과 술잔 두 개를 챙겼다.

    “제가 가져갈게요.”

    하산한 등산객 손님들로 바쁜 주인아주머니가 환하게 웃었다.

    “고마워요. 총각.”

    커다란 덩치의 강우는 누가 봐도 총각같이 보였나 보다. 자리에 돌아온 강우가 능숙한 손놀림으로 막걸리를 흔들었다.

    치이익.

    살짝 김을 뺀 강우가 막걸리 뚜껑을 힘차게 돌렸다.

    따라락.

    “강우 너 술 마시는 거 아니지?”

    능숙한 강우의 손놀림에 아버지의 눈이 가늘게 떠졌다. 강우가 씨익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술은 아버지하고만 마셔야죠.”

    “그렇지.”

    아버지가 기분 좋게 웃었다. 강우가 아버지의 잔과 마사토의 잔에 막걸리를 가득 따랐다. 꿀꺽 침이 넘어갔지만, 꾹 참았다. 이윽고 노릿하게 구워진 파전이 나오자 아버지가 잔을 내밀었다.

    “우리의 사업을 위해.”

    “간빠이.”

    각자의 모국어로 외쳤지만, 그 뜻이 통했나 보다. 기분 좋은 미소가 아버지와 마사토의 얼굴에 떠올랐다.

    “크으···.”

    잔이 오가고 두 분의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강우는 열심히 술을 따르고 파전을 잘라 두 사람의 접시에 놓아주었다. 아들의 완벽한 보조에 아버지의 얼굴에 뿌듯함이 차올랐다.

    “마사토, 제가 말한 식품 리스트 말입니다.”

    이윽고 아버지의 입에서 사업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되려 했다. 잔을 쭈욱 들이킨 마사토가 붉어진 얼굴로 답했다.

    “말씀하시죠.”

    “일단 일차적으로 소면, 산초, 토하젓, 한국산 실고추 정도로 추려 봤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탁.

    마사토가 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진지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소면과 산초는 무난한 품목이군요.”

    “네, 일단 거래 품목을 늘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사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GIC와 도쿄 스파이시의 현재 거래 품목은 중국산 고추뿐이었다.

    “토하젓도 일본인들의 기호에 맞으니 충분히 경쟁력이 있을 겁니다.”

    “좋습니다. 일단 산지를 방문하고 샘플링을 진행해 보겠습니다.”

    아버지가 언급한 물품들은 일본에서 주로 중국산을 수입하던 것들이었다. 하지만 이 시기에는 슬슬 한국산으로 일본 기업들이 돌아오고 있었다. 역시 품질에서 한국산이 나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까지는 순조로웠다. 문제는 다음부터였다. 마사토가 침음성을 흘렸다.

    “한국산 실고추는 단가가 쎄다는 게 좀 문제긴 하군요.”

    한국산 실고추의 단가는 톤당 4만 불이었다. 한국산 고추가 비싼 데다가 일일이 수작업을 해야 하는 실고추의 특성 때문이었다.

    “저희 쪽에서 매출을 늘리기에는 딱 좋은 상품입니다. 한번 고려해 보시죠.”

    “알겠습니다.”

    “그리고 중국산 고추씨를 수입해 가는 건 어떨까요?”

    “고추씨를요?”

    마사토가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그러자 아버지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닭 사료에 고춧가루를 섞어서 먹이는 건 알고 계시죠?”

    “네, 알고 있습니다.”

    닭 사료에 미량의 고춧가루를 섞어서 먹이면 산란율이 조금 증가한다. 이 방법은 이미 양계장에서 사용 중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차별점은 따로 있었다.

    “저번 중국 출장을 갔는데 중국은 고추씨를 그냥 버리더군요.”

    “오? 그럼 그 버려지는 고추씨를 수입하자는 말씀이군요?”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원래라면 힘들겠지만, 제가 중국 쪽에 인맥이 좀 있지 않습니까? 이미 단가 계산은 다 끝낸 상태입니다.”

    “좋군요.”

    마사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버려진다는 고추씨라니 단가 경쟁력이 충분하리라 생각했다.

    “좋습니다. 그 정도 리스트면 이번 출장의 목적은 확실히 잡고 진행할 수 있겠군요.”

    “내일부터 현장 방문해서 물건부터 확인에 들어가시죠.”

    마사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업무 이야기가 마무리되자 아버지가 다시 잔을 채웠다. 아버지와 마사토가 잔을 마시려는 순간.

    “저···. 드릴 말이 있습니다.”

    강우의 입에서 유창한 영어가 흘러나왔다. 아버지와 마사토의 시선이 강우에게 집중됐다.

    “김치는 어떨까요?”

    “기무치를?”

    마사토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일본에서 김치는 아직 마니아층만 있는 음식이었다. 하지만 강우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미래의 일본은 김치에 열광하고 빠져든다. 심지어 자국의 음식으로 만들려고도 했었다.

    아버지가 잠시 생각에 빠지셨다.

    “음···. 김치라···.”

    88올림픽 이후 김치는 조금씩 세계에 알려졌다. 국내에서도 이미 김치공장을 세워 세계화를 준비 중이었다. 그리고 일본으로 수출을 하는 업체도 있었다.

    ‘하지만 아직 적극적인 움직임은 없다. 일본 시장은 미개척 상태나 다름없지.’

    사실 기억 속 먼 미래에 아버지와 마사토는 김치의 수입을 시도했었다. 일본의 김치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은 시기였다.

    “김치라면 한국에서 수입 중이긴 한데···.”

    잠시 고민을 하던 마사토가 말끝을 흐렸다. 강우가 눈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그 양이 얼마 되지 않죠. 일본 시장의 크기를 생각한다면 걸음마 단계나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으음···.”

    마사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강우가 말을 이어갔다.

    “한국이 아닌 일본에 김치공장을 세우는 겁니다. 중국산 고춧가루를 이용해 김치를 만들면 가격 경쟁력에서도 우위겠죠.”

    중국산 고춧가루라면 수입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아버지는 이미 상당량의 물량을 확보해 놓았으니까. 모두 위진오라는 강력한 아군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잠시 계산을 해본 마사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방법이라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겠군요. 일본에서 기무치를 만든다라.”

    마사토의 어설픈 발음에 강우가 부드럽게 웃었다.

    “기무치가 아닙니다. 정확한 발음은 김. 치.입니다.”

    “김. 치.”

    마사토가 어렵게 정확한 발음을 따라 했다. 그리고는 민망한지 씨익 웃었다. 강우가 아버지를 힐끗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대견한 눈빛으로 강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확실히 독립운동가의 핏줄이 어디 가나 싶었다.

    ‘좋아, 이거면 마사토의 전무 승진에 큰 도움이 되겠지.’

    김치 사업은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아버지의 사업에도 날개가 달릴 것이다. 그리고 다가올 위기를 위한 강우의 대비책도 더욱더 단단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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