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화 (23/402)
  • 돼지갈비와 홍콩 영화

    다음날, 주말을 맞이한 강우 가족이 외출준비로 부산했다. 아버지의 첫 월급을 기념한 가족 외출이었다. 급한 성격의 아버지는 벌써 신발을 신고 현관에 서 있었다. 어머니는 강용이를 챙기느라 정신없었다.

    “거참. 빨리 좀 가자고.”

    아버지의 재촉에도 어머니는 느긋했다. 사실 두 분의 성격은 극과 극이었다.

    “우리 어디 가요?”

    “응, 좋은데.”

    어머니의 말에 강용이 잔뜩 들떴는지 몸을 들썩였다. 옷을 입히던 어머니가 웃음을 터트리며 강용을 나무랐다.

    “아휴~ 강용아, 엄마 힘들어 가만히 좀 있어 봐.”

    “네!”

    강용이 로봇처럼 굳어버렸다. 어머니가 강용의 외투를 입혀주고는 양 볼을 쓰다듬었다.

    “우리 귀여운 막둥이 인물이 훤하네?”

    “이제 움직여도 돼?”

    “응.”

    강용이 후다닥 현관으로 와서는 신발을 신었다. 그리고는 아버지의 손을 꽉 잡았다. 급한 성격에 안달이던 아버지의 얼굴이 스르륵 녹아내렸다.

    “머리 이쁘게 하고 가자.”

    아버지가 강용의 머리를 이 대 팔로 만들어주었다. 아버지는 이 대 팔 스타일의 열렬한 추종자였다. 현관에 있는 거울로 머리를 확인한 강용이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으악. 이게 뭐야.”

    강용이 손을 들어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아버지가 머리를 또 넘기려 하자 어머니가 말렸다.

    “여보.”

    “어···. 어.”

    갈 곳 잃은 손에 멋쩍어진 아버지가 현관을 나섰다.

    “가자고.”

    온 가족의 준비가 끝나고 집 밖으로 나왔다. 영상을 회복한 날씨에 산뜻한 바람이 강우 가족을 휘감고 지나갔다. 오늘의 이동 수단은 버스였다. 버스 정거장은 걸어서 이십 분 거리였다.

    “오랜만에 나오니까 좋네.”

    아버지의 목소리에 봄기운이 묻어있었다. 어머니는 붉게 상기된 표정으로 연신 가방을 확인했다. 그곳에는 아버지의 첫 월급이 들어있었다.

    “가는 길에 은행에 좀 들러요.”

    사실, 아버지의 회사는 월급을 은행으로 넣어주는 곳이었다. 어젯밤은 아버지가 어머니를 위해 봉투로 받아오신 것이었다. 정거장으로 가는 길에 은행을 들른 어머니는 통장에 월급을 입금했다.

    -₩ 3,500,000-

    통장에 찍힌 액수에 어머니의 얼굴이 다시 한번 감격으로 물들었다. 어머니는 다시 오늘 쓸 돈을 약간 인출했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자 때를 맞춰 버스가 왔다. 뭘 해도 잘 풀리는 날인가 보다.

    부우웅.

    잠시 후, 버스가 도착한 곳은 영등포였다. 강우 가족은 오늘 이곳에 있는 백화점에 온 것이다.

    “와~ 엄청 크다!”

    강용이 백화점 건물을 올려다보다가 휘청거렸다. 어머니가 강용을 붙잡고는 웃음을 지었다. 아버지가 민망한지 헛기침을 했다.

    “왜들 그래? 백화점 처음 온 사람처럼.”

    사실 처음인 것은 강용뿐이었다. 강우도 몇 번인가는 왔었다. 다만 지금처럼 여유로운 기분은 아니었다. 백화점 안으로 들어서니 수많은 인파가 있었다.

    1996년.

    아직 한국이 경제 호황기를 누리고 있을 때였다. 이 시기의 한국은 GDP가 세계 11위에 OECD 가입까지 목전에 두고 있는 상태였다. 국민의 대부분이 자신들을 중산층이라 여겼고, 실제로 그랬었다.

    “사람 진짜 많네.”

    인파가 북적이는 곳을 싫어하는 아버지가 살짝 불만을 토해냈다. 강우 역시 아버지를 닮아 인파가 많은 곳은 별로였다. 그때, 어머니가 아버지의 팔을 잡아끌었다.

    “애들 새 학기 시작하는데 옷부터 사요.”

    아버지가 두 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래. 오늘 이쁜 거로 한 벌씩 하자.”

    “한 벌이 뭐예요? 사는 김에 몇 벌 사야지.”

    어머니가 아버지를 단번에 제압했다. 안으로 들어간 강우 가족이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탔다. 강용은 자동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잔뜩 흥분했다. 처음으로 들린 곳은 강우가 입을만한 옷을 파는 곳이었다. 90년대를 강타했던 익숙한 브랜드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들 골라봐.”

    어머니가 강우를 향해 이런저런 옷을 가져다 댔다. 훤칠한 키에 덩치까지 좋은 강우가 옷을 입고 나오자 매장 직원이 감탄했다.

    “어머~ 아드님이 훤칠해서 옷이 너무 잘 어울려요.”

    “그렇죠? 우리 아들이 좀 멋있어요.”

    어머니가 입을 가리며 웃었다. 잔뜩 신이 난 어머니가 강우에게 연신 옷을 가져다주었다. 한참을 갈아입던 강우가 결국 지쳐버렸다.

    “전 이거면 충분해요.”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들, 사는 김에 몇 벌 더 사도 되는데.”

    “아니에요. 진짜 필요 없어요. 차라리 교복을 새로 맞출게요.”

    결국,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매장 직원의 눈동자에 진한 아쉬움이 스쳐 지나갔다.

    “진짜 잘 어울리시는데···.”

    강우는 간단히 청바지와 셔츠를 한 장씩 샀다. 이윽고 들린 곳은 강용을 위한 아동복 매장이었다. 외탁을 했는지 강용은 작고 아담했다.

    “이거 입어 보자.”

    강우에게 못 푼 한을 강용에게 풀려는지 어머니의 손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어린 강용은 어머니가 주는 옷을 입으며 신이 났다.

    “와아!”

    강용을 바라보던 강우가 입꼬리를 올렸다. 미래의 기억 속에도 패션에 관심이 없는 강우와는 달리 제법 멋을 부리던 강용이었다.

    “이걸로 할게요.”

    결국, 고심 끝에 어머니가 강용의 옷을 몇 벌 샀다. 옷을 사고 나자 강용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나 장난감 사도 돼요?”

    강용의 얼굴에는 망설임이 가득했다. 그 모습에 아버지가 울컥하셨다. 크리스마스 때 주지 못한 선물에 미안함을 느낀 것이다.

    “사! 장난감. 아빠가 오늘 다 사준다.”

    “아싸!”

    강용이 신이 나서 앞장을 섰다. 그리고는 곧장 장난감 판매대로 향했다. 강우가 흐뭇하게 웃으며 강용의 뒤를 따라갔다.

    ‘행복이 별거 있냐? 이런 게 행복이지.’

    아버지의 월급. 가족의 단란한 외출. 돈이 많을 필요도 없었다.

    “와! 와!”

    강용이 연신 감탄을 터트렸다. 역시나 강용이 관심을 보인 것은 동물 피규어 스타일의 장난감이었다. 일명 조이드 시리즈로 장난감 중에서는 제법 가격이 나갔다.

    “아빠······.”

    강용이 그중에서 가장 작은 것을 집어 들었다. 아버지가 호탕하게 외쳤다.

    “더 큰 거 사.”

    “진짜요?”

    강용이 기다렸다는 듯 더 큰 조이드를 집어 들었다. 어머니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여보···.”

    “괜찮아. 첫 월급인데 이 정도는 써도 돼. 보너스도 있고 인센티브도 받잖아.”

    상여금과 성과금.

    마법의 단어에 어머니의 얼굴에서 근심이 사라졌다. 계산대로 향하는 강용의 얼굴이 점점 상기되기 시작했다. 행여나 누가 뺏을까 품에 꼭 앉은 모습이 사뭇 진지했다.

    “아빠, 엄마. 감사합니다.”

    계산을 마치고 조이드가 완전한 자신의 것이 되자 강용이 꾸벅 허리를 숙였다. 아버지가 강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장남은 진짜 아무것도 안 살 거냐?”

    강우의 얼굴에 망설임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바꿨다.

    ‘그래, 첫 월급인데 이 정도는 해도 되겠지.’

    강우가 입을 열었다.

    “저는 CD플레이어 사고 싶어요,”

    “그래 가자.”

    아버지가 단번에 걸음을 옮기셨다. 이윽고 가전매장에 도착했다. 강우와 아버지의 얼굴에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흠흠···. 나도 좀 둘러볼까?”

    아버지가 매장 안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강우는 신중히 CD-플레이어를 골랐다. 아버지는 비디오를 사셨다. 강우가 아버지에게 꾸벅 감사를 표했다.

    “아빠, 잘 쓸게요.”

    “그래.”

    아버지는 연신 흐뭇하게 웃으셨다. 아버지의 손에 들린 비디오 기계가 유독 가벼워 보였다. 강우 가족의 쇼핑이 이어졌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옷도 몇 벌 사주셨다. 절대 안 사겠다는 어머니를 설득하느라 애를 먹은 아버지였다.

    쇼핑을 마치고 백화점을 나오자 강우와 아버지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저녁이라도 먹고 갈까?”

    아버지의 외식 제안에 강용이 잔뜩 신났다.

    “고기 먹어요!”

    강용의 제안에 단숨에 메뉴가 정해졌다. 강우 가족이 영등포 시장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돼지갈비 가게로 직행했다.

    지글. 지글.

    불판에서 익어가는 고기를 보며 강용이 군침을 흘렸다. 아버지 역시 기대감이 가득했다. 강우네 가족의 남성 삼인방은 고기를 좋아했다. 그중에서도 돼지갈비는 아버지의 일 순위였다.

    “먹자.”

    아버지의 개전 선언과 함께 강우와 강용의 젓가락이 불판 위를 짓밟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강우 역시 먹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실컷 먹어.”

    먹는 게 남는 거다. 평소 아버지의 지론이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 지론을 착실히 실천 중이었다.

    “3인분 더 주세요.”

    아버지의 주문에 사장이 다가와서는 힐끗 불판을 봤다. 그리고는 대단하다는 듯 탄성을 뱉어냈다.

    “아이고~ 체격들이 좋아서 그런가. 진짜 잘들 드시네요.”

    사장의 말에 강용이 더욱 열심히 먹었다. 아버지와 형아에게 뒤지지 않으려면 쉬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땀까지 흘리며 먹는 강용이 귀여운지 사장이 흐뭇하게 웃었다.

    “여기 음료수 서비스!”

    음료가 서비스로 나오고 전황은 더욱 열기를 더해갔다. 어머니는 세 남자의 먹는 모습을 보며 행복해하셨다. 어느 정도 배를 채운 아버지가 가족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나 다음 주부터 매우 바빠.”

    “그래요?”

    어머니가 아버지의 앞접시에 고기를 놔주며 물었다.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중국에 갔다가 컨테이너 나가는 거 보고. 그다음에는 일본에 가야 해.”

    “일본에요?”

    “응, 마사토 만나러.”

    마사토는 아버지의 일본 바이어였다. 두 분의 인연은 참 기가 막힌 사연이 있었다.

    ‘대학생 때부터 이어져 온 인연이라고 했던가.’

    젊을 적 아버지는 암벽등반을 즐겨 하셨다. 복잡한 가정사를 잊기 위해 미친 듯이 몰두하셨다고 했었다.

    ‘히말라야 1차 원정대에 지원도 하셨을 정도였으니까.’

    물론, 강우 할아버지의 극심한 반대로 가지는 못하셨다. 마사토는 한국으로 원정을 온 대학 산악부의 리더였다. 영어를 잘하는 아버지가 일본에서 온 마사토 일행을 안내했고, 일본 사람 중에서 영어가 가능한 사람은 마사토뿐이었다고 했다.

    ‘같이 암벽 타면서 친해진 사이라니.’

    시간이 흐르고 아버지는 결혼하고 강우를 낳았다. 그리고 삶의 치열함에 그렇게 좋아하시던 산에서 멀어지셨다. 하지만 마사토와는 간혹 연락을 주고받으셨다. 마사토는 일본에서 제법 큰 식품회사인 도쿄 스파이시라는 회사의 부장으로 있다고 했다.

    “오래 있다가 오세요?”

    강우의 질문에 아버지가 잠시 일정을 계산해 보셨다.

    “음···. 한 보름 정도?”

    어머니가 살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오래 있네요?”

    “이번이 처음 거래잖아. 정말 중요한 일이야. 신경을 많이 써야 해.”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사토가 속한 일본회사는 거래에 깐깐하기로 소문난 회사였다.

    “그 회사가 고추만 수입하는 건 아니죠?”

    “어? 그것도 알아? 맞아. 고추 말고도 수입하는 게 많지.”

    “마사토 아저씨. 꼭 잘 잡으세요.”

    아버지가 강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요즘 들어 강우의 말을 무시할 수 없었다.

    “알겠다. 걱정하지 말고 어머니 잘 모시고 동생 잘 데리고 있어.”

    “네.”

    아버지의 얼굴에 옅은 아쉬움이 스쳐 지나갔다. 사실 시기만 맞았다면 강우를 출장에 데려가고 싶었을 것이다. 어느덧 아버지도 강우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마저 먹자.”

    “네.”

    강우 가족의 즐거운 식사가 이어졌다. 이윽고 식사를 끝낸 강우 가족이 계산을 마쳤다.

    “감사합니다!”

    돼지갈비 가게 사장의 목소리에는 진심이 담겨있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성인 2명, 고등학생 1명 그리고 초등학생 저학년 1명이 12인분을 먹었으니 말이다.

    “아···. 잘 먹었네.”

    간만의 포식에 아버지의 배가 불룩 나와 있었다. 어린 강용은 어찌나 먹었는지 숨까지 씩씩거렸다.

    “형아, 나 못 걷겠어.”

    “하하!”

    강우가 웃음을 터트리며 강용을 업었다. 넓은 형의 등에 업힌 강용이 고개를 묻고는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형아 등 진짜 넓다.”

    강우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걸음을 옮겼다. 강용이 이내 잠이 들었다. 아버지가 강용이 잠든 것을 힐끗 확인했다.

    “도저히 안 되겠다. 갈 때는 택시 타고 가자.”

    강우 가족이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자 강용은 귀신같이 잠에서 깼다. 강용을 내려놓은 강우가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주말의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얘들아, 우리 비디오나 볼까?”

    아버지의 말에 강우와 강용이 잔뜩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네, 좋아요.”

    아버지가 옷을 챙겨입고는 비디오 대여점으로 향하셨다. 이윽고 아버지의 손에 두툼한 비닐봉지가 들려있었다.

    “뭐에요?”

    강용이 아버지가 빌려온 비디오를 확인했다. 그리고는 비명을 질렀다.

    “홍콩 영화다!!!”

    아버지가 부드럽게 웃으며 비디오 기계를 텔레비전에 연결했다. 그리고는 다급히 비디오테이프를 집어넣었다.

    딸칵.

    아버지가 거실의 불을 껐다. 컴컴한 어둠 속에서 화면이 밝아졌다. 이윽고 파란 배경화면을 바탕으로 저작권을 알리는 경고문구가 흘러나왔다. 경고문구가 나오자 공익광고의 차례였다.

    -옛날 어린이들은···.-

    광고가 모두 끝나자 장엄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시작한다.”

    어두운 거실에서 세 부자가 숨을 죽이고 비디오를 봤다. 어머니는 콧노래를 부르며 과일을 깎았다.

    “와아···.”

    강용이 잔뜩 집중한 채 화면을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빌려오신 영화는 장편 무협 시리즈물이었다. 영화를 바라보는 강용이의 두 눈동자는 반짝이고 있었다. 손과 발을 어지럽게 움직이며 무림 고수의 동작을 흉내 내기도 했다.

    “얍!”

    문득 강우의 머릿속으로 기억의 파편이 스쳐 지나갔다. 강우가 영화에 몰입한 강용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역시···. 떡잎부터 달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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