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화 (19/402)
  • 첫 출장?(2)

    호텔 방의 내부는 깔끔했다. 커다란 침대의 한쪽으로는 작은 엑스트라 침대가 놓여있었다.

    “방이 나쁘지 않네요.”

    “깔끔하고 좋네.”

    강우와 아버지가 방안을 쓰윽 둘러보며 감회에 젖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관에서 지내던 강우 가족이었다. 이렇게 여행을 와서 호텔 방에 들어오니 기분이 묘했다. 더군다나 난생처음 하는 해외여행이 아니던가.

    “아빠는 내일 갈 데가 있어서 먼저 잘게.”

    아버지는 곧바로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셨다. 내일 있을 중요한 일정 때문에 긴장하신 듯했다.

    “네, 그럼 저도 일찍 잘게요.”

    “응? 너는 왜?”

    강우가 캐리어에서 옷가지를 꺼내며 말했다.

    “내일 고추 확인하러 교주에 가시는 거 아니었어요?”

    “맞아, 그런데 나 혼자 갔다 올 거야. 너는 여기 관광하고 있으면 돼.”

    강우가 이내 수긍했다.

    ‘사실 내가 가서 물건을 본다고 뭘 아는 건 아니니까.’

    식품에 관해서는 아버지가 강우보다 아는 것이 많았다. 그리고 강우가 중국에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따로 있었다.

    ‘야시장이나 가볼까.’

    강우가 간단한 소지품을 챙겨 외출준비를 했다.

    “그럼 저는 나가서 구경 좀 하고 올게요.”

    “지금? 너무 늦지 않았나?”

    외출준비를 하는 강우를 보며 아버지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야시장만 금세 둘러보고 들어올게요. 그리고 저 다 컸어요.”

    “그래. 그럼 잘 둘러보고 와.”

    아버지의 얼굴에 묘한 감정이 흘렀다. 어느새 어른이 되어버린 것 같은 아들이 슬슬 자신의 품을 떠나는 거 같았다. 하지만 결코 싫은 감정은 아니었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너무 늦지 말고.”

    “아껴 쓰고 올게요.”

    “아니야. 네가 번 돈이잖아. 다 쓰고 와도 돼. 스트레스 풀고 와.”

    강우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가 민망한 듯 몸을 돌려 침대에 누웠다. 강우가 호텔 방의 불을 끄고는 문을 닫고 나왔다. 강우가 호텔의 밖으로 나왔다. 청도의 밤거리는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걸어서 가야 하나.’

    호텔에서 야시장이 있는 곳까지는 제법 거리가 됐다. 대중교통도 마땅한 게 없었다.

    “여기요! 여깁니다!”

    그때, 낯설지 않은 목소리가 강우를 향해 크게 소리쳤다. 고개를 돌린 강우가 벙찐 얼굴이 되었다.

    “어?”

    한 대의 택시가 강우의 앞쪽으로 멈춰 섰다. 운전석에 앉아있는 인물은 낮의 그 택시기사였다.

    “하하! 역시 진정한 청도 여행은 밤에 하는 여행이죠.”

    택시기사의 능글맞은 웃음에 강우가 어이가 없어 물었다.

    “진짜 기다리고 있던 겁니까?”

    택시기사가 과장된 손짓을 했다.

    “에이~ 설마요. 영업하다가 밤이 되면 호텔 근처에서 대기하고는 합니다.”

    “아···.”

    택시기사가 자신의 차량을 툭툭 쳤다.

    “야시장 가시죠?”

    “네.”

    택시기사가 몸을 뻗어 앞문을 열며 씩 웃었다. 강우가 픽하고 웃으며 택시에 올라탔다.

    부우웅.

    택시가 출발하자 택시기사가 근질거리는 입을 참지 못했다.

    “체격도 크고 키도 크시네요. 운동선수입니까?”

    “아니요. 그냥 학생입니다.”

    “대학생입니까?”

    “아니요.”

    강우의 말에 택시기사가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몇 살입니까?”

    “열일곱입니다.”

    “한국 나이니까 열여섯이군요?”

    “네. 그렇네요.”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택시기사가 감탄성을 터트렸다.

    “중국어를 이렇게 잘하는 한국인은 택시기사 인생 몇 년 동안 처음 봅니다.”

    “그런가요···.”

    강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하루아침에 깨달아 버린 중국어였다. 잘하는 것인지 아닌지 알 턱이 없었다.

    “발음도 좋고 성조도 완벽하네요. 이 정도면 아나운서 저리가라입니다.”

    “감사합니다.”

    이윽고 택시가 야시장에 도착했다. 강우가 택시비를 지불하고 내렸다.

    “그럼, 또 봬요.”

    “호텔은 어떻게 돌아가시려고 그럽니까?”

    강우가 멈칫했다. 하지만 이내 어깨를 으쓱했다.

    “걸어가든지 하면 됩니다. 걱정하지 말고 가보세요.”

    “힘들 텐데···.”

    택시기사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차를 몰아 사라졌다. 야시장에 도착한 강우는 천천히 밤의 분위기를 만끽했다. 기억 속 야시장의 모습 그대로였다. 미래의 기억과 현재의 감성이 뒤섞이며 강우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해외에 나오자 왜인지 더 어른이 된 기분도 들고는 했다.

    ‘야시장에 왔으면 일단 먹을거리부터.’

    강우가 천천히 시장을 돌며 야식을 만끽했다. 그리고 어머니와 강용이의 선물도 샀다. 물론 원주 부모님과 신원주의 것도 잊지 않았다.

    ‘음...’

    마지막으로 이재원의 선물을 살까 하다 말았다.

    ‘재벌집 2세님한테 선물은 무슨..’

    픽하고 웃은 강우가 걸음을 옮겼다.

    달칵.

    운동 삼아 호텔까지 걸어온 강우가 방으로 들어섰다. 아버지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강우가 씻으려다가 말았다. 샤워 소리에 행여 아버지가 깰까 싶었다. 강우가 옷만 갈아입고 스르륵 침대에 스며들었다.

    * * *

    다음 날 아침. 강우가 눈을 번쩍 떴다.

    “아빠?”

    옆자리를 바라보니 침대 위에는 메모지 한 장이 놓여있었다.

    -아빠, 일하러 간다. 놀고 있어라.-

    아버지다운 간단한 메모였다. 강우의 눈이 낮게 가라앉았다. 당겨진 미래였지만, 모든 것이 같았다.

    ‘심지어 아버지가 남긴 메모조차.’

    살짝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멍하니 있을 시간이 없었다. 강우의 중국 여행의 목적은 지금부터였다.

    촤라락.

    커튼을 걷자 청도 시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유럽풍과 동양의 멋이 묘하게 섞인 도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강우가 세면도구를 챙겨 샤워하러 들어갔다.

    ‘아직 시간이 좀 남았군.’

    샤워를 마치고 나온 강우가 곧장 호텔의 로비로 향했다. 로비의 옆쪽으로는 조식 뷔페가 있었다. 중국 호텔이지만 서양식의 조식 뷔페의 메뉴였다. 느긋하게 아침 식사를 즐긴 강우가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차분히 가방에서 노트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절대 잊어서는 안 될 이름 석 자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따르릉.

    한참이 지나자 호텔 방의 전화기가 울렸다. 강우가 기다렸다는 듯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강우야, 아빠야. 호텔 방에 있었구나?-

    “네, 조식 먹고 쉬고 있었어요.”

    -그래, 다른 게 아니고 아빠가 일은 마무리 지었는데. 갑자기 점심 식사에 초대를 받았어. 가족 모임이라고 해서 너도 여기에 와야 할 거 같다.-

    강우가 눈을 빛냈다.

    “네, 알겠어요.”

    -조금 있으면 아빠가 아는 사람이 데리러 갈 거야. 이름이 임성환인데 그 아저씨 차를 타고 여기로 오면 돼.-

    “네,”

    통화가 끝나자 강우가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다.

    똑똑.

    “계십니까?”

    호텔의 방 밖에서 한국어가 들려왔다. 강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문 앞에 섰다.

    “후우···.”

    짧게 심호흡을 한 후 문을 열었다. 너무나도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안녕? 네가 강우구나?”

    짧은 스포츠머리에 가무잡잡한 얼굴 그리고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중년의 남성이 있었다.

    ‘임성환 사장.’

    강우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네. 안녕하세요.”

    “그래, 나는 임성환이라고 한다. 정식이 형님이 너를 데리러 오라고 해서 말이야.”

    강우의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리고 또다시 기억의 파편들이 밀려왔다. 강우가 살짝 인상을 찌푸리자 임성환 사장이 품에서 메모지를 꺼내 들었다. 여러 번 접혀있는 메모지를 펼치자 아버지의 필체가 눈에 들어왔다.

    -강우야, 아빠다. 이 아저씨 따라와. 박정식.-

    이름에 사인까지 되어 있었다. 강우가 안심하고 따라나설 수 있게 조치를 한 것이다.

    ‘심지어 이것도 똑같네.’

    강우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네, 가시죠.”

    “어? 어. 그래.”

    강우의 자연스러운 대답과 행동에 임성환 사장이 살짝 당황했다. 그리고는 앞장서서 호텔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호텔을 나오자 차 한 대가 대기 중이었다.

    “여기에 타면 돼.”

    임성환 사장이 앞자리에 앉았다. 강우가 뒷자리에 앉았다. 임성환 사장이 선글라스를 꺼내 쓰더니 몸을 돌려 강우를 바라보았다.

    “껌 씹을래?”

    “아니요. 괜찮습니다.”

    강우와 임성환 사장의 시선이 잠시 허공에서 맞닿았다. 임성환 사장이 몸을 돌려 앞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껌을 씹기 시작했다.

    “출발하지.”

    임성환 사장의 입에서 중국어가 흘러나왔다. 운전사가 차를 출발시켰다. 차는 곧장 청도의 외곽도로를 타기 시작했다. 일직선으로 쭈욱 뻗은 도로는 마치 고속도를 연상케 했다. 하지만 엄연한 일반 도로였다.

    부아아앙.

    차량 엔진의 굉음만큼이나 운전사의 운전도 거칠기 짝이 없었다. 안전속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듯 광란의 질주를 했다. 강우가 슬쩍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룸미러로 힐끗 강우를 확인한 임성환 사장이 씨익 웃었다.

    “놀랬지? 여기가 원래 이래. 차들도 없고 도로도 일직선이 대부분이라 애들이 속도개념이 없어.”

    “차도 오래된 거 같은데 별일 없을까요?”

    “괜찮아. 나 봐라. 여태껏 살아 있잖아.”

    농담을 던진 임성환 사장이 입꼬리를 올렸다. 강우가 어색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임성환 사장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강우가 임성환 사장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중국 사업파트너였던 임성환 사장.’

    아버지가 나온 고등학교는 그 당시 신흥명문 중 하나였다. 아버지는 고등학교 동창과 선후배라는 인맥이 매우 넓은 분이셨다. 임성환 사장 역시 아버지의 고등학교 후배로 중국과 무역을 시작하면서 인연이 닿았던 사람이었다.

    ‘중국에서 일하려면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게 있다.’

    바로 흔히 꽌시라고 불리는 인맥이었다. 꽌시라고 해서 거창한 것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단순히 누구의 가족, 형제, 친척, 선후배, 동향 등등도 모두 꽌시였다. 중국에는 이러한 문화가 자연스럽게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래서 중국에서 일하려면 꽌시라는 문화에 익숙해져야만 했다.

    ‘물론, 능력 없이 인맥만으로 일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말이지.’

    강우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임성환 사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꽌시를 소개해준 사람이 바로 임성환 사장이었다.’

    부우웅.

    차는 굉음을 토해내며 계속 달렸다. 임성환 사장과 중국인 운전사가 중국어로 말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박 부사장 쪽에 보낼 물량이 있겠어?”

    “음···. 이번 물량은 힘들지 않을까요?”

    임성환 사장이 힐끗 뒤를 보며 강우를 확인했다. 강우가 못 알아듣는 척 창밖을 바라보았다. 임성환 사장이 씩 웃었다.

    “중국어가 참 듣기에 시끄럽지?”

    “그러게요. 못 알아들으니까 더 그런 거 같아요.”

    임성환 사장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선글라스 너머의 눈이 가늘게 휘어졌다.

    “업무 이야기를 좀 해야 해서. 혼자 심심하게 놔둬서 미안하다.”

    “아니에요. 이야기 나누세요.”

    임성환 사장이 몸을 돌려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강우의 눈빛이 낮게 가라앉았다.

    “그렇지? 에이씨. 그래도 이번에 저쪽 판매 경로를 꼭 뚫고 싶은데 말이야.”

    “아니면 재고 물품은 어떻습니까? 냉장 창고에 있는 좀 지난 것들이요.”

    “야! 뒤에 사람 있잖아.”

    임성환 사장이 그래도 걱정스러운지 강우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그러자 중국 직원이 어깨를 으쓱했다.

    “뭐···. 어때요? 중국어 못 하는 거 같은데. 절대 못 알아들을걸요?”

    중국 직원이 룸미러로 강우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리고는 어설픈 영어로 입을 열었다.

    “중국에 온 거 환영합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강우가 어설픈 발음의 영어로 짤막하게 답했다. 임성환 사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재고 물품은 얼마나 남았어?”

    “아직 한참이나 남았어요. 그거 빨리 털어야지, 안 그러면 아예 섞지도 못할 겁니다.”

    고추는 생각보다 금세 망가지는 상품이었다.

    “삼산물산 쪽은?”

    “그쪽도 요즘 물건 검수가 심해져서요. 예전만큼 못 섞습니다.”

    강우의 속에서 은은한 분노가 차올랐다. 임성환 사장은 산둥에 자리를 잡은 지 오래된 식품 무역상이었다. 중국에서 인맥을 다져 올린 임성환 사장은 교주에서 나는 고추 물량의 상당수를 확보가 가능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한동냉장의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이지.’

    IMF의 위기가 닥치자 임성환 사장은 한국의 거래처에 크게 뒤통수를 쳤다. 피해를 본 곳이 한동냉장뿐만이 아니었다. 임성환 사장은 그렇게 챙긴 돈으로 잠적했다.

    ‘거대한 중국에서 임성환 사장을 찾기란 불가능에 가까웠지.’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강우는 임성환 사장의 음흉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에게 남은 마지막 악연의 꼬리. 그걸 내가 잘라버리겠어.’

    그런 강우의 속내를 모르는 두 사람은 열심히 대화를 나누었다. 강우는 모르는 척 계속해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세 시간쯤 달렸을까 한적한 시골 풍경이 나타났다. 지금의 중국은 도심을 벗어나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한 경험이 가능했다.

    콰라라락.

    이윽고 강우를 태운 차량이 자갈돌이 깔린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강우야, 다 왔으니까 내리자.”

    “네, 아저씨.”

    탁.

    강우가 차에서 내렸다. 주차장의 앞쪽으로 허름하고 작은 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강우의 머리가 지끈 아파졌다. 역시나 기억 속 미래에 방문했던 곳이었다.

    ‘....으음.’

    반복되는 현상에 강우의 팔에 살짝 닭살이 돋았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살짝 흔들고는 식당의 안으로 들어섰다.

    “강우야!”

    아버지가 강우를 보고는 크게 소리쳤다. 얼굴이 살짝 붉으신 게 벌써 한잔하신 듯했다. 그 앞쪽으로는 임성환 사장의 가족이 앉아있었다.

    ‘임성환 사장의 부인과 아들이군.’

    임성환 사장은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 두 자녀 모두 강우보다 나이가 어렸다. 오늘은 그중에서 아들만 자리를 함께한 듯했다. 강우가 임성환 사장의 가족을 향해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박강우입니다.”

    임성환 사장의 아내가 환하게 웃었다.

    “어머? 부사장님 아드님이 아주 키도 크고 훤칠하네요.”

    “하하! 그렇습니까?”

    아들을 칭찬하는 말에 강우 아버지가 크게 웃었다.

    “얘, 너도 형한테 인사해야지.”

    “안녕하세요.”

    임성환 사장의 아들이 귀찮다는 듯 인사를 해왔다. 강우가 씩 웃으며 고개를 까닥했다. 사실 이 나이 때 아이의 반응은 저게 정상일 것이다. 단지 강우가 어른스러울 수밖에 없었을 뿐이다.

    “아버지, 가셨던 일은 잘되셨어요?”

    강우가 아버지의 옆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임성환 사장 아내가 살짝 부러운 듯 강우를 바라보았다.

    “그럼, 일은 잘 마무리했지.”

    그때, 주방으로 향했던 임성환 사장 사장이 돌아왔다. 그리고 음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맨 먼저 나온 것은 성인 남성의 허벅지만 한 물고기 요리였다. 물고기를 비늘만 손질하고 통으로 찐 음식이었다. 그 크기가 과연 대륙의 스케일다웠다.

    “자자, 음식은 계속 나올 겁니다. 먼저 드세요.”

    임성환 사장이 원형 테이블의 중심부를 아버지 쪽으로 돌렸다. 그러자 생선요리가 아버지의 앞쪽으로 왔다. 아버지가 살점을 큼지막하게 떼어내서 강우에게 먼저 덜어주었다. 강우가 식사를 초대해준 임성환 사장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잘 먹겠습니다.”

    임성환 사장의 부인이 자기 아들을 살짝 쿡 찔렀다.

    “잘 먹을게요.”

    무심한 아들의 말에 임성환 사장의 부인이 미간을 살짝 좁혔다. 그 이후로도 기가 막힐 음식들이 쏟아져 나왔다. 아버지와 임성환 사장은 술도 곁들였다. 식사 자리가 무르익어가자 아버지가 먼저 업무 이야기를 꺼냈다.

    “물건 확인은 다 끝났고, 문제는 수량을 확보하는 건데···.”

    고추의 수확기는 이미 한참 지난 상태였다. 아버지는 남아있는 물량을 확보하고 내년 생산분을 확보하기 위해 방문한 것이었다. 임성환 사장이 살짝 걱정하듯 물었다.

    “형님, 진짜 일본 쪽 바이어는 확보하신 겁니까?”

    “그래, 내가 몇 번을 말해. 확실한 거래처 잡았어.”

    아버지가 확신에 찬 말투로 말했다. 임성환 사장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현재 임성환 사장의 손이 닿는 곳의 고추는 모두 한국의 삼산물산이라는 곳에서 수입해간다고 했다.

    ‘거래처가 한 곳에 몰려있으니 역으로 갑질이 심해졌다고 했지. 그래서 새로운 판로를 찾던 차에 아버지가 나타난 거고.’

    이윽고 임성환 사장의 입이 열렸다.

    “그럼 일단 물건을 확보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겠군요.”

    “어떤 방법?”

    임성환 사장이 눈을 빛냈다.

    “형님, 한국에 언제 가십니까?”

    “모레 아침에.”

    아버지의 출장 일정은 매우 짧았었다. 임성환 사장이 다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딱 하루만 늦게 가시죠.”

    “왜?”

    “물건 확보하셔야죠. 그러려면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임성환 사장의 표정이 심각했다.

    “알겠어. 일단 회사에 연락해볼게. 그럼 강우는 먼저 한국으로 가야겠네.”

    아버지가 강우를 바라보았다. 강우가 눈을 빛냈다.

    “하루 더 있다가 갈게요.”

    강우가 이번에는 임성환 사장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그리고는 유창한 중국어를 내뱉기 시작했다.

    “아버지 소개해주실 분이 중국분이시죠? 그럼 아버지 통역은 제가 하면 되겠네요.”

    임성환 사장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강우의 유창한 중국어에 차에서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강우가 웃음 속에 칼을 드러냈다.

    “삼산물산 쪽에서 아까 그 대화를 알게 되면 참 좋아하겠죠? 그리고 우리 아버지도요.”

    임성환 사장의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삼산물산과 아버지의 회사라는 거래처를 놓치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삼산물산에 알려진다면 법적인 문제까지 벌어질 상황이었다.

    “음? 두 사람 뭐 해?”

    아버지가 심상치 않은 강우와 임성환 사장의 분위기를 눈치챘다. 강우가 아버지를 바라보며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잠깐, 확인할 게 있어서 그래요.”

    “알겠다.”

    지난 취업 문제로 아버지는 강우를 크게 신뢰했다. 강우가 다시 임성환 사장을 바라보았다.

    “뭐···. 아슬아슬하게 문제가 안 되는 물품을 섞고 있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걸리지도 않았겠지요. 하지만 그게 얼마나 갈까요?”

    임성환 사장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리고는 이내 발악하듯 입을 열었다.

    “네 녀석 말을 누가 믿어줄까?”

    “내기할래요? 믿어주나 안 믿어주나? 당장 한국에 돌아가면 삼산물산부터 찾아가야겠군요. 물론 아버지랑 함께요.”

    임성환 사장의 표정이 굳어버렸다. 이제 겨우 고등학생이라고 들은 강우였다.

    ‘제길···. 무슨 어린놈의 눈빛이···.’

    결국, 임성환 사장이 백기를 들었다.

    “미안하다. 정식이 형님에게 진짜 그러려고 했던 거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습니다.”

    임성환 사장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강우가 마지막으로 쐐기를 박았다.

    “아, 그리고 소개해주려던 사람이 청도시 당 관계자죠?”

    “어···. 어떻게 그걸···.”

    강우가 픽 웃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우리 아버지에게 정말 도움이 될 사람으로요.”

    임성환 사장이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눈앞의 강우에게 자신의 명줄이 달려있다는 생각에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그 모습을 보며 강우가 속으로 웃었다.

    ‘그 인맥은 내가 단물까지 다 흡수해줄게요, 그러고 나면 당신하고는 인연 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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