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화 (18/402)
  • 첫 출장?

    그날 저녁. 강우 아버지가 퇴근하셨다. 현관문을 들어서는 강우 아버지의 얼굴은 자신감이 가득했다.

    “아빠아아!”

    강용이 아버지를 반기며 달려갔다. 강우 아버지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강용을 안아 들었다.

    “우리 강용이 엄마 말 잘 듣고 있었나?”

    “네, 아빠.”

    강우 아버지가 강용을 공중에서 한차례 빙글 돌렸다. 강용이 좋다며 웃음을 터트렸다.

    “야호!”

    “여보~ 강용이 다쳐요.”

    강우 어머니의 말에 강우 아버지가 강용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바닥에 내려온 강용이 바닥에 놓여있는 강우 아버지의 서류 가방을 양손으로 들었다. 강용이 아직 무게가 버거운지 낑낑대며 서류 가방을 소파에 올려놓았다.

    “으아~ 아빠 가방 짱 무거워.”

    “짱? 이 녀석 그건 또 어디서 배웠데?”

    강우 아버지가 짐짓 엄한 표정으로 강용을 잡아채려 했다. 그러자 강용이 비명을 지르며 강우에게 도망쳐 왔다. 강우가 어머니를 도와 식기를 놓으며 말했다.

    “씻고 오세요. 식사 준비 끝났어요.”

    “알겠다.”

    강우 아버지가 식탁을 힐끗 보고는 기대감에 차올랐다. 강우 아버지는 된장찌개를 참 좋아했다.

    샤아아.

    아버지의 샤워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자 강우 어머니의 손길이 바빠졌다. 식탁 위가 점점 풍성해졌다. 이윽고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았다. 여관에 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풍성한 식탁이었다. 네 가족이 각자의 자리에 앉았다. 온갖 음식 냄새가 조화를 이루어 강우 가족의 식욕을 자극했다.

    “먹자.”

    강우 아버지의 식사를 알리는 짤막한 선언과 함께 식사가 시작됐다. 강용은 연신 젓가락질을 하며 반찬을 집어 먹었다.

    “고기!”

    “강용아, 편식하면 안 돼요.”

    강우 어머니가 시금치를 강용의 밥 위에 놓아주었다. 강용의 얼굴이 살짝 경직됐다.

    “시금치 싫은데.”

    그런 강용의 모습에 강우가 씩 웃었다. 식성이 닮은 두 형제는 야채를 미워하는 육식파였다. 먼 미래에도 둘이서 자주 고기를 먹으러 가기도 했었다.

    “강우야.”

    강우 아버지가 식사를 끝내고 강우를 불렀다.

    “네?”

    “여권 만들어야 하니까. 내일 사진부터 찍어라.”

    강우 아버지의 말에 강우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여권이요? 저 어디 가요?”

    강우 아버지가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중국.”

    “중국이요?”

    강우가 멍한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순간, 머리가 지끈하며 기억이 밀려들었다. 기억 속 강우는 아버지와 함께 중국에 간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이 아닌 일 년 후였다.

    ‘기억보다 또 빠르다.’

    이윽고 기억이 먼지처럼 흩어졌다. 강우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이번에 출장 가는데 비행기표가 하나 더 나왔어. 견문도 넓힐 겸 아빠 따라서 갔다 오자.”

    “돈 많이 들지 않을까요?”

    강우의 현실적인 걱정에 강우 아버지가 부드럽게 웃었다.

    “이번에 아르바이트비 나온 거 있잖아. 아빠 월급 곧 나오니까 일단 그 돈으로 경비는 충당하면 돼.”

    “네.”

    강우가 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강우 아버지의 얼굴은 살짝 상기되어 있었다. 강우가 수험생이라는 전쟁터에 뛰어들기 전 여행이라도 시켜주고 싶은 것이다. 그것이 그동안 고생만 시킨 장남에게 줄 수 있는 작은 보상이라 생각했다.

    “그래, 아직 1학년이니까 지금 아니면 언제 또 기회가 오겠어. 강우야, 아빠 따라서 갔다 와.”

    강우 어머니가 환하게 웃었다. 어린 강용은 심술이 났다는 듯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나도 비행기 타고 싶은데···.”

    “강용이는 나중에 형아처럼 크면 데리고 가줄게. 알겠지?”

    강용이 헉하는 표정을 지으며 강우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강용에게 강우는 거인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혀···. 형아처럼 크게요?”

    강용의 말에 강우 어머니가 입을 막고 웃었다. 강우가 씨익 웃으며 시금치를 집어 강용의 밥 위에 올려주었다.

    “형아처럼 커지려면 골고루 먹어야 해.”

    “응, 형아.”

    강용이 시무룩한 표정이 되었다. 그러더니 강우가 올려놓은 시금치를 열심히 먹었다. 강우가 흐뭇하게 강용을 바라보았다.

    “잘 먹었습니다.”

    식사가 끝나고 강우가 어머니를 도와 주방을 정리했다.

    “제가 설거지할게요.”

    “그럴래?”

    달라진 장남의 듬직한 모습에 강우 어머니가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강우 아버지는 강용과 함께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기 시작했다.

    덜컥.

    설거지를 끝낸 강우가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한 권의 노트를 꺼내 들었다. 강우가 기억나는 것을 틈틈이 적어놓은 보물 1호였다.

    스윽. 스윽.

    강우가 떠오르는 기억을 차분히 정리해 메모했다. 연결성이 흐릿하고 기억 속 강우의 경험에 의지하는 기억들이었다. 하지만 강우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기억들이었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야 하니까.’

    * * *

    부우웅,

    택시 한 대가 김포공항의 국제선 청사 앞에 멈춰 섰다. 달칵 문이 열리고 잘 차려입은 강우 아버지가 내렸다.

    덜컹.

    트렁크가 열리자 택시의 뒷문에서 강우가 내렸다. 트렁크에서 두 개의 캐리어가 내려지자 택시가 바로 출발했다.

    “강우야, 공항에 오는 거 처음이지?”

    “네? 아···. 네.”

    강우가 김포공항을 둘러보았다. 입국과 출국을 위한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 빨리 움직이자.”

    “네.”

    강우가 아버지의 뒤를 따라 출국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출입국 관리자가 강우 아버지에게 중국으로 가는 목적을 신중하게 물었다.

    ‘이 시기에 중국은 아직 공산주의 국가라는 이미지가 강하지.’

    물론, 얼마 전 한국과 중국은 양국 간의 교류를 강화했다. 그래서 90년대 초반보다 비자는 잘 나오는 편이었다. 하지만 중국은 한국인들에게 아직 미지의 공간이었다.

    “강우야, 가자.”

    “네, 아빠.”

    출국심사가 끝나고 강우가 아버지의 뒤를 따라 비행기에 탑승했다. 이윽고 비행기가 굉음을 토해내더니 하늘로 날아올랐다. 김포공항에서 목적지인 청도 공항은 그리 멀지 않았다.

    ‘으음···.’

    비행기에 앉아있던 강우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머리가 지끈 아파지기 시작했다. 강우가 크게 하품을 했지만, 도통 나아지지 않았다.

    “강우야, 왜 그래?”

    강우 아버지가 걱정스럽게 강우에게 물었다. 강우가 미간을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기압 차이 때문에 그런가 봐요. 괜찮아지겠죠.”

    “물이라도 마셔. 그럼 금세 나아질 거야.”

    “네.”

    강우가 스튜어디스에게 물을 받아 단숨에 마셨다. 하지만 비행 내내 두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중국에 가까워질수록 심해졌다. 다행히도 비행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저희 비행기는 지금 청도 공항에 착륙 예정입니다. 마지막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잠시 후, 기장의 안내와 함께 비행기가 하강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드러난 청도 공항의 모습에 강우가 깊은 생각에 잠겼다.

    ‘기억 속 모습 그대로네.’

    비행기에서 내린 강우 아버지와 강우가 입국 심사대에 섰다. 강우 아버지가 여권을 내밀었다. 여권을 낚아챈 출입국 심사원의 입에서 속사포 같은 중국어가 쏟아져 나왔다.

    “방문 목적은요?”

    강우 아버지의 얼굴이 살짝 경직됐다. 그러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업차 왔습니다.”

    강우 아버지의 입에서 유창한 영어가 흘러나왔다. 그러자 심사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저 영어 못 합니다. 중국어 못해요?”

    그때, 강우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머릿속으로 강우 할아버지의 기억이 마구 밀려들었다. 소금 장수로 위장한 강우 할아버지가 상해에서 만주의 광복군 진영까지 밀정의 임무를 수행하는 기억이었다.

    ‘뭐···. 뭐야.’

    이윽고 기억이 먼지처럼 흩어졌다. 그리고 지끈거리던 머리가 가라앉았다. 강우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중국어가 들린다,’

    왁자지껄한 공항의 소음이 이제는 정확한 언어로 전달되기 시작했다. 강우 자신도 너무 놀라울 지경이었다. 강우가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사업차 왔습니다. 저는 아버지를 도우러 왔고요.”

    “오? 중국어 하십니까?”

    강우를 바라보는 심사원의 얼굴에 호감이 떠올랐다. 중국인들의 중국어에 대한 자부심은 매우 컸다.

    “가···. 강우야?”

    강우 아버지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들의 입에서 유창하게 흘러나오는 중국어가 믿기지 않았다. 강우가 아버지의 앞쪽으로 나서며 심사대 앞에 섰다.

    “목적지는 교주와 평도에 있는 고추 산지를 둘러보는 겁니다. 중국산 고추가 아주 품질이 좋죠.”

    “하하! 역시 뭘 좀 아시는 분이군요.”

    국가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한 심사원의 얼굴에 미소가 번져나갔다. 그리고는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입국 도장을 쾅쾅 찍었다.

    “통과.”

    강우가 여권을 받아 품에 챙겼다. 그리고는 강우 아버지를 향해 손짓했다.

    “아빠, 들어가래요.”

    “어어···.”

    강우 아버지가 멍한 표정으로 강우를 따라나섰다. 이윽고 강우와 강우 아버지가 공항을 벗어났다.

    “여기서 호텔까지 어떻게 가요?”

    “택시를 타야겠지.”

    강우 아버지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공항의 앞쪽으로는 택시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강우 아버지가 강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런데 강우야, 너 언제부터 중국어를 할 줄 알게 된 거야?”

    “아···. 그게요. 어느 순간 영어에 눈을 뜨고 나더니 언어 익히는 게 좀 쉬워졌어요. 중국어는 예전에 아빠랑 중국 영화 많이 본 게 컸나 봐요.”

    강우 아버지는 중국 영화의 열광적 팬이었다. 강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자신이 생각해도 궁색한 변명이었다. 하지만 강우 아버지의 반응은 의외로 담담했다.

    “음···. 하긴, 언어가 그렇지. 어느 순간 원리를 깨달으면 익히기 쉬워.”

    “네.”

    강우가 아버지를 괴물 바라보듯 바라보았다. 강우의 아버지 역시 언어 쪽에서는 괴물 같은 능력의 보유자였다. 기억 속 미래의 강우 아버지도 중국어는 물론 일어까지 능숙히 구사했다.

    ‘출장 몇 번 다니시고 현지에 몇 개월 정도만 있어도 일상적인 대화는 하시는 편이었지.’

    강우 가문의 언어에 대한 재능은 정말이지 타고난 것이었다.

    “어디 가십니까?”

    그때, 손님을 포착한 택시기사 어설픈 영어를 쓰며 다가왔다. 강우가 능숙한 중국어로 목적지를 말했다. 중국인 기사가 강우의 유창한 중국어 실력에 움찔했다. 하지만 택시기사는 이내 표정을 바꿨다.

    “자자. 이쪽으로 타시죠.”

    택시기사가 자신의 차량으로 걸으며 손짓을 했다. 강우와 강우 아버지가 트렁크를 끌고 택시에 도착했다.

    그 순간이었다.

    “야! 장 씨!”

    앞쪽에서 대기 중이던 택시기사 한 명이 씩씩거리며 다가왔다. 그러자 강우를 안내하던 택시기사가 팔뚝을 걷어붙였다.

    “왜?! 왕 씨!”

    두 사람의 풍만한 뱃살이 격렬하게 충돌했다.

    “지금 당신 차례 아니잖아?!”

    “차례가 어딨어? 내가 호객했으니까 내 손님이야.”

    한동안 서로의 뱃살을 자랑하던 두 사람이 이내 멱살을 붙잡고 싸우기 시작했다. 강우와 강우 아버지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두 기사의 싸움이 격렬해지자 가만히 있던 택시기사들이 패를 갈라 싸우기 시작했다.

    “어어어?”

    강우 아버지가 기겁했다. 싸움이 격렬해지자 택시의 트렁크에서 연장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택시기사 무리는 두 패로 나뉘어 서로를 향해 연장을 겨누며 대립했다.

    ‘역시 판타지의 나라 중국이다···.’

    강우가 멍하니 있는 사이 또 한 명의 택시기사가 강우에게 다가왔다.

    “저 손님, 빨리 이쪽으로.”

    강우와 강우 아버지가 재빨리 기사를 따라갔다. 기사가 트렁크를 열자 강우 아버지가 움찔했다. 다행히 트렁크에는 아무런 연장도 들어있지 않았다. 트렁크에 캐리어를 실은 강우와 강우 아버지가 택시에 올라탔다.

    부우웅.

    목적지를 전해 들은 택시기사가 빠르게 차를 출발시켰다. 강우와 강우 아버지가 룸미러를 통해 멀어져 가는 난투극의 현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서로 눈을 맞추었다. 강우 아버지의 얼굴에는 당황스러움이 가득했다. 첫 해외여행을 시켜줄 요량으로 데리고 온 아들이었다. 하지만 눈앞에 벌어진 살벌한 광경에 당황한 것이다.

    “놀라셨죠? 저기 패거리들이 원래 사이가 안 좋습니다.”

    택시기사가 뭐가 좋은지 웃으며 말했다. 강우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패거리요?”

    “네, 저 두 패거리가 공항을 장악하다시피 영업 중이죠.”

    “하···.”

    강우가 실소를 흘렸다. 그러자 택시기사가 씨익 웃었다.

    “중국은 첫 방문이십니까?”

    “네, 처음입니다.”

    강우의 대답에 택시기사가 열심히 중국을 변호하기 시작했다.

    “오늘 일로 중국에 대해 너무 안 좋은 인상을 받지 마십시오. 중국인들이 다 저런 건 아닙니다.”

    “아···. 네.”

    “저 패거리들이 싸우는 덕분에 손님을 태웠으니 저한테는 잘된 일이죠.”

    택시기사는 참 말이 많았다. 현재 청도의 상황이 줄줄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제법 주목할 만한 이야기도 있었다. 강우는 이것저것 물으며 택시기사와 대화를 나누었다. 강우 아버지는 강우와 기사의 대화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호텔까지는 얼마나 걸릴까요?”

    “금세 갑니다.”

    마지막 질문을 끝으로 택시기사가 운전에 집중했다. 강우가 아버지에게 두 패거리에 대한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강우 아버지도 어처구니가 없다며 웃었다.

    “다 왔습니다.”

    이윽고 택시가 목적지인 호텔 앞에 도착했다. 택시기사는 친절하게 캐리어까지 꺼내주었다. 강우 아버지가 택시비를 내자 기사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혹시 시내 관광을 하실 겁니까?”

    강우 아버지가 강우를 바라보았다. 강우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택시기사의 얼굴에 아쉬움이 스쳐 지나갔다.

    “혹시 어디 갈 일 있으면 꼭 제 차를 이용해 주세요. 호텔 근처에서 영업하고 있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택시기사가 사라졌다. 강우가 실소를 흘렸다. 연락처라도 주든지 어디서 자기를 찾으라는 말인가.

    “강우야, 들어가자.”

    강우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곳곳에서 건물을 올리려는지 준비가 한창이었다. 강우가 호텔로 시선을 돌렸다. 출장비를 아낄 생각이셨는지 그리 좋은 호텔은 아니었다. 하지만 강우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미래와 과거가 공존하는 곳 미지와 기회의 땅.’

    기억 속 강우의 아버지는 IMF로 인해 중국 시장에서 완전히 손을 떼야만 했었다. 시간이 흐르고 강우 아버지는 그 일을 두고두고 후회하셨다.

    강우가 눈을 빛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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