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2)
강우가 차분히 기억을 정리했다. 신원주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대학교수고 어머니는 대기업 임원의 외동딸이었다.
‘그런데 외동아들인 원주에게 큰 문제가 생겼다.’
강우가 신원주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릴 적 신원주는 참 특이한 아이였다. 혼자 노는 것을 좋아하고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원주 부모님이 자폐증을 걱정하실 정도였다고 했었어.’
아들의 그런 모습에 원주의 부모님은 온갖 치료를 아끼지 않았다. 정신과를 다니고 여러 가지 치료를 병행했다. 신원주의 가장 큰 문제는 사회성이 모자란 것이었다.
‘원주 부모님은 어떻게 해서든 친구들을 많이 만들어주려 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게 지금의 원주 녀석이란 말이지···.’
그렇게 신원주는 닥치는 대로 친구를 만들었다. 하지만 진정 마음을 연 친구는 몇 되지 않았다. 그리고 강우는 기억보다 빨리 신원주와 가까워지고 있었다.
“믿기지 않네요. 원주가 반에서는 인싸···. 아니 사교성이 참 좋거든요.”
기억 속에서도 한참 나중에 신원주에게 이 사실을 듣게 됐었다. 그리고 지금처럼 놀라움을 금치 못했었다.
“그래? 정말?”
베일에 가려있던 아들의 학교생활을 듣게 되자 원주 어머니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러자 신원주가 잔뜩 짜증을 부렸다.
“아~ 엄마! 쓸데없는 것 좀 물어보지 말아요.”
“어마? 우리 아들 친구 앞에서 엄마한테 못 하는 소리가 없네?”
싱긋 웃는 원주 어머니의 표정에 신원주가 움찔했다. 그리고는 슬쩍 고개를 떨궜다. 눈빛만으로 판정승을 거둔 원주 어머니의 질문 공세가 이어졌다.
“그래 원주가 반에서 사고는 안 치고 잘 지내?”
“네, 친구들이랑 잘 지내고 공부도 열심히 해요.”
원주 어머니가 입을 가리며 웃었다.
“그래?”
당연한 반응이었다. 신원주는 공부하고는 담을 쌓은 학생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온갖 과외의 물량 공세로 반에서 상위권을 유지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기억 속 신원주는 공부보다는 게임을 특히 좋아했다.
“네.”
강우가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집은 어디 사니? 여기서 멀어?”
“집은 인천입니다.”
원주의 어머니가 놀란 표정이 되었다. 인천이라니 통학하기에는 꽤 먼 거리가 아니던가.
“인천? 서울에 살다가 이사한 거니?”
“네.”
“전학은 안 갔어?”
강우에게 민감한 질문이라 생각했는지 신원주가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아! 엄마 이러면 나 이제 친구 안 데려온다?”
아들의 최후통첩에 원주 어머니가 일 보 후퇴했다.
“알았어. 재밌게 놀다가 저녁까지 먹고 가렴.”
“잘하면 자고 갈 수도 있어.”
신원주의 말에 원주 어머니의 표정이 더욱 밝아졌다. 오늘 벌어지는 일은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그래, 불편하게 생각하지 말고 자고 가도 돼. 그전에 부모님께 꼭 연락 드리고?”
“네, 어머님.”
강우가 알겠다고 답하자 원주 어머니가 부드럽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하아···. 미안. 우리 엄마가 좀 말이 많아서.”
“아니야. 참 좋은 분이시네.”
강우가 고개를 저었다. 원주 어머니의 저런 행동은 충분히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난생처음 친구를 집에 데려오니 감격과 궁금증이 뒤섞였을 것이다.
‘아니 이렇게 활달한 놈이···.’
하지만 이 모든 행동은 학습된 것이었다. 강우의 눈에 안타까움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는 속으로 다짐했다.
‘다시 한번 진정한 네 친구가 되어줄게.’
그런 강우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신원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빨리, 내 방으로 가자.”
“어.”
강우가 신원주를 따라 방으로 들어섰다. 가족이 모두 지내는 여관방보다 큰 방 안으로 침대가 놓여있었다. 그 앞쪽으로는 커다란 TV가 있었고, 각종 게임기가 놓여있었다.
“이야~ 아주 게임방이 따로 없네.”
“흐흐···. 다 내 보물들이지.”
옆쪽의 책상 위로는 컴퓨터가 놓여있었다. 컴퓨터 옆쪽으로 불빛이 반짝이는 커다란 모듈이 놓여있었다.
‘모뎀이다.’
이 시절에 인터넷이라니. 저 모뎀을 통해 인터넷에 접속해 사용하는 것이다. 목표물을 발견한 강우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야, 우리 게임이나 한판 하자.”
신원주가 패드를 하나 내밀었다. 강우가 TV 화면을 힐끗 바라보자 한창 유행하던 대전격투 게임이 눈에 들어왔다.
“게임? 나 일단 인터넷 좀.”
“어허. 로마에 왔으면 로마의 법에 따르는 법.”
신원주가 짐짓 엄격한 표정을 지었다. 강우가 픽 웃으며 패드를 잡았다. 순간 또다시 온갖 게임을 즐겼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강우 역시 게임이라면 남부럽지 않을 정도로 잘했었다.
“두들겨 맞고 울지나 마라.”
“어쭈?”
신원주는 자신만만했다. 현실은 몰라도 TV 안에서는 자신이 최강자라 생각했다. 첫 번째 게임은 대전격투 게임이었다. 두 남자의 거친 싸움이 벌어졌다.
타다닥. 타다닥.
거칠게 패드를 다루는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결과를 받아들인 신원주는 허무했다.
K. O.
“으아악! 너 이거 오늘 처음이라는 거 진짜 맞냐?”
“어, 이번 생에는 처음이다.”
강우가 픽 웃으며 말했다. 신원주가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이놈 이거 완전 먼치킨이네. 싸움에 게임에. 그나마 공부는 내가 잘해서 다행이네.”
“미안하다. 곧 공부도 이기기 힘들어질 거다.”
“거짓말.”
그 후로도 신원주는 계속해서 강우에게 도전을 해왔다. 게임의 종류까지 바꿔가며 말이다. 하지만 강우를 이기는 것은 불가능했다.
“으아아아!”
결국, 신원주가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이 잔인한 놈. 한 판을 안 져주냐.”
“승부의 세계는 냉정하지.”
신원주가 침대에 고개를 파묻고는 괴로워했다. 그사이 강우가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리고는 침대에 널려있는 신원주를 불렀다.
“원주야, 나 인터넷 좀 쓴다?”
“인터넷?”
신원주가 스르륵 몸을 일으키더니 강우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키보드를 이용해 인터넷 접속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뚜르르. 뚜르르.
연결음이 흐르고 곧이어 모니터로 촌스러운 접속 화면이 나타났다. 신원주가 이것만은 내가 이기리라 생각하며 강우에게 말했다.
“이거 어떻게 하냐면···.”
“나도 알아.”
신원주가 도우려 했지만, 강우가 마우스를 잡아챘다. 그리고는 능숙하게 인터넷을 다루기 시작했다. 그러자 신원주가 또 탄식을 뱉어냈다.
“아니 너는 도대체 못 하는 게 뭐냐? 인터넷 하는 방법은 또 어디서 배웠데?”
“이 정도는 현대인의 기본소양 아니겠냐.”
신원주가 별 이상한 놈 본다는 듯 강우를 바라보았다.
“진짜 알다가도 모르겠다. 너랑 한 학년을 짝꿍이었는데···.”
“양파 같은 남자라고나 할까?”
신원주가 헛웃음을 흘렸다. 강우가 손을 휘휘 저었다.
“빨리 쓰고 꺼야 하니까 방해하지 마라.”
“천천히 써. 뭘 서둘러.”
강우가 마우스를 놓으며 신원주를 바라보았다. 얼굴 가득 부자의 여유가 넘쳐흘렀다. 솔직히 조금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 요금 엄청 비싸지 않냐?”
“비싸도 뭐···. 쓸 게 있으면 써야지. 천천히 해라. 나는 게임 연습이나 하련다.”
“그래, 실력이 안 되면 연습만이 살길이다.”
강우의 얄미운 말투에 신원주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두고보자. 내가 오늘 꼭 너를 이기고 만다.”
사실 신원주의 게임 실력은 대단했다. 다만 강우의 게임 실력이 사기일 뿐이었다. 신원주가 이내 게임에 빠져들었다.
탁탁.
패드를 누르는 소리가 방안에 울리자 강우가 고개를 돌렸다.
‘나도 어디 한번 시작해 볼까.’
강우가 익숙한 손놀림으로 검색사이트에 접속했다. 바로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원조 격인 야호! 였다. 강우의 눈앞으로 영어로 도배된 사이트가 나타났다.
‘일단 비즈니스 경제 쪽으로.’
비즈니스 경제란을 클릭하자 온갖 정보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음···.’
강우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인터넷이 있다고는 하지만 말 그대로 백사장에서 바늘 찾기 같은 심정이었다. 새삼 미래의 인터넷이 얼마나 편리하게 분류되어 있었는지 깨달았다. 하지만 멍하니 있을 수는 없었다.
‘원주가 괜찮다고는 했지만, 인터넷 요금이 너무 살벌하니까.’
강우가 빠르게 키워드 검색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지금 시대에는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깔끔한 검색이었다.
‘역시 인터넷은 대단해.’
강우가 입맛을 다셨다. 자신에게 인터넷이 무한대로 제공된다면 정말이지 수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환경이 되지 못했다.
타타탁. 타타탁.
강우가 키보드를 두들기는 소리와 신원주의 패드 누르는 소리가 절묘한 앙상블을 이루었다. 강우가 차분히 정보를 입수하기 시작했다.
‘일단 아버지가 무역 쪽에 특화되어 있으니까 비슷한 방향의 회사로 찾아보자.’
강우가 책상에 있는 빈 노트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검색한 정보를 빼곡히 적어 내려갔다.
‘어차피 아버지는 안정이 되고 나면 다시 사업에 도전하실 게 분명해.’
강우의 아버지는 조직 생활에 힘들어할 게 뻔했다. 미래의 기억에서도 강우의 아버지는 사업을 하셨다.
‘아버지의 스펙이 좋다고 하지만, 경력직으로 회사를 들어가기에는 어려움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
이윽고 몇몇 회사를 간추린 강우가 리스트를 확인했다.
GIC(Global International Company).
WFS(World Food System).
두 곳 모두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아시아계 식품을 주로 수출입하는 회사였다. 그리고 중국에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로 한국을 선택한 회사들이었다.
‘이곳이라면 아버지가 일하시기에 무리가 없을 거다.’
그리고 강우가 가진 기억을 되살리기도 좋은 조건이었다.
‘중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까지 고추 수출을 아버지가 꽉 잡으셔야 해.’
강우가 찾은 두 회사라면 아버지의 능력을 펼치기 부족함이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검증은 필요했다. 중견기업이라고 하지만 IMF라는 거대한 파도가 밀려올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을 정리한 강우가 뒤를 돌아보았다.
“야, 원주야.”
“어, 왜?”
신원주가 게임에 잔뜩 집중한 채 툭 대답했다. 강우가 씨익 웃으며 물었다.
“너희 아버지 언제 집에 오시냐?”
“이제 곧 오실걸? 귀가 시간은 칼 같은 분이시라.”
이윽고 방문 밖이 살짝 소란스러워졌다. 신원주가 씨익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진짜 칼이시네.”
그리고 방 밖으로 원주 어머니의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 왔어요?”
“못 보던 신발이 있네.”
“원주 친구가 놀러 왔어요.”
원주 아버지의 목소리에도 놀라움이 가득했다. 고등학교 진학 이후 통 친구를 데려오지 않던 원주였다. 아니 애초에 지난 학창 시절 내내 마찬가지였다.
“친구?”
살짝 기대감에 찬 목소리가 들리더니 신원주의 방으로 인기척이 다가왔다.
똑똑.
“아들.”
묵직한 목소리에 신원주가 황급히 게임기를 끄고는 패드를 이불 아래 감췄다.
“네, 아빠.”
문이 벌컥 열리고 푸근한 인상의 중년남성이 들어섰다. 그리고는 곧장 강우를 향해 시선을 주었다. 강우가 벌떡 일어나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원주 친구 강우라고 합니다.”
“강우구나. 그래 잘 놀러 왔다.”
예의 바른 강우의 모습에 원주 아버지의 얼굴에 미소가 번져 나갔다. 강우가 떠오르는 기억을 차분히 받아들였다.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신철민. 그게 바로 원주 녀석의 아버지다.’
그리고 강우 아버지의 취업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