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4/402)
  • 변화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아이들이 분주해졌다. 각자의 가방에서 도시락을 꺼내며 삼삼오오 무리를 이루었다. 그 무리야말로 교우관계의 정수였다. 점심시간에 같이 밥을 먹는 무리. 그것이 친분의 척도였다.

    “야, 너 매점 갈 거지?”

    신원주가 강우를 향해 물었다.

    “어.”

    “나랑 같이 가자.”

    강우가 신원주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갑작스럽게 친밀하게 구는 것은 아니었다. 강우가 아는 신원주는 그런 놈이 아니었다. 그저 혼자만의 세상에서 한 꺼풀 벗고 나온 강우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너 도시락은 안 먹냐?”

    “벌써 해치우셨다.”

    신원주가 텅 비어있는 도시락통을 자랑스럽게 내밀었다. 강우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언제 까먹은 거야?”

    “흐흐. 아까 자리 비웠을 때 매점 가서 라면에 후루룩하고 오셨지.”

    강우가 실소를 뱉어냈다.

    “그런데 또 배고파?”

    “쇠도 씹어먹을 나이 아니냐 우리가.”

    신원주가 강우의 어깨에 팔을 척하고 올렸다. 강우가 픽하고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르륵.

    강우의 의자가 밀리는 소리에 모여있던 일진들이 움찔했다. 박광웅은 자리를 그새 비웠는지 보이지 않았다.

    ‘아마 허준후한테 갔겠지.’

    담임의 소환 명령을 전하러 말이다. 강우가 교실을 나서 매점으로 향했다. 수많은 인파를 뚫고 도시락 라면과 군만두를 산 강우가 운동장의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왜 여기서 먹게?”

    “어, 교실은 좀 답답해서.”

    반 친구들의 관심과 시선이 아직 불편한 강우였다.

    후루룩. 후루룩.

    강우와 신원주가 단번에 라면을 들이켰다. 남은 국물에 군만두를 넣어 휘휘 젓자 만두가 바스러지며 국물에 녹아들었다.

    “후아···. 난 이게 왜 이렇게 맛있는지 모르겠다.”

    신원주가 라면 국물을 꿀꺽꿀꺽 들이켰다. 강우 역시 라면을 단숨에 해치웠다. 그렇게 점심을 먹자 제법 배가 든든해져 왔다.

    “담임한테 갈 거지?”

    “어, 이제 가야지. 늦게 가면 또 얼마나 난리를 치겠냐.”

    강우의 말에 신원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강우의 어깨를 툭툭 쳐주었다.

    “가서 몇 대 맞으면 끝날 거야 잘 갔다 와라.”

    “위로냐?”

    픽 웃은 강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교무실로 향했다. 담임이 있는 교무실은 학교의 3층에 있었다. 교무실의 앞에 도착하자 복도에 엎드려뻗쳐 상태인 학생들이 보였다. 이 시절 고등학교의 흔한 풍경이었다.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서자 선생들의 시선이 잠시 강우에게 머물렀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돌렸다. 한쪽으로 강우의 담임이 보였다.

    “선생님, 저 왔습니다.”

    강우의 부름에 담임이 교무실을 문을 힐끗 바라보았다.

    “준후랑 광웅이는?”

    “잘 모르겠습니다.”

    담임이 인상을 찌푸렸다.

    “올 때 같이 와야지.”

    “.....”

    그 순간, 교무실의 문이 열리고 허준후와 박광웅이 들어섰다. 강우가 들어섰을 때와는 달리 몇몇 선생들이 반응을 보였다.

    “야! 이 꼴통 새끼들. 또 무슨 사고 쳤어?”

    큰 목소리로 윽박지르는 선생은 학생주임이었다. 허준후와 박광웅이 여러 차례 허리를 굽신거리며 담임에게 다가왔다.

    강우와 허준후 그리고 박광웅.

    문제의 3인방이 한자리에 모였다.

    “같은 반 친구끼리 주먹질이나 하고 그러면 되겠어?”

    아직 초년인 담임선생이 타이르듯 말했다. 그러자 학생주임이 대번에 끼어들었다.

    “뭐야? 이놈들 싸웠어?”

    학생주임이 교무실의 한쪽으로 다가갔다. 벽에는 무기를 진열하듯 여러 개의 몽둥이가 걸려있었다. 학생주임의 자랑인 사랑의 매 컬렉션이었다.

    ‘사랑의 매는 얼어 죽을.’

    강우가 담담히 학생주임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허준후와 박광웅은 이미 경험이 여러 번인 듯 창백한 표정을 지었다.

    달칵.

    학생주임의 손에 간택 받은 것은 커다란 밤나무 몽둥이였다. 허준후와 박광웅이 짧게 신음성을 뱉어냈다. 학생주임이 몽둥이를 들고는 거침없이 다가왔다.

    “이 새끼들 싸움박질이나 하고 면학 분위기를 흐려?”

    몽둥이로 세 학생의 머리를 쿵쿵 찍으며 학생주임이 눈을 부라렸다.

    “주임 선생님, 제가.”

    “김 선생, 이런 놈들은 맞아야 정신을 차려. 나한테 맡기고 업무나 봐.”

    강우의 담임 역시 학생부 소속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너희 셋 따라 나와.”

    학생주임이 교무실을 밖으로 향했다. 강우가 짧게 한숨을 쉬며 학생주임의 뒤를 따라나섰다. 허준후와 박광웅이 사나운 눈빛으로 강우의 등을 바라보았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엎드려.”

    짧고 굵은 명령이었다. 강우가 엎드려 뻗쳤다. 차가운 복도의 감촉이 손끝에 느껴지는 순간.

    빠악!

    학생주임의 특제 밤나무 몽둥이가 강우의 엉덩이를 강타했다.

    “윽.”

    강우가 입술을 깨물며 신음했다. 몇 대나 더 남았을까 하는 순간.

    “일어나.”

    강우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학생주임이 강우를 향해 말했다.

    “너는 초범이니까 한 대다. 옆쪽에서 대기.”

    강우가 잽싸게 한쪽으로 비켜섰다.

    “너희 둘도 엎드려.”

    허준후와 박광웅이 희망에 찬 표정으로 엎드렸다. 하지만 희망은 곧 절망으로 바뀌었다.

    빠악! 빠악! 빠악!

    학생주임의 풀 스매싱이 박광웅의 엉덩이를 삼 연타 했다.

    “어억···.”

    박광웅이 신음을 뱉어내며 나뒹굴었다. 두 손으로 엉덩이를 미친 듯이 쓸어내리며 이를 악물었다. 그 모습에 강우가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도 지가 대장이라 이거지.’

    이윽고 허준후의 차례가 왔다. 벌벌 떨며 엎드린 허준후의 엉덩이를 학생주임이 내리치려던 순간. 허준후가 몸을 비틀며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두 손을 모아 싹싹 빌었다.

    “사···. 살려주세요!”

    강우가 터져 나오는 헛웃음을 간신히 참아내며 고개를 돌렸다. 박광웅은 한심하다는 듯 허준후를 바라보았다.

    “똑바로 안 엎드리면 너 관절 나간다.”

    학생주임은 봐줄 마음이 없었다. 허준후가 결국 포기하고는 엎드렸다.

    빠악! 빠악! 빠악! 빠악!

    한 대가 늘어난 사 연타가 이어지고 허준후가 비명을 지르며 복도를 나뒹굴었다.

    “으악! 잘못했습니다!”

    학생주임의 발을 잡고 매달리는 허준후의 모습이었다.

    “잘못했으면 앞으로는 공부 열심히 하고 사고를 치지 마라. 알겠냐?”

    “네! 네! 선생님.”

    허준후가 눈물 콧물을 쏟으며 알겠다고 했다.

    “한 번만 더 나하고 대면하는 날이 오면 그때는 죽는 줄 알아라.”

    그 말을 끝으로 학생주임이 교무실로 들어갔다. 허준후가 빠르게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강우를 쏘아보았다.

    “너 때문이야.”

    강우가 실소를 흘렸다. 기억은 엿이라도 바꿔 드셨나 보다.

    “시비 걸지 말고 그냥 가라.”

    “이익···.”

    박광웅이 울컥했지만, 차마 어쩌지는 못했다. 강우에게 얻어맞은 기억이 생생했다. 허준후와 박광웅이 이를 갈며 교실로 돌아갔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강우가 씨익 웃었다.

    ‘멍청한 놈들.’

    드르륵.

    교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선 강우가 담임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선생님, 잘못했습니다. 앞으로는 공부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 강우 네가 처음 사고 친 거니까 선생님이 봐준다.”

    담임의 얼굴에 만족스러움이 가득 차올랐다. 하지만 이내 미간을 살짝 좁힌다.

    “준후랑 광웅이는?”

    “교실로 내려가던데요?”

    “하? 그냥 갔어?”

    담임의 얼굴에 불쾌함이 떠올랐다. 이윽고 수업 종이 울리자 담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너도 교실로 돌아가.”

    “네, 선생님.”

    강우가 다시 꾸벅 인사를 하고는 교무실을 나섰다. 그리고는 빠르게 교실로 돌아갔다.

    * * *

    방과 후, 정문을 나서는 강우가 엉덩이를 만지며 인상을 찌푸렸다.

    ‘사랑의 매는 무슨. 감정 제대로 실렸더구만.’

    얼얼한 엉덩이를 만지며 강우가 히죽 웃었다. 종례 시간이 끝나고 교무실로 다시 끌려간 허준후와 박광웅의 모습이 떠올랐다.

    ‘한심한 놈들.’

    생각에 빠져 걷는 강우를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이 뜨거웠다. 박광웅을 때려눕혔다는 소문이 돈 것이다. 하지만 생각에 빠진 강우는 눈치채지 못했다.

    딸랑.

    잠시 후, 학교를 벗어난 강우가 장미여관에 돌아왔다. 강우가 카운터를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다녀왔습니다.”

    카운터를 지키던 노인이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강우를 반겼다.

    “그래, 어서 올라가라.”

    “네.”

    강우가 계단을 올라 201호 앞에 도착했다. 문의 손잡이를 돌리자 덜컥거리며 열리지 않았다.

    “형아야?”

    문안 쪽에서 강용의 목소리가 들렸다. 반가움이 가득 담긴 강용의 목소리에 강우의 표정이 푸근해졌다.

    “그래, 형아다.”

    딸칵.

    문이 열리고 붉게 상기된 강용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새 욕조에서 놀았나 보다.

    “잘 있었어?”

    “응, 나 혼자 있었는데 안 울었다?”

    “오? 우리 동생 제법인데?”

    강우가 강용의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안으로 들어섰다. 부모님은 자리를 비운 듯했다. 강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엄마는?”

    “응, 먹을 거 사러 갔어.”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그렇지 어린 강용을 혼자 두고 오래 자리를 비웠을 리 없었다.

    달칵.

    역시나 금세 문이 열리고 강우의 어머니가 들어섰다. 찬바람을 맞아 양 볼이 빨개진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강우의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번져나갔다.

    “학교 다녀왔습니다.”

    “어? 아들 일찍 왔네?”

    강우 어머니의 손에 검은 비닐봉지가 들려있었다. 강우의 시선을 느낀 강우 어머니가 비닐봉지를 스윽 들어 올렸다.

    “아들 배고프지?”

    “괜찮아요. 천천히 해주세요.”

    강우 어머니가 희미하게 웃고는 한쪽에 놓인 작은 전기밥솥에 다가갔다. 밥솥과 검은 비닐봉지를 화장실로 가지고 들어간 강우 어머니가 한동안 나올 줄을 몰랐다.

    “형아, 나 오늘 학교에서 애들한테 욕조에서 물놀이했다고 자랑했다.”

    “그랬어?”

    강용은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이었다.

    “응, 친구들이 부럽다고 놀러 오고 싶다는데?”

    “음. 당분간은 안 될 거 같은데?”

    “칫.”

    강용의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그런 강용이 머리를 헝클어트려 준 강우가 화장실로 향했다. 강우 어머니가 세면대에서 쌀을 씻고 있었다.

    “엄마, 아빠는요?”

    “아빠? 일 보러 나가셨지.”

    강우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공사장 나가신 거예요?”

    “아니, 면접 보러 가셨어.”

    강우를 바라보는 강우 어머니의 얼굴에 대견함이 가득했다. 강우 아버지는 강우의 말에 마음을 고쳐잡은 것이다.

    “면접이요? 어느 회사요?”

    강우의 목소리에도 기대감이 가득했다.

    “글쎄 나도 모르겠어. 아빠가 그런 건 통 말을 해주지 않으니까.”

    “그래도 취직을 하신다니 다행이네요.”

    “우리 아들이 아빠한테 한 말 때문에 아빠가 감동했대. 그래서 취직하기로 마음먹었나 봐.”

    “그랬어요?”

    강우의 어머니가 강우를 물끄러미 보며 웃었다.

    “우리 장남 이제 다 컸네.”

    “네.”

    강우가 멋쩍은 듯 웃었다. 이윽고 강우 어머니가 밥솥에 쌀을 넣고 물을 적당량 부었다. 그리고 버튼을 꾹 눌렀다.

    “우와~ 밥이다.”

    어린 강용의 얼굴에 기대감이 가득 차올랐다. 강우 역시 침을 꿀꺽 삼켰다. 한창 먹을 나이의 강우였다.

    칙칙.

    이윽고 전기밥솥이 비명을 지르며 뿌연 수증기를 뿜어냈다. 강우와 강용의 기대감이 극에 다다르던 순간.

    딸칵.

    밥솥의 뚜껑이 열리고 향긋한 밥 냄새가 방안으로 퍼져나갔다. 강용의 두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 강우 어머니가 귀여운 강용의 모습에 환하게 웃었다.

    “기다려봐.”

    강우 어머니가 플라스틱 밥그릇에 밥을 푸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냉장고를 열어 시장에서 사 온 밑반찬 몇 개를 꺼냈다.

    “엄마, 나 김!”

    강용이 잔뜩 흥분해 김을 찾았다. 그러자 강우가 본능적으로 강용을 말렸다.

    “김은 먹지 마.”

    “아···. 왜···.”

    얼마 전부터 계속되는 강우의 식단 관리에 강용의 입이 삐죽 튀어나왔다. 그런 강용의 모습에 강우의 마음이 잠시 흔들렸다. 하지만 이내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강용이 너는 짠 거 먹으면 안 돼.”

    강우의 말에 강용의 눈동자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항상 이뻐하던 형의 단호한 표정에 상처 입은 듯했다. 강우 어머니가 강우를 의아한 듯 바라보았다.

    “아들, 그게 무슨 말이야? 강용이가 왜 짠 거를 먹으면 안 되는데?”

    “그게.”

    강우가 말끝을 흐렸다. 생각해보니 자신도 왜 이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기억이 떠오르는 것도 없었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강하게 강용이 먹는 짠 음식에 거부감을 느꼈다.

    “그냥 너무 짜게 먹으면 건강에 안 좋잖아요.”

    강우의 말에 강우 어머니가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강우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염분이 지나친 음식이 몸에 안 좋은 것은 맞는 말이었다.

    “그래, 그럼 강용이는 이만큼만 먹자.”

    강우 어머니가 강용의 몫이던 김을 반이나 덜어냈다. 강용의 얼굴이 시무룩해졌지만, 이내 수긍했다.

    “응, 알겠어.”

    단출한 식사였다. 반찬이라고는 조미김과 밑반찬 몇 개가 전부였다. 하지만 갓 지은 밥 덕분일까? 밥은 너무나도 맛있었다.

    “아들, 오늘 점심은 어떻게 먹었어?”

    허겁지겁 먹는 강우의 모습에 강우 어머니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강우가 움찔하더니 씨익 웃었다.

    “매점 가서 잘 먹었어요. 원주가 만두도 사줬거든요.”

    “원주?”

    아들의 입에서 처음 나오는 친구의 이름에 강우 어머니의 얼굴이 살짝 풀어졌다.

    “네, 있어요. 실없는 놈.”

    “그래?”

    강우 어머니가 조심스러운 마음에 더 묻지는 않았다. 잠시 후, 식사가 끝나자 강용이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달려갔다.

    “욕조!”

    옷을 마구 벗어 던진 강용이 강우를 불렀다.

    “형아! 욕조에 물 받아줘!”

    강우가 자리에서 한쪽에서 교복을 벗어 걸어놓았다.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강우가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는 어린 강용을 위해 욕조에 물을 받아주고는 그대로 화장실을 나왔다.

    “......”

    강우의 교복을 바라보는 강우 어머니의 뒷모습이 보였다. 강우의 기척이 느껴지자 강우 어머니가 교복 상의를 내밀며 물었다.

    “아들 이거 피야?”

    강우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강우가 애써 태연한 척 다가갔다.

    “아. 별거 아니에요. 애들이랑 장난치다가 친구 피가 묻었어요.”

    “아···. 그래?”

    강우 어머니가 약간은 찝찝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교복을 원위치했다.

    “동생이랑 같이 놀다 나오지. 종일 형아 언제 오냐고 기다렸는데.”

    “전 있다가요.”

    말을 마친 강우가 아직 펼쳐져 있는 밥상에 다가갔다. 가방에서 참고서를 꺼낸 강우가 밥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런 강우의 모습에 강우 어머니의 표정이 대번에 밝아졌다.

    “아들, 공부하게?”

    “네.”

    평소 강우는 공부와는 담을 쌓고 살았다. 하지만 나름 머리가 좋아 암기과목은 제법 성적이 나왔다.

    ‘수학이나 영어처럼 기초가 필요한 과목은 아예 젬병인 게 문제지만.’

    강우가 참고서를 펼쳤다. 맨 처음은 언어영역이었다.

    사라락. 사라락.

    책장이 거침없이 넘어갔다. 강우의 손이 참고서 위를 날아다녔다. 얼핏 보기에는 공부를 하는 것일까 싶을 정도였다. 혹시나 하던 강우 어머니의 얼굴로 짧은 실망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

    탁.

    이윽고 언어영역 참고서를 덮은 강우가 실소를 흘렸다.

    ‘무슨 일인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한테 대박이 터진 건 확실하군.’

    지금의 강우는 신체 능력은 물론 두뇌까지 좋아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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