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화 (2/402)

회귀? 예지몽?(2)

[장미여관]

시뻘건 네온사인이 강우의 눈을 자극했다. 학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빨간 벽돌로 지어진 작은 여관이 있었다. 그 촌스러움에 강우가 아련한 기분을 느꼈다.

“형아, 여기가 우리 집이야?”

강우가 어린 강용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강우의 머릿속으로 여관에서 지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마도 당분간은?”

“저기는 따듯해?”

강용의 질문에 강우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강용의 얼굴로 미소가 번져나갔다.

“엄마가 저기에 욕조도 있다고 했어.”

“그래, 들어가서 빨리 욕조에 물 받아줄게.”

강우가 슬쩍 부모님을 바라보았다. 부모님의 불안함이 느껴졌다. 문득 꿈속에서 보았던 오늘의 일이 스쳐 지나갔다. 그때의 강우는 어린 강용과 다를 게 없는 기대감에 가득 차 있었다.

딸랑.

여관의 문이 열리며 종이 울렸다. 얼굴만 간신히 보이는 카운터의 창 너머로 노인의 무료한 얼굴이 보였다.

“숙박하려고 합니다.”

“하루 숙박비는 만 원이요.”

강우의 아버지가 품에서 지갑을 꺼내 들었다. 얼핏 보이는 지갑의 안쪽으로 파란 지폐가 보였다. 아마도 강우 가족의 전 재산일 것이다.

“여기 있습니다.”

“201호. 제일 좋은 방이요. 애들 추워 보이니 어서 올라가쇼.”

노인이 강우와 강용을 힐끗 보며 말했다. 아버지의 얼굴에 알 수 없는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고맙습니다.”

강우의 어머니가 노인에게 감사를 표했다. 붉은 융단이 깔린 계단을 올라가자 바로 강우 가족의 방이 나타났다.

[201호]

기다란 플라스틱에 달린 열쇠를 손잡이에 넣고 돌렸다.

딸칵.

잠금장치가 열리고 201호 안의 풍경이 드러났다. 여관방 특유의 냄새가 강우의 코를 찔렀다. 시선을 살짝 돌리자 온돌방의 한쪽으로 이불장이 있었다. 한쪽으로는 비어있는 낡은 화장대가 있었고 그 옆으로는 작은 냉장고가 있었다.

“들어가자.”

강우의 아버지가 신발을 벗고 방에 들어섰다. 강우가 그 뒤를 따라 들어섰다. 손님이 없었음에도 방바닥은 후끈했다. 발바닥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거리의 추위가 날아가는 듯했다.

“후아.”

강우가 몸을 살짝 떨어 남아있는 냉기를 몰아냈다. 그때 강우를 스윽 스쳐 지나가며 강용이 들어섰다.

“욕조!”

어린 강용이 대번에 화장실로 달려갔다. 화장실로 들어간 강용이 욕조를 보고는 좋다고 소리를 질렀다. 이윽고 일회용품을 잔뜩 사 들고 강우의 어머니가 방으로 올라왔다.

“강우야, 동생 욕조에 물 좀 받아줘.”

“네, 엄마.”

강우가 화장실로 향하자 이미 옷을 벗고 대기 중인 강용이 있었다. 강우가 픽하고 웃었다.

“그렇게 좋아?”

“응, 여기는 따듯하고 욕조도 있고. 우리 매일 여기서 살았으면 좋겠다.”

어린 강용의 말에 강우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그리고는 욕조에 물을 받기 시작했다. 콸콸 따듯한 물이 나오며 화장실에 수증기가 차올랐다.

“와아!”

어린 강용이 수증기를 보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이윽고 강우와 강용이 욕조에 몸을 담갔다.

“안 좁아?”

아직 열일곱 살밖에 안 된 강우였지만 키도 크고 덩치도 컸다. 여관의 작은 욕조에 둘이 들어가기는 비좁을 만했다. 하지만 어린 강용은 형과의 이런 시간이 마냥 행복했다.

“응, 안 좁아.”

“자식.”

강우가 강용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이 터울이 많이 나서일까? 강용은 강우를 매우 따르고 좋아했다. 그때, 화장실 밖에서 부모님의 대화가 이어졌다.

“여보, 이제 어떡해요?”

“음. 당장 며칠은 버텨보겠는데.”

두 사람이 가진 돈은 얼마 되지 않았다. 강우 어머니의 얼굴에 걱정이 가득 차오르자 강우 아버지가 결국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 내가 일당이라도 벌어서 먹여 살릴 테니까.”

“공사판을 나가겠다고요?”

강우의 어머니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강우의 아버지는 사업이 망한 이후 계속 이런 상태였다. 어째서인지 강우의 아버지는 취업하지 않았다. 다시 사업을 하겠다는 생각에 가득 차 있었다.

“응, 당분간만.”

“그리고요?”

강우 어머니의 담담한 표정에 강우 아버지가 움찔했다.

“돈을 벌어야지.”

“어떻게요? 또 사업을 해서요?”

“글쎄.”

강우 아버지의 목소리에는 갈등의 빛이 역력했다. 강우 아버지의 나이는 40대 초반이었다. 군인 시절 만난 강우 어머니와 제대하자마자 결혼을 했고, 신혼여행에서 강우를 가졌다.

‘군대도 카투사를 다녀오고 지휘관의 통역관을 할 만큼 영어에도 능통하시지.’

언어적인 재능이 뛰어난 강우 아버지는 대학을 졸업한 후 대기업 계열사에 취직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바로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사업은 실패했다. 그렇게 젊은 나이에 사업을 실패한 게 문제였다. 어중간한 나이로 새 직장에 취업하기가 애매한 것이다.

‘한마디로 경력이 단절된 상태라는 거지.’

사업을 하며 사장 소리를 듣던 것도 문제였다. 일반 사원을 하기에는 자존심도 허락지 않았다.

‘음. 꽤 한동안 공사판에서 일하셨지.’

강우가 욕조에 몸을 담근 채 생각에 빠졌다. 여관의 간판을 보는 순간 떠오른 기억. 그 기억에 의하면 강우 가족은 제법 오랜 시간 이곳에서 지낸다.

‘결코, 좋은 일이 아니야. 우리 가족에게.’

강우가 욕조에서 몸을 일으켰다. 작은 체구의 강용의 몸이 출렁였다. 강우가 강용의 몸을 잡아주고는 뜨거운 물을 보충해주었다.

“혼자 놀고 있어. 위험하게 잠수하지 말고.”

“응, 형아.”

강우가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밖으로 나왔다.

“왜? 동생이랑 조금 더 놀지.”

강우의 어머니가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강우가 수건으로 대충 몸을 가리고 아버지를 향해 말했다.

“저희 여기에 얼마나 있어야 해요?”

“우리? 왜?”

강우 아버지가 크게 당황했다. 숱한 고생 속에서도 늘 별말 없이 지내던 강우였다. 강우는 그게 참을성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건 미련한 짓이었다.

“강용이가 좋아는 하는데요. 그것도 하루 이틀이잖아요.”

강우 아버지는 강용이라면 꼼짝도 못 했다. 강우에게 엄한 것과는 달랐다.

“조금만 참아라. 아빠가 돈 벌어서 곧 이사 갈 테니.”

할 말이 많았지만, 강우가 살짝 망설였다. 어딘가 모르게 어른스러워진 강우였지만, 아버지와의 관계는 미래에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용기를 내 입을 열었다.

“저는 아버지가 직장을 다녔으면 좋겠어요.”

강우 아버지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아버지 영어도 잘하시잖아요. 그리고 아직 젊은 데 사업실패 한 거에 너무 연연하지 않으셨으면 좋겠고요. 아버지가 충분히 능력이 있는 거 알아요.”

“......”

강우 아버지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강우 어머니가 놀란 눈으로 강우를 바라보았다. 평소 내성적이고 말수 적은 아들의 변화가 놀라울 뿐이었다.

“아. 아들.”

강우 아버지가 긴 숨을 뱉어냈다.

“알았다. 아빠랑 엄마가 알아서 하마.”

“네.”

그 말을 끝으로 강우가 욕탕으로 돌아갔다. ‘꼬르륵’ 잠수를 하고 놀던 강용이 깜짝 놀라 몸을 일으킨다.

역시 애는 애였다.

“잠수하지 말라니깐.”

“헤헤.”

강용이 어설픈 미소로 강우의 화를 누그러트렸다. 강우가 픽 웃으며 욕조로 들어갔다. 가득 차 있던 물이 넘쳐흘렀고, 강용의 몸이 출렁였다.

“우와~ 재밌어.”

그렇게 두 형제는 한동안 물놀이에 심취했다.

* * *

[양서고등학교.]

강우가 교문의 한쪽 기둥에 박힌 금속 명패를 보며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순간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기억이 마구 뒤섞이며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하아···.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강우가 뒤죽박죽인 머릿속을 정리했다. 미래의 기억들이 먼지처럼 흩어졌다. 강우가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교문을 지키던 학생주임과 시선이 마주친 강우가 꾸벅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학생주임 선생님.”

“어, 그래.”

학생주임 선생이 강우를 위아래로 살폈다. 머리가 길다거나 명찰이 없거나 혹은 교복 상태가 불량한가 살피는 것이었다.

“들어가.”

하지만 강우는 아무 지적을 받지 않았다. 이윽고 강우가 자신의 교실에 도착했다.

[1-15반]

드르륵.

문이 열리자 후끈한 남자들의 냄새가 코를 찔렀다. 왁자지껄한 교실의 누구도 강우의 등장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게 바로 반에서의 강우의 위치였다.

‘그저 평범한 학생이자 만만한 놈.’

강우는 키가 컸다. 중3 때 이미 185에 85kg이었다. 타고난 골격 덕분인지 그리 뚱뚱해 보이지도 않았다. 나이가 들어서는 어려서 운동선수를 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한 적도 많았다. 그리고 운동을 즐기기도 했었다.

‘구기 종목은 다 제법 했고, 권투는 물론이고 나중에는 MMA도 배웠었지.’

그때, 떠오르는 기억을 정리하던 강우의 어깨를 누군가가 툭 치고 지나갔다. 살짝 비틀거린 강우가 고개를 돌리자 익숙한 얼굴이 웃고 있었다.

“여~ 왔냐?”

친숙하게 말을 걸어오는 상대방이었지만, 강우의 얼굴은 대번에 굳었다.

‘허준후···.’

강우보다 두 뼘이나 작은 이놈은 학창 시절 강우의 최대 고민거리였다.

“어, 그래.”

강우가 퉁명스럽게 답하고는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자 허준후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이 새끼가.”

왜인지 모를 분노를 삼키며 허준후가 강우를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는 비어있는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

“너 아직도 집도 없이 길거리에서 자냐?”

“....”

강우가 허준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반에서 강우의 별명은 노숙자였다. 바로 눈앞의 이놈이 퍼트린 소문 때문에 지어진 별명이었다.

“주말에 뭐 했냐? 거리에서 단체로 구걸이라도 했냐?”

“....”

강우의 가슴속에서 울컥 분노가 솟아올랐다. 책상 밑의 손이 불끈 쥐어졌다.

“뭐야? 화났어? 와~ 박강우 많이 용감해졌네.”

허준후가 강우의 팔뚝을 주먹으로 툭툭 쳤다. 강우가 허준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학기 초부터였지···. 이놈에게 괴롭힘을 당한 게.’

한눈에 보아도 강우의 덩치가 훨씬 크고 힘도 강했다. 하지만 허준후는 독사 같은 놈이었다. 그 못된 심보에 심적으로 약해져 있는 강우는 커다란 먹잇감일 뿐이었다.

“야, 도시락 좀 까봐.”

허준후가 강우의 가방을 제멋대로 열어젖혔다. 하지만 강우의 가방에 도시락이 들어있을 리가 없었다.

“없네? 그럼 매점에 가실 생각이셨구먼?”

허준후가 허락도 없이 강우의 교복에 손을 집어넣으려 했다. 그 순간, 참다못한 강우가 허준후의 손을 낚아챘다.

“아아!”

허준후의 몸이 휘청거리며 고통에 차 소리를 질렀다. 정작 일을 저지른 강우도 속으로 깜짝 놀라고 있었다.

‘뭐, 뭐지?’

기억 속에서 보았던 호신술이 자기도 모르게 사용된 것이다. 그뿐이 아니었다.

‘힘도 강해진 건가?’

온몸에 가득 차오르는 힘은 성인 남성의 것보다 강한 것이었다.

“이 새끼가 이거 안 놔?”

생각에 빠진 강우를 향해 허준후가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강우의 옆쪽으로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웠다.

“빨리 놔라.”

강우의 고개가 스윽 올라갔다. 강우 못지않은 덩치를 가진 남학생이 보였다.

‘박광웅.’

1학년 15반에 서식하는 일진들의 대장 격인 놈이었다. 그리고 체구가 작은 허준후가 날뛸 수 있는 든든한 뒷배이기도 했다. 두 사람의 관계를 떠올리자 강우의 입가로 피식 웃음이 번졌다.

‘머리 따로 몸 따로냐.’

강우가 웃자 박광웅의 얼굴에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웃어? 이 새끼가!”

박광웅이 강우의 멱살을 잡았다. 왁자지껄하던 교실이 금세 침묵에 빠졌다. 하나같이 강우를 향해 동정의 눈빛을 보내왔다.

“분노조절 장애가 있나. 왜 그리 흥분을 하고 그래?”

“뭐?”

강우의 태연한 말에 박광웅의 주먹이 들어 올려졌다. 강우가 허준후를 잡았던 손을 놓았다.

“이 새끼 너 오늘 죽었어!”

허준후가 박광웅의 뒤로 몸을 숨기며 사납게 말했다. 그런 허준후를 바라보는 강우가 씁쓸한 감정에 휩싸였다.

‘저렇게 별거도 아닌 놈인데. 나는 왜 그렇게 무서워했던 걸까.’

침묵에 빠진 교실의 분위기가 천천히 달아올랐다. 이 시기의 남학생에게 싸움 구경은 최고의 볼거리였다.

“경고하는데 멱살 잡은 거 빨리 놓는 게 좋을 거다.”

“이게 진짜!”

그렇게 박광웅의 주먹이 내리꽂히려는 순간이었다.

딩동댕동.

수업을 시작하는 종소리가 울렸다. 멈칫 주먹질을 멈춘 박광웅이 사나운 표정을 지으며 잡은 멱살을 풀었다.

“너, 이 새끼 조금 이따가 보자.”

그 말을 끝으로 박광웅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강우가 또다시 픽하고 웃었다. 고작 수업 종소리에 분노가 사그라질 만큼 이 시기의 남학생들은 애였다.

‘나도 참 어렵게 살았었군.’

강우가 자신의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내려다보았다. 자신을 사납게 노려보는 허준후도 조금 이따 보자며 협박하던 박광웅도 이제 더는 두렵지 않았다.

‘하······. 이거 애들 일진 놀이에 장단을 맞춰줘야 하나?’

열일곱 살의 박강우는 더는 예전의 박강우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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