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 (1/402)

회귀? 예지몽?

차가운 냉기가 가득한 방. 어둠 속에서 강우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차가운 한기가 느껴졌지만, 온몸 가득 식은땀이 가득했다. 어둠 속에서 강우의 눈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슬쩍 고개를 돌리자 작은 체구의 아이가 몸을 웅크린 채 자고 있었다.

“강용이?”

강우의 얼굴에 의아함이 가득 차올랐다.

“이게 무슨.”

강우의 눈앞에 친동생 강용이 어릴 적 모습으로 있었다. 이윽고 어둠에 적응한 눈이 주변을 확인해주었다. 낡은 벽지 위로 걸려있는 가스스토브 하나. 차가운 냉기가 흐르는 바닥에 깔린 이부자리 그리고 한쪽으로 보이는 책상 위의 명패.

원장 홍성열

“말도 안 돼.”

있어서는 안 될 이름을 확인한 강우가 헛숨을 집어삼켰다.

“으음···. 형아?”

강우의 중얼거림에 강용이 몸을 비틀었다. 남동생인 강용은 밤잠을 늘 설치고는 했었다.

“어, 강용아, 형 화장실 가려고.”

“응, 빨리 와.”

아홉 살 터울이 나는 어린 동생의 얼굴에 작은 불안함이 떠올랐다. 강우가 다시 이불을 덮어주었다. 차가운 냉기가 버거운지 강용이 이불을 잔뜩 끌어 올렸다.

“으. 춥다.”

“이불 꼭 덮어.”

강우가 원장실의 문을 스윽 열었다. 강우의 눈에 고요함에 빠져있는 학원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꿈이었나.”

허탈함이 몰려왔다. 강우는 긴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강우는 대학을 가고 군대도 갔다. 제대한 후에는 참 별 볼 일 없이 살았다. 평범한 가정을 이루기도 했었다.

“여보, 언제까지 여기서 이렇게 지내야 해?”

“글쎄···. 작은 처남한테 말을 해보든지 해서 월셋집이라도 구해야 하나.”

“내가 성열이한테 말해볼게요. 겨울이 오니 여기서 지내는 게 너무 힘들어요.”

“아니야. 내일 아침에 내가 말할게.”

학원의 교실 한쪽에서 부모님의 목소리가 강우의 상념을 깨웠다. 선명히 떠오르던 긴 꿈이 먼지처럼 흩어졌다.

‘아. 이때쯤이었나?’

강우의 집은 가난했다. 아니 가난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의 사업이 망한 이후로는 쭉 말이다. 집도 절도 없이 모텔을 전전하기도 했고, 친척 집에 신세를 지다 눈치에 못 이겨 나오기도 했다. 그렇게 몇 개월을 지내다가 잠깐 자리를 잡은 곳이 바로 이곳 홍성 학원이었다.

‘막내 외삼촌이 운영하는 학원이었었지?’

강우의 아버지가 사업으로 한참 잘나 갈 때 돈을 보태주어 차렸던 곳이기도 했다.

‘이것뿐만인가? 친척들치고 우리 아버지 도움 안 받은 사람이 있던가?’

강우의 부모님은 아이들의 영어와 미술을 가르치며 학원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강우의 아버지는 영문과를 어머니는 미대를 나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스르륵.

강우의 고개가 원장실로 돌아갔다. 저 작고 냉기가 흐르는 원장실이 현재 강우 가족의 보금자리였다. 강우가 다시 원장실로 돌아갔다. 인기척을 느낀 남동생이 슬쩍 이불을 들어주었다.

“형아, 추워 얼른 들어와.”

“아니야. 먼저 자.”

강우가 다시 이불을 덮어주고는 강용의 몸을 손바닥으로 두들겨 주었다. 강용이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혼자 남은 강우가 깊은 생각에 잠겼다.

‘오늘이 며칠이지?’

고개를 돌리자 책상에 달력이 있었다.

1995년 12월 12일.

슬쩍 고개를 돌리니 강용의 머리맡으로 양말이 놓여있었다. 아직 크리스마스가 한참이나 남았는데도 벌써부터였다. 강우가 픽하고 웃었다. 남동생 강용은 꽤 늦게까지 산타를 믿었었다.

‘아니지. 선물을 받으려고 믿는 척했다고 했던가?’

먼 미래에 강용이 직접 해준 말이었다. 강우의 머리가 또 복잡해졌다.

‘왜 자꾸 이런 기억들이 떠오르는 거지? 예지몽이라도 꾼 거야?’

강우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자 강우의 머릿속에 떠오르던 기억들이 먼지처럼 흩어졌다.

“으음?”

강우가 잠시 멍하니 앉아있었다. 이게 꿈이든 현실이든 빨리 확실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에 강우가 자리에 누워 잠을 청했다.

* * *

“......”

다음날, 아침 강우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여전히 원장실이었다. 강우의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꿈이 아니었어.’

강우가 입술을 깨물었다. 빠르게 일어나 원장실을 나가자 작은 체구의 중년남성이 막 학원 문을 열고 들어서고 있었다.

“어? 강우야, 깼어?”

“아···. 외삼촌.”

중년남성은 학원의 원장이자 강우의 외삼촌인 홍성열이었다. 그때, 아버지의 목소리가 강우의 귓가에 울렸다.

“작은 처남, 왔어?”

“형님, 잘 주무셨어요?”

순간, 또 하나의 기억이 떠올랐다. 마치 영화가 재생되듯 찰나의 순간에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강우가 크게 당황했다. 기억대로라면 바로 오늘 강우의 아버지와 외삼촌은 크게 싸운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놈의 돈이 문제지.’

강우가 순간 두 사람을 떨어트려 놓을까 고민했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바꿨다.

‘내 기억이 사실인지 확인해 보고 싶어.’

그때, 강우의 아버지가 외삼촌을 원장실로 이끌었다.

“할 이야기가 좀 있어.”

“이야기요?”

외삼촌의 웃던 얼굴이 살짝 경직된다. 아마 돈 이야기라는 것을 눈치챈 것 같았다. 강우의 기억 속 외삼촌은 수전노였다. 돈이라면 한 푼에도 인색한 그런 사람이었다.

“안에서 이야기하자.”

강우가 모른 척 옆으로 비켜섰다. 원장실로 강우의 아버지와 외삼촌이 들어갔다. 이윽고 어린 남동생 강용이 눈을 비비며 원장실에서 나왔다.

“형아, 잘 잤어?”

“응, 강용아. 잠깐 엄마한테 가 있어.”

강우가 강용을 어머니가 있는 교실로 보냈다. 그리고 숨을 죽인 채 원장실을 향해 귀를 기울였다.

“처남, 다른 게 아니라. 돈이 좀 필요해. 여유가 있으면 조금 융통해줘.”

“아이고 형님, 저도 죽을 맛인 거 아시잖아요? 제가 돈이 어딨어요?”

거짓말이었다. 외삼촌의 수중에는 항상 돈이 있었다. 다만 나누어주기 불안할 만큼인 게 문제였다.

“애들이 원장실에서 지내는 걸 힘들어하네. 날씨도 춥고. 전기스토브 하나로 버티기에는 힘들어. 부탁 좀 하자.”

“진짜 돈 없어요.”

“그러지 말고 내가 금세 갚을 테니까.”

“돈 없다니까요.”

냉정한 거절에 강우의 아버지가 살짝 미간을 좁혔다.

“큰돈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월세 보증금 정도인데 이렇게 냉정하게 굴 거야?”

“진짜 돈이 없는 걸 어떡해요?”

두 남자의 목소리가 점점 격앙되어 갔다.

“매형, 이런 말 해서 미안한데요. 사실 원장실에서 지내시는 것도 학부모들 사이에 말이 많아요.”

외삼촌의 말에 강우 아버지가 흠칫했다.

“우리가 여기서 지내는 걸 학부모들이 어찌 안다고 그런 소리를 해?”

“매형도 참 알만한 분이 그런 말을 합니까? 학원이 끝나고 원장실에 밤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잖아요. 그리고 아침 일찍부터 학원에 애들이 씻지도 않고 돌아다니잖아요. 눈치 빠른 학부모들이 모를 리가 있어요?”

“음.”

강우 아버지가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혔다. 그러자 강우 외삼촌이 하지 말아야 할 이야기를 꺼내고 말았다.

“매형이 학원 차릴 때 도와주신 건 고맙게 생각해요. 그런데 진짜 돈 없어요. 그리고 언제까지 그러고 계실 거예요?”

“그게 무슨 말이야?”

“매형, 인제 그만 직장이라도 다니세요. 사업한다고 누나랑 애들 고생 그만 시키시라고요.”

“뭐?! 지금 말 다 했어?”

아버지의 고함이 들려왔다. 강우의 얼굴에 굳었다. 강우의 아버지는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매형, 화 좀 내시지 말고요. 사실 아닙니까?”

“너, 이 새끼!”

강우 아버지가 버럭 화를 내자 강우 외삼촌이 발끈했다.

“제가 어린애도 아니고 툭하면 이 새끼 저 새끼 그러세요!”

“야! 내가 그동안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그 정도 말도 못 해?”

어머니의 막냇동생인 외삼촌은 아버지에게 신세를 많이 입었다. 어린 시절 학비는 물론 인생의 조언자 같은 존재가 강우의 아버지였다. 물론 돈과 관련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니, 매형이 나한테 해준 게 뭐가 그리 많다고 매번 그런 말을 하는데요?”

듣기 싫은 진실에 강우의 외삼촌이 이성을 잃기 시작했다. 한번 성질이 나면 개차반인 게 강우의 외삼촌이었다. 원장실에 막말과 고성이 오가기 시작했다.

“이놈이 보자 보자 하니까 매형한테!”

“진짜 나도 더는 못 참아요.”

“뭐?! 이 새끼가!”

결국, 참다못한 강우의 어머니가 원장실을 박차고 들어갔다. 그러고는 외삼촌을 향해 소리쳤다.

“야! 너 지금 매형한테 무슨 말버릇이야?!”

“누, 누나.”

강우의 외삼촌은 큰누나인 강우 어머니를 무서워했다. 당황한 강우 외삼촌에게 강우 어머니의 고함이 이어졌다.

“가족끼리 어려우면 돕고 사는 거지 그게 그렇게 아까워?”

“아니, 누나 나도 힘들다고.”

“그래? 힘들어? 우리보다 더 힘들다 이거지? 너 애들 차가운 바닥에서 자는 거 불쌍하지도 않아?”

강우 어머니의 눈에서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두 남성이 각자 다른 이유로 당황했다. 강우의 아버지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당장 나갈 테니까. 그리 알아라. 그리고 학원 애들을 가르칠 선생들은 다시 구해.”

쾅!

원장실 문이 거칠게 닫히며 강우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왔다. 강우를 발견한 아버지의 얼굴이 굳었다.

“강우야···.”

“안녕히 주무셨어요?”

강우가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인사를 했다. 이제 겨우 고1인 강우였지만, 하룻밤 사이 스쳐 지나간 기억이 강우를 바꿔놓았다. 어른들의 복잡함은 모르는 척해주는 게 최고라는 걸 알았다.

“응, 그래. 가서 빨리 씻고 밥 먹어.”

“네.”

강우가 담담히 대답하고는 강용이 들어간 교실로 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어린 강용이 태연한 얼굴로 강우를 바라봤다. 밖에서 들린 고함을 들었을 터인데 말이다.

‘그래, 너는 이런 아이였지.’

강용은 어려서부터 남달랐다. 그래서 커서도 남달랐던 것이겠지. 밀려드는 기억에 강우가 또 고개를 갸웃했다.

“형아, 엄마가 밥 먹으래.”

강용이 작은 식판을 강우에게 내밀었다. 군대에서나 쓸법한 식판 위로 흰 쌀밥과 김 그리고 잘게 잘린 스모크 햄이 있었다. 학원에서 생활한 이후로 지겨울 정도로 먹었던 반찬들이었다.

“잠깐.”

말을 마친 강우가 강용의 식판에서 햄을 모두 뺏어왔다. 강용이 대번에 화를 냈다.

“형아. 그거 내 꺼야!”

“앞으로 이거 먹지 마.”

이전과는 다른 강우의 단호함에 강용이 움찔했다. 하지만 울지도 않고는 김에 밥을 싸서 먹기 시작했다. 이윽고 강우와 강용이 식사를 끝마쳤다.

“다 먹었어?”

“응.”

때마침 교실의 문이 열리며 강우의 어머니가 들어섰다. 슬픔이 가득한 얼굴로 강우와 강용을 바라보는 강우의 어머니는 애써 눈물을 참고 있었다.

“얘들아, 오늘부터 우리 다른 데서 잘 거야.”

강우가 침묵했다. 어린 강용은 궁금증을 참지 못했다.

“다른데? 그럼 이제 따듯한 데서 자는 거야?”

“응? 으응. 따듯도 하고 강용이 좋아하는 욕탕이 있는 곳에서 잘 거야.”

강우의 어머니가 강우의 눈치를 힐끗 살폈다. 강우가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짐 쌀게요,”

“아니야 엄마가.”

“도와드릴게요.”

강우가 교실의 한쪽 벽으로 다가갔다. 학생들을 위해 만들어놓은 보관함 몇 곳을 열자 강우 가족의 짐이 한가득하였다. 강우가 묵묵히 짐을 싸기 시작했다. 사실 기억 속 강우는 이때 잔뜩 짜증이 나 있었었다. 하지만 지금의 강우는 달랐다.

“엄마, 힘내세요.”

강우의 말에 강우 어머니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리고는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 소매를 들어 눈물을 빠르게 훔친 강우의 어머니가 짐을 싸기 시작했다.

“고마워. 우리 장남 다 컸네.”

이윽고 짐을 싸 들고나온 강우 가족을 외삼촌이 막아섰다.

“누, 누나 정말 나가요? 아까는 그냥 내가 화가 나서.”

강우 아버지는 자존심이 상했는지 고개를 돌렸다. 강우의 어머니는 단호한 표정이었다.

“됐다. 너한테 이런 말까지 들었는데. 어떻게 여기서 더 지내겠니.”

그 말을 끝으로 강우 가족이 학원의 문을 열고 나섰다. 당황한 외삼촌이 무어라 말을 하려다 말았다. 거리에 나서자 칼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엄마, 추워.”

어린 강용이 입술을 덜덜 떨었다. 강우의 아버지가 외투를 벗어 막내아들의 몸을 덮어주고는 번쩍 들어 품에 안았다. 강우가 재빨리 아버지가 들던 짐을 받아들었다. 달라진 강우의 행동에 강우 아버지의 얼굴에 이채가 떠올랐다.

“빨리 가요.”

강우의 말에 가족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1995년 12월 13일.

강우와 강우의 부모님 그리고 어린 동생 강용이 다시 거리로 버려진 날이었다. 길을 걸으며 강우가 눈을 빛냈다.

‘떠오르는 기억들은 전부 사실이었어.’

학원에서 벌어진 일이 그것을 증명해 주었다.

‘이 기억을 이용한다면.’

강우가 차오르는 흥분을 감추며 부모님의 뒤를 따라 걸었다. 강우 가족의 상황은 최악이었다. 하지만 강우는 불안하지 않았다. 자신이 가진 기억이라면 가족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는 생각때문이었다. 칼바람에 옷깃을 싸매는 강우의 얼굴에 자신감이 가득 차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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