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六章 (249/254)

주서천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머리가 떨어져도 다시 붙일 수 있는지 봐야겠다.”

암천회주는 확실히 주서천과 냉악비가 추측한 대로 외경을 무한하게 사용할 수는 없다.

순리를 거스르는 힘인 만큼 여러 부작용이 따라서 장시간 동안 사용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서 시간을 찰나의 수준으로 쪼개 수백 번에 걸쳐서 능력을 발휘했다.

“주, 서, 천!”

암천회주가 외경에 진입했다.

또다시 홀로 다른 곳에 있는 것처럼 움직였다.

시각이 정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놓쳐 버린 게 아니라 인지할 수가 없었다.

‘눈으로 보는 건 포기한다!’

어차피 볼 수 없으니 동원할 필요없었다.

도박이나 다름없지만 그 외의 감각을 활성화한다.

‘생각하지 마! 느껴라!’

사고가 느려진다.

이성이 흐릿해졌다.

의식이 아닌 무의식의 영역에 가까워지며 육체에 모든 걸 맡겼다.

집중력이 극도화되면서 잡념, 아니 생각이 사라졌다.

주서천은 순간적으로 무아지경에 이르렀다.

쐐애액!

회주의 검초가 무엇인지는 모른다.

무곡에게서 전해 들은 선천검법의 초식에 대해서도 잊었다.

숨을 들이쉰 채 힘을 주자 근육이 부풀었다.

회오리치듯 검을 휘감은 자줏빛 역시 강해졌다.

‘무궁육허!’

무의식적으로 자하검결 제오식이 펼쳐졌다.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다.

내가 검을 움직인 게 아니라, 검이 나를 움직였다.

팔은 한일 자로 쭉 뻗어 있다.

그리고 그 끝을 따라가면 여섯 개의 매화 잎이 만개하듯 쫙 펼쳐져 있었다.

생과 사의 경계 속.

두 검이 부딪친다.

콰과과과과과과!

감히 사람 간의 대결이라 청할 수 없었다.

영웅지, 아니 설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광경이었다.

여섯 개의 잎 중 세 개가 사라지고 폭풍우를 일으키 면서 이상 현상을 만들어 냈다.

“주서천.”

대기의 온도가 곤두박질쳤다가 솟구쳤다.

주변 일대가 얼어붙었다가 녹는 게 몇 차례나 반복됐다.

군중은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했다.

몇몇 내공이 약한 자들은 피를 울컥 토해 내며 무릎을 꿇었다.

고막이 찢어져 귀를 잡고 괴로워하는 자도 있었다.

“여기까지다.”

푸욱!

“커헉!”

마치 꿈을 꾸는 듯 싶었다.

방금 전까지 자줏빛의 폭풍우가 몰아치며 난리를 치더니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오른손은 끝나지 않았다는 듯, 검을 꽉 쥐고 있었으나 정작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서걱!

“이럴…… 수가……”

다리에 힘을 줄 수가 없었다.

몸이 멋대로 뒤로 넘어지면서 오른손과 분리된 걸 볼 수 있었다.

털썩.

“쿨럭, 걱!”

무언가 말해 보려 했으나 목에 구멍이나 무리였다.

설상가상으로 걱정했던 무기력감이 찾아왔다.

수마(睦魔)에 사로잡혀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다.

힘을 내도 겨우 반개하는 것이 고작.

그 이상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

흙처럼 메마른 입술만 겨우 달싹거려 소리를 낸다.

하지만 신음에 가까운 목소리만 흘러나올 뿐이었다.

이미 시야는 안개처럼 희뿌옇게 일그러져서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는 것 같지만 귀가 멀어 뭐라 말하는지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나는……’

노력했다.

어떻게든 막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그러나 결국 이렇게 막을 내렸다.

‘이 정도면…… 되지 않습니까.’

눈을 감으니 익숙한 광경이 보인다.

평생을 동경해 왔던 이들의 등이 보였다.

‘너무…… 힘이 듭니다……’

영웅들의 삶을 동경해 왔다.

그래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 함께 서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언제나 쉬지 않고 달려왔다.

가끔씩 유혹에 져서 넘어갈 뻔한 적도있었다.

전생에 해보지 못한 미녀와의 풍류도 즐겨 보고 싶었고, 또는 주변에서 떠받들어 주는 걸 즐기고도 싶었다.

그러나 죄다 외면하고 노력해 왔다.

누가 봐도 인정할 정도로 열심히 했다.

달리고, 또 달려서 오늘날까지 왔다.

‘그렇지 않습니까……?’

의식이 저 멀리 끝이 보이지 않는 무저갱 속으로 떨어진다.

주변은 침묵에 잠겼다.

고요로 가득 찼다.

방금 전의 누군가의 비명도 없던 것처럼 사라졌다.

창공을 선회하던 매도 어딘가에 앉아 바라봤다.

세로로 갈라진 노란 눈동자에 누군가 비쳐졌다.

“뭐냐.”

암천회주는 이해하지 못했다.

“도대체…… 뭐하는 놈이냐.”

그 앞에는 만신창이가 된 청년이 서 있었다.

오른손은 잘렸다.

옆구리는 뜯겨져나갔다.

목에는 구멍이 났다.

사람인지 시체인지 구별이 불가능했다.

얼굴은 흙투성이와 굳은 핏자국으로 가득했다.

“대답해라.”

휘이잉.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렸다.

보기 좋던 흑발은 마치 갑자기 생명을 잃는 것처럼, 급속도로 노화를 겪으면서 새하얗게 질렸다.

“화산파.”

청년은 손을 뻗어 바닥에 굴러다니는 검을 당겨와 잡았다.

“주서천.”

목에 난 구멍에 살이 채워지며 구멍이 막혔다.

오른손과 옆구리도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갔다.

‘회귀.’

구희의 신단으로 해결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무리 자연 치유력을 높은 수준으로 상승시킨다 할지라도 채 하루도 되지 않아 눈 깜짝할 사이에 원래대로 되돌리는 건 심상구현이 아닌 이상 불가능하다.

“……”

부작용을 무시한 채 연이은 사용에 혹시나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닐지 마음에 걸렸다.

혹시 하는 마음으로 주먹을 천천히 쥐락펴락하며 확인해 봤지만, 아무런 문제는 없었다.

뇌와 심장, 배꼽 아래 부근의 문이 열렸다.

상중하로 이루어진 단전에서부터 생명의 기운이 넘쳤다.

대자연에서부터 쌓아 올린 것도 영약의 것도 아니었다.

사람, 혹은 생명체 본연이 지니고 있던 기였다.

암천회주는 주서천의 변한 분위기를 눈치챘다.

약 일 년 전, 무림맹의 재야고수에 의해 접해 본 적 있었다.

“선천진기.”

주서천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정백에게 배웠나?”

생명의 근원, 선천진기는 다룰 수 있다고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현경의 절대고수도 마찬가지였다.

하나 권동제 정백은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의지만으로 사용했다.

암천회주도 당시 궁금해 물어봤으나 끝내 답변은 듣지 못하고 죽여 버렸다.

“그럴 리가.”

주서천이 진심으로 기분 나쁜 듯 눈살을 찌푸렸다.

“그 정신 나간 노인에게 배울 건 조금도 없다.”

주서천은 정백의 사후를 듣고도 부정적인 감정을 씻어 낼 수 없었다.

후에 희생했다고 한들, 결국 이상이니 뭐니 하는 아집 탓에 일어나지 않아도 될 비극이 일어났다.

“북해에 다녀오면서 몇 가지 배웠다.”

냉악비는 주서천에게 도움을 대가로 빙궁의 비고를 열람할 수 있게 해 줬다.

그리고 그중에서 세 가지, 아니 네 가지 무공 비급을 건네주기로 약조했다.

첫째는 강격권, 둘째는 중소보.

세번째는 공진장이요 최후는 진원번(眞元播)이라는 무공이었다.

‘진원, 곧 사람 몸의 원기를 불태우는 무공.’

북해인은 역사상 대대로 추위 속에서 고통받았다.

방한을 위해 온갖 수단을 강구했고 그중 하나가 원기를 불살라 체온과 기력을 되찾는 것이었다.

그러나 목적을 생각하면 진원번은 실패작이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선천진기, 진원을 소모하는 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머리카락의 색도 그 증거라는 듯 새하얗게 질렸다.

“주서천. 놀랍구나. 정말로 놀라워.”

암천회주는 순수한 감탄을 금치 못했다.

평생을 살아오면서 이렇게까지 놀란 적은 또 처음이었다.

“서른, 아니 스물다섯 살도 되지 않은 자가 심상을 정립하고 구현했다. 이보다 더한 역천이 어디 있나.”

대단하다 놀랍다 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주서천만큼이나 또 역천에 어울리는 사람이 없다 할 정도다.

거짓이 아닌 진심이었다.

사람이 정의한 무공의 상식, 그리고 세상의 법칙을 깨끗이 무시했다.

“주서천, 무슨 삶을 살아왔나?”

암천회주는 주서천의 목, 옆구리, 팔을 훑어봤다.

“또 무엇을 잃었나?”

“……”

“무엇을 후회하기에 돌아[回歸]가려는 거지?”

발 근처에 널려 있어야 할 살점이 보이지 않았다.

새살이 돋아 치유된 게 아니다.

마치 과거로 돌아간 것처럼 잘린 부위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주서천, 그동안 네놈에게 여러 일이 있었으나 소중한 사람 따위는 누구도 잃지 않지 않았나.”

암천회주는 의문이 깃든 표정을 지었다.

“아비처럼 여기는 유정목부터 시작해 소중하다고 여길 만한 이들은 그 무엇도 잃지 않았다. 아니면, 얼굴도 생각나지 않는 부모가 그리 보고 싶었나?”

암천회주는 주서천이 무엇을 되돌리려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조금도 이해할 수 없었다.

직접 낳아 준 부모가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기억나 봤자 사오 년이다.

그것만으론 부족했다.

전대 장문인인 우일문이나 혹은 무림맹주 남궁위무도 사유로는 부족하다.

설사 가깝게 지났다 한들, 인생을 송두리째 가져갔을 정도로는 애매했다.

“도대체 무엇을 잃었느냐?”

“모두일세.”

주서천이 답했다.

“이 늙은이는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 부모님도, 피는 이어지지 않았으나 또 한 사람의 부모님이신 사부님도, 그 외에도 곁에 있는 사람들 전부를 잃었다네, 회주여.”

기분 탓이었을까.

주서천이 노인처럼 느껴졌다.

“아니, 어쩌면 잃은 것이 아닐 수도 있네.

원래부터 없었던 것들 천지인데 무엇을 잃겠는가.

신념을 태우기 위한 열의도 또 그에 걸맞은 용맹함도 없었다네.

그래서 후회했고, 그래서 되돌리고 싶었지.”

“너는……”

암천회주가 눈을 크게 떴다.

“누구냐?”

방금 전의 질문과는 달랐다.

마치, 정말로 주서천이 맞냐는 물음 같았다.

“이름을 댈 만큼 그리 대단한 사람은 아닐세, 천하제일인.”

주서천은 손에 쥔 검에 힘을 천천히 주었다.

“이 늙은이는 검신도 아니요, 영웅은 더더욱 아닐세.”

하얗게 질린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렸다.

“그저,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

검을 들어 암천회주를 겨눈다.

“과거의 일을 후회하고.”

무릎을 살짝 굽히고……

“누군가의 등을 좇아가며”

목청껏 소리친다.

“노력하는 사람일 뿐이지!”

콰직!

밟고 있는 곳이 움푹 주저앉았다.

어찌나 힘을 많이 주었는지 구덩이의 깊이가 장난이 아니었다.

“간다, 암천회주!”

쾅!

주서천이 몸을 날렸다.

“전력으로 와라!”

몸이 날아갈 것처럼 가볍다.

천근만근처럼 느껴지던 눈꺼풀도 올라간 채 내려올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 순간, 주서천의 육체 능력은 선천진기의 도움을 받아 경험해 보지 못한 경계에 진입했다.

“우오오오옷!”

정선을 차리고 보니 암천회주가 앞에 보였다.

속도도 힘도 인지할 수가 없어 곤혹스러웠지만, 신경을 끄기로 했다.

선천진기, 그리고 몸이 이끄는 대로 두었다.

들이쉬었던 숨을 토해 내면서 터지는 외침.

시야를 가득 메우는 자줏빛 섬광에서부터 검이 쏘아졌다.

“자하!”

암천회주는 주서천을 보고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겁먹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반격하기 위해서였다.

‘어림없다.’

입가에 차가운 웃음이 번졌다.

‘설사 외경을 좇아왔을지는 몰라도, 적응하는 데 시간이 그리 짧게 걸릴 리 없지. 무엇보다, 그따위 뻔히 보이는 공격에 누가 순순히 걸려들 것 같으냐.’

자하개벽이 최초의 일격으로 나쁜 건 아니다.

되려 아직 익숙지 않은 몸이란 걸 생각하면 찌르기처럼 단조로운 걸 선택하는 편이 올바른 선택이었다.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검초를 피한다.

그 뒤, 나 역시 역천으로 외경에 진입해 뒤를 노려……’

순간, 암천회주는 생각을 잇지 못했다.

부웅.

무엇이든 쪼갤 것처럼 엄청난 기세를 보이던 일검이, 마치 줄이 끊어진 인형처럼 아래로 떨어졌다.

방금 전에 실었던 힘은 온데간데 없었다.

투척한 것도 아니었다.

검 자루에서 손을 놓았다.

그 대신 주서천이 품 안으로 파고드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타앗.

우로 힘차게 한 발 내디딘다.

허리를 반쯤 틀자 요근(腰筋)에서 당겨오는 느낌이 기분 좋게 났다.

퍼런 핏줄이 툭 튀어나왔다.

힘줄도 돋아났다.

온 감각이 집중되어 주변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도 없었다.

한 가지만을 위해서 신경을 집중했다.

근육이 풀리고 느슨해지는 정도는 없었다.

몸을 움츠리듯, 오그라들며 힘을 꽉 주었다.

구부러진 다섯 손가락.

네 손가락 위에 엄지를 감싸 안은 주먹이 강맹함을 머금은 채 날아갔다.

“이런, 젠……”

콰아아아아아앙!

기격의 극의, 강격권이 암천회주에게 작렬했다.

주먹이 부딪친 순간, 마치 천지가 무너진 것처럼 소리가 터졌다.

최초의 격돌 지점에서부터 충격의 파도가 엄습한다.

명치를 시작으로 심장, 그리고 그 혈관과 이어진 전신으로 퍼져 몇 차례씩이나 강하게 후려쳤다.

“쿨럭!”

암천회주가 충격에 못 이겨 피를 토해 냈다.

내부에서부터 파열된 내장 조각이 피와 섞여 튀어나왔다.

상식대로 생각하면 이대로 끝났다고 생각하는 것이 알맞다.

그러나 주서천은 조금도 안심하지 않았다.

숨 따위 돌릴 틈도 없다.

생각의 여유도 없다.

다음 일격을 위해서 움직였다.

좌권은 암천회주의 흉부에 닿은 채로다.

육체를 지탱하고 있는 두 다리도 철심처럼 지면에 박혀 있었다.

꽈악.

요근이 잔뜩 꼬았던 걸레를 펴는 것처럼 돌아간다.

틀었던 허리가 일자로 곧게 펴진다.

동시에 뒤로 힘껏 내뺐던 오른손바닥이 회주의 가슴을 후려쳤다.

‘공진장!’

쿠아아앙!

귀진의 장법이 중원에서 또다시 펼쳐졌다.

태극검과는 부류가 다른 유의 묘리가 암천회주의 신체 내부를 엉망으로 만들어 냈다.

손바닥의 접촉면에서부터 시작된 흔들림은 몸 구석구석 퍼졌다가 고유의 흐름을 망가뜨렸다.

“감히……!”

암천회주의 눈과 목소리는 진노로 떨렸다.

설마하니 이렇게 어이없이 공격을 허용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암천회주가 방심한 게 아니다.

주서천의 별호는 검의 신.

그리고 그 말이 맞다는 듯이 여태껏 쭉 검공만 펼쳤다.

무엇보다 종이 한두 장 차이로 승부가 나는 절대고수의 대결에서 주 무공을 포기할 거라 누가 생각했겠냐.

“주, 서, 천!”

암천회주가 포효했다.

쿠웅!

분노에 힘을 싣고 발을 구르자 땅이 뒤집어졌다.

파스슷!

돌 조각이 부서진 채로 비산했다.

검처럼 뾰족하게 쪼개진 조각 중 하나가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주서천은 암천회주가 낸 충격파를 이기지 못하고 아쉬워하면서 뒤로 물러나야만 했다.

강격권이나 공진장을 동원하여 직격한 건 좋았으나.

중도만공 특성상 본연의 위력을 전부 내지 못했다.

끝내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으나 흘려보냈다.

지금 그런 것 따윈 신경쓸 게 안 된다.

“오냐!”

퓻!

검은자위 너머로 감춰져 있던 실핏줄이 터졌다.

“내 네놈을 무슨 일이 있더라도 죽여 주겠다!”

암천회주가 여태껏 시간을 잘게 분배하여 역천을 사용한 건, 위력만큼이나 부담감도 극심해서다.

그게 아니었더라면 이동이나 회피외에도 치명적인 일격 때뿐만 아니라 상시 발동하고 있었을 것이다.

“우오오오오오!”

누군가의 외침인지는 모른다.

누군가의 목소리인지도 알 수 없었다.

두 절대고수는 서로를 향해서 동시에 몸을 날렸다.

주서천은 아무렇지 않게 놓았던 검을 허공섭물로 끌어온 뒤, 암천회주에게 뒤지지 않을 속도로 달렸다.

땅바닥을 짓밟는 소리도, 바람을 가르는 소리도 인간이 인지할 수 없는 공간에는 닿지 못했다.

두 눈을 감았다가 뜨면 사라졌다가 나타나 있다.

빠르게 움직이는 게 아니라 공간을 넘는 것 같았다.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뒤에서 앞으로.

사이와 사이의 중간 지점에 다다른다.

고대하던 접촉의 순간, 암천회주가 안개처럼 흩어지더니만 주서천의 등 뒤에서부터 불현듯 나타났다.

“어디를 보고 있느냐.”

암천회주가 잔혹하게 웃었다.

정도의 영웅은 등 뒤를 잡힌 것도 모른 채, 등을 훤히 보여 주며 바보같이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천지의 법칙을 위반한 힘을 얻는다 한들, 결국 닿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도 없다!”

쐐애액!

몸을 돌리기에는 이미 늦었다.

아니, 어쩌면 등을 잡힌 것조차 인식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입가에 맺힌 웃음이 더욱 진해졌다.

앞으로 보일 광경을 상상하니 희열이 넘쳐 났다.

그러나 그 희열이 경악과 불신으로 일그러지는 건 얼마 걸리지 않았다.

째애앵!

쇠와 쇠가 부딪쳤다.

검극과 검극이 부딪쳤다.

충격량에 의해 검이 흔들렸다.

차가움과 뜨거움이 동시에 존재하는 모순의 감각이 손에서부터 전해졌다.

척추를 슥 훑고 지나가는 오한, 뇌의 자극을 느낀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파악됐다.

“도대체 무슨 일이……”

그것은,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었다.

분명 등 뒤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장면이 전환된 것처럼 정면으로 주서천의 모습이 나타났다.

주서천이 몸을 돌려 반격한 게 아니었다.

암천회주가 주서천과 마주 봤다.

“닿지 않는다면, 닿을 수 있도록 만들면 된다.”

주서천이 차갑게 웃으면서 시선을 내렸다.

암천회주는 무심코 눈짓을 따라갔다가 대경했다.

최초에는 세상이 과거로 회귀한 줄 알았다.

그러나 무언가가 이상했다.

지금 서 있는 곳은 방금 전, 분노의 외침을 토해 내면서 발을 굴러 부서뜨렸던 땅이었다.

“네가 법칙을 거슬렀기에 나도 거슬러 보았다.”

주서천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심상이 선천진기로 새롭게 확장됐다.

본인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로.

암천회주를 몸을 날리기 전으로 되돌렸다.

“이 회 차에 온 것을 환영한다, 암천회주.”

암천회주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시간을…… 되돌렸다고?”

불가능하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화경이나 현경, 아니 무공이 어떻다 하는 수준이 아니다.

원인과 결과 중 후자를 없애서 되돌렸다.

‘지금이다!’

암천회주의 넋 나간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도 마지막일지 모른다.

모처럼 얻은 기회를 날릴 수는 없었다.

주서천은 손목을 튕겨 올리며 검을 움직였다.

스윽.

화산의 검은 입 맞추고 있던 검극을 빗기듯이 떨어졌다가, 몸을 틀어 다시 위로 솟구쳤다.

째애앵!

암천회주는 두개골을 울리는 금속음에 정신을 번쩍 차렸다.

주서천은 저항감을 느끼고 혀를 내둘렀다.

정면으로는 빙백신장, 강격권, 공진장을 정통으로 맞았다.

등 역시 검상이 길게 남았다.

피를 토한 걸 보면 상처를 입은 건 분명한데 움직임에 변화가 없었다.

넋이 나간 상황인데도 검이 부딪치자마자 번개같이 반응하면서 힘을 준 걸 느끼고 기가 질렸다.

근력과 속력, 내구력이나 치유력 등 하나도 빠짐없이 죄다 인간의 수준을 아득히 초월한 능력이었다.

‘만중검!’

암천의 검이 아직 올라가 있을 때를 노렸다.

양손으로 검을 꽉 쥔 뒤, 살아온 인생의 세월만큼의 무게감을 더해 한 걸음을 내디뎠다.

검의 무게가 몸을 짓눌러 부술 것 같았지만, 철포삼으로 단련된 근육과 뼈가 아슬아슬하게 지탱했다.

“하아아아아앗!”

목청껏 소리를 토해 내며 중검을 힘껏 내리친다.

귀를 스쳐 지나가는 팔, 곧게 세운 척추가 구부러지면서 접힌 견갑골도 펴진다.

온몸이 비명을 질렀다.

부웅.

검이 닿은 순간, 대자연을 아우르는 진기가 부딪치면서 벽력탄을 터뜨린 것처럼 폭발을 일으켰다.

공간과 공간 사이가 일렁이더니만 륜처럼 둥근 원형의 파장이 뿜어져 주변 일대를 슥 훑었다.

콰아앙!

그다음으로 중검의 충격량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암천회주의 두 다리는 땅에 삼켜진 것처럼 발목까지 파였다.

꼿꼿이 버텨 내던 무릎도 확 구부려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