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五章 (248/254)

우르릉!

우레가 치는 것처럼 굉음이 터졌다.

손에 쥔 검을 앞으로 쭉 뻗는다.

화려함은 없지만 무형의 강기가 검을 둘러싼 채 굳건함을 보이면서 암천회주의 목젖을 노리고 들어섰다.

정찰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일 초부터 전력을 담았다.

아랫배가 아파 올 정도로 힘을 줬다.

대기가 찌르르 울릴 정도의 위력을 담은 검.

혼신을 담은 찌르기가 암천회주에게 작렬했다.

째애앵!

‘기대도 안 했다.’

주서천이 그럼 그렇지 하고 눈썹을 찡그렸다.

그동안 수많은 적들을 당혹시킨 자하개벽이었으나, 암천회주를 상대로는 허무할 정도로 깔끔히 막혔다.

‘아직!’

오른손을 앞으로 쭉 뻗은 채, 허리를 돌렸다.

근육이 밧줄처럼 꼬이는 게 느껴진다.

기둥이 되어 준 왼발을 축으로 삼아 제자리에서 빙글 돈다.

손에 쥔 애검, 용연이 맞대고 있는 검을 스쳐 지나가면서 원을 그려 내며 측면을 힘껏 후려쳤다.

콰앙!

검과 검을 부딪친 것인데 둔기로 벽을 후려친 것처럼 굉음이 터졌다.

요란한 건 소리만이 아니다.

눈에.보이지 않는 기의 결집체가 격돌한 순간, 충격파를 사방에 쏟아 냈다.

‘아직이다!’

주서천의 손에서 이십사수매화검법이 펼쳐졌다.

좌에서 우로 상에서 하로.

사방팔방으로 검선을 그려 내며 암천회주에게 검격이 쏟아진다.

매향을 물씬 풍기면서 환검과 산검의 조화로 이루어진 검초의 연계는 과거, 전대 장문인 검선이 보았어도 감탄을 금치 못했을 정도로 수준이 높았다.

채채채챙! 챙챙!

암천회주는 동공을 그리 바삐 움직이지 않는데도 주서천의 검을 귀신같이 포착했다.

환검에 속아 넘어가 허상을 칠 때도 있었으나, 그럴 때마다 더 빨리 움직여 실체를 쳐냈다.

이윽고 몇백에 이르는 빛줄기가 두 사람 사이에서 빗발처럼 쏟아지며 부딪치고 불꽃을 튀겼다.

채앵!

찰나의 순간, 수백에 이르는 검격을 교환한 두 절대고수는 서로를 힘껏 밀쳐내면서 뒤로 쭉 밀려났다.

“정도, 그것도 도가의 내공심법이라 하면 인내함을 중시할 터인데 어째 네놈은 성질머리가 급하구나.”

암천회주가 검을 늘어뜨린 채 말했다.

“암천회주…… 아니, 도찰원 경력 손영관.”

주서천은 암천회주의 본명을 불렀다.

“어째서냐.”

“……?”

“어찌하여 이런 짓을 저지르는 거지?”

암천회의 옛 구성원이 전원 떠나고 손영관이 남은 건 이해할 수 있었다.

누군가는 끝까지 남아서 관리 및 지원을 해 줘야 했고, 만약을 위해 들키지 않도록 존재를 은폐해야 했다.

그러나 손영관은 은폐는커녕 암천회를 새롭게 재편성하고 무림 정복을 꾀했다.

그것이 의문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로 황궁의 비밀 결사 단체에서 무림 단체로 변한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네가 묻는 것이 무림의 정복인가?”

“그래.”

“전에 무림맹주에게도 들었을 때도 생각했지만, 어떠한 부류이건 간에 사람이란 참으로 무언가 의미를 부여하고 집착하는 걸 좋아하는 족속들이로구나.”

암천회주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주서천, 아니 무림이여. 그리 깊게 생각하지 마라.”

암천회주의 입가에 알 수 없는 미소가 번졌다.

“복수라거나 혹은 혁명이라거나 무언가 특별한 사연이라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면 크나큰 착각이다.”

“……”

“진의 정도는 아니나 목적이 없었던 건 아니다.

나 역시 최초에는 암천회의 구성원으로서, 황제의 지긋지긋한 시선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친 것에 불과했다.

도찰원이 황제의 직속이라 하여도 타 기관에 비해 권세가 높다 보니 감시당할 수밖에 없었지.”

도찰원의 경력, 관리 손영관은 암천회가 설립될 무렵 제안을 받고 그 구성원으로 들어선다.

“이후 본 회의 연줄로 황궁 무고에서 무공 비급을 접하게 되면서, 무공에 재능이 있다는 걸 깨닫고 나름 즐기면서 학문과 병행하여 수련의 나날을 보내기도 하였다.”

그 재능이란 건 단순히 천재라는 수준이 아니었다.

물 만난 물고기, 아니 그 이상이었다.

마치 무공을 위해 태어난 것처럼 단숨에 절대지경에 올랐다.

하나를 알면 열을 알고, 열을 알게 되면 곧 백을 깨우쳤다.

아무리 무공 비급이 있다 할지라도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니며 실전을 그리 많이 겪은 것도 아닌데 괴물같이 성장했다.

“그리고 어느덧 시간이 흘러 관료들이 모습을 감추었을 때, 손영관이라는 관리와 암천회의 잔재만이 남았다.

그러나 그 남은 것이 생각보다 커다랬지.”

암천회는 중앙 정부, 군부, 동해와 남해의 왜구에 아우르는 연을 구축했다.

그 외에도 황궁 무고의 각종 비급, 온갖 영약이나 무기 등과 고도로 훈련된 사병들까지 양성했다.

관료들이야 새로운 삶을 위한 과정이나 수단이었으나 그 크기가 보통이 아니었다.

“검수에게 장인이 심혈을 기울여 벼린 검을 내주면 어찌하겠느냐. 논할 가치조차 없다.”

검수라면 검을 휘두른다.

등산가라면 산에 오른다.

무림인이라면 무공을 사용한다.

너무나도 간단하며 당연한 이치였다.

“무림이여, 오해하지 말거라. 무림의 위선이니 차별이니 개혁이 필요하다는 등의 말은 듣기 좋은 명분이요 정복의 수단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암천회주는 무감정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계속했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사회에 체념하고 분노하여 역천이 됐다고 생각하면 크나큰 착각이다.

개인 혹은 집단적 사상의 차이로 인한 이념의 대립도 아니다.

또는 신이나 구원자가 된 것처럼 착각 속에 빠져 정복하려던 것도 아니다.”

암천회주는 지성인이다.

도교나 불교, 유교 등 여러 학문에 대해 논한다면 밤을 지새워 가면서 얼마든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러나 알고 있고 머리로 이해하고 있다고 한들 따르거나 혹은 수긍하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몇 번이나 말하지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라.

손에 들어온 검을 휘두른다. 그 정도의 행위이다.”

“그 정도의 행위…… 라고?”

머리끝까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아니, 화를 넘어서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이…… 미친 새끼!”

주서천이 기어코 욕설을 입에 담았다.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아느냐!”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혹시나 마성에 의해 윤리적인 사고관이 장애를 일으킨 것은 아니니 걱정할 것 없다.”

마도의 무공, 일명 마공의 경우는 사람을 변질시킨다.

힘에 의한 타락같은 비유가 아니었다.

뇌에 손상을 가하고, 심성을 악하게 물들인다.

그들은 잘못을 저지르면서도 무엇이 잘못됐는지 모른다.

암천회주는 달랐다.

“대의를 위해 희생했다는 등의 어쭙잖도 않은 말을 떠들어 합리화할 생각은 조금도 없느니라.

도리어 그따위 착각을 하는 자가 있다면 그거야말로 본좌를 향한 모욕이다.”

암천의 주인이 앞으로 걸었다.

한걸음, 또 한 걸음 내딛자 주변이 흔들렸다.

“무림, 아니 주서천이여.”

파스슷!

손가락만 한 돌멩이가 두둥실 떠오른다.

그 옆의 흙더미들도 나란히 오르며 머리 위를 지나쳤다.

새카맣게 물든 흰자위에서부터는 불길한 걸 넘어 사악하게 느껴질 정도의 기운이 느껴졌다.

“대의가 없다 한들 어떠한가. 어차피, 후세의 사람들이 멋대로 의미를 부여하며 재해석할 텐데 말이다.”

그 이름은 악(惡)이라 불러도 부족하지 않았다.

“전쟁이란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일어나는 법.”

암천회주가 심상을 정립한 것이 아니다.

마치, 심상에서부터 태어난 존재 같았다.

“딱히 신경 쓸 일이 아니다.”

“이!”

쿵!

주서천이 서 있던 자리가 움푹 주저앉았다.

“개새끼가아아아아아!”

공허한 심연을 보자마자 분노가 화산처럼 폭발했다.

감정의 파도가 몰아치면서 소용돌이치고, 용암처럼 들끓었다가 이내 사방으로 퍼지며 뇌를 덮었다.

‘고작!’

용암을 밟은 것처럼 발바닥이 뜨거웠다.

혈액의 압력이 급속도로 높아지면서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고작!”

누군가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죽었다.

누군가는 죄악을 뒤집어쓰면서 죽었다.

누군가는 잘못된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 죽었다.

누군가는 변하지 않는 현실에 절망하며 죽었다.

누군가는 남을 위해 희생하여 죽었다.

정사마 할 것도 없이 무림인, 나아가 아무런 연고도 없는 자들까지 영문도 모른 채 죽어 갔다.

“고작 그 때문에 그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고?”

우르르!

벽력과 같은 고함.

위이잉!

옅은 자줏빛의 기류가 소용돌이처럼 회전하면서 눈앞에 검로를 만들어 냈다.

곧 이내 기류에서부터 잔재가 흘러나와 꽃잎의 형체로 변해 하늘 가득 퍼졌다.

그 밑의 검도 부챗살처럼 퍼져 나뉘어졌다.

수십, 아니 세 자릿수를 넘어선 검이 나무줄기처럼 뻗어 나가더니 수직으로 솟구쳤다가 암천회주의 머리 아래로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콰과과과!

하나하나가 필사의 일격이었다.

검기도 아닌 강기의 세례가 폭포가 되어 암천회주를 후려쳤다.

쿠구구!

천지가 흔들리고, 또 흔들렸다.

운석이 떨어진 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의 진동이었다.

대지를 후려친 수백에 이르는 검은 다시 한번 공중으로 떠올랐다가, 소나기처럼 검편을 쏘아 냈다.

자하개벽에서 화우선형, 그리고 적하매장에서 교탈조화.

그리고 최후의 무궁육허를 보이려 할 때였다.

주서천의 얼굴이 걸레짝처럼 일그러졌다.

‘언제?’

정면의 검편은 비가 되어 후두둑 떨어졌다.

그러나 그 아래에는 아무도 없었다.

흔적도 없이 갈기갈기 찢긴 것이 아니었다.

목표, 암천회주가 사라졌다가 바로 옆에서 나타났다.

부웅.

정지된 시간 속, 암천의 검만이 움직였다.

회피하거나 막으려 했지만 너무 늦었다.

역천으로 인한 신체 능력은 상식, 아니 법칙조차 비틀었다.

미래라도 알지 못한다면 피할 수 없는 속도였다.

스으윽.

목이 서늘하다.

등골이 오싹했다.

동공이 떨려 왔다.

머리가 차갑게 굳었다.

가슴을 죄여 왔다.

위기감을 인지하기도 전이라 머리도 잘 굴러가지 않았다.

목을 노리는 무서울 정도의 정확함.

이대로 죽나 하는 생각이 들려던 순간, 극한의 빙한기가 엄습했다.

쿠아아앙!

암천회주는 눈살을 찌푸렸다.

목을 베기 직전, 아래에서부터 전해져 온 충격 탓에 검이 직각으로 꺾였다.

“냉악비!”

주서천이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무력과 지력을 겸비한 북해의 지도자, 냉악비는 왼손으로 오른 손등을 덮은 채 검을 힘껏 밀어 올렸다.

‘예측했다!’

주서천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냉악비가 암천회주를 쫓아온 게 아니다.

검격의 포화를 봤을 때 그라면 피할 거라 생각하고 움직였다.

추측은 운 좋게 들어맞아 주서천을 구했다.

“끝이다!”

냉악비만이 아니다.

운광의 예견 역시 적중했다.

무림맹주도, 상천도 엿 바꿔 얻은 게 아니다.

운광은 전 세대에서 정백, 남궁위무, 제갈중호, 그리고 혜만 대사와 함께 온갖 위기를 경험했다.

앞의 수를 내다봤을 뿐만 아니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이화접목까지 배제했다.

유의 묘리를 넘어서 음과 양, 태극의 이치를 실은 무림맹주의 검이 암천의 등을 꿰뚫으려는 순간.

“뭔……!”

암천회주가 다시 인간의 인식을 넘어서 움직였다.

검을 꽉 쥔 손가락에 힘을 푼다.

상체를 트는 동시에 좌측으로 한 걸음 이동해 오른팔을 살짝 벌렸다.

푸슈슈슛!

뼈를 위해 살을 내준다.

심상구현, 이화접목은 아니나 무형검강은 펼쳤다.

아무리 괴물이라 할지라도 맨몸으로 맞고도 무사할 수는 없었다.

겨드랑이를 스쳐 지나가는 것만으로 옷자락이 사라지면서 살과 근육을 잘라 냈다.

“후웁!”

암천회주 역시 전력을 다한다.

얼굴에 여유는 없다.

적이 적인 만큼 그 역시 진지한 태도로 임했다.

겨드랑이의 고통 따위는 무시한다.

검이 다 지나가고 운광의 팔이 들어올 무렵, 겨드랑이로 잡았다.

“잘 쓰마.”

검수가 검을 버리는 건 곧 목숨을 버리는 것과 같다.

한데 암천회주는 대범하게도 아무렇지 않게 손에 쥐고 있었던 검을 놓았고, 이를 대신하겠다는 듯 좌수를 번개같이 출수해 운광의 손목을 낚아채 꺾었다.

우드드득!

“안 돼!”

운광은 검을 놓치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힘을 주었으나, 끝내 괴력에 이기지 못하고 회주에게 뺏겼다.

“크하압!”

암천회주가 목청껏 소리치며 진각을 굴렀다.

디디지 않은 발로 지면을 구른 순간, 굉음과 함께 별똥별이 떨어진 것처럼 반경 십 장이 움푹 파였다.

네 사람이나 서로 붙어 있는 탓에 떨쳐내고 조금이라도 정확하고 빠르게 검을 휘두르기 위해서였다.

파바바밧!

섬광, 아니 암광이 번쩍였다.

불길하고 시커먼 색으로 물들게 된 검이 선을 그려 내며 무언가를 잘랐다.

서걱!

“……!”

주서천의 오른쪽 어껫죽지가 사라졌다.

왼쪽 손목도 뎅겅 잘려 나가며 살에 둘러싸인 뼈가 보였다.

‘됐다.’

자기도 모르게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번졌다.

검수가 한 손도 아니고 두 손 다 잃었다.

더 이상 상천, 아니 무림인도 뭣도 아니다.

암천회주는 시선만이 아니라 의식에서조차 주서천을 제외하고 운광과 냉악비에게 몸을 돌렸다.

“……?”

정면으로 다시 바라봤으나 의문이 들었다.

운광과 냉악비가 어딘가를 보고 있었다.

‘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눈속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불안감이 느껴졌다.

‘설마!’

머리가 꺾이는 것처럼 홱 돌아갔다.

시야 역시 확 바뀐다.

그곳엔 희번덕 눈을 빛내며 멀쩡히 두 손으로 검을 쥔 채 있는 힘껏 휘두르는 주서천이 있었다.

‘두 번의 기회는 없다!’

심상구현, 회귀의 경우 즉사만 회피한다면 육체를 과거로 되돌릴 수 있는 힘을 지녔다.

문제는 하루에 한 번, 그것도 사용 후에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피곤함 탓에 정신을 잃게 된다.

승부가 난 게 아니라면 쓰고 싶지 않았지만, 한 팔도 아니고 두 팔씩이나 잘려 나가 어쩔 수 없었다.

주서천은 팔을 잃자마자 이왕 이렇게 된 것, 육체의 시간을 되돌려 암천회주의 허를 찌르기로 했다.

‘벤다!’

암천회주도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눈을 크게 떴다.

누가 절대고수 아니랄까 봐 감정과는 별개로 신체가 반응하나 싶었으나 이번만큼은 달랐다.

조금 느렸다.

주서천은 검병을 둘러싼 손에 힘을 꽉 쥐었다.

굳은살이 짓눌리는 걸 느끼며 공력을 쏟아 냈다.

손등 위로 힘줄이 돋아났다.

그 위를 둘러싼 근육도 순식간에 울퉁불퉁해졌다.

‘해남일검류!’

방금 전만 해도 피웠던 꽃은 조금도 볼 수 없었다.

물씬 풍겨 오던 매향 역시 말끔히 사라졌다.

숨을 쉬는 것도 잊은 채 등만을 노려본다.

근육의 움직임이나 진기의 순환조차 잊어버렸다.

대기가 둘로 갈라지면서 검이 아래로 내려왔다.

공기 찢어지는 소리 역시 사라진 지 오래였다.

위력만 보자면 단연 자하검결보다 한참 아래다.

그러나 위력적이라 해도 맞지 않으면 무용지물.

그래서 속도와 명중률을 택했다.

퓨슛.

‘맞았다!’

최종적으로 그 판단은 옳았다.

암천회주는 머리를 돌리는 데는 성공했으나 그 외에는 실패했다.

등에 검을 허용해 혈선을 남겼다.

드디어 성공했다.

무엇을 해도 닿지 못했던 괴물에게 치명상을 입혔다는 생각에 희열을 느꼈다.

‘그리고……’

이로 인해 머릿속으로 한 가지 확신이 들었다.

“이때다!”

주서천이 외쳤다.

“하아앗!”

냉악비도 전력을 쏟아 냈다.

한 손이 아닌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아 앞으로 힘껏 내민다.

손이 새하얗게 빛나며 극한지기를 뿜어냈다.

손에 난 구멍이 저릿하고 아파 왔다.

기경팔맥도 한계가 온 것인지 너덜너덜했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끝이다!’

콰아앙!

냉악비의 쌍장이 암천회주의 흉부에 부딪쳤다.

손바닥에 닿은 순간, 극한에 이르는 빙한기가 피부 위를 얼음으로 집어삼키는 동시에 충격량을 만들었다.

연령에 맞지 않게 단련된 근육이 파도처럼 출렁였다.

북해의 대자연에서부터 쌓아 온 공력이 폭포처럼 굵은 줄기를 대포처럼 쏘아내 그 내부에까지 충격을 고스란히 전한다.

발경(發動), 아니 장경(掌動)이었다.

그 위력이 어찌나 대단했던지 반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무릎은 구부려지고 구멍을 막은 얼음이 깨졌다.

머리카락도 바람이 불지도 않았는데 한 차례 크게 흔들렸다가 잠잠해졌다.

“후우……”

암천회주가 마음에 안 드는 듯 눈썹을 구부리더니……

굳게 다문 입에서 주르륵 피를 흘렸다.

“됐어!”

운광은 자신도 모르게 체통도 잊은 채 주먹을 불끈 쥐며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생각대로군.”

주서천은 웃음을 머금은 채로 말했다.

“암천회주, 또 하나 묻겠다.

혹시, 그 ‘역천’이라는 것도 무한정인 게 아니지 않나?”

주서천도 무곡에게서 역천에 대해서 들었다.

‘역천에 대해서 들었을 땐, 솔직히 절망했다.’

경지 간에는 한 단계라도 실력의 차이가 크다.

화경이나 현경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신선의 경지, 아니 외경이란 걸 들었을 때는 절망했다.

말 그대로 더 이상 인간의 수준이 아니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무언가가 이상하다.’

주서천은 눈을 가늘게 뜬 채 등을 바라봤다.

“외경이란 곧 신격(神格). 정말로 그러한 경지에 있다면, 설사 적이 현경이라 할지라도 이리 고전하거나 공격을 허용할 리 없다.”

주서천이 냉악비가 못다한 추측을 대신했다.

“추론하여 도출할 수 있는 건……”

“역천으로 외경에 오르는 건 일시적이다.”

냉악비가 다음 말을 이으며 확신했다.

정답이었다.

몇 개월 전, 암천회주가 무곡을 보고도 경지를 가늠할 수 없었던 이유였다.

외경인데도 인간으로서의 육체를 버리지 못하거나 선계, 혹은 고차원에 오르지 못한 건 간단했다.

세계의 순리에 어긋난 힘인 동시에 완벽하지 못해서였다.

만약 무한정하다면 심상을 일일이 구현화하면서 보여 줄 필요 없었다.

진작 외경에 고정됐어야 했다.

암천회주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입안을 가득 메운 피를 꿀꺽 삼키곤 입을 열어 크게 웃었다.

“하하하!”

웃음소리는 밝았다.

부정적인 감정은 조금도 없었다.

“그 말대로다.”

파스스슷!

주서천이 깜짝 놀라 발아래를 내려다봤다.

아까 전부터 보였던 시커먼 줄기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런데, 그게 어쨌다는 거지?”

그 기세는 줄어들기는커녕 늘어나더니만 악마의 혀처럼 넘실거리거나 춤을 추는 것처럼 요동쳤다.

암천회주는 역천의 실체가 밝혀졌는데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를 하는 게 아니었다.

정말로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

냉악비가 다급히 물러나려 했으나 실패했다.

암천회주는 냉악비의 고사리 같은 손목을 잡았다.

우드드득!

“아아악!”

살과 근육이 짓눌린다.

보호받던 뼈도 압력에 버티지 못했다.

뭉개지는 걸 넘어 바스러졌다.

화경에 오른 뒤 느껴 보지 못한 통증에 비명 소리가 절로 튀어나왔다.

“그걸 안다고 한들, 변하는 것은 없다.”

부웅!

냉악비의 시야가 뒤집혔다.

하늘이 땅이 되고 땅이 하늘이 되면서 몸이 떠오른 걸 깨달았다.

어떻게든 빠져나오려고 기지를 발휘하려 했지만 외경의 괴력을 이기지 못했다.

암천회주는 냉악비를 철퇴처럼 휘둘렀다.

“흡!”

운광이 바람 소리를 내며 팔을 교차해 막았다.

콰아아앙!

곧 정면에서 전해져 온 충격에 숨을 멈춰야 했다.

두 다리로 버티려 했으나 무리였다.

발이 뒤로 밀리기도 전에 떠올랐다.

자세를 다시 잡으려도 무리였다.

머리까지 흔들려 뇌가 웅웅 울렸다.

평형 감각이 말을 듣지 않았다.

팔에 금이 간 게 느껴졌다.

경악과 불신으로 찬 목소리를 미처 내뱉기도 전, 충격을 이기지 못해 뒤로 멀찍이 날아가 처박혔다.

쿠와아앙!

신공의 반열에 드는 자하검결이 예외적일 뿐이지, 해남일검류가 위력이 낮은 건 결코 아니었다.

등 뒤를 길게 베였다.

얕다 깊다는 수준이 아니라 치명상이었다.

그 후론 빙백신장을 정통으로 맞았다.

화경도 아니고 현경의 고수의 전력이었다.

움직이기 전에 말하는 것조차 기적이었다.

“본좌를 얕봤구나.”

개소리다.

주서천은 암천회주를 한 번도 얕보지 않았다.

얕보기는커녕 남들이라면 과한 걱정이라 지적할 정도로 생각을 몇 번, 몇십 번이나 했다.

전생은 물론이요 현생까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 팔과 손.”

심연을 품은 동공에 호기심이 묻어났다.

“십중팔구 심상구현이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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