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 능력, 반응 속도, 판단력.
사상이나 성질이 다른데도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운 합공은 위력적이었다.
“본좌는 더 강하다.”
태극의 이치를 실은 검이 목덜미를 훑었다.
그러나 검광만 번쩍일 뿐 근소한 차이로 베지는 못했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리게 흘러간다.
암천회주 혼자만이 조금 더 빠르게 움직였다.
목을 틀어 운광의 검을 피하고, 왼발을 축으로 삼아 빙글 돌아 검으로 반원을 그려 냈다.
그리고 우측에서부터 좌측으로 곡선형을 그려 낸 검이 손바닥에 부딪친 순간, 폭발이 일어났다.
쿠아앙!
물체와 물체만의 접촉이 아니었다.
눈에 보이진 않으나 몇십 년, 아니 그 이상으로 쌓인 대해와 같은 공력이 부딪치며 굉음을 토해 내고 폭발을 일으켰다.
“크읏!”
“큭!”
누군가의 신음성이 흘러나오고……
“으아아악!”
주변의 영향권에 있던 이들이 비명을 질러 댔다.
빠드득!
순식간에 흙과 자갈투성이인 대지가 얼어붙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연이어 출렁인 기의 파도가 슥 훑고 지나가자 산산조각 나며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 광경이 몹시도 아름다웠으나 한가하게 구경할 틈은 없었다.
자연이 아닌 사람으로 인해 생겨난 폭풍우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뒤로 물러나는 데 바빴다.
“……!”
냉악비 역시 정면에서부터 덮쳐 온 충격의 반동으로 인해 밀려났다.
만약, 직전에 심상구현의 빙결로 얼음의 벽을 만들어 내지 않았더라면 날아갔을지도 모른다.
운광과 무곡은 각자 기지를 발휘해 충격을 최소화했다.
“역천……”
냉악비가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중얼거렸다.
“천변신공(天變神功).”
무곡이 그다음 말을 이었다.
“호오.”
암천회주가 진심으로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알고 있었나?”
“천녀문의 독문무공, 선천검법은 남성이 아닌 여성에게 맞춰진 무공이다.”
무곡이 예의 무표정으로 답하곤 설명에 임했다.
“먼 옛날, 천녀문의 소문주에게 무공을 전수받았으나 남성이었던 응암동 검성은 본연의 위력을 내기 위해 고심했고, 그래서 고안한 것이 바로 천변신공.”
“정답이다.”
암천회주가 차갑게 웃었다.
“어떠한 힘이나 성질이건 상관없다.
설사 법칙이라 할지라도 장악하여 강제적으로 뒤트는 것.
인과(因果)조차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바꾼다.
그야말로 역천의 무공이지.”
암천회주를 단어로 대신한다면 역천보다 걸맞는 것이 없었다.
내공 심법이란 곧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학문의 결정체다.
심상에 영향을 주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무엇보다 그의 목적 또한 비슷하다.
무림이라는 이름의 하늘과 순리를 부수고 정복하지 않았나.
“두 눈으로 보고, 들어도 믿을 수 없구나.”
운광이 탄식하듯 중얼거렸다.
“응암동 검성의 전인이자 암천의 주인 본좌가 고른 건 바로 인간의 경계점. 이 법칙을 바꿨다.”
심상구현, 역천.
어떠한 법칙의 원인과 결과를 하나 뒤틀어 바꾼다.
“내 용화를 보고 심상구현이라 생각한 건……”
무곡이 무언가를 깨우친 듯 말꼬리를 흐렸다.
“그렇다, 검마여. 그러나 그대는 어디까지나 용의 힘을 빌린 것에 불과했다. ‘인간’이 근원이 되는 건 버리지 못했다.”
“암천회주, 그대는 선경(仙境)에 오른 건가?”
운광이 설마 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절정과 초절정의 위에는 화경이 있다.
화경에서 심상을 정립, 그리고 그 개념을 구현하는 데 성공하면 현경이라는 절대지경에 오를 수 있다.
다음 단계가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나, 어디까지나 이론상으로만 존재하며 명칭 또한 여러 가지였다.
“무림맹주여. 누가 무당파의 장문인이 아니랄까 봐 기준을 도가로 삼는구나. 본좌가 만약 불가의 제자여도 신선이라 칭할 생각인가. 아니, 애초에 지금 그대가 보고 있는 것이 사람의 육체를 버리고 우화등선한 신선으로 보이느냐.”
선경 선인, 신선이 되려면 말 그대로 육체의 굴레에서 벗어나 선계 혹은 하늘로 날아올라야 한다.
저승과 이승이란 것이 존재한다면 이승에 존재하는 것조차가 불가능했다.
“굳이 말하자면…… 그래, 인간이라는 틀에서 벗어났으니 외경(外境)이라 칭하는 것이 올바르겠구나.”
화경은 무학의 극의를 이루었다.
현경은 사람의 한계를 넘어섰다.
그리고 외경은 종을 초월해 그 이상을 이루었다.
궁신이나 검신처럼 비유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신의 경지에 도달했다 해도 틀리지 않았다.
“신선의 경지가 아닌가.”
운광의 얼굴에 암운이 끼었다.
선경이니 외경이니 하는 호칭은 문제가 아니었다.
정녕 문제가 되는 건 법칙을 위배한 강함이었다.
“아니.”
절망뿐인 침묵 속, 냉악비가 입술을 달싹였다.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도다.”
운광이 냉악비를 쳐다봤다.
“역천이라는 것도 결국은 심상구현, 현경의 연장선으로서 반쪽짜리다. 아마 저 외경이란 건……”
냉악비는 말하다 말고 숨을 멈췄다.
“그러고 보니, 다음에 보면 그 간사한 혀부터 뽑아 주겠다고 말하였지.”
“조심하시오!”
운광이 급한 어조로 외쳤다.
암천회주는 땅에서 솟은 것처럼 나타났다.
더 이상 어느 정도 빠르다 하는 수준이 아니다.
시각 정보를 얻을 틈도 없이 불현듯 나타났다.
무공의 경지는 오르면 오를수록 신체 능력이 향상된다.
현경과 외경 간의 차이도 마찬가지였다.
극쾌의 절대고수, 무곡도 이번만큼은 돕지 못했다.
“냉악비!”
암천회주가 북해궁주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왼손을 뻗었다.
검도 아닌데 그 속도가 번개와 같이 빨랐다.
‘검이 아닌 손이라면!’
냉악비는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했다.
‘얼어붙어라!’
쩌저적!
대기 중의 수분이 얼어붙는다.
육각형으로 된 알갱이가 가지를 뻗어 주변을 감염시키듯 집어삼켰다.
쩌적! 쩌저저적!
발밑에 흩뿌려진 얼음 조각이 하나가 된다.
주변은 삽시간에 얼음의 대지, 북해의 땅으로 변했다.
회주의 왼손 또한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손가락만이 아니라 손목, 팔까지 새하얗게 물들었다.
냉악비는 회주의 몸이 아닌, 일정한 영역을 지정해 얼어붙게 만들어 방어했다.
‘빙백신장!’
냉악비는 방어와 동시 공격까지 날렸다.
손바닥에서부터 극한의 빙한기가 해일처럼 흘러나오더니만, 장력과 하나가 되어 가슴을 후려치려 했다.
그러나……
“그리 나올 줄 알았다.”
암천회주가 스산하게 웃으면서 오른손을 출수했다.
‘당했다.’
얼음을 담은 눈동자 너머로 손이 비쳤다.
새하얗고 깨끗한 손등의 정중앙에 구멍이 생겼다.
푸욱!
방금 전의 빙한기는 온데간데없이 손바닥이 타오를 듯이 뜨거워지더니만, 살이 갈라지며 검이 나타났다.
‘멈춰.’
심의를 소망하면서 움직였다.
손가락을 전부 구부려 꽉 쥐었다.
손등의 근육을 움직여서 검을 옮아매고, 잡았다.
심상구현을 펼쳐 움직임을 둔화시켰다.
손등을 뚫고 나온 검이 뇌를 찌르는 것만큼은 막아야만 했다.
다행히도 냉악비의 간절함이 닿았는지 이마에 닿을락 말락 한 거리에서 멈추었다.
‘이때다!’
운광과 무곡은 서로 이야기한 것처럼 달려들었다.
냉악비가 암천회주의 검을 얼마만큼 잡고 버틸 수 있을까, 라는 의문 따윈 조금도 갖지 않았다.
그따위 것보다 잠시 동안이라도 잡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파아앗!
무곡과 운광이 거의 동시에 공격했다.
“같잖구나.”
암천회주가 검을 위로 추켜올렸다.
손의 근육이나 검신에 낀 서리 따위는 조금도 방해되지 않았다.
볼 것도 없었다.
검이 살과 근육을 가르는 것을 느끼면서 몸을 뒤로 돌려 운광에게 반격을 날렸다.
‘검마가 아닌 나라고?’
무곡은 극쾌의 절대고수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무곡의 검부터 쳐내야 하는 것이 맞았다.
‘변칙으로 날 당황시킬 생각인가. 어림없다.’
운광은 반사적으로 이화접목으로 받아쳤다.
‘잠깐, 방향이 이상하다!’
그러나 직후 그것이 함정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암천회주의 검은 정면을 똑바로 향하지 않았다.
몸 어디도 노리고 있지 않았다.
전혀 엉뚱한 곳, 빈 허공을 찌르고 있었다.
“그 심상, 잘 이용하도록 하마.”
검이 공간째로 구부려진다.
빈 허공을 찌르려던 검의 방향이 꺾이면서 다른 곳을 찔렀다.
“크읏!”
깨끗하지 못해 기분 나쁠 정도로 곧은 선을 그려 내던 무곡의 검이 갑작스레 물고기처럼 헤엄쳤다.
용제문의 만검의 일부를 응용한 것이 아니었다.
“맙소사!”
운광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미…… 친…… 놈!”
무곡도 신음을 흘리며 겨우 욕설을 내뱉었다.
그와 동시 손에서 힘이 빠지며 검이 흘러나왔다.
“하하하!”
암천회주의 목적은 운광을 당황시키는 것이 아니었다.
검초 역시 결코 변칙적인 게 아니었다.
서로 간의 거리부터 시작해 이화접목으로 검이 구부러지는 각도까지 생각하여 검격을 날렸다.
“끝이다.”
회심의 일격에 성공한 검을 손에서 놓았다.
포기한 것이 아니다.
회수할 생각조차 없었다.
검 이외의 무공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암천회주는 자신의 검을 조금의 망설임 없이 버린 뒤, 무곡이 놓친 검을 잡아당겨 왔다.
손이 늘어나거나 한 것이 아니었다.
기의 또 다른 운용 방법, 허공섭물의 응용이다.
“이런!”
운광의 낯빛이 꺼렇게 죽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신속의 절대고수의 앞에서는 찰나의 당황조차 용납되지 않았다.
‘안 돼!’
설마하니 남의 심상구현을 이용할 줄은 조금도 상상하지 못했기에 틈을 만들고 말았다.
“잘 가거라, 상천이라 불렸던 무림인이여.”
암천회주는 오만하게 웃으며 검을 휘둘렀다.
콰아아앙!
위에서 아래로 내리긋는 검격.
가벼워 보이나 결코 가볍지 않다.
태산이 짓누르는 것처럼 터무니없었다.
상천이 아니라 그 할아버지가 온다 한들 몸이 둘로 갈라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
암천회주의 입가에 맺혔던 웃음이 가셨다.
또한, 여태껏 오연하게 보이던 여유도 없어졌다.
“그래.”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한 건 분노였다.
역천이자 암천의 검은 무림맹주를 베지 못했다.
운광이 피해서가 아니다.
막아서도 아니었다.
“바로 네가……”
암천과 맞댄 건 매향이 물씬 풍기는 검이었다.
“주서천이냐?”
단 한 번, 봤었다.
전생에서 단 한 번.
먼 곳에서 보았다.
“그렇소.”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가끔씩 눈을 감으면 악몽에서 그가 나온다.
온갖 영웅과 마두들을 짓밟은 채 정점에 선 자.
“내가……”
반면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화산오장로도 아니요, 오룡삼봉조차 아니었다.
이름은커녕 별호도 시원치 않은 화산의 사대제자였다.
“상천칠좌, 검신 주서천이오.”
“검신!”
운광이 반가움과 안도가 섞인 외침을 질렀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주서천은 운광의 부름에 답하곤 주변을 둘러봤다.
“어르신, 괜찮으십니까?”
“솔직히, 그리 좋다곤 말할 수 없소.”
무곡은 옆구리를 붙잡고 눈살을 찌푸렸다.
출혈이야 점혈로 막았으니 괜찮다.
이까짓 고통 따위도 별문제 없었다.
그러나 부상을 입은 채로 암천회주라는 이름의 괴물과 싸우기에는 부담스러웠다.
“신의께서 뒤에 계시니 쉬고 계시는 편이 좋을 겁니다.”
“도움이 되지 못해 죄송하오.”
“괜찮습니다.”
무곡도 마음 같아선 목숨을 걸어서라도 돕고 싶었지만, 부상을 입은 채로 싸워 봤자 방해만 될 뿐이다.
자연 치유력 등 현경의 신체 능력이 보통 사람과는 다르다고 할지라도, 옆구리에 검이 꽂혔는데 순식간에 회복할 정도의 수준은 되지 않는다.
무곡은 현 상황에서 괜한 고집을 부릴 만큼 어리석지 않았다.
“북해궁주.”
“문제없다.”
주 무공이 장법답게 신체 부위 중 가장 단련된 곳이 손바닥이었다.
정중앙의 바람구멍이야 얼음으로 막으면 그만이었다.
“사도천주는……”
말을 잇기 무섭게 사도천주가 제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척 봐도 좋아 보이는 상태는 아니었다.
“살아는 있으나 방금 전 일격으로 뇌에 손상을 입은 모양이다.”
돌에 부딪혀 찢어진 부위에서부터 피가 흐르는 게 보였다.
“솔직히, 도움이 그리 될 것 같지는 않다.”
사도천주는 체면 따위 조금도 신경쓰지 않고 솔직하게 답했다.
자존심은 구겨도 이러는 게 나았다.
“게다가, 나 역시 회주와 상성이 그리 좋지 않다.”
‘패도제공.’
주서천은 사도천주의 말을 듣고 가만히 생각했다.
패도제공, 나아가 그의 심상구현은 다수의 하수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칠지는 몰라도 고수에게는 그리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사도천주의 무공이자 심상인 지배란 일정 영역의 적군을 약하게 만들고 아군을 강하게 만드는 힘이다.
무림인 특성상 근접한 거리에서 승부를 보는지라 무척이나 위협적이나 사실 의외로 약점도 많았다.
첫째로는 내공이다.
고수들 중에서도 내공량이 특화라 할 정도로 많다면 지배의 저항력도 크다.
둘째로는 경지의 차이다.
화경, 그리고 현경까지도 약하게 할 수는 있으나, 그 위의 단계는 힘들었다.
고수가 하수를 알아보나 하수가 고수를 알아보지 못하는 원리와 일치했다.
시작되자마자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도 그 연유에서였다.
‘사도천주는 소수보다는 다수, 대인보다는 대군.
전쟁에서는 유리할지 몰라도 현 상황과는 맞지 않다.’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판단을 신속하게 내렸다.
“물러나시오, 사도천주. 만약의 상황의 대비를 부탁하겠소.”
“그리하지.”
암천회주도 암천회주지만 이후의 일이나 여러 가지도 염려해야 했다.
후일을 도모해 제외시키기로 했다.
“이 나를 앞에 두고 한가하게 토의를 하다니, 담력만큼은 인정해 주마.”
“그러는 그대야말로 내버려 두지 않았나.”
“어차피 곧 본좌의 손에 생을 마감할 자들이다.
그 순서가 빠르건 늦건 간에 개의치 않는다.”
“아니.”
주서천이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설사 암천회주라 할지라도, 절대고수 다섯 명을 동시에 상대하는 건 무리라고 판단한 건 아닌가?”
“정도의 영웅이자 검신씩이나 되는 자가 삼류 잡배 수준밖에 안 되는 도발이라니.”
암천회주는 실망이 느껴지는 어조와는 달리 무표정으로 답했다.
“마음대로 지껄여라.”
주서천도 암천회주도 약간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유일하게 언뜻 보이는 감정은 차가운 분노였다.
무림을 구하려는 자와 부수려는 자.
원수들은 입을 다문 채 서로를 마주봤다.
한편, 무림의 정점이자 절대자를 사이에 둔 각 세력의 무림인들은 내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럴 수가.”
고수 간의 대결은 쉽게 접할 수 없다.
절대고수면 두말할 것도 없었다.
평생에 한 번 볼까 말까였다.
무림의 정점에 선 이들은 하나같이 보통 신분이 아니다 보니, 목격할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그렇다 보니 다들 손 놓고 구경하는 데 집중했다.
절대고수의 신위를 구경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운이좋다면 절대고수 간의 생사결에서 다음 단계로 오를 수 있는 단서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며 숨 쉬는 것도 잊은 채 바라보려 했었다.
하나 이후의 상황에 머리가 따라가지 못해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최초의 움직임은 암천회주였다.
암천회주는 제갈상이 규칙을 다 읊기도 전에 움직여 사도천주를 처박았다.
‘저, 저런!’
‘비겁하다!’
‘상천칠좌로서 부끄러운 줄 알아라!’
정파인들은 암천회주의 급습을 보자마자 붉으락푸르락하며 비난 세례를 잔뜩 쏟아 내려고 했었다.
그러나 그다음, 암천회주가 한꺼번에 덤비라면서 무위를 보여 주자 하나같이 입을 떡 벌리며 경악했다.
“아니, 도대체……”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졸지에 구경꾼이 된 무림인들은 하나같이 어안이 벙벙한 채로 의문을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고수의 반열인 절정이나 초절정은 물론이요 화경이나 천하백대고수들도 제대로 포착하지 못했다.
절대고수가 괜히 절대고수가 아니란 걸 실감했다.
심상구현이라거나 초식에 실은 묘리를 파악하기 이전에 움직임이 워낙 빨라 그 움직임을 눈으로 좇아갈 수가 없었다.
“사도천주가 일격에……?”
사파인들은 기막혀서 말을 잇지 못했다.
사도천주는 결코 약하지 않다.
사도팔문 시절에도 중앙 집권 체제였을 정도로 그 영향력이 커다랬다.
굳이 지력만이 아니라 무력 또한 고강했었다.
저렇게 허무하게 당하는 모습은 난생 처음 봤다.
사파인들은 믿기지 않는 듯 의문을 표했으나, 이후에 펼쳐지는 일들에 의해서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미친!”
“저게 말이 되는 일이란 말인가!”
“암천회주는 정녕 사람인가……?”
두 눈을 부릅뜨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몇몇 무리는 혹시나 기문진에 빠져 있는 건 아닌지 의심했다.
암천회주가 권동제, 그리고 태극검의 합공에도 아무렇지 않았다는 건 소문을 통해 익히 들었다.
그러나 소문이란 으레 그렇듯 부풀려지기 마련이다.
분명 무언가 과장됐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상천칠좌가 한둘도 아니고 셋. 셋이 작정하고 합공을 하는데도 상처하나 내지 못하다니!”
“소문이 과장되기는커녕 과소평가되지 않았나!”
“거긴…… 재앙이다.”
정사인의 얼굴이 흙빛이 됐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얼음이 나타나거나 혹은 검이 구부러지는 등의 이상 현상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무림인들은 암천회주가 순식간에 당하기는커녕 반격을 넘어서 상대를 압도하자 절망에 잠겼다.
더 이상의 생각 자체가 무의미했다.
상식 따위 한참 전에 벗어났다.
워낙 비현실적인 광경을 봐서 그런지 인지의 부조화가 일어날 정도다.
“암천회주시여!”
암천회는 정사의 침체된 분위기와 정반대였다.
당장이라도 함성을 내지를 정도로 달아올랐다.
정사에겐 절망이요 암천에겐 희망.
서로 상반된 분위기가 심화되고 있을 때, 변화가 찾아왔다.
“주서천!”
“검신이다!”
정도의 영웅, 아니 무림의 영웅.
암천회의 원수이자 숙적이 모습을 드러냈다.
“주서천이라고?”
“잠깐, 주서천이 이 자리에 왔다는건……”
“천기께선 어찌 됐지?”
“대나무 숲의 멍청이들은 뭘 한 거야!”
암천회의 한껏 달아올랐던 분위기가 식었다.
정사에겐 다시 희망이 찾아오고 암천회는 절망 대신 불안함과 공포로 인해 혼란을 겪었다.
암천회에게 천기라는 이름 두 글자와 주서천이라는 세 글자가 얼마나 무거운지 실감할 수 있었다.
“진정해라.”
“주서천이 온다 해도 변하지 않는다.”
“검마는 옆구리에 검이 꽂혔고, 사도천주는 살아 있으나 좋아 보이지 않는다. 무림맹주와 북해궁주, 그리고 검신을 더해 봤자 결국 숫자는 변하지 않는다.”
“주서천, 주서천. 아무리 그 주서천이 대단하다 할지라도 암천의 주인 앞에선 무용지물이지 않겠는가.”
암천회는 주인에게 무한한 신뢰를 내보였다.
“주서천 대협……”
“괜찮으실까?”
“아무리 주서천이라고는 하지만 말이야.”
무림 연합은 암천회와는 달리 불안을 떨치지 못했다.
결코 검신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도리어 어떠한 상황에 있건 주서천이 나타나면 사기가 솟구쳤다.
연령 따위는 지금에 와서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고금 역사를 뒤져 봐도 주서천 같은 사람은 없다.
정도만이 아니라 중원 무림의 영웅이자 절대자였다.
길거리에서 아무나 붙잡고 무림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대부분 주서천이라 할 것이다.
정사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심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주서천이 영웅일지언정 사람이고, 암천회주는 재해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다.
산사태 혹은 해일, 사람의 힘이나 의지로는 도저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할 지경이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정사의 군중 안, 이의채가 말했다.
“언제나 늘 그렇듯이, 저분께서는 해낼 거요.”
이의채도 주서천의 진실에 대해선 알지 못한다.
그러나 암천회의 음모를 저지하고 야욕을 막기 위한 노력이 얼마나 오래됐는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범인, 아니 사람이라면 상상할 수도 없었다.
실체조차 제대로 확인할 수 없는 집단.
그것도 무림 전체에 손을 뻗은 세력을 저지하기 위해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부터 계획하고 성실히 임해 왔다.
“반드시.”
“주서……”
암천회주가 주서천을 부르려던 찰나였다.
‘간다!’
타앗!
눈앞의 적은 그 암천회주다.
전생은 물론 현생에서까지 천하제일인이라 일컬어지는 무인이요, 괴물이었다.
그렇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로 했다.
암천회주라면 필히 무언가가 신경쓰여 물어볼 것이라 생각했고, 주서천답게 그 틈을 놓칠 리 없었다.
‘자하!’
오른팔을 뒤로 쭉 당긴다.
근육이 부풀어 오르고 힘줄이 돋아났다.
단전이 열기를 뿜어내며 회전했다.
힘의 원천, 자하진기가 곧 온몸에서 가지를 뻗듯이 나누어지며 구석구석을 순환하고 힘을 강화했다.
‘개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