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十二章 (243/254)

“어르신께서 가셨다면 그래도 최악은 피했습니다.”

“무곡이라면 정마대전에서 활약한 검마를 말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나 역시 그의 활약상은 들었으나, 아무리 실력이 출중하다고 한들 회주에 견줄 정도는 아니지 않소?”

“그렇지 않습니다. 그분께선 여러분께서 상상하신 것보다 강합니다. 검신의 이름으로 보증하지요.”

전생에서 천하제일이인자로도 불렸던 절대고수다.

괜히 개양이요, 암천회주의 오른팔이 아니었다.

“일단…… 떠날 채비를 해야겠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암천회주가 나타났으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설마, 지금 떠나겠다는 건 아니겠지?”

좌중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다.

북상군의 부관이자 보좌인 당혜였다.

오라비를 잃은 지 채 하루도 되지 않아 불안해 보였는데, 걱정과 달리 눈빛은 흔들리지 않고 총명했다.

“독봉의 의견에 찬성합니다.”

신도균이 손을 들었다.

“현재 본 군은 상상 이상으로 지쳐있습니다.

북하군의 부상자 탓에 손이 부족해 당장 경계만으로도 힘이 듭니다. 무엇보다, 지금쯤 소림사를 놓고 온 것이 군 내에 소문이 돌아 사기가 떨어졌을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에게 습격이라도 받는다면 큰일입니다.”

“근처의 적은 이미 처리하지 않았는가?”

팽자호는 뭐가 문제냐는 듯이 물었다.

“그 당연한 결과에서 생긴 사고의 틈을 파고 드는 것이 천기의 특기입니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여 아직 주의하셔야 할 때입니다.”

신도균은 진저리가 난다는 듯 머리를 좌우로 절레절레 흔들었다.

본부를 내버려 두고 암천회주를 선봉으로 내세울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한 방식이었다.

“오랫동안 붙들고 있을 생각은 없어. 적어도, 수면을 취할 수 있도록 해가 뜰 때까지는 있어 줬으면 해.”

“……”

주서천은 당혜와 신도균의 말에 고민했다.

일리 있는 말이었다.

“굳이 고민하실 필요 없습니다.”

선택하려던 찰나였다.

지휘 막사가 열리면서 이국적인 외모의 미남자가 들어왔다.

“당신은……”

지휘 막사 안, 낙소월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막마르?”

북해빙궁의 정찰대장, 막마르였다.

“소림사는 무사합니다.”

* * *

덜덜덜.

합비로 복귀 도중인 암천군은 몸을 파르르 떨었다.

발밑의 칠성사병은 주변의 눈치를 보다가, 입을 열어 어렵사리 목소리를 쥐어짜 냈다.

“아, 암천의 주인이시여…… 무슨 일……”

퍼엉.

칠성사병이 말을 잇지 못하고 머리가 터져 죽었다.

암천군의 분위기가 깊게 가라앉았다.

하나같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은 채 공포에 떨었다.

“북해궁주……”

암천회주가 분노로 들끓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감히 어쭙잖은 속임수로 본좌를 속이다니, 다음에 보면 그 간사한 혀부터 뽑아 주도록 하마.”

귀환 중이던 암천군은 멀쩡했다.

그도 그럴 것이, 최초에 귀환령 이후 그 누구와도 부딪치지 않아서였다.

“반드시.”

북해궁주, 냉악비는 식량난 후의 문제를 대강 처리하고 나서야 주서천과의 약조를 이행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모됐으나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빙궁의 주인, 그것도 사실상 북해의 지도자가 먼 중원까지 가는 일이니 당연했다.

이래저래 신경 쓸 일이 많았을 뿐만 아니라, 거리는 둘째 치고 한두 사람도 아니고 약 천여 명씩이나 이끌고 오다 보니 느려지지 않았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중원!”

“듣던 대로 비옥한 땅이로다.”

“저 초목을 봐라, 정말 아름답구나.”

“바람이 이렇게 따뜻하다니.”

중원 땅을 밟은 이후로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북해에서 결코 볼 수 없는 것들 천지였다.

툭 까놓고 말해서 당장이라도 중원을 침공하고 싶을 정도로 탐스러웠다.

그러나 그 생각도 얼마 가지 않아 쏙 들어갔다.

“후덥지근하군.”

“아니, 덥다. 왜 이렇게 더운 거지?

설마 전설로만 듣던 사막 지대에 도착한 건가?”

“중원인은 고통을 즐기는 변태뿐인게 분명하다.”

“선조들께서 왜 중원 침공을 포기하셨는지 알 것 같아.”

“중원이 무학의 중심지인 건, 이 더위를 이겨 내기 위해서지 않을까?”

바로 기후 때문이었다.

아래로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고통스러웠다.

따스하거나 포근한 수준이 아니라 살인적인 더위였다.

평생을 추위 속에서 살아온 북해인들 입장에선 버티기 힘든 기후였다.

상천육좌인 북해궁주야 한서불침이니 별 상관없었지만, 그 외의 북해인은 상황이 달랐다.

과거, 중원을 침공한 북해가 괜히 물러선 게 아니었다.

빙공과 상극인 날씨와 대기의 온도가 문제였다.

하수일수록 영향을 많이 받으며 심하면 실력이 반으로 줄어들기까지 했다.

환경이 환경이다 보니 정예를 동원하게 되면서 그 수도 적어졌다.

분쟁의 피해 탓도 컸다.

“검신이 남긴 정보가 있다고 들었네.”

북해빙궁은 흑룡강, 길림, 요녕, 하북 순으로 남하하는 도중 금의상단에 들려 전황을 들었다.

“남부를 돕기에는 너무 멉니다.”

“북부를 돕는다.”

이것이 산동을 거쳐 안휘의 평원으로 합류하게 된 과정이었다.

다만 중간에 생각지도 못한 일이 발생했다.

“전방에 정사 연합, 아니 소림사가 보입니다!”

“소림사만?”

평원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소림사가 지나가는 걸 목격했다.

냉악비는 그 뒷모습이 어딘가 모르게 다급해 보이는 걸 보고 심상치 않다고 느껴 곧장 합류했다.

“그 뒤로는 어찌 됐지?”

“소림사를 북상군까지 이끌어 갈 생각이었으나, 소림방장 홍진대사가 서문세가를 구해 달라는 요청을 하여 본 녀만 따로 행동하기로 했다.”

“과연.”

주서천이 등을 의자에 기댄 채 팔짱을 꼈다.

“고맙다, 북해궁주. 신세를 졌다.”

어젯밤, 북상군은 정찰대장인 막마르에게 전후 설명을 들은 뒤 일단은 대기하기로 했다.

날이 바뀌는 시간에 소림사와 북해빙궁이 속속 도착했고, 해가 뜰 무렵엔 냉악비가 무곡을 데려왔다.

냉악비가 암천회주를 상대로 기지를 발휘해 위기를 모면했다고 들었을 땐 무심코 감탄사를 흘렸다.

무공도 무공이지만 현명함도 보통이 아니었다.

“신세를 갚기 위해 중원에 온 것이니 그리 신경 쓸 필요 없다. 무엇보다 본 녀는 서문세가를 구한 것도 아니요, 도망친 것뿐이니 감사 인사를 받기도 뭐하구나.”

“음……”

주서천이 안타까운 듯 침음을 흘렸다.

냉악비가 서문세가를 돕기에는 너무 늦은 뒤였다.

서문이진을 포함해 그 외의 무사들은 전원 사망했다.

시신을 거두진 못했다.

상황도 상황이거니와 암천회주가 도중에 속임수라는 걸 눈치채고 돌아올 수도 있어 급히 도망쳤다.

“왜 그대 정도 되는 위인이 먼 북해까지 와 도움을 요청한 것인지 알 것 같았던 강함이었다.”

“암천회주에 대해서 알아낸 게 있나?”

주서천이 번개같이 반응하며 물었다.

“공수를 교환하긴 했으나, 알아냈다 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자가 정신을 차리면 물어보거라.”

무곡은 도착하자마자 안심했는지 기절하듯 잠을 청했다.

혹여나 의식이 불명한 게 아닌가 걱정했지만, 의원은 지쳐서 그런 것뿐이라고 해서 안도할 수 있었다.

“그래.”

주서천은 냉악비와 몇 가지 의견을 교환한 뒤, 지휘 막사에서 빠져나왔다.

경계 중인 무사가 껌뻑껌뻑 졸고 있었으나, 밤새 고생한 것을 알고 있어 그냥 지나쳤다.

황혼 대신 찾아온 여명 속에 북상군은 조용했다.

다들 피곤에 절어 있어 꼴이 말이 아니었다.

북해빙궁도 환경에 아직 익숙해지지 않았는지 상태가 그리 좋다곤 말할 수 없었다.

주서천은 자신의 등장에 사람들이 신경 쓸 것을 염려하여 기척을 숨긴 채, 조용히 이동했다.

“여기 계셨습니까.”

멀지 않은 곳, 인기척 드문 곳에 홍진이 있었다.

동쪽에서부터 물러나는 밤의 장막, 어슴푸레한 여명의 빛,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쓸쓸한 뒷모습.

두 눈이 있던 곳엔 붕대가 자리잡고 있었다.

“서문세가는…… 어찌 됐습니까?”

홍진이 등을 보인 채로 물었다.

“……”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소림의 방장이 마주칠 현실이 얼마나 잔혹한지 알고 있기에, 명확한 대답 대신 입을 달싹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 습니까……”

무언이었으나 대답으로는 충분했다.

홍진은 자리에 주저앉은 채, 중얼거렸다.

“부처께선 중생을 구제하라 하였습니다.

무림인의 전쟁에 민간인이 희생되서는 아니 된다고 생각했고, 남기로 했습니다. 그게 얼마나 바보같은 선택이었는지는 빈승 또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목소리가 떨렸다.

“봐 버렸습니다. 모르고 구하지 못한 건 능력 밖의 일이나, 알고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지 않습니까. 또한, 우리가 외면해 버린다면 그들은 누구에게 도움을 청하겠습니까?”

손을 뻗어 풀을 꽈악 쥐었다.

“그래서 남았습니다! 영웅 놀이라고 말씀하셔도 좋습니다! 어리석다하여도 괜찮습니다! 그들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홍진은 입을 벌리고, 절규하듯 소리쳤다.

“우린 아니! 나는! 빈승은 그곳에 끝까지 남았어야 합니다!

남아서, 다른 이들이 도망칠 시간을 벌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데!”

북해빙궁과 합류할 때만 해도 몰랐다.

암천회주가 따라오지 않아 서문세가를 쫓았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냉악비에게 소림 방장의 이름을 걸고 공손히 부탁했다.

진실을 알게 된 건 도착한 이후였다.

“뭐가, 뭐가 ‘남을 위해 목숨을 버려라!’ 냐!”

손에 꽉 쥔 염주가 부서져 바닥을굴렀다.

“뭐가 천수천안이냐!”

구하기도 전에 보지도 못했다.

눈이 보이지 않았다는 건 변명밖에 되지 않는다.

정말로 결심했다면 그 자리에 남았어야 한다.

서문이진처럼 거짓말을 하고, 그들만 따로 보냈어야 했다.

“뭐가, 도대체 뭐가……!”

홍진은 무릎을 꿇은 채 오열했다.

그 울음소리가 평원에 울려 퍼졌지만,※ 누구도 찾아오지 않았다.

주서천은 홍진이 우는 걸 뒤편에서 지켜보다가, 유난히도 작아 보이는 어깨에 손을 올렸다.

“이제 됐습니다.”

“무엇이 됐단 말인가!”

“위로는 하지 않겠습니다. 동정도 하지 않겠습니다.

어쩔 수 없다고 자조도 하지 않겠습니다.”

주서천은 홍진의 어깨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사람이란 예로부터 누군가의 등을 바라보고, 그 뒤를 쫓으며 배워 가는 법입니다. 소림 방장, 홍진. 그대 역시 그리하면 됩니다.”

쭉, 누군가의 등을 바라봤다.

그들의 희생에 미안함과 감사함을 느꼈다.

“울어도 괜찮습니다. 넘어져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그대로 누워 있지만 마십시오.

일어서서, 먼저 간 이들을 쫓아가십시오.”

“……!”

홍진이 고개를 들어 주서천을 돌아봤다.

“남을 위해 목숨을 버리십시오, 소림사.

서문세가가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를 위해 목숨을 버리십시오.”

홍진은 그 말에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흐느끼며 다시 오열했다.

‘홍고. 이게 네가 그토록 의심했던 소림사다.’

주서천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생판 남을 위해 아무렇지 않게 희생하는 사람들, 그리고 평생 동안 대적했던 이들 대신에 죽지 못했다며 진심으로 후회하고, 슬퍼하는 사람들이 바로 소림사다.’

소림사가 깨끗하지만은 않다.

부처의 품에 귀의했다곤 해도 인간에 불과하니 당연한 일이었다.

때때로 여러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 본질은 선했다.

소림사가 괜히 정파의 기둥이 아니었다.

긴 역사 동안, 그리고 미래에도 소림사는 희생해 왔고 또 희생할 것이다.

“끄흐윽…… 미안……합니다……!”

누군가의 죽음에 비통해 하고, 고통스러워했다.

“나를 용서, 치……마시오…… 미안합니다……!”

서문세가는 남은커녕 적이었다.

그 적의 죽음에 자신이 볼 이득 따윈 생각하지 않고 진심으로 절규까지 했다.

세상은 그런 사람을 보고, 영웅이라 부른다.

일찍이, 영웅이 있었다.

일찍이, 영웅들이 있었다.

* * *

북부 전선이 일단락됐다.

최전선답게 승패의 결과 전달이 빨랐다.

하남의 개봉, 무림맹 임시 본부가 가장 먼저 소식을 듣고 체면도 잊은 채 서로 얼싸안고 환호했다.

“이겼다!”

“됐어!”

“연승이다!”

“만세!”

남부는 물론이요 북부도 승리를 거두었다.

소규모도 아니고 대규모 전투에서 승리했으니 말로 헤아릴 수 없는 기쁨이 솟구쳤다.

암천회주가 선봉장으로 나섰다는 걸 들었을 땐 솔직히, 제갈상도 얼어붙었으나 후에 퇴각했다는 걸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북해빙궁이라고?”

“북해궁주, 냉악비가 군사를 이끌고 도우러 왔다!”

“아니, 냉악비가 갑자기 왜?”

“아직도 소식 못 들었나?

주서천이 얼마 전에 북해에 다녀왔다 하더군.

듣자하니 식량난을 대신 해결해 주었다고 하네.”

“허어!”

“주서천 대협, 만세! 정사 연합 만세!”

“북해궁주 만세!”

과거였다면 중원 침공이라며 식겁했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든든한 지원군인 그들 덕에 축제 분위기였다.

개고생을 하면서 북해까지 다녀온 보람이 있었다.

순수한 무력의 증원은 물론이요, 사기가 분수처럼 솟구치면서 하늘을 찔렀다.

그 외에도 다양한 활약상이 알려졌다.

“지상에서 미궁이 솟아나?”

“기룡이 또 한 건 했구만!”

“암천북군 삼천이 순식간에 당했다며?”

기룡, 제갈승계의 이름 역시 사기와 함께 높아졌다.

그동안은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암천회의 전면전이 시작된 이후로는 그 명성이 중원 전역에 퍼졌다.

“서문세가를 잊지 말아 주십시오.”

북상군의 퇴각전도 알려졌다.

특히, 소림사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서문세가의 활약상을 알렸다.

무림인들은 그 일화를 듣고 감동하여 칭찬 세례를 쏟아 냈다.

서문이진의 생각과 달리, 그들은 생전에 상상하지도 못했던 대우와 명성을 얻었다.

서문세가는 이번 일로 전력의 큰 피해를 입었으나, 사도천주가 합당한 보상을 해 준 덕에 걱정을 덜 수 있었다.

영약이나 돈은 물론이요, 사도사문으로서 유지할 수 있도록 약속까지 받았다.

“상천육좌가 상천칠좌가 된 것, 알고 있나?”

“응? 칠좌라고?”

“그렇네. 금의상단, 그리고 금의검문 소속의 고수인 검마가 상천에 올랐네.”

“그게 정말인가?”

“그래. 검신과 북해궁주가 실력을 보증했네.

내 듣기론 암천회주와 승부하여 살아남았다고 하더군.”

“그건 대단한 일이군.”

비록 직전에 심상을 잃어버리긴 했으나, 상대는 권동제와 태극점의 합공에도 버틴 암천회주였다.

그 암천회주와 일대일로 대적한 사실이 알려졌을 뿐더러 주서천과 냉악비의 말이 있어 검마는 무리 없이 상천에 오를 수 있었다.

안휘, 합비.

“……”

천기는 현 상황에 신음조차 흘리지 못했다.

전황 결과 보고서를 앞에 둔 채, 식은땀을 흘렸다.

‘위험하다.’

화를 낼 기운조차 없었다.

그 정도로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암천회는 벼랑 끝까지 몰렸다.

천추, 그리고 암천회주가 보내온 소식.

주서천의 부재를 생각해 북군을 급히 불러들였다.

그러나 이게 웬걸.

주서천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나 북부를 헤집은것도 모자라, 북해빙궁까지 원군으로 나타났다.

최악도 이런 최악이 없었다.

그 외에도 눈에 띄게 줄어든 전력도 문제였다.

‘일만 오천 중, 일만 사천을 북부와 남부로 나눠 보냈지만, 생환한 이들은 얼마 되지도 않는다.’

암천남군에 소속된 수뇌는 물론이요, 전력이 괴멸하다시피 했다.

동맹관계인 적림십육채도 박살 났다.

암천북군 역시 만만치 않았다.

칠천에서 고작 이천 오백여 명 정도만 살아 돌아왔다.

본부에 천여 명 북군에서 이천오백여 명, 그리고 남군에서 어찌어찌 도망쳐 온 이들이 천 오백여 명.

‘전력을 어찌어찌 끌어모아도 오천 정도다.’

북부 전선 북상군은 지상미궁에 삼켜져 누구도 살아남지 못했다.

남부 전선의 경우, 북부 전선과 마찬가지로 괴멸의 위기를 가졌으나 필사적으로 도망친 이들이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천추까지 잃었다.

게다가 적에 비해 아군의 피해가 너무 크다.’

공멸했더라면 이렇게까지 위기감을 느끼진 않았을 것이다.

‘정사 연합군의 추정 전력 수는 약 구천여 명.’

북부 전선의 경우, 북하군은 개방이나 서문세가 등 피해를 제법 입었지만 북상군이 비교적 멀쩡했다.

둘을 합해 약 삼천 정도였으며, 남부 전선은 완승을 거두게 되면서 많은 전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비록 최후에 천여 명씩이나 배반했으나 패신군과 남해 세력의 등장으로 잘 싸웠을 뿐만 아니라, 암천남군이 속속히 도망치거나 항복 의사를 보여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

천기는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짓누르며, 머리를 들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그 눈빛은 차갑고 고요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세상사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하였다.

전력의 차이는 결국 숫자 놀음일 뿐, 반씩이나 차이 나는 게 아닌 반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

칠성사의 빈자리야 승리한 뒤에 채우면 그만이다.”

팔을 잃었다.

수하를 잃었다.

동료를 잃었다.

암천회라는 공든 탑이 무너지려 하고 있었다.

조금만 건드려도 간단히 붕괴할 정도로 위태위태했다.

천기는 누가 봐도 앞이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임에도 한철 같은 의지를 보여 주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건 늘 하던 일이다.

최악의 최악을 가정하고, 방심하지 않고 적을 삼킨다.”

암천회는 오만할지 몰라도, 방심하진 않는다.

새싹이 발견되면 후일을 생각하여 짓밟고, 불확실한 요소 역시 철저하게 배제한다.

그리고 몇 수 앞으로 생각하여 준비하고, 또 준비한다.

구 할 이상 성공할지라도 성공하기 전까진 마음을 놓지 않는다.

그게 바로 암천회, 천기였다.

“주서천……”

으득!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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