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十章 (241/254)

“아군이다!

아군이 살아 돌아왔다!”

북상군 후미에서 반겨 하는 목소리가 터졌다.

“워, 원군이 있는 것 같소!”

최초로 빠져나온 생존자가 외쳤다.

‘원군이라고?’

당명인이 적잖게 당황했다.

“가자!”

주서천이 당명인의 틈을 찔렀다.

“와아아아아!”

북상군이 함성을 쏟아 내며 움직였다.

반격을 알리는 진군이었다.

“쯧!”

당명인이 혀를 차면서 후위로 내뺐다.

근접전을 못하는 건 아니나 검신과 맞붙는 건 자살 행위였다.

쿠구구구!

대군이 적진을 향해 세차게 나아가자 땅이 흔들렸다.

먼지구름이 누렇게 피어올라 낮게 깔렸다.

선봉에 선 주서천은 거침없었다.

얼굴에 두려움이 묻어나는 칠성사병에게 접근해 날뛰었다.

‘화우선형!’

쿠르릉!

머리 위에 든 검을 아래로 내리긋자, 천둥이 친 것처럼 굉음이 터지고 시야가 자줏빛으로 물들었다.

검에 실린 기가 부채꼴로 넓게 펴지더니, 암천군의 정면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크아악!”

“으악!”

경천동지할 위력이 끝난 뒤로는 매향이 은은하게 퍼졌다.

아군에겐 향기요, 적군에게는 악취였다.

주서천 앞은 그 누구도 막지 못했다.

북하군에서 마주친 암천회주와 다를 것 없었다.

대군 한가운데 떨어졌는데도 피해는 없었다.

그저 흐르는 대로, 춤을 추듯 움직이면 적들은 피를 흩뿌리며 추풍낙엽처럼 떨어졌다.

이십사수매화검법에 자하검결.

괜히 화산파의 절기와 일대신공이 아니었다.

항우이자 여포였다.

“퇴각이다!”

당명인이 결국 뒤로 물러나기로 했다.

검신의 등장에 원군까지 나타났다.

만약 독인운무 속에서 천 명의 정사인이 뛰어나오면 답도 없다.

원군을 잡고 있으면 또 모르겠는데, 비명이 귀청이 떠나도록 참혹하게 울리고 있으니 어쩔 수 없었다.

당명인은 이 순간에도 빠르게 떨어져 가는 암천군을 전력으로 퇴군시켰다.

그 본인도 혹시라도 주서천이 날아올지 몰라 후위로 빠졌다.

‘후미에서 주변을 경계하고, 여차하면 무형지독을 쓸 수 있도록 준비한다.’

당명인이 눈에 띄지 않게 후미로 이동했다.

“적을 쫓아!”

“놓치지 마라!”

부관인 당혜를 비롯해 주요 인사의 명령이 들렸다.

“검신을 따르라!”

북상군도 암천군도 전력을 다했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개미 떼 같았다.

수천에 이르는 무림인들은 안간 힘을 쓰며 싸웠다.

해가 지고 있는 것도 모르고 정신없이 싸웠다.

‘주서천이 생각과 달리 앞에 잘 나서지 않는다.

낙소월처럼 사문이 신경 쓰이는 게 분명하다.’

주서천의 성격 정도야 조사했다.

바로 얼마 전에 천기가 삼악검파로 그 습성을 이용했다.

‘이대로 추격전이 계속될 경우, 어떻게든 빠져나가 주서천의 주변 인물을 인질로 삼아야 한다.’

당명인은 주서천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현재 이 전장에서 가장 위험하고 변칙이니 온 신경이 집중됐다.

그리고 밟고 있는 대지가 붉게 달아오를 무렵, 북상군의 기세가 줄어들었다.

“천추남 적군의 속도가 줄어듭니다. 아무래도 멈추려는 것 같습니다.”

“예상대로군.”

당명인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사기가 올랐다고 하지만, 결국 일시적인 것에 불과했다.

저들은 이미 지칠 때로 지쳐 있으니 휴식을 취해야 할 것이다.”

“어찌할까요?”

“싸움이 장기화될 것 같으니, 조금만 더 거리를 벌린 뒤에 마주 본 채로 주변에 진지를 세워……”

흠칫.

당명인이 입을 도중에 다물었다.

“뭐……하고 있는 거지?”

당명인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의문에 찬 눈동자에 비치는 건 약 이 리 밖, 창을 사선으로 지면에 힘껏 박는 금의검문 무사들이었다.

그옆으론 주서천과 당혜가 나란히 서 있었다.

“설마!”

당명인이 아차 싶은 표정으로 발아래를 살폈다.

“네 이놈!”

당명인의 입에서 흘러나온 건, 숙적의 이름도 아니었으며 피를 나눈 여동생도 아니었다.

“제갈승계!”

“그래.”

주서천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뒤늦게 도착한 원군도 장기말에 불과했다.”

주서천은 이 장소까지 쉴 새 없이달려왔다.

도중에 어딜 들러 유령을 집결시키기 힘들었다.

그러나 애초부터 이 근처에 있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기관의 설치 및 감독에 필요한 건 금의검문의 무사도 당혜의 조율도 아닌, 인부들이었던 유령곡이었다.

금의상단의 자금력, 유령곡의 인력, 변칙 그 자체인 제갈승계의 기술력, 천군사의 지력, 주서천의 무력이 지금 이 순간 하나가 되어 한 가지 결과물을 냈다.

“기관이다.”

쿠구구구!

평원이 요동쳤다.

진동이 먼 곳까지 전해졌다.

“당장 이 자리에서 벗어나라!”

당명인이 뒤늦게 소리쳤으나 이미 늦었다.

현세에 지옥이 펼쳐졌다.

쿠웅!

“으아아악!”

시작은 위로 솟구친 돌기둥이었다.

거목 정도는 아니나 웬만한 나무만큼 두꺼워 넓은 범위를 자랑했다.

지상 위에서 어찌할 줄 모르던 칠성사병 무리는 밑에서 솟구친 돌기둥에 후려 맞고 나가떨어졌다.

쾅! 콰광! 콰앙!

주변의 들판은 더 이상 넓고 평평하지 않았다.

사방 곳곳에서 수맥을 건든 것처럼 봇물 터지듯 돌기둥이 모습을 드러냈다.

만약 조금만 느렸어도 신비로운 광경에 경건함을 느꼈을지도 모르겠으나 그런 여유 따위는 없었다.

돌기둥은 천재지변이나 다름없었다.

위가 아니라 아래에서부터 벼락을 맞는 것 같았다.

“도망쳐!”

“으악!”

“벗어나라!”

칠성사병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반격을 가하려 해도 실체가 없으니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저 마냥 소리만 내지르며 도망치기 급급했다.

그러나 그것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뭐야, 왜 멈춰!”

“뭐하고 있는 거야!”

암천군의 외곽, 전위 및 후위가 멈춰 섰다.

“가고 싶어도 못 간단 말이다!”

“벽이다!”

콰아아아.

바다도 아닌데 해일이 일어났다.

모래와 자갈, 풀과 꽃이 갈라지면서 흙이 몸을 일으켜 주변을 집어삼키고 뒤덮었다.

생명체이건 뭐건 간에 쓸어버리는 흙도 문제였으나 발걸음을 막은 건그 뒤로 모습을 나타낸 벽이었다.

몸집이 워낙 크다 보니 돌기둥보단 위로 올라오는 데 시간이 걸렸으나, 그런데도 쉽게 넘지 못했다.

자그마한 마을 따윈 가뿐히 쓸어 버릴 것 같은 해일 탓에 쉽게 접근할 수가 없었다.

결국, 무려 사 장에서 오 장 높이까지 올라오는 걸 손 놓고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곳이다! 벽이 없는 곳까지 뛰어라!”

“제기랄, 무리다! 여기저기 죄다 벽이라고!”

쿠구구구!

고함과 비명인 와중임에도 벽은 계속해서 올라온다.

그 위용에 칠성사병은 몸을 절로 떨었다.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질 수가 없었다.

돌기둥에 맞고 날아가 떨어져도 벽을 넘을 수 없었다.

설사 넘을 정도로 높이 올랐다 할지라도 그만큼 센 충격을 맞은 것이 되니 몸이 성하지 못했다.

“허어……”

정사의 무림인들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작전 개요를 들은 주요 인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맙소사!”

은하노사가 감탄을 그치지 못했다.

“……”

발동한 장본인인 당혜도 마찬가지였다.

놀람을 넘어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북상군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동서남북으로 하나씩 세워진 벽이 있었고 그 길이는 약 일 리였다.

기관이 아니라 장성을 쌓았다.

“누님, 누님이 부럽습니다.”

개룡, 시량이 허탈한 목소리로 말했다.

“부러워?”

단리화가 정면을 바라본 채 되물었다.

“예. 최소한 검룡이나 기룡에 비교당할 일이 없지 않습니까.

당장이라도 별호를 반납하고 싶군요.”

검룡의 상천육좌요, 지룡은 정사연합군사다.

기룡은 방금 전 앞의 둘처럼 터무니없는 수준의 괴물의 영역에 들어섰다.

창룡 남궁선유와 개룡 시량의 능력도 낮은 건 아니다.

애초에 오룡삼봉이란 건 후기지수의 정점이다.

그러나 앞의 세 명에 비교하면 태양 앞의 반딧불이었다.

경쟁을 한다 안 한다의 수준이 아니었다.

단리화는 시량의 푸념에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허미……”

“이쯤 되면 제갈세가의 방계로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괜히 공명의 후예가 아니로구나.”

“천재(天才)! 아니, 천재(天災)!”

사실, 제갈세가가 지략으로 특별하긴 하나 이 정도까진 아니었다.

유독 이 시대가 이상했다.

무림맹 군사에 그를 이을 모사, 그리고 사장된 기술을 부활시켜 천재지변을 일으킨 괴물이 있었다.

한 세대에 한 명 있을까 말까 한 인재가 한 가문에 세 명씩이나 태어난 게 이상하다.

“우, 우와……”

“도련님께선 도대체 뭘 만드신 거지?”

“미쳤군.”

금의검문 소속 무사들도 할 말을 잃었다.

“도대체 저게 뭔가?”

은하노사가 당혜에게 물었다.

“기관, 지상미궁(地上迷宮).”

당혜가 물음에 답했다.

“장치를 발동하면 지하에 숨겨 두었던 미궁을 구성하는 벽과 돌기둥이 위로 올라가요.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곳에 장성, 아니 미궁을 세워 적을 가두죠.”

당혜도 개요를 들었을 땐 두 귀를 의심했다.

과연 사람의 영역으로 가능한 일인지 의구심이 절로 들었다.

도리어 순진하게 믿는 게 이상하다.

“그뿐만이 아니에요.”

“더 있단 말이오?”

주변이 질린 기색을 내보였다.

돌기둥이 수십 개씩이나 솟아나고, 벽으로 가둔 것만으로도 경악했다.

“미궁의 내부는 돌기둥 탓에 미로처럼 얽혀 있어요.

수가 워낙 많다보니 시야가 가려져 있거든요.

또 둘레가 상당하다 보니 사이가 협소해 대군이 빠져나가기에는 시간이 걸려요.”

“그러면, 돌기둥을 타고 오르면 되지 않습니까?”

당가의 호위 무사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일반 사람이라면 오르는 것이 불가능하나 무림인은 다르다.

보법과 경공이 있다.

“오를 수 있다면.”

의미심장한 답변이 돌아왔다.

“으아악!”

“기둥을 건드리지 마! 함정이다!”

“케헥!”

때에 맞춰 지상미궁에서 비명이 흘러나왔다.

만약 내부의 상황을 볼 수 있었더라면 질문을 던진 당가의 무사는 듣지 않아도 이해했을 것이다.

돌기둥을 오르는 것까진 좋았다.

그러나 중턱쯤 닿으면 함정이 발동됐다.

푸슛! 팟!

“켁!”

돌의 틈을 붙잡고 오르던 칠성사병은 복부에서 화끈한 통증을 느끼고 시선을 아래쪽으로 돌렸다.

꼬챙이였다.

쇠로 된 꼬챙이가 가시처럼 돋아나 복부에 구멍을 낸 뒤, 할 일을 끝냈다는 듯 되돌아갔다.

“기둥을 오르지 마라!”

“벽이다! 벽으로 향해!”

“독이다! 해독제를 삼켜!”

지상미궁은 기관 천지였다.

돌기둥이나 벽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땅을 잘못 밟으면 독연이 뿜어져 나오거나, 창살이 솟구쳤다.

그래도 어찌어찌 함정을 피하고 동료의 시체를 발판 삼아 벽까지 도착하는 데 성공했다.

“벽이다!”

“내가 먼…… 크아악!”

참상이 벌어졌다.

“저, 저게 뭐야!”

“기룡! 이 개새끼야!”

벽에 일정한 곳에 힘이 가해진 순간, 상어가 수면에 지느러미를 내보인 것처럼 칼날이 나타났다.

반달 모양의 칼날이었다.

게다가 장치의 연결 부위를 통해 힘을 받아 세차게 회전해 위협적이었다.

하나도 아니고 수백에 이르렀다.

없는 곳이 없었다.

높이도 높이지만 함정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설계자의 악의밖에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절망만 있는 것만은 아니었다.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문이다!”

“탈출구가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빛을 찾았다.

그 심경은 말로 헤아릴 수 없었다.

암천군은 벽 구석에 자리한 거무튀튀한 문을 발견하곤 빠르게 달려갔다.

‘그래. 문이 없을 리가 없다.’

설치 및 보수 등 관리를 위해선 지상미궁으로 진입해야 한다.

출입구 없는 미궁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수백에 이르는 칠성사병은 물 만난 물고기 떼처럼 신난 듯이 문 앞으로 모여들었다.

“비켜! 부순다!”

개양성 소속의 고수가 창으로 혼신의 찌르기를 쏘았다.

무력을 담당하는 만큼 창날에 강기를 실었다.

그는 문이 우지끈 구겨지리라 의심치 않았다.

째애앵!

“이, 이럴 수가?”

주름 가득한 얼굴이 일그러졌다.

희끗한 수염에 동요가 전해지며 파르르 떨렸다.

문은 멀쩡했다.

구겨지지도 부서지지도 않았다.

강기가 부욱 그어지며 흠집이 났지만 그뿐이었다.

“하, 한철?”

“도대체 돈을 얼마나 쓴 거야!”

믿을 수가 없었다.

그 귀한 한철을 고작 문을 만드는데 쓰다니……

정말 돈지랄도 이런 돈지랄이 없었다.

심지어 한철은 다룰 수 있는 장인도 몇 없었다.

“안 돼! 이럴 순 없어!”

암천회가 절규했다.

“으아악! 안 돼!”

현세에 펼쳐진 지옥에서 아비규환이 울려 퍼졌다.

탈출구는 없고 함정은 끝없이 이어졌다.

정신적인 압박감이 심하다 보니 길을 잃기도 했다.

기둥을 오르려면 쇠꼬챙이가 나타났다가 모습을 감추고, 벽을 타면 회전하는 칼날을 맞이했다.

한철로 된 문은 부풀어 오른 희망과 기대를 절망으로 만들었다.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모를 화살 비도 극악이었다.

정말로 무서운 건 이 지옥을 만들어 낸 장본인, 제갈승계는 정작 이 자리에 없다는 점이었다.

사용법만 가르쳐 주고 직접 발동하지도 않았다.

‘이 정도일 줄이야.’

주서천도 감탄을 삼켰다.

‘그러나 다시는 시도할 수 없겠네.’

지상미군은 최대이자 최악의 전쟁병기다.

‘암천회라는 공공의 적이 있었으니 망정이지, 무림 사회 통념상 이런 것이 튀어나오면 반발이 나올 수밖에 없다.

아니, 그 전에 정말로 비효율의 극치다.’

사회의 인식도 인식이지만 자금과 인력이 문제다.

‘아무리 금의상단이라 할지라도, 지금처럼 대규모적인 기관 장치는 돈이 너무 많이 든다. 설사 만든다 한들 유도나 발동도 골치 아파.

돈을 벌기 위한 투자도 아니니 그 돈벌레가 치를 떨었겠군.’

이의채가 지출 내역의 서류를 보고 부들부들 떨 게 눈에 훤했다.

“그래도 장하다, 승계야.”

주서천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네 덕에 별다른 피해 없이 승리할 수 있었다.”

귀주에서부터 시작해 합비, 그리고 화산파와 이 지상미궁까지 합해 피해를 최소화하고 적을 무찔렀다.

고야말로 신위(神威)였다.

“소란이 끝난 뒤에 몇몇 사람들만 절 따라오십시오.

안으로 진입하겠습니다.”

“누가 살아 있지도 않을 텐데 어째서죠?”

단리화가 이해가 안 가는 듯 물었다.

“당명인, 천추는 그리 쉽게 죽을 자가 아닙니다.”

주서천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주검을 확인하지도 못했는데 ‘죽었겠지?’ 라거나 ‘죽었을 거야.’라고 판단하는 건 위험한 생각입니다.”

주서천은 암천회를 상대로 결코 방심하지 않는다.

예측 따위는 없다.

확신도 없다.

결과만을 원한다.

직접 보고 확인해야 불안이 가신다.

* * *

“쿨럭!”

무곡이 울컥 피를 토해 냈다.

지면에 기검을 박고 몸을 지탱했다.

맥은 너덜너덜하고 온몸에선 피가 흘렀다.

근육은 찢어진 지 오래며 앞을 가린 시야는 흐릿해졌다.

심장이 ‘쿵쿵’ 하고 뛰었다.

오른손에 쥐고 있던 철검은 박살난 지 오래였다.

“설마.”

무곡의 얼굴에는 피로함 대신 놀라움이 묻어났다.

“이 정도일 줄이야……”

놀라웠다.

그저 놀랍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아쉽도다.”

암천회주가 무곡을 내려다보았다.

“그대를 조금이라도 빨리 발견했다면, 주서천이 손을 대기 전에 오른팔로 삼았을 텐데 말이야.”

빈말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암천회주는 무곡의 실력을 보고 순수하게 놀랐다.

“사람의 영역을…… 벗어났군.”

무곡이 힘겹게 목소리를 쥐어짜 냈다.

“알아보았나?”

암천회주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번졌다.

“역천(逆天)…… 인가.”

“훌륭하도다. 내 특별히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암천회주가 손에 쥔 검을 들었다.

“고통스럽지 않게 죽여 주는 걸 감사히 여겨라.”

“……”

무곡은 죽음이 임박한 걸 느끼고 체념한 듯,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언제나, 의문이었다.’

주서천의 얼굴이 떠올랐다.

‘서른은커녕 이십대 중반도 되지 않아 현경의 성취를 이룬 괴물이신 은공께서, 그리 경계하던 이유가.’

주서천은 무곡 및 신뢰할 수 있는 주변인들에게 암천회와 그 주인에 대해 끊임없이 경고해 왔다.

‘이자는 현세의 법칙을 거슬렀다.’

몸을 지탱해 주던 기검이 점차 흐릿해졌다.

‘선화야……’

생명의 불꽃이 희미해진다.

빛이 꺼져갔다.

‘이제 와서 죽는 것 따윈 두렵지 않다.

다만, 딸의 곁을 지켜 줄 수 없는 것이, 더 이상 얼굴을 보지 못할 것이 두렵구나.’

역천의 괴물을 상대하러 은 건 후회하지 않는다.

주서천이 무선화의 목숨을 구해 준 순간, 이 한 몸을 맡기리라고 맹세했다.

다만 어린 딸을 두고 떠나야 하는 것이 아비로서 후회스러웠다.

‘은공.’

붉게 달아오른 노을빛이 검의 그림자에 가려졌다.

암천이자 역천의 검이 머리 위로 내려왔다.

‘선화를 잘 부탁하겠소.’

무곡은 최후의 최후까지 무선화를 걱정했다.

부웅.

검날이 무곡의 머리카락을 가른 순간.

쩌적!

노을빛에 뜨겁게 달궈지던 땅바닥이 얼어붙었다.

쐐액!

측면에서부터 손바닥이 하얗게 빛나며 날아왔다.

“……!”

암천회주의 눈썹이 구부러졌다.

손에 쥔 검의 반응 속도는 재빨랐다.

순식간에 검로를 직각으로 꺾어 받아쳤다.

콰앙!

부딪친 순간, 물줄기가 수면 위를 후려친 것처럼 공력이 물방울처럼 떠올랐다가 충격파를 쏟아 냈다.

쩌저적!

백색의 파도가 주변을 슥 훑자 변화가 일어났다.

푸른 잎을 지닌 나뭇가지에 서리가 끼는 것이 시작이었다.

서리는 마치 전염병처럼 퍼져 나무줄기 전체에 번졌다.

수백 년을 산 나무가 얼음 조각처럼 변하는 건 얼마 걸리지 않았다.

휘이잉!

북풍한설이 부는 듯한 추위가 느껴졌다.

대기의 온도가 떨어지는 걸보니 비유가 아닌 사실이었다.

“이건……”

무곡이 어느새 눈을 뜬 채 놀라운 기색을 보였다.

폭풍우가 지나간 것처럼 엉망이었던 주변의 모습이 변했다.

난장판이 아닌 얼음으로 된 조각 같았다.

조각이나 그림 등 예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문외한이 봐도 놀라워 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빙백신장.”

암천회주가 북해신공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붉은 빛깔이 감도는 눈에 무표정한 절세미녀가 비쳐졌다.

“북해궁주.”

“그렇다.”

절세미녀가 안광이 청백색으로 은은하게 빛났다.

“본 녀가 빙궁의 주인, 냉악비다.”

검의 몸체에 닿은 손바닥에 힘을 준다.

대답을 끝으로 암천의 검을 밀어 치려 했으나 꼼짝도 하지 않았다.

냉악비는 당황하지 않았다.

놀라지도 않았다.

감정이라 불리는 것들은 옛적에 육체와 함께 얼었다.

머리를 굴릴 틈도 없었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북해에 비하면 후덥지근한 걸 넘어 사막처럼 느껴질 중원의 기후임에도 빙한기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치 북해에 있는 것처럼, 그대로의 위력을 낸 서릿바람이 오른손에서부터 흘러나와 검을 붙잡았다.

휘리릭!

오른발을 반 보 내딛은 뒤, 그대로 축으로 삼아 몸을 반 바퀴 회전했다.

급격하게 떨어진 기온에 의해 얼어붙었던 풀잎이 밟히면서 산산조각났다.

동시에 왼손을 쭉 뻗었다.

팔의 관절이 쫙 펴졌다.

일반인이라면 평소에 쓰지 않은 근육이 저릿했을 것이다.

팔에서부터 상완근, 옆구리 전체 근육이다.

그러나 냉악비는 어떠한 저항도 느끼지 못했다.

일흔이 넘는 냐이임에도 소녀처럼 유연한 몸이었다.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모였다.

굳은살 하나 없는 손바닥이 회주의 얼굴을 덮으려 던 찰나였다.

휙!

암천회주가 목을 옆으로 까딱여 피했다.

빙백신장은 북해빙궁의 신공인 만큼 터무니없는 위력을 지녔다.

그러나, 내가중수법인 장법이 으레 그렇듯, 직격하지 않는다면 딱히 문제는 없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대성하지 않을 경우다.

쩌저적!

손바닥 주변의 대기 온도는 차갑게 가라앉았다.

빙한기가 어찌나 차갑던지 얼어붙기까지 했다.

암천회주의 목에도 서리가 끼었다.

옆으로 까딱이면서 돋아난 힘줄이 눈 덮인 산의 언덕처럼 보였다.

이대로라면 척수에까지 영향이 가 뇌에 문제가 생길지 모른다.

“하찮군.”

암천회주가 어림없다는 듯 목에 힘을 줬다.

쨍그랑!

표면을 덮었던 미세한 눈 알갱이가 잘게 부서지더니만 꽃잎처럼 흩날렸다.

슥!

오른손에 잡혔다고 생각했던 검도 떠나갔다.

빙판 위를 미끄러지듯, 스쳐 지나가 그녀의 허리를 노렸다.

냉악비가 동공만 옆으로 굴려 검을 확인했다.

‘빠르다.’

단순히 빠르다고 말할 수준이 아니다.

현경의 동체 시력 및 감각으로도 아슬아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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