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六章 (237/254)

“칠백오십 명인가. 천수천안은 무리로군.”

서문세가 육백 중에서 오백을 데려왔다.

적은 수는 아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천수천안은 한 손에 눈 하나이니, 이미 충분하외다.”

홍진이 인자하게 웃었다.

“재수 없는 중놈.”

서문이진이 혀를 차곤 앞을 바라봤다.

손일산의 희생이 그래도 아주 쓸모없던 것은 아니었는지, 삼천에 이르는 적이 삼백 정도 줄었다.

암천회주가 선봉인 걸 감안하면 나름 나쁘지 않은 피해였다.

죽음을 결사한 덕분이었다.

“들어라!”

서문이진이 외쳤다.

“눈앞의 적은 강하다! 터무니없이 강하다!

그야말로 재앙이요, 무력의 화신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막아내는 것이 전부다!

우린 분명 죄다 뒈질 게 분명하다!”

죽는다.

지휘관이 대놓고 죽는다고 말했다.

“검신도 패신군도 오지 않는다! 원군은 없다!

이대로 저들과 맞붙는 건 미친 짓이요, 자살 행위다!”

그런데 그 누구도 동요하지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그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런데도 왜냐! 우리는 왜 이곳에 있는가?”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앞을 바라보며 결의를 삼킨다.

‘말한다면……’

‘적어도, 명예롭게 죽을 수는 있을텐데.’

죽는 것은 두렵다.

아무런 의미 없이, 개죽음을 당하는 건 더더욱 싫다.

만약 이 자리에서 학살을 막기 위해,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라고 외친다면 마음이 놓일지도 모른다.

숭고한 목적이 있다면 힘껏 싸울 수 있다.

하지만…… 말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개죽음이다.

목적은 암천회가 무고한 사람들이 모인 마을을 해치지 않도록 하는 것 그뿐이다.

다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어 침묵을 지켰다.

“됐다.”

서문이진의 목소리가 조용하게 울렸다.

“그거면 됐습니다.”

홍진이 그다음 말을 잇는다.

“누군가는 우리를 기억해 줄 겁니다.

사람의 역사가 으레 그렇듯, 기억할 것입니다!”

“역사가 으레 그렇듯, 결국 한두 줄로 기록되고 끝날 것이다! 그리고 몇 년도 되지 않아 잊겠지!”

정사는 오랫동안 대립해 왔다.

공공의 적이 나타났다고 한들, 무력이 부족해 손을 잡았을 뿐이다.

진정한 화합을 이루진 못했다.

당연하다.

사상도 사고방식도 다르다.

셀 수도 없는 세월 동안 반목해온 이들이 쉽게 화해할 리 없다.

“사람(人)이란, 서로 등을 기대고 돕는 것!”

정파인은 이상주의자다.

“사람(人)이란, 두 다리로 혼자 서는 것!”

사파인은 실리주의자다.

“남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십시오!”

“나를 위해서 목숨을 버려라!”

이 세상엔 아무런 연고도 없는 사람을 위해 희생하는 이들이 있다.

불길 속에 갇힌 아이를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지는 사람도 있고, 범죄자와 싸우다 죽는 이들도 존재한다.

또는 이해득실에 상관없이 그저 도와야겠다고 생각해서 돕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고리고 지금, 그 목적으로 정사는 하나가 됐다.

“정파의 소림사다!”

“사파의 서문세가다!”

와아아아아!

정사의 무인들로부터 함성이 뿜어져 나왔다.

그 누구도 본래의 목적을 말하지 않았지만, 그 답답한 마음을 대신 말하는 듯이 외쳤다.

칠백오십 대 이천칠백.

수적으로 유리한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상천이라는 이름의 든든한 아군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 뒤의 운명은 정해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기는 떨어질 생각이 없었다.

“기세만큼은 볼만하구나.”

암천회주는 시종일관 여유로웠다.

“방장과 뇌승도는 어떻게 하옵니까?”

“죽을 걸 알고도 온 놈들이니 잡아도 나오는 건 없다.

내가 알아서 하마.”

“알겠습니다.”

“죽여라.”

우오오오!

회주의 명에 암천회도 받아치듯 함성을 질렀다.

무림인인 만큼 성량도 보통이 아니었다.

퍼드득!

곳곳에 모습을 감추고 있던 산새가 놀라 한꺼번에 날아올랐다.

무더기로 날갯짓하며 내는 소리는 천둥을 연상케 했다.

부리 안에서 흘러나오는 울음소리는 지저귀는 것이 아닌 비명이었다.

“암천회!”

“소림사의 땡중 새끼가!”

“서문세가, 이 잡졸 주제에!”

“죽어라!”

사방에서부터 고함이 터졌다.

격전이 시작됐다.

수에서 워낙 차이가 나다 보니 금세 밀릴 것이라 생각했으나, 큰 오산이었다.

의외로 잘 버텼다.

“소림사!”

괜히 북두소림이 아니다.

중원 무학의 중심이라 일컬어지는 소림사의 무승답게 기세만이 아니라 실력 또한 뛰어났다.

목숨을 각오한 만큼 쉽게 밀어내지 못했다.

“백팔나한이다!”

무엇보다 소림, 아니 무림 최대이자 최후의 무력 집단인 백팔나한의 존재감이 보통이 아니었다.

화산파에 매화검수가 있다면 소림사엔 백팔나한이 있다.

사실상 그 위상은 매화검수보다 높으며 정사마 할 것 없이 전 무림에서도 손꼽히는 무력 집단이었다.

굳이 허초나 속임수를 쓰지 않더라도 강했다.

암천회의 개양성이라도 정면 승부는 부담스러울 정도다.

“죽어랏!”

칠성사병이 무승의 등 뒤를 노리고 검을 찔렀다.

“어딜!”

서문세가의 무사가 어림없다는 듯, 무승의 등 뒤를 노린 검을 쳐냈다.

“뒈져랏!”

무사가 발끝으로 땅을 쳐냈다.

흙먼지가 검을 회수하려던 칠성사병의 얼굴을 뒤덮었다.

“케헤엑, 이 비겁한 새끼!”

“안다!”

서문세가의 무사가 코웃음 치더니만, 얼굴을 붙잡고 괴로워하는 칠성사병의 목을 쳐냈다.

“고맙소!”

“등 뒤를 잡히지 않으려면 지형을 이용해라!

나무가 많으니 등을 지고, 언덕이 가파르니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는 것도 좋다!”

소림사는 정파답게 본연의 실력이 순수하게 강하여 정설대로 싸우는데 익숙했다.

서문세가는 사파답게 본연의 실력을 포함하여 각종 여러 전법을 응용하고 환경을 능수능란하게 다뤘다.

숨 쉬는 법은 물론이고 사고방식, 동작 등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정사인이다.

동일하게 화합을 이루는 건 불가능했으나, 각자 장단점을 보완하여 도울 수 있었다.

그러나 여유롭지는 못했다.

쉽게 무너지지 않은 건 결사의 각오에 임해서 처절하게 싸웠기 때문이었다.

“소림의 방장이여.”

암천회주가 언덕 위를 느긋하게 올랐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본 회에 굴복하고 길을 연다면 내 소림사만은 명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약조하마.”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홍진이 합장하며 의연하게 답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지은 죄를 인정하고 반성하여, 이 전란을 끝내십시오.”

“그래. 그리 말할 것이라 생각했다.”

암천회주가 피식 웃으면서 검을 뽑았다.

“그러고 보니, 권승과 신승이 그대의 사형과 스승이었던가.

여유가 있다면 그 진실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었을 터인데, 그러지 못하는 것이 조금 아쉽구나.”

“진실?”

홍진이 반응을 보였다.

“휘둘리지 마라.”

서문이진이 홍진의 옆에 선 채로 경고했다.

“멍청한 중놈아, 거짓을 일삼아 혼란케 하는 모략이 암천회의 특기란 걸 벌써 잊은 거냐.”

서문이진이 도를 꽉 쥐면서 전투태세에 임했다.

“정파의 기둥이란 자가 그리 쉽게 흔들리지 마라.”

“하하하, 모략이라고?”

암천회주가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내 굳이 너희에게 그렇게까지 노력을 할 필요가 있겠느냐.”

‘분하지만 맞는 말이다.’

서문이진이 이를 악물고 생각했다.

‘괴물이라곤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뺨 위로 땀방울이 주르륵 흘렀다.

여름이 끝났다고 하지만 추워도 너무 추웠다.

한겨울처럼 오한이 들었다.

대적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근육이 절로 떨려 왔다.

‘경지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절대고수는 반박귀진이라 하여 도리어 평범한 사람처럼 보인다고 한다.

그만큼 차이가 심해서다.

그러나 암천회주는 달랐다.

평범한 사람으로 보이기는커녕 앞에 선 것만으로도 압도됐다.

힘을 주체할 수 없는 게 아니다.

‘이 괴물은 애초에 그럴 생각이 없는 거다.’

심연.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헤어날 수 없었다.

“방장. 목적을 유의해라. 공격보단 수비다.”

패배는 확정됐다.

암천회주에겐 치명상은커녕 상처 하나 낼 수는 있을지 의문이다.

“그러니 최대한 막……”

말을 잇지 못했다.

“막는다고?”

암천회주가 코앞에 나타났다.

‘언제?’

서문이진이 속으로 입을 쩍 벌렸다.

뇌승도는 사파에서도 소수에 속하는 고수다.

서문세가의 수장답게 화경의 경지이며 천하백대고수였다.

무공은 물론이요 신체 능력 역시 보통이 아니다.

동체 시력도 동체 시력이지만 기감, 즉 무인 특유의 의념이나 기척을 감지하는 능력도 넓고 빠르다.

그런데 그 능력에 조금도 잡히지 않았다.

전설의 암살 집단인 유령곡처럼 실체가 사라졌다가 나타났다.

“무공의 극의라 해 봤자 결국 한낱 사람일 뿐이다.”

속마음을 읽은 것처럼 말하자 가슴이 철렁였다.

“막을 수 있다면 막아 봐라.”

암천의 검이 흐릿해졌다.

‘이렇게 어이없이 죽는다고?’

새삼 스스로의 선택에 후회가 들었다.

방금 전 홍진에게 잘난 듯이 말한 게 바보 같았다.

막아서기는커녕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사람에게 짓밟히는 개미와도 같았다.

서문이진도 끝까지 단념하지는 않았다.

오랫동안 단련된 신체가 적의 공격에 반응해 주었지만, 늦었다.

아니, 사실 딱히 늦은 건 아니었다.

서문세가의 도법은 패도적이고 빠르다.

느리기는커녕 빠른 측에 속했다.

그러나 상대가 안 좋아도 너무 안좋았다.

하지만 적수가 안 좋아도 너무 안좋았다.

상천육좌 중 암천의 검이 하필이면 쾌검이었다.

‘이런, 젠……’

생각을 잇기 전이었다.

어둠을 밝히듯 눈부신 빛이 뿜어졌다.

콰앙!

빛이 앞을 가리는 동시였다.

뇌가 흔들릴 정도의 폭음이 고막을 후려치면서 폭발이 일어났다.

시야가 희뿌옇게 일그러진 건 잠시였다.

무림 고수답게 흐려진 초점이 금세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제야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홍진!”

“괜찮으십니까!”

암천의 검이 목에 닿기 전, 측면에서부터 손의 형태를 한 잔상이 파고들어 아슬아슬하게 막아 냈다.

소림사의 절세무공이자 전전대 방장, 신승의 절기로도 이름 높았던 무공이다.

“천수구공.”

암천회주가 흥미롭다는 듯이 쳐다봤다.

“빠르기는 없을 무공일 터인데?”

괜히 현경을 하늘에 빗대어 칭하는 것이 아니다.

기본적인 신체 능력을 시작해 전부 인간을 초월했다.절대고수도 아니요, 하물며 쾌의 무공도 아니거늘 순간에 맞춰서 완벽하게 막은 것이 의문이었다.

홍진은 암천회주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불리한 걸 넘어 절망적인 처지다.

적에게 도움이 될 만한 발언을 할 리가 없다.

“아, 과연.”

암천회주가 무언가 떠올린 듯 감탄했다.

무림 입장에서 불행히도 그는 무력만이 아니라 우수한 두뇌까지 소유했다.

금세 원인을 알아냈다.

“쫓아온 것이 아니라 대비한 건 칭찬하마. 어찌 예상한지는 모르나 본인이 아닌 뇌승도부터 지키다니.”

서문이진이 그 말에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홍진은 수긍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남을 위해서 목숨을 버려라, 인가.”

암천회주가 조소를 흘렸다.

“숭고하고 고결한 신념이나, 그 탓에 신세를 망칠 것이니.”

‘안 돼!’

서문이진이 이를 악물고 도를 사선으로 그었다.

비록 위력이 낮고 기초적이나, 재빨리 펼칠 수 있어 급박한 상황에 제격인 섬전삼도(閃電三刀)였다.

채앵!

검과 도가 부딪치면서 마찰음을 길쭉하게 낸다.

암천회주의 동공은 신승의 후인에게 고정됐다.

섬전삼도의 화려한 번갯불도 그의 시선을 끌지 못했다.

암천회주가 왼손을 뻗는다.

아니, 뻗어 있었다고 표현하는 게 알맞다.

“어디, 눈이 없어도 그 잘난 신념을 지킬 수 있는지 봐야겠다.”

호수처럼 맑고 깨끗한 눈동자.

그위로 검처럼 쭉 뻗은 중지와 검지가 거울에 반사된 것처럼 비쳐졌다.

푸욱!

“아아아아악!”

천수구공의 합장이 풀렸다.

홍진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싸며 절규를 토해 냈다.

신체의 일부를 잃은 고통으로 인한 비명이었다.

손가락 사이로 그 너머를 언뜻 볼 수 있었다.

눈두덩이 안에 있어야 할 것이 없었다.

눈물 대신 핏물이 흘러내렸다.

“방장!”

서문이진이 홍진의 목덜미를 낚아채고 물러섰다.

“소림의 방장이여, 구제해야 할 중생이 보이는가?”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그럴 리가 없지.”

달콤하기는커녕 쓰기만 하다.

“눈꺼풀을 들어 올리면 불에 타들어 가는 고통만 느낄 것이며, 그 어떠한 것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기대하면 배신당한다.

희망을 가지면 절망한다.

기적이란 건 이룰 수 없는 희망이요 거짓이다.

“왜냐하면 현실을 보지 못한 그 눈깔은 흙바닥을 구르고 있기 때문이다.”

홍진과 서문이진은 화경의 고수다.

결사의 각오를 지닌 만큼 강하나 결국은 화경이다.

그 위의 단계이자 사람의 한계를 넘어선 절대고수에게는 닿지 못했다.

꿈이나 의지만으로 어떻게 해낼 수 있었더라면, 무림에는 절대고수가 진작 수두룩했을 것이다.

“결사하면 무언가 달라질 것이라 생각했나?”

암천회주가 아래로 늘어뜨린 검을 천천히 올렸다.

“그럴 리가.”

입가에 맺힌 조소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얼굴에 드러난 건 무감정이었다.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주변이 어두워지는 착각이 들었다.

머리카락 아래에 그림자가 드리운다.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흰자위가 시커멓게 보였다.

“염라가 어찌 왔냐고 묻는다면, 몽매함 탓이라고 답하여라.”

암천회주의 검이 모습을 감추려던 찰나였다.

“급보! 급보입니다!”

다급한 외침이 암천회주의 움직임을 멈췄다.

“본부에서부터 작전상 후퇴하라는 지시입니다!”

암천회주의 눈썹이 미세하게 구부려졌다.

암천의 주인에게 지시를 내린 것이 괘씸해서가 아니었다.

‘무슨 일이 벌어졌군.’

군사인 천기는 아무런 이유 없이 지시 사항을 내리지 않는다.

결과에는 원인이 있듯이 생각이 있다.

암천회의 권위자는 단연 회주 본인이다.

그러나 군사나 작전권에 한해서는 천기가 쥐고 있었다.

이와 같은 사항을 정한 건 장기화된 독재로 인한 불만이나 반란을 두려워해서도, 수뇌부의 의견에 따라 작전권을 반강제적으로 빼앗긴 것도 아니다.

녹존이라는 이름의 한림원 출신 학사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총괄을 위임하였다.

암천회주가 무서운 건 무력도 무력이지만, 오만한 독재자로 보여도 대업을 위해선 자존심 따윈 얼마든지 버린다는 점이었다.

이의채가 사람이 원하는 것을 알아 잘 다룬다면, 암천회주는 적재적소에 능했다.

“또 다른 말은?”

“남부 전선이 대패했습니다. 남부의 정사 연합이 현재 합비의 본부로 북상 중이라 합니다.”

“장강이 있으니 그리 쉽게 건너진 못할 텐데.”

“홍하랑의 패배 후, 적림십육채가 패퇴했습니다!”

암천회주가 심기가 좋지 않은 듯, 눈썹을 찡그렸다.

합비를 탈환하면 정사 연합의 사기가 다시 치솟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곳엔 천기가 있으니……’

모처럼 비축해 둔 군량이나 병기도 아깝지만, 천기의 목숨이 신경 쓰인다.

암천회의 두뇌이자 대업의 근간인 천기를 어이없이 잃을 수는 없었다.

아쉽지만 군사를 물리기로 했다.

‘살아남았나?’

서문이진이 순간 희망을 품었다.

“적들은 얼마나 남았느냐.”

“어림잡아 삼백에서 사백입니다.”

“좋다. 이후 복귀하는 동안 부대의 지휘는 천기성이 맡는다.”

“회주께선……?”

“반절 정도는 없애 버리고 따라가겠다.”

희망이 다시 절망으로 변한 순간이었다.

약 한 시진 전.

드넓게 펼쳐진 평원의 위로 새가 지나갔다.

수평을 그려 내는 암청색의 날개가 바람을 가른다.

하얗게 물든 배 위로 검은색 가로줄 무늬가 멋지다.

발톱처럼 뾰족한 부리, 먹잇감을 노리는 눈은 매섭기 그지없었다.

잘 훈련된 비둘기와 비교하기엔 그 수준을 달리할 정도로 빠르다.

전서를 쥔 매가 평원을 지나쳤다.

전서응은 그대로 쭉 남하하여 안휘의 성도, 합비의 화려한 전각 중 한곳에 내려앉아 창을 두드렸다.

“주서천이 북부에 없다고?”

천기의 눈동자가 좌우로 움직이며 서신을 읽었다.

북부 전선에서 온 소식은 주서천의 부재였다.

“북부 전선에서 확인된 정보가 거짓이었던 건 둘째 치고, 남부도 북부에도 발견되지 않았다……”

천기는 빈틈을 허용치 않는 천재다.

쉽게 자만하지 않으며 결과가 나오기 전까진 경계심을 풀지 않는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사람이 바로 천기였다.

그 점이 이번에는 안 좋게 적용됐다.

‘설마, 본부로 오는 건가?’

천기는 중앙에서 북부와 남부의 조율을 위해서 합비에 남았다.

남부엔 목하흑, 북부엔 지략에도 일가견 있는 암천회주나 천추가 있으니 믿고 맡길 수 있어서였다.

문제는 그 남부가 해남 세력의 등장으로 손도 대지 못할 정도로 순식간에 괴멸해 버렸지만 말이다.

“……”

천기는 고심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전장이다.

한가하게 책상머리에 앉아서 고민만 할 수는 없다.

판단은 내려야 했다.

가정이 가정을 낳고, 의문과 의문이 물렸다.

머리를 가득 메운 상념이 실타래처럼 엮이기도 했다.

그리고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은 암천북군의 일부 복귀였다.

‘천추의 부대는 멀다. 서둘러 복귀해도 아슬아슬하게 도착할지 모르니 회주님 의 부대를 부르는 게 낫다.’

암천회는 무림맹의 구 본부를 거점으로 삼아 한동안 전력 보강에 나섰다.

합비를 본부로 삼으면서 각지에 흩어진 무공 비급을 가져다 두고, 그 외에도 군자금 등 전쟁이 필요한 것들을 모아 재정비했다.

‘쉽게 포기할 수는 없다.’

원래는 딱히 이렇다 할 본부가 존재하지 않았다.

암천회의 전신인 관료들은 황제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 중원 곳곳에 은신처를 마련해 두었다.

그 외에도 혹시라도 발각되어 추적당하지 않도록 언제든지 꼬리를 자르기 위해 본부를 두지 않았다.

“주서천, 뭐하고 있느냐.”

달리는 중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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