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四章 (235/254)

중원, 어딘가.

축축했던 옷은 마른 지 오래였다.

이무기에게는 다시 제갈수란에게로 되돌아가라고 말한 뒤, 곧장 달렸다.

불길하다.

마음 같아선 어디 들러 북부의 정보를 듣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시간조차 아까웠다.

그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달려 도착해야 했다.

식욕이나 수면욕조차 억제해 쉬지 않고 달렸다.

머리카락이 바람 탓에 뒤로 넘어갔다.

도복 자락이 바람에 흩날려 펄럭였다.

생각에 잠기면 좋지 않은 상황이 떠올랐다.

주서천은 머리를 털어 잡념을 지워내면서 속도를 올렸다.

암흑이 찾아왔다.

무저갱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이었다.

적의 모습은커녕 윤곽조차 희미했다.

불행 중 다행인 건 바로 곁 정도는 보인다는 점이었다.

등을 맞댈 사람 한두 명 정도는 있었다.

“춥군……”

무림맹 소속 무사가 무심코 중얼거렸다.

빛의 부재는 앞이 보이지 않는 답답함뿐만 아니라, 햇볕을 가져가 저온을 선사했다.

살갗이 으슬으슬하게 떨려 온다.

피부 위로 닭살이 돋아났다.

꿀꺽.

누군가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채애앵!

시작을 알리는 쇳소리가 독 구름안에서 울려 퍼졌다.

“크아아악!”

“적이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시커먼 어둠이었다.

절규의 외침을 기점으로 난전이 시작됐다.

“제 뒤에 계세요.”

낙소월이 당혜를 등 뒤로 보냈다.

“누군가에게 가만히 보호만 받는 건 성격에 안 맞는데.”

당혜가 탐탁지 않은 듯 눈썹을 찡그렸다.

“그럴 때가 아니란 걸 알고 계시죠?”

낙소월이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주변을 경계했다.

화경의 고수답게 발달된 신체 능력을 사용했다.

시각을 포기하되, 그 외의 감각에 의지한다.

청각이나 후각은 물론이요,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진동으로도 파악이 가능했다.

“안법 (眼法)을 썼는데도 앞이 보이지 않네요.”

무림인은 내공을 사용해 시력을 상승시킬 수 있다.

좀 더 넓고 멀리 볼 수 있으며, 어두운 곳에선 낮처럼 훤히 보는 것도 가능하다.

“빛이 사라진 게 아니라, 외부적인 요인으로 차단된 거야. 벽이 앞을 가리고 있다고 생각하……”

휘리릭!

당혜가 말을 잇기 전이었다.

독으로 된 구름 속에서 바람 가르는 소리를 내며 비수가 날아왔다.

낙소월은 검 대신 손을 번개같이 뻗어 날아온 비수를 낚아챘다.

칼의 끝이 당혜의 코앞에서 멈췄다.

“실존하지 않는 벽이란 게 흠이네요.”

낙소월이 비수를 보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약을 복용했다곤 하지만, 독을 바른 암기에 직접적으로 당하면 위험하니까 그런 짓은 그만둬. 약관으로 화경의 경지를 이루었다고 자만에 찬 거야?”

“아, 걱정해 주셔서 고마워요.”

낙소월이 아무렇지 않게 독설을 받아쳤다.

“그 사형과 그 사매라더니……”

당혜가 불만인 듯 중얼거렸다.

콕 집어 말할 수 없으나, 가끔씩 이렇게 보면 닮은 점이 보인다.

말 하나하나에 대답하거나, 혹은 남들이라면 위험천만한 상황을 아무렇지 않게 타파했다.

“후후. 그리 닮았나요?”

낙소월이 어딘가 모르게 기뻐하는 듯이 웃었다.

당혜는 그 웃음이 더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

휘리리릭!

잡담도 잠시였다.

암기의 주인으로 추정된 흑의 무인 무리가 접근해 왔다.

구름을 가르면서 날아온 건 암기가 아닌 칠성사병.

복면으로 코와 입을 가린 채 직접 비수를 들고 공격해왔다.

“하아압!”

낙소월의 기세가 변했다.

평소처럼 청순하고 부드러운 분위기는 없었다.

검을 쥔 손목을 튕기면 적의 몸에 검상이 부욱 그어졌다.

붉은빛이 보이진 않았지만 핏방울이 튀었다.

“당가는 뒤로 물러나라!”

위지결이 고함쳤다.

“화산파는 당가를 곁에서 지킨다!”

독과 암기가 특기인 당가는 근접전에 알맞지 않다.

당혜처럼 독장 등 근접전에 익숙한 독인도 있으나, 그리 많진 않아 함부로 나서지 않는 게 현명했다.

“적은 어둠에 익숙한 자객으로 추정된다!”

금의검문, 질풍검 왕일이 소리쳤다.

“암전 (暗戰)을 준비한 만큼, 대응도 철저할 터!

방심은 물론이요, 함부로 나서지 마라!”

왕일이 비록 금의검문 소속이기는 하나 경험이 다분한 절정 고수였기에 그 조언을 허투루 들을 사람은 없었다.

왕일은 다음 말을 이으려던 찰나, 오한이 들었다.

그저 직감이라 할 수밖에 없는 감각이 뇌와 근육의 제어권을 순간적으로 빼앗아가 멋대로 움직였다.

“흡!”

왕일이 질풍보를 밟으면서 급히 물러났다.

부욱.

옷에 수평선이 그어졌다.

옷자락이 찢어지면서 여섯 갈래로 갈라진 잘 단련된 복근이 보였다.

다행히 옷만 잘렸을 뿐, 살갗은 멀쩡했다.

하마터면 내장을 쏟을 뻔했다는 사실에 등골이 오싹했다.

그 대신, 왕일은 방금 전 옷자락을 자르고 원래의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춘 병기를 언뜻 볼 수 있었다.

“륜(輪)?”

륜은 이름 그대로 수레바퀴 모양의 무기다.

손잡이를 제외하곤 테두리가 예리한 날로 되어 있다.

왕일은 두뇌를 재빠르게 회전하며 무림에 륜을 무기로 한 무공을 몇 가지 떠올릴 수 있었다.

“은회륜(隱回輪)?”

왕일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방금 전 공격에선 어떠한 소리도 나지 않았다.

암습을 떠올리게 하는 초식은 몇 없다.

“잠영방(潛影房)!”

“눈치가 빠르구나, 질풍검.”

누군가가 음산한 목소리로 답했다.

푸뷰뷰븃!

“크읏!”

“뭔가 날아온다!”

동시에 이곳저곳에서 고함이 쏟아졌다.

“륜이다!”

“이 무공은 은회륜…… 잠영방이다!”

잠영방은 현 무림에 활동 중인 자객방이다.

여타 자객과 달리 주 무기로 륜을 사용한다.

본래 암기란 건 일회성 무기다.

투척 무기다 보니 쓰고 버리는 것이다.

다만 이렇게 되면 증거나 흔적을 남기게 된다.

잠영방은 이 흔적조차 남기고 싶어하지 않았고, 연구한 결과 회비표(回飛標 : 부메랑)에서 주 무공인 은회륜을 고안해 냈다.

회비표 대신 륜을 던져 적을 암살하고, 증거가 남지 않도록 병기까지 회수하는 무공이었다.

다만 우습게도, 암살에 실패하게 되면 무공이 워낙 특징적이다 보니 누구나 다 잠영방을 떠올리게 됐다.

“이 암흑 속에선 잠영방의 상대가 되지 못할 것이다.”

잠영방주가 입술을 혀로 적시며 웃었다.

“다른 곳은 몰라도 눈을 빼앗는 곳에선 잠영방을 따라올 자가 없다.”

어둠 속에서 수레바퀴의 형태를 띤 병기가 회전했다.

“너희를 죽여 옥형성이 되겠다.”

잠영방주의 손에서 륜이 떠났다.

“잠영방?”

팽자호가 주변의 소리에 반응했다.

“암천이란 이름에 걸맞은 잡졸들이구나.”

“이 암흑 속에선 다르지.”

건너편에서 답변이 들려왔다.

“당가의 소가주…… 아니, 천추인가.”

팽자호가 눈을 번들거렸다.

화경의 고수도 앞을 볼 수는 없었지만, 다른 감각으로 존재감을 확인했다.

“잠영방의 비시인공(非示認功)은 시각을 제외한 네 감각을 증폭시켜서 눈을 대신하는 무공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특히 그 진가를 발휘하지.”

당명인의 무미건조한 눈동자에 팽자호가 비쳤다.

다른 이들과 달리 당명인은 앞이 제대로 보였다.

시야를 차단한 건, 결국 독으로 된 구름이나 연기다.

용독술의 대가로서 무형지독까지 다루는 당명인 정도 되면 시야를 가로막는 문제 따윈 별거 아니었다.

“독과 암살 속에서 발버둥 쳐라. 지칠 때로 지친 순간, 그 뒤로 암천의 무인들이 학살을 시작할 것이니.”

“안 본 사이에 말이 꽤나 짧아졌구나.”

팽자호가 당명인을 쳐다봤다.

바위 위에 가만히 앉은 호랑이와 같았다.

평온해 보이면서도 산의 제왕처럼 위엄이 느껴졌다.

“어차피 같은 길을 걷는 자도 아닌데 말 좀 놓으면 어떠한가. 나는 더 이상 당가의 소가주도 아니며, 하물며 정파인도 아니거늘.”

당명인의 소맷자락이 부풀어 올랐다.

“암천회의 천추, 당명인이다.”

소맷자락이 부풀어 오른 건 속 안의 암기를 꺼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눈속임에 불과했다.

허초가 아닌 진초는 언제 꺼냈는지 모를 손가락 마디만 한 나비 모습의 암기였다.

파앗!

독접이 비상한다.

나비처럼 날아오른 것이 아니라, 벌처럼 쏘아졌다.

하북의 호랑이는 그 광경을 미동도 하지 않고 바라보다가, 코앞에 다가온 순간에 맞춰 일도양단했다.

서걱!

독접이 둘로 갈라졌다.

그러자 날개에 붙어 있던 독이 가루처럼 우수수 떨어졌다.

팽자호는 그 독 가루를 보진 못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마치 보이는 것처럼 도를 위로 올려 막았다.

파앙!

팽자호의 도는 힘의 반작용이 아직 남아 있을 터인데 아무렇지 않은 듯이 용이 승천하는 것처럼 올라가면서 대기를 갈랐다.

놀라운 건 잠시 동안이지만 독 가루와 더불어 앞을 가린 독 구름이 같이 사라졌다.

“팽가의 가주답게 대단한 무공이로구나.”

하북팽가의 무공은 오대세가 중에서도 발군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혼자 덤벼든 것을 후회할 것이다.”

“안 본 사이에 건방져진 것뿐만 아니라 말이 많아졌군.

네놈 따위는 몇 초식이면 충분하다.”

뇌가 근육으로 가득하다는 조롱의 말은, 반대로 생각하면 그만큼 무력에는 자신이 있다는 증거였다.

실제로 하북팽가의 핏줄은 하나같이 무골이었다.

그리고 그 정점인 팽가의 가주는 강할 수밖에 없었다.

앞이 보이지 않음에도 이 정도의 반응 속도, 정확도는 놀랍기만 했다.

“그 자만심이 독이 될 것이다, 팽가의 가주여.”

당명인의 안광이 음험하게 빛났다.

“그리고, 이걸로 알았다.”

천추가 눈을 가늘게 떴다.

“이곳에 주서천은 없군.”

* * *

암천회주와 직면할 뻔한 북하군은 진로를 바꿔 후퇴했다.

사전에 발견한 덕에 쉽게 물러날 수 있었다.

전력의 수도 서로 비슷하다 보니 진군 속도도 그리 차이가 나지 않았다.

추격을 떨쳐내는 건 불가능하나, 시간을 버는 것만이라면 어떻게든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신도균의 표정이 좋아지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평원에서 벗어날 거요.”

신도균이 눈썹을 찡그렸다.

“북상군과 더 멀어진다는 뜻입니까?”

홍진이 물었다.

“예.”

북상군과 가까워도 문제지만, 너무 떨어져서도 안 된다.

너무 멀어지면 지원을 받기가 곤란하다.

무엇보다 현재 암천회가 점거한 합비와 가까워지다 보니 정면이 막혀 포위당할 수도 있었다.

“그러면 선회하면 그만…… 무슨 문제가 있군.”

서문이진이 신도균의 표정을 보고 물었다.

신도균은 일그러진 얼굴로 정면을 바라보았다.

모두의 시선이 옮겨진 곳에는 산맥이 있었다.

뒤만 보면서 정신없이 달려오다 보니 미처 보지 못했다.

상천육좌, 그것도 은연중 정점이라 평가되는 괴물이 뒤에서 쫓아오는 건 상상 이상으로 압박이 되고 있었다.

“후위를 확인하면서 속도를 늦추지 않고 오다 보니 선회할 순간을 놓쳐 너무 멀리 와 버리고 말았소.

선회하면서 속도가 느려지는 건 둘째 치고, 평원이 끝나는 구간에 산맥이 있는 탓에 암천회주가 사선으로 가로질러 오거나, 혹은 가로로 이동하여 가로막아 잡을 거요.”

평원 지대의 단점이었다.

사방팔방으로 뻥 뚫려 있다 보니, 어디 숨을 곳도 없고 장애물을 방패 삼는 것도 불가능하다.

지금처럼 어디 한 곳이 막혀서 돌아갈 경우, 어딜 향해도 부딪칠 수밖에 없게 된다.

“지도를 좀 더 확실하게 암기했어야 했는데……”

신도균이 어처구니없는 실수에 자책했다.

“본부로 배정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지 않습니까.

애초에 작전 반경은 평원이기도 했고, 암천회주가 나타날 줄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너무 자책하지 마십시오.”

홍진이 신도균을 위로 했다.

“위로는 그만하고 다음 판단을 해라. 잘잘못을 따지는 건 나중이다.”

서문이진이 홍진과 신도균에게 핀잔을 주었다.

“산림을 통해서 선회하는 건 어떻지?”

“생각보다 오랫동안 달려온 탓에 다들 조금씩 지쳐 있소.

언덕을 오르는 순간만큼은 속도가 줄어져 공격당할 거외다.

차라리 뒤를 잡히느니 정면으로 맞닥뜨리는 게 나을 거요.”

모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암천회주와 정면으로 부딪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다들 알고 있었다.

“시간을 끈다면?”

손일산이 입을 열었다.

“부대의 일부가 막아서서 반 시진, 아니 이각 정도라도 시간을 끈다면, 문제없지 않소? 그 뒤 적들 역시 산을 타게 되면서 느려지게 될 거고 말이오.”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나?”

서문이진이 손일산을 쳐다보며 물었다.

“뇌승도의 말대로입니다. 그자의 앞을 가로막는 건……”

홍진이 말꼬리를 흐렸다.

“그 외에 방법이 있소?”

손일산의 물음에 다들 하나같이 꿀먹은 벙어리가 됐다.

그 누구도 반박하지 못했다.

“결정됐군. 개방도의 반절이 맡겠소.”

손일산이 손을 들자, 개방도 일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시오. 나를 믿으시오.”

“……알겠습니다.”

신도균이 무거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방금 전 개방도 절반의 운명이 결정됐다.

그러나 지휘관은 전쟁의 승리 및 다수를 위해서라도 때때로 비정한 결정을 내려야 했다.

더 이상 시간을 끄는 건 어리석은 행위다.

더 좋은 방안이 없으니 차선책을 택했다.

‘어쩔 수 없다.’

북하군의 수뇌진은 침묵으로 수긍을 대신했다.

그러나 이 선택을, 얼마 지나지 않아 뼈저리게 후회하게 됐다.

일각 뒤.

“흠.”

암천회주가 침음을 흘렸다.

그 시선에 비치는 건 죽음을 각오한 용맹하기 그지없는 정파의 고수인 금주봉개 손일산이었다.

“도망만 치는 것이 이상하다 싶더니만……”

암천회주가 말꼬리를 흘리며 손일산을 위아래로 훑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위만 살펴보았다는 것이 알맞았다.

그도 그럴 것이, 손일산의 몸은 갈비뼈 아래로 없었다.

피에 젖은 척추만 힐끗 보일 뿐이었다.

암천회주는 손일산의 머리를 쥔 채로 시체를 흔들흔들 움직이다가, 별 흥미 없다는 듯 옆에 버렸다.

“천선성.”

“예!”

“천기에게 알려라.”

암천회주가 눈을 가늘게 떴다.

“주서천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암천회주는 칠성사에게 주서천의 위치를 정기적으로 보고받았다.

북부에 편성됐다는 소식도 들었다.

나름대로 대면을 기대했거늘, 예상과는 다르게 머리카락 한 올조차 보이지 않았다.

“천기성, 내 의견에 대해 어찌 생각하느냐.”

암천회주가 정면을 주시한 채로 물었다.

“위대하신 회주님의 말씀대로라고 생각하옵니다.”

“그 연유는?”

“상천육좌, 특히나 주서천처럼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자가 앞에 나서지 않을 리 없사옵니다. 검신은 존재하는 것만으로 사기 상승 및 용맹함의 근원이 되며, 지휘 체계 그 자체이옵니다. 이러한 이점을 내버려 두고 나서지 않는다면 그는 필시 머저리일 것이옵니다.”

“주서천이 머저리일 수도 있지 않느냐?”

천기성은 암천회주의 물음에 곧장 답하지 않았다.

답을 몰라서가 아니라 과연 말해도 괜찮을지 주저해서였다.

그래도 고민은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실례하옵니다만, 비천한 자가 감히 말을 올리도록 하겠사옵니다. 그자가 머저리였다면 본 회의 대계가 그리 쉽게 망가지지는 않았을 것이며, 또한 적수로 취급받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사료되옵니다.”

“정답이다, 천기성.”

암천회주가 만족한 듯 끄덕였다.

“그 정도의 머저리였다면 주서천 그놈이 살생부 맨 위에 이름이 새겨질 일도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결과가 어찌 될지 뻔히 알고 있음에도 안 그래도 얼마 없는 전력에서 사백이나 되는 개방도를 희생시키는 것이 말이 되지 않으니 말이다.”

암천회주는 북하군과 추격전을 벌였다.

마음만 먹는다면 혼자 따라잡을 수도 있었겠지만, 이것이 미끼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그리하지 않았다.

또한 부대가 따라잡을 수 없는 것도 아닌지라, 시간을 좀 들여도 착실하게 추적하기로 했다.

“겨우 거지 무리 따위로 회주님의 앞길을 막아 시간을 끌려 하다니, 어리석은 자들이옵니다.”

“매듭을 보니 개방의 장로인 것 같더군.

그자에 대해서 알고 있는 자가 있다면 말해 보아라.”

“금주봉개 손일산이라는 자입니다.”

“고기와 술이라면 환장을 하지 못하는 개방도인 주제에 술을 금한다니, 특이한 자로군.”

“손일산에 대한 정보를 원하신다면……”

“아니, 됐다. 어차피 죽은 놈일 뿐이니까.”

죽은 자보단 산 자가 우선이다.

눈앞에 적이 도망치고 있다면 더더욱.

“천선성, 신호는 보냈느냐?”

“물론입니다. 확실히 보냈습니다.”

칠성사병이 보란 듯이 죽통을 보여줬다.

입구 부근에 신호가 된 연기의 잔재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좋다, 쫓아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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