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二十三章 (228/254)

암천회.

“패신군이라……”

천기가 눈을 가늘게 뜨곤 중얼거렸다.

“드디어 나타나셨나.”

무림에 혜성처럼 등장한 사도의 영웅.

강호초출만으로 천하백대고수에 궁귀검수라는 이름을 올렸고 그다음 나타날 땐 상천에 올랐다.

주서천만큼은 아니나, 암천회 입장에선 성가신 적이었다.

문젠 워낙 두문불출하다는 점이었다.

천선성을 동원하고 온갖 정보를 사들였지만 패신군에 대한 정보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심지어 아는 사람도 없다는 점이 어이가 없었다.

사도천주를 대신하여 특수 임무를 수행한다고는 들었지만, 근데 정작 뭘 했는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북부로 검신을 보내고 남부에는 패신군인가.”

천기가 코웃음 쳤다.

“예상 못할 줄 알았나?”

전력을 반으로 나눈 전쟁이다.

겨우 몇 수 준비해 두었을 리 없었다.

이러한 사항 또한 예견했다.

무림맹 장로진도 패신군을 두둔했는데, 생각하지 못할 천기가 아니었다.

“무림맹주와 사도천주는 본거지에서 쉽게 움직일 수 없으니, 결국 전선에 나갈 상천은 둘뿐이다.”

정파의 검신.

사파의 패신군.

“본 회의 위업을 방해한 대가를 치르게 해 주마.”

천기의 시선 아래, 중원이 그려진 지도가 보였다.

“무림인 위에 상천이 있다면, 상천의 위엔 암천이 있다.”

안휘의 남부에는 안경(安慶)이라는 마을이 있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으나, 장강 바로 앞에 위치하여 어업이나 항구로서 나름대로 이름 있는 지역이었다.

그러나 이 안경은 바로 얼마 전, 합비에서 온 칠천에 이르는 암천군의 진지로 쓰이게 됐다.

남부로 향한 암천군은 안경에 진지를 구축한 뒤, 앞으로 있을 싸움에 대비하였다.

식수야 바로 앞이 강이니 문제없었고, 칠천에 이르는 식량 또한 저장해 둔 것과 더불어 장강에서 물고기를 잡아 확보할 수 있었다.

암천군은 안경에서 군량 확보 및 태세 정비를 끝낸 다음, 장강을 넘어 강남으로 이동해 진군을 멈추고, 동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흥!”

천기성, 유소(劉召)가 코웃음 쳤다.

“구화산(九華山)에 진지를 틀다니 꼴이 우습구나.

사파투성이인 주제에 부처에게라도 의지할 생각인가?”

안휘의 서남쪽, 안경의 동쪽에 있는 명산.

구화산은 불교의 사대 명산이라 일컬어지는 곳이다.

산내에는 일흔네 개의 불각이 존재하며 육천하고도 사백 개의 불상이 있다.

차(茶)의 명산으로도 불리는 만큼 산의 초입에서부터 정상까지 계단처럼 이어진 차 밭은 경이로울 정도였다.

“그래도 집결지로썬 더할 나위 없긴 하지.

누군지는 몰라도 잔머리 좀 굴렸군.”

유소가 입술을 혀로 적시며 기분 나쁘게 웃었다.

구화산은 국가에서 관리받는 산 중 하나다.

수백에 이르는 절이나 불상은 국보로 취급될 정도다.

예로부터 불교의 성지로 여겨진 곳이다 보니, 설사 암천회라도 손쉽게 건드릴 수 없는 곳이었다.

“유소 님, 어찌할까요?”

수하가 넌지시 물었다.

“동쪽으로 진군하되, 구화산과의 중간쯤에 있는 구릉 근처에 멈춰 경계하도록 한다.”

“저, 만약…… 저들이 구화산에 틀어박혀 있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럴 일은 절대 없으니 걱정하지 마라.”

유소가 혀를 날름거리며 히죽 웃었다.

“구화산은 현의 관리는 물론이요, 명에서도 나름대로 신경 쓰는 장소다.

무림인일 경우, 원래라면 집결지는커녕 근처에 수십 이상 모일 수조차 없다.

구화산의 절은 하나같이 무림사와 관련이 없는 곳이니 말이야.”

“그러나, 남부 연합군은 집결해 있지 않습니까?”

“아미파의 덕이 높은 고승이라도 방문해 부탁했겠지.

소림사의 이름까지 들먹였다면 그 정도야 눈감아줬을 게다.

다만, 무림사, 특히나 전쟁에 관여되는 건 결코 허락해 주지 않을 터. 그 증거로 구화산을 오르기는커녕, 산 아래 중턱에서 서성이고 있을 거다. 그리 오래 있진 못할거야.”

‘과연, 목하흑(目下黑).’

목하흑, 유소!

미려한 눈썹에 뚜렷한 이목구비, 봐도 잘생겼으나 눈 밑의 시커먼 기미가 짙은 걸 넘어 객관적으로 잘생김을 깎을 정도로 심한 청년이었다.

출신은 소음문이며, 음공보단 두뇌로 더 유명하다.

소음문주는 옥형성이나, 문도인 유소는 옥형성 소속이 아니었다.

출신은 같아도 소속은 천기성이었다.

일찍이 비상한 두뇌 덕에 천기의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다.

그 덕에 소음문의 화를 피할 수 있었다.

암천회 내부에서도 능력이나 공적을 인정받아, 칠천에 이르는 암천군의 지휘권 일부를 받게 됐다.

만약, 사파인이 아니라 정파인이었다면 능히 오룡삼봉에 들어가고도 남았으리라.

그만큼 인재였다.

“진군하면서 군을 셋으로 나누도록.”

“명.”

안휘, 구화산.

“모사, 이 이상은 무리일세.”

아미파의 고승이 산 아래로 내려왔다.

곧 노년을 바라보는 중년 여성이나, 그 덩치는 웬만한 남자보다 더 우람하여 위압감이 느껴졌다.

용맹함이 깃든 눈은 한 번 보면 잊지 못할 정도로 강렬하며, 염주가 얽힌 손은 굳은살로 가득했다.

“산사의 독경(讀經)을 듣고 오던 참이네만, 분위기가 그리 달갑지 않네.”

“이 정도면 충분해요. 감사합니다, 금강(金剛) 선배님.”

“경처(敬處)면 되네.”

“그러면, 경처사태라 부르겠습니다.”

“내 그리 덕이 높진 않다만…… 편하다면 그리 부르게나.”

사태(師太)라 하면 덕이 높고 연륜있는 여승에 붙이는 호칭이다.

그 누구도 이견을 달지 않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경처라 하면 무림에서도 몇 없는 여고수 중 한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날이 갈수록 고수의 배출이 적어지는 아미파 입장에선 자랑스레 소개할 수 있는 대표 인물이었다.

참고로 그녀는 무림맹의 장로, 경인사태의 사형이었다.

“그러면 슬슬 진군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제갈수란이 옆을 돌아보며 물었다.

사도의 영웅, 패신군은 모사의 물음에 머리를 위아래로 미미하게 흔드는 것으로 대답했다.

그리곤 시선을 옆으로 돌려 수하이자 의동생에게 눈짓을 보냈다.

“분부대로 합죠!”

패신군의 의동생, 김팔이 앞으로 튀어나갔다.

“들어라! 나의 이름은 김팔, 일찍이 여기 계신 패신군과 의형제의 연을 맺은 첫 번째 동생이자 구 형제의 둘째이다!”

김팔은 나름 위엄 어린 목소리로 긴 말을 쏟아 냈지만, 남부의 연합군은 개가 지껄인다는 듯이 무시했다.

얼른 본론이나 말하라는 반응이었다.

“……이러니, 대형께선 그대들이 질서 정연하게 서쪽 구룽 지대, 암천군을 향해 진군하길 원한다! 이상!”

“와아아아아!”

남부 연합군에게서 함성이 터졌다.

김팔은 뿌듯한 표정을 지었으나, 정작 연합군이 열광하는 이는 그 뒤에 서 있는 패신군이었다.

새삼 패신군의 인기나 위치를 알 수 있었다.

제대로 모습을 보인 적이 워낙 적다 보니, 신비적인 매력까지 지녀 더더욱 많은 이들을 열광시켰다.

“가자-!”

김팔이 신난 듯이 소리쳤다.

그 외침에 맞춰 남부 연합군의 함성이 되돌아오자 기분이 짜릿했다.

그러나 그 모습을 못마땅하게 쳐다보는 이가 있었다.

“패신군은 어찌하여 저 잡놈을 앞에 두는 거지?”

묘가검문의 고수, 묘지담이었다.

‘이 나를 두고 무시한 주제에……’

묘지담은 패신군과 작게나마 연이었다.

과거, 폭섬도문과의 분쟁에서였다.

당시엔 지휘관과 낭인인 관계였다.

툭 까놓고 직접적이거나 사적인 만남은 없긴 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연을 만들려 반갑게 인사했다.

한데 패신군은 묘지담의 인사에 고개만 미미하게 흔들어 끄덕일 뿐, 어떠한 말도 꺼내지 않았다.

아무리 상천육좌이자 사도의 영웅이라고 한들, 대놓고 무시하는 태도에 빈정이 상한 묘지담이었다.

기분이 나빠져 뭐라 하려 했지만, 근처에만 가도 몸이 굳게 만드는 위압감 탓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나같이 마음에 안 드는군.’

묘지담은 쯧, 하고 혀를 찼다.

‘무엇보다, 만에 이르는 대군이 한낱 계집의 말 몇 마디에 움직이는 게 어디 가당키나 한 소리인가?’

묘가검문은 사도반란 이후 상승세를 탔다.

사도팔문이 반으로 쪼개졌으니 당연했다.

그리고 그만큼 머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별로 없었던 자존심도 높아졌다.

사파인은 정파인만큼 자존심이 높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예 없는 건 또 아니다.

묘지담이 지금 그러하였다.

애초에 자신들의 검이 더 최고라는 이유만으로 폭섬도문과 분쟁을 시작했던 묘가검문이었다.

‘두고 봐라. 남부전선의 공로는 이 묘지담이 가져가겠다.’

묘지담이 불만을 속으로 삼키며 다짐했다.

* * *

안휘, 남부 구릉 지대.

일만 하고도 칠천의 무림인들이 모였다.

남부 연합군은 이들을 넷으로 나누었다.

각각 삼천씩 선봉대, 좌익, 우익으로 배치한 뒤 중앙에 천을 두었다.

아홉 번째 달에 들어서지만 무더위는 아직 가시지 않았다.

구름 한 점끼지 않아 머리 위가 뜨겁다.

불행 중 다행인 건 머리카락을 나부끼는 바람에서 열기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병장기를 쥔 손도 땀이 범벅이다.

이것이 열기 탓인지 아니면 적을 앞에 둔 긴장 탓인지는 알 겨를이 없었다.

“정면 승부?”

우익장(右翼將), 경처사태가 눈살을 찌푸렸다.

정면에 펼쳐진 광경은 언덕, 또 언덕뿐이었다.

언덕 들은 하나같이 나무 대신 찻잎으로 뒤덮여 시야를 가릴 만한 것이 없었다.

아군도 적군도 움직임이 뻔히 보이는 곳이다.

“찝찝하군.”

천기나 목하흑이나 무림의 소문난 지략가다.

다른 곳도 아닌 그 지략을 적극 기용하는 암천회가 깨끗하게 정면 승부를 할 것이라곤 생각되지 않았다.

무슨 의도인지 알고 싶은 마음에 제갈수란의 말을 들어 볼까 생각할 때였다.

“왜, 우리라고 정정당당히 안 싸울 것 같았냐!”

맞은편, 암천남군(暗天南君) 쪽에서 고함이 들렸다.

눈에 힘을 주고 안법을 쓰니 얼굴이 보였다.

“관호청!”

“배신자 놈이!”

“선동자!”

한때, 무림맹 소속 절정 고수였던 자였다.

그리고 개방의 고수, 오귀성을 살해하고 정파의 중소문파를 배신으로 이끈 주요 인물이었다.

실력은 화경은커녕 천하백대고수 끄트머리에도 들지 못했으나, 그의 진정한 힘은 무공이 아닌 말에 있었다.

“선동자?”

관호청이 하, 하고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리고 그 얼굴은 곧장 분노로 일그러졌다.

“그 더러운 입 다물어라.”

관호청의 목소리는 증오로 들끓었다.

“무림인이여, 들어라!”

관호청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양군의 이목이 관호청에게 집중됐다.

“무림은 지금……”

그러나 그 순간,

“최대의 적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제갈수란의 뾰족한 목소리가 전장에 울렸다.

“무, 무슨……”

관호청이 연설을 이으려다가 흠칫 놀랐다.

제갈수란은 관호청이 말을 잇기 전, 모든 이들이 똑똑히 들을 수 있도록 높은 목소리로 성량을 키웠다.

“무림은 그동안 셀 수 없는 세월동안 싸워 왔습니다.

사상에서부터 이익을 위해 서로의 공부와 신념을 부딪쳐 왔지요.”

관호청의 능력은 연설에 따른 통솔이다.

진심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사회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공감대를 형성해 그 마음을 이끈다.

무서운 힘이다.

천기성과 천선성, 그리고 천추성까지 나서서 관호청의 말을 극대화하여 배신자를 만들어 냈다.

제갈수란 역시 그 힘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준비했다.

그동안 배신자를 이끌어 온 관호청의 ‘영향력’을 빼앗기 위해 기다렸다.

격돌을 앞에 둔 격앙된 감정, 수십 년 동안 이어진 불만, 무림의 상황으로 인한 생각과 말을 이용한다.

“그러나! 이 역사 깊은 신념의 대결은, 암천회라는 외부의 적에게 이용됐습니다.

혁명이라는 간언으로 신념을 더럽히고, 농락하였지요.

칠검전쟁 정혈대전, 정마대전 그리고 사문반란과 삼악검파의 사태까지 합해 모든 일이 암천회의 손에 놀아난 것입니다.”

제갈수란의 크고 고운 목소리는 듣기 좋았다.

그녀 의 손짓 하나하나에 눈동자가 돌아갔다.

“정파여, 사파여, 그리고 무림인이여!”

발음은 명확하며 단 한 번도 더듬지 않았다.

평소에 말수가 적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장문을 이어갔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희는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서로를 이해할 생각도 없습니다. 우리가 쌓아 온 역사는 공공의 적이 나타났다고 그동안의 숙원을 잊을 정도로 가벼운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손을 잡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제갈수란은 말을 끝내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남부 연합군은 정파인보다 사파인이 많다.

사도천의 영역인 만큼, 사고방식을 맞췄다.

정도의 입장에서 말해 봤자 그들은 믿지 않는다.

지휘 체계에도 문제가 생긴다.

“기분 나쁘니까요!”

머리를 굴려 효율적인 말을 생각한다.

“중간에 껴서 이익을 취하려는 것이!”

그들의 입장에서 말해본다.

“상관도 없는 부외자가 껴드는 것이!”

제갈수란이 손을 머리 위로 높이 들었다.

“기분 나쁘다고!”

오룡삼봉이라고 해 봤자 이십 대 여인이다.

정파라면 몰라도 사파에서 그 말을 제대로 들을 리 없다.

패신군이라는 상징이 있어도 분열이 생긴다.

“-전군.”

확실한 승전에 필요한 지휘와 통솔을 얻기 위해 말한다.

“전진-!”

“우오오오오오오!”

일만 대 칠천. 남부 연합군 대 암천남군.

그 시작이 지금, 모사미봉의 외침으로 시작됐다.

남부의 연합군이 함성과 더불어 먼지구름을 일으키면서 진격을 시작했다.

쿠구구구.

구릉 지대가 펼쳐져 있는데도 속도는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는다.

찻잎이 짓밟히는 것이 아까웠다.

만 하고도 칠천여 명이 일으키는 발걸음 소리는 지진이 따로 없었다.

먼지와 더불어 굉음이 일어났다.

“와아아아!”

쿵, 쿵, 쿵!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지축이 흔들린다.

전투로 인해 흥분된 심장소리가 발소리에 맞춰 뛰었다.

남부 연합군의 진격은 동시였으나, 만여 명이 한데 뭉쳐 있진 않았다.

도중에 세 갈래로 갈라졌다.

좌익과 우익, 그리고 전위였다.

전위의 뒤로는 중앙 본대가 따랐다.

“산개!”

유소가 외쳤다.

목이 찢어지도록 소리를 친 것도 아닌데, 신기하게도 암천남군 전원에게 전달됐다.

척, 척!

암천남군은 잘 훈련된 군대와 같았다.

군부 출신 요광, 황궁의 학사였던 천기가 상관인 만큼 어렴풋이 관병의 느낌이 묻어나기도 했다.

칠천의 전력이 각각 이천씩 나뉘고, 전위의 뒤편인 중앙은 연합군의 중앙처럼 천이 남았다.

그 움직임은 질풍과도 같았으며, 적의 습격에 대비하는 모습은 굳건한 산과 같았다.

“……!”

연합군의 중앙에서 놀랍다는 반응이 나왔다.

“이 소란 속에서 저 정도의 움직임이라니!”

김팔이 입을 떡 벌리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된 지휘 체계지?”

암천남군의 지휘 체계는 기형적이었다.

보통, 누군가가 지휘를 내리면 백인장이나 천인장 등 중간의 지휘관이 전달받고 재명령을 내린다.

별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다.

무슨 수로 칠천에 이르는 대군에게 명령을 정확히 전달하겠는가.

특히나 적의 함성과 진격의 소음 속에선 힘들다.

방금 전의 연설이야 폭풍 전의 고요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진격이 시작된 이후론 내공으로 성량을 높인 채 외치거나, 혹은 깃발 등의 표식으로 사전에 합을 맞춰 둔 중간의 지휘관에게 명령을 하달한다.

그러면 그 지휘관이 부대에게, 다시 하위의 부대장에게 전한다.

무엇보다 이 또한 서로 간의 신뢰나, 무림에 이름이 알려진 이들이 행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전자의 경우엔 아무리 높은 사람이라도 한들, 누구인지 잘 모르면 말짱 헛일이었다.

정말로 총지휘관의 목소리가 맞는지 잘 모르니, 신뢰할 만한 사람의 보증에 따라서 명령을 이행한다.

제갈수란이 방금 전 연설 때 사파의 표현을 빌려 말한 것도 그 이유였다.

후자의 경우엔 당연하다.

이렇다할 명성이 없다면 명령을 따르기는커녕 바보 취급을 당하거나 무시당했다.

“……음공이에요.”

제갈수란이 김팔 및 참모진을 위해 설명했다.

“소음문의 대음확공(大音確功)이로군요.”

“아!”

소리를 매개로 한 무공, 음공도 다양하다.

사자후처럼 적을 제압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마음을 어지럽히는 현혹술까지 있다.

대음확공은 음공이라기보다는 잡술에 가까웠다.

소리로 적의 기맥을 뒤틀거나 물리적인 힘을 적용시킬 순 없었으나, 그 대신 아군에게 도움을 주었다.

“잡음으로 가득한 소란 속에서도 시전자의 말을 정확하게 전달해 주고, 굳이 목이 터지도록 지르지 않아도 일정한 범위 내의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크게 들리게 해 주는 음공이에요.”

즉, 두뇌가 비상하여 지략에도 일가견이 있는 목하흑, 유소에게 걸맞은 음공이었다는 뜻이었다.

굳이 부대장을 거치지 않아도 되는 효과가 있었다.

평소 훈련으로 귀에 딱지가 생길 정도로 들었다.

“크으, 역시 모사미봉이십니다. 정파인이신데도 사파인도 모르는 무공을 줄줄이 꿰차고 계시는군요.”

김팔이 손바닥을 비비면서 처세술을 보였다.

이의채 정도는 아니지만, 눈치와 처세만으로 패신군의 의동생이 된 만큼 난전 속에서도 잘도 아부했다.

“생각보다…… 성가신 싸움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부채를 쥔 손가락에 힘이 들었다.

연합군의 오른쪽 날개.

금강, 경처사태의 지휘를 따르는 정파인 이천삼백 명과 사파인 칠백명을 합한 삼천 명이 진격했다.

퍼억!

“케헥!”

우익장인 경처사태는 동시에 선봉을 맡았다.

비구니치곤 손속에 자비를 두지 않는 걸로 유명한 그녀는 적이 앞에 있는 것을 용서하지 않았다.

부처의 자비에 대해서 알고 있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단호한 경처사태는 눈썹을 휘날리면서 일장을 뻗었다.

“아아악!”

“금강삼매장(金剛三昧掌)이다!”

수십 년 동안 단련된 손바닥은 적을 용서치 않았다.

심후한 공력을 터뜨려 가며 칠성사병을 박살 냈다.

한 번 맞으면 피를 울컥 토하며, 갈비뼈는 부서졌다.

몸뚱어리는 볼썽사납게 바닥을 굴렀다.

“으으으……”

“괴물 같은 년!”

산적이나 마두보다 우람한 덩치, 부피가 큰 법복으로도 숨겨지지 않는 근육, 불과 같이 맹렬하게 타오르는 눈빛은 마주치면 오금을 지릴 정도였다.

멧돼지가 아니라, 그 이상의 무언가가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든다.

손바닥이 아닌 철퇴 같았다.

“금강……!”

반 리 정도 떨어진 관호청이 끓는 목소리를 냈다.

“그 악랄한 손속은 여전하구나!”

“나도 아네.”

경처사태는 관호청의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 칠성사병을 죽였다.

“젊은 시절, 가난 탓에 도적이 된 중생이 있었네.

그 도적은 눈물을 흘리며 회개했으니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하더군.

그래서 부처의 자비를 떠올려 살려 주었지.”

경처사태는 담담히 답하면서 칠성사병의 멱살을 쥐어 잡고 올리더니만 그대로 목뼈를 꺾었다.

우드득!

“그 이튿날, 구휼을 위해 빈민가를 찾은 내 사매가 그 중생에게 강도를 당해 죽었네.”

털썩.

경처의 손에서 칠성사병이 떨어졌다.

“그때부터 생각했지. 중생의 모습을 한 마라를 찾아 전부 지옥으로 되돌려보내야 한다는 걸 말이야.”

“미, 미친 중년이……!”

“암천이라는 지옥에서 온 마라에게 자비는 없다.”

살벌한 건 경처사태만이 아니었다.

연합군 우익, 정파인으로 이루어진 부대의 기세가 범상치 않았다.

오랫동안 정파의 심장이었던 합비를 잃은 분노가 적지 않은 것인지는 몰라도 무척이나 공격적이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남궁세가가 있는 전장이 제일 격렬했다.

“하아압!”

“창룡!”

남궁선유는 이를 꽉 깨물고, 얼굴에 튀는 피를 닦아 낼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검을 휘둘렀다.

‘내가, 내가…… 좀 더 힘내야 해.’

아무리 오룡삼봉이라고 한들, 소가주라면 전장의 앞에 잘 서지 않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지금의 남궁세가는 검악 사태 건으로 전 무림에 의심을 받는 상태다.

직계 혈족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누군가의 보호 속에 있다면 보기가 좋지 않다.

남궁선유는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삼류나 이류 무사들이 섞이는 난장판, 선두에서 검을 휘둘렀다.

한편, 암천군을 밀어붙이는 건 우익만이 아니었다.

사파인으로 구성된 좌익 역시 보통이 아니었다.

“독연이다!”

“콜록, 콜록!”

“제, 젠장!”

“으아악! 저리 가!”

“미친놈아, 난 아군이야!”

좌익의 선봉은 사독문이 맡았다.

무림맹에 당가가 있다면, 사도천엔 사독문이 있다.

사파 특성상 하나같이 독을 즐겨쓰긴 하나, 전문적으로 특화된 곳이 바로 이 사독문이었다.

독왕이 소속된 당가만큼은 아니 지만, 그래도 사파에서 상위에 속하는 문파였다.

거무튀튀하고 불길하기 짝이 없는 연기가 스멀스멀 기어가더니만, 한차례 꿀렁이더니 파도가 됐다.

오백에 이르는 독인이 횡대로 서서 독연을 푸는 모습은 재앙을 뿌리는 마라와도 같았다.

“남삼군(南三軍), 해독!”

목하흑이 대응에 나섰다.

난전 속에서 대음확공이 얼마나 효과적인지를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삼켜!”

이천여 명으로 구성된 남삼군이 곧장 반응했다.

그들은 품 안에서 손가락 마디만 한 약을 꺼내선 복용했다.

“퉤!”

독이 섞인 침을 바닥에 뱉으니, 시퍼렇던 낯빛도 본래의 건강한 색을 되찾았다.

선두에 서서 일찍이 독연에 중독된 이들은 늦어 해독하지 못했지만, 그 뒤에 있던 이들은 무사히 살아남았다.

“쯧!”

선봉장이자 사독문주, 민교가 혀를 찼다.

오백 명 정도 죽이려 했는데 이백밖에 못 죽였다.

“당명인의 해독약인가.”

암천회의 천추, 당명인.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 놈이었으나, 지금은 다르다.

“소문으론 그 검신조차 당명인에게 중독된 적이 있다고 하더니만, 거짓말은 아닌 것 같구나.

아무리 양산화하면서 위력을 낮추었다곤 하지만, 벌써 해독하다니……”

민교는 자존심이 상한 듯, 제 머리를 벅벅 긁었다.

중도 아닌데 머리카락 한 올 없어 손톱자국만 났다.

“사독문, 재정비!”

좌익의 연락병이 중앙의 신호를 보고 외쳤다.

“재정비다! 독연이 아닌 암기로 간다!”

민교가 손을 머리 위로 들어 명령했다.

“우리 차례다!”

묘가검문, 묘지담이 눈을 번쩍였다.

“묘가검문의 힘을 보여 줘라!”

“와아아아!”

횡대 진형인 사독문 무리 사이로 묘가검문이 지나쳤다.

천여 명이 돌진하는 그 기세는 어마어마했다.

“죽어랏!”

“아악!”

채채챙! 푸욱! 서걱!

소름 끼칠 정도로 고통스러운 비명 속,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연달아났다.

살이 꿰뚫리고, 신체 일부가 베인다.

누구는 끝까지 싸우고, 누구는 부모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절규했다.

“공은 우리 묘가검문이 세운다!”

좌익 역시 우익에 맞춰 진격했다.

연합군은 날아오르는 매처럼 날개를 짝 펼쳐 비행하였다.

앞을 가로막는 건 없었다.

적이라는 이름의 바람은 날개와 날카로운 부리에 갈라졌다.

부리 부분, 쐐기 진형의 부대가 적을 짓밟았다.

“패신군을 따르라!”

“와아아!”

쌍익의 기세나 사기도 보통이 아니었지만, 전위의 부대에 비해선 조족지혈이었다.

사도의 영웅이자 상천육좌가 있으니 당연했다.

“패신군을 죽엿!”

칠성사병이 백여 명이나 패신군에게 달려들었다.

“……”

패신군은 그야말로 산. 그것도 움직이는 산 자체였다.

처음부터 도망치지 않고, 피하지 않고, 끝까지 패왕답게 걸음을 내디디며 전진했다. 

눈앞을 적이 가로막을 경우의 대응은 하나밖에 없다.

탁탁.

제자리에서 가볍게 뛴다.

파앗!

몸이 위로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걸 열 번 정도 넘은 순간, 몸은 활등처럼 굽어졌다가 쫙 펴졌다.

패신군은 흐릿한 그림자만을 남긴 뒤, 적진 한가운데로 돌파하여 적들을 유린했다.

파바바밧!

“아아아악!”

“제, 제기랄!”

칠성사병의 검은 패신군의 머리카락 하나 건들지 못했다.

접근한다 싶어서 공격하려고 하면, 정신을 잃었다.

상천육좌가 괜히 무인의 정점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그저 압도적이라는 말밖에는 할 수 없었다.

“후퇴해라!”

불행 중 다행으로, 목하흑은 자존심 탓에 끈질기게 버티다 자멸하는 그런 지휘관이 아니었다.

“어딜!”

좌익장, 묘지담이 어림없다는 듯 추격을 시작했다.

“도망치지 못할 것이다.”

우익장, 경처사태 역시 암천남군을 쫓았다.

‘무언가가 이상해……’

창룡, 남궁선유가 눈을 가늘게 떴다.

‘너무 쉽다.’

남궁선유는 천기의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자가 이렇게까지 허술할 리 없어.’

눈을 감으면 조부의 얼굴이 떠오른다.

무림맹 그리고 남궁위무를 벼랑 끝까지 내몬 원인은 흑영부를 방관하고 묵인한 죄이지만, 그 무대를 조종한 건 암천의 군사다.

무공이 아닌 지략만으로 중원 무림의 세력 중 반을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경처사태.”

남궁선유가 경처사태를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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