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二十一章 (226/254)

장문인을 걱정해 장소를 옮긴 게 화근이었다.

유도한 것까진 좋았지만 혼자 남는 원인이 됐다.

“하아, 하아!”

유정목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눈을 가늘게 떴다.

몸에 상처는 없었으나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대단하구나, 소유검.”

암천회 무력 부대, 개양성의 칠성사병이 감탄했다.

표정에 묻어나는 놀람을 보면 비꼬는 것이 아니었다.

“설마하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주변에는 숨이 끊어진 시체가 가득했다.

서른에 이르던 정예 부대원은 겨우 일곱 명밖에 남지 않았다.

제압하는 것이 죽이는 것보다 어렵다곤 하지만,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할 줄은 몰랐다.

“그러나 발버둥 치는 것도 여기까지다.”

“큿!”

유정목이 뒷걸음질 쳤다.

도망치려 해도 퇴로가 막혔다.

무엇보다 기력이 다한 점이 컸다.

도리어 지금까지 버틴 게 용하다할 정도였다.

“유정목 순순히 따라간다면 피를 볼 일은 없을 거다.

힘을 쓸 수 없도록 산공독을 먹이긴 하겠지만, 다치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마.”

무림맹에서 보낼 지원 병력이 언제 도착할지 모른다.

순간순간이 아까웠다.

유정목의 힘이 다했다고 하지만, 화경의 고수가 목숨까지 버려 가며 발버둥 친다면 상당히 성가시다.

또한, 이 난리 통에서 벗어나려면 동료가 한 사람이라도 살아 있는 편이 나았다.

‘서천아……’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제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제자가 검신이 된 이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장문인은 방문객 대부분을 돌려보냈지만, 유정목은 수련 외에 시간이 남는다면 만나 보았다.

혹시라도 건방지다면서 제자의 명성에까지 흠집이 가면 어쩌나 싶은 마음에서부터 나온 행동이었다.

상천육좌의 스승이라는 자리는 무겁고 부담스러웠지만, 자랑스러운 제자를 위해서 참고 견뎠다.

‘폐가 될 수는 없다.’

유정목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검을 들었다.

있는 힘까지 쥐어짜 내 두 다리에 힘을 주었다.

손끝이 미미하게 떨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됐다.”

칠성사병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팔다리 하나 정돈 상관없다.”

유정목이 강경하게 나오자, 지휘관도 단념했다.

“쳐라.”

파바밧!

지휘관을 포함한 칠성사병 전원이 덤벼 들었다.

쐐애액!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목숨까진 아니지만 어디 한두 군데 망가뜨릴 기세였다.

사방에서부터 검광이 일곱 번이나 번쩍였다.

직감적으로 전부 다 막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팔 하나 정도는 내주겠다!’

동공이 좌우로 바삐 움직인다.

살을 주고 뼈를 깎는 각오로 임한 유정목은 칠절매화검으로 화답했다.

서걱!

“아니……?”

유정목이 놀란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우측 어껫죽지부터 좌측 허리까지 선이 그어졌다.

사람의 몸이 도축되는 것처럼 간단하게 잘렸다.

몸이 베인 칠성사병은 죽은 것도 인식하지 못한 듯, 살벌한 표정을 유지한 채 절명했다.

“감히.”

사선으로 쪼개진 몸의 뒤편, 그림자가 보였다.

“어느 분께 검을 겨누는지 아느냐.”

그 뒤로 나타난 건, 분노하는 주서천이었다.

“꺼져.”

검을 돌려 잡은 뒤, 수평으로 휘둘렀다.

콰아앙!

“아악!”

분노가 폭풍이 되어 불었다.

바로 옆에서 달려들던 칠성사병이 나가떨어지며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주서천의 움직임은 끝나지 않았다.

잔상을 남기 듯 고속으로 이동해 주먹을 아래에서 위로 쳐올렸다.

쿠아앙!

주먹이 턱에 꽂혔다.

타격 소리가 아니었다.

굉음에 이어 머리가 터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곱 중 셋이 죽었다.

“무, 무슨!”

칠성사병이 식겁하면서 물러났다.

공격을 물리며 갑작스러운 변화를 일으킨 탓에 아랫배가 아파 왔다.

기맥 또한 요동쳤지만,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이 앞으로 나서면 죽는다는 생각에 급히 물러났다.

“설마……”

칠성사병의 낯빛이 꺼멓게 죽었다.

“주서천!”

“그래, 나다.”

주서천 이 검에 묻은 피를 털곤 답했다.

“서천아!”

유정목이 놀란 듯, 목소리를 높였다.

“사부님, 괜찮으세요?”

주서천이 등 뒤를 바라보며 물었다.

방금 전까지 가득했던 분노는 눈씻고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대신 재회의 기쁨과 걱정이 반씩 보였다.

“조금 지치긴 했지만, 보다시피 괜찮단다.”

유정목은 언제나처럼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휴우!”

주서천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상궁 부근에 도착했을 때, 유정목이 없다는 걸 보자마자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느끼고 노심초사했다.

혹시나 걱정 끼치지 않도록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닐까 살펴봤지만, 다행히도 다치진 않은 것 같았다.

휘이잉. 퍼엉!

“……”

주서천의 고개가 번개같이 돌아갔다.

“주서천이 나타난 시점에서, 임무는 실패했다.”

최후의 사인, 칠성사병의 지휘관이 말했다.

머리 위로 든 손에는 죽통이 쥐어져 있었는데, 입구 부근에서 붉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그 뒤로 생존한 칠성사병 역시 죽통에 이어진 실을 잡아당겨 신호탄을 연달아 터뜨렸다.

“그러나……”

챙그랑!

지휘관의 손에서 검이 떨어졌다.

그 외에 칠성사병들 역시 검을 버렸다.

주서천은 나서려다가 발걸음을 멈췄다.

칠성사병 무리의 낯빛이 거멓게 죽어 갔다.

입 밖으론 시커먼 피가 흐르는 걸 보면 독이 분명했다.

‘암천회……’

혀를 내두를 정도로 독한 놈들이다.

칠성사병이 내려놓은 검 대신 비수를 쥔다.

혹시나 동귀어진의 수법으로 독이 바른 암기라도 들고 덤비나 싶었으나, 괜한 걱정이었다.

암천회의 끄나풀은 비수의 끝을 제 목으로 옮겼다.

“목적은 달성했다.”

푸욱!

‘목적을 달성해?’

주서천은 칠성사병의 말을 곱씹었다.

사부님에게 검을 겨눈 이들을 직접 죽이지 못해 불쾌했지만, 자결 전에 남긴 말이 신경 쓰였다.

‘임무는 실패했지만, 목적은 달성했다는 건……’

머릿속으로 몇 가지가 떠올랐다.

“서천아.”

“아, 네! 사부님!”

주서천은 유정목의 부름에 시선을 휙 돌렸다.

누구보다 존경하며 사랑하는 스승과의 재회를 만끽하려던 주서천이었으나, 유정목에 의해서 막혔다.

“생각을 방해해서 미안하지만, 장문인이나 사형제들이 걱정되는구나.”

유정목이 걱정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아닙니다. 사부님이 말씀하시는대로 저도 다른 사람들이 걱정입니다.”

영진을 제외한 화산오장로는 하나같이 실력이 출중하나, 암천회가 연결되어 있으니 어찌 될지 모른다.

무엇보다 삼악검파가 보통이 아니니 얕잡아 볼 상황이 아니었다.

다만, 걱정한 것과 달리 상궁의 전황은 일단락된 이후였다.

다들 제자리에서 상처를 치료 중이었다.

“사질!”

정휘련이 주서천을 보고 반색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장문인.”

주서천이 약식으로나마 정중한 인사를 건냈다.

“다치신 곳은 없으십니까?”

“보다시피 멀쩡합니다.”

정휘련이 새하얀 이를 보이며 활짝 웃었다.

동경의 대상과 만난 게 어지간히 기쁜 모양이었다.

“마음 같아선 사질에게 제 늘어난 실력을 보여 드리고 싶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군요.”

정휘련의 입가에 맺힌 미소가 지워졌다.

아이의 모습은 없고 많은 걸 짊어진 지도자가 있었다.

“위기에 빠진 사형제들을 도와주시지 않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 * *

일단, 결과만 말하자면 화산 습격 사태는 삼악검파의 완패(完敗)였다.

싸우기도 전부터 검산과 검목이라는 기관 탓에 전력이 깎였으며, 화산파가 생각 이상으로 잘 버텼다.

결정적으로 검신의 등장 소식에 곤두박질친 사기가 문제였다.

이후 최고수이자 지도자인 삼문주의 사망 소식까지 전해지자 전의를 잃고 항복했다.

상천육좌가 괜히 상천육좌가 아니다.

그들은 전세에 커다란 영향력을 끼친다.

“삼악검파, 오백여 명의 수감을 끝냈습니다.”

위지결이 보고를 올렸다.

“휴우!”

정휘련이 한숨 돌렸다는 듯 숨을 내쉬었다.

“우리 쪽 피해는 어찌 됩니까?”

“죽거나 다친 사람을 포함해 이백여 명입니다.

비교적 사망자가 적은 걸 위안으로 삼아야겠지요.

그리고 현재 영진 장로가 의원들의 도움을 받아 부상자의 치료를 돕는 중입니다.”

“끄응.”

정휘련의 표정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

“장문인, 다른 곳도 아니고 삼악검파에서 보낸 배나 되는 병력과 싸웠습니다.

이 정도 피해로 끝난 것이 천만다행입니다.”

심옥련이 정휘련을 위로 했다.

삼악검파는 중소 문파가 아닌 데다가 고수로 이름이 알려진 검문주까지 합세했다.

그 점을 생각하면 이백이라는 숫자는 결코 큰 것이 아니었다.

“삼문주는 어찌 됐는지요?”

“일팔구로는 주서천의 손에 목숨을 잃었고, 초예사태와 태산파검은 주화입마로 사망했습니다.”

조무양이 곧장 답했다.

“협상은 어찌 되어 가고 있습니까?”

“실례하오나, 장문인. 대신 답변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섭등이 장문인에 대한 예우를 담아 물었다.

화산 외의 오악검파 중 유일하게 배신하지 않은 형산파의 최고수, 원비검이었다.

화산파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 주겠다고 살려 둔 덕에 이렇게 살아남을 수 있었다.

반대로 삼악검파의 패배를 보았지만 말이다.

“물론이오.”

화산파 장로진은 섭등에게 호의적이었다.

목격담이나 증언에 의하면, 그는 목숨의 위협을 당했음에도 끝까지 굴복하지 않았다고 한다.

형산파까지 합류했더라면 화산파의 피해는 더더욱 커졌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는지 라, 고마움이 컸다.

무엇보다 한창 어린 장문인을 보고도 예를 다하는 태도 덕에 호감을 불렀다.

“방금 전에 들으셨듯이 숭산파, 태산파, 항산파의 지도자가 사망하였습니다.

협상을 위해 대리인을 찾았으나, 안타깝게도 주요 인물 몇몇이 적대적인지라 시간이 걸릴 듯 싶습니다.”

태산파의 소문주, 고찬정을 시작으로 전 문주와 밀접한 이들은 하나같이 그들의 사상을 이어받았다.

사문의 의지나 스승의 사상이나 가르침 등을 이어 가려는 정파인의 신념이 안 좋게 적용됐다.

“그래도 설득할 만한 자들을 찾아두었으니, 마냥 오래 걸리진 않을 듯 싶습니다.

그들 역시 멸문을 원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고맙소.”

“아닙니다. 오악검파의 구성원으로서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섭등은 오악검파 부분에서 묘한 표정을 지었다.

여러모로 복잡한 심정이 보였다.

“무림맹에게 답변이 오면 정해지겠지만 삼악검파는 봉문에 처해지는 것으로 협상을 할 듯 싶습니다.”

학송이 의견을 꺼냈다.

사파나 마도라면 볼 것도 없이 멸문시켰을 테지만, 화산파는 사도인도 마도인도 아닌 정도인이다.

아무리 배신자라고 한들, 항복 의사를 보인 이들의 목숨을 빼앗을 수는 없는지라 협상으로 해결했다.

“부상자의 치료에 돈을 아끼지 마십시오.

또한, 외부에서 기술자분들을 초빙하여 보수에도 힘써 주시길 바랍니다.”

명문정파의 경우, 이름이나 규모만큼 돈이 궁하진 않다.

그중에서도 화산파는 현 세대에서 호황을 누렸다.

천하제일 문파라 일컬어질 정도로 최대의 절정기다 보니, 온갖 곳에서 돈이 들어왔다.

이번 소란으로 건물 몇 채가 부서지고, 계단이나 문 등이 박살이 났지만 얼마든지 고칠 수 있었다.

굳이 무공이 아니더라도 의료나 경제적인 측면에서 명실공히 최고라 할 수 있었다.

이튿날.

주서천은 실로 오랜만에 안락하게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지내 온 방 안은 무림맹이나 금의상단에서 지내던 곳에 비해선 볼품없고 좁았으나, 비교할 수 없는 편안함을 주었다.

만약, 외부인이 검신의 거처를 찾아온다면 의아함을 감추지 못할 것이다.

거처가 낡을뿐더러 화산파 내에서도 작은 편에 속했기 때 문이었다.

그러나 거처의 주인인 유정목은 워낙 검소한 성격이기도 하고, 주서천 역시 신경 쓰는 편은 아닌지라 상층부의 권유를 정중하게 거절하곤 거처를 유지했다.

그래도 시간이 날 때마다 청소하거나, 보수하는 등 관리를 철저하게 해서 좀 허름해도 깨끗한 편이었다.

“사부남 기침하셨습니까.”

해가 동산 위로 머리끝을 보일 무렵, 주서천은 유정목이 일어나는 시간에 맞춰 문안 인사를 드렸다.

“아니, 서천아. 상궁 회의는 어찌하고……”

“어젯밤 간략하게나마 회의를 끝내고 왔으니 문제없습니다.

무엇보다, 어찌 스승의 경사를 뒤로할 수 있겠습니까.

사부님, 벽을 허물고 무공의 극의를 이룬 걸 경축 드립니다.

역시 사부님이십니다.”

주서천이 혀에 기름칠을 한 것처럼 인사했다.

아부가 아닌, 마음에서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감정이었다.

유정목이 화경이란 소식에 무척 기뻐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너에게 칭찬을 받으니, 반문농부(班門弄斧)가 따로 없구나.”

유정목이 부끄러운 듯 쓰게 웃었다.

공자 앞에서 문자 쓰는 격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눈앞의 제자가 누구인가.

무공의 극의를 넘어서 고금에서 한정된 신(神)이라는 별호를 손에 쥐었다.

유정목 입장에선 낯부끄러워도 이상할 것 없었다.

“아닙니다. 사부님의 가르침이 없었더라면 저의 성취 역시 없었을 것입니다. 전부 사부님 덕분이지요.”

주서천은 정휘련이 된 것처럼 눈을 반짝이면서 무한한 존경의 태도를 보였다.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몸은 좀 어떠십니까?”

옥체라 표현할까 싶었지만, 유정목이 전에 비슷한 일로 질색한 적이 있어서 참기로 했다.

“난 괜찮으니 그리 걱정하지 말거라.”

유정목이 별호에 걸맞게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주서천 시야에선 후광까지 보일 정도였다.

‘다행이다……’

이 따뜻하고, 편안한 미소를 다시 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동안의 고생이 씻겨 나가는 기분이었다.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나, 유정목이 살해당하는 걸 목격하게 되면 현경 최초로 주화입마에 빠질지도 모른다고 무심코 생각한 주서천이었다.

“혹시, 너만 괜찮다면 이 못난 스승에게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해 줄 수 있겠느냐.”

주서천이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워낙 바쁘다 보니, 이야기는커녕 대면하기도 힘들었다.

“물론입니다.”

“상황이 상황이니 너무 길게 말할 필요는 없단다.”

유정목은 혹시 몰라 말했다.

‘서천이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겐 미안하지만, 그래도 혹시 어려움이나 고민을 품고 있을지도 모르니…… 적어도 근황 정도는 알아야지.

정리가 한창인 장문인이나 장로진, 사형제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구나.’

아무리 영웅이니, 검신이니 할지라도, 유정목에게 주서천은 아직도 보살펴야 하고 걱정되는 제자였다.

아니, 많은 사람들에게 의지 받는 영웅이기에 더더욱 걱정됐다.

주서천은 그동안의 일을 유정목에게 이야기했다.

물론, 남궁위무의 일 등 숨겨야 할 부분은 숨겼다.

유정목을 결코 믿지 못하는 건 아니다.

하나 모든 걸 짊어지고 악이 된 남궁위무를 존중하여 비밀을 끝까지 지키기로 했다.

어린 시절부터 그래 왔지만, 스승에게 거짓을 고하진 못하니 일부러 관련된 이야기를 일체 하지 않았다.

스승은 제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도 빠짐없이 들었다.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주서천이 요약하고 전달하는 솜씨는 무척 뛰어났던 덕분이었다.

무엇보다 유정목도 들은 것이 있어 아무것도 모르는 건 아닌지라, 도중에 물을 필요 없었다.

“……여기까지입니다, 사부님.”

“정말로…… 고생 많았다.”

유정목은 주서천의 말이 끝나자마자, 손을 들어 주서천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주서천은 무심코 입가에 웃음을 지었다.

나이를 얼마나 먹던 간에 스승의 따스한 손이 좋았다.

암천회에게 승리하고, 불리한 상황을 역전한 것보다 큰 기쁨이었다.

‘많은 이들이 이 아이에게 의지하고 있다.

화산파도, 정파도…… 그리고 무림도.’

유정목은 주서천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러면 이 아이는 누구에게 의지한단 말인가?’

유정목은 때때로 제자가 몹시 걱정됐다.

어릴 적부터 성숙했다 한들, 그리고 검신이라 한들 결국은 사람이다.

신선도 부처도 아니다.

검의 신이라 부른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무공의 성취뿐이다.

결코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다.

‘이 어깨 위에 짊어진 짐을 많이 덜 수 없는 내 자신이 원망스럽구나.’

유정목은 자신의 무능함에 한탄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지병이 나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말이다.

그동안 화산에 틀어박혀 수련에 임한 것에는 제자의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몸이 약했던 시절의 기억이 아직 남아 있는지 툭하면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화산파 근처에 화인의원이 세워진 것도 그러한 연유 중 하나였다.

‘그러니, 서천이가 의지할 수 있도록 버팀 목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한동안, 스승은 제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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