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十八章 (223/254)

“도련님, 왜 그러세요?”

“글쎄 귀가 이상하게 간지럽네.

요즘 부쩍 누가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단 말이야……”

제갈승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 이야기보다는 화산파의 소식부터 들려왔으면 좋겠다.’

제갈승계 역시 화산 습격 소식에 주목했다.

그 주서천이 소중하게 여기는 곳이기도 하고, 화산에는 특별하게 신경써서 설치한 기관이 있어서였다.

부디 그 기관이 도움이 돼서 주서천이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다치지 않기만을 바랐다.

‘그나저나 화산의 기관도를 생각해보면, 참 악랄하단 말이야.’

화산의 기관에는 제갈승계 외의 손길도 거쳤다.

암기의 경우엔 당혜에게 도움을 빌렸으며, 배치나 발동 시기 등의 전술 부분에는 제갈수란이 거쳤다.

제갈수란은 검산과 검목(劍木)의 배치에 이러한 조언을 건댔다.

‘검산이 발동된 이후라면 경계심 탓에 진군의 속도를 늦춰서라도 함정을 해체하면서 오를 거란다.’

모사미봉은 적이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마치 미래를 본 것처럼 예견했다.

‘그러면 주변의 나무가 기관 장치라는 걸 눈치챌 수 없도록, 눈속임용으로 함정을 지면에 배치해 두는 편이 좋을 거라고 생각한단다.

고리고 적이 해체에 익숙해져, 경각심이 사라질 무렵을 노려……’

열성적인 누이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당혜도 왜 그런지는 모르나 자기 일처럼 도왔다.

‘아, 두 분도 드디어 기관이 얼마나 대단하고 매력적인지 알게 된 거구나? 와하하!’

사고방식이 답이 없는 제갈승계였다.

“칭찬인지 욕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누군가 도련님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니 다행이네요.

그 성격괴팍한 외톨이가 설마하니 오룡삼봉이 될 줄이야…… 새삼 감회가 새롭네요.”

“……말이 조금 심하지 않니?”

“엇, 뒷말은 속으로 생각한 거였는데…… 무심코 흘리고 말았네요. 호호호.”

제갈승계를 어린 시절부터 보필해온 하녀, 왕소소는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빙글빙글 돌렸다.

시선까지 돌리며 딴청을 피우는 모습이 아주 수준급이다.

‘그래도, 정말로 오룡이 되실 줄이야……’

왕소소는 말은 그래도 속으로는 놀라고 있었다.

오래전, 왕소소는 노력 끝에 치열하기로 소문난 오대세가의 하녀로 들어오는 데 성공했다.

하나 앞으로 보필하게 될 주인이 세가에서도 내놓은 문제아라는 소식에 한숨부터 내쉬었다.

‘출세는 물 건너갔구나.’

정파 특유의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분위기 탓인지는 모르나 하인들에게도 이러한 위계가 존재했다.

그리고 이 위계란 보통 누굴 보필하느냐에 따라서 정해지며, 높은 사람일수록 권세를 누릴 수 있었다.

하녀의 권세라고 해 봤자 얼마나 대단하겠냐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무림의 오대세가의 하녀, 그것도 직계 혈족의 직속이라도 된다면 일반인 이상의 삶을 누릴 수 있다.

고향에 있는 가족들이야 먹여 살리고도 남는다.

운이 좋다면 첩으로 눈에 띄어 인생 역전을 꿈꿀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반대로 말하면 보필하게 된 사람의 인성이 좋지 않거나, 위치가 좋지 않다면 아무리 경험을 쌓는다해도 우습게 보일 여지가 있다는 의미였다.

‘에휴, 출세는 무슨 출세야?’

왕소소 역시 한때나마 하녀로서 나름 출세를 꿈꾸던 평범한 소녀였으나, 욕심이 그리 많진 않았다.

앞으로의 삶이 평탄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오대세가의 하녀로 들어온 것만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제갈승계가 조금 특이하긴 해도 때리거나 혹은 강제로 범하려 하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저분은 누구세요?’

‘아, 왕 언니? 신경 쓰지 마. 그 도련님 직속이니까.’

‘그 도련님이면 …… 아, 혹시?’

‘쉿. 그래도 직계시니 함부로 말하면 안 돼.’

‘불쌍하다.’

‘그래도 자기 위치는 아는지 꼰대 짓은 안 하더라.’

미련을 버리고 받아들이니 마음이 편하긴 했지만, 생활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혼자서 해결해야 했으며, 때때로는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왕소소는 알게 모르게 당하는 따돌림이 불쾌하였으나 그저 숙명이려니 하면서 자기 할 일을 묵묵히 해냈다.

또 제갈승계와 지내는 것도 생각만큼 나쁘진 않았다.

우울한 게 좀 흠이고, 친구도 없고, 툭하면 혼자 중얼거리는 일이 있어 좀 기분 나쁘긴했지만 소심한 남동생을 돌보는 것 같아 보람도 있었다.

나중에는 농담을 건넬 정도로 친하게 지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직계 혈족의 하녀가 지니는 특혜는커녕 무시를 받던 나날에서 갑자기 상황이 돌변했다.

‘막내 도련님 말이야, 최근 잘생겨지지 않았어?’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여전히 말도 못 하시고, 우울해보이긴 하지만……’

‘잘생겼어!’

제갈승계는 훌륭할 정도로 잘 자라주었다.

피는 못 속이는지 외모가 몹시 뛰어났다.

여전히 세가에서 내로라하는 자식이고, 성격도 이상한 편이긴 했지만 그래도 전보단 평가가 좋아졌다.

그리고 어느 날, 화산파의 제자이며 주서천이라는 이름의 도사가 찾아온 기점으로 여러 가지가 바뀌었다.

‘기관괴협?’

‘제갈승계 도련님이 글쎄……’

‘귀주대전에 대해서 들었어?’

‘승 공자님을 만나러 온 사람이 줄을 잇는다는데?’

‘전국 무림 세력에서 들어온 혼담만 해도 수백이 넘는다고 하더라!’

‘앗, 왕 언니. 안녕하세요!’

‘왕 언니 정말로 대단하지 않아? 제갈승계 공자님이 어떤 분인지 원래부터 안 거잖아. 대박이야.’

‘그야말로 용을 키운 안목!’

천하제일기관사, 또는 기룡 등의 별호가 붙은 이후로 주변의 시선이나 대접이 완전히 바뀌었다.

언제나 귀찮거나 불쌍하게 여기던 시선은 없었다.

하녀건 무사건 간에 하나같이 예를 지켰다.

무거운 것이라도 들고 가면 곧바로 와선 대신 들어 주겠다고 답했다.

심지어 무림인조차 제갈승계의 직속, 그것도 거의 하나뿐인 하녀라고 듣자 공손한 태도로 대해 주었다.

솔직히, 나쁘지는 않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주변의 달라진 대접보다 더 기분 좋은 것이 있었다.

‘소소야, 나 기룡이야! 내가 천재라고 했지?’

드디어 인정을 받았다면서, 기쁘듯이 소식을 알린 제갈승계.

그 표정을 떠올린 하녀는 미소 지었다.

“그런데 아직도 친구가 없다니…… 여전히 속 썩이시네요.”

“누, 누가 친구가 없어? 친구 있거든!”

“친구 누구요? 다섯 명, 아니 세 명만 대 보세요.

참고로 저 포함한 세가 친구들은 예외요.”

“세 명이 아니라 다섯 명도 댈 수 있거든?

어디 보자, 일단 서천 형님이랑……”

제갈승계가 손가락을 하나하나 접으면서 중얼거렸다.

왕소소의 입가엔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 * *

악몽이었다.

삼악검파의 머리에 제갈승계의 이름이 틀어박혀 떨어지질 않았다.

꿈에 나올 정도였다.

‘히이……’

원비겁 섭등도 기관의 위력에 몸서리쳤다.

삼문주가 선물을 주겠다고 비호를 해 주지 않았더라면 그 역시 이 죽음의 산에 희생물이 됐을 것이다.

‘이것이 기룡의 힘인가!’

기룡의 정녕 무서운 점은 설사 중원 반대편에 있다 할지라도 수천에 이르는 무인을 처리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동안 제갈승계의 능력에 대해선 천군사나 모사미봉의 후광에 의해 과장된 것이 아닐까 의아해했었는데, 어리석은 생각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얼마나 당했지?”

“중상자 포함해 삼백여 명입니다.”

화산을 오를 때만 해도 이천이었다.

어이없게도 그중 오백이 화산파와 격돌하기 전에 죽거나 다쳤다.

“삼악검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사문의 제자들이 헛되이 죽는 걸 원치 않는다면 항복해라.”

섭등이 진심을 담아서 권유했다.

“헛소리!”

일팔구로가 어림없다는 듯 눈썹을 사납게 치켜떴다.

눈에선 분노로 타오르는 빛이 뿜어져 냐왔다.

“무인, 그것도 검파의 수장인 주제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겁쟁이들에겐 굴복하지 않는다.”

“그 말대로다.”

태산파검의 낯빛은 어두우나 그 신념은 이름 고대로, 태산처럼 굳건했다.

“정면에서 나서지 않고, 숨어 있는 것 자체가 우리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증거다. 애초에 여기에서 돌아가는 것이야말로 저들이 원하는 것. 네놈의 잘난 혀에 속아 넘어갈 줄 아느냐.”

“동의하네.”

초예사태가 다시 오를 준비를 하라는 듯, 턱짓으로 위를 가리켰다.

“ 어차피 더 이상 물러날 곳도 없지.”

태산파건 숭산파건, 그리고 항산파건 간에 다들 말은 하지 않았으나 시간을 끄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종남파를 비롯해 무림맹이 보낼 지원병력이 신경 쓰였다.

무엇보다 상천육좌, 검신이 문제였다.

위치를 파악할 수는 없으나 사문의 습격 소식에 달려올 터.

사람이 아닌 괴물이 오기 전까지 해결해야 했다.

“가자.”

삼악검파는 제자들을 발판 삼아 진군을 속행했다.

검산에 이어 검목을 조우한 이후로는 지면뿐만 아니라 좌우, 심지어 하늘까지 주의하면서 올라갔다.

속도가 한층 더 느려지긴 했으나, 어쩔 수 없었다.

또한 전처럼 밀집해 있다가 한꺼번에 당하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최대한 산개해서 올랐다.

정면 돌파를 선택하되 흩어졌다.

휴식이나 수면을 취할 때도 주변을 경계했다.

그 탓에 피곤함이 몇 배나 쌓였으나, 그래도 목숨은 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갖은 노력 끝에, 날이 다시 밝을 무렵 운기조식을 끝내고 화산파에 도달을 수 있었다.

“왔군.”

매화검장, 위지결이 팔짱을 풀고 감은 눈을 떴다.

쿵! 쿵!

문 위에 석 자가 새겨진 사문의 간판이 흔들렸다.

쿵! 쿠웅! 콰앙!

문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르더니, 기어코 박살 나면서 삼악검파의 제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숫자는 무려 천오백여 명.

산이 떠나갈 정도의 외침이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며 가득 메웠다.

“화산파!”

분노와 증오로 가득 찬 건 삼문주만이 아니었다.

밑에서부터 중턱, 그리고 그 정상까지 고생함을 생각하니 뇌가 절로 떨리고 입술에선 피가 흘렀다.

삼문주가 세뇌하듯이 화산파를 폄하한 결과인지 상당수 대부분이 혈안이 되어 있었다.

“죽여라!”

서로 대치해서 이름을 교환하는 일은 없었다.

이미 살의가 쌓일 때로 쌓인 삼악검파다.

흘러나온 걸 넘어 터져 버린 증오와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

삼악검파는 평지 위로 올라오자마자 화산파와 일언반구도 없이 검부터 날렸다.

“크아아악!”

“아악!”

정파인의 질서나 예절 따위는 없었다.

지칠 때로 지친 삼악검파에게 인내심은 없었다.

삼악검파, 아니 오악검파가 서로 뒤섞였다.

형산파에선 한 사람만이 그 광경을 지켜볼 뿐이었다.

“오냐, 기다렸다!”

“와아아아!”

누군가의 격앙된 목소리가 삼악검파의 후위에서 터져 나왔다.

삼악검파가 흠칫 놀라며 뒤를 살폈다.

검목으로 후위를 잃은 적이 있어서 그런지 반응이 번개 같았다.

“타앗!”

화산파의 무공 중 흔치 않은 장법이 펼쳐졌다.

명수악의 사손, 방철삼의 손바닥이 적의 등을 후려쳤다.

“크아악!”

“뒤다!”

“비겁한 놈!”

“십사검협도 있다!”

구풍, 방철삼, 장홍, 장서은 등 백여 명의 화산파는 문밖에 매복해 있다가 튀어나와선 퇴로를 막았다.

“아군인 척하다가 적군으로 변해서 뒤를 친 게 누군데 지금 누구보고 비겁하다고 하는 것이냐!”

장홍이 코웃음을 치며 장서은과 검을 휘둘렀다.

이십사수매화검법이 펼쳐질 때마다 적의 입에서 참혹한 비명이 터져 나오고, 혈 향에서 매향이 맡아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군과 적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난전이 시작됐다.

그리고 그 난전 속 은밀히 움직이는 이들이 있었다.

“유정목을 찾아라. 최우선 사항이다.”

“명!”

숭산파의 문주, 일팔구로는 중악제일검(中嶽第一劍)이라 불릴 만큼의 실력자이자 검수이다.

오악검파를 각각 대표하는 지도자들은 인성은 둘째 치고 실력만큼은 출중하며 전원 천하백대고수에 든다.

단, 연령이 어리며 강호에 출두하지 않아 실력을 증명하지 못한 화산의 장문인만이 예외였다.

“쯧!”

조무양이 혀를 차면서 보법을 밟았다.

“ 어딜!”

일팔구로가 검을 앞으로 쭉 뻗었다.

숭산의 일지검법이 곧은 선을 그려 내면서 조무양의 목을 노렸다.

“흥!”

조무양은 전형적인 정파의 안하무인이다.

솔직히, 인성이 썩 좋다곤 할 수 없었다.

사람을 재능이나 핏줄, 사형제가 누구인지를 보고 판단하기도 했다.

화산파 내에서 싫어하는 장로 순위를 뽑으라면 당당하게 일 위를 할 정도의 사람이었다.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산오장로에 오를 수 있었던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실력 덕분이었다.

“ 어림없다!”

조무양이 발을 현란하게 놀려 몸을 틀었다.

움직임에 갑작스러운 변화를 주는 신법, 신행백변으로 목을 노린 검을 피한 뒤, 반격에 가했다.

휘이익!

왼팔을 들어 수평으로 눕힌 뒤, 손바닥을 편다.

장력을 집중하자 기압에 변화가 벌어진다.

이윽고 곧 손바닥이 폭음을 터뜨리며 상대를 노렸다.

흩날리는 꽃잎을 쫓아 전부 가격할 수 있다는 쾌속의 장법, 화산파의 낙화추영장(落花追影掌)이었다.

콰앙!

조무양의 일장이 일팔구로를 가격했다.

정확히 말해선 어느새 손 안으로 회수된 일팔구로의 검이었다.

조무양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눈썹을 좁혔다.

“내팔로외구로(內八路外九路)!”

일팔구로의 일은 일지검법이며, 팔구로는 곧 내팔로외구로를 뜻한다.

전자건 후자건 간에 숭산파의 절기이며 일팔구로는 이 두 검법을 극성으로 익혔다.

일지검법은 보듯이 찌르기를 극대화한 쾌검이며, 내팔로외구로는 공수용의 검이다.

안으로 여덟, 밖으로 아홉 개의 검의 길을 가진 것이 특징이었다.

“검도 쥐지 못한 떨거지 주제에!”

일팔구로는 여타 정파의 안하무인처럼 본인의 무공에 자부심이 크며 그 외의 것을 얕잡아 보았다.

특히나 검이란 것에 집착함이 크다 보니 다른 종류의 무공을 무조건 아래로 보았다.

“뭣이라?”

명수악, 조무양의 표정이 사나워졌다.

화산파는 대대로 검파로 이름이 높다.

단연 그 화산파에서 검법을 택하지 않았다고 하면 재능이 부족하여 덜떨어진 놈 취급을 받는다.

조무양 역시 매한가지였다.

어릴 적에는 화산파 내에서도 알게 모르게 그러한 시선이 존재했으며, 밖에선 더 심했다.

우습게도 누구보다 차별받았던 사람이 바로 조무양이었다.

무공에 매진하거나 강호 출두 때 공적을 세워 이름을 날린 것도 이 무시를 떨쳐내기 위함이었다.

“오냐, 그 잘난 검! 철저하게 뭉개주마!”

조무양의 분노로 가득 찬 외침이 울렸다.

챙! 채챙!

검과 검이 부딪치면서 불꽃이 튀긴다.

검신이 햇빛에 반사되어 눈부신 빛을 토해 냈다.

째앵!

검이 세게 부딪치면서 내는 소리가 늘어졌다.

“매화검장!”

“태산파검!”

위지결과 태산파검이 검을 맞댄 채 마주봤다.

“검장!”

매화검수의 외침이 들렸다.

“내가 아닌, 사문을 지켜라!”

화산파가 강하다 할지 라도, 삼악검파의 전력은 부담스럽다.

배나 차이나는 이상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 탓에 매화검수를 분할하여 곳곳에 배치했다.

“네 이놈! 누구 앞이라고 한눈을 파느냐!”

태산파검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크하아아압!”

중후함과 엄함이 깃든 외침.

무식할 정도로의 성량은 그야말로 태산 그 자체다.

카가가각!

태산의 검은 적을 파괴한다.

그저 비유만은 아니었다.

검에 실린 기운이 솟구치더니만, 위지결의 검을 집어삼켰다.

“크읏!”

위지결이 신음을 흘리면서 뒤로 후다닥 물러났다.

태산파의 무서운 건 기초에 확실하고 견실한 검초도, 무거움도 아니다.

문주에게만 허락된 비전 검술이다.

‘태산십이검세(泰山十二劍勢)!’

태산십이검세는 내가중수법 중에서도 최상위에 속하는 검법 중 하나에 속했다.

‘ 저 무공은 검기로 내공을 파괴하는 힘을 지녔다.

내공의 소모가 극심하나, 태산파의 문주 정도면 어릴 적부터 여러 지원을 받고도 남았을 테니 생각보다 오래갈 터.’

위지결은 검을 쥔 손을 꽈악 쥐었다.

‘그렇다면 직접적인 접촉은 피한다.’

화산오장로 중 단연 최강, 그것도 화산의 정예인 매화검수의 수장은 결코 허명이 아니다.

검술의 기교부터 시작해 연륜, 오성까지 갖춰야 검장으로 인정받는다.

“우오오오!”

태산파검이 고함을 내지르며 지면을 박찼다.

멧돼지가 돌격하는 모양새이나 우습게 볼 수 없다.

정파의 검 중 몇 없는 파괴적인 무공의 소유자다.

그 위압감은 정말로 태산이 덮쳐 오는 것 같았다.

부웅!

검을 쥔 오른손 근육이 부풀어 오르는 것이 보였다.

힘줄이 위로 돋으면서 우락부락 해졌다.

위지결은 태산파검의 검이 살벌하게 빛난 걸 보자마자, 좌측으로 반보 이동해 검을 휙 피해 냈다.

‘환검!’

회피 동작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위지결의 검은 적의 팔에 구멍을 내기 위해서 앞으로 쭉 뻗어 갔다.

그저 빠르기만 한 찌르기가 아니다.

잘 보면 검 끝이 흔들리면서 그림자를 만들어 냈다.

‘매화점개(梅花潮開)!’

이십사수매화검법으로 환검을 펼쳐냈다.

이름 그대로 매화가 점점 피어나듯, 검이 잔영을 만들어 냈다.

현 화산에서 누구보다 먼저 이십사수매화검법을 대성한 위지결이다.

그 실력은 예술이라 할 정도였다.

그다음 초식인 매화점점(梅花潮潮)과 매화난만(梅花潤漫)을 이어서 완벽한 환검을 펼쳤다.

태산파검의 성난 빛을 내뿜는 눈동자가 옆으로 슬쩍 움직였다.

‘허튼수작!’

검이 부딪치지 않도록, 환검을 사용했다.

태산십이검세의 대안으로서는 모범적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검풍세(劍風勢)!’

손잡이를 돌려 검을 반 바퀴 돌려잡아 방향을 정면에서 측면으로 바꿨다.

복근에는 힘을 팍 주고 허리는 바람개비 돌리듯 회전력을 생성해 검에 넣었다.

“흐아아압!”

환검이란 건 곧 허초를 눈속임 삼는 걸 뜻한다.

이 환검의 대안은 의외로 쉽다.

잔상을 보지 못한다면, 문제의 허초인 검의 잔영까지 없애 버리면 고만이었다.

그 고안이 검풍세였다.

‘그 잘난 화산의 절기를 검 채로 박살 내 주마!’

채채챙! 푸욱! 서걱!

“아아아악!”

“큿!”

“막아라!”

영산으로 칭송받던 경관은 강처럼 흐르는 핏물과 산처럼 쌓인 시체로 저주받은 것처럼 변했다.

시신이 계단 위로 떨어지면 경사 탓에 저절로 굴러떨어지는 광경이 보였다.

“뚫어!”

숭산파, 태산파, 항산파.

오악검파의 수장에 불만을 품고 합심한 이들은 생각보다 강세였다.

과연 명문 정파다운 실력이었다.

위에서 내려다본 화산파와 삼악검파의 전세는 비슷비슷했다.

화산파는 사문에서 쓰는 만큼 지형 등에 익숙했고, 또 개개인 실력 또한 오악검파 수장답게 뛰어났다.

그 대신, 삼악검파의 전력이 배나 크다 보니 쉽게 막아 내진 못했다.

당연히 여러 사상자가 발생했다.

“화산의 장문인은 어디냐!”

일팔구로, 태산파검이 각각 화산오장로 및 정예를 맡는 동안 초예사태는 무리를 이끌고 위로 등반했다.

마치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문에서부터 연무장이나 양 열로 즐비한 나무를 지나쳐 올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맑은 물이 고인 연못, 옥녀지를 앞에 둔 상궁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휘련!”

초예사태가 차갑게 웃었다.

“아무리 어리다고 한들, 화산의 장문인이란 자가 그리 겁을 먹다니…… 부끄러운 줄 알거라.”

무저갱처럼 끝없는 어둠이 펼쳐진 눈동자 속에서는 부정적인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선이 닿는 곳의 아래, 화산파의 제자들에게 둘러싸인 정휘련이 보였다.

정휘련은 초예사태의 외침에 어떠한 감정도 내비치지 않았다.

대신 몇 걸음 나서서 그녀를 내려다봤다.

“그깟 싸구려 도발에 넘어갈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항산의 배신자여.”

초예사태의 얼굴에 웃음기가 싹 가셨다.

“감히, 누굴 내려다보느…… 아니, 너희는 전부터 그리 내려다보았지.”

가슴 속 무언가가 부글부글 끓었다.

머리는 화로 터질 것만 같아 두통을 부를 정도였다.

“화산파를 넘기 위해서 노력해 온 본 문을 짓밟고, 무시해 오고, 하찮다는 듯이 내려다보지 않았느냐!”

초예사태가 분노에 가득 찬 고함을 토해 냈다.

“그 시건방진 눈깔부터 파고 이야기하겠다아!”

초예사태의 감정은 폭발한 지 오래였다.

얼굴을 보자마자 덤비지 않은 것이 잘 참았다 할 정도였다.

정파 특유의 마음을 다스리는 법 따윈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증오나 분노밖에 없었다.

“와라.”

정휘련이 검을 뽑았다.

아직 대성하지 못해 자색을 뿜어내진 못 했지만 그래도 검세가 날카로웠다.

“장문인을 제외하고 전부 죽여라!”

“장문인을 지켜라!”

파바바밧!

화산, 연화봉 정상에서 각 무리가 부딪쳤다.

초예사태는 질풍이 되어 화산파를 꿰뚫으려 했다.

“어딜!”

매화검수 중에서도 호흡이 잘 맞기로 소문난 삼대제자, 몽각과 담향이 어림없다는 듯 앞을 가로막았다.

“비켜라!”

초예사태가 사자후를 토해 내듯, 괴성을 질렀다.

몽각과 담향은 내공으로 청각을 조절해 고막이 찢어지는 걸 막으며, 초예사태를 좌우에서 공격했다.

하나 그 공격은 초예사태에게 치명상을 입히기는커녕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

“무슨……!”

“큿!”

몽각과 담향은 버티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북악제일검, 항산파의 장문인은 매화검수와 몇 합도 교환하지도 않은 채 가볍게 돌파했다.

“정휘련!”

검에 맺힌 기가 강기로 굳어지는 순간이었다.

정휘련의 등 뒤로 그림자가 튀어나와 앞을 막았다.

채애앵!

화산파의 장문인은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검에 실린 공력이 터지면서 검압을 뿌렸으나, 물러나지 않고 고목처럼 꼿꼿이 서 있었다.

등허리는 곧게 펴고, 턱은 살짝 들어서 오연한 모습을 보였다.

“장문인, 괜찮으십니까?”

머리를 쪼갤 기세로 내려온 검을 막아낸 건, 서로 교차한 모양새를 한 두 개의 검이었다.

초예사태는 이를 뿌드득 갈면서 검의 주인을 확인하곤 별호를 불렀다.

“철혈매검! 소유검!”

화산오장로, 심옥련.

그리고 검신의 스승으로 알려진 유정목이었다.

“항산파의 절매산엽검식(絶梅散葉劍式)을 조심하게나.

저 검은 화산의 검을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졌네.

앞서 두 사람이 허무히 뚫린 것도 같은 이유일세.”

“명심하겠습니다, 장로님.”

파츠츳.

심옥련의 검기가 몇 겹씩 늘어나더니, 이윽고 하나로 굳어 가며 강기를 만들어 냈다.

화경의 고수는 그녀만이 아니었다.

유정목의 검에 실린 푸르스름한 기운 자락 역시 검체를 둘러쌌다.

물처럼 흐르던 아지랑이가 중첩되고 굳어 가는 그 모습은, 검강이 분명했다.

“하압!”

두 사람은 동시에 힘을 주며 초예사태를 밀쳐 냈다.

섬서, 어딘가.

“사형, 얼마 남지 않았어요. 조금만 힘내세요.”

낙소월이 주서천의 옆구리에 낀 채로 응원했다.

‘사부님 성격상 숨어 계시진 않을 텐데……!’

유정목은 의로운 사람이다.

마음 같아선 어디 한 곳에 숨어 보호를 받으면 좋겠지만, 성격상 그런 걸 용납할 리 없었다.

누구보다 앞서거나 희생하면 했지, 결코 숨거나 도망칠 사람은 아니었다.

‘만약 사부님이 다치기라도 한다면……’

주서천의 얼굴이 악귀나찰처럼 일그러졌다.

‘차라리 죽여 달라 할 정도로 만들어 줄 것이다!’

오악검파는 내부 사정이 복잡하더라도, 표면적으로는 교류가 잦다.

명망있는 제자면 두말할 것 없었다.

“오악의 수장에게 어딜 감히!”

방철삼이 울긋불긋한 얼굴로 고함을 내질렀다.

동시에 앞으로 쭉 뻗은 손바닥에서 장풍이 쏘아졌다.

“흥!”

숭산파의 일지검, 곽채가 콧방귀를 뀌며 받아쳤다.

“오악의 수장? 실력이 아닌 인맥과 뒷돈으로 권력을 유지하는 놈들이 뭐가 수장이더냐.”

“뭐, 뭐라고?”

“그리고 애초에 검도 쥐지 못한 떨거지가 어딜!”

쐐액!

검이 앞으로 쭉 나아가며 대기에 구멍을 냈다.

“이 새끼가!”

곽채도 곽채지만 방철삼도 성격이 그리 좋진 않다.

그 스승에 그 제자라고 할까, 정파의 안하무인이었다.

그래도 재능이나 실력은 스승처럼 확실했다.

휘익!

방철삼이 곽채의 섬광 같은 찌르기를 피했다.

간단히 피한 건 아니다.

오행매화보를 전력으로 펼쳤다.

그 증거로 검이 일으킨 검풍이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 소맷자락이 베였다.

“뒈져라!”

방철삼이 이때다 하고 낙화추영장을 펼쳤다.

“큭!”

곽채가 팔을 얼른 접어 검을 세웠다.

그 순간에 맞춰 흉부를 노린 손바닥이 검면을 후려쳤다.

퍼엉!

검과 손바닥이 부딪치면서 충격파가 일어났다.

화경이 아닌 초절정 간의 충돌답게 주변에 영향을 끼칠 정도는 아니었다.

‘숭산파치곤!’

‘화산파치곤!’

방철삼과 곽채의 얼굴이 걸레짝처럼 일그러졌다.

서로를 향한 모멸감이 교차하면서 지나갔다.

“소태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장홍의 검이 태산파의 소문주, 고찬정의 옆구리로 파고들었다.

“아니! 늦었다!”

고찬정이 검을 아래로 뻗어 직각으로 쳐올렸다.

채앵!

장홍의 검이 고찬정의 검에 밀려 위로 올라갔다.

“늦었기에, 이 지경까지 온 것이다!”

고찬정이 혈안을 뜬 채 연달아 검격을 날렸다.

채채채챙!

장홍은 고찬정의 검격을 정확하게 받아쳤다.

“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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