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十七章 (222/254)

섬서, 화산.

삼악검파의 배신 및 포위를 최초로 확인한 건 단연 습격 목표가 된 화산파였다.

“삼악검파가 배신이라니……”

아직 소년티를 벗어 내지 못한 청년, 무림 역사상 최연소 장문인이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내 살다 살다 별일이 다 있구먼.”

단약사, 영진이 정휘련의 중얼거림에 동의하듯 헛웃음을 흘렸다.

“이게 지금 웃을 일이오?”

명수악, 조무양이 어이 없다는 듯이쏘아봤다.

“맞는 말입니다.”

철혈매검 심옥련이 엄격하고 진지하며, 근엄한 얼굴로 동의하며 힐난의 눈초리를 보냈다.

“아니, 근데 헛웃음 나올 정도로 어이없긴 합니다.”

정휘련이 영진의 말에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조무양과 심옥련은 못마땅한 표정이었지만, 장문인이 저리 나오니 더 이상 뭐라 할 수가 없었다.

‘대단하군. 완전히 휘어잡았어.’

지검옹, 학송이 짐짓 감탄했다.

전대 장문인, 우일문 진인이 늦게 들인 장문제자인 정휘련은 고작 열다섯 살에 장문인에 올랐다.

그 후 그는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만큼, 훌륭한 장문인으로서 성장하였다.

겉으론 가벼워 보여도, 속으로는 누구보다 생각이 깊었다.

무공이건 학문이건 배움에 열정적이고 성실한 태도로 임했으며, 자만하거나 오만하지도 않았다.

화산오장로에게 겸손한 태도로 경험을 흡수하면서, 또 너무 저자세로 우습게 보이지 않도록 적절한 사이를 유지했다.

요 이 년 동안 화산오장로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로 노력했는데, 타고난 재능의 소유자답게 성장 속도가 무시무시했다.

‘스승의 죽음 탓에 무리라도 하는건 아닐까 싶었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정말로 타고난 위인이야.’

주서천이 괜히 인생 이 회 차냐고 물은 게 아니다.

연령에 비해 말이 되지 않을 정도의 괴물이었다.

우일문의 죽음이 영향을 끼치지 않은 건 아니다.

정휘련은 누구보다 존경하는 사부의 죽음에 몹시 슬 퍼했으나, 언제까지나 울고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장문인을 잇겠다고 맹세한 이상, 돌아가신 사부님께서 안심할 수 있도록 화산파를 이끌어 가겠다.’

동경하는 영웅, 검신에게 자하신공을 전수받았다.

화산오장로에게 연륜과 지혜를 배워 견식을 키웠다.

술이나 여자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식사와 수면도 줄여 가면서 노력했다.

화산오장로는 정휘련을 통해서 노력하는 천재가 얼마나 무서운지 실감할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너무 어려서 좀그렇다.’ 라는 불안도 쏙 들어가고, 그 대신 신뢰가 차지했다.

아직 배울 것이 많이 남긴 했지만, 장로진 및 화산파 제자들에게 존경받는 장문인이 될 수 있었다.

“위지결 장로님. 싸울 수 있는 전력이 얼마 정도 됩니까?

아직 어린제자들은 제외하고요.”

장문인과 화산오장로는 상호 존중을 위해 경칭을 붙이나, 극존칭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휘련의 경우 삼대제자이며 나이가 워낙 어리다 보니 화산오장로를 좀 더 극진하게 대우했다.

화산오장로는 정휘련의 말에 어리고 삼대제자여도 장문인인 만큼 그럴 필요 없다고 말했지만, 정작 장본인이 그게 더 편해서 그런 거라고 고집을 부려서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약 육백여 명입니다.”

매화검장, 위지결이 답했다.

“적군요.”

“그간 신나게 싸워 왔으니……”

영진이 끙, 하고 신음을 흘렸다.

현시대는 전란의 시대라 불리고 있다.

칠검전쟁, 정혈대전, 정마대전, 사문반란부터 시작해 암천회의 등장 등 여러 전쟁을 지속적으로 겪었다.

새로운 제자들을 받아 전력을 회복시켜야 했지만, 상황이 좋지 않다 보니 예전에 비해 좋지 못했다.

“그래도 절망하기에는 아직 이릅니다.”

정휘련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검을 들었다.

* * *

하남, 무림맹.

“아니, 오악검파까지 배신이라니!”

콰앙!

팽군평이 주먹을 탁자를 박살 낼 기세로 내 리쳤다.

내공을 싣지 않아서 흔들리는 정도로 끝났다.

무림맹 상층부는 오악검파, 그것도 삼악의 배신에 누구보다 동요하고 있었다.

오악검파라 하면 명문정파, 그것도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 다음으로 영향을 끼치는 검파 연합이었다.

“우리가 너무 안일했소.”

우백이 신음을 흘렸다.

“중소 문파나 혹은 주요 문파여도 몇몇만 배신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니……”

황견이 끄응,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현재, 중원 무림 곳곳에서 개혁이나 혁명을 들먹이며 배신한 자들은 대다수가 하수뿐이었다.

즉, 중소 문파처럼 약소 세력이었다는 의미다.

명문 정파의 경우엔 독룡, 당명인처럼 소수이지 문파 전체가 배신하진 않았다.

하나 이번에 그러한 일이 벌어졌다.

망치로 뒤통수를 후려맞은 느낌이었다.

“허허……”

혜노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정파의 위신이 어디까지 떨어질는지……”

경인사태가 쓴웃음을 지으며 염주알을 굴렸다.

현재의 무림맹은 고금 역사상 손꼽힐 정도로 인재가 많다.

검신을 비롯해 여러 영웅을 배출하였다.

그러나 그게 무색하게, 배신자 역시 상당했다.

정파 세력이 갈기갈기 찢길 위협이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총체적 난국이었다.

“오악검 파를 믿고 그들을 파견하였거늘!”

공추가 혀를 차며 고개를 좌우로 절레절레 저었다.

섬서의 불온 세력의 확인 및 소탕의 경우는 오악검파에 모조리 믿고 맡긴 탓에 움직일 수 있는 전력이 몇 없었다.

설사 이제 와서 움직여도 제시간 내에 화산에 도착하여 도와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오랫동안 이어져 온 신뢰가 현 세대에 무너지다니……”

운광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 누구도 오악검파의 배신을 예상하지 못했다.

너무 과한 신뢰가 아니었냐고 한다면 그건 의심을 넘어서 과대망상증이다.

오악검파는 말했다시피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명문 정파로서, 무림맹과는 운명 공동체나 마찬가지였다.

정파의 내부 세력도 아니고 적대세력과 손을 잡았으니, 황당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저 ‘미쳤다’라는 표현밖에 할 수 없었다.

“군사, 이 일을 어찌하면 좋소?”

천군사, 제갈상에게 이목이 집중됐다.

“첩첩산중인 와중에 불행 중 다행인 건, 우선 형산파는 배신하지 않은 것이며 인근 지역의 종남파가 급히 제자들을 파견했다는 것입니다.”

“후우! 화산파가 얼마나 버틸지가 관건이로군.”

“화산의 장문인은 너무 어리지 않나.”

“무림 정예, 매화검수가 있긴 하다만……”

곳곳에서 걱정과 불안이 이 어졌다.

“아마 지금쯤 오악검파, 아니 삼악검파가 형산파의 제압을 끝내고 움직이기 시작했을 겁니다.”

화산파의 습격 소식을 들었을 때는 경악했지만, 다행히도 화산의 문이 부서진 건 아니었다.

부서지기는커녕, 아직 인근에 모인 것에 불과했다.

화산파에서 마중을 목적으로 미리 보내온 제자들, 그리고 가담하지 않은 형산파의 제압을 위해서였다.

그 덕분에 무림맹을 걸쳐 심양 지부, 주서천에게까지 소식만 전달될 수 있었다.

포위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나, 화산파 제자가 삼악검파에게 공격당했으니 습격이란 표현도 알맞았다.

* * *

삼악검파의 전력, 이천이 화산에 오른다.

무림세력의 전력을 생각하면 결코 적지 않은 숫자였다.

일파 당 약 육백여 명에서 칠백여 명이었다.

참고로, 삼악검파는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더 이상 화산을 피하지도, 굴복하지도 않겠네.”

초예사태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위를 올려다봤다.

삼악검파가 열등감, 질투심 등 여러 쌓인 불만으로 돌아서긴 했으나 아직까진 정파인의 체면을 중시했다.

개혁이라는 변명하에 문도를 이끌고 있는 이상, 대놓고 비겁한 짓을 저지를 순 없었다.

“허, 참 나. 정파를 배신한 주제에 남아 있는 체면이 있느냐?”

섭등이 어이없다는 듯, 삼악검파를 비꼬았다.

삼악검파의 제자들이 몸을 움찔 떨었지만, 반응하지 않았다.

왠지 변명하는 것 같아 기분이 안 좋았다.

그 순간이었다.

쿠구구.

“어?”

“뭐, 뭐야?”

정문을 향해 위로 올라가던 중이었다.

불현듯, 산이 마치 몸을 떨듯 흔들리기 시작했다.

“역시…… 있었나.”

태산파검이 중얼거렸다.

“천기의 말대로군.”

초예사태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기룡! 제갈승계의 잔재주다!”

일팔구로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주서천은 강호 출두 이후, 점차 화산파에 돌아가는 것이 어려워지자 자리를 비울 경우의 습격에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놓은 것이 기관이다.

“화산파에는 필시 기관이 설치되어 있을 것이다.”

그걸 놓칠 암천의 군사가 아니다.

제갈승계 역시 암천회의 살생부 위쪽에 이름이 올라왔다.

주서천과 친분이 있는 만큼 화산파에 분명 기관이 설치되어 있을 것이라고 오악검파에 경고했다.

“흥!”

일팔구로가 콧방귀를 끼며 언덕 위를 성큼성큼 올랐다.

숭산파의 제자들이 그 뒤를 따랐다.

“아무리 인정받았다고 할지라도, 결국 오합지졸에게나 통하는 잔재주일 뿐이다!”

일팔구로는 사문에 대한 자부심이 굉장했다.

“무림 정예로 이름 높은 삼악검파에게는 통하지 않지!”

정파 무림을 배신한 것도 자부심에 걸맞지 않은 대접 탓이었다.

그는 현 무림에 몹시 불만이 많았다.

“소림사도, 화산파도 숭산파의 아래라는 것을 똑똑히 보여 주마.”

숭산파의 불만은 화산파만이 아니었다.

비록 검파는 아니나 인근 지역의 거두인 소림사도 존재했다.

화산파가 아니라 구파일방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연유도 그 탓이었다.

선두에 선 숭산파가 산의 흔들림을 무시하고 위로 올랐다.

철컥.

“……!”

최선두에 선 숭산파의 제자가 흠칫 놀라 멈춰 섰다.

앞으로 내디딘 발이 지면을 밟는 순간, 무언가 맞물리는 소리가 들렸다.

발바닥에서 느껴지는 감각은 불길하기만 했다.

파바바밧!

불길함은 현실로 변했다.

발아래에서부터 검이 불현듯 위로 솟구치면서 몸을 위협했다.

“어림없지!”

일팔구로가 귀신같이 눈치채면서 검을 쭉 뻗었다.

쐐애액!

검의 몸체가 햇빛을 반사시키고 번쩍인다.

검이 곧은 직선을 그려 내며 섬광을 토해 냈다.

째앵!

정면에 있던 숭산파 제자의 가랑이에 검이 꽂히려던 순간, 일팔구로가 일지검법(一枝劍法)을 펼쳤다.

발아래에서부터 기세 좋게 솟구쳤던 검날은 목표에 닿지도 못한 채, 손쉽게 쪼개지며 아래로 떨어졌다.

“일지검법!”

“과연 문주님이시다!”

“눈부신 빠르기야!”

오악검파는 허명은 아니다.

인성은 둘째 치고 실력은 몹시 뛰어나다.

여기저기서 감탄이 쏟아졌다.

일팔구로는 주변의 칭찬 세례에 코웃음을 치며, 어떠냐는 듯이 고개를 뒤로 돌렸다.

“흥, 말하지 않았느냐. 잔재주에 불과……”

파앗!

고리고 그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숭산의 문주 앞으로 또다시 검이 솟았다.

그러나 하나가 아니었다.

산 넘어 산, 아니 검 넘어 검이었다.

퓨부부붓!

수십, 수백에 이르는 검이 지면에서부터 솟구친다.

나무나 풀을 밀어내며, 그 자리를 대신했다.

“으아아악!”

“아악!”

지옥의 시작이었다.

화산에 아비규환이 펼쳐졌다.

삼악검파의 입에서부터 참담한 비명이터졌다.

삼악검파의 무공 성취는 평균적으로 높다.

그런데도 피하지 못한 건, 검이 너무 촘촘히 배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뒤로 피하면 그 뒤의 검에 꿰뚫렸다.

삼악검파의 전위 대부분이 검산(劍山)에 휘말렸다.

살이 꿰뚫리고, 피 안개를 흩뿌렸다.

끔찍한 비명 역시 난무했다.

바로 죽지 못한 이들의 절규였다.

“으으……”

“맙소사!”

중앙과 후위에서 질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제갈승계!”

숭산문주의 입에서 증오스러운 이름이 흘러나왔다.

일팔구로는 제자들을 잃은 고통에 분노했다.

자만한 대가는 무시무시했다.

고수들이야 어찌어찌 살아남긴 했지만, 실력이 어중간한 이들은 살아남지 못했다.

삼악검파 전부 피해가 있었으나, 인원 대부분이 전위에 속한 숭산파가 특히나 피해가 컸다.

“화산파, 이 비겁한 새끼들아! 부끄럽지도 않느냐!”

일팔구로의 외침이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정정당당히 싸우기는커녕, 뒤에 숨어 지켜보다니!”

천하백대고수이자 화경의 고수가 목청껏 소리쳤다.

그 목소리가 몹시 커 화산 전체에 울릴 정도였다.

“숭산문주의 말대로다!”

태산파검 역시 동의하듯 앞에 나셨다.

그 역시 일그러진 얼굴로 위를 향해서 소리 질렀다.

“겁이라도 먹은 것이냐! 화산파!”

방금 전 검산에 의해 이백여 명이 목숨을 잃거나 전투를 속행할 수 없을 정도의 중상을 입었다.

산에 삼악검파의 분노가 메아리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간간이 신음만 흘러나올 뿐이었다.

“보았느냐!”

뿌드득!

초예사태가 이를 갈며 보란 듯이 손을 펼쳤다.

“이게 화산파다!”

화산파를 폄하하기에는 딱 좋은 기회였다.

“그 잘난 화산의 검이 삼악의 검에 무너질 것을 두려워해, 한낱 기관장치에 숨어 몸을 웅크리고 있다!

정정당당함을 내려놓은 지는 이미 오래다!”

좌중의 시선은 초예사태에게로 집중됐다.

“이러한 자들을 오악검파의 수장으로 믿고 따르다니, 그야말로 수치!

이 싸움은, 잘못된 걸 바로잡기 위한 개혁이자, 혁명이니라!”

“와아아아!”

화산, 중턱.

“저것들이……”

검으로 유명한 화산파의 제자이나, 허리춤에 검을 매지 않은 청년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내 당장 내려가서 저것들을……”

“방철삼, 좀 참아.”

매화검수, 장서은이 한숨 쉬며 방철삼을 진정시켰다.

“저따위 말을 지껄이는데도 참으라고?”

방철삼이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철삼이 말대로야.”

장서은과 마찬가지로 매화검수, 장홍이 불만인 듯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그 역시 낯빛이 좋지 않았다.

“목소리 좀 줄이거라. 이러다가 들키겠구나.”

십사검협, 구풍이 한숨을 내쉬며 셋을 주의 시켰다.

정찰을 위해서 사대제자 중 삼대제자와 견주어도 부족하지 않은 실력자를 데리고 왔지만, 구성원이 실수였다.

무공은 뛰어나지만 성질머리가 영 좋지 않았다.

다른 사람을 데려올까 싶었지만, 적인 삼악검파 역시 보통이 아닌지라 만약 노출되기라도 한다면 필시 잡힌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도주율을 늘리기 위해서 다혈질이어도 실력이 확실한 제자들을 데려왔다.

“하지만……”

방철삼이 불만인 듯 항변하려 했다.

“설마하니, 장문인이나 서천이의 경고를 무시하는 것이더냐?”

“윽!”

장홍과 방철삼이 입을 다물었다.

특히 방철삼의 반응이 볼 만했다.

낯빛까지 새파랗게 질렸다.

“조, 조용히 할게요.”

방철삼은 주서천과 악연 아닌 악연이 있다.

약 팔 년 전, 연화검회의 일이다.

당시 남제자들이 그렇듯이 낙소월에게 연정을 품고 있었던 그는 낙소월과 유일하게 친하게 지내는 주서천을 질투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은근히 눈에 띄어서 성가시기도 했다.

마침 연화검회에 대전 상대로 맞춰져 옳다구나 하면서 조금, 아니 많이 거친 수단까지 동원했다.

그러나 결과는 보란 듯이 패배.

그것도 일격이었다.

이후 방철삼은 충격을 먹고 수련에 매진하였고, 안하무인이었던 성격도 시간이 흘러 나름 교정됐다.

복수를 꿈꾸지 않았더라면 거짓말이기는 한데, 주서천이 너무 터무니없이 대단해져 진작 포기했다.

그 뒤로는 혹시라도 주서천이 팔년 전 일을 기억하고 뭐라 하면 어쩌나 싶어 겁을 먹고 살아왔다.

지금에 와선 주서천의 별호나 이름을 꺼낼 때면 목부터 움츠리며 저자세로 나온다.

“자, 그럼 이제 다음을 준비해야겠구나.”

구풍이 산 아래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 * *

기룡의 기관, 검산에 호되게 당한 삼악검파의 움직임은 조심스러워졌다.

위풍당당한 모습은 없었다.

삼문주는 각각 정예 몇몇을 선발해 앞으로 먼저 보냈다.

설치되어 있을지 모를 기관의 해체 때문이었다.

검산처럼 한꺼번에 당할 것을 유의해 선발대와 거리를 두기도 했다.

“기관이다!”

“발동한다!”

“흩어져!”

등산의 속도가 배 이상 느려지긴 했지만 그래도 안전성 역시 그만큼 늘어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여러 가지 기관을 겪으면서 대처 방법을 익혔다.

“답답하군.”

전장의 변화가 없다 보니 지루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산 위를 돌파해 화산파의 정문을 박살 내고 싶었지만, 위험 탓에 그럴 수가 없었다.

삼악검파는 결코 바보가 아니다.

최초에 자만심 탓에 화를 입었는데 실수를 반복할 리 없었다.

“그대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진 않을 거요.”

결국 해가 저물기 시작할 무렵, 천선성의 칠성사병이 와서 천기의 말을 전달했다.

종남파에서 파견한 부대가 도착하기 전에 화산의 정상에 올라 정복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한 사실 정도야 우리도 알고 있다. 꺼져라.”

태산파검이 자존심이 상한 듯, 불쾌한 목소리로 칠성사병을 내쫓았다.

삼악검파는 필요에 의해 암천회와 동맹을 맺긴 했지만, 사실 그 관계는 적림십육채만큼 원활하지는 않았다.

“하, 그래도 꼴에 정파라고 뒤에서 뭘 꾸미는 암천회가 마음에 들지 않나 보지?”

섭등이 비꼬며 속을 살살 긁었다.

“입 닥치게.”

초예사태가 손을 흔들자 향산파 제자들이 와서 섭등의 입을 막았다.

“이 근처에서 휴식을 취하……”

쿠와아아앙!

초예사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수십, 수백 줄기의 우레가 동시에 울린 것처럼 굉음이 터졌다.

“무슨 일이냐!”

태산파검이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앞에 무슨 일 있는가!”

일팔구로가 전위를 향해 소리치며 물었다.

“아, 아닙니다! 뒤입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설마……”

초예사태의 낯빛이 시커멓게 죽었다.

그 설마였다.

콰드드득!

삼악검파의 후위에서 급변이 벌어졌다.

산 중턱, 언덕 아래로 굴러떨어지지 않도록 뿌리를 깊게 내려 고정하고 있던 매화나무가 원인이었다.

최소 백 년 이상의 세월 동안 움직이지 않았던 나무의 몸통에서 갑자기 구멍이 열렸다.

“숙여!”

초예사태의 외침이 뾰족하게 울려 퍼졌다.

파바바바밧!

검의 폭풍이 불었다.

마치 당가의 최고 절기인 만천화우(滿天花雨)가 펼쳐진 건 아닐까 싶었다.

매화나무에서 서로 다른 종류의 암기가 하늘, 아니 산을 가득 메웠다.

나무가 빼곡하게 자리 잡은 만큼, 그 숫자는 세 자리건 네 자리건 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정말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위에서 내리는 것이라면 나무의 가지 아래로 숨으면 되겠지만, 몸통에서부터 쏘아진 것이니 답도 없었다.

정말로 무서운 건, 한 방향이 아니라 전방위로 쏟아진다는 것이었다.

‘당했다!’

초예사태가 입술을 질끈 깨물어 검을 휘둘렀다.

노을빛을 반사하는 섭광은 마치 핏빛과도 같았다.

채채채챙!

앞으로 쏟아지는 검을 쳐낸다.

어떻게든 막아 낼 수 있었지만 내공이 부족한 제자들이 문제였다.

“크아아악!”

“아악!”

“악!”

지옥문이 펼쳐졌다.

‘기관을 다 해체한 줄 알았건만……!’

전의 검산 탓에 지면만 신경 썼던 폐해였다.

또한, 이미 지나간 뒤나 현재 있는 장소는 안전하다고 생각해 신경 쓰지 않았다.

그것이 문제였다.

애초에 현 무림에서 기관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 자체가 지극히 적다.

정파에서 기관이 전문이었던 제갈세가에서도 제갈승계뿐이니, 다른 곳이야 두말할 것도 없었다.

암천회 천기성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으나 삼악검파가 자존심 탓에 거절했던 것이 이러한 결과를 불러들였다.

“기료오오옹!”

바보 같다면서 무시했던 학문.

그 공부가…… 무시했던 이들을 덮쳤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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