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十一章 (216/254)

쿵! 쿵! 쿵!

설인이 달렸다.

육중한 몸인데도 날쎈 움직임이었다.

대퇴부의 근육이 오그라들었다가 펴졌다.

입에선 지축을 뒤흔드는 괴성이 흘러나왔다.

굶주림으로 인한 포효였다.

쿠웅!

선두에 달리던 설인이 지면을 박차고 높이 뛰었다.

“캬오오오!”

설인이 괴성을 내지르면서 양팔을 들었다.

통나무보다 굵은 팔의 근육이 부풀어 오르며 괴력을 냈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추락하듯 떨어지는 설인은 팔을 철퇴처럼 휘둘렀다.

콰아앙!

“으아악!”

설인이 추락한 순간, 눈으로 된 기둥이 솟구쳤다가 떨어졌다.

지축을 뒤흔드는 충격에 다들 질겁했다.

발밑의 눈이 충격으로 인해 위로 솟구쳤다가 안개처럼 흩어졌다.

그 탓에 시야가 좋지 않았다.

“크르륵!”

선수를 친 설인이 붉은 안광을 번쩍이면서 웃었다.

지금쯤 주먹 아래에는 다져진 사람이 있으리라.

그러나……

“괴력만큼은 대단하구나.”

설인의 눈이 커졌다.

안개처럼 흩어진 눈바람이 걷히며 나타난 건, 자신의 주먹을 받친 사람이었다.

“그런데 착지점을 영 잘못 골랐다.”

주서천은 왼손으로 설인의 주먹을 받치고, 오른손으로 두꺼운 손목을 붙잡은 뒤 힘껏 꺾었다.

으드득!

손목이 돌아가며 근육도 비틀어졌다.

그 안의 뼈가 부러지면서 조각났다.

설인이 미처 비명을 지르기도 전, 주서천은 그 품 안에 재빠르게 파고 들어선 강격권을 날렸다.

파앗!

중소보의 묵직함과 더불어 강맹함을 실은 주먹이 흉부에 꽂힌 순간, 설인의 몸에 구멍이 생겼다.

“온다.”

주서천이 빈 구멍 너머의 설인 무리를 보고 말했다.

소리를 친 것도 아닌데 전원이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괴력도 괴력이지만, 눈 속에 숨어 있었던 걸 보아 머리도 쓸 줄 아는 놈이니 조심해야 할 것이다.”

주서천은 앞으로 쓰러지는 설인의 몸을 건너뛰었다.

“눈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진동에 유의할 것.

설인에 대해선 북해인이 더 잘 알고 있을 테니 세세한 건 각자의 판단에 맡기겠다.”

눈사태가 언제 일어날지 몰라 목소리를 최대한 줄였다.

주서천은 주먹을 쥐락펴락하며 눈을 빛냈다.

“괜찮은 털가죽이야. 사람처럼 이족 보행을 하긴 하지만, 어떻게 봐도 사람이 아니라 괴물이니 부족한 식량으로 대체할 수 있으려나?’

설인의 수는 대충 세어 봐도 이백을 넘어섰다.

선발대의 딱 반절 정도 되는 전력이었다.

그러나 수가 적다고 얕볼 수는 없었다.

설인의 움직임은 질풍처럼 날렵하고, 힘은 우레와 같았다.

“꺄아악!”

빙궁의 여무사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허리가 심히 접힌 걸 보면 뼈가 부러진 듯했다.

“쿠오오오!”

설인의 통나무 같은 팔이나 무쇠주먹과 정면으로 부딪치는 건 자살행위였다.

보통 괴력이 아니었다.

팔 척에 이르는 덩치와 근육 덩어리는 장식이 아니었다.

굶주림으로 포악해진 힘은 무시무시했다.

“한 마리에 최소 세 명이 붙어 상대해라!”

동설련이 설인의 허리를 베고 지나가며 외쳤다.

목소리가 제법 크긴 했지만, 설인의 포효에도 산이 잠잠했던 걸 생각하면 이 정도는 괜찮은 듯했다.

“죽어라!”

“타앗!”

빙궁의 무사와 설인의 격전이 시작됐다.

설인은 육중한 몸인데도 불구하고도 잘만 움직였다.

특히나 위로 뛰어올랐다가 떨어질 때, 눈의 파도를 만들어 시야를 가려 공격을 날리는 점이 섬뜩했다.

주서천이 말한 대로 지능도 보통이 아니었다.

“도망친다!”

“따라가지 마, 함정이다!”

“크아악!”

설인은 빙궁의 무사가 네다섯 명으로 늘어나면 무리하지 않고 도망치거나 동료를 불러 합세했다.

설마하니 미물이 이 정도 되는 전술을 펼칠지 몰랐던 무사들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설인은 상상 이상으로 난적이었다.

“가죽이 뭐 이렇게 단단해?”

“제기랄! 검이 안 빠져!”

“버려!“

“내공이야 나중에 회복하면 되니까, 신경 쓰지 말고 검기를 실어서 베거나 찌르도록 해!”

“목숨이 먼저다!”

설인의 털가죽 탓인지 아니면 탄탄하게 단련된 근육질 때문인지는 몰라도 방어까지 만만치 않았다.

각자의 무기가 제대로 박히지 않았다.

권법이나 장법도 마찬가지였다.

내가중수법도 잘 통하지 않았다.

“빙공에 내성이 있다!”

동설련이 그 원인을 제일 먼저 눈치챘다.

검에 실린 빙한진기, 아울러 음한진기가 설인에게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것이 감각을 통해 느껴졌다.

설인은 오랫동안 북해의 기운을 흡수하며 살아온 덕분에 어떠한 추위에도 영향을 받지 않게 됐다.

한서불침은 아니나 추위에는 불침에 이르는 수준에 오를 정도로 내성이 생겼다는 의미였다.

북해빙궁의 무사들이 한층 더 불리해졌다.

콰직!

“아악!”

“꺄아악!”

설인은 이상 기후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문제는 먹을 것이었다.

그들 역시 극심한 식량난 탓에 동족을 먹을 지경까지 왔다.

그러던 와중에 사람의 무리가 나타났으니, 흥분하는 건 당연했다.

하나같이 눈이 벌게져선 입안에 넣어 씹었다.

오도독, 오도독 소름 끼치는 소리가 나며 뜯겨진 몸에서 피가 육즙처럼 나왔다.

깨끗한 눈 위로 핏줄기가 튄다.

난리로 인해 눈 아래에 숨어 있던 흙더미도 나타났다.

대신 죄다 얼어붙어서, 모래처럼 흩어 지진 않았다.

얼음 조각을 연상케 했다.

“한낱 미물 따위가……”

선봉장, 동설련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눈앞에서 수하를 잃은 분노가 서릿발처럼 몰아쳤다.

“쿠오오오오오오!”

인육에 눈을 뜬 설인이 재차 포효한다.

눈처럼 하얀 이는 붉게 물들었고, 그 사이엔 살점이 껴 있었다.

피투성이인 손을 내려뜨리고, 머리는 앞으로 쭉 내밀고 포효한다.

이 설산의 주인은 나이며, 너희는 모두 먹이가 될 것이라고 환희가 섞인 외침을 토해 내는 걸로 보였다.

‘무, 무슨……’

‘난폭해진 설인이 이리도 위험했던 건가?’

‘큰일이다. 압도당했다.’

빙궁의 무사 중에서 비교적 성취가 낮은 이 들은 그 포효에 압도되어 꼼짝도 하지 못했다.

일류나 절정에 이르는 실력자임에도 몸이 얼어서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런!’

약 예닐곱 장의 밖, 동설련이 입술을 깨물었다.

도와주고 싶었지만 무려 세 마리의 설인과 대치하고 있는 터라 자리를 비울 수가 없었다.

“쿠오오……”

“시끄러워.”

퍼억!

설인이 재차 포효하려던 찰나였다.

승모근 위로 붙어 있던 머리가 불현듯 수박처럼 박살 났다.

방금 전, 포효만으로 수십의 무인을 압도했던 괴물치곤 허무한 최후였다.

팔 척 높이로 도약했던 주서천이 설인의 너머로 착지하자, 머리를 잃은 몸뚱이가 쓰러졌다.

“설인에게는 빙한공이 잘 통하지 않는 듯 싶으니, 급소를 노려서 공격하도록.

또한, 굳이 무리할 필요 없으니 네 명, 다섯 명, 버거우면 예닐곱 명이 힘을 합하도록 해라.”

주서천은 주먹을 쥐락펴락하면서 앞으로 걸었다.

“혹여나 도저히 쓰러뜨릴 수 없다면, 어디든 상관없으니 나에게 도움을 청해라. 곧 가겠다.”

“으아악!”

전방의 언덕 위, 빙궁의 몇 없는 남무사가 비명을 질렀다.

설인에게 검째로 잡혀 떠오르는 게 보였다.

“그래.”

무릎을 굽히는 동시에 상체를 눕힌다.

내부의 흐름이 아래로 떨어지며 용천혈로 향했다.

“그렇게.”

타앗!

몸이 활등처럼 굽어졌다가 펴지며 튀어 나갔다.

화살, 아니 유성이 되어 앞으로 쏘아졌다.

유령신공 덕에 몸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지면을 박차고 튀어 나간 순간, 바닥에 닿지 않은 채 날았다.

잔상이 남을 정도의 신속.

눈동자에 담겨지는 광경은 기억의 일부분처럼 잠깐 남겨졌다가 사라진다.

독수리가 저공비행하듯, 눈 덮인 지면 위를 스쳐 지나갔다.

“쿠오옷!”

목적지로 향하는 길은 평탄하지 않았다.

짐승, 아니 영물답게 감각이 예리한 설인이 경로를 막았다.

한두 마리도 아닌 무려 일곱 마리가 몸을 날리는 것이 보였다.

스윽.

찰나에 불과한 시간이 길게 늘어진다.

흐름 역시 느릿해졌다.

사람의 한계를 넘어선 감각이었다.

몸을 던져 시야를 가로막은 설인의 팔을 보곤, 몸을 움직였다.

바람의 압력을 최소화하기 위한 차렷 자세를 풀 필요는 없었다.

몸을 살짝 틀기만 했다.

정자세의 몸을 사선으로 틀었고, 앞을 가로막은 팔을 스쳐 지나간다.

하나를 제치고 아직 여섯 마리가 남았다.

느릿해진 시간 속에서 양옆으로 세 마리씩 멈춰진 게 보였다.

사람의 극의를 넘어선 경지의 능력은 대단하다는 말로 부족했다.

감각도, 신체도 상식을 넘어섰다.

주서천은 사선으로 틀어진 몸에 힘을 주고 다시 돌렸다.

한 바퀴 회전하는 동시, 두 마리를 처리했다.

세 마리와 접촉한 순간, 주서천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회전하는 채로 검을 번개같이 뽑아 휘둘렀다.

서걱!

설인의 팔이 잘렸다.

추위 탓인지 아니면 너무 깔끔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피 한 방울 안 나왔다.

검의 주인은 그 결과가 당연하다는 듯이 쳐다보지도 않고, 검광을 연달아 뿜어내 네 마리째의 옆구리부터 시작해 반대편 어깨 위까지 사선으로 베었다.

휘리릭!

빙글 돌았던 몸이 원래의 위치를 찾았다.

전방에는 다섯 마리째의 설인이 어김없이 자리 잡고 있었다.

파앗!

오른팔을 앞으로 쭉 내미는 동작과 동시, 손바닥으로 검의 아랫부분을 쳐낸다.

외부에서부터 충격을 받은 검은 화살처럼 쏘아져, 설인의 팔 근육 윗부분에 구멍을 내고 날아갔다.

주서천은 검을 쏘아 낸 뒤, 왼팔도 앞으로 뻗어 구멍이 난 팔을 봉처럼 잡은 뒤 제자리에서 돌았다.

그냥 돈 것이 아니다.

설인의 팔과 접촉된 순간, 공력이 해일처럼 몰아치며 기맥을 뒤흔들어 놨다.

짧은 순간에 공진장이 팔에서부터 시작해 곧 온몸으로 뻗어 내장까지 크게 흔들어 놔 충격을 입혔다.

휘릭!

팔을 봉 삼아 회전하는 묘기를 보여준 뒤, 그 힘을 반동 삼아서 다시 유성처럼 쏘아졌다.

최후에 가로막은 설인은 전의 개체와는 다르게 측면이 아니라 정면이 보였다.

못생긴 얼굴이다.

주서천은 차렷 자세로 몸을 엎드린 채 쏘아지다가, 곤륜파의 운룡대팔식처럼 공중에서 한 번 뒤집었다.

본래 이 정도 되는 속도로 쏘아지던 와중 몸을 피면 바람의 저항 탓에 몸이 부러질지도 모르겠지만, 환골탈태와 현경의 신체 능력 덕에 면할 수 있었다.

주서천은 운룡대팔식처럼 공중에서 방향을 전환하진 않았다.

대신 발을 내려 설인의 머리에 꽂았다.

콰아앙!

속도가 속도다 보니, 발에 담긴 힘 역시 충분히 위력적이었다.

각법도 아닌데 머리의 반이 날아갔다.

뇌 밑에 드러난 머리를 힘껏 짓밟고, 지면 삼아 다시 뛰어오른다.

그러곤 오른손을 올려 기예를 펼쳤다.

허공섭물.

거리가 멀수록 내공이 극심하게 소모되지만, 자신에겐 별문제 없었다.

앞서 나간 검을 부르자, 손안에 빨려 들어가듯이 돌아와 잡혔다.

주서천은 검이 잡히자마자 자줏빛으로 일렁이는 검광으로 수직선을 그려 냈다.

서걱!

빙궁의 남무사를 입 안에 막 넣으려던 설인은 배를 채우지 못하고, 몸이 세로로 쪼개져 즉사했다.

동시에 실린 힘이 보통이 아니라는 듯 검으로 일으킨 풍압만으로 설인이 있던 자리에 큰 바위가 떨어진 것처럼 큰 충격이 일어났다.

쿠아아앙!

눈으로 된 기둥이 위로 솟구치고, 몸이 둘로 쪼개진 설인의 몸은 눈에 파묻혔다.

이 정도면 눈사태가 일어나지 않은게 신기할 정도였다.

“어푸!”

설인의 손에 잡혀서 잡아먹히기 직전이었던 빙궁의 무사가 눈 더미 밖으로 몸을 꺼내며 눈을 뱉어 냈다.

“후우!”

멈춘 것처럼 느릿하게 흘러가던 시간이 정상으로 되돌아갔다.

주서천은 검 끝으로 지면을 툭툭 쳤다.

“……”

근처에서 그 광경을 지켜본 빙궁의 무사들은 어안이 벙벙한 채로 어떠한 말도 꺼내지 못했다.

그야말로 압도적.

그 이상 그 이하의 표현을 찾을 수가 없었다.

상천만 보여 줄 수 있는 신위(神威)였다.

“크, 크르르……”

최초에 스쳐 지나간 설인을 제외하면, 가로막은 설인 무리와 최후의 한 마리.

그렇게 한순간에 일곱 마리가 당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설인의 무리는 압도당해 몸을 파르르 떨었다.

영물이라 그런지 몰라도 직감이 뛰어난 것인지, 주서천에게 다가가려 하지 않았다.

“지금이다!”

주서천의 검신에 자줏빛 아지랑이가 일렁였다.

“공포에 질려 있을 때를 노려라!”

검신의 외침이 빙궁의 무사들을 깨우쳤다.

“와아아!”

“죽어라!”

“놓치지 마라!”

빙궁의 무사들은 설인과 상성적으로 불리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자신들에겐 상천육좌가 있었다.

설인의 무리에게 압도당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사기가 대설산의 봉우리를 뚫을 정도로 높아졌다.

눈사태를 신경 쓴 탓에 함성이 그리 높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 기세가 확 느껴졌다.

“화산파가 무림 제일의 문파라고 하더니만…… 그 말이 사실이로군요.

화산의 검수들은 전부 저렇게나 대단한 겁니까?”

하와르가 감탄하며 물었다.

“아하하……”

낙소월이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화산파가 아니라 주서천이 괴물인 것뿐이긴 하지만, 사문을 칭찬해 주니 별말 하지 않기로 했다.

부웅!

낙소월이 웃는 얼굴로 상체만 살짝 숙였다.

머리 위로 공기가 무겁게 찢기며 설인의 주먹이 지나갔다.

“저 정도는 아니에요. 사형이 규격외인걸요.”

검신의 사매는 하와르의 질문에 답하면서, 검을 휘둘러 설인의 목을 얇게 베었다.

그리 큰 힘을 싣지 않았지만, 검신을 둘러싼 강기 탓에 털가죽이나 근육도 두부처럼 갈라졌다.

쿠웅.

“……”

하와르의 눈썹이 구부려졌다.

표정변화가 거의 없었지만, 미약하게 어이없다는 감정이 묻어났다.

약관의 무인이 질문에 답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설인을 처리하는 모습은 충분히 괴물처럼 보였다.

“거, 검신!”

“예~ 다음 갑니다.”

주서천이 산책하는 것처럼 움직였다.

“캬아아아악!”

전설의 설인조차도 주서천 앞에선 한낱 미물에 불과했다.

분노의 외침은 공포로 변질됐다.

동족상잔을 해야 할 정도의 굶주림조차 공포에 지 배되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대충 세어 봐도 이백을 넘어섰던 설인 무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백으로까지 줄어들었다.

“소령, 고마워.”

낙소월이 등을 맡긴 소령에게 눈웃음을 지었다.

낙소월도 낙소월이지만, 소령의 활약 역시 적지 않았다.

낙소월을 등진 채로 설인의 학살에 참가했다.

빙궁의 무사들의 기세도 점차 안정화됐다.

“다리의 근맥을 잘라라!”

“하체가 무너지는 거에 맞춰 심장을 공격한다!”

“무리하지 말도록!”

설인이 날렵하고 힘세다고 한들, 대여섯 명씩 붙어서 체계적으로 공격을 하면 어찌할 수가 없었다.

가끔씩 통하지 않는 개체가 등장해도 주서천이 나타나선 일검에 베어 허무하게 쓰러졌다.

“쿠오오오오오오오!”

그때였다.

여태껏 들어 보지 못했던 울음소리가 설산에 메아리쳤다.

설인의 사이를 거닐며 여유가 묻어나는 검무를 펼쳐 내던 낙소월도 울음소리를 듣더니 얼굴을 굳혔다.

울음소리에 실린 분노와 살의는 화경의 고수조차 움찔하게 만들 정도였다.

“나왔구나.”

주서천이 기다렸다는 듯이 씨익 웃었다.

설인의 시체로 즐비한 언덕의 위, 무리의 우두머리가 모습을 드러 냈다.

새하얀 털에 묻힌 핏발 선 눈동자는 무리를 잃은 우두머리의 분노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몸집을 보면 왜 우두머리인지 알 수 있었다.

팔 척을 넘어서 거의 구 척에 이르는 큰 키였다.

설인이 아니라 거인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의 신장이었고, 근육도 배는 컸다.

그야말로 괴물이다.

쿠구구구.

설상가상으로 산의 상태가 그리 좋지 못했다.

꼼짝도 않던 눈 더미가 방금 전 괴성으로 인해 들썩였다.

걱정했던 눈사태가 일어나기 일보직전이었다.

“크……”

“어딜!”

주서천은 우두머리의 생각을 눈치채곤 유은비도를 펼쳤다.

소맷자락이 펄럭이면서 비수가 튀어나왔다.

햇빛에 반사되며 섬광을 내뿜은 비수는 눈에 안 보일 정도의 속도를 내며 입 안을 노렸다.

째앵!

“호오!”

주서천이 옅게 감탄했다.

설인의 우두머리가 날아온 비수를 입으로 낚아채곤, 턱에 힘을 주어간단히 부러뜨렸다.

그래도 나름 힘을 실어 날린 것인데 간단히 막아 내는 걸 보고 과연 우두머리는 우두머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 정도면 능히 영물이로다.’

주서천의 눈이 먹잇감을 찾은 독수리처럼 빛났다.

“우두머리를 맡을 테니, 나머지를 부탁한다!”

주서천은 대답도 듣지 않은 채, 답설무흔을 펼쳤다.

유령신공으로 가벼워진 몸에 속력을 더했다.

‘눈사태가 일어나면 귀찮으니, 포효할 틈을 막는다.’

손자병법에서 말하기를, 지형을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주서천의 생각대로였다.

아군은 반밖에 남지 않았는데 적은 여전히 많다.

설인의 우두머리는 불리한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는 방법은 이 지형뿐이라고 생각했다.

설마하니 이렇게까지 몰릴 줄은 몰랐다.

짐승의 무리는 보통 약한 수컷이 사냥감을 우두머리 수컷과 암컷에게 가져와 바치기 마련이었다.

설인의 우두머리도 사냥이 끝나길 기다렸는데, 예상과는 달리 무리가 순식간에 반이나 줄어든 것이다.

결국 내버려 두면 전멸을 면치 못할 것이라 생각해 우두머리가 직접 나섰다.

“쿠오옷!”

설인의 우두머리는 산을 울릴 정도의 포효는 하지 못하고, 기합을 내지르는 느낌으로 울부짖었다.

대신에 그 여력을 자신을 향해 똑바로 날아오는 인간, 주서천을 공격하는 데 썼다.

부웅.

오른손을 위에서 아래로 힘껏 내리친다.

힘의 세기나 속도 전부 월등했다.

근력의 원천인 근육이 울긋불긋 부풀어 올랐다.

털 속에 숨겨진 피부 위로 퍼런 핏줄이 돋아났다.

우두머리는 전속력으로 품 안에 들어오는 주서천을 보고 속으로 비웃었다.

여태까지 이 일격에 살아남은 이는 없다.

길을 잃고 온 인간도, 무리의 전사도 즉사했다.

자신의 힘은 타고났다는 표현 외에 설명할 게 없었다.

사람도, 짐승도 이 힘 앞에 굴복했다.

눈앞의 인간 또한 전례와 같은 모습이 되리라.

쿠웅!

“크르르……?”

하나, 그 예상은 완벽하고, 철저하게 빗나갔다.

조금도 맞지 않았다.

무언가 부딪친 느낌은 났지만, 그 아래의 사람은 피떡이 되지 않았다.

평소라면 지면이 움푹 파이며 눈이 몰아쳐야 할 광경 대신, 왼손으로 주먹을 받친 사람이 보였다.

“묵직하네.”

주서천이 한마디 했다.

조소가 아닌 진심이었다.

손이 제법 얼얼했다.

팔 근육도 당겼다.

내공의 운용 없이도 이 정도 되는 힘을 낼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내 차례다.”

푸욱!

손아귀에 힘을 주자, 다섯 손가락이 우두머리의 팔 근육에 빨려 들어가듯이 파고들며 구멍을 냈다.

“캬아아아악!”

근육으로 둘러싸인 팔의 아랫부분이 줄어 들었다.

구멍이 난 부위에서 피가 철철 흘렀고, 끔찍한 고통이 동반됐다.

급히 빼려 했지만 꼼짝도 안 했다.

주서천은 무심한 표정으로 팔을 한바퀴 돌렸다.

우드드득!

팔이 꺾이지 말아야 할 방향으로 돌아가며 소름 끼치는 뼈 소리가 났다.

근육이 찢기고, 뼈가 부서졌다.

우두머리는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지르며, 고통에 무심코 몸을 앞으로 움츠렸다.

주서천은 그 틈을 노려서 왼발을 시원스레 내디디고, 오른 손바닥 아랫부분으로 턱을 힘껏 후려쳤다.

빠아악!

고개가 뒤로 꺾이듯 젖혀졌다.

길게 내려진 송곳니가 부러지면서 공중으로 떠올라 빙글빙글 돌았다.

주서천은 그 뒤로 물 흐르듯이 동작을 연결해 검을 뽑아내 절초를 펼쳤다.

우르릉!

먹구름으로 가득한 하늘에 빙설 대신 우렛 소리가 뿜어져 나온다.

‘위이잉’ 하고 자줏빛 섬광이 번쩍였다.

‘자하개벽!’

자하검결의 제일검이 설인의 가슴 정중앙에 쏘아졌다.

쇠보다 단단하고 질긴 가죽조차도 어림없었다.

정신을 차렸을 땐 흉부에 큼지막한 구멍이 생겨 생명의 근원이 되는 심장을 집어삼킨 뒤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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