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八章 (213/254)

주서천의 북해의 여정은 특급 기밀로 분류됐다.

정파의 영웅이자 정사의 최대 전력인 검신이 중원을 떠났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곤란하기 때문이었다.

연합군의 사기는 불안으로 인해 떨어질 것이며, 암천회가 그 틈을 노려 무슨 수를 사용할지 모른다.

무림맹 상층부인 장로진에게조차 정보가 제한됐다.

“서장과 남만, 해남도에 북해까지……

안 가는 곳이 없구나. 이게 무슨 고생이냐.”

주서천은 앞으로 펼쳐질 고생에 한탄하며 여정을 준비했다.

최우선 사항은 단연 자리를 비우게 되면서 벌어질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것이었다.

“소령, 유령곡 전 지부에 내가 북해를 떠난 동안은 금의상단주 상왕 이의채와 기룡 제갈승계의 명령을 따르라고 전달해라.”

“명.”

제갈상에게 위임할까 고민했으나 그만두었다.

무림맹은 흑영부처럼 뒤가 구린 단체 탓에 분열될 뻔했는데, 유령곡을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또한, 현재 유령 대부분이 기관 설치 혹은 금의상단의 물자 수송과 호위를 맡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무림맹 일에 동원할 수 있는 숫자는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그 외에도 무곡 어르신이야 상단주가 알아서 하실 테고…… 하오문주와 사도천주에게도 당분간은 사정이 있어서 답할 수 없다고 전해 둬야겠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전서구나 전서응이 아니라 유령을 따로 불러서 전달하게 만들었다.

하오문주에게는 따로 정사 연합의 정보가 외부로 새지 않도록 정보 통제에 대한 도움을 요청했다.

개방과 협업하면 자신이 중원을 떠난다는 걸 잘 숨겨 줄 것이다.

‘동행은…… 소령만 데려갈까?’

북해에서 오래 있을 생각은 없다.

동행인이 많을수록 방해가 된다.

그래도 혼자 갈 생각은 없었다.

혹시나 손이 부족할 경우를 대비해 누군가와 함께 가야 하기는 했다.

소령은 경신공의 고수이면서도 내공이 부족하지 않은지라 자신의 발을 쫓을 수 있어 좋았다.

‘음, 잠깐 내공이 부족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좋아.’

백마채의 소탕 탓에 두고 온 일행이 떠올랐다.

‘화첨창을 가져가지 못하는 게 아쉽네.’

진기를 흘리면 불꽃을 내뿜는 법보, 화첨창을 북해에 가져가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간야자가 흑철갑주의 제련에 쓰고 있어 가져오기가 조금 뭐했다.

화첨창은 도움이 되겠지만, 반드시 필요한 것도 아니라서 그냥 두고 가기로 했다.

“지긋지긋한 눈이 겨우 녹기 시작했거늘, 또 그걸 보러 북해까지 가야 한다니…… 내 신세야.”

주서천이 한숨을 내쉬며 구시렁거렸다.

“북해에는 눈 속에 파묻힌 영약이 많다던데…… 그거라도 챙겨 와야겠어.

그렇지 않으면 수지가 안 맞으니 말이야.”

북해, 북입 (北入) 마을.

중앙의 북해빙궁을 기점으로 아래쪽 끄트머리에 위치한 마을로, 중원의 북부 지방이기도 하다.

북해와 중원의 경계를 나누는 국경선이었다.

도시 규모 정도는 아니나, 북해와 중원의 경계답게 휴식 지점으로 많은 사람들이 머물고 가는 장소였다.

또한, 북해와 중원의 몇 없는 교류지점답게 중원과 새외의 문화가 어우러진 광경을 볼 수 있었다.

“후아아……”

입을 열면 허연 김이 피어오른다.

뼛속까지 얼어붙게 만드는 한기가 흘러들어 오다가 사라졌다.

“이제 막 북해에 들어섰는데, 대단히 춥네요.”

청순미가 돋보이는 절세미녀, 낙소월은 몸 내부에 침투한 한기를 내공의 운용으로 무력화시킨 뒤 말을 꺼냈다.

“그런가?”

주서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서불침은 딱히 내공의 소모가 없어도 더위나 추위를 느끼지 않다 보니 공감하기가 힘들었다.

“사형만 이리 편하시다니, 뭔가 치사해요.”

낙소월이 볼에 바람을 불어 넣으며 툴툴거렸다.

“그렇지, 소령?”

낙소월이 주서천의 뒤에 서 있는 소령에게 물었다.

“곡주의 한서불침은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고, 장기간 매복할 수 있어 유리하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평소에 주로 입던 천의 면적이 좁은 차림이 아니었다.눈처럼 새하얀 털가죽으로 된 방한복을 입었다.

주서천과 낙소월도 같은 차림이었다.

“아하하……”

낙소월은 소령의 인간미 하나 느껴지지 않는 답변에 쓴웃음을 지었다.

“저…… 사형.”

낙소월이 소령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불렀다.

“응? 왜?”

“그, 유령에 대해서 궁금한 게 있는데요.”

주서천은 사매의 말에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나보단 소령에게 묻는 게더 정확할 걸?”

주서천은 유령의 수장이다.

그러나 정작 유령에 대해선 세세하게까지는 몰랐다.

기본적으로 자율적인 사고가 존재하지 않는 유령들은 묻지 않으면 대답해 주지 않는다.

그렇기에 주서천도 물어본 적이 없는 건 몰랐다.

유령곡 출신도 아니니 당연했다.

“질문에 따라선 기분이 상할지도 모르니까요.”

낙소월이 최대한 낮춘 목소리로 답했다.

“아……”

주서천은 낙소월의 말에 많은 걸 느꼈다.

“그래, 사매의 말대로야.”

주서천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동안 그 점을 조금도 생각하지 못하다니……’

그는 그동안 소령을 비롯한 유령들을 자기 멋대로 이용한다는 비인도적인 행위에 죄책감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방금 전 낙소월의 말을 듣고 어쩌면 그 죄책감이 단지 허울뿐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죽었으니 감정을 배려할 필요가 없을 거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을지도…… 반성하자.’

마음속으로 사매의 말을 되새겼다.

참고로 북해의 여정의 동행인을 낙소월로 택한 건 편한 것도 있으나, 여러 가지 사태에 대응할 수 있는 무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주서천만큼이나 내공이 받쳐 줘 북해의 추위를 충분히 버틸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 무엇이 궁금해?”

“저기, 그……”

낙소월은 조금 부끄러운 듯, 손을 꼼지락거렸다.

뺨을 살짝 붉히고 있는 게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로 귀여웠다.

“소령이나 여타 유령들을 보면 언제나 복장이…… 파렴치하다고 생각했는데요……!”

낙소월이 눈을 치켜뜨고 주서천을 올려다봤다.

“그건, 사, 사형의 취향인가요?”

“콜록, 콜록!”

주서천은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사레가 들린 듯, 기침을 토해 내면서 당황함을 금치 못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그렇지만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잖아요!

그, 허리나 배는 물론이고 허벅지까지 드러나는……!”

낙소월은 차마 그 다음을 말하기에는 부끄러운지,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 채로 몸을 파르르 떨었다.

“낙 사매가 무언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아니, 애초에 전에 낙 사매와 유령곡을 최초로 방문했을 때도 저런 복장이었잖아!”

“확실히 그랬지만…… 그 후에도 차림이 여전히 너무하잖아요. 혹시, 사형의 취향이 아닌가 해서……”

청순하고 귀여운 사매는 눈을 게슴츠레 뜨며 의심의 눈초리로 사형을 수상쩍다는 듯이 노려봤다.

“날 변태로 만들지 말아 줘.”

주서천은 손사래를 치며 항변했다.

“천의 면적이 좁고, 몸에 들러붙을 만큼 작은 건 암살에 유리해서 그런 거니까.”

“유리해요?”

“그래. 신속하고 은밀하게 움직이는 중에 혹시나 천이 바람에 펄럭여 기척이라도 내면 곤란하니까.

그리고 유령신공은 몸이 가벼울수록 유리하기도 하고.”

그깟 천이 얼마나 무겁겠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잘못된 생각이다.

고수의 승부가 한순간의 실수나 어긋남으로 결정 나는 것처럼, 암살 역시 미세한 요인으로 성공과 실패가 결정된다.

괜히 유령곡이 암살이라는 분야에 한해 일인자이자 전설로 통하는 게 아니었다.

유령공이라는 무공 외에도 마음을 죽이는 법부터 시작해 장비나 환경 등 온갖 요인에 완벽을 기했다.

“과연…… 그런 이유가 있었군요.

이상한 오해를 해서 죄송해요, 사형.”

낙소월이 멋찍게 웃더니, 손을 공손히 모아 허리를 살짝 숙여 사과했다.

“아, 그러면…… 묻는 김에 한 가지 더 여쭤 봐도 괜찮을까요?”

“얼마든지.”

“그, 유령 분들을 보면 눈이 보이지 않도록 검은 천으로 감던데……어째서인가요?”

유령의 복장은 노출이 심한 것과 또 하나의 특징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눈 부위를 가리는 천이었다.

최초엔 혹시나 흉터를 가리려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아니었다.

때때로는 벗고 다녀서 의아했다.

“아아, 그건 나도 궁금해서 전에 물어봤었지.

감각의 발달을 위해서라고 하더라고.”

“과연 훈련인가요.”

낙소월은 단번에 알아들었다.

“그래. 시각을 차단하면 청각, 후각, 촉각, 미각에 의존하게 되면서 각 감각들이 발달하기 마련이니까.”

주서천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을 이었다.

“변장할 때나 혹은 시각이 필요할 때를 제외하곤 오감의 능력 향상을 위해 가리고 다닌다고 해.”

“덕분에 의문이 풀렸어요.”

“오해도?”

“……네.”

낙소월이 쑥스러운 듯 고개를 푹 ㅂ숙였다.

“애초에, 노인이나 남자들도 복장이 같은데…… 이상하다는 거 못 느꼈어?”

“그, 그렇지만……”

낙소월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면서 주저하다가, 이윽고 용기를 내 목소리를 쥐어짜 냈다.

“파검봉…… 단리화 소저께서 말하길 남자는 누구나 다 특정한 무언가에 집착하고 흥분한다고 해서……”

“……”

머릿속에서 단리화가 능청스레 웃는 모습이 떠올랐다.

“왔습니다.”

후에 단리화를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소령의 손이 한 방향을 가리켰다.

“와아, 견설마(犬雪馬 : 개 썰매)네요.”

낙소월이 신기한 듯 눈을 반짝였다.

매화검봉의 눈동자에 비춰지는 건, 눈으로 뒤덮인 새하얀 대지에 선을 그려 내는 개 썰매였다.

중원에 널린 개와는 외견부터가 달랐다.

모색(毛色)은 미간에서부터 다리 윗부분까지 검었으며, 면상이나 다리 부분은 새하얀 눈과 같았다.

특히 덩치가 눈에 띄었는데, 어지간한 늑대만큼 큰 걸 알 수 있었다.

힘도 어찌나 강한지 이끄는 썰매도 컸다.

뒤에 실은 짐도 제법 많았다.

늑대만큼이나 큰 개가 여덟 마리씩이나 붙어 있는 다섯 대의 개 썰매가 주서천 앞에 멈춰 섰다.

썰매 위에는 각각 두 명씩, 도합 열 명이 앉아 있었는데 하나같이 기세가 날카로운 무인이었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전원이 여인이었다.

“와……”

낙소월은 무인들을 보고 무심코 감탄사를 흘렸다.

경국지색의 정도는 아니었으나 그래도 하나같이 각 지방에서 이름을 날렸을 법한 미녀들밖에 없었다.

“실례하겠소.”

선두에 선 썰매에서 여인이 내렸다.

화려한 의복 차림을 해 개 썰매를 이끌고 온 일행 중에서 단연 눈에 띄었다.

“소속과 성함을 여쭤봐도 괜찮겠소?”

“화산파의 주서천이오.”

“흠……”

화려한 차림의 여인의 입에서 침음이 흘러나왔다.

뒤편의 여인 무리 역시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솔직히, 믿기지 않아서 그렇소.”

여인의 눈동자에선 불신이 느껴졌다.

“중원의 사내들은 무공이 고강하다곤 들었으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상천육좌씩이나 되는 절대의 무인이 이리도 어릴 줄이야.”

“이해합니다.”

이십 대에 불과한 청년이 무림의 절대자라고 한다면 보통은 믿지 않는 것이 정상이다.

최근에야 워낙 위명이 높아져서 누구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중원에 한해서였다.

북해가 중원과 교류를 아예 안 하는 것은 아니나, 그 교류가 극히 적기에 검신의 무력을 실감하기는 힘들었다.

해남도의 경우만 해도 주서천이 최초에 남해용문을 상대로 압도적인 무위를 보여 주지 않았더라면 믿지 않았을 것이다.

“제가 상천육좌, 검신이 맞으니 안심하십시오.

그렇지 않다면 약속된 장소에 시간에 맞춰 어찌 올 수 있었습니까?

그리고, 서신에 보냈던 것처럼 세 명입니다.”

“으음…… 그건 그렇소만……”

주서천은 여인의 계속되는 불신에 어쩔 수 없다는 듯 검을 뽑았다.

썰매 위의 여인들이 몸을 움찔 떨었으나, 곧 이내 주서천의 검에 실린 자색 검강을 보고 안도했다.

“자색 강기!”

“화산파의 자하신공!”

“설마 했더니, 정말일 줄이야……”

중원은 물론이고 북해를 포함해 자하신공처럼 특징적인 무공이 몇 없다.

특히나 자색의 강기를 낼 수 있는 건 자하신공뿐이었다.

“정말로 검신이로군!”

“허어……”

“보고도 못 믿겠군그래.”

여기저기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대부분 보고도 못 믿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정 원하시면 비무로 증명할 수도 있습니다.”

“아닙니다.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선두의 여인이 쓴웃음을 지으며 손을 내저었다.

검신이란 걸 확인하자마자 말투가 공손하게 바뀌었다.

“늦게나마 인사합니다만, 저희는 궁에서 보낸 안내인들입니다. 부디 결례를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사항이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용서합니다.”

“검신의 아량에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그러면 이 위에 타 주십시오.

마음 같아선 천천히 인사라도 드리고 싶지만, 날씨가 그리 좋지 않습니다.

아마 몇 시진 이내로 눈 폭풍이 몰아칠 겁니다.”

북해빙궁의 여무사가 검지로 위를 가리켰다.

고개를 들어 보니 하늘의 삼 할이 먹구름으로 변해 있었다.

“이야기는 썰매 위에서 하겠습니다.”

주서천과 낙소월, 그리고 소령까지 모든 일행은 준비된 개 썰매 위에 앉았다.

‘북해빙궁은 아미파처럼 여인들뿐인 문파라고 하더니만, 정말이었구나.’

중원은 여고수의 수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북해는 그 반대였다.

남자가 적은 걸 넘어 희귀했다.

“혹시, 식량은 챙겨 오셨습니까?”

“물론입니다.”

식량난 탓에 도움을 청해 왔는데, 빈손으로 왔을 리 없었다.

“어떤 걸 가져오셨습니까?”

“벽곡단입니다.”

“웬만하면 아끼지 말고 드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먹을 것에 실린 자연의 기조차 빙궁에 도착하기 전에 전부 얼어붙을 테니까요.

특히나 벽곡단처럼 응축된 것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먹어도 별다른 효능을 못 볼 겁니다.”

‘북입 마을의 물가, 특히나 음식값이 터무니없이 비싼 걸 보고 예상했지만…… 많이 심각한 모양이군.’

함박눈이 내렸다.

눈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휘몰아치는 폭풍이 됐다.

불교에서 말하는 팔한지옥이 현세에 펼쳐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한파 역시 무서운 속도로 몰아쳤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온은 낮아지기만 했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가득해 낮인지 밤인지도 알 수 없을만큼 어두웠다.

“괭장하네요.”

낙소월이 방한복을 추스르며 감탄했다.

입술을 침으로 적시면 입이 얼어붙을 정도의 강추위였다.

배꼽 아래, 하단전에서부터 흘러나오는 내공으로 열기를 내지 않았다면 진작 얼어붙었을 것이다.

“궁까지는 앞으로 일주일 정도 걸릴 예정입니다.”

북해는 멀었다.

주서천이 괜히 부담스러워한 게 아니었다.

중원의 북동단인 흑룡강까지도 하남에서 하북, 북경, 요녕, 길림의 지방을 걸치는 과정을 겪었다.

원래라면 족히 보름 이상 걸리나, 중원에서 온 세 사람은 경신공의 달인이며 내공에도 부담이 없었다.

경비도 충분하니 때로는 말을 타는 방법도 있었다.

그 덕에 흑룡강에 며칠 만에 도착하는 쾌거를 이룰 수 있었다.

“보다시피 폭풍 탓에 시야가 그리 좋지 않습니다.

길을 찾는 데 시간이 좀 걸리니, 너그러이 양해해 주시길.”

마음 같아선 하루라도 빨리 도착하고 싶었지만, 길도 모르는 데다가 앞도 안 보이니 어쩔 수 없었다.

안법으로 시력을 향상시킨다고 해도 눈이 앞을 가리니 소용이 없었다.

답답하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으니, 차라리 마음 놓고 따라가기로 했다.

대신 정보 수집에 나섰다.

“혹시, 실례가 아니라면 북해나 빙궁에 대해서 알려 주시지 않겠습니까?

중원을 떠나기 전에 공부했으나, 오래되거나 확실치 않은 정보가 있어 잘못된 오해를 하고 있을까 걱정됩니다.”

“물론이지요.”

북해빙궁의 여무사이자 안내인 하와르가 흔쾌히 승낙했다.

“오래전, 본 궁의 조사께서는 삼백여 개의 강에서 유입되고, 하나의 강을 거쳐 흘러나가는 곳에서부터 사람들을 이끌고 와 북해의 내해(內海)를 밟았습니다.”

하와르의 이름이 몽골어인 것도 빙궁, 나아가 북해의 선조가 이민족이었던 탓이다.

미리 이야기하지만, 북해인은 몽골, 지금의 달단과는 선조의 피가 같아도 깊은 관계는 아니었다.

이주해 온 것도 오래전이고, 시간이 흐르면서 북해의 원주민이나 중원인 등이 섞였다.

“하나, 북해에 정착하는 건 쉽지 않은 문제였습니다.

원주민을 비롯한 타 지역에서 온 이주민과 마찰을 빚었기 때문이지요.

한때 마찰은 전쟁으로 번졌으나, 조사의 활약 끝에 평화를 되찾고, 얼음으로 된 궁전을 세웠습니다.”

북해는 예로부터 이민족이 여럿 있었다.

날씨가 춥고 땅이 척박한데도 이민자가 들어오는 건, 살기 좋지 않아 외세의 침략이 적다 보니 비교적 평화로웠기 때문이었다.

인근의 중원이나 몽골에서 오랫동안 일어난 전쟁에 지친 사람들에겐 제격이었다.

먹을 것이야 어차피 내해라 일컬어지는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는 호수가 있으니 해결할 수 있었다.

“이후의 역사는 중원 무림과 별반 다를 것 없습니다.

북해의 여러 세력과 자원이나 영토 등의 문제로 다툼을 빚은 정도입니다.

예외가 있다면 남녀 간의 입장 정도일까요.”

“아아, 북해는 여성주의 사회였죠.”

주서천 대신 낙소월이 알고 있다는 듯 맞장구쳤다.

“북해의 사회에 대해서 알고 계십니까?”

하와르가 신기한 듯 낙소월을 쳐다봤다.

“그리 많이 아는 건 아니지만요.”

북해는 특이하게도 여성이 주체인 사회인데, 이는 북해라는 지역 자체가 선천적으로 남자가 태어나기 힘든 데다가 빙공(氷功)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북해의 주 무공인 한빙공(寒氷功)은 음공(陰功)으로 분류되어, 남자의 몸엔 적합하지 않다고 들었어요.

그 탓에 아이를 잉태하는 것에……문제가 생긴다고.”

낙소월은 마지막 부분에 부끄러웠는지 뺨을 살짝 붉혔다.

“그렇습니다.”

하와르가 머리를 위아래로 주억거렸다.

“북해는 춥습니다.

도저ㅁ히 살아남을 수 없는 추위가 주기적으로 찾아오기도 하지요.

살아남기 위해선 남녀 상관없이 한빙공을 익혀야 합니다.”

“허어, 그러면 북해인은 전부 무림인이라는 것입니까?”

주서천이 놀라운 듯 물었다.

“장애처럼 불행한 경우를 제외하곤 대부분 그렇습니다.”

중원 입장에선 북해인이 중원의 날씨에 적응하지 못하는 걸 천만다행으로 여겨야 했다.

한둘도 아니고 북해인 대부분이 무인이다.

그들이 전부 침공해 올 것을 상상하니 소름이 다 끼쳤다.

괜히 운광이나 제갈상이 북해인이 강하다고 치켜세운 게 아니었다.

“다만, 매화검봉께서 말씀해 주셨다시피…… 한빙공은 추위를 버틸수 있게 해 주는 대신,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음양의 불균형이군요.”

주서천은 하와르의 말을 듣고 단번에 이해했다.

“음(陰)이란 차가움이요, 여자이다.

또한 양(陽)은 따스함이고 남자이다.”

음양이기(陰陽二氣)의 기초이다.

“남자가 음의 성질로 치우친 한빙공을 익힐 경우 여러 가지의 부작용을 불러 일으킵니다.

높은 성취를 이루지 못하는 것은 기본이요, 생명을 불어넣을 씨앗에 문제가 생기지요.

아이를 낳으면 칠 할 이상이 여자인데다가, 운이 나쁘면 평생 동안 아이를 잉태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성비가 불균형일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북해의 인구가 적은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그래서 미리 말씀드립니다만, 본궁에 도착하면 중원과는 반대되는 상황 탓에 종종 당황스러운 일이 있을 수 있으니 미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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