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북(湖北), 의창(宜昌).
호북 중서부에 위치해 있고, 장강의 삼협(三峽)의 입구이자 향구 도시인 의창은 호북임에도 무당파와 제갈세가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곳 중 한 곳이다.
강을 타고 서북부로 올라가면 적림의 소굴인 중경이 위치해 있기도 하고, 의창이 장강 앞에 세워진 도시인 탓에 수림구채의 영향을 크게 받았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의창 근처에는 장강 삼협의 입구 관리 겸 수림구채 중 일채가 자리 잡고 있었는데, 인근의 커다란 종유굴인 백마동(白馬洞)이 근거지인 백마채다.
“채주님!”
“무슨 일이냐?”
대머리에 험상궂은 얼굴, 몸이 잘 단련됐으나 마른 편인 백마채주가 수하의 부름에 답했다.
“이 근방 유역에서 편주 몇 척이 숨겨져 있는 게 발견됐다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근처에는?”
“예?”
“배가 숨겨져 있으면 그걸 타려는 사람들도 있을 거 아니냐.
이 방향으로 오는 상단 없어?
설마 이런 일 한두 번도 아닌데 몰랐다는 개소리를 하려는 건 아니겠지?”
백마채주의 목소리에서 진노가 느껴졌다.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수림도의 낯빛이 새하얗게 질렸다.
‘얼마 전에 조금 실수했다고 수하를 물고기 밥으로 던진 미친 양반이다.’
더운 것도 아닌데 식은땀이 뻘뻘 났다.
“하, 한나절 거리에서 상단으로 추정되는 마차 무리도 발견됐습니다.
거리를 두고 본지라 정확히 파악하지는 못했으나 이류에서 일류의 무인들로 보이는 호위도 있었습니다!”
“흠, 좋아.”
백마채주가 흡족한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어찌할까요?”
“어쩌긴 뭘 어째? 한 척도 아니고 몇 척이면 무리가 몰래 건너갈 예정이라는 거 아니겠냐.
아마 눈에 보이지 않도록 밤을 노릴 테지.
그들이 건널 때를 노려서 털어라.”
“예!”
”흐으음, 그러고 보니 한동안 상단이 안 보였지?
슬슬 돌아가는 것도 지쳐 몰래 넘어갈 때가 됐군.
감시해 둔 게 잘한 일이었어.”
호북에서 남하하려면 어디건 간에 장강을 통해야 한다.
건너지 못하면 정말 많이 돌아가야 한다.
“저, 그런데 채주님……”
백마채의 수림도가 백마채주의 눈치를 봤다.
“또 뭐냐?”
“전에 총채주께서 웬만하면 노략은 하지 말고 건너지 못하도록 배만 부수라 하지 않았습니까?”
“병신 같은 놈!”
백마채주의 불호령이 수림도에게 떨어졌다.
“그껏 계집년 명령이 뭐라고 따라?”
백마채주는 얼마 전만 해도 홍하랑과 나란히 총채주의 자리를 두고 경쟁하던 사이였다.
당시의 악감정이 아직까지도 고스란히 남아 있는지라 상부에서 내려오는 명령에 쉽게 순응하지 않았다.
“장강의 주인이자 삼협의 주인인 이 백마채주님 허락 없이 강을 건너려는 건 명백한 도전 행위다.
그에 따른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 하거늘, 그냥 배만 부순다면 싸우기도 전에 겁먹었다면서 비웃을 터!
어림없다!”
백마채주의 고함이 종유굴 전체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에 적막하여 무료했거늘, 참으로 잘됐군.
좋다. 본때를 보여 줘야겠다.”
해가 지고 밤이 온다.
빛이라곤 구름 사이에 가려져 미세하게 흘러나오는 달빛뿐이었다.
스르륵.
삼협은 물살이 세기로 악명 높으나, 그 입구인 의창 인근 유역은 비교적 온순한 편이었다.
불빛이 들어온 의창을 멀리 둔 구역에서 약 일곱 척의 편주가 차례대로 강을 넘으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약 반 각의 시간이 흘렀을 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장막이 거두어지며 한 무리가 나타났다.
“멈춰라!”
화르륵!
강 위에 불덩어리가 둥둥 떠올랐다.
횃불을 쥔 채 나타난 건 수적 무리였다.
중형에 이르는 병선(兵船)이 두 척이나 됐다.
선박 위에 올라선 수적의 수를 세니 대충 봐도 육십이었다.
노를 저으며 앞으로 전진 하던 일곱 척의 편주도 멈춰 섰다.
“달빛도 잘 들지 않는 이 밤에 어딜 가려 하느냐!”
수적들 사이, 단창(短槍)을 쥔 장대한 체구의 중년인이 비릿하게 웃으며 호통쳤다.
“우리로 말할 거 같으면 백마채의……”
푸슛!
“……응?”
중년인이 눈을 껌뻑였다.
그의 뺨에 얇은 혈선이 그어졌다.
“방금 전에 뭔가 지나 갔……”
콰앙!
중년인의 목소리는 이내 굉음에 묻혔다.
귀청이 찢어지는 소리가 터지는 동시, 약 일 장 거리의 수면 위에 멈춰 섰던 병선이 폭발한 것이었다.
“으아아악!”
“아악!”
선상 위에 있던 수적 무리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손에 쥐고 있던 횃불은 밑에서부터 용이 승천하는 것처럼 튀어 오른 물기둥에 집어삼켜졌다.
수군에 대응할 수 있도록 비싼 돈 주고 개조시킨 병선이 조각조각 나뉘면서 박살이 났다.
“……”
옆으로 돌아간 머리가 원래 위치로 돌아왔다.
전방을 향한 그의 표정은 변해 있었다.
‘좆됐다.’
등골이 오싹하고 몸이 파르르 떨 렸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정?’
중년인은 황급히 일곱 척의 조각배를 확인해 봤다.
호위 무사가 있긴 한데 그리 많지 않다.
정찰의 보고대로 실력도 이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혹시 상단은 위장 신분일까 했지만, 배불뚝이에 무공을 익히지 않은 자도 섞여 있는 걸 보니 아니었다.
무엇보다 상단의 수송 물품이란 걸 증명하듯 상자 및 큰 배낭도 보였다.
“이쪽은 저에게 맡기시고 강을 건너십시오!”
무슨 일어난 것인지 알아내기 위해서 머리와 눈동자를 열심히 굴리고 있을 때였다.
어딘가 모르게 불길하고, 젊은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중년인은 반사적으로 명령적인 어조의 근원지를 찾으려다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목소리의 근원지가 멀다.’
적어도 코앞의 일곱 척의 편주는 아니었다.
내공을 끌어 올려 보고 있는 범위를 넓혔다.
“어, 어?”
중년인뿐만 아니라 백마채의 수적 무리의 입에서 하나같이 당혹감이 뒤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목소리의 근원지가 생각보다 멀었다.
강 너머인 육지였다.
편주가 출발했던 곳에서부터 무언가 쏘아 낸 모양이었다.
자갈밭 위에 도복 차림의 무인이 서 있는 게 보였다.
도사인 건 분명한데, 거리가 멀어서 어떤 문파인진 보이지 않았다.
다만 검지를 구부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탄지공(彈指功)? 이 거리에서 맞춘 것도 놀라운데, 배를 박살 낼 정도로의 위력을 내? 고수다.’
꿀꺽.
중년인이 겁먹은 표정으로 침을 삼켰다.
‘아니, 잠깐. 육지라고? 게다가 저 거리?’
중년 수적의 표정이 다시 펴졌다.
“얘들아, 들어가라!”
눈부신 속도의 판단이 빛을 발휘했다.
풍덩!
하나밖에 남지 않은 병선 위, 삼십에 이르는 수적 무리가 강 위로 고민 없이 몸을 던졌다.
“하하하! 웬 머저리 새끼가 다 있구나!
차라리 멀리서부터 입 다물고 탄지공을 쏴야 했다!”
고수는 무섭다.
하지만 수중에서 무서운 건 같은 수적들뿐이다.
육지의 무인 따위 물고기 밥에 지나지 않는다.
심지어 달조차 구름에 가려져 달빛조차 적은 심야이니, 설사 궁신의 후예가 와도 맞출 수 없다.
“우리가 누구인지 아느냐? 장강의 지배자, 수림구채의 백마채다!
그리고 내가 바로 백마부채주다!”
부채주가 허리를 젖히며 크게 웃었다.
“그것참, 말 많네.”
도사가 준비 운동하듯 통통 튀었다.
왼발을 내디디고, 오른발은 뒤로 둔다.
허리를 살짝 숙여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자세를 잡았다.
“후우……”
도사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내뱉었다.
그리고 그사이 구름이 지나가면서 달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달빛이 도사의 소맷자락과 얼굴을 비추었다.
“으, 으응?”
부채주가 소맷자락의 새겨진 무늬를 보고 흠칫 놀랐다.
매화였다.
“화, 화산파?”
화산파는 검파로 이름이 높다.
지법이 없는 건 아닌데, 경이적인 위력을 낼 만큼의 고수는 몇 없다.
‘젊다.’
신경 쓰이는 건 겉모습이었다.
많아 봤자 스물다섯 살 정도였다.
그정도 되는 고수는 정말 많이 없다.
“서, 설마……”
꿀꺽.
중년의 수적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혹시 성함이 어찌 되십니까?”
“주서천!”
풍덩!
부채주가 강 위로 몸을 던졌다.
‘주서천? 검신이 여기서 왜 나와!’
부채주는 이름을 듣자마자 기겁하며 도망쳤다.
‘저딴 괴물이랑 싸우라고?’
검신의 무위는 진짜다.
온갖 천재가 수두룩한 무림에서도 괴물 취급을 받는 게 주서천이었다.
과거, 그의 연령이 낮다는 것만으로 얕봤다가 황천길 간 사람들 찾아보면 한둘이 아니다.
‘도망친다!’
사파인도 의리 따위 없는데 도적에게 있을 리 없다.
목숨이 위험하니 뒤도 안 돌아보고 줄행랑쳤다.
수하고 뭐고 간에 죽게 생겼는데 뭘 챙기겠냐.
자기 목숨 건지기도 바쁘다.
‘상천육좌라고는 해도 육지의 무인, 수중에선 따라오지 못할 터!’
혹시나 수면 위로 공격할지 몰라 밑으로 잠수했다.
그러나 부채주의 생각은 크나큰 착각이었다.
“어딜!”
타앗!
주서천도 강 위로 몸을 던졌다.
수면 아래로 뛰어든 게 아니었다.
그 위를 달렸다.
호흡을 조절하며 유령신공을 운영한다.
몸의 무게를 줄여 깃털처럼 만든 뒤, 천근추의 묘리를 역으로 이용한다.
먼저 내민 발이 가라앉기 전, 다음 발을 내디디며 재빨리 뛰었다.
타다닷!
무서운 속도로 달리는데도 물이 거의 안 튀겼다.
풍압에 영향을 받는 건 펄럭이는 도복 자락과 이마를 내보이며 뒤로 넘어간 머리카락뿐이었다.
‘자하지.’
주서천은 달리던 도중에 중지를 둥글게 말았다.
‘다섯.’
달리던 와중 오른팔을 가슴 아래쪽으로 들고, 손가락을 튕겼다.
파앗!
손톱 윗부분에서 자색 섬광이 번쩍이면서 자하지가 뿜어져 나오며 대각선을 그리곤 수면 아래로 박혔다.
쿠와아앙!
내공이 무식할 정도로 많으니 굳이 아낄 필요는 없다.
한 육 할 정도 되는 공력을 실으니 위력이 엄청났다.
강 한가운데가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움푹 들어가더니, 위로 크게 솟구치며 물기둥을 만들어 냈다.
“끄르륵!”
수면 아래에 숨어 있던 다섯 명의 수적이 거품과 피를 토해 내며 목숨을 잃었다.
“우와앗!”
일곱 척의 조각배가 급류에 휘말렸는지 크게 흔들렸다.
배 위의 사람들이 놀랐다.
머리 위로 치솟았던 물기둥이 떨어지며 마치 비처럼 부슬부슬하게 내렸다.
“미안합니다!”
주서천이 손을 들어 사과한 뒤, 유령신공을 만중검으로 전환해 무게를 늘려선 수직 하강했다.
풍덩!
몸에 실린 무게가 줄어든다.
부력이 적용됐다.
이제 막 봄이 시작된 탓에 아직 차갑게 느껴지는 물이지만, 한서불침인 주서천에겐 문제없었다.
시야의 색이 변하며 수중을 비췄다.
쐐애애액!
잠수하자마자 정면에서부터 창이 뻗어 왔다.
창끝이 미간에 닿으려는 순간, 주서천은 고개만 옆으로 까딱여 날아온 창을 피했다.
전력을 실은 공격을 날린 수적이 눈을 크게 뜨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어떻게?’
불신과 경악.
이해를 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주서천은 대답 대신 왼손을 들어 창을 쥐고 있는 수적의 팔을 붙잡아 힘을 주었다.
우드득!
‘아아악!’
수적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팔뼈가 잘게 부서지면서 입에선 거품이 꼬르륵 하고 흘러나왔다.
이에 주서천은 성가시다는 듯, 수적을 팔째로 잡은 채 강 밑바닥으로 집어던졌다.
콰콰콰!
수적이 강 밑바닥을 향해 추락한다.
한데 그 속도가 심상치 않았다.
수중 속이 아닌 곳에서 곤두박질치는 것처럼 빨랐다.
깜짝 놀라 발버둥 치려 했으나, 이미 늦었다.
강 밑바닥 아래에 자리 잡은 바위에 빨려 들어갔다.
콰앙!
밑바닥에서부터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영역을 침범당한 물고기 떼가 깜짝 놀라 흩어졌다.
잘게 부서진 바위 조각이 두둥실 떠올라 포물선을 그려 냈다.
‘저, 저게 뭐여!’
‘지금 여기가 수면 아래가 맞는 건가?’
수면 밑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수적들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눈으로 보고도 못 믿는 눈치였다.
그들이 도망치지 않은 건, 멍청해서가 아니다.
일반인의 상식을 넘어선 무림인도 수중에선 그다지 큰 힘을 쓰지 못한다.
헤엄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다.
숨을 오래 쉴 수도 있다.
그러나 싸우는 건 잘 못한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무공의 시작이자 끝인 호흡 자체가 되지 않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괜히 정사 연합이 수림구채 탓에 골치 아파하는 것이 아니다.
하수도 고수도 이 상식이 적용된다.
화경의 고수조차 함부로 장강에 몸을 던지지 않는다.
차라리 절벽을 타며 싸우는 것이 낫다 할 정도다.
상천에 이르는 절대고수들이야 워낙 상식에서 벗어난 괴물들이니 수중에서도 나름 움직일 수 있기는 하지만 이 경우 역시 한계가 있었다.
누가 봐도 수적의 판단은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
‘너희 생각이 맞다.
수공, 그것도 고수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움직임이야.’
주서천의 입가에 차가운 웃음이 번졌다.
해남도에서 획득한 수인공, 그 수공이 주서천을 수중에서도 마음껏 움직일 수 있게 해 줬다.
‘빠르게 끝낸다.’
부채주가 보이지 않았다.
혼자 주서천의 정체를 알아보고 전속력을 다해 도망치는 것이 보였다.
벌써 저 멀리서 헤엄치는 게 보였다.
‘하나, 둘!’
몸을 틀어서 왼팔을 뒤로 크게 젖혔다가 앞으로 돌렸다.
팔이 귀를 스쳐 지나간 동시, 창을 쏘아 냈다.
푸욱.
"끅!’
정면에 있던 수적의 가슴에 창이 지나가며 구멍이 생겼다.
꼬르륵! 꼬르륵!
그 뒤의 수적도 순식간에 쏘아진 창에 미처 반응하지 못하고 미간을 뚫렸다.
피가 흐르며 수중을 더럽히면서 물고기 떼를 불렀다.
‘셋, 넷, 다섯!’
입으로 내진 않았으나 사신의 말이 튀어나왔다.
주서천은 물을 차올리며 앞으로 미끄러지듯 헤엄쳤다.
땅 위에서 달리는 것만큼은 아니나 그래도 무서운 속도로 수적과의 거리를 좁혔다.
‘으, 으아악!’
수적이 기겁하면서 오른손에 쥔 칼을 마구 휘둘렀다.
공포에 질렸는지 형편없는 칼솜씨였다.
주서천은 눈길 한 번을 주지 않고, 수적의 옆을 지나가면서 검을 스윽 휘둘렀다.
서걱!
‘어어어?’
생전의 든 최후의 생각은 의문이었다.
상체와 하체가 깔끔하게 베여 둘로 나뉘어졌다.
그 너머로 주서천이 등 뒤의 두 수적늘 베는 광경이 보였다.
‘으, 으아악!’
‘괴물이다!’
“물귀신이다!’
수적은 수공이라는 이점 외에는 별볼 일 없다.
고수라 불리는 절정은 고사하고 일류도 그리 많지 않았다.
주서천의 강함에 겁을 먹고 도망치려 했다.
그러나 그걸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주서천이 아니었다.
‘자하개벽!’
자하검결 제일식이 수중에서 펼쳐졌다.
검을 쭉 뻗자, 작아진 우렛소리를 토해 내며 자색의 빛줄기가 앞으로 쏘아졌다.
‘화우선형!’
한일 자를 그린 검줄기가 부채꼴로 퍼지며 넓어지더니, 여러 곳으로 흩어지며 도망치던 수적을 삼켰다.
‘크아아악!’
‘케헥!’
‘미, 미친!’
화산파의 신공인 자하검결이라 해도, 수중에서 펼쳐지면 위력이 감소한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한낱 수적이 감당할 정도는 아니다.
열이 순식간에 죽었다.
‘으으으……’
딱딱!
이가 부딪치면서 마찰음을 냈다.
부채주가 줄행랑치면서 스물아홉 명이었던 백마채의 수림도가 고작 여덟 명밖에 안 남았다.
머릿속에선 공포와 더불어 여러 의문이 감돌았다.
중도만공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한, 수공에 대한 정체를 알 수 없다.
무지(無知)는 공포로 돌아왔다.
도망쳐야 하나, 혹은 항복해야 하나 고민했다.
그중에서 반인 네 명은 끝까지 저항하기로 했다.
다만, 직접 싸우는 건 자살행위라고 판단했는지 인질을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상인 놈들!’
‘그놈들은 약했다!’
황급히 뒤를 돌아보니 멀지 않은 곳에 배 밑바닥이 보였다.
최초에 발견했던 일곱 척의 배였다.
재빠른 판단을 내린 네 명의 수적 무리는 등을 돌려 전속력을 다해 배를 향해서 움직였다.
‘아까 보니 분명 보호하……’
서걱!
‘어?’
대퇴부에 힘을 주며 다리를 흔들어봤다.
그러나 몸이 위로 올라가지 못했다.
수적은 어떻게 된 것인지 의문이 들어 고개를 돌려 상실된 감각의 정체를 확인했다.
“꼬르르륵!”
“으악! 으아악!”
무릎에서부터 발까지 없었다.
잘린 부위에서 핏물이 구름처럼 퍼졌다.
도움을 구하려고 옆을 돌아봤으나, 그 얼굴엔 절망이 감돌았다.
최후의 저항을 택한 세 명은 아예 몸이 둘로 갈라져 있었다.
공포가 그를 엄습했다.
‘넷.’
주서천은 무감정한 눈동자를 돌려 생존자를 확인했다.
물속에서 굳어 있는 네 수적이 보였다.
말은 할 수 없었지만, 얼굴을 보면 살려만 달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주서천은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켜 수면 밖으로 나가라고 몸짓했고, 네명의 수적은 순순히 따랐다.
“푸하!”
“으흐흑!”
“흐어억!”
잔존한 수림도가 나오자마자 울음과 공포로 얼룩진 목소리를 내뱉었다.
평소에 어떠한 것보다 친숙했던 곳이 지옥처럼 느껴졌다.
당장이라도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사이 주서천은 수면 밖으로 나와, 근처에 떠다니는 주인 잃은 백마채의 병선에 올라탔다.
“부채주 놈, 눈치 한번 빠르네.”
주서천이 주변을 슥 둘러보곤 감탄했다.
그러곤 시선을 돌려 자신의 눈치를 보던 수림도를 불렀다.
“이봐”
“예, 예! 대협! 살려만 주신다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제, 제발……”
그냥 부른 것뿐인데 수림도가 격하게 반응했다.
“백마채로 안내해라.”
“알겠습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방금 전의 신위가 꽤나 인상적이었는지, 영혼이라도 내줄 기세로 답하는 수림도였다.
“한두 명이 아니라 네 명을 남긴 건, 혹시나 쓸데없는 짓을 할 것 같아서다.
만약 누군가가 시간을 낭비할 것 같은 쓸데없는 짓을 시도하는 순간, 연대 죄로 죽을 것이다.”
“며, 명심하겠습니다!”
수적 따위에게 자비나 동정 따윈없다.
무슨 사연이 있다 할지라도, 결국은 사람을 약탈하는 이들에 불과하지 않은가.
봐줄 생각은 없었다.
귀찮긴 해도 수틀리면 그냥 죽이고 이 주변을 이 잡듯이 뒤질 생각이었다.
“대협! 저희는 어떻게 합니까?”
병선과는 거리가 좀 먼 곳에서 금의상단의 상인이 물었다.
“호남 지부로 가서 볼일들 보시오!”
주서천은 백마채가 의심하지 않고 접근할 수 있도록 금의상단을 위장시킨 뒤 동원시켰다.
만약, 정사 연합의 편인 금의상단이 대놓고 건너려 하면 무언가 있다고 생각해 접근하지 않았을 터다.
“알겠습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상인의 인사에 주서천도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가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