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二章 (207/254)

권동제, 정백.

정도의 위인이라 일컬어지는 그에게 있어서 정도란 건 인생의 일부요, 또 전부였다.

잘못된 건 하지 않는다.

올바른 것을 행한다.

누구나 아는 간단명료한 사실이나, 이를 지키는 건 극소수에 속했다.

사람이란 살다 보면 언젠가 현실이란 벽에 가로막히기 마련이고, 체념하게 되면서 현실과 타협한다.

그러나 정백에게는 이 ‘타협’이란 게 존재하지 않았다.

눈앞에 잘못된 일이 있다면 이를 지적하고 고치려 했으며, 올바른 것을 중요시하며 선행을 베풀었다.

고결하고 강직한 신념이지만, 평범한 사람의 눈으로 보면 미쳤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왜냐고 묻는다면 답은 하나밖에 없다.

도저히 사람이 행할 것이 못 된다.

남을 위해서 수고나 목숨을 아끼지 않는 것도 한두 번이지 수십 년 동안 반복하는 건 미친 짓이었다.

‘왜 그렇게까지 하시는 겁니까?’

언젠가, 남궁위무가 물었다.

‘그것이 사람의 도리니까.’

정백의 사상은 그리 난해한 건 아니다.

어린아이도 이해할 정도로 단순하다.

하지만 현실과 너무나도 먼 개념이었다.

사람들은 이를 보고 이상(理想)이라 칭했다.

원래 이상이란 사상을 지켜 가는 건 어렵다.

목표는 높으나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정백은 그 한계의 벽이 그리 높진 않았다.

상승의 무공이나 명문지파의 인맥, 스승이 없어도 정점에 오를 정도의 재능이 있었던 탓이었다.

둘 중 한 사람을 구해야 할 상황이 오면 압도적인 재능과 노력으로 둘을 구했을 정도였다.

물론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 적도 없진 않았다.

좌절할뻔한 적도 존재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체념하지 않았다.

나이를 먹고 좌절한다 해도 자신의 소신을 지켰다.

끝없는 노력이나 순수한 성품 덕이었을까.

무림의 여러 영웅호걸들이 그의 곁에 모이기도 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덧 영웅이라 불렸다.

이윽고 세월이 흐르며 변하지 않은 신념은 심상으로 구현되며 절대고수의 경지까지 이뤘다.

하지만……

몇십 년 동안 변하지 않았던 이상이 흔들렸다.

남궁위무가 무림 공적이 된 날이 기점이었다.

‘그 잘난 정도란 것에 대한 책임을 져!’

‘어른이 되란 말이다!’

주서천의 외침이 머리 한구석에 박혔다.

그 말이 머리, 아니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책임을 져라.

그 말을 곱씹으며 무림에 남았다.

신념에 따른 행동의 결과를 보기 위해서.

남궁위무가 일으킨 파문은 파도로 번졌다.

그리고 오늘 정백은 눈치했다.

‘변한, 건가……’

타협이란 이해이며, 상호 간의 존중이기도 하다.

정백은 관철해 온 사상을 드디어 내려놓았다.

책임이란 이름하에 보통 사람들처럼 타협하게 됐다.

대신 그로 인해서 심상에 문제가 생겨 육체를 포함해 무공이 퇴보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이대로 간다면, 내 행동의 책임을 질 수 없다.’

경지가 현경의 초입까지 퇴보하더니만 이윽고 그 아래까지 떨어졌다.

화경과 현경의 중간이었다.

심상이 무너졌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니, 한 가지 방법이 있다.’

심상구현, 이상의 응용법 중 하나다.

‘선천진기.’

선천진기(先天眞氣).

사람, 아니 생명체의 근원이 되는 기운이자 이상적인 힘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내공의 일종이며, 일반적인 내공과 달리 한 번 소모하면 보충할 수 없다.

또한 생명의 근원을 소모한 만큼, 그 대가도 컸다.

바로 목숨이었다.

하수건 고수건 상관없었다.

구 할이 죽으며, 천운이 닿아 산다고 해도 무공을 잃고 폐인이 된다.

그리고 그 대신, 사용자는 막대한 힘을 손에 넣는다.

퇴보한 경지를 메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살날이야 어차피 얼마 남지 않았으니 개의치 않았다.

“하아압!”

정백의 기합이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평소의 대자연에서 끌어모은 것이 아니다.

정백이라는 인간이 품은 생명의 기운이었다.

검에 막혔던 주먹이 암천회주를 밀어냈다.

“선천진기를 다룰 수 있을 줄이야.”

암천회주의 입에서 흘러나온 감정은 놀라움이었다.

선천진기란 함부로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조금만 사용한다 해도 수명이 줄어드는 탓에 본능적으로 사용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상천육좌인 현경의 절대고수 역시 마찬가지다.

초인적인 의지력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놀란 건 정백도 마찬가지였다.

‘날려 버릴 생각이었는데 밀려나는 걸로 끝냈다.’

정백의 얼굴이 굳었다.

주어진 시간이 적은 만큼, 탐색전 따위는 무의미했다.

단숨에 밀어붙여 끝낼 생각이었다.

그러나 끝내기는커녕, 조금 밀려난 것으로 끝나는 암천회주의 심후한 공력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검신이 그리 경고했던…… 암천회주의 힘인가.’

주서천은 암천회의 무서움을 몇 번이나 경고했다.

그 목소리를 되새기며 다음 공격에 나섰다.

오른쪽 다리를 앞으로 내디딘다.

쿠웅!

발에 힘을 주자 바닥이 반구 형태로 움푹 주저앉았다.

균형을 잃을 만도 하지만 두 고수는 변함없었다.

부웅.

허리를 반회전하며 꼬고, 좌권(左拳)에 회전력을 실었다.

바람이 아닌 대기가 짓뭉개졌다.

정백은 검을 밀어낸 주먹이 아닌 손으로 일권을 내질렀다.

콰아앙!

주먹이 곧게 뻗은 선을 그려내며 암천회주의 하복부를 정확히 후려쳤다.

깔끔한 일격이었다.

하지만 치명상을 주진 못했다.

맞기 직전에 호신강기를 펼쳐서 막혔다.

휘리릭!

정백은 오른발을 축으로 삼아 반바퀴 회전했다.

그에 맞춰 왼 다리를 들어 올려 돌려 차기를 선사했다.

속도나 위력도 수준급이다.

부족한 무공을 채우는 걸 넘어, 그 위의 경지까지 노릴 정도였다.

암천회주는 눈썹 하나 깜짝하지 않고 검을 사선으로 세워 갈비를 후려치려던 돌려 차기를 막아 냈다.

콰아아앙!

힘과 힘이 부딪친다.

기와 기가 충돌했다.

모든 것이 시작된 순간, 대폭발이 있었다는 말이 있다.

그 말에 걸맞은 폭발이 벌어졌다.

대기에 포진된 기가 출렁이나 싶더니만, 연쇄적으로 폭발을 일으키며 폭풍을 토해 냈다.

콰르르!

팔문 위의 기왓장이 우수수 떨어지며 깨졌다.

지면 위의 모래가 안개처럼 흩어지고, 바람이 되어 주변을 스지고 지나갔다.

순간 공기가 사라져 숨이 턱턱 막혔다.

절대고수의 대결에 걸맞은 영향력이었다.

사람이라 볼 수 없었다.

이 와중에 팔진도를 유지하는 제갈중호가 대단했다.

파밧!

정백의 몸이 흐릿해졌다가 암천회주의 등 뒤에서 나타났다.

최상승의 경신법인 이형환위였다.

“후웁!”

몸 아니 존재에서부터 힘을 끌어내 주먹을 힘껏 내지른다.

목표인 등을 단번에 부술 기세였다.

파앗!

그러나 그 주먹은 닿지 못했다.

암천회주는 뒤에 눈이 달린 것도 아닌데 예상했다는 듯 피해 냈다.

심지어 회피한 기술은 이형환위.

암천회주 역시 사라졌다가 측면에서부터 나타난다.

슈우웃!

암천회주의 검이 앞으로 쭉 뻗어나가며 한일 자를 그려 냈다.

여전히 상식에서 벗어난 속도였다.

정백은 급히 몸을 뒤틀었다.

“크으읏!”

그의 움직이는 속도 역시 보통이 아니다.

그러나 그만큼 고통이 동반됐다.

근육이 뒤틀리면서 고통이 동반됐다.

근맥이 끊어질 듯이 당겨 왔다.

내장이 저릿하게 아파 왔다.

정면으로 향하던 힘의 방향이 원래부터 측면이었던 것처럼 변했고, 앞으로 뻗었던 팔도 옆으로 휘둘러지면서 손등이 암천회주의 검신을 힘껏 후려쳤다.

째애앵!

충격이 전해진 검이 찌르르 울렸다.

손등의 피부도 물결이 일어난 것처럼 떨려 왔다.

이걸로 공수가 전부 끝난 건 아니다.

숨을 고르기도 전에 암천회주의 검격이 쏟아졌다.

파바바밧!

손등에 후려쳐진 검은 어느새 원래의 위치를 찾았다.

주인의 움직임에 몸을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시커먼 섬광이 번쩍였다.

사람의 시각으로 따라갈 수 없는 속도의 검이 쏘아졌다.

정백도 그 속도에 맞춰서 주먹을 연달아 휘둘렀다.

파바바바밧!

검격과 권격이 정면의 상대를 향해 쏘아졌다.

채채채챙!

금속을 연달아 두드린 것처럼 마찰음이 나왔다.

섬광이 번쩍이면서 불꽃도 튀었다.

찰나의 순간 동안 세 자릿수의 격돌이 있었다.

‘허억! 허억!’

숨이 가빠 온다.

심장이 터질 듯이 뛰어 왔다.

몸이 조금씩 무거워지려 하고 있었다.

콰앙!

정백은 잠시 재정비를 위해서 거리를 벌렸다.

“참으로 어리석도다.”

암천회주가 정백의 상태를 눈치챘다.

“아무리 선천진기가 대단하다고 한들, 결국 불길 속에 몸을 던지는 나방과 다름없다.

회광반조(回光返照)란 죽기 전에 기운을 돌이키는 것.

차라리 여태껏 살아왔던 것처럼 그 잘난 이상을 관철했어야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도리어 정론(正論)에 속한다.

“만약, 끝까지 사고에 변화가 없었더라면 심상도 그대로였을 것이고 본연의 힘을 발휘했었을 것이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건 마찬가지긴 하지만 그래도 지금처럼 당장 죽을 일은 없었을 터.

무엇이 그리 그대를 망친 건가?”

암천회주가 물었다.

“비록 미쳐 있고 일그러져 있으나, 그대의 신념은 순수하며 존경받을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비꼬는 것이 아니었다.

진심이었다.

“여타 위선자들처럼 말만 번지르르한 것이 아니라, 솔선수범하며 노력하지 않았는가.

한데 그 고결한 신념은 어디에다 두고 약자로 추락했나.”

암천회주는 실망스러운 기색을 보이며 검을 들었다.

웅웅웅!

대기가, 떨린다.

천지가 뒤흔들렸다.

여태껏 느껴 보지 못했던 진동이 주변을 뒤덮었다.

검에 맺힌 미증유의 힘이 회전하며 주변을 삼켰다.

“대답해라, 권동제.”

권동제가 아니다.

정백도 오른손 주먹을 들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생명의 원천이 끓어오르며 남은 수명을 비롯해 무학의 근간까지 분출했다.

“나는, 그저 늙은이에 불과하다.”

대자연의 기는 잠잠했다.

이상이 무너졌다는 걸 증명했다.

그래서 언제 운용했는지 모를 단전까지 동원했다.

새하얗게 질린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눈 밑의 피부가 급속도로 주름지기 시작했다.

잘 단련된 근육도 조금씩 줄어든 느낌이 났다.

소년은 청년이 됐고, 청년은 중년이 되며, 이윽고 노년기에 접어든다.

“됐다.”

암천회주의 목소리가 차갑게 식었다.

암흑밖에 보이지 않는 그 눈동자에선 어떠한 감정도 찾아볼 수 없었다.

“잘 가라, 무림의 상천이여.”

암천회주가 검을 휘둘렀다.

정백과의 거리가 있음에도 상관없었다.

위에서 아래로 수직선을 그려낸 그 검은 그의 머리를 노렸다.

정백도 동시에 주먹을 휘둘렀다.

눈처럼 새하얀 빛이 번쩍이며 선천진기가 뿜어졌다.

‘만약……’

새하얀 빛 속, 기억의 편린이 떠올랐다.

젊었을 적부터 여러 전장을 떠돌아다녔다.

정도와 사도에 대해서 알고,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 나쁜 것인지 판단하고 벌하며 평생을 살아왔다.

시간이 지나자 함께하는 사람이 조금씩 늘어나 웃기도 했고, 울기도 하고, 화내기도 했다.

때로는 무림의 현재나 미래에 대해서 목소리를 높여 토론하는 등 누군가를 위해서 살아왔다.

‘만약, 그때 무림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언제나 바보 같은 취급을 받았다.

현실을 모르는 어린아이라고 비웃음 당했다.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했던 신념이었고, 외로운 길이었으나 언젠가부터 함께할 사람이 늘어났다.

남궁위무가, 혜만대사가, 제갈중호가, 운광이…… 그 외에도 많은 사람들과 함께했다.

포기하지 않고 관철해 나가면서 노력한 끝에 전 세대와의 갈등을 끝내고 무림맹의 개혁에도 성공했다.

그날, 떠나지 않았다면 다른 미래가 기다렸을 지도 모른다.

아무도 오지 않는 산속에 앉아 있지 않았겠지.

무림맹주의 은신처에 앉아 바둑을 두며 무림의 미래를 논하거나, 혹은 제자를 들였을 지도 모른다.

삶이 끝나가는 걸 기다리며, 늙은이들끼리 모여서 청승이나 떨고 있을 지도 모르겠지.

“아아……”

꺼져 가는 의식 속.

정백은 불현듯 중얼거렸다.

“위무야…… 미안하다……”

상천육좌. 정백(正白). 사(死).

사흘 뒤, 무림은 어떠한 소식으로 인해 요동쳤다.

합비가 함락됐다!

무림맹의 성도가 무너졌다.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리는 데는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무림맹 본부에 암천회의 깃발이 올라왔다!”

“뭐라고? 그게 정말인가?”

“아니, 그러면 무림맹이 전쟁에서 패했다는 건가?”

무림맹 본부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난공불락의 성으로 인식됐다.

본부가 합비에 정착한 이후로 패퇴한 역사 자체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또한, 전의 사례도 패퇴한 직후 금방 되찾은 경우밖에 없었다.

이번처럼 적군의 손아귀에 떨어진 경우는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무림인, 아니 정파인에게 그 여파는 상당했다.

얼마냐 극단적이었냐 하면, 본부의 함락 소식을 듣자마자 무림맹이 전멸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헛소문이다!”

“암천회의 공작이다!”

정파 무림이 흉흉한 소문으로 난항을 겪기 시작할 때쯤, 정사 연합은 재빨리 수습에 나섰다.

“무림맹 본부가 패퇴한 건 맞지만, 전멸한 건 아닐세.

암천회가 승전을 과장해 아군의 심기를 흔들려는 목적이니 현혹되지 말게나.”

“휴우, 다행이로군!”

“그래도 본부가 함락되어 패퇴한건 맞는 말이 아닌가?

충격이로군.”

무림인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안도하는 사람부터 시작해 실망하거나 혹은 좌절하는 이들 등 여러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또한, 무림맹의 패퇴소식으로 혼란이 다 가시기도 전에 또 하나의 악보(惡報)가 정사 연합을 흔들었다.

상천육좌, 권동제가 죽었다!

“그 양반이야 원체 나이가 많으니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지 않나?”

“이 양반아, 그런 거라면 이런 난리를 부렸겠나?

천명이 다해 눈을 감은 것이 아니라 암천회주의 손에 의해 죽었다네!”

“뭣이?”

상천육좌, 권동제의 죽음이었다.

전 세대의 영웅이자 정점에 이른 무인인 만큼, 그 죽음이 큰 화제로 떠오른 건 당연한 일이었다.

“전 군사, 제갈중호도……”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자초지종이 밝혀지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본부의 함락 건은 워낙 규모가 크다 보니 목격자가 한둘이 아니었다.

전황에 대해서 금세 알게 됐다.

“허어, 그런 일이 있을 줄이야……”

“참으로 안타까운 일일세.”

정파인들은 정백과 제갈중호의 희생을 애도했다.

“정파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건가?”

“이거야 원, 완패나 다름없지 않은가.”

본부의 함락도 문제이거늘 설상가상으로 권동제의 사망 소식으로 인해 정사 연합의 사기는 곤두박질쳤다.

주체가 되는 퇴각대가 대부분 생존해 있다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으나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결과적으론 본부는 함락되고 정파출신의 상천육좌를 잃기까지 했으니 피해가 커도 너무 컸다.

“복잡한 기분이로군.”

사도천주는 무림맹 본부 함락에 눈살을 찌푸렸다.

“전에는 그토록 성가신 본부를 어찌 박살 낼지 고민했거늘, 지금 와서는 한탄하고 있으니……”

무림맹도 무림맹이지만 사도천도 입맛이 썼다.

정파만이 아니라 사파의 사기에 영향을 끼치면서 내부에서도 불안한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신의나 도리가 아닌 이익을 추구하는 사파인 만큼,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지금이라도 암천회에 붙어야 하지 않냐는 의견이 나올 정도였다.

사문반란 이후 첩자를 싹 다 청소했거늘 싹이 다시 자라기 시작했다.

“정사의 미래가 어둡구나……”

* * *

호남, 장사(長沙).

‘당했다.’

주서천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약 닷새 전의 일이다.

파견대는 귀주에서 합비의 습격 소식을 들은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리고 동시에 적의 의도가 무엇인지 저절로 깨닫게 됐다.

귀주는 함정이다.

‘귀주의 암천군이 본대가 아니란 건 느끼고 있었다.’

요광 외의 간부가 없었으니 당연했다.

암천회의 전력치곤 생각보다 적기도 했다.

‘하지만 설마하니 미끼에 불과할 줄이야……’

합비에 집결하기 위한 시간 벌기에 불과했다.

그러나 깨닫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소식을 듣자마자 합비로 다급하게 돌아갔으나, 습격이 벌어진 이후였다.

전속력을 다한다 할지라도, 귀주에서부터 안휘까지 워낙 거리가 있다보니 제시간에 도울 수 없었다.

무엇보다 암천회가 무림맹을 함락하는 데 얼마 걸리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다.

속전속결.

물리적으로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었다.

결국 합비는커녕 안휘 땅을 밟아보지도 못한 채, 호남에서 무림맹 패퇴 소식을 듣게 된다.

“……”

주서천을 필두로 별동대의 분위기는 그리 좋지 못했다.

특히나 제갈수란이 자책으로 침울해했다.

“죄송해요…… 제가 좀 더 빨리 본부로 돌아가자고 말했다면……”

별동대주는 단리화지만 목적지나 행동은 제갈수란이 정한다.

그 탓에 책임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괜찮아. 동생 탓이 아니니까.”

단리화가 쓴웃음을 지으며 제갈수란을 위로 했다.

“그 사람이 말한 대로야.”

당혜가 단리화의 말에 긍정했다.

“귀주의 격돌이 끝난 후에 뒷정리는 필요한 일이기도 했고, 설사 곧바로 돌아갔다 할지라도 다들 지쳐있는 데다가 합비까지는 거리가 상당하니 제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없었을 거야.

설령 도착했어도 피곤에 절어 제대로 싸우지도 못했을 거고.”

주서천도 마찬가지다.

귀주와 안휘는 멀다.

귀주군과 다투던 도중 퇴각하지 않은 이상 제시간에 도착할 순 없었다.

“당신도, 마찬가지고.”

당혜가 신경 쓰였는지 주서천을 힐끗 쳐다봤다.

‘다음에는 이번처럼 호락호락 당하지 않는다.’

하나 정작 주서천은 그리 침울하진 않았다.

분한 건 분한 거지만, 언제까지나 얽혀 있을 순 없다.

자책한 뒤에 다음을 생각하고 있었다.

‘권동제……’

권동제, 정백의 죽음.

주서천도 정백의 죽음에는 복잡한 심경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를 좋아하진 않는다.

싫어하냐고 묻는다면 싫어한다고 답할 것이다.

앞뒤나 주변을 생각하지도 않은 채 고집만 부리는 늙은이, 아니 어린아이라고 생각했다.

하나 그 최후를 듣고는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나름, 책임을 지려 했던 거요? 권동제…… 아니, 정백.’

그런 생각이 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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