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十章 (203/254)

하루에 한 번만 쉬어도 되는 귀식대법이 아닌 이상, 몸에 문제가 생기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다.

“주서처어어어어언!”

아무리 전장에 익숙한 요광이라 할지라도, 이처럼 특수한 곳에서 싸운 적은 없었다.

흑철갑주가 설사 신체 능력을 높여주고, 독도 막아 준다고 해도 없는 공기를 만들어 낼 수는 없었다.

“네가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지옥을 만들겠다면.”

시야가 빙글 돌았다.

뇌에 공기가 부족해 머리가 돌았다.

감각이 이상했다.

힘을 내 왼손을 뻗었다.

“내가 그 지옥이 될 것이다.”

서걱!

“져, 졌다!”

종리도전이 손을 머리 위로 올렸다.

수십 명의 피 맛을 본 연검도 떨어졌다.

“항복할 테니 목숨만 살려 주시오!”

삼천오백 중 이천을 함정으로 허무하게 잃었다.

중요한 건, 총지휘관이자 최대 고수인 요광도 휘말렸다는 것이었다.

종리도전을 비롯한 몇몇 전력이 남기는 했으나, 포달랍궁이 합류한 귀주군을 이겨 내기는 힘들었다.

처음에는 주서천도 모습을 감춰서 해볼 만하겠다고 생각했지만 큰 오산이었다.

어떻게든 버텨 내려다가 결국 피해만 늘렸다.

천오백 명이 저항하다가 팔백 명까지 줄어들었고, 답이 없다는 판단에 투항하기로 했다.

물론 전원은 아니었다.

충성심이나 신념이 투철한 이들은 아직까지 저항하며 생명의 불꽃을 태웠다.

“종리도전!”

조명이 종리도전에게 성큼성큼 걸어갔다.

“혀, 형님! 한 번만 봐주…… 케헥!”

조명의 발이 종리도전의 턱에 꽂혔다.

“이 배신자 새끼가!”

사파에 배신이 흔하게 일어나긴 하지만, 그래도 몇 년 동안 정을 쌓은 의형제에게 당한 건 얼얼했다.

“사, 살려 주십시오! 형님!”

종리도전이 부어오른 턱을 문지르며 애원했다.

“내 네놈을 당장 쳐 죽여 주마!”

“어허, 좀 진정하게.”

맹초혁이 조명을 말렸다.

칠성사의 중심 기관, 천추성 출신에 암천회 간부인 요광의 수하로 전선에 참전했다.

그만큼 알고 있는 것이 많을 테니, 되도록 양호한 상태로 잡아들여 정보를 캐내는 것이 이득이었다.

조명도 그 사실을 모르는 것이 아니기에, 그 대신 욕설을 퍼부었다.

“휴우, 이겼군요.”

신도균은 가슴을 쓸어 넘기며 안도했다.

“요광이 함정을 눈치했을 땐 간담이 서늘했습니다.”

진담이었다.

염라대왕 얼굴이 절로 떠올랐다.

또한, 요광이라는 괴물에 대한 공포심이 솟구쳤다.

무공도 무공인데 지략까지 뛰어나다니.

세상 참 불공평하다는 걸 느꼈다.

한시름 놓으니 여러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원이 망한 이후에 서장 무림이 중원 무림에 관여하는 것도 참 오랜만이군요.”

명 시대가 들어선 이후 포달랍궁은 중원에 털끝만큼도 관여하지 않았다.

중원 무림도 마찬가지였다.

법으로 금지된 건 아니지만, 국가 간에 사정이 복잡하게 얽혔다 보니 민감한지라 교류를 끊었다.

그렇기 때문에 현 상황에 대해 더더욱 궁금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종객파라 했던가요.

저 노승이 검신께 생명의 빚을 졌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검신께선 도대체 언제 포달랍궁과 연을…… 모사님?”

말을 걸어도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신도균은 이상함을 느끼고 고개를 돌려 모사미봉을 살폈다.

그녀의 시선은 아래쪽.

무너진 지반, 호지관의 입구를 향하고 있었다.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에요.”

‘뭐라도 있는 건가?’

신도균은 불안한 마음에 제갈수란의 시선을 따라, 붕괴된 지반을 내려다보았다.

아직 무너질 위협이 있는지라 아군이 다가가지 않도록 제한했다.

적들은 진작 빠져나와 몸을 웅크렸다.

바닥에 듬성듬성 구멍이 나 있지만, 아래가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다.

묵빛 철 기둥이 언뜻 보였다.

눈에 힘도 줘 보고, 풀기도 하면서 이곳저곳 살펴보았지만 특별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아, 혹시 검신을 기다리시는 겁니까?”

얼마 전, 작전 설명을 들었을 당시 주서천은 요광을 끝까지 맡을 것이라 말했다.

호지관에 요광이 떨어질 경우, 따로 통로를 통해 경과를 지켜보고 오겠다고 했다.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모사께서도 그 도해를 보시지 않았습니까?”

신도균만 해도 기관 도해를 보고 반신반의했다.

위력을 살피기 전에 이게 제대로 발동을 하는지도 의문이었다.

무림인에게 있어서 기관은, 쓸모가 없어져 사장된 학문이자 기술에 불과했다.

하지만 직접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

이천여 명이나 빨려 드는 모습을 보곤 입을 다물지를 못했다.

오늘날, 제갈세가에 또 다른 천재가 나타났다고.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전신에 갑주를 두른들, 호지관을 막아 내진 못했을 겁니다.

아마 지금쯤 시신을 수거하고 있을 겁니다.”

주서천은 정사 연합에 요광의 신상에 대해서 대략적으로 알려줬지만, 법보에 대해선 숨겼다.

무림인에게 신병이기는 동맹의 와해는 물론이고 근본을 순식간에 무너뜨릴 수 있는 탐욕의 물건이다.

당혜의 기사분반처럼 장신구의 경우엔 별로 감흥이 가지 않으나, 무기나 갑옷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

신도균이 걱정 말라고 안심시켰지만, 제갈수란의 묘한 분위기는 풀릴 생각이 없었다.

검지를 올렸다 내리며 옷을 툭툭치는 등 ‘나 신경 쓰고 있어요.’ 라고 말하고 있었다.

‘왜 저러지?’

모사미봉은 언제나 평정심을 잃지 않는다고 했다.

항상 무감정하다 보니 조금 과장해서 사람이 아니라 인형이라는 괴소문이 생길 정도였다.

그리고 직접 보니 소문대로 정말 무감정했다.

필요할 때를 제외하곤 조금도 말을 하지 않으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했다.

신도균은 제갈수란의 뒤에 서서 가만히 생각하다가, 무언가 떠올린 듯 감탄사를 삼키 며 웃었다.

“검신께서 혹시나 손이 부족하지 않을지 걱정이 되는군요.

무사를 보내 확인해 봐도 괜찮겠습니까?”

“……”

긴 침묵이 이어지고, 제갈수란이 고개를 미미하게 끄덕였다.

‘청춘이구먼!’

신도균이 뒤에서 흐뭇하게 웃었다.

제갈수란이 부끄럽지 않도록, 내색하지 않는 신도균의 태도는 사회생활의 귀감이었다.

* * *

“허억, 허억……”

숨이 찼다.

피부 위로 땀방울이 흘렀다.

눈앞엔 팔이 베인 시체가 누워 있었다.

칠성사의 일인, 요광인 파군이었다.

주서천은 요광의 팔을 잘라낸 뒤, 소령을 비롯한 유령들의 도움을 받아 발광하는 그를 제압했다.

팔 부위에서 피를 흩뿌리며 끔찍한 비명을 토해 내 소란스러웠으나 재빨리 목숨을 끊어 멈출 수 있었다.

허무하면서도, 허무하지 않은 최후였다.

마음 같아선 요광을 살려 두고 캐묻고 싶었지만, 그럴 여유가 나지 않았다.

암천회주의 오른팔, 개양인 천마도 천마였지만 요광은 다른 의미로 힘든 상대였다.

운이 좋아 균열을 하나 만들 수 있었지, 만약 그게 아니었더라면 밤낮을 계속 싸웠을 것이다.

아쉬워도 죽일 수밖에 없었다.

“어디 보자……”

혹시 하는 마음으로 품을 뒤져 봤으나 나오는 건 없었다.

화첨창과 왼팔이 끊어진 흑철갑주로 만족했다.

“소령, 잘 넣어 둬라.”

“존명.”

요광, 파군에게서 벗긴 흑철갑주를 보따리에 넣었다.

성년의 체구인데도 크기가 두 배나 됐다.

“유령 부대는 상황을 보고해라.”

“생존자 육십이(六十二), 사망자 삼십팔(三十八).”

“중상자는?”

“십구(十九).”

사실상 마흔세 명이었다.

중상자의 경우는 사지 하나가 잘리거나, 혹은 내장 기관 등이 크게 다쳐 운신할 수 없는 경우였다.

“화인의원에서 내준 약을 복용해서 치료부터 우선시하고, 사상자의 시신을 회수한다.

소령을 제외하고 다치지 않은 이들은 중상자를 데리고 가까운 의원부터 찾아가 치료하도록 해라. 그 뒤 복귀시킨다.”

“의문. 기존 명령 사항과 반대됩니다.

중상자의 경우, 유령곡 방침상 암살 활동에 제한이 생겨 유령에서 제외됩니다.

이후 기밀 유지 및 불필요한 식량 감소를 방지하기 위해 사살……”

“유령곡주의 명이다. 이행해라”

“존명.”

‘……마음이 무겁구나.’

삼안선투만큼 악랄한 자는 또 없을 것이다.

유령곡은 중상자가 발생한 경우, 도구로서 가치가 없다고 판단해 마치 쓰레기처럼 버려 버린다.

보상은 물론이고 치료조차 하지 않고 없앤다.

지독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전부터 몇 번이나 소원을 들어주거나, 보상해 주려 해도 마음이 죽은 유령들은 반응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버려 두면 초대 유령곡주, 삼안신투가 남긴 기존의 명령을 따라 기계처럼 움직인다.

참고로 명령을 내리지 않으면 식사도, 수면도 취하지 않으며 시간이 멈춘 것처럼 대기한다.

유령곡만큼 괴이하고, 소름 끼치는 단체는 또 없을 것이다.

“지옥, 이라……”

요광성의 수장에게 한 말을 가만히 앉아 곱씹었다.

동시에 과거의 일이 여러 가지 떠올렸다.

“소령, 난 아마 죽으면 지옥에 갈 것 같구나.”

입가에 씁쓸한 웃음이 번졌다.

정파의 어둠, 흑영부에 관한 일이 떠올랐다.

아무리 무림을 위해서라고 한들, 잘못된 건 잘못됐다.

주서천 역시 그 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아무리 미래를 위해서라 하지만 현재를 희생시키고, 방관한 사실 자체는 없어지지 않는다.

그걸 어쩔 수 없었다면서 정당화할 생각은 없었다.

‘나 역시, 책임을 져야 한다.’

권동제, 정백에게 소리쳤던 것처럼.

언젠가는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너희의 목숨을 멋대로 쓰고 있으니……”

쓴웃음을 지으며 소령의 머리를 쓰다듬어 보았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서 있었다.

빛 한 점 들어오지 않았지만, 어딘가 모르게 투명하고 맑은 눈동자로 유령곡주를 비추고 있었다.

* * *

눈 내리는 나날, 어떠한 소식이 무림을 강타했다.

“속보요! 속보!”

“정사 연합과 암천회가 귀주에서 격돌!”

“뭐라고?”

현 무림은 정사와 암천으로 양분화됐다.

단연 무림의 관심도 이 둘로 집중되어 있었다.

오랫동안 대립해 온 정사가 힘을 합치는 경우 자체가 희귀한 경우였다.

고금에 남을 역사 그 자체였다.

하물며 전쟁 중이니, 소식 하나하나에 목말라 있었다.

일차 격돌의 결과를 들었을 때, 반응은 가지각색이었다.

“귀주군의 퇴각?”

“검신이 요광에게 밀려났다고?”

“무림맹과 사도천은 뭐하는 거냐!”

“에이잇, 최전선부터 무너지다니!”

무림 인들은 화를 참지 못하고 욕했다.

검신의 명성에도 약간이나마 흠집이 갔다.

고대하던 전쟁의 시작이었다.

초장부터 느낌이 좋지 않으니 다들 불길하다며 혀를 찼다.

하지만 그 말도 잠시였다.

시시각각 변하는 전쟁 속, 그다음 승전 소식에 두 팔을 벌려 환호했다.

“모사미봉에 의해서 작전상 후퇴, 그 뒤 기관괴협이 귀주에 설치한 기관으로 암천군 격퇴!”

“기관괴협? 그게 누구였더라?”

“그 있잖은가, 제갈세가의……”

“아아!”

시간이 흐르면서 사라졌던 기관괴협의 명성이었으나, 귀주에서의 승전으로 다시 주목받게 됐다.

수십 명도 아니고 무려 이천 명을 이렇다 할 인명 피해 없이 전멸시켰다.

보통 업적이 아니었다.

무명인이라면 상황이 좀 달랐을지는 모르나, 무림에서도 천재로 소문난 용봉남매의 남동생이었다.

또한 검신의 의동생으로도 알려져 있다 보니, 보증은 되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외에도 화제는 여러 가지였다.

호지관만으로 이천이나 되는 무인을 전멸시킨 것이 독보적이었으나, 다른 무림인들의 활약도 알려졌다.

“화산제일미, 낙소월에 대해서 들어 보았나?”

“검신이 아끼는 사매가 아닌가?

선녀처럼 미모가 대단하다는 건 익히 들었네. 그녀가 왜?”

“낙소월이 화경의 고수라고 하더군.”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화경이 무슨 옆집 개 이름인가?”

어린 시절만 보면, 낙소월이 주서천보다 유명했다.

화산오장로의 사손이고, 어릴 적부터 뛰어난 오성을 지니고 있다며 문파 내에서도 소문이 났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천하백대고수 중에서도 상위에 속하는 화경의 경지까지는 무리였다.

그러나 수백에 이르는 목격담이 이어지고, 소문이 사실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무림이 뒤집어졌다.

“그러고 보니, 해도 지났으니 오룡삼봉이 교체될 때가 됐지?”

“파검봉, 단리화가 서른이 됐으니 사실상 은퇴이니…… 화산제일미가 뒤를 이어받겠구먼.

별호는 매화검봉(梅花劍鳳)이 알맞겠구먼.”

“오룡 중에서도 배신자 당명인의 자리가 비어 있지 않은가? 마침 마땅한 자가 없었는데……”

오룡삼봉은 당대 후기지수 중 최고를 올려놓는다.

대부분 무공을 평가해서 올리지만, 아닌 경우도 있다.

제갈상과 제갈수란이 그 증거이니 문제없었다.

물론, 설사 전례가 없다 할지라도 이번 업적이 워낙 대단하다 보니 충분히 무시하고도 남는다.

“지룡(智龍)은 천군사의 또 다른 별호이니, 맞지 않고…… 뭐라 불러야 하지?”

“기룡(機龍) 외에 더 있겠나!”

“매화검봉 낙소월과 기룡 제갈승계라!”

“난세는 영웅을 부른다고 하더니만, 맞는 말이군!”

여러 소식이 연달아 무림을 강타했다.

당연히 소문의 장본인에게도 소식이 닿았다.

“기룡?”

제갈승계가 작업하다 말고 가슴을 폈다.

“예! 기룡! 오룡삼봉입니다요!”

소식을 전한 이의채가 굽실거렸다.

이득이 되지 않으면 눈길 하나 주지 않는 상왕이나, 상단의 지분을 소유한 사람에겐 굽실거렸다.

‘강호의 소식이야 아랫사람을 통해 전해도 되지만, 제갈 공자께서 듣고 기뻐할 만한 소식이거늘 아랫사람에게 맡기는 건 하책이다.

분명 기분 좋으셔서 지분을 한둘 양보해 주실지도 모르거늘! 크크큭!’

이의채가 속으로 악당처럼 웃어 댔다.

“기룡! 기룡!”

제갈승계가 뛸 듯이 기뻐했다.

가슴을 짝 펴고, 콧대를 세운 채로 어린아이처럼 웃어 댔다.

“내가 오룡삼봉이라니! 오룡삼봉!”

오룡삼봉이 무엇인가.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 출신 중에서도 소수에게만 허락된 최고의 명예이다.

한때, 세가의 골칫덩이이자 문제아로 취급됐던 자신이 설마하니 오룡삼봉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드디어, 기관이……’

무심코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그동안의 노력과 공부가 인정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귀주에 설치한 호지관의 발동도 무사히 성공해 기분이 좋았지만, 기룡이 됐다는 것이 큰 기쁨이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기룡 대협 제갈승계님 아니십니까!

히야, 역시 공자님이십니다. 내 공자님 재능은 어릴 적부터 알고 있었지요.

그 헛똑똑이 천기조차도 공자님의 계략, 아니 기관에는 어찌 못 합니다요!

캬아! 주모! 여기 아껴 둔 명주 좀 가져오시오!”

좌르륵!

이의채가 부채를 펼쳐 제갈승계 앞에서 흔들었다.

“핫핫핫!”

제갈승계가 눈물을 삼키며 허리를 펴고웃었다.

“우유 빛깔 제갈승계! 기룡 대협 제갈승계!”

이의채가 춤까지 출 기세로 제갈승계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아부했다.

“거참.”

“보는 사람이 다 부끄럽군.”

질풍십객, 초련을 필두로 금의검문의 무사 무리가 기룡과 상왕을 보고 피식 웃었다.

무림의 거인이라 칭해지는 두 사람이 아이처럼 좋아하는 모습은 보는 이가 다 부끄러울 정도였다.

하지만 실제로 다들 기뻐해 주며 축하해 줬다.

어릴 적부터 세가에서 외면을 받고, 핍박까지 받던 제갈승계가 아니던가.

외부의 압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끝없이 공부했고, 활약했음에도 기관괴협이라며 괴인 취급을 받아 빛을 보지 못했다.

가까이서 그가 얼마나 노력을 하는지, 그리고 능력 또한 얼마나 대단한지 알고 있었기에 안타까워했었다.

그리고 드디어 긴 노력과 고생 끝에 빛을 받고 무림에서 인정받았다.

“안아 주면 딱일 때인데, 안 그래도 괜찮겠어?”

초련이 고개를 옆으로 돌려 무선화에게 물었다.

“괜찮아요.”

무선화는 머리를 좌우로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렇게 웃고 계셔도, 사실은 울기 직전이라 참고 계시는 중일지도 모르는 걸요. 안아드리면 참지 못하고 터지실 수도 있으니까……”

무선화의 말에 주변인들이 감격했다.

‘선녀가 여기 있다.’

‘제갈 공자가 부럽구나.’

따스한 눈길로 무선화를 바라봐 주었다.

* * *

귀주, 옹안.

햇빛을 반사해 빛나는 머리, 세월의 흔적을 대변하는 자글자글한 주름, 희고 긴 눈썹은 초승달 같다.

붉은 법복이 아닌 황색 법복 차림인 것이 첫 만남과 조금 다르지만, 전에 본 라마승이 확실했다.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시주.”

종객파가 합장(合掌)하며 하얗게 웃었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주서천도 포권으로 인사에 답했다.

“이 노승이야 별 탈 없었습니다.

저보단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자(死者)셨던 시주께서야말로 별 탈 없으셨는지요.”

별 탈 많았다.

“그럭저럭 살 만합니다. 그것보다 이번엔 정말로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종객파에게 진심을 담아 인사했다.

만약 포달랍궁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이렇게까지 결과가 좋지는 못했을 것이다.

“홀홀홀, 시주께선 감사하실 필요없습니다.”

종객파가 눈웃음을 지으며 염불을 외웠다.

“사 년 전, 대설산에서 중원이 위험에 빠진다면 포달랍궁 내에서 불협화음이 나올지라도 시주를 위해서 한걸음에 달려 나가겠다고 라마 앞에 맹세하지 않았습니까.

시주께 진 빚을 갚으러 왔을 뿐입니다.”

‘설마하니 그때의 인연이 이렇게 돌아올 줄이야.’

확실히 사 년 전, 종객파의 목숨을 구해 주고 후에 중원이 위험하면 도움이나 돼 달라고 말하기는 했다.

하나 그땐 포달랍궁과 연관되고 싶지 않아, 종객파를 떼어 내려고 대충 말했던 것에 불과했다.

얼마 전에 그 일이 생각나 혹시하는 마음으로 도움을 요청했는데,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이 노승, 도대체 정체가 뭐지?’

포달랍궁의 무승, 천여 명이나 동원한 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그 수준도 하나같이 범상치 않았다.

이 정도 되는 전력을 동원할 수 있다는 건, 포달랍궁 내에서도 보통 지위의 인물이 아니라는 뜻이다.

전국에 포진된 유령곡이나 하오문이라 할지라도, 영향력은 어디까지나 중원에 한해서지 서장에까진 미치지 못한다.

알아보려고 해도 쉬이 알 수가 없었다.

노승을 향한 의구심을 풀기 위해서 전생의 기억까지 살펴보았지만, 떠오를 리 없었다.

솔직하게 ‘뭐하는 양반이오?’ 라고 물어볼까 하는 욕구가 치밀어 오를 때쯤 한 라마승이 말을 걸었다.

“저 역시 감사 인사를 전하는 바입니다, 검신이여.”

이십 대 중후반 정도의 젊은 승려였다.

“사 년 전, 스승님인 라마께서 통렌을 위해 대설산을 찾았다가 삼독에 빠진 갈거파(喝擧派)와 살가파(薩迪派)의 습격을 받았다는 걸 들었을 때는 간담이 서늘했습니다.

검신께선 소승, 근돈주파(根敦珠巴)의 은인이시기도 합니다.

라마의 목숨을 구해 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중원의 호흡법, 단전 호흡은 좋은 기운을 빨아들이고 나쁜 기운을 내뱉는다.

포달랍궁은 그와 반대이다.

나쁜 기운, 타인의 고통을 빨아들이고 좋은 기운, 기쁨을 내보낸다.

‘남을 건강하게 하는 것이 곧 내게 하는 것이리라’ 라고 전해지는 자비명상법, 그것이 바로 포달랍궁의 통렌이다.

‘갈거파와 살가파……’

과거에 종객파에게 주입 당한 지식이 떠올랐다.

‘라마교의 삼대종파 중 두 곳.

그때 그 라마승들이 소속된 종파……어라?’

주서천은 종객파의 복장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이 노승은 홍교(紅敎)라 불리던 영마파(寧璃派)가 아니었던가?’

붉은 법복 차림에 같은 색깔의 모자.

그 탓에 홍교라 불린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의 복장은 황색이었다.

주서천이 묻기도 전에 근돈주파가 답해 줬다.

“또한, 사 년 전의 악행이 교 내부에 대대적으로 알려지게 되면서 전부터 교에 회의감을 지닌 분들을 결집시킬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구(舊) 파를 개혁하고 저희 황교(黃敎), 격노파(格魯派)가 무사히 사대종파로서 자리 잡을 수 있었습니다.”

“황교? 스님께선 홍교시지 않았습니까?”

주서천이 종객파에게 물었다.

“호오, 시주께서 라마교에 대해서 물으시니 대답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종객파의 눈이 번쩍이자, 주서천은 아뿔싸! 하고 후회 했다.

“실언했습니다. 가르쳐 주시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소승은 일찍이 열여섯 때, 서장의 중심을 찾아 현교(顯敎)에 관해 연구했고, 다시 밀교(密敎)의 오의(奧義)를 구명하기 위하여 산에 들어가 수행에 전념하였지요.

아, 현교란 서가모니불께서 설법하신 대승경전(大乘經典), 소승경전(小乘經典)을 통틀어 말하는 것입니다. 밀교란……”

“남의 말을 듣지 않는 건 여전하시군요, 스님.”

“그 후 서장의 사찰을 순회하며 영마파에서 잠시나마 불학을 공부하기도 했으니, 홍교였다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사실 그때에는 피치 못 할 사정이 있었지요.

소승은 갈거파와 살가파의 미움을 받았는지라, 격노파 황모 차림으로는 운신이 자유롭지 않아서 신분을 숨기기 위해 부득이하게도 붉은 법복을 입었지요.”

“저기, 제자 분. 혹시 스승 되시는 분께서 평소에 남의 말을 무시하는 걸 알고 계십니까?”

주서천이 고개를 돌려 근돈주파를 바라봤다.

“저 역시 당시 불안하여 호위로 무승들을 보냈으나,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에 따돌렸다고 하더군요. 소승의 부족함에 통탄할 따름입니다.”

근돈주파가 주서천과 눈이 마주치자 쓴웃음을 지었다.

“마음 같아선 보내 드리고 싶지 않았으나, 해답을 찾기 위해 대설산을 찾아야 한다고 말씀하셔서 그만……”

“미치겠군.”

그 스승에 그 제자였다.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검신이 도와주시지 않았더라면, 격노파는 개조(開祖)를 허망하게 잃었을 것입니다.”

“개조?”

주서천이 놀란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근돈주파도 주서천의 반응에 뜻밖이라는 듯 말했다.

“혹시나 했지만, 라마 스승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시는 모양이군요.”

참고로 라마란, 부처의 가르침을 올바르게 전해 주며 자신을 깨달음으로 이끌어 주는 사람을 말하기도한다.

승려 중에서 전생을 기억할 정도의 뛰어난 수행력을 가진 대덕고승(大德高僧)에 대한 존칭 중 하나이기도 해서 종객파는 라마라 칭해지기도 한다.

“일부러 숨긴 것은 아니란다.

도움을 받은 뒤에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지만, 시주께서 뒷간이 급해 놔주지 않는다면 지려 버린다고 해서 그만 놓아 드렸지 뭐냐.”

“흠…… ”

근돈주파가 잠시 침묵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위대한 스승, 종객파께선 교의가 잘못된 방향으로 썩어 문드러지고 중이 방탕함에 빠지자 개탄하여, 황모를 쓰고 엄격한 규율을 부르짖으며 현교와 밀교를 융합한 신교의 종교 개혁 운동을 일으킨 분이십니다.

그 중심에서 개파된 것이 바로 황모파라 불리는 격노파이지요.”

“허어!”

주서천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

‘범상치 않은 노승이라 생각은 했지만……’

근돈주파가 말한 대로라면 삼대종파, 아니 사대종파의 개조가 되는 위인 중의 위인이었다.

천여 명이나 되는 라마승을 동원할 수 있었던 것도 이해가 갔지만, 한편으론 어이가 없었다.

‘삼대종파, 아니 사대종파의 개조나 되는 사람이 호위도 없이 혼자서 대설산을 올라?’

심지어 호위라고 붙여 준 이들을 따돌리기까지 했다.

최초에 봤을 적에 미친 중이라 생각했는데, 그 생각이 맞았다.

동시에 새로운 약에 넘어가 남만까지 간 신의의 얼굴이 생각나서 헛웃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시주께선 라마뿐만 아니라 격노파, 나아가 교의 미래를 구하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근돈주파가 합장하여 인사했다.

“또한, 마음 같아선 중원에 남아 시주에게 도움을 드리고 싶으나 그러지 못하는 것을 사죄드리는 바입니다.”

종객파의 목소리에서 미안한 기색이 느껴졌다.

“애석하게도 서장과 중원의 관계가 그다지 좋지 않은지라, 명의 눈치가 보여 오래 머물지 못합니다.”

“괜찮습니다. 이해합니다.”

암천회가 서장 무림에 마수를 뻗지 못한 건, 이러한 복잡한 외교적 관계 탓이었다.

사실, 주서천의 도움 요청에 내부에서도 너무 위험하다면서 반대가 여럿 있었다.

그러나 종객파가 목숨을 빚졌으며, 라마 앞에 맹세했다 하면서 강행하니 어쩔 수 없었다.

만약 장소가 서장과 비교적 가까운 귀주가 아니었더라면 애초에 오지도 못했을 것이리라.

그만큼 중원에 있는 것이 껄끄러운상황이었다.

“와 주신 것만으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것만큼은 진심이었다.

천 명의 라마승, 포달랍궁이 도와 피해를 최소화하고, 최초의 격전에서 거의 완승을 거둘 수 있었다.

“수많은 고승들이 찾는 대설산. 부처께서 이어 준 연이거늘 중 된 몸으로서 어찌 쉬이 여길 수 있겠습니까.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지요.

더 이상 돕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스님, 혹시 제가 도사라는 거 알고 계십니까?

혹시 도(道)에 대해서 들어 보시지 않으련지요.”

“나무아미타불……”

“어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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