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九章 (202/254)

그의 옆으로 묘령의 여인이 나타났다.

눈 부분을 가렸지만 드러난 몸매만 봐도 절색이었다.

타 유령과 다른 점이 있다면 피부 위에 드러난 고문자였는데, 검은빛으로 은은하게 빛났다.

자문주술로 신체 능력의 성장을 이룬 소령이었다.

“명령 하달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될경우, 자유 판단하에 지휘해라.

단, 사지를 잃을 가능성이나 목숨이 위험할 경우는 배제해라.”

“존명.”

소령을 비롯한 아흔아홉 명이 늘어뜨린 손을 서서히 올리며, 흘러내리듯 미끄러지는 비수를 쥐었다.

“살(殺).”

탓!

시작은 주서천이었다.

대공동의 중간쯤 되는 벽면의 틈을 박차, 지면을 달리듯 몸을 날렸다.

‘호흡.’

숨을 멈추고, 맥박을 낮춘다.

유령신공의 운기법이 체내의 능력을 변화시키고, 숨긴다.

몸 역시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중도만공의 무거움과는 정반대의 힘이었다.

타다닷!

주서천은 벽면을 미끄러지듯 달려 아직도 돌아가는 풍차의 날개에 착지했다가 다시 뛰었다.

휘리릭!

소맷자락이 바람에 펄럭였다.

매화로 된 자수가 언뜻 보였다가, 그 속에서 비수가 튀어나왔다.

도신이 야명주의 빛에 반사되어 번쩍인다.

암살자로서의 공격이라면 최악인 방법이었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흘러나온 섬광은 하나가 아니었다.

파바바바밧!

아흔아홉 개의 궤적이 그 뒤를 따랐다.

요광을 구심점으로 삼은 유령들은 곳곳에서 비수를 쏘아 냈다.

번개와 같은 속도였다.

한 사람을 향해서 비처럼 내리는 비수 세례는 보기만 해도 장관이었다.

“잔재주를!”

요광이 어림없다는 듯 화첨창을 회전시켰다.

사방팔방으로 날아오는 것들을 쳐내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발을 팔자로 벌리고, 움직임에 따라 보법을 밟았다.

갑옷 속 상체 근육이 부풀어 올랐다.

째앵!

근육이 옆으로 꼬였다가 풀린다.

창을 앞으로 회전시켰다가, 손목과 팔을 타고 옆과 등으로 돌려 막았다.

창끝에서 화염이 넘실거려 예술의 경지로 느껴질 정도였다.

채채채챙!

창이 희망이었으나 절망으로 번진 풍차처럼 회전하면서, 바람을 뿜어내 빗발친 비수를 쳐 냈다.

정신없는 와중에서도 발걸음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멀리 쳐내는 걸보면 연륜을 느낄 수 있었다.

쐐액!

그러나 숨을 돌릴 틈도 없었다.

비수를 다 막아내자마자 측면에서부터 매서운 찌르기가 노려 왔다.

창을 급히 돌리려 했지만, 방금 전 방어 자세로 인해 연결이 부드럽지 못해 곧장 반응하지 못했다.

콰앙!

“……!”

주서천의 검이 요광의 옆구리를 찔렀다.

아니, 후려쳤다는 표현이 알맞았다.

“중검(重劍)…… 이라고?”

전신은 짓누르는 이 압박감은 무게가 틀림없었다.

중요한 건, 화산파의 무공 중에서 중검의 성질을 지닌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내 인생의 무게다.”

주서천이 차가운 목소리를 내뱉으며 답했다.

“도대체…… 뭐냐.”

투구의 안광에서 의아함이 묻어났다.

“도대체…… 넌, 뭐냐?”

방금 전 움직임은 화산파의 것이 아니었다.

신체 능력이야 경지가 오르면 높아지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원초적인 방식까지 바뀌진 않는다.

발걸음이나 움직임은 검수가 아닌 자객에 가깝더니만, 절정의 암기술까지 펼쳤다.

심지어는 화경의 최상승을 위협할 정도의 중검의 묘리까지 사용했으니, 상식 선에서 이해할 수 없었다.

“화산파.”

주서천이 검으로 밀어붙이며 답했다.

“주서천.”

쿠웅!

무게 중심을 앞으로 옮겼다.

대퇴근이 울긋불긋해지고, 퍼런 핏줄이 툭 튀어나왔다.

옆구리에 닿은 검극은 외부로 강기를 형성시키는 대신, 내부에서부터 압축된 채 무게만을 늘렸다.

“하아아아압!”

유령신공이 아닌 만중검의 동공으로 호흡을 변경했다.

검을 내지르는 순간에 맞춰 기합을 터뜨렸다.

옆구리에 검극이 닿아 있던 요광의 몸이 뒤로 쭉 밀려났다.

파스스스슷!

요광이 물러나면서 모래사장에 파묻히는 것처럼 가라앉았다.

발목이 지면 아래까지 들어갔다.

“어림없……”

요광이 창을 들어 힘껏 내지르려던 순간이었다.

카앙!

주서천 탓에 적이 더 있다는 걸 잠시 잊고 있었다.

유령들이 실체가 옅은 걸 이용해 접근해 공격했다.

지긋지긋한 흑철갑주 탓에 타격을 입히진 못 했지만, 자세가 흔들리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아무리 요광 정도 되는 고수라 할지라도, 절정에 이르는 자객이 한 점만 노려 공격하면 완벽하게 버틸 수 없다.

심지어 눈앞에는 현경의 고수까지 서 있었다.

만약 요광이 태생적으로 무림인이었다면 주서천과 유령의 합공에 욕을 한 바가지로 퍼부었을 것이다.

상천육좌가 누구인가.

무림의 정점이다.

특히나 정파인으로서 수많은 이들에게 존경을 받는 영웅이란 작자가 자객처럼 싸우며 합공까지 했다.

그것도 백 대 일로!

“쿠오오오오오오!”

요광의 입에서 괴성이 터져 나왔다.

화르륵!

그의 분노를 대변하듯, 화첨창에서 화염의 용이 승천하듯 뿜어져 나오면서 반경 일 척을 뒤덮었다.

“주서천!”

증오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진각을 밟았다.

체중을 실으며 발을 굴리자, 땅이 반구 형태로 파였다.

주변에서 접근해 오던 유령들이 튕겨졌다.

요광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누가 붙든 간에 상관하지 않고 늘어난 화첨창을 전력으로 휘둘렀다.

콰아아앙!

“쯧!”

주서천이 혀를 차면서 검을 곧게 세워 창격을 막아 냈다.

절대고수의 유령곡주는 성공적으로 방어했으나, 방어에 취약한 다른 유령은 아니었다.

자문주술로 된 소령 정도가 아니라면 극한의 회피 기동도, 방어도 해낼 수 없었다.

결국 근처의 열댓 명이 창에 맞고 나가떨어졌다.

벽면에 처박히거나, 혹은 바닥을 처참하게 굴렀음에도 신음 하나 내지 않는 것이 대단했다.

“유령곡! 유령곡이구나!”

암천회조차 소재를 찾지 못한 신비의 암살 집단.

천기가 이들을 포섭하려 갖은 노력을 했지만, 찾기는커녕 의뢰조차 하기 힘들어졌다.

전 무림을 뒤져 봐도 이 정도로 특출난 실력에 분위기를 지닌 이들은 한 군데밖에 없다.

전설상의 자객방이 어찌하여 주서천과 손을 잡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육합신창, 일합!’

적색과 금색의 조화를 이룬 창이 최대의 적을 집어삼키기 위해 창신의 무공을 재현했다.

육합신창의 일합은 그야말로 일창(一槍)이다.

창두를 찔러 넣는 것에 집중해 혼신의 창격을 날렸다.

쐐애액!

대기에 구멍이 뚫렸다.

날카로운 소리가 귀를 스치고 지나갔다.

혼신의 찌르기가 흉부를 노렸다.

몸이 절로 떨릴 정도의 위압감이었으나, 주서천은 개의치 않고 자하검결 제일식으로 받아쳤다.

우르르릉!

지하임에도 우렛소리가 터졌다.

자색 섬광이 소용돌이치듯 회전하면서 화첨창과 충돌했다.

콰앙!

고농도로 압축된 내기의 덩어리가 서로 부딪치면서 폭발을 일으켰다.

그 충격파가 대공동을 메웠다.

우르르르.

벽 면에 빼곡하게 자리 잡은 횃불이 떨어졌다.

불똥이 아래에 튀긴 순간, 그 옆으로 유령이 처박혔다.

무의 극의를 달성한 권능이 부딪치면서 만들어낸 충격의 여파만 해도 어마어마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가 몇 번이나 터지고, 그에 따른 진동의 파도가 주변을 슥 훑고 지나갔다.

자기 할 일을 하듯 회전하던 풍차의 날개도 하나 박살이 났다.

신경써서 설계한 기관 장치가 부서졌다.

‘육합신창, 이합(二合)!’

요광의 공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화첨창을 쥔 팔에 힘줄이 돋아나면서 폭발적인 근력을 쏟아 냈다.

단전에서부터 막대한 내력이 나왔다.

두 번째 초식은 그다지 복잡하진 않지만 터무니없다.

상대에 접촉한 채, 몸을 고정하고 일합과 동일한 창격을 불어 넣는 절정의 내가중수법이었다.

‘내력의 대결이라면 지지 않는다!’

주서천이 물러서지 않고 눈을 부릅떴다.

매화생공으로 시작해 각종 영약의 기운을 끌어 올렸다.

갑절이라는 의미가 무색할 정도의 양이었다.

‘무슨!’

대해와 같은 공력에 요광의 용미가 꿈틀거렸다.

주서천의 내공이 보통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맞대니 터무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지 않다.’

만년한철의 흑철갑주라면 내공의 대결은 무조건 우위겠지만, 무기와의 접촉은 이런 문제가 생겼다.

일대일이었더라면 전혀 개의치 않았겠지만, 다수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이 문제였다.

생각을 바꿔서 초식을 변경하려던 찰나였다.

카가가각!

“이이익!”

투구 속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끼익.

적은 주서천만이 아니었다.

공력의 대결로 충격파가 발생하고 있는데도 공격해 오는 유령이 있었다.

끼익.

남만의 주술로 신체 능력은 화경을 넘보는 소령이었다.

그녀가 쥔 소검이 등을 부욱 그었다.

끼익.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최초의 백은 아니었으나, 육십으로 줄어든 비수가 요광의 몸에 쏟아졌다.

쩌억!

“주서처어어어언!”

그리고 흑철갑주 위로 미세한 균열이 생겼다.

“쇄령(鎖靈)!”

유령곡주의 명령이 하달된다.

좌르르륵!

육십여 명 중 열 명이 무언가를 던졌다.

평소의 무기인 비수가 아닌, 간야자가 제조한 쇠사슬이었다.

한철을 다루기 위해서 시험 삼아 만든 것이라 하는데, 결코 시제품 수준이 아니었다.

한일 자를 그려낸 궤적이 중간 부분에서 구부려지며 곡선을 그렸다.

열에 이르는 쇠사슬이 춤을 추듯, 공중에서 출렁였다가 요광의 몸 이곳저곳을 두르며 포박했다.

그사이, 손목을 빙글 돌려 창과 맞닿은 검을 비스듬히 세웠다.

창신이 미끄러지기 전 검을 아래에서 위로 상단으로 휘둘러 창을 힘껏 쳐냈다.

‘균열이다.’

반쯤 도박이었는데 쾌거를 이루었다.

비록 그 크기는 보잘것없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여태껏 해 온 공격들이 효과가 있다는 뜻이었다.

‘아무리 전설상의 금속이라고 한들, 한계는 있다.’

무형의 강기조차 통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사기적이었지만, 역시 완전한 건 존재하지 않았다.

힘을 분산시킨다고 할지라도, 다 빠져나가기 전에 전신에서 다량의 공력이 오면 버티지 못했다.

즉, 받아들일 수 있는 공력 양의 한계 탓이었다.

사실, 흑철갑주의 한계량도 그리 적은 건 또 아니었다.

일 갑자 공력따윈 능히 받아 낼 수 있었다.

하나 아무리 전신이 만년한철로 된 흑철갑주라 할지라도 상대가 너무 터무니없었다.

현경이라는 절대고수 중에서도 내공 면으론 독보적인 데다가, 아흔아홉 명의 공력까지 받아 냈다.

‘좌완(左腕), 아래쪽!’

갑옷의 경우, 두께는 동일하지 않다.

예를 들어 관절 부위의 경우, 잘 굽히지 않거나 혹은 도중에 서로 부딪쳐서 움직임 자체가 제한된다.

아무리 몸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한들, 움직이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기에 좀 더 얇게 제작된다.

즉, 다른 부분에 비해선 다소 약한 편이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상식적인 수준에 한해서다.

재질이 만년한철일 경우, 보통 적용되지 않는다.

지금처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말이다.

‘세상에 완전한 것 따위 없다!’

슈웃!

창을 위로 쳐 낸 검이 허공에서 멈췄다.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기 시작한다.

힘의 반작용이 사라졌다.

공기의 저항도 깔끔하게 없어졌다.

마치 원래부터 아래로 휘두른 듯, 혹은 시간이 거꾸로 흘러가는 것처럼 돌아가 아래로 이동했다.

팟!

검의 변동은 끝나지 않았다.

사선을 그은 팔이 수평으로 떨어지고 멈췄다.

검도 평형을 이루었다.

그와 동시, 섬광이 번쩍이면서 검극이 대기에 구멍을 내고 최초로 나타난 균열에 부딪쳤다.

채앵!

금속음이 길게 늘어졌다.

손끝에 잡혀 오는 감각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

투구 안 속, 요광의 표정도 변했다.

처음으로 위기감이 묻어났다.

무공의 극의를 이룬 고수답게 신체의 변화나 충격의 전달을 알아채는 속도는 그야말로 귀신과 같았다.

‘흑철갑주가!’

맹신이 무너진 순간, 요광이 재빨리 반응했다.

“쿠오오오오오옷!”

하단전 깊숙한 곳에서부터 내력을 끌어 올렸다.

투구의 안광이 검붉게 빛났다.

붉은 광채에 공명하듯, 화첨창의 끝자락에서 불꽃이 뱀처럼 넘실거렸다.

카가가강!

상체에 힘을 주자 쇠사슬이 강하게 압박해 왔다.

마치 먹잇감을 놓치지 않겠다는 뱀처럼, 갈비를 부술 기세로 조여 왔으나 요광에겐 어림도 없었다.

열의 유령이 온 힘을 다해 막으려했으나, 요광은 그야말로 괴력을 뿜어내면서 쇠사슬을 끊어 버렸다.

채채챙!

서로 이어진 고리가 끊어졌다.

몇군데는 열기에 익어 반쯤 녹아버리기까지 했다.

‘육합신창, 삼합(三合)!’

왼손으로 창대의 하단을 잡았다.

오른손은 넓은 거리를 두고 상단에 고정시켰다.

빠드드득.

아랫배에 힘을 주자 잘 단련된 복근이 명확하게 갈라졌다.

승모근을 시작으로 팔 근육 전체가 부풀었다.

‘횡소천군(橫掃千軍)!’

단, 한 번단 한 번 창을 횡으로 휘두른다.

필사의 의지를 담아내며, 기맥과 근육이 찢어질 정도로 무리한 근력을 냈다.

아니, 폭발시켰다.

창의 움직임에 의해 바람이 불었다.

돌풍이 아닌 폭풍이었다.

공기가 짓눌리고, 쓸려 나갔다.

창신에 맺힌 불꽃이 불이라는 형체를 유지하지 못하고 압축됐고, 대신 붉은 빛깔의 강기로 변했다.

그리고 굉음이 고막을 후려친다.

콰아아아앙!

“……!”

요광의 신체를 묶어 두었던 유령 무리가 버티지 못했다.

손에 쥐고 있던 무기를 놓친 건 물론이고, 제 몸도 가누지 못했다.

그저 창대에 후려 맞고 나가떨어졌다.

우드득!

그야말로 경악.

심살의 훈련을 겪지 않았더라면 경악하고도 남았을것이다.

창대에 맞은 순간, 조금도 버티지 못했다.

유령 무리는 어떠한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재해에 휩쓸린 잡초처럼 날아가 지면이나 벽에 처박혔다.

“커허억!”

복면 위가 붉게 물들었다.

눈의 초점이 꺼졌다.

즉사였다.

‘무섭구나, 육합신창!’

주서천도 이번만큼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과연 창신의 신공이었다.

‘피하지 않고 막았더라면, 호신강기를 펼쳤을지라도 무사하진 못했을 것이다.’

몸을 개구리처럼 납작 엎드려 가까스로 피해 냈다.

그 외의 유령 무리는 애초에 거리를 둔 채라 운 좋게 살아남을 수 있었다.

“추어 같으니라고……!”

요광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삼합, 횡소천군은 대군을 대상으로한 초식이다.

범위가 넓고 위력이 큰 만큼 동작이 크고 단조로운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포박됐을 때, 주서천이 방심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펼쳤는데 실패해 버렸다.

“너야말로 지긋지긋하다!”

흑철갑주, 화첨창, 육합신창.

하나같이 터무니없는 것들밖에 없었다.

최상승의 화경의 고수가 천하에 둘도 없는 법보에 신공까지 주어지면 얼마나 강해지는지 알 수 있었다.

화경과 현경 사이의 벽이 낮은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위협할 정도일 줄은 몰랐다.

“크하아압!”

두 남자의 목소리가 정확히 겹쳤다.

동시에, 공중에서 검과 창이 부딪쳤다.

콰앙!

금속끼리의 마찰음이 아니었다.

공성 무기를 서로 부딪친 것처럼 굉음이 터져 나왔다.

주서천도 요광도 멈추지 않았다.

공격이 막히면, 그다음 행동으로 나선다.

그 속도는 번개와 같았다.

채채채채채챙!

자색과 적색 섬광이 번쩍일 때마다 충격파가 뿜어져 나온다.

발밑의 흙먼지도 안개처럼 흩어졌다.

오십밖에 남지 않은 유령 무리가 거리를 둔 채, 팔을 교차해 버텨 냈다.

“왜냐!”

요광이 물었다.

“도대체 왜……!”

평생을 전쟁이라는 지옥 속에서 살았다.

그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여태껏 인내해 왔다.

암천회주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자유를 염원했다.

쉬운 일은 아니다.

또 다른 지옥을 선택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국가 간의, 이 나라의 지옥보단 무림이라는 꿈과 같은 세상이 나아 보였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방해하냐는 말이냐!”

요광은 울분을 토해 내며 소리쳤다.

“나는, 나는 그저 이 지옥에서……!”

작렬하는 검격.

그 안에서 과거가 스쳐 지나갔다.

징집을 받아 전쟁에 처음 나갔을 때, 시체 사이에 숨어 물이란 물은 다 흘리며 어찌 살아남았다.

그 뒤, 십인대에 편성됐다.

십인대장은 아들 생각이 난다며 창을 휘두르는 법을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이튿날 자신을 제외하고 십인대가 전멸했다.

그 뒤로도 비슷했다.

전쟁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인연을 맺었다.

하지만 이 나라의 전쟁은 모든 걸 앗아 갔다.

술잔을 기울인 벗도, 등을 맞댄 전우도, 하룻밤에 빠져 버린 연인도 전쟁이라는 불에 휘말려 사라졌다.

전우의 시신을 모포 삼아 덮고, 물 대신 피로 몸을 닦았다.

비명을 자장가 삼아 잠을 청했다.

눈을 뜨면, 손을 잡고 의지하던 전우가 얼어붙은 표정으로 마주 보고 있었다.

어제도 사람이 죽었다.

오늘도 사람이 죽는다.

내일도 사람이 죽을 것이다.

‘사합(四合)!’

요광이 창을 살짝 느슨하게 잡았다.

힘이 풀려서가 아니다.

육합신창의 연결을 위해서였다.

손가락 사이로 창이 흘러내리는 듯 싶었으나, 신기하게도 공중에서 회전하는 묘기를 보였다.

어떠한 받침대도 없어 보이나, 실상은 다르다.

창으로 이어지던 내력이 외부에 잔류해 기류를 형성했다.

허공섭물처럼 보이지 않는 힘으로 움직이게 한 것이 아니라, 손바닥 사이에 바람을 만들어 돌렸다.

‘공회창(空回槍)!’

콰과과과!

요광의 신병이기가 창신의 무공과 합을 맞췄다.

신속으로 회전하는 창은 마공 못지 않은 파괴적인 위력을 내뿜었다.

혹시라도 창에 닿아 마찰력을 만들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적을 향해 앞으로 쭉 밀어냈다.

주서천은 대기를 넘어서 공간을 찢어발기며 날아오는 창을 똑바로 맞이했다.

‘동귀어진?’

찰나의 순간, 다시 시간이 느려졌다.

요광의 눈동자가 상하좌우로 움직였다.

주서천의 발의 방향을 보고, 검이 어디로 날아온 것인지 추측하고, 미래를 그려 봤다.

올곧은 직선.

그러나 이미 늦었다.

창이 먼저다.

‘허초로 날 겁먹게 만들어서 피하게 할 생각인 것 같지만, 소용없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고민 역시 전무했다.

‘왼쪽 어깨를 날릴지언정, 네놈을 죽이겠다!’

팔 하나로 주서천을 죽인다면 그건 이득이다.

요광은 주서천과 맞붙으면서 전율을 느꼈다.

‘사람이 아니다.’

무슨 말을 붙여도 부족했다.

‘괴물, 사람이란 개념을 뛰어넘었다.’

암천회주가 절로 떠올랐다.

‘끝이……’

쐐액!

창이, 지나갔다.

‘무슨……?’

소리가 났다.

날카로운 파공성이었다.

문제는 저항감이 없었다.

미간에 꽂히지 못했다.

퓨붓.

피가 튀었다.

주서천의 뺨에 가느다란 혈선을 그려 놓고, 머리카락을 슬쩍 매만지는 걸로 끝났다.

‘빗나…… 갔다고?’

주서천은 피하지 않았다.

움직인 건 자신이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믿을 수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이, 전장에서 목숨이 걸린 순간에 실수할 리 없었다.

설령 세상의 악운이 모인다 할지라도 불가능했다.

붉은 안광 속, 꺼져 가는 빛 속에 초점이 축소됐다.

“네가 지금 혼자인 것을 잊지 마라.”

경악과 불신이 사라지고, 그 대신 또 다른 의문이 솟아났다.

팔에 무게가 느껴졌다.

눈동자를 옆으로 돌리니 벌레처럼 귀찮게 굴던 여아가 팔을 꽈악 잡고 있었다.

‘유령? 아니, 불가능하다.’

아무리 육합신창을 펼치는 와중이라곤 하지만, 외부에서 잡아 온다고 해도 멈추는 게 아니었다.

괜히 천하제일창의 무공이 아니었다.

초식이 여섯 개밖에 되지 않아 단조롭지만, 막강한 게 특징이다.

설사 화경의 고수가 잡는다고 해도 방향을 틀 수는 없다.

상천육좌처럼 절대고수라면 모르겠지만, 그럴 리는 없다.

어찌 된 영문인지 의아해하며 머리를 굴렸다.

찰나의 순간, 의문과 의문이 꼬리를 물고 금세 답을 내놓았다.

‘호흡이……?’

숨이 이상했다.

호흡이란 무공의 시작이자 끝이다.

중간에 호흡이 잘못되면 운기도, 신체의 움직임도 변하기 마련이다.

그 숨이 잘못됐다.

혹시 폐나 기도에 무슨 문제라도 있나 싶었지만, 그럴 리 없었다.

“불 탓에 숨이 차지 않나, 요광?”

주서천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이 대공동은 지하에 위치해 있다.

당연히 공기도 희박할 수밖에 없다.

“네…… 이놈……”

비록 주변이 넓다곤 하지만, 창을 휘두를 때마다 불을 쉴 새 없이 쏘아 내면 당연히 변화가 생긴다.

“네…… 이노오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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