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六章 (199/254)

옹안은 오랫동안 정사의 점령지였던 만큼, 막사나 망루 등 군사 설비가 나름 잘 되어 있다.

후퇴한 귀주군은 옹안에 도착해 신속히 재정비에 들어갔다.

“사망자 팔백여 명, 부상자는 오백여 명입니다.”

“중상자와 경상자는?”

“중상자 이백, 경상자 삼백입니다.”

“사망자와 중상자를 제외하면 삼천오백으로 줄어든 건가.”

신도균이 한숨을 내쉬며 등받이에 기댔다.

“암천군은?”

“정찰 무사의 말에 의하면 암천군의 피해는 사망자 오백으로 추정된다고 하오.”

맹초혁이 대신 보고했다.

“흠.”

귀주군 수뇌부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수적으로 우세했음에도 피해가 심했다.

그야 무력 수준의 차이가 나니 이상한 건 아니었다.

그래도 생각만큼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일단은 부상자의 치료와 보급부터 우선시하도록 하십시오.”

귀주군은 옹안에서 대대적인 재정비에 들어갔다.

금의상단의 귀주 지부장, 고훈이 보급을 맡았고, 부상자는 화인의원의 명의들에게 맡겨졌다.

“후퇴가 순탄하게 이루어져 별 피해는 없었지만, 볼일 보고 안 닦은 것처럼 찝찝하군그래.”

“그래. 너무 쉬웠네.”

맹초혁이 조명의 의견에 맞장구쳤다.

“그 의문은 저희가 답하도록 하지요.”

지휘 막사가 열리며 일련의 무리가 들어왔다.

“허억!”

“헛!”

지휘부의 무인들이 순간 숨을 삼켰다.

무리 중 여인들의 미색이 무심코 넋을 잃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사형!”

“낙 사매!”

낙소월이 주서천을 보고 반가운 듯 눈웃음을 지었다.

주서천 역시 낙소월을 보고 반갑게 맞이했다.

“어머나. 절 앞에 두셨으면서 다른 분에게 먼저 인사를 하다니, 검신께선 매정하시네요.”

단리화가 말은 그래도 짓궂게 웃으며 농을 던졌다.

“전에도 분위기가 범상치 않더니만, 혹시 사형제 이상의 관계가 아닌지 의심되는 걸요.”

낙소월은 단리화의 말에 입을 다물고 뺨을 붉혔다.

“단 언니께서 뇌내 망상을 하시는 건 알고 있었으나, 부디 장소와 상황을 보면서 해 주셨으면 하네요.”

낙소월의 옆 당혜가 불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말에 단리화의 눈이 초승달처럼 휘었다.

“질투?”

“짜증 나.”

당혜가 오만상을 찌푸렸다.

“파, 파검봉에 독봉……”

“허어!”

여기저기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무림의 유명인이 속속히 도착했다.

“모, 모사미봉께서 오셨구려.”

신도균이 제갈수란을 보고 깜짝 놀랐다.

중앙의 자리를 꿈꾸는 입장에선 추후 무림맹의 한 축이 될 모사는 잘보여야 할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그 외에도 무림에서 내로라하는 무인들이 모여, 지휘 막사는 일순간 소란스러워지려 했다.

짝!

제갈수란이 손뼉을 쳐 이목을 집중시켰다.

“죄송하지만 본론으로 들어가도 괜찮을까요?”

지휘부는 그제야 상황 파악을 하고 자리에 앉았다.

“만나서 반가워요.

무림맹 본부에서 파견된 별동대의 부대주인 모사미봉, 제갈수란이라고 해요.”

제갈수란이 손을 공손히 모아 인사했다.

참고로 별동대주는 단리화였다.

주서천도 별동대원이었으나, 단독행동이 워낙 많다 보니 대표엔 그리 걸맞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전투경험이 많은 데다가 화경의 고수인 단리화가 별동대주로 뽑힌 것이다.

“반나절 전 일어난 일차 격돌에 대해선 사정을 들어 알고 있어요.”

“그러고 보니, 아까 전의 의문에 대해서 대답해 준다고 하지 않았소?”

조명이 궁금한 듯 물었다.

그러자 제갈수란이 머리를 흔들며 대답했다.

“네. 그들이 노리는 건 보다 확실한 승리에요.

곧 있으면 지원 병력도 도착할 테니 굳이 무리해서 불필요한 싸움을 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 거죠.”

“지원 병력이라니?”

“며칠 전, 저희는 동정호 부근에서 귀주로 오던 도중 수림구채에게 습격을 받았어요.”

“……”

여기저기서 놀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설마, 적림십팔채가 암천회와 손을 잡았다는 겁니까?”

신도균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적림십팔채가 바보도 아니고, 현 정세에서 고수가 득실거리는 별동대를 실수로 공격할 리는 없었다.

알고도 공격했다는 건, 정사 연합을 적으로 둔다는 의미다.

“네.”

동정호에서 빠져나오자마자 정사연합 각 지부에 특급으로 전서구를 보냈다.

흑도의 무리인 적림십팔채는 도적떼에 불과하나, 그들의 숫자가 적지 않아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안 그래도 배신자로 인해 골머리를 썩이고 있는 와중에 중립인 적림십팔채의 전향은 큰 문제였다.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

주서천의 얼굴도 어두워졌다.

몸소 나서서 박살을 냈는데, 시간이 흘러서 끝내 암천회와 손을 잡는 역사가 되풀이됐다.

‘여력이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토벌을 했을 텐데, 그럴 여유가 없었으니……’

적림총채주의 선출이 예상보다 빨랐다.

일부러 보물을 남기는 등, 내란이 일어나도록 유도하는 데 성공했으나 생각만큼 길진 않았다.

무엇보다 정파는 정혈대전이나 정마대전, 권동제의 출현으로 미치도록 바빴다.

사도천도 세력이 반이나 갈라져서 문제였다.

홍하랑…… 전생에서도 어렴풋이 들어본 적 있지만, 자세히는 모른다.

‘현생과는 달리 전생에선 적림십팔채는 맹강과 천기에게 이리저리 적의 세력을 견제하는 데로 쓰이다가 박살이 났으니까 말이야.’

화산오장로 시절, 죽기 직전 여러 책을 읽어 비교적 많은 걸 알고 있긴 해도 전부 아는 건 아니었다.

“귀주의 위에는 적림도의 소굴인 중경이 있으니, 지금쯤 암천군과 합류했을 가능성이 커요.”

“수적으로 우위에 있었거늘, 그것조차 사라진다면……”

신도균의 목소리는 걱정으로 가득했다.

“혹시 별동대의 인원이 어떻게 되오?”

조명이 혹시 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이류 무사 오십, 일류 무사 삼십, 절정 및 초절정 고수 이십으로 총 백이랍니다.”

단리화가 대신 답했다.

“흠.”

아쉽게도 별동대는 별동대였다.

지원 병력의 수준은 되지 않았다.

실력은 높아도 수가 너무 적었다.

전선은 이곳 귀주만이 아니다.

곳곳에서 배신자를 비롯해 암천회의 칠성사병이 움직이고 있다.

그곳을 막느라 다른 곳도 바빴다.

어떻게 하면 좋나, 하고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주서천이 입을 열었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대안을 준비해 뒀습니다.”

“대안, 말입니까?”

주변인들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먼저, 사전에 이야기하지 못한 점 대단히 죄송합니다.

딱히 여러분을 의심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주변에 암천회의 눈과 귀가 있다 보니 이제야 꺼내게 됐습니다. 부디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허흐흠, 그럴 수도 있지요. 상관없습니다.

상황이 상황이지 않습니까?”

신도균이 대표로 나서서 혓기침으로 넘어가려 했다.

체면을 중시하는 정파의 고지식한 양반들이라면 자기들을 못 믿냐면서 불쾌감을 보일 수도 있었겠으나, 귀주의 정파인은 머리가 굳지 않고 부드러웠다.

설사 속이 꽉 막힌 정파인이라 할지라도, 상천육좌의 앞에서 감히 불만을 표하진 못하겠지만 말이다.

“손자가 말하길, 갈 수는 있고 돌아오기 어려운 곳을 괘(桂)라고 했습니다.”

“가이왕(可以往) 난이반(難以返) 왈괘(曰桂).

때형자(桂形者) 적무비(敵無備)출이승지(出而勝之).”

괘형은 적의 대비만 없으면 나아가 이에 이길 수 있고.

“적약유비(敵若有備) 출이불승(出而不勝).”

만약 적의 대비가 있으면, 나아가 이기지 못하고.

“난이반(難以返) 불리(不利).”

되돌아오기 힘들어서, 이로움이 없다.

“저희는 이 괘를 이용할 것입니다.”

손자병법 지형편의 문구다.

“기문진법을 뜻하는 겁니까?”

신도균이 제갈수란을 힐끗 살펴보곤 물었다.

“비슷합니다. 작전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신경 써 주시기를 바랍니다.”

주서천은 혹시라도 누군가 들을지 몰라 조심, 또 조심하며 전음입밀을 통해 주요 인물에게 전달했다.

『놀라시더라도, 소리를 내지 말고 들어주십시오』

‘……’

귓가에 들려온 목소리에 사람들이 놀란 기색을 보였다.

‘전음입밀?’

‘검신께서 어찌 음공을……?’

전음입밀은 음공에 분류되는 기예 중 하나다.

원리는 복화술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혀가 보이지 않도록 이를 물고, 입을 살짝 벌려 말한다.

내공으로 목소리를 전달하는 음파를 분해한 뒤, 원하는 상대방의 귓가에 다시 조합하는 방법이었다.

소림사의 사자후와 더불어 대중적으로 알려진 음공이나, 워낙 어려우며 내공의 소모도 극심했다.

화산파에 전음입밀이 있다는 건 들어 보지도 못했다.

『용안에서 멀지 않은 곳에, 금의상단이 보급 목적으로 사용하는 귀주의 교역로가 있습니다.

이 근처에 기관을 설치해 두었습니다.

이곳으로 그들을 유도할 예정입니다.』

기관의 이름이 나오자 다들 눈썹을 찡그렸다.

‘기관?’

‘진심인가?’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직 이 시기는 기관의 중요성이 부각되지 않는다.

전란의 시대가 열린 이후, 암천회의 분타를 습격했다가 기관으로 인해 많은 피해를 받은 이후다.

삼안신투의 비고나 흉마의 무덤의 경우엔 웬만한 건 주서천이 죄다 해체하거냐 박살 내 화제성이 적었다보니, 그 위험성에 대해선 확 와 닿지 못했다.

다른 때라면 모를까, 귀주의 운명을 건 결전에서 사장된 기술에 의지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여러분께서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지는 알고 있습니다만, 부디 믿어주십시오. 참고로 기관의 설치에는 금의상단의 대대적인 지원이 있었습니다.

상왕이라 불리는 상단주가 허튼짓에 돈을 쓰겠습니까?

또한, 이 검신이 보증할 테니 부디 믿어 주십시오.』

‘으음.’

‘하기야……’

‘그 검신과 상왕이 아닌가?’

전쟁 도중 지휘에 있어 명성은 필수다.

무명이거나 혹은 인맥 따위로 지휘권을 맡게 되면 명령을 듣지 않기 마련이다.

하나 그동안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이자 상천육좌, 그리고 상계의 왕이 보증으로 있다면 다르다.

주서천의 설득에 힘을 불어넣었다.

‘마음 같아선 끝까지 숨기고 싶었지만, 기관의 도해를 보여 주지 않으면 자칫 잘못해서 아군도 휘말릴 가능성도 있다. 적어도 지휘관에겐 말해 둬야 해.’

주서천은 힘을 다해 지휘부를 설득했다.

명령을 따르게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심중으로 끝까지 의심하거나 불안하게 만들면 좋지 않다.

최대한 작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설득했다.

‘승계야, 이제부터 네 이름을 떨칠 차례다.’

귀주의 금의상단은 풍부한 자금과 유령곡이라는 우수한 노동력을 이용해서 기관을 설치했다.

더불어 기문동진의 모사미봉도 있으니, 기관진법의 힘을 보여 줄 차례였다.

주서천은 귀주군 지휘부를 모아 두고 기관에 대해서 설명했다.

금의상단의 고훈이 공동 담당자로 설명을 도왔다.

재정비 도중, 주서천은 빈 시간엔 무공 수련에 박차를 가했다.

“사형, 검이 아니라 권을 수련하시다니…… 오랜만에 보네요. 매화권법인가요?”

수련 도중 낙소월이 찾아와 말을 걸었다.

매화권은 검을 쥐기도 전에 수련하는 기초지만, 수련이 보기 드문 건아니다.

가끔씩 생각의 정리라거나 혹은 몸을 풀기 위해서 수련하는 경우가 종종있다.

“조금.”

주서천은 낙소월을 반갑게 맞이했다.

마침 수련을 끝낸 참이었다.

두 사형제는 적당한 곳에 앉아 대화를 나누었다.

“매화검수가 되면 강호에 나올 일이 자주 없다고 하던데 저의 경우엔 좀 다르네요.”

낙소월은 주서천의 옆에 앉아서 쓴웃음을 지었다.

화산의 정예, 매화검수는 강호에 출두할 일 자체가 적은 편이다.

보통은 일반 문도들이 해결하지 못할 임무에나 나서지만, 최근엔 워낙 정세가 어지럽다 보니 이렇게 나서게 된 것이다.

한창 혈기 넘칠 나이에 사문에 틀어박혀 있는 것보단 낫지만, 무림이 평화롭지 못하다는 증거니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었다.

“부디 이 전쟁이 한시라도 빨리 끝났으면 좋겠어요.”

낙소월이 앉은 채로 다리를 끌어안으면서 말했다.

“아……”

그녀의 얼굴을 보니 무심코 감탄이 흘러나왔다.

‘매화검봉……’

전란 속에 피어난 매화. 그저 어리기만 하던 낙소월은 없었다.

어느덧 숙녀가 되고 짓는 씁쓸한 웃음은 예전에도 본 적 있었다.

그 당시엔 뒤에서 힐끗 바라볼 뿐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바로 옆에 앉아 있었다.

“철없는 말이란 거, 잘 알고 있지만 부디 죽는 사람 없이 이 전쟁이 끝나면 좋겠네요.

누군가를 잃는 슬픔은 무척 고통스러우니까요.”

낙소월은 말하면서 예전의 일을 떠올렸다.

누구보다 소중한 사형, 주서천이 행방불명되거나 사망 소식이 알려졌을 때의 고통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말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슬픔이었다.

“사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사형을 따라온 것도 그것 때문에 지원한 거예요. 전처럼 곁에 있지 못하고, 소중한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싶지 않은 걸요.”

낙소월은 조금 쑥스러운 듯 웃으면서 뺨을 붉혔다.

주서천은 그런 낙소월을 놀란 듯 바라보았다.

“왜, 왜 그러세요?”

낙소월은 잘 익은 홍시처럼 달아오른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했다.

심히 당황한 듯 눈동자가 떨려 왔다.

“아, 미안해. 단지, 그냥…… 놀랍기도 하고, 감동해서 그래. 날 소중하다고 말해 줘서 고마워. 나 역시, 마찬가지야.”

“……네.”

낙소월의 입가에 기쁜 듯한 미소가 맺혔다.

주서천은 현재와 미래의 낙소월을 떠올렸다.

‘영웅도 사람이구나.’

낙소월은 주서천에게 있어서 동경하는 영웅이었다.

그 감정과 마음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녀의 등을 보면서 손을 뻗었고, 노력해 왔다.

평생을 목표로 한 사람 중 하나였다.

지금까지는 어딘가 모르게 그들이 사람이 아닌, 신선이나 부처 같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렇게 보니 또 그것도 아니다.

영웅들도 대의가 아닌 각자의 소소한 행복을 원했다.

‘당신들도 그렇습니까? 신승, 검성.’

눈을 감으니 여러 사람들의 등이 보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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