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주에서 일 차 대격돌이 벌어지는 한편, 그 외의 지역 역시 평화롭지 않은 건 마찬가지였다.
“위선자의 목을 암천의 검으로 베어라!”
암천회는 주로 중소 문파 출신으로 이루어진 기존의 정파 세력, 이 할의 배신자를 산하에 두고 움직였다.
중원의 중부에서부터 북부, 주로정파의 세력권 내에서 무림맹 각 지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제자야!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이냐!”
“사형! 정신 차리십시오!”
“사매! 어째서야!”
“안 돼!”
정파는 사형제나 사제, 가족이나 벗의 배신에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숨죽이고 있던 이들은 전쟁이 일어나자마자 동료의 등에 비수를 꽂았다.
“정신 차려!”
“이 병신 놈아, 아직도 상황 파악 못 해? 배신당한 거라고!”
“제기랄, 저 샌님들 데리고 후퇴해!”
그리고 이 혼란을 구원한 건 우습게도 평생 동안 원수로 지내던 사파인과 구파일방, 오대세가였다.
사파 역시 배신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이 받는 충격은 정파보단 덜했다.
사파의 역사에서 배신이 흔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사도란 도리나 인의가 아닌 이해독실이다.
필요에 의하면 배신하는 경우가 번번이 있는 편이고, 사파인은 혹시 모를 사태에 항상 대비하였다.
또한 흑도만큼 험난한 사회인지라 사람을 잘 믿지 않았고, 경계심이 강해서 배신에 잘 대응했다.
물론 그들도 사람인지라 오랫동 안정을 쌓거나 피가 이어진 이에게 배신을 당하면 다소 충격을 받는 경우가 있긴 했으나, 정파인보단 경우가 적었다.
“하, 이렇게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는데도 주화입마에 걸리지 않는 게 신기하구나.”
“안정의 정파라고 자랑하는 건 좋은데, 뭐 이리 바보같이 순수한 놈들이 많아?”
정파의 무공 특징 중 장점이 바로 안정성이다.
충격을 받은 것 같으면서도, 견고한 정신력을 지닌 정파인들을 보고 사파인들은 혀를 내둘렀다.
또한,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의 경우에도 피해가 좀 덜하긴 했다.
상승의 무공 덕에 정신력이 높은 것도 이유가 있었지만, 배신자 대부분이 중소 문파 위주여서 그랬다.
이 혼란도 초기엔 문제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정리되기 시작했다.
암천회는 그사이 효율을 보기 위해서 첩자가 가져온 정보를 이용하고, 혼란에 편승해 정사를 제압했다.
“들어라, 무림이여!”
암천회의 누군가가 말했다.
“현 무림은 미쳤다!”
그의 외침은 지방 곳곳에 전달됐다.
“강호에 의협은 존재하지 않는다!”
암천회는 무림인들의 마음에 파고 들었다.
“약자를 도와 강자를 누르는 일은 이제 없다!
정사에선 무공의 수준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개인을 폄하하고, 무시한다!
독공이나 음공이나, 혹은 무공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차별하고 있지 않은가!”
그건, 누군가의 절규였다.
“출신이 비천하나, 꿈을 꾸며 강호에 출두했다!
하나, 아무리 열심히 해도 가진 자들은 가지지 못한 자를 무시하고, 그 기회를 빼앗았다!
어쩔 수 없다면서, 갖은 개소리를 지껄이면서 모든 걸 앗아 갔다!”
그건, 어떤 이들의 절규였다.
“아무리 그래도 전쟁으로 해결해선 안 된다고?”
누군가가 울며 소리쳤다.
“안 듣지 않는가! 무시하지 않았나!”
“약자의 말소리 따위, 무시당할 뿐이지 않나!”
“공자니 노자니 뭐니 하면서, 어리석은 놈 취급을 하면서 무시하지 않았냐고! 이 개새끼들아!”
절규는 분노가 됐다.
“듣지 않으니까 검을 들었다!”
분노는 절규가 됐다.
“대화하라고?”
누군가는 비웃음을 지으며 외쳤다.
“이 것이 ‘대화'다.”
무림맹 및 사도천이 각지에서 벌어진 배신 소동에 발이 묶인 사이, 귀주의 격전은 절정에 이르렀다.
“카아아악!”
주변에서 터지는 비명도 익숙해 슬슬 안 들리기 시작했다.
“크랴아아아아압!”
요광이 창을 쭉 뻗는다.
무려 오척이나 늘어난 화첨창은 불꽃을 머금은 채로 검신의 심장을 노렸다.
주서천은 피부에 와 닿는 열기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검 줄기를 수직으로 그려 내면서 쳐올렸다.
째앵!
검과 창이 부딪치면서 금속음을 길게 토해 냈다.
동시에 충격파가 형성되어 주변을 슥 훑고 지나갔다.
“으아악!”
주변에서 서로의 목숨을 앗아 가려던 무림인들은 격전이 강제로 끊기고, 충격파에 날아가 버렸다.
채앵! 챙!
충격파의 중심지.
주서천과 요광은 서로를 마주 본 채 눈부신 속도로 검과 창을 내질렀다.
채채채챙!
검과 창이 빛줄기를 몇 번이나 뿜어내면서 불똥을 토해 낸다.
웬만한 고수도 눈으로 좇지 못할 정도의 속도였다.
허공에선 팡팡 하고 공기 터지는 소리가 났다.
‘도저히 화경의 신체 능력이라곤 보기 힘들다.’
무공의 경지의 차이는 강기나 심상구현처럼 특수한 권능만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신체 능력이 달랐다.
화경이 극을 이룬다면 현경은 그 극을 넘어선다.
근력이나 속력, 그 외에도 반사 신경 등이 전체적으로 드높았다.
그런데 무슨 영문인지 요광의 능력은 화경이라 보기가 힘들었다.
물론 절대고수인 상천육좌만큼은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턱걸이로 따라오고 있었다.
‘일전에는 몇 수 교환하지 못해 몰랐는데, 현경에 육박할 정도다.
무엇보다 근력이나 속력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저놈의 튼튼함이 문제다.’
“놀랐나?”
요광이 거리를 벌리며 심중을 찔렀다.
“흑철갑주를 단순히 만년한철로 된 갑옷이라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그래? 무슨 주술이라도 걸어 둔 모양이지?”
흑철갑주의 제작자는 미신에 집착한 진시황이니,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주서천 흑철갑주의 약점이라도 찾아보려고 괜한 도발을 하는 것이라면 그만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요광이 어림 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리 대단한 걸 가지고 있으면 강호의 선배로서 좀 양보해 줄 수도 있는 거 아니냐.”
주서천은 요광의 몸짓을 경계하면서 투덜거렸다.
흑철갑주 정도 되는 법보를 지니고 있으면 보통 어떠한 물건인지 자랑하듯이 나불거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요광에겐 그러한 기색이 조금도 엿보이지 않았다.
“관직에서 물러나 무림인이 된 건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니, 너야말로 양보하지 않겠는가. 검신이여.”
“헛소리하지 마라, 파군.
황제의 눈을 피해서 무림으로 도피한 이들이 아니냐.”
주서천이 어림없다는 듯 반박했다.
“도대체 왜 이런 짓을 저질렀지?”
“무림을 암천으로……”
“암천회가 아니라, 요광. 네 이야기다.”
주서천이 요광의 말을 도중에 끊었다.
요광은 창을 쥔 채로 가만히 서 있다가, 입을 열어 무감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주서천. 북방의 전선을 경험, 아니본 적이 있나.”
“북방? 달단(韃靼) 말인가?”
달단이란, 북원(北元)이 멸하고 부족연맹으로 분리된 몽골을 명에서 부르는 명칭을 뜻한다.
“그곳은…… 지옥이다.”
감숙성의 정삼품, 도지휘첨사인 파군은 관료이나 그 삶은 그리 달콤하지 않았다.
황궁에서 떨어진 감숙은 변방 중의 변방이라 생활 수준이 낮을 수밖에 없을 뿐더러, 무엇보다 북원 시절부터 공격해 오는 북방의 오랑캐 탓에 골칫덩이였다.
하루하루 안 싸우는 날이 없을 정도였다.
“비릿한 피 냄새는 코가 썩을 정도의 시체 냄새로 변하고, 전날 훈련을 끝낸 병사가 오늘의 시체로 돌아온다.
햇병아리처럼 새로 들어온 병사는 이튿날 시체가 되니, 그곳이 바로 지옥이다.”
투구 속의 눈동자에는 전장이 비쳐졌다.
차가워진 시체가 바닥 위에 누워있고, 그 위로 산처럼 쌓였다.
장강을 이룬 피는 발을 적셨다.
이가 나간 검이나 부러진 화살 등이 수도 없이 늘어져 있으며, 죽어버린 땅엔 어떤 꽃도 자라지 않았다.
그 숫자야 두말할 것 없다.
그야말로 국가 규모였다.
“건국 초기, 태조가 인재 등용을 적극적으로 한 덕에 당시 소년병으로 공을 세운 나는 관직의 길에 들 수 있었다.
또한, 변방의 관리이며 당시 낮은 직책의 실무자였기에 무자비한 숙청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
하나 나는 그때 죽었어야 했다.”
요광의 목소리에선 깊은 후회가 느껴졌다.
“그 뒤로 관리들이 왜 그리 중앙에 가려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곳은…… 사람이 있을 곳이 아니었어.”
어제의 벗이 오늘 죽는다.
오늘 사귄 벗이 내일 죽는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으로 무예에 출중하고, 눈치도 빠르며, 운도 따른 덕에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었다.
여러 공을 세워 높은 관직을 얻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결코 좋은 것이 아니었다.
십 년 뒤에도 아직 재위 중인 홍무제의 눈에 띈 것이다.
아직 당시 청년임에도 전장에서 여러 공을 세워 무명(武名)을 알린 건 결코 현명하지 못한 행위였다.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 친 것이 도리어 위기가 됐다.
“숙청에서 벗어나려면 권력에 관심이 없다는 걸 보여 줘야 했다.
그 탓에 변방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또한 지방에서 군사를 모을 것이라 생각되지 않도록 감숙, 아니 전선 밖도 제대로 나가지 못했지.
새장에 갇힌 새, 아니 감옥에 갇힌 죄수처럼 사는 삶을 상상할 수 있겠느냐?”
예의 무심함이 아니었다.
고통과 분노가 느껴졌다.
동시에 머릿속에서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나에게 이겼으니 그 상으로……알려 주마.
아는, 건…… 많지 않다. 그저, 그 지긋지긋한 북방의 오랑캐를 더 이상 보고 싶지 않고…… 지옥 같은 곳에서…… 벗어, 나고 싶어 도움을 받았을 뿐……”
적림총채주, 맹강.
양가창법의 고수 역시 동일한 연유로 암천회와 손을 잡았다.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었으며, 그저 죽을 날을 기다리며 살아오던날…… 그분께서 구원해 주셨다.”
암천회의 남은 일원, 현재의 회주였다.
당시 막 구성원들을 숨겨 주고 남은 자가 된 회주는 새로운 목표를 위해 수하가 필요했다.
인재를 물색하던 중 눈에 들어온게 바로 파군, 지금의 요광이다.
“이 몸을 섬긴다면 자유를 주도록 하마.”
바로, 무림이라는 이름의 자유였다.
“회주께선 날 숙청의 대상에서 벗어나게 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약속대로 그 지옥에서 벗어나 새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손을 써주셨다.”
그 대가로 도지휘첨사로서 오랫동안 칠성사병을 훈련시키거나 병력을 동원해야 했으나, 사소한 문제였다.
요광은 몇십 년 동안 묶인 전장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다.
“……어이가 없군.”
요광의 이야기를 들은 주서천이 헛웃음을 흘렸다.
“네놈의 눈엔 이곳이 무릉도원으로 보이기라도 하는 거냐?”
주서천은 보란 듯이 양팔을 벌렸다.
“으아악!”
“크악!”
“도와줘!”
“죽어라!”
무림인들의 입에서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함성이나 비명, 그 외에 여러 감정이 섞인 울음소리 같은 소름 끼치는 무언가가 끝없이 울렸다.
“신의니 뭐니 하면서 싸우는 이들 말이냐.
이런 것 따위, 애들 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요광이 창을 바로잡으며 말했다.
“타국에 의해 지배당하고, 부정부패로 나라가 굶주려 지친 농민들에 의하여 건국된 나라였다!”
타앗!
요광이 피 묻은 지면을 박차며 몸을 날렸다.
전신이 갑주임에도 나비처럼 난다.
무겁기는커녕 깃털처럼 가벼워 보일정도였다.
감탄할 틈은 없다.
요광이 벌처럼 쏘아지며 거리를 좁혀 왔다.
“얼마 되지 않아 황제는 얕보이지 않으려고 삼만을 죽였고, 사후에는 그 자식들이 권력 탓에 둘로 나뉘어 내전을 일으켜 많은 이들을 죽게 만들었다!”
쐐애액!
창신의 육합신창, 일합이 펼쳐졌다.
겹겹이 쌓인 대기층에 구멍이 생겼다.
그저 단순한 구멍이 아니었다.
불꽃에 공기까지 집어 삼켜졌다.
회오리치듯 빙글빙글 도는 불꽃을 토해 낸 창이 직선으로 쭉 뻗어와 심장부를 노렸다.
“후웁!”
호흡한 공기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숨을 참았다.
동시에 검신에 형태없는 강기를 실은 채 휘둘렀다.
콰앙!
금속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아니었다.
화약을 연달아 터뜨린 것처럼 폭음이 터졌다.
다가가면 위험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닫고 거리를 둔 양측 무인들의 청각이 잠시 마비될 정도였다.
“건국 후 오십 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 미친놈들에 비해선 무림 따위 애들 장난일 뿐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정사대전이나 정마대전 등 ‘전쟁’ 이라 불릴 만한 건 그리 연달아 벌어지지 않는다.
최근 이 시대에 전란의 시대가 불리는 것도 큰 규모의 전쟁이 짧게나마 여러 번 일어난 탓이었다.
그러나 관군은 이 전란이 계속되고 있다.
그 증거로 내전이 끝난 이후 현 황제는 정복을 위해서 달단이나 남만으로 군사를 보냈다.
“애들 장난이라고?”
주서천의 눈썹이 사납게 치켜 올라갔다.
“웃기지 마!”
옆으로 세운 검을 오른쪽으로 힘껏 밀어냈다.
째애앵!
검신과 찰싹 붙은 창날이 번쩍이면서 옆으로 튕겨져 나갔다.
화첨창의 불꽃도 산산이 흩어졌다.
요광이 급히 창을 원래의 위치로 잡으려 했으나 늦었다.
잔상을 남기고 사라진 주서천이 다가왔다.
스르르륵!
삼 척 가량 늘어진 창이 급속하게 줄어들었지만, 코앞까지 다가온 적을 따라오기엔 역부족이었다.
곁눈질로 움직임을 확인해 문제없다는 걸 파악한 뒤, 팔을 쭉 뻗어 겨드랑이의 이음새를 노렸다.
째애앵!
“큭!”
“크읏!”
주서천과 요광의 입에서 동시에 신음이 흘러나왔다.
‘도대체 뭐 이딴 걸 만들어 냈지?’
진시황의 무덤이라도 찾아가서 전부 박살 내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다.
그 정도로 짜증 났다.
무인이 극의를 이루며 얻은 권능, 강기도 만년한철 앞에선 제대로 된 힘을 쓰지 못했다.
그 강기의 상위 권능인 무형강기도 마찬가지였다.
형태가 없어질 뿐만 아니라 위력도 높아지지만, 문제는 만년한철 고유의 성질 탓에 소용이 없었다.
기의 내성은 둘째 치고 전달을 분산하여 피해를 최소화하는 역할까지 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법보 중의 법보, 진시황의 결집체였다.
불로불사를 꿈꾸는 허황된 망상에 절대 권력이 주어지면 얼마냐 터무니없는 일이 생기는지 알 수 있었다.
“우오오오!”
요광은 창에서 손 하나를 떼곤, 팔을 휘둘렀다.
접근한 주서천을 떼어 내기 위해서다.
“쯧!”
혀를 차며 상체를 숙였다.
머리 위로 ‘부웅’ 하고 바람 소리가 묵직하게 났다.
휘리릭!
왼발을 축으로 삼아 반 바퀴 회전했다.
몸만 돈 게 아니다.
검도 반원을 그려 내면서 요광의 등허리를 베었다.
카가가강!
그러나, 베지 못하고 불똥만 튀겼다.
‘좋아, 이렇게 된 거 만중검으로……’
난전 속이라 어차피 못 알아보니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독이야 피부에 닿지 않으면 무의미하지만 만중검은 다르다.
무게로 압사시킬 생각을 했다.
“어딜!”
요광이 무언가를 눈치채고 다리를 들었다.
고수에 내공만 받쳐 주면 만중검의 기초가 되는 천근추의 수법은 누구나 쓸 수 있다.
요광은 무게를 싣고 힘껏 발을 굴렀다.
콰아아아앙!
‘한 번에 승부를 내려 했건만!’
주서천은 말을 삼키면서 뒤로 물러났다.
평소 즐겨 쓰던 공격에 당하니 기분이 좀 묘했다.
“검신!”
신도균이 주서천이 물러난 걸 보고 급히 외쳤다.
“슬슬 시간이 됐습니다!”
신도균의 말에 주서천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불안해하지 마라. 욕심내지 마. 언제나처럼 보다 확실한 방법을 찾아내고, 처리해.’
애들 장난이라는 말이 머릿속에 감돌아 화가 났지만, 평정심을 찾아 진정했다.
“후퇴한다!”
후퇴하면 사기가 떨어질 수밖에 없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사도천의 지구력이 버티지 못한다.’
사파 무공은 정파 무공에 비해 내공의 수위가 얕고, 안정적이지 못해서 문제다.
수적으로 우위에 있기는 해도 평균적인 무위가 떨어지다 보니 암천군에게 밀렸다.
또한 이대로 전투를 속행해도 요광에게 이길 수가 없었다.
작전상 후퇴였다.
“부상자를 데리고 후퇴해!”
“후퇴! 후퇴해라!”
맹초혁과 조명의 목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댔다.
“하하하! 패배자 새끼들아!”
종리도전이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웃었다.
“자아, 저들을 보아라! 패배한 개새끼처럼 꼬리를 말고 도망치는구나! 참으로 우습지 않느냐!”
종리도전이 욕설과 조소를 퍼부으며 도발했으나, 다들 걸려들진 않았다.
대신 이를 꽉 깨물었다.
“좋아! 이 기세다! 도망치는 이들을……”
“그만.”
요광이 종리도전의 다음 말을 제지했다.
“하, 하지만……”
종리도전이 당혹스러워하며 요광의 눈치를봤다.
“지친 건 이쪽도 마찬가지다.”
요광의 말에 종리도전은 그제야 주변을 둘러봤다.
암천군의 칠성사병 역시 피곤에 진 기색이었다.
또한, 천오백씩이나 수적으로 불리한 만큼 피해도 상당했기에 끝까지 쫓기에는 부담스러웠다.
“또한, 이 땅 옹안이 적의 본거지라는 점을 잊지 마라.
지친 상태에서 괜한 욕심을 부렸다가 자칫 잘못해서 함정에라도 걸린다면 낭패다.”
종리도전은 아쉬워하는 눈초리였으나, 요광의 말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적이 어디 도망칠 것도 아니고, 보급이나 부상자 탓에 어차피 멀리가지 못하니 괜한 걱정할 건 없다.
또한, 곧 있으면 지원이 도착하니 재정비하여 다음을 노리도록 하겠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