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三章 (196/254)

무림맹 군사진이 예상안 중 첫째로 꼽은 건 바로 귀주의 혼란으로 인한 정사 연합의 균열이었다.

말했다시피 무림맹과 사도천은 암천회라는 공공의 적을 두고 협력을 맺어 상호 간의 싸움을 금하였다.

하나 오랫동안 좋지 않은 감정의 골이 깊은 귀주 지역은 사실상 불가능한 명령이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나 다름없는 장소를 암천회가 내버려 둘 리 없었다.

“원한의 연쇄 작용은 상상 이상입니다.

귀주는 그 시작점이 될 수 있습니다.

고의적으로 서로 간에 오해나, 분탕을 만들어 평화를 깨트릴 수 있지요.

규모가 커지면 단연 전국에 내린 금지 조항 역시 효력을 잃을 것이고 정사의 협력 역시 무산될 것입니다.”

물자도 물자지만, 동맹 관계도 확실히 해야만 했다.

첩자를 심어 둔 시점에서 분탕은 어렵지 않다.

특히나 무림이 소란스러우니 더더욱 쉬울 것이다.

혼란의 중심지인 귀주야 두말할 것도 없었다.

이 만약의 상황을 막기 위해 무림맹 상층부는 회의 끝에 특무대를 보냈다.

“그래서 제가 온 것입니다.

지부장님께서 귀주 소속 정파인들을 집결시켜 주시면 설득하려 했지요.”

귀주는 안휘와 거리가 있다 보니 아무래도 무림맹 본부의 영향력이 그리 많이 끼치지 못하고, 원한이 짙다 보니 금지 조항도 지켜질지가 의문이었다.

그래서 떠오른 게 상천육좌이자 정도의 영웅인 주서천이었다.

요약하자면 분쟁을 억제하러 왔다.

‘사도천 측에서 문제가 생기면 패신군이 되면 된다.’

사도의 영웅, 패신군이라는 신분도 있다.

최근엔 사도천주에게 일임하고 통나서진 않았지만, 사오 년 된 것도 아닌지라 아직 현역이다.

또한, 겸사겸사 귀주 지부의 금의상단에 들러서 제갈승계가 설치해둔 기관도 확인해야 했다.

금의상단의 중심지는 산동이지만, 전쟁 상단으로서의 시작점이었던 귀주 지부 역시 규모가 나름 컸다.

참고로 기관의 경우엔 제갈승계가 직접 온 게 아니라, 설계도를 통해 유령곡 귀주 지부에게 맡겼다.

“상황을 보러 저 먼저 급히 왔습니다만, 아무래도 이미 벌어진 모양이군요.”

혹시 몰라 전서구를 보내긴 했는데, 방해 공작으로 도중에 소실되어 도착이 늦어지는 모양이었다.

모처럼 합비에서 쉬지 않고 달려왔지만 결과가 영 신통치 않았다.

“그, 그런 것도 모르고 실례를 했습니다.”

신도균이 쩔쩔매는 모습을 보였다.

속으로 약 십 년 전에 그래도 연화각 출신이라도 함부로 대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겼다.

“괜찮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요.

그것보단 지금은 현장을 확인하는 것이 좋을 듯 싶습니다.”

귀주의 분쟁은 휴전 상태지만, 솔직히 말해서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불안한 상태였다.

그저 운이 안 따랐다고 밖에 할 수 없었다.

하필이면 도착한 날에 거의 동시에 터졌으니.

‘여기도 오랜만이네.’

도착한 곳은 개양에서부터 동쪽으로 일반인 도보 기준으로 이틀 정도거리의 옹안(鹿安)이었다.

약 십 년 전, 주서천이 제갈승계와 최초로 활약한 장소이기도 했다.

“귀주의 지부장으로서 나름 드리는 조언입니다만…… 솔직히 말해서, 어떻게 말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옹안은 두세 달에 한 번 무림맹과 사도천의 깃발이 바뀔 정도로 격전지였다.

이렇다 보니 서로 묵은 감정이 상당히 짙어 신도균의 늘어난 주름의 원인이 되기도 한 곳이었다.

‘귀주의 혼란으로 평화 조약을 옅게 만들고, 그 틈을 타서 암천회의 전력으로 덮칠 생각이겠지.’

주서천의 이맛살에 깊은 고랑이 파였다.

‘귀주가 시작점이다.’

귀주를 시작으로 전 지역에서 거병할 것을 예상했다.

겨우 맺은 협약정도는 유지시켜야만 했다.

“어젯밤, 야심한 시각을 틈타 사도천 무사가 옹안의 담을 넘어서 습격했다고 합니다.

또한, 전 명령한 적없습니다만…… 용안의 무림맹 무사들 역시 거의 동 시간대에 사도천의 임시 막사를 습격했다더군요, 혹시나 해서 확인했습니다만 모르는 자들이었습니다.”

신도균은 유능하다.

괜히 십 년 넘게 귀주에서 책임자로 지낸 게 아니었다.

언제나 수하들에게 첩자의 가능성을 염려에 두고 감시하고 있었다.

‘마치 짜 맞춘 것처럼 동시에 습격이 벌어졌고, 실행범은 잡히지 않았어. 두말할 것도 없이 함정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해서 척 봐도 수상쩍었다.

그러냐 골이 깊을 때로 깊은, 시선만 마주쳐도 피 튀기며 싸우는 귀주의 무인들이 알 리가 없었다.

그저 원한을 지닌 누군가가 또 공격을 했다면서 생각했을 것이 뻔하다.

괜히 휴전이나 종전 중에서도 분쟁이 일어나는 귀주가 아니다.

그만큼 험악한 동네였다.

“이제 어떻게 합니까? 이대로 가다간 검신께서 말 한 대로 큰일 나는 것 아닌지요?”

“생각이 있습니다.”

주서천은 관자놀이룰 검지로 툭툭 두드렸다.

정사가 공적을 두고 화해를 해야한다지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귀주에선 특히나 더 그렇다.

“이 비겁한 새끼들아! 동맹군을 야밤에 기습해?”

무림맹 옹안 지부 절정 무사, 맹초혁은 이를 뿌득뿌득 갈면서 옹안 밖 평원에 몰려든 사도천 무리를 향해 고함을 내질렀다.

“비겁? 지랄!”

사도천 옹안 지부 절정 무사, 조명이 침을 뱉었다.

“지들이 먼저 습격했으면서 뭐? 우리 보고 야밤에 기습을 했다고?

시팔, 아주 철면피가 따로 없구먼!”

맹초혁과 조명은 서로 물러서지 않았다.

얼굴은 걸레짝처럼 일그러졌고, 벌겋게 달아오른 피부 위로는 힘줄이 돋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처음부터 사파의 비겁하고 더러운 새끼들이랑 안 싸운다는 게 잘못된 거였어!”

“흥! 누가 할 소리! 겉으로 착한척하는 위선자 새끼들은 이래서 못믿는다니까!”

스릉! 스르릉!

맹초혁이 검을 뽑고, 조명이 도를 뽑았다.

그 둘을 시작으로 양 진영도 각자 무기를 뽑았다.

‘크흐흐……’

양측의 진영 속, 그 사이에 섞인 칠성사병들은 터져 나오려던 웃음을 가까스로 참으며 눈을 빛냈다.

‘정사는 결코 함께할 수 없다.’

‘무공의 방식이 다르다는 어이없는 이유만으로 서로를 미워하고 죽이는 것이 무림인이다.’

‘정사여, 서로의 등에 검을 꽂아라. 자기들끼리 치고받고 싸워 멸망하고 결국 암천이 모든 걸 지배할 것이다.’

양측이 막 격돌하려던 찰나였다.

“그만!”

평원에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터졌다.

“……”

,

무림맹도 사도천도 흠칫하고 놀랐다.

목소리만으로 압도되어 몸이 잠깐 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대체 이건……’

‘내공이 얼마나 되는 거지?’

‘이럴 수가……’

맹초혁과 조명의 표정에도 긴장감이 감돌았다.

혹시나 상대 진영에서 어떻게 할 수 없는 고수를 데리고 온 것은 아닐까 하고 걱정이 앞섰다.

그리고 얼마 뒤에 이어진 말에 맹초혁의 안색은 환해졌고 조명은 반대로 일그러졌다.

“무림맹과 사도천은 들으라! 나는 화산파의 주서천이라 한다!”

‘검신!’

주변의 시선이 한곳으로 몰렸다.

그곳엔 귀주 지부장 선도균과 소매 안쪽 매화가 그려진 도사 복장의 청년이 서 있었다.

청년의 정체는 두말할 것도 없었다.

‘주서천!’

상천육좌, 검신.

정도의 영웅 주서천이었다.

정파 진영에게 있어선 희망이요, 사파 진영에게 있어서는 절망이었다.

맹초혁은 보란 듯이 웃으면서 소리쳤다.

“하하하! 참으로 안타깝게 됐구나, 조명!

내 네놈에게 쓴맛을 보여 주려 했는데 말이다!”

“크으윽…… 이 새끼……”

조명이 분한 듯 주먹을 꽉 쥐었다.

“이제 너희는 끝이……”

“그만! 다들 병장기를 거두어라!”

맹초혁은 말을 이으려던 찰나, 주서천의 다음 말에 꿀 먹은 벙어리처럼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주서천은 좌중의 이목이 집중된 채로 말을 이었다.

“미리 말하지만, 나는 싸우러 온 것이 아니다! 내 말을 들어다오!”

당장에라도 터질 것 같은 분위기는 절대고수의 등장으로 잠시 가라앉았다.

“귀주의 무인들이여, 아니 정사의 무림인들이여!

정파와 사파, 또는 사파와 정파는 오랫동안 대립해 왔다.

무학의 방식이나 사상, 또는 신념이나 은원이 이유가 됐다.

그 역사가 얼마나 깊은지는 무림인, 아니……

중원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오십 년 전에도, 오백 년 전에도.

수 세대 전 무공이라는 것이 만들어졌을 때부터 싸움은 반복됐다.

“그 원한이 얼마나 골이 깊은지는 나 역시 잘 알고 있다! 죽이거나, 굴복시키고 싶겠지!

반대되는 주장이 잘못됐다는 걸 인정하게 만들고 싶을 것이다!”

무림이란, 사람의 역사란 전쟁의 역사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주서천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무림인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의문을 던지기도 전에 주서천이 말을이었다.

“이 싸움, 전쟁을 이용해 이득을 취하고, 위협하고, 정사의 숭고한 신념과 사상을 이용하려는 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누구인지는 다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 바로 암천회다!”

정사 연합이 결성됐다.

암천회라는 공공의 적에 의해서다.

그 이름을 모르는 자는 없다.

“암천회는 수십 년 동안 무림의 뒤편에서 장막에 가려진 채, 무림 정복을 위해 갖은 공작으로 정도와 사도, 그리고 마도를 좌지우지하려 했다!”

삼국 시대, 유비(劉備)가 조조(曹操)의 식객 노릇을 할 때 살아남기 위해서 일부러 어리석은 사람으로 보이도록 하여 경계심을 풀도록 만들었다 한다.

암천회가 아무리 대단하다고 한들, 정사마를 동시에 상대하는 것은 버거우며 피해 또한 크다.

그렇기에 막강한 힘을 지녔음에도, 보다 완벽한 승리를 위해서 힘을 숨기고, 무림을 조종해 왔다.

“칠검전쟁, 흉마의 무덤, 정혈대전, 사문반란, 정마대전.

무림을 소란케했던 크고 작은 사건은 암천회의 암계였으며, 앞으로 다가올 무림 정복을 위한 사전의 준비였다는 것을 들어 보았을 것이다!

이는 무림맹과 사도천이 공표했던 것처럼 명백한 진실이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본다.

평원에 집결한 무림인들의 눈은 한곳, 자신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정파인이여, 그리고 사파인이여! 들어라!”

주서천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내쉬었다.

“오랫동안 이어진 다툼을 그만두고, 숙적이었던 무림맹과 사도천이 어째서 손을 잡았는가?

이 암천회라는 최대이자 최악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서다!”

배에 힘을 잔뜩 주고 소리를 토해내듯 질렀다.

“그들은 정도와 사도라는 신념을 모욕했으며, 정복의 도구로 이용했고, 또한 육대금공 및 마공을 소유했을 뿐만 아니라 무림의 평화와 안녕을 깨뜨리고 전쟁을 유발해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가게 만들었다!”

주서천의 눈빛은 매섭게 빛났다.

“다시 한번 말한다! 정사 간의 원한이 얼마나 깊은지는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싸울 때가 아니다!”

목소리를 다시 높여 주변의 시선을 모았다.

“검이 향해야 할 곳은 앙숙이 아니라 곁에서 바라보며 어부지리로 이득을 취하려는 적, 암천회이다!”

상왕 가라사대, 말이란 건 자고로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했다.

“정사여! 귀주의 무인들이여! 힘을빌려다오!”

주서천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허리를 숙였다.

“상천육좌, 검신으로서 청하는 바이다!

부디 서로 간의 원한을 잠시 내려놓고, 공공의 적을 무찌르기 위해서 도와주게!

평화 속에도 끝없이 싸워 오며 기른 힘이 필요하다!”

전란의 시대에서 영웅이나 마두가 얼마만큼의 영향력을 끼치는지 보았다.

영웅의 말로 수많은 무인들이 따르거나 죽었으며, 사기가 높아지거나 낮아지는 것도 정해졌다.

무릇 진정한 영웅이란 명예를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 하지만, 주서천은 철저하게 이용하기로 했다.

사람이란 누구보다 남의 평가를 신경 쓰고, 인정받는 걸 좋아하는 동물이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무사에게 부탁받는 것과 정도의 영웅, 상천육좌에게 부탁받는 것은 다르다.

위계질서를 중요시하는 정파는 더더욱 그렇다.

‘인정받았다……’

‘드디어!’

‘검신께서 저리 청하시다니!’

‘상천이나 되시는 분께서 허리를 숙이다니……’

‘보잘 것 없는 우리에게!’

귀주는 분쟁이 끊이지 않는 지역이다.

타지보다 사상자나 부상자가 많으며, 언제 죽어도 이상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주에 남아 있거나 찾아오는 건, 타지보다 공과 명예를 쉬이 쌓을 수 있어서다.

무명의 중소 문파나 무인도 귀주에서 일 년 정도 살아남아 활약한다면 어딜 가더라도 인정받는다.

출신이 미천하다 할지라도 무림맹 상층부의 눈에만 들면 출세의 길이 충분히 열리기 때문이었다.

‘허, 대단하군.’

신도균은 주서천의 태도와 연설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무림의 고수들은 기본적으로 자존심이 드높다.

정파의 무인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주서천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삼류를 포함한 정사의 무인들에게 허리를 숙여 부탁했다.

‘상천육좌나 되는 고수에게 저리 인사를 받을 일이 얼마나 있겠나.

무엇보다 여태껏 귀주에서 싸워 온 것을 인정받았을 뿐만 아니라 힘이 필요하다는 말까지 들었으니 따르지 않을 수가 없다.’

신도균은 정파인들의 격앙된 표정을 보고 생각했다.

‘나 역시 이십 년, 아니 십 년만 젊었어도 저 틈에 섞여서 열광했을 것이다.’

얼마 전, 신임 무림 맹주 후보로 주서천이 올라왔으나 지도자로서의 자질과 경험 탓에 제외됐다.

하나 지금 보니 나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신도균이었다.

‘하지만……’

신도균의 얼굴은 여전히 걱정으로 가득 찼다.

“좋은 연설, 잘 들었소!”

무림맹은 어찌 설득했으나, 사도천이 문제였다.

“하나, 그것만으로 분노가 사라지는 건 아니오!”

사도천 측에서 사십 대 초반의 중년이 나섰다.

‘귀주연검(貴州軟劍), 종리도전!’

천하백대고수 끝자락에 위치하며, 조명과 의형제 배분인 사도천 소속의 고수였다.

귀주에서의 활약이 제법 길어 따르는 자가 많았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고 있으나, 그것만으로는 이 사태를 수긍하기가 어렵소.”

사파의 무리는 종리도전의 말에 동의하듯 머리를 끄덕였다.

‘이 상황에서 훼방을 놓는 건 암천회인가.’

주서천은 종리도전의 얼굴을 머릿속에 각인시켰다.

정사 간의 화해가 이루어지는 걸 가만히 보고 있을 리는 없다.

‘분명 공작원이 나설 것이라 생각했지.’

정보 조작, 선동 및 방해 등은 암천회의 특기다.

‘귀주연검, 종리도전이라면 귀주에서 오랫동안 활약한 사도천 소속의 귀주 지부 고수다. 천추성인가.’

천추성이란 무림에 일정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주요 인사에 속한다.

귀주연검은 귀주 위주로 활약했으나 무림에서도 정평이 나 있는 고수이니, 천추성일 확률이 높았다.

‘주서천, 네놈은 그래 봤자 정도만의 영웅일 뿐이다.’

주서천이 생각한 대로 종리도전은 암천회였다.

‘천기님께서 네 속셈을 몰랐을 줄아느냐? 흥!’

검신이 귀주에 모습을 드러낼 것은 암천회에서 예상한 바였다.

무림맹의 설득 역시 알고 있었다.

마음 같아선 이야기하지 못하도록 하고 싶었으나, 무력이냐 명성이 워낙 대단해 어찌 막을 수 없는 상대인 걸 알아 별수 없이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암천회는 무림맹을 포기하는 대신, 사도천에 집중하여 화해하는 걸 훼방 놓기로 마음먹었다.

‘사도의 영웅인 패신군이라면 모를까, 정도의 영웅인 검신이 온다면 움직일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정파인일 뿐이다.

감언이설로 어찌어찌 설득해 보려는 속셈이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실리주의자인 사파인을 설득하기는 힘들 것이다.

특히 이 귀주에서만큼은 말이다.’

사파는 전체가 아닌 개인의 실리를 더 추구한다.

애초에 사도천이란 사파 연합도 무림맹에 대항하고 살아남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인의나 신념하에 모인 무림맹과는 달랐다.

그들이 관심 있어 하는 것은 좀 더 원초적인 것, 술이나 여자 혹은 돈이나 힘 같은 것이었다.

언뜻 보면 마도이세와 다를 것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마교나 혈교처럼 막장 짓을 하지는 않았다.

사람으로서의 최소한의 도리를 지킨다.

적어도 마성에 뇌가 맛이 가서 미쳐 날뛰진 않았다.

사도와 마도의 차이점이다.

정파의 위계질서를 허례허식이라 비웃고, 규율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분방함과 실리를 미덕으로 여기는 사파인 입장에서 그 말은 크게 와닿지 않는다.

‘아무리 웅변(雄辯)을 펼친다 할지라도, 사고방식이 다르다면 개똥철학, 한낱 개소리일 뿐이다.’

사도천이 무림맹과 손을 잡은 건 정말로 무림의 평화를 위해서가 아니다.

진의가 그리하였다면, 정사는 진작에 하나로 묶여 통합되었을 것이다.

‘사람(人)이란 글자는 사람이 등을 기대고 있는 모습이 아니라, 두 다리로 홀로 서 있는 모습이다.

사람이란 결코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는 걸 모르다니.

멍청하구나, 주서천.’

종리도전은 터져 나오려던 웃음을 참으며 생각했다.

‘하물며 귀주의 무인, 아니 사파인은 더더욱 실리를 추구하는 경향이 큰데 그깟 개소리가 들리겠느냐?’

정파인이 귀주를 찾는 건 공적과 명예를 원해서다.

사파인이 귀주를 찾는 건 돈이나 술탓이다.

무림맹이 귀주에서 공적을 쌓은 만큼 지위나 대우를 약조해 준다면, 사도천은 금전으로 지불했다.

사파인 중에서도 정파인처럼 신념을 중요시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다.

하나 이런 이들은 정신적인 깨달음도 요구되는 고수의 경우인지라, 사파 특성상 적을 수밖에 없었다.

귀주의 경우는 특히나 고수가 몇 없고 대부분이 삼류나 이류 등 하류 인구가 차지하니 어떤 성향을 지녔는지는 두말할 것도 없었다.

사실상 무공을 제외하곤 흑도의 무리와 다를 것 없는 이들이었다.

부족한 욕심을 채우고, 마음껏 행동한다.

원한이나 복수 같은 것도 여기에 포함된다.

무공의 성취 속도가 늦어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정파인이라면 몰라도 사파인에겐 참을 수 없었다.

평화와 위기 같은 것보단 당장의 원한을 해소하고 화를 푸는 게 더 중요했다.

‘귀주가 아니었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지는 몰라도, 장소를 잘못 선택했다.

신념도 목숨도 아닌 이익을 추구하는 자들에겐 허울 좋은 말일뿐이다.’

종리도전은 승리를 예감하며 주서천을 마주 봤다.

주서천은 종리도전과 마주 보며, 차갑게 웃었다.

“그에 관해선 다른 분께서 대신 답할 거요.”

옹안의 습격 소식을 들었을 때, 여러 방안을 생각했다.

‘사람, 그것도 군중을 설득하려는 것은 어렵다.

정파야 검신이 직접 나서서 설득한다 쳐도, 사파는 패신군이 직접 나설 수 없는 형태이니 아무래도 힘든 점이 있다.’

서신만으로 설득할 수 있다면 직접 오지도 않았다.

모습을 보이고, 목소리를 통해 전달해야 했다.

그래서 패신군을 내세우는 방안을 제외했다.

주서천은 개양을 떠나기 전 신도균에게 부탁해 한 사람을 데려오게 만들었다.

바로 금의상단의 귀주 지부장인 고훈이라는 상인이었다.

“만나서 반갑소! 귀주의 무인이라면 그리 긴 소개는 필요 없을 것이라 생각하오! 고훈이라 하오!”

귀주의 상인, 고훈의 이름이 알려진 건 귀주를 담당하는 금의상단의 상인이기 때문이다.

어떤 지역보다 물자의 소비가 큰 귀주이니, 단연 그 얼굴을 질리도록 볼 수밖에 없다.

한때는 귀주에서 금의상단을 독점하고 적의 물자 공급을 끊으려던 작전도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고훈, 아니 금의상단은 어디 한 곳에 손을 들어 주는 것을 거절하고 양측을 상대로 거래했다.

최초엔 정파에 손을 들어 주었으나, 사업을 확장하며 몸집이 커지자 간 크게도 사파에도 손을 댔다.

“이 자리에 선 건 다름이 아니라, 본 상단의 주인되시는 상단주님의 말씀을 대신 전하러 왔소이다!”

“허!”

종리도전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내뱉었다.

“본 상단, 금의상단 역시 암천회를 무림과 연관된 상계를 위협하는 악도(惡道)의 무리로 규정하고 공적으로 여기고 있는 바요.

이에 금의상단은 정사의 연합에 지지하여 다양한 방면으로 힘을 보탤 것이오.”

고훈의 말에 종리도전은 어림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금의상단을 경유해서 하책(下策)을 펼칠 생각이냐?

정말 우습군.

겨우 몇 푼의 돈으로 그동안 쌓인 원한이 사라질 것 같으냐?’

확실히 간단하고 분명한 방안이었다.

귀주의 사파인은 눈앞의 이득, 물질적인 보상을 위해서 살아가니 욕심 부분은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은원 관계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오래 묵은 원한은 풀리지 않는다.

그껏 돈 몇 푼으로 해결되는 감정이 아니었다.

세상엔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아무리 귀주의 무인이 물질적 보상을 중시해도 선이란 게 있다.

“우리를 모욕할 셈인가!”

예상대로 조명의 얼굴이 단숨에 울긋불긋해졌다.

“고작 돈 몇 푼으로 원한이……”

“이 시간부로 귀주에서 평화를 유지하고, 암천회와의 전쟁 시작 시 하루마다 개인당 은자 다섯 냥을 지급하겠소.”

“……”

동전 천문이 모여야 은자 한 냥이다.

현 시세로 쌀 두 석이 은자 한 냥이었다.

길거리에서 파는 당과나 꼬치 등 간식거리가 동전 몇 문 한다는 걸 생각하면 상당한 양이었다.

은자 열 냥이면 금자로 한 냥이니, 이틀이면 모인다는 소리다.

“거, 거짓말하지 마라!”

종리도전이 당황한 기색을 외쳤다.

“귀주의 사파인만 해도 약 이천여 명 하루마다 보수로 은자 만 냥을 풀겠다고?”

“정사 공통으로 암천회의 첩자를 신고하면 금으로 한 냥, 산 채로 데려오면 금으로 석 냥을 지급하겠소.

또한, 부상 시 치료비 또한 금의상단에서 부담할 것이며 암천회의 고수의 목을 가져올 경우에는 그에 걸맞은 보상도 하겠소.”

“뭔……”

종리도전은 말을 잇지 못했다.

치료비까지 부담하고, 보상까지 내준다면 돈이 얼마나 들겠는가.

단순히 계산해도 터무니없다.

“나의 원한을 돈으로 풀 생각인가!”

조명이 눈을 부릅뜨고 외치며 맹초혁에게 다가갔다.

“뭐, 뭐냐!”

맹초혁이 몸을 움찔 떨며 검을 쥐었다.

‘생각보다 돈이 좀 크군!’

조명이 귀가 빨개진 채로 손을 건냈다.

“무림의 평화를 위해서, 원한은 잠시 잊도록 하마!”

“……”

종리도전이 침묵했다.

‘사파인이 실리주의자라면, 실리로 승부한다.’

금의상단은 명실공히 무림 최대의 대상단이다.

약 십여 년 전, 삼안선투의 비고의 자본으로 시작해 상왕 이의채의 손으로 몇 십 배나 불렸다.

하루에 은자 만 냥이라면 작지는 않으나 금의상단에선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괜히 상왕을 아군으로 만든 게 아니다.’

전생에서 활약한 인물 중, 제갈승계와 함께 영순위로 아군으로 만들 사람이 바로 상왕인 이의채였다.

괜히 이의채를 찾으러 간 것이 아니다.

그를 포섭하는 것으로 무소불위의 ‘금력’을 얻을 수 있었다.

현대의 정파인의 사고방식이라면 상상은커녕 혐오할지도 모르겠으나, 주서천은 달랐다.

전란의 시대를 겪으며 유들유들한 사고방식을 지녀야 가능한 일이었다.

“어, 어흠! 무림의 평화를 위해서라는데……”

“암! 그렇고말고!”

“이, 이봐! 그 친구의 복수는 어떻게 하고?”

“에이, 이 사람아. 검신이 하는 말못 들었나?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하지 않나, 때가.

원한을 당장 없애라는 것도 아니고 나중으로 미뤄 달라는 건데……”

“대의를 위해서네! 대의를 위해서야!”

귀주의 사파 무리가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꿨다.

‘복수가 중요하기는 한데……’

‘솔직히 말해서 저 정도 받으면 참을 만하지.’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사도천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당장에라도 터질 것처럼 사납게 몰아치던 폭풍은 산들바람처럼 잔잔히 불었다.

들끓어 오르던 열기도, 욕설도 없어졌다.

대신 민망한 듯 헛기침이 흘러나왔다.

‘하여간 사파인이란……’

‘어이가 없군!’

무림맹 측도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목 너머로 한심하다는 말이 튀어나올 뻔했지만, 방금 전 검신의 연설을 떠올리며 가까스로 참았다.

‘끄으으!’

그러나 이 중의 한 사람, 아니 단체는 정사의 화해에 못마땅한 걸 넘어서 분노하고 있었다.

‘이 줏대 없는 새끼들아!’

아무리 대가가 적지 않다곤 하지만, 설마하니 이렇게 간단히 넘어갈 줄은 몰랐다.

토의가 이루어지면 그사이에 파고들어서 선동이라도 할 생각이었는데, 조금도 그럴 기미가 없었다.

“제, 제정신이냐?”

“웃기지 마! 그깟 돈에 넘어갈 줄 알고!”

“내 동생의 복수를 해야 한단 말이다!”

“저 위선자 새끼들을 어떻게 믿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중에는 첩자가 아니라 순수 사파인도 존재했다.

그러나……

“아니, 무림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협력할 수 있는 거지…… 왜 그렇게 거칠게 반응해?”

“너 혹시 암천회냐? 암천회지!”

“금자로 석 냥……”

“암천회다! 암천회야!”

“어이, 어딜 가?”

돈에 넘어가지 않은 이들이 그리 많지 않다 보니, 소수의 의견은 묵살될 수밖에 없었다.

더더욱 큰 문제는 암천회의 첩자에게 걸어 둔 현상금이었다.

조금만 반대 의견을 내도 눈에 금이 떠오른 사파인들에 의해서 당장이라도 납치당할 것 같은 기세였다.

“어? 너 뭘 그리 숨기는 거야?”

문제는 의심이 워낙 많다 보니 그중 정말로 암천회에 소속된 칠성사병이 걸려든 것이었다.

몇몇의 칠성사병은 결국 버티지 못하고 품 안에 숨겨 둔 줄이 달린 대나무 통을 꺼냈다.

“제기랄!”

퍼엉!

대나무통 밑바닥에 달린 줄을 당기자, 통이 열리면서 붉은 빛깔의 연막이 튀어 올라 공중에서 터졌다.

“정말로 암천회다!”

“잡아!”

“이건 내 거야!”

칠성사병의 반항은 길지 않았다.

평균 실력보다 상회하는 힘을 지녔지만 근처에 무인의 수가 워낙 많았다.

특히나 돈에 눈이 먼 사파인 탓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포박당했다.

아직 정체를 들키지 않은 칠성사병은 괜히 추궁받을 것 같아 눈에 띄지 않도록 몸을 숨졌다.

‘젠장, 젠장……!’

작전은 실패했다.

귀주, 은신처.

“보고!”

칠성사병이 부복한 채로 외쳤다.

“옹안 인근 평원에서 적색 신호탄 여럿을 확인!”

“실패했나.”

보고 받은 요광이 담담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천선성.”

“예!”

“주서천 외에 귀주에 도착한 고수가 있는가?”

맹초혁이나 조명처럼 기존의 고수는 제외하고 보고해라.”

“정파에서 주서천을 비롯해 별동 및 지원 부대를 파견했으나, 아직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천기성의 말에 의하면 나흘에서 닷새 이내로 도착할 예정이라 합니다.”

“오늘 재정비를 마저 끝낸 뒤 휴식을 취하고 사흘 째에 습격한다.”

“존명!”

정보의 천선성, 두뇌의 천기성이 바쁘게 움직였다.

요광은 옆구리에 투구를 낀 채, 머리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새하얀 눈이 이마를 적셨다.

“시작인가……”

어딘가의 은선처.

아직 날씨가 추운데도 열이 올랐다.

방금 전 실패 보고를 들어서였다.

보고서에 주서천의 이름을 들었을 땐 짜증이 솟구쳐 참을 수가 없었다.

천기는 후우, 하고 심호흡으로 평정을 찾았다.

“이 정도면 오차 범위 내다.”

불구대천의 원수, 주서천과 금의상단의 관계 정도야 대충은 알고 있었다.

귀주 내부의 사파 세력을 돈으로 해결하는 방향 정도는 예상한 바였다.

꽤신군이 나타나 설득한 것보다 낫다.

‘상천육좌 중 둘이나 한자리에 있다면 요광이라도 무리다.’

사도의 영웅, 상천육좌 패신군.

천기는 패신군의 존재가 몹시 신경쓰였다.

주서천 만큼은 아니지만 암천회의 대계를 망가뜨린 장본인이니 신경을 안 쓸래야 안 쓸 수가 없었다.

‘문제는 최근 그 패신군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도대체 어디 간 거냐?’

변수가 신경 쓰여 아직 남아 있는 첩자나 천선성을 이용해 이 잡듯이 뒤져 봤지만, 흔적도 찾지 못했다.

‘무림에서 패신군을 알 만한 자라곤 없다.

그의 동생이라 주장하는 것들이 있지만, 어중이떠중이일 뿐이고 실상은 의형제 같은 게 아니야.

정말로 알 만한 자라곤 사도천주 정도인데…… 사문반란 이후로 심어 둔 첩자들이 전멸하다시피 사라져서 어찌할 수가 없다.’

첩자를 다시 심으려고 해도 사도천주의 경계가 워낙 심해서 어찌할 수가 없다.

반란을 겪었으니 당연하기도 하지만, 이젠 내부에 견제할 만한 세력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옥형성의 일부였던 소음문은 음신을 잃고, 사문의 존속을 위해 완전히 사도천주의 아래로 들어갔다.

견제 세력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어떻게든 목소리를 내서 틈을 찌를 수 있지만 지금은 그것마저도 불가능했다.

또한 사도천주가 무공만이 아니라 권모술수에도 능하고, 의심도 워낙 많다 보니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반란 후에 배신자나 적의를 찾아서 족친 탓에 새로운 첩자는커녕 기존의 첩자들만 해도 숨는 데 급급하여 이렇다 할 활동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천기는 의자에 등을 기대앉아, 하나 밖에 없는 손을 올려 탁자를 두드리며 한숨을 토해 냈다.

“남궁위무, 그자만 아니었더라면……”

얼마 전의 일을 생각하니 또 열불이 끓어올랐다.

무림을 경악시킨 대사건, 남궁위무.

정파의 위선을 비롯한 죄가 집중된 일이었다.

태풍의 핵인 권동제를 은거에서 이끌어 내고, 정파의 분열을 유도했다.

그러나 결국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작전도 터무니없는 방식을 통해서 실패했다.

범인이라면 꿈도 못 꿀 방식이다.

어떠한 영웅이라도 따라 할 수 없는 방식이다.

무공도 지위도 명예도 버렸다.

미래를 위해서 아무렇지 않게 버렸다.

그 짧은 시간 내에 행할 수 있는게 아니었다.

천기는 그런 전 무림맹주를 이해할 수 없었다.

“흐흐. 대단하구나, 대단해……

누군가에게 상을 주려 하면 그것조차 출신을 따지고 여러 명의 동의와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누군가를 벌하고 죄를 덮어씌우고 은폐하는 데는 하나가 된 듯이 움직이다니.”

천기는 비꼬듯 중얼거리면서 차갑게 웃었다.

그 역시 가만히 지켜보지 만은 않았다.

무림맹 존립을 위한 남궁위무의 희생을 어떻게든 이용하려 했다.

하나 무림맹의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처리가 훌륭했다.

손을 쓰면 어떻게든 다시 흔들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했지만, 아쉽게도 시간도 손도 부족했다.

사실상 천기가 천기성, 천선성, 천권성을 일임하는지라 식사는 물론이고 수면 시간까지 부족할 정도였다.

조금 더 흔들면 내부 세력의 결속을 약하게 만들거나, 배신자를 동원할 수 있었지만 비효율적이었다.

차라리 그 시간에 결전에 이길 계책을 세우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권동제는 어디 있나?”

“아직 무림맹 밖으로 나오지는 않은 듯 싶습니다.”

칠성사병이 그림자 밖으로 나타나며 답했다.

“상천육좌에게 변동 사항이 있다면 어떤 때도 상관없으니 보고하도록 하여라.”

복해빙궁이야 식량난으로 심각한 모양이니 약간의 경계만 하면 될 뿐, 그리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북해의 궁주를 제외한 상천오좌가 문제였다.

“최후에 승리하는 것은 암천회라는 것을 알려 주마.”

어둠 속에서 천기가 차갑게 웃었다.

슥슥슥.

비수의 날을 가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퍼졌다.

“무슨 일이냐.”

천추, 당명인이 기척을 느끼고 움직임을 멈췄다.

“천기 님이 보내신 지령서입니다.”

당명인은 칠성사병에서 지령서를 건네받아 읽었다.

“그리고 이건……”

칠성사병이 서류를 꺼냈다가 멈칫했다.

복면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염려하는 모습이었다.

“당가인가?”

“그, 그렇습니다.”

“상관없다. 보고해라.”

당명인의 얼굴에선 분노도, 슬픔도, 혐오도 느껴지지 않았다.

칠성사병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쉰 뒤, 글을 입으로 전달했다.

“당가의 가주, 당유기는 여전히 사천에 틀어박힌 채 움직이지 않습니다. 또한, 조금 지난 정보이나 무림맹주로서 입후보했었다고 합니다.”

“무림맹주?”

당명인이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결과는 아시다시피……”

“됐다.”

당명인은 비수를 소매 안에 집어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표정은 그림자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

다만 어딘가 모르게, 눈에선 독기가 흐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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