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궁…… 위무우……!”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피부위로 퍼런 힘줄이 돋고, 입술에선 핏방울이 똑똑 떨어졌다.
“이 미친 새끼야!”
욕이 절로 튀어나왔다.
천기는 현 상황에 분노를 넘어 질려 했다.
“사람이,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미쳤다는 말로만으로는 부족하다.
최초에 소식을 듣고 귀를 의심했다.
여태껏 온갖 고생해 무림맹의 분열을 노렸거늘, 허무하게 저지당했다.
그것도 정말로 터무니 없는 방법으로.
“진정해라.”
요광이 천기의 어깨를 툭 두들겼다.
“뿌드득!”
천기가 이를 꽉 깨물곤, 화를 참았다.
결전이 코앞인데 이성을 잃고 날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쉽게 믿고, 수긍할 수 있지?”
요광이 이해가 가지 않는 듯 중얼거렸다.
남궁위무의 의도를 모르는 건 아니다.
도리어 듣고 난 뒤에 그 방법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삼인성호(三人成虎)라 하여, 세사람이면 없던 호랑이도 만든다 했다.
하물며 무림맹은 물론이고 정보조직인 개방까지 나서서 여론을 조작 중이니, 그 위력은 대단할 수밖에 없다.
또한 돈이라도 받은 것인지 흑도의 하오문까지 돕고 있으니……”
주서천은 이번 계획에 전력을 실었다.
제갈상이 개방과 협조하는 동안 그는 하오문주 강능초에게 서신을 보냈고, 이의채에게도 힘을 빌렸다.
그야말로 정보력과 금력의 결집체였다.
“대중은 큰 거짓말일수록 더 잘 믿는 법이며, 또한 분노와 증오는 그들을 열광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그야말로 거짓말의 최고 효율을 불렀다.
약간의 진실을 포함한 거짓말.
작은 것이 아닌 큰 거짓말.
분노와 증오의 결집.
“무섭구나, 정말 무섭구나 남궁위무……”
사람으로서의 영역이 아니다.
무인이란, 특히 정파인은 명예를 중요시한다.
무공과 명예를 얻은 사람이라면 두말할 것 없다.
사람이란 나이를 먹으면 죽음도 죽음이지만 어떻게 죽을지를, 후대에 어찌 남을지를 중시한다.
그러나 남궁위무는 이 모든 것을 무림맹을 위해 포기했다.
아무렇지 않게 모든 걸 내려놓았다.
향후 위선의 대표이자, 무림공적이며 천하제일의 악인으로 남을 것을 알고도 받아들였다.
“제갈상……”
제갈상도 보통이 아니었다.
여론을 완벽하게 조정해 가며 최대의 효율을 보고 있다.
이 혼란 중에도 각 문파에게 적절한 연락을 전해 주고, 심지어 전쟁의 준비까지 맡고 있었다.
여러 군사진이 힘을 써주고 있다곤 하지만, 별다른 실수 없이 견제 및 조율을 한다는 건 쉽지 않았다.
“아직 섣부른 판단을 내리기는 힘들다, 천기.
그동안 침묵하다 낸 발표이니, 분명 의심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또한 정파의 위선에 실망한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면……”
“요광.”
천기가 요광의 말을 도중에 끊었다.
“사람이란, 생각보다 어리석은 동물이다.”
암천의 군사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애초에 사실 따윈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그딴 건 아무래도 좋다.”
“중요한 게 아니라니……?”
“정파인, 특히나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는 소속감이나 자부심이 대단히 짙다.
사도처럼 비겁하지 않고, 마도처럼 악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그로 인해 정도 외의 것들 낮잡아 보는 차별이 생길 정도다.
흑영부 사태를이용한 무림맹 분열은 그 점을 노린 계획이다.”
정도는 정도여야 한다.
위선이라 할지라도 선해야 한다.
헌데 그 사실 자체가 뒤집혔으니,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설사 사문의 어른이 쉬쉬하면서 숨기려 해도 제자들에겐 결코 넘어갈 수 없는 사항이었다.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처럼 명문정파의 경우 자부심만큼이나 타격이 컸다.
“스스로 걷는 길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 의문을 갖고, 그 마음의 상처는 심하면 주화입마로까지 이어진다.
사문에 대한 자부심은 사라지고, 의심과 실망으로 이어지겠지……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좋은 변명거리가 생겼으니 말이다.”
“설마……”
“그래. 남궁위무 탓이 라는 명분이자 변명. 책임전가다.”
요광이 조금 충격인 듯, 침음을 흘렸다.
천기는 다시 한번 이를 갈며 말을이어갔다.
“무림맹은 나쁘지 않았다. 사문은 나쁘지 않았다.
이에 소속된 자신 역시 나쁘지 않았다.
정말로 나쁜것은 전 무림맹주, 위선자 남궁위무의 탓이다.
그러니까 어쩔 수 없었다면서, 무의식적으로 자위하기 위해 맹신할지도 모르지.”
흐흐, 하고 조소가 흘러나왔다.
“이 흐름은 막을 수 없다.”
더 화가 나는 건,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여론조작을 막아내고, 다시 내부를 흔들려면 그만큼의 인력과 시간이 소모된다.
모처럼 만반의 태세를 했는데 다시 결전을 연기할 수는 없는 노릇 또한, 그사이 흔들어 둔 무림맹이 더 굳건해질 지도 모른다.”
남궁위무는 죄를 전부 짊어짐으로써 정파인의 양심을 없애버렸다.
진실이건 거짓이건 상관없다.
애초에 사실을 아는 건 일부일 뿐이며, 그들은 이를 밝힐 생각도 없었다.
“더 이상의 변수는 만들 수 없다.”
콰앙!
천기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책상을 후려쳤다.
“오차 범위는 아니지만, 그래도 어떻게 할 수 있다.
준비한 대로 계획을 시행해라, 요광.
더 이상 물러날 수는 없다.”
* * *
남궁위무는 죽었다.
대죄인으로서, 악인으로서 남겨진만큼 사후는 좋지 못했다.
어떠한 곳에도 묻히지 못했다.
사람들에게 사망을 확인받기 위해 목이 잘렸고, 따로 시신이 수거되어 불에 타 재가 됐다.
당연히 본가인 남궁세가로 가진 못했다.
그 대신 그 유골은 다른 곳에 뿌려졌다.
무림맹 본관에서 북쪽으로 반 시진.
남만의 밀림에 비견될 정도의 대나무 숲이 이어지고, 다시 반 시진을 걸으면 한적한 공터가 나왔다.
주변엔 여전히 대나무밖에 없지만 그래도 머리 위는 뚫려 있다.
“……”
주서천은 공터에 서서 옛 일을 떠올렸다.
‘여기도 오랜만이구나.’
기문진으로 둘러싸인 맹주의 은거지.
“전 맹주께선 지치거나 혹은 사적인 이야기를 할 손님이 온다면 이곳에 왔다고 합니다.”
한때 이곳에서 남궁위무와 검을 섞었다.
손녀와 선을 보지 않겠냐며 웃던 모습이 눈에 훤했다.
“어르신께선 여기에 오신 적 있습니까?”
주서천은 등을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권동제는 질문에 답변하지 않고 서 있었다.
“만족하십니까?”
최악을 최선으로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잘못된 것을 바로 잡으시고, 그 책임을 지게 만든 것에 만족하십니까?”
권동제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서 있었다.
“할 말이야 전에 했고, 그 잘난 고집과 신념 탓에 최악을 선택하게 됐으니 긴 말 하지 않겠습니다.”
남궁위무는 정백이 번복하지 않을 거라 말했다.
그래서 책임을 지는 걸 한 사람만으로 봐달라고 부탁했고, 암천회와의 결전을 위해 과정을 최소화했다.
괜히 시간을 끌고 싶지 않았다.
분열을 막기 위해서 차선이자 최악을 최선으로 선택했다.
분명, 생각해 보면 다른 방법이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급한 대로 결정을 지었다.
터벅터벅!
주저함 없이 앞으로 걷는다.
정직하게 걸었다.
그리고 발을 내디디며, 내공 없이 순수한 힘만 실어 오른쪽 주먹을 권동제의 뺨에 꽂아 넣었다.
퍼억!
정백은 피하지도 버티지 않았다.
주먹에 맞고 뒤로 볼품없이 쓰러졌다.
주서천은 정백의 멱살을 휘어잡고, 박치기를 선사했다.
빠악!
“잘 들어, 이 나이 거꾸로 처먹은 노인네 새끼야!”
가슴이 뜨겁다.
머리도 뜨거웠다.
“그대로 속세의 연을 끊은 채로 있었더라면 이러한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거고, 맹주께서 그렇게 돌아가시진 않았을 거다.
애초에 분열같은 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만반의 태세를 한 채 암천회와의 결전을 맞이했겠지.
그러면 지금보다 더 나은 결과, 더 적은 피해가 생겼을 거야!”
빠악!
“잘 들어라, 권동제! 나는 네가 싫다! 정말 싫다!”
마음 같아선 당장 죽이고 싶을 심정이었다.
“원수같이 싫은데도 살려두는 건, 네가 잘못됐다고 지적한 맹주님 때문이다!
널 죽이면 그분의 죽음을 개죽음보다 못한 것으로 만드는 거니까!”
한 사람이라도 더 힘을 구해야 할 때다.
무림맹과 사도천이 싫어도 협력한 것처럼, 권동제가 싫다 해도 해치거나 떠나보낼 수는 없었다.
암천회주라는 괴물을 처치하기 위해선 어린아이의 손이라도 빌려야할 상황이다.
“뒷사람에 맡기곤 강호를 떠났으면 더 이상 오지 말아야지, 이제 와서 잘못됐으니 바로 잡겠다고?
그럴 거면 애초에 떠나지를 말든가, 이 애송이 새끼가!”
빠악!
이마가 다시 크게 부딪치며 피가 튀었다.
“어쩔 수 없다면서 스스로의 행동을 정당화하지 마라.”
주서천이 타오를 듯한 눈으로 정백과 마주봤다.
“그 잘난 정도란 것에 대한 책임을 져!”
목소리를 높여 있는 힘껏 소리쳤다.
“어른이 되란 말이다! 이 철없는 시팔 새끼야!”
빠아악―!
정백이 틀렸다는 게 아니다.
몇 번이나 반복하지만 그의 말은 정론이다.
주서천 역시 그걸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흑영부란 조직은 필요악이나 잘못됐으며, 이를 조성한 무림맹 상층부는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전에도 말했다시피 시기상조라 생각했다.
바람직하지 않으나 어쩔 수 없다.
어쩔 수 없지만 바람직하지 않다.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올바른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권동제, 당신의 방식은 그저 올바를 뿐이다.’
이상은 그야말로 이상이다.
이상만으론 현실을 구제할 수 없다.
정말로 올바른 것으로 해결할 수 있었더라면, 천하는 진작 태평 성세를 누렸을 것이다.
몇십 년 동안 이어질 기나긴 전란으로 인한 수많은 희생자들의 숫자를 줄일 수 없었다.
무림인은 물론이고 조금이라도 관련된 자들도 그 전란에 휘말렸다.
심지어 무고한 사상자도 발생했다.
정말 많은 사람이 죽었고, 여러 비극을 낳았다.
“나 역시, 정당화할 생각은…… 없다.”
정파의 어둠을 알고 있음에도 내버려 두었다.
‘흔들리지 마라.
멈춰 서지 마라.
다음 방안을 생각해라.’
언제나처럼 최면을 걸듯이 중얼거렸다.
“사형? 사형!”
죽림에서 벗어나자, 밖에서 기다리던 낙소월이 주서천의 이마를 보고 깜짝 놀라며 다가왔다.
그녀는 곧장 소매를 들어 사형의 이마에서 흐르는 피를 슥슥 닦으며 걱정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괜찮으세요? 무슨 일 있던 거예요?”
“괜찮아. 넘어졌을 뿐이란다.”
주서천이 옅게 웃으며 답했다.
겉과 달리 속은 일념으로 가득했다.
‘암천회를 부순다.’
낙소월의 얼굴을 바라보니 옛 기억이 떠올랐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결코 잊혀지지 않는 광경.
전란의 시대, 영웅들의 등이 보였다.
‘아무래도 나는 그대들과 등을 나란히 할 위인은 아닌가 보오.’
마음의 씁쓸함을 뒤로 한 채, 신념을 굳혔다.
* * *
무림맹의 뒷수습은 순탄하게 진행됐다.
결론만 말하자면 무림맹은 분열하지 않았다.
“남궁위무! 검악놈!”
흩어지던 마음은 공적 아래에 하나로 묶였다.
실추된 명예는 회복됐고, 의구심은 지워졌다.
몇몇 소수가 현 상황을 의심하긴 했으나 어디까지나 소수일 뿐이었다.
별다른 영향력을 끼치진 못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남궁세가가 나서서 사과에 나섰다.
“악의 가문이 아닌가!”
“흥! 알고도 모른 척하다니!”
남궁위무가 죽어 분위기는 해소된 듯 싶었으나, 몇몇 갈 곳 없는 원망이 세가로 향했다.
그러나 이 역시 일부에 불과했다.
무림인 대다수는 남궁세가를 보고 안타깝다며 동정했다.
“솔직히 말해서, 남궁위무가 세가의 탓은 아니 지 않은가?”
“그렇고말고. 피해자면 피해자였지, 가해자는 결코 아니라고 생각하네.”
“나 역시 그리 생각하네. 그리고 남궁세가는 곧장 대대적으로 사과하고, 잘못을 인정하여 분노한 피해자 유가족들을 초청해 피해 보상도 해주지 않았나?”
“그래, 저런 게 사죄하는 태도지!”
“무엇보다 남궁세가는 소림과는 달리 관계를 직접적으로 매듭지었지 않나.”
무림에선 은원관계를 중요시한다.
약 사백 년 전, 소림사는 혈승이라는 최악의 치부이자 대마두를 배출한 탓에 비난을 받았다.
은원관계의 중심이 된 소림사는 책임을 지려 혈승을 쫓았으나, 끝내 죽이지 못하고 놓쳐버리고 만다.
이후 태산북두라 일컬어지던 소림사의 명예는 크게 실추되고, 연쇄 효과로 시주의 발걸음도 줄어들었다.
많다 못해 넘치던 속가제자 역시 잠깐 동안 크게 줄어들어 재정이 여러모로 크게 줄어든 적이 있었다.
이 훼손된 명예를 회복하려 노력한 고생을 생각하면 아찔해질 정도다.
어쨌거나, 이처럼 치부이자 흑역사가 된 원인을 직접적으로 해결하냐 못하냐에 따라 조직의 평가도 달라졌다.
남궁세가의 경우엔 성공적이었다.
또한,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의 견제 없이 제갈상의 조율 아래 지지를 받고 있는 덕도 컸다.
“그나저나, 솔직히 난 남궁세가보단 누가 무림맹주에 오를지가 더 신경 쓰이네.”
“오! 나도 마침 그 말을 하려던 찰나였네!”
정파연합의 수장, 무림맹주.
정파인, 아니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지위다.
그 권위야 두말할 것도 없다.
“무림맹주? 그래 봤자 구파일방, 오대세가의 꼭두각시가 아닌가!”
“예전 같았더라면 자네의 말에 동의했겠지만, 그것도 또 아닌 듯하네. 검악을 보면 알지 않나?”
“흥, 다르게 말한다면 이번 일로 인해 동일한 상황을 저지하려고 무림맹주의 권위를 떨어뜨릴 걸세.”
무림맹주가 공석이 됐다.
단연 사람들은 그 공석을 누가 차지할지 궁금해했다.
무림맹주 지위가 화두에 오르며 소란이 일어났다.
참고로 맹주 대리인 군사 제갈상은 어디까지나 대리일 뿐이다.
맹주가 되기 위해선 혜안과 성품만으론 부족하다.
무림의 세계답게 높은 경지의 무공이 요구됐다.
“정황상 검신밖에 없지 않나?”
“확실히 검신이 대단하긴 하나, 솔직히 말해서 나이가 너무 어리지 않나.”
“나이가 무슨 상관인가?
주서천 대협이 지금까지 이룩해 둔 업적을 보면 그런 건 중요하지 않네.”
“검신이 대단하다는 건 인정하네만, 그건 어디까지나 무(武)에 대한 것일 뿐일세. 잘하는 것과 무언가를 남에게 가르치는 게 다른 것처럼 말이야.
그는 영웅일지는 몰라도 훌륭한 지도자냐고 묻는다면……”
정파만이 아니다.
온 무림이 무림맹의 행보에 집중했다.
무림맹, 회의실.
강호가 소란으로 가득 차 있는 동안, 무림맹 상층부의 분위기는 조금도 밝지 않았다.
분위기가 무거운 건 둘째치고, 아무도 말을 하지 않고 침묵만을 유지했다.
‘복잡한 심경이로군.’
‘맹주께서……’
‘검성이 그리 가시다니!’
남궁위무에 관련된 진실을 아는 자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장로진처럼 흑영부와 밀접하게 관련된 자들은 전원 알고 있었다.
무림맹 장로야 두말할 것 없었다.
사실을 알고 있는 걸 넘어 이번 일에 동참했다.
현 장로진이 남궁위무에 대해 지닌 감정은 안타까움과 미안함이었다.
평소에는 각 세력의 영향력 다툼 및 견제를 위해 보이지 않는 싸움을 하기는 하나, 그래도 전 세대에 활약한 고수들답게 전우로서 나름 존경하고 있었다.
그러한 위인이 대마두이자 무림공적을 자처하여 죄를 전부 뒤집어썼다.
남궁위무 역시 흑영부를 재편성하고 이를 묵인하기는 했으나, 의도만큼은 좋았으며 또한 남의 죄까지 전부 받아들여 책임을 졌으니 기분이 불편했다.
“나무아미타불……”
누가 말하지도 않았는데 혜노가 염불을 외웠다.
소림사 장로의 중얼거림에 마음은 더더욱 무거워졌다.
“맹주 후보로서 추천하실 분 계십니까?”
맹주의 자리에 앉은 제갈상이 물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했다.
평소라면 망설이지 않고 사문을 추천했을 것이다.
하나 최근의 사태로 인해 그럴 수가 없었다.
‘다음에 얼마나 잘해야 하지?’
‘부담스럽다.’
‘잘못하면 대박은커녕 쪽박이다.’
‘정녕 잘해낼 수 있는 건가?’
바로 부담감이었다.
무림맹주는 정파인으로서 최고의 지위이다.
무림맹주라는 건 사실상 정파제일인이라 인정받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자연히 사문 역시 부각된다.
어떤 세대건 무림맹주가 속한 문파 혹은 가문은 당대 최고의 영예를 누리며 온갖 혜택을 갖는다.
다만 이 권리만큼 무림맹주는 성과를 만들어 의무를 수행해야 했다.
문제는 사실이 아니나 전대의 무림맹주 탓에 다음 대 무림맹주로서 부담해야 할 것이 늘어난 것이다.
‘오십 년 전에야 부패척결에 성공한 뒤라 기본적으로 두터운 신뢰층을 얻고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 무림맹주가 절대 권력으로 부정부패를 만들어낸 탓에, 감시와 의심이 늘었다.
이를 만회하여 다시 신뢰를 쌓으려면 전대를 뒤덮을 정도는 아니어도 최소 우수한 성과를 내야 한다.’
‘노력하는 것에 비해 잃는 것이 너무나도 많다.’
‘끄응!’
정말로 선뜻 나설 수가 없었다.
책임질 것이 너무나도 많아서였다.
권리에 비해 의무가 거대했다.
다혈질에 비교적 머리가 좋지 않은 팽군평조차도 입을 꾹 다문 채 움직이지 않았다.
“군사, 아니. 맹주 대리. 자처한 후보는 없소?”
“한 분 있습니다.”
“정말이오? 그게 누구요?”
장로들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당가의 가주, 독왕 당유기입니다.”
“무슨!”
쾅!
팽군평이 탁자를 후려치며 씩씩 거렸다.
그 외의 장로진 역시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제정신인가?”
“미쳤군!”
“허, 참……”
대부분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천에서 뭐라 왔소?”
황견이 제갈상에게 물었다.
“아들이 저지른 배신, 아비로서 무림맹주가 되어 분골쇄신하겠다고 하더군요.”
“지랄!”
황견이 흥, 하고 코웃음 쳤다.
“여전히 기분 나쁜 사내로다.”
장로진들은 금세 당유기의 속내를 파악했다.
“흑영부의 죄는 전 맹주께서 안고가셨으나, 당명인의 배신으로 인한 피해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무림맹주가 되어 유야무야 넘어갈 셈이로군요.”
우백의 설명에 경인사태가 불쾌한 듯이 말했다.
“세간에는 맹주가 권리로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이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도 그럴 생각이라니, 담이 크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정신이 나갔다 해야 할지……”
곳곳에서 어이없다는 듯이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당유기……’
제갈상이 눈을 가늘게 뜨고 생각에 잠겼다.
‘당분간 흑영부는 운영할 수 없으니, 당가의 권리도 약해질 것을 걱정하고 나선 건가. 대범하구나.’
오랫동안 해온 것이 있으니, 권리가 곧바로 사라지진 않는다.
하나 앞으로 있을 전면전에서 실적이 영 좋지 않으면, 어떤 취급을 받을지 뻔하다.
그 외에도 권동제의 생존이라거나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이러한 행동에 나선 것이 분명했다.
아무도 무림맹주를 맡으려 하지 않으니까.
‘당신의 뜻대로는 될 수 없다.’
사천, 당가.
“하하하하!”
당유기는 기분 좋은 듯이 미소 지었다.
평소처럼 음습하고 우울한 기색이 아니었다.
신기하게도 정말로 즐거운 듯이, 유쾌하게 웃었다.
당가의 가주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같이 깜짝 놀라며 눈을 의심할 광경이었다.
“하늘이 당가를 돕는구나!”
믿었던 아들, 소가주의 배신을 비롯해 과거의 망령인 권동제의 등장으로 당가는 위기에 빠졌다.
매일매일 잠을 못 이루며, 앞날을 걱정하며 어떻게든 빠져나가려고 안간힘을 썼다.
무림맹이 모르게 자객을 보내기도 했으나 처참하게 실패했다.
신분을 숨겨야 하는 흑영부에서 사용되는 독을 제조하여 백여 명의 일류 자객들에게 지원까지 해주었다.
그러나 죽이기는커녕 상처 하나 주지 못했다는 결과를 들었을 땐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이후 아들에 대한 원망은 점차 커져만 갔고, 검신의 아이를 낳지 못한 딸의 무능에 짜증이 났다.
그러나 전화위복이라 하였던가.
얼마 뒤 남궁위무가 자처해 희생하고, 죄를 짊어짐으로써 당가의 죄는 깨끗하게 사라졌다.
“당가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하겠다.”
언제나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