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十章 (191/254)

보름 후, 이름 없는 산.

아직은 눈 내리는 날씨다.

산을 오를 때마다 사박사박하고 소리가 났다.

바위 위에서 가부좌를 틀고 명상중이던 소년이 감았던 눈을 떴다.

“서신을 보냈는데도 질리지도 않나보구나.

자리를 옮겼는데도 잘도 찾아왔……”

소년, 정백이 말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어딘가 모르게 초탈한 느낌의 표정도 변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군.”

정백은 게슴츠레 뜬 눈으로 산을 내려 보았다.

사람은 물론이고 짐승도 오르기 힘든 가파른 언덕, 빼곡하게 자리 잡은 나무들 사이로 청년이 보였다.

“강호의 어르신께 인사드립니다.”

청년, 주서천이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화산파의 주서천이라고 합니다.”

“검신.”

정백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서천을 내려다 보았다.

“은거한 사이, 중원 무림에 여러 일이 있다곤 들었으나…… 설마하니 정말일 줄이야.

이립도 되지 않은 아이가 심상의 구현을 이루다니, 믿기지 않는구나.”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

정백은 주서천을 보자마자 경지를 알아챘다.

만약 강호의 소문을 듣지 못했다면 정백 역시 

주서천을 보고 반로환동한 고수라 생각했을 것이다.

“손님이 찾아왔는데 제대로 된 대접을 하지 못해서 미안하군. 보다시피 이런 곳이라 말이야.”

자객 외에도 귀찮은 것들이 꼬여서 일부러 인적 드문 장소를 골라 와서 시간을 보냈다.

식사야 대충 대자연의 뿌리로 때우면 그만이고, 추위나 더위야 절대고수에겐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잠 역시 눕는 곳이 침상이요, 하늘이 이불이다.

“대접이라니요, 큰일 날 소리 하십니다.”

주서천 입장에서도 정백은 한참 위의 대선배였다.

연배나 항렬 등 사실상 최고위가 아닌가.

대접을 했으면 했지, 결코 받을 수는 없었다.

“그러지 말고 이 위로 올라와라. 차 한 잔은 무리지만, 무학에 관한 건 얼마든지 이야기해 주지.”

사람들과 이야기하지 않은 지도 오래됐다.

동일한 경지의 무인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었다.

정백 권동제는 절대고수와의 뜻깊은 대화를 기대하면서 입가에 미소를 그려냈다.

“그러면 몇 가지 여쭤 봐도 괜찮겠습니까?”

“물론이다.”

“어르신께서는 암천회에 대해서 알고 계신다고 하셨습니다만, 사실입니까?”

“그렇다.”

정백은 눈썹 하나 움직이지 않고 답변했다.

“하면 어찌하여 이런 행동을 하고 계십니까?”

“흐음?”

“암천회라는 공공의 적을 두고 함께 싸우지 못할망정, 그 주먹을 같은 아군에게 겨누다니요.

무언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시지 않습니까?”

지금 이러는 것도 시간 낭비다.

하루라도 빨리 암천회와의 결전을 준비해야만 했다.

막말로 최대의 적을 앞에 두고, 허공에 삽질하는 것과도 같았다.

“그 연유는 두 가지다.”

정백은 후배의 비난에 연연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어딘가 모르게 순수한 얼굴로 답했다.

“암천회란 건, 결국 새외세력이나 마도이세의 확장 세력에 준하는 놈들에 불과하다.

설사 지금 흔들린다 할지라도, 힘을 합친다면 얼마든지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비록 수많은 희생을 초래하나 결과적으로 무림은 암천회를 막아냈다.

“나머지는 무엇입니까?”

“어쩔 수 없다며 악행을 정당화하지 마라.”

정백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정론이로군요.”

그야말로 정론이었다.

올바르고, 순수했다.

“그러나 시기가 맞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주서천의 목소리 역시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지금 무림맹이 분열된다면 걷잡을 수 없습니다.

최악, 사도천과의 동맹은 무효화되고 암천회의 침공을 막지 못하고 패할 수도 있지요.

권동제 어르신의 생각을 이해 못 하는건 아닙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지금 그 정론을 따르기에는 안 좋지 않습니까.”

“검신.”

정백이 바위에서 내려와 주서천 옆에 섰다.

“다시 한번 말하마. 대의를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악행을 정당화하지 마라.”

“……”

“사람을 고문하고, 그 가족을 납치하여 협박하거나 때로는 입에도 담을 수 없는 방식을 거쳐 무림의 평화를 얻는들,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그런 건 정도가 아닌 사도나 마도라 칭한다.”

주서천 역시 표정 변화 없이 정백과 마주 보았다.

“정도는 올바르기에 정도다.

상황에 따라서 어쩔 수 없다, 어쩔 수 없다면서 넘기게 된다면, 사람은 그걸 면죄부인 양 쓰면서 썩어 문드러질 것이고, 다른 것으로 변질되겠지.

그러한 경우를 몇 번이나 보았다.”

오십 년 전, 무림맹 상층부의 부패도 그리 시작됐다.

어쩔 수 없다고 말하며 점차 사람의 욕심과 이기심으로 추악하게 변해갔다.

명예를 지키지 않으면 사문에 큰 영향을 끼친다며, 쇠락할 것이라면서 변명하며 악행을 저질렀다.

“전체를 위해서 죄인도 아니고, 아무 죄 없는 그 가족을 납치해서 온갖 악독한 짓을 저지르고 희생시키는 것 따위 용납 받을 리 없다.”

“어르신께서 어째서 그러한 모습을하고 계시는지 알 것 같습니다.”

순수함.

산을 뒤덮은 눈처럼 새하얀 순수함.

소년의 눈 안에 노인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위무, 아니 무림맹주는 이를 묵인한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또한 나나 맹주나 시간이 그리 많은 것도 아니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일이니 자연으로 되돌아가기 전에 승부를 봐야 하겠지.

이 또한 ‘어쩔수 없다’ 가 아닌가?”

“맞는 말입니다.”

주서천이 답하며 검을 뽑았다.

말만 들으면 틀린 것 하나 없었다.

“확실히 흑영부도, 무림맹 상층부도 잘못됐습니다.

정도를 걷는 자로서 해서는 안 될 짓을 했지요.

그에 따른 합당한 책임과 벌을 받아야 합니다.”

대의를 위해서 소를 희생시켰다.

그러나 희생이란 건 장본인에게나 통용되는 말이다.

타인에 의한 희생은 강요이고 악행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아무리 사람들을 위한 것이더라도 해서는 안 될 행동이다.

그걸 대의를 위해서라며 합리화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아까 말했듯이, 지금은 아닙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어르신께선 현실을 배제하고 너무나도 이상적인 이야기를 하고 계십니다.”

“……”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암천회라는 최대이자 최악의 적과의 결전을 앞에 둔 지금, 상층부를 벌하면 정파인들은 분열할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수많은 인명 피해가 날 것이라는 것, 인지하고 계십니까?”

“그러나 지금이 아니라면 처벌할 수 없다.”

암천회와의 결전 이후면 늦다.

남궁위무도, 장로진도, 정백도 전부 끝난 후에 받아들이기에는 나이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설사 아직 죽을 나이가 아니라고해도, 앞으로 겪을 대전쟁을 통해 그들은 불명예가 아닌 무림을 지켜낸 위인으로서 명예롭게 죽을지도 모른다.

그리하면 여태껏 저지른 행위들이 어둠 속에 묻혀버릴 터.”

정백은 좋게 말하면 정파인의 힘을 믿는다는 것이고, 나쁘게 말한다면 현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설사 무림맹이 분열할지라도 승리하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반면 상층부의 부패는 지금 벌하지 않으면 여태껏 해온 일들의 대가를 받지 못할 거라 생각한다.

“……”

“……”

두 절대고수의 대화는 이어지지 못했다.

서로의 의견이 양립되지 못하고 충돌했다.

어디도 틀리지 않았다.

다를 뿐이다.

그저 무엇을 더 우선하느냐가 문제였다.

주서천은 보다 많은 사람을 구하길 원했다.

정백은 대의를 위한 희생을 저지하기를 원했다.

또한, 그에 따른 책임을 지기를 바랐다.

“완고하시군요.”

남궁위무의 말대로다.

설득이 가능했다면 이러한 문제조차 생기지 않았다.

정백의 신념은 확고했다.

무슨 말을 해도 전혀 듣지 않을 것처럼 느껴졌다.

혹시나 해서 대화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 말해보았지만, 역시나의 결과였다.

“대화로 풀지 못해 아쉽습니다.”

“힘으로 제압할 생각인가?”

정백의 표정이 일순간에 사나워졌다.

“어르신, 저와 내기하시지 않겠습니까?”

“내기?”

“예. 조건부로 비무하여 승패에 따라 상대방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입니다.”

“비무라…… 그리운 말이야.”

정백 역시 과거에는 다양한 무인들과 서로의 무학을 견식하면서 경험을 쌓고 깨달음을 얻곤 했다.

또한 지금처럼 의견이 좁혀지지 않는다거나 하는 일이 있으면 무공으로 결판을 내기도 했다.

“어르신께서 이기신다면 어르신의 의견을 인정하고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 흥미가 동하는 부분은 아니네만.”

상천의 고수에게 인정받는 거야 싫진 않다.

일반인 입장에선 평생의 영예를 누릴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욕심 없는 정백에겐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검신으로서 권동제의 행보를 공식적으로 지지하여, 그 뜻을 잇도록 하겠다는 의미입니다.”

“그 말, 진심인가?”

정백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예.”

제안을 수락하지 않을 수가 없는 사안이었다.

정파의 부패와 위선을 없애기 위해 일평생을 바쳤지만, 결국 사라지지 않았다.

기성세대가 사라지고 신세대, 그중에서도 영웅들이라 불리는 이들을 앉혔지만 무림은 변하지 않았다.

은거 도중 믿을 수 없는 소문을 듣게 됐고, 설마 했던 기대는 실망으로 변하면서 강호에 출두했다.

이후 그는 제자를 들이지 않은 걸 뼈저리게 후회했다.

‘이번에 해결한다 할지라도, 다음에 문제가 된다.

누가 날 대신해서 위선과 부패를 막을까?’

사람의 생명은 결코 무한하지 않다.

상천이라는 이름의 절대고수 역시 마찬가지다.

마음 같아선 평생 동안 위선자를 처단하며 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으니 누군가에게 대신 맡겨야 했다.

정도의 영웅이자 상천의 절대고수.

주서천은 그 일을 맡기에 최적의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 같군.”

“어째서입니까?”

“검신, 그대가 내기에서 승리한다면 나보고 위선을 모른 체하라고 할 것이 아닌가?

미안하지만 그럴 생각은 죽어도 없다.”

무인이라면 고수일수록 자존심이 높기 마련이지만, 정백에게는 그러한 모습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손주, 아니 증손주 정도 되는 연령의 아이가 상대임에도 패배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말했다.

“승부에 따라 굽힐 신념 이었다면, 애초에 강호에 출두하지도 않았다.”

“요구 사항을 아직 말하지도 않았는데, 너무 섣부른 판단을 하신 건아닙니까?”

“……?”

소년의 모습을 한 절대고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요구 사항이야 정해져 있지 않은가.

“이해가 안 가는군. 이번 사태를 모른 척하고, 물러나 달라는 것 외에 또 있겠나.”

그 외에는 직접 찾아올 이유가 없다.

“조금 다릅니다.”

“다르다면……?”

“그건……”

주서천이 입을 열자 정백이 눈을 크게 떴다.

* * *

암천회주가 밀정의 보고에 눈살을 찌푸렸다.

“주서천이 권동제를 찾아갔다.”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천기가 부복한 채로 회심의 미소를지었다.

“무슨 수단을 써도 권동제의 신념을 꺾을 수는 없습니다. 그리 쉽게 꺾일 신념이었더라면, 오십 년 전 그 난리를 일으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오십 년 전, 권동제는 무림맹 상층부와 앙숙이었다.

그러나 화해할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무림맹 상층부는 권동제에게 권위와 재산 및 명예를 약속하며 악연을 청산하기를 제안했다.

하나 권동제는 제안을 모조리 거절하고 스스로 고행의 길을 택했다.

그 선택이 내전을 불러들였다.

“사람은 부조리한 사회를 겪게 되면서 어쩔 수 없다는 상황을 인식하고, 적절한 선에서 타협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권동제에겐 그러한 타협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지요. 그는 현실을 모르는, 힘만 내세운 고집 센 어린아이일 뿐입니다.”

암천회주는 안심한 듯 침음을 흘리면서도 가슴 한 구석에는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주서천, 또 무슨 수작을 부릴 생각이냐.’

평생을 바쳐 계획한 것이 한 사람 탓에 무너졌다.

그 외의 방해꾼들도 있었지만 주서천 정도는 아니다.

그 경험이 암천회주의 마음에 불안감을 남겼다.

“무림맹 측에선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나?”

“그럴 줄 알고 사도천을 포함하여 감시 중입니다.”

고개를 든 천기가 눈을 빛내며 대답했다.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사도천은 무림맹의 정세 탓에 협력 관계 자체를 재논의 중입니다.”

사도천이 무림맹과 협력 관계가 된건, 반란으로 인해 공동의 적이 감소해 암천회를 감당할 수 없어서다.

그러나 정작 힘이 되어줄 무림맹이 분열된다면 협력 자체가 무의미해지니, 재논의 할 수밖에 없었다.

“무림맹은 아직까지도 이렇다 할 공표를 내지 못한 채, 침묵하고 있습니다. 나날이 비난이 늘어나는 추세인데, 굳이 손 쓸 필요도 없을 정도입니다.”

사실을 부정하기에는 명확한 증거가 많다.

당명인은 입으로만 떠벌린 것이 아니다.

흑영부가 필요에 의해서 무고한 사람을 납치하거나, 감금하여 고문한 이들의 명부를 공개했다.

친인척이 그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와 무림맹의 방문을 두들겼는데, 난리도 아니었다.

그 밖에도 자금줄이 되어 준 재력가의 편의를 봐주는 등, 전자만큼은 아니나 부조리가 발견됐다.

“하나 부정할 수 없다고 긍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요.

그저 예정된 파멸을 맞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천기는 다시 시선을 아래로 돌리며, 주먹을 쥐었다.

‘이번에는 아무것도 못 할 것이다.’

막아낼 수 없을 것이다가 아니다.

이미 최악의 결과를 막아내지 못했다.

무림맹의 분열은 현재진행형인 상황이었다.

‘지가이여전(知可以與戰), 부가이여전자승(不可以與戰者勝)라 하였다.

싸울지 말지의 여부를 아는 자가 승리하는 법이다.’

손자병법에서 말하기를,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제일이라 하였다. 그 말대로다.

분열한 무림맹, 아니, 무림은 오합지졸만 남을 터이니 각개격파해서 무찌르고 정복하면 끝이다.

정도와 사도, 마도는 암천에 지배되리라.

* * *

산 중턱의 평지, 눈밭 위에서 호흡한다.

주서천은 정백과 마주 본 채로 정신을 가다듬었다.

“규칙은?”

“상대에게 패배 선언을 받아내면 됩니다.”

“단순해서 좋군.”

정백은 몸을 풀듯 오른팔을 빙글빙글 돌렸다.

‘권동제, 정백.’

한때 천하제일의 무인으로 거론됐다던 절대고수.

지고의 경지를 이룬 지 어언 오십 년이나 된 괴물이다.

겉모습도 사상도 어리나 무력은 상상 이상이라 전해진다.

남궁위무에게도 조심하라는 경고를 들었다.

또한 정말로 놀라운 건, 권동제가 어떠한 지원도 없이 독학으로만 무공을 공부했다는 부분이었다.

기연이라 일컬어지는 영약도, 절세신공도 없다.

강호를 떠돌며 투쟁이라는 삶을 통해서 견식을 드높이고 공부하고 싸워가며 스스로 깨우쳤다.

천재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어쩌면 암천회의 등장 전 권동제가 은거를 깨고 강호에 출두했다면 결과는 달랐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의 위상을 지닌 고수였다.

괜히 과거의 무림맹이 악연을 청산하고 화해하려던 게 아니다.

비록 그 무명(武名)이 오십 년이란 세월이 흘러 많이 잊혀지긴 했으나, 얕볼 수 없다.

‘방심하지 말자.’

도사도 승려도 아님에도 온갖 욕구를 배제했다.

인내한 게 아니다.

무공에 미쳐 있어 조금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무공 외에 정도라는 신념 하나뿐인 천생 무인이 오십 년 동안 은거하면서 잠만 잤을 리는 없다.

“선수를 갖겠다.”

정백이 왼발과 오른팔을 뒤로 뺐다.

무릎은 살짝 굽히고, 회전을 담으려는지 허리도 돌렸다.

왼팔은 주먹을 쥐지 않고 어중간하게 핀 채로 허리 부근까지 들어올리기만 했다.

“……?”

주서천의 눈빛에 의문이 묻어났다.

“무변정안권(無邊正安拳)……?”

무변정안권은 권동제가 창공한 독문무공으로 복잡한 묘리는 없으나 안정적이고 위력이 높은 무공이다.

기초에 충실하고 수많은 경험이 녹아들어 다양한 무공에 대응할 수 있는 것이 장점으로, 그야말로 ‘정도’ 라는 걸 잘 표현한 무공이었다.

‘무변정안권이 아니다.’

무공의 기초란 자세에서부터 나온다.

그 기초를 중점으로 한 무변정안권은 준비부터 안정적이었다.

용궁을 받친 아홉 개의 기둥처럼 흔들림이 없어야 하며, 단단해야 한다.

들은 바에 의하면, 권동제는 공수 모두 완벽하여 빈틈 하나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지금은 자세조차 제대로 잡지 않은듯했다.

혹시 강호의 선배로서 후배에게 사정을 봐주려고 그러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품었다.

‘이상하다.’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가슴 한구석이 싸했다.

무언가가 등골을 훑고 지나갔다.

불안과 의문이 치솟는다.

정답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육감을 드높이며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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