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오오오오오오-!
용의 울음소리가 메아리쳤다.
지축을 뒤흔들 정도의 크기였다.
주서천도 이 정도의 크기는 처음이었다.
후위의 일행이 당하지 않도록 정면에만 집중했다.
“……!”
선착장 위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사람들이 잠시 멈 칫했다.
용후에 압도당해 몸이 굳었다.
‘빨리!’
일반인에게도 피해가 있을지 몰라서 위력은 줄였다.
단순하게 성량만 높여 위압감을 준 것 뿐이다.
그 대신에 소중한 시간을 벌었다.
장전된 투석기가 날아오기 전에 바다를 가르며 유성 처럼 쏘아졌다.
“죽어라, 주서천!”
유성처럼 쏘아지는 그의 육신은 가히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선착장 위의 무인들은 겁먹지 않았다.
비록 평소의 흑의 차림은 아니었으나 주서천은 이들을 보고 직감적으로 칠성사병이란 걸 깨달았다.
‘자하개벽!’
콰르르!
우레가 쳤다.
검에서 뿜어진 괴성이었다.
섬광이 번쩍이면서 검신을 휘감은 강기가 정면을 휩쓸었다.
“크아악!”
“아악!”
쿠앙!
허리 뒤로 검을 숨겼던 칠성사병 무리가 공격다운 공격을 하지 못하고 허무하게 날아가 버렸다.
자하검결의 제일식으로 공격을 날린 주서천은 눈을 빠르게 굴려 투석기를 찾았다.
‘일곱 대!’
바위를 옮기며 장전하는 게 보였다.
‘지독한 놈들!’
웬 유성이 날아와선 처박혔다.
옆에서 동료가 비명을 터뜨리며 날아갔는데도 놀란 모습을 안 보였다.
자기 일을 묵묵히 잇는 걸 보니 칠성사병이 틀림없다.
‘이래서 암천회란 것들은!’
병졸임에도 하나같이 웬만한 일류무인 못지 않다.
요광의 인재 육성만큼은 상천칠좌다.
‘고향 땅을 밟자마자 기뻐하지도 못하고, 싸워야 하는 내 신세야!’
하지만 어쩌랴.
암천회와 척을 진다는 것이 이러한 의미인데.
꽈아악.
오른팔을 활시위처럼 뒤로 당긴다.
그리고 숨을 힘껏 내뱉으면서 손에 쥔 검을 던졌다.
쐐애애애액!
검신에서 햇빛을 반사하며 번쩍였다.
어떠한 초식을 담은 게 아니다.
무식하게 던진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검을 투척한 사람이 상천칠좌였다.
검수가 쏘아낸 검이 투석기에 처박혔다.
쿠아앙!
“으아악!”
재앙의 시작이었다.
용연을 날려 일곱 대 중 한 대를 박살냈다.
“죽어랏!”
다섯의 칠성사병이 달려들었다.
개개인이 일류의 무인들이다.
움직임에 군더더기 하나 없었다.
그러나 상대가 나빠도 너무 나빴다.
주서천은 일권을 내질러 검을 쥔 무사의 흉부를 후려쳤다.
우드득하고 갈비뼈가 부러져 폐를 찌른다.
“커헉!”
칠성사병이 피를 울컥 토해내며 검을 떨어뜨렸다.
‘넷.’
검을 도중에 낚아챈 뒤 반 바퀴 돌려 바로 잡았다.
서걱!
순식간이었다.
곧바로 휘둘러진 검에 정면의 칠성사병이 둘이나 몸이 수평으로 갈라지며 나누어졌다.
쐐-액!
좌우에서 각각 검과 도가 사선을 그었다.
주서천은 유령보로 흐릿해지며 동시에 가속했다.
후웅!
‘아뿔사!’
검도 도도 목표를 베지 못했다.
그 이후 어떻게 될지는 뻔한 일이었다.
“크아악!”
“아악!”
어깨 죽지에서부터 허리까지 혈선이 그어졌다.
주서천은 다섯 명을 제쳐 투석기를 검으로 베었다.
“조정은 됐으니까 쏴!”
최악의 적이 다가오자 칠성사병이 다급해졌다.
“어림없다!”
주서천은 투석기에 장전된 바위를 들었다.
집채만 한 걸 간단히 드는 모습은 공포 그 자체였다.
“하압!”
입에서 기합을 터뜨리며 바위를 던졌다.
포물선을 그려낸 바위는 그대로 투석기 위에 떨어졌다.
콰아앙!
“으악!”
바위를 날릴 준비를 하던 칠성사병무리가 충격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뒤로 물러났다.
볼썽사납게 넘어지진 않았지만, 투석기가 망가진 걸보고 아연실색했다.
하지만 그사이 나머지 투석기의 발사 준비가 완료됐다.
“쏴!”
퉁!
첫 번째 투석기가 발사에 성공했다.
바위가 포물선을 길게 그리면서 허공을 유영했다.
‘짜증날 정도로 우수하구나!’
사람이 위험해지면 초조해지거나 평정심을 잃기 마련이다.
각도나 방향을 잘못 계산할 수도 있는데, 칠성사병에겐 빈틈이 없었다.
아무래도 명령권자가 천기성인 모양이었다.
쐐-액!
칠성사병에게서 빼앗은 검이 대기를 가르며 쏘아졌다.
투창처럼 던진검은 곧은 선을 그려내면서 일행을 태운 배 위에 떨어지려던 바위를 후려쳤다.
쿠아앙!
크기가 크기다 보니 쉽게 부서지진 않았다.
투창이나 투검의 무공을 배우지 않아 공력도 제대로 싣지 못했다.
그래도 현경의 무위는 엿 바꿔먹은 게 아니라서 그런지 바위의 방향을 성공적으로 틀었다.
쿠아앙!
“으아아아아!”
“우와아아악!”
제갈승계와 이의채가 비명을 질러댔다.
“고것 참, 목소리 한 번 우렁차군그래.
하지만 내공 없이 그리 소리지르면 성대가……”
신의가 초연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다행이다.’
처절한 비명은 곧 살아 있다는 증거.
주서천은 속으로 안도하면서 손가락을 튕겼다.
파바바밧!
다섯 줄기의 자색 섬광이 앞으로 뻗쳤다.
“케헥!”
“컥!”
“윽!”
칠성사병이 구멍 난 부위를 붙잡으며 쓰러졌다.
그 뒤로 투석기의 지렛대에 구멍이 나면서 박살이 나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세 대 남았다.
‘자하개벽, 화우선형!’
제 일식에서 제 이식으로 곧장 이었다.
앞으로 회전하며 쏘아지는 검이 부챗살처럼 펴졌다.
수십 개의 줄기가 자색으로 번쩍이면서 아름다운 광경을 자아낸다.
그러나 그 위력을 보면 넋 놓고 구경할 때가 아니었다.
조금만 스쳐도 죽음에 이른다.
반절은 몸을 날려서 피했다.
그러나 나머지 반절은 끈질기게 투석기 앞에 앉아서 발사했다.
콰지직! 콰앙!
“아악!”
“크아악!”
두 대의 투석기가 거의 동시에 박살났다.
그러나 나머지 하나는 맞추지 못했다.
대형 선박이 대신 맞아 화우선형이 빗나갔다.
“죽어라!”
투웅!
칠성사병이 최후의 발악으로 바위를 쏘았다.
증오와 분노가 섞인 바위가 일행을 노렸다.
그러나
“하나라면 충분하지!”
“하앗!”
초련, 화벽승, 단리화가 위로 솟구쳤다.
단리화도 단리화지만 초련과 화벽승도 나름 실력 있는 무인이다.
두사람이 도우니 처리는 쉬웠다.
일차적으로 칠십이파검이 바위를 조각내고, 질풍십객의 단쾌검법이 검풍을 쏟아내며 쳐냈다.
바위의 파편이 빗발처럼 쏟아지는 점이 무시무시하긴 했지만, 아슬아슬하게 피해 살아남았다.
“이, 이럴 수가……”
목숨 걸고 투석기를 사수한 칠성사병이 허탈한 목소리를 냈다.
“빌어먹……”
서걱!
굳이 몸을 돌려 막을 생각도 없었다.
어떻게 될지 예상한 듯, 몸과 분리된 머리의 표정은 체념이었다.
“투석기가 전부 파괴됐다!”
“작전 실패! 작전 실패!”
“도망쳐라!”
펑! 퍼펑!
곳곳에서 외침과 더불어 연막탄이 터졌다.
“산개해!”
칠성사병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한 사람이라도 살아남을 가능성을 높이려고 분산해 도망쳤다.
주서천은 굳이 필사적으로 먼 거리의 적을 쫓진 않았지만, 대신 근처의 칠성사병을 제압했다.
일각 뒤, 항구의 정리는 끝났다.
“으으, 배가…… 저게 얼마짜린데……!”
배를 잃은 이의채가 배를 주무르며 불평했다.
“목숨보단 싸지 않소.”
일행은 육지에 내려서 주변을 경계하며 휴식 겸 치유했다.
주서천과 제갈수란은 광동, 정확히는 뢰주항(雷州港)을 돌아다니며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조사했다.
다시 이각 뒤, 두 사람이 돌아왔다.
“어떻게 된 건가요?”
단리화가 물었다.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약 보름 전 어떠한 집단의 습격을 받아 마을 사람들 전부가 인질로 잡혔다고 합니다. 목숨을 저당 잡혀 협력을 약속한 모양이고요.”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까지 잡혀 어쩔 수 없었다.
감시를 받아 관부나 무림문파에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었고, 어쩔 수 없이 협력할 수밖에 없었다.
항구의 일상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우며 일행의 습격을 성공할 수 있도록 투석기의 유지보수를 했다.
“붙잡힌 사람들은 어떻게 됐죠?”
“많이 지쳐 있긴 하지만, 그래도 무사합니다.
방금 전에 풀어주고 오는 참입니다.”
“어떠한 집단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이 암천회겠네요.”
주서천은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만한 일을 저지를 세력은 암천회 정도다.
“아무래도 마중을 나와야 할 사람이 당한 것 같으니, 다시 채비를 갖추고 출발해야 할 듯 싶습니다.”
워낙 오지다 보니 제대로 된 무림방파 하나 없다.
중소문파가 있었으나 암천회에 전멸당했다.
“살벌하구먼.”
간야자가 눈살을 찌푸렸다.
* * *
안휘, 합비.
한 소년이 인도를 따라 걸었다.
이상할 정도로 위풍당당한 모습이 왠지 모르게 웃음을 자아냈다.
동네 사람들이 어디 골목 싸움에서라도 이겼냐며 물었지만, 소년은 그 말을 무시한 채 앞으로 걸었다.
약 반 시진 정도를 걸었을까, 한 장소에 도착했다.
건물의 간판에는 무림맹이라는 석자가 적혀 있다.
“……”
무림맹 문지기는 소년을 흘깃 살펴봤다.
혼자 온 것이 의아하긴 하지만, 정갈한 무복 차림을 보아하니 어떤 무가의 자식이 틀림없으리라.
“꼬마야, 어디에서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당분간 무림맹은 방문객을 일체 받고 있지 않다. 돌아가거라.”
“정세가 어지러운데도 본인의 임무에 충실하구나.
훌륭하도다.”
“……응?”
문지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소년의 말투가 무언가 이상했던 탓이다.
겉모습을 보아하면 분명 열둘에서 열세 살 정도인데, 어째 말투는 노인네 같았다.
“맹주를 보러왔다. 문을 열거라.”
문지기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함께 근무하는 선배 문지기도 눈을 크게 떴다.
피식.
엄격하고 근엄한 표정에 웃음이 걸렸다.
선배 문지기는 알아서 내쫓으라는 듯 눈짓을 보냈고, 후배 문지기는 머리를 끄덕이곤 소년을 바라봤다.
“꼬마야, 무림맹주님은 함부로 부를 분이 아니란다.
그리고 무슨 벌칙이진 몰라도, 이런 장난을 하면이 아저씨들이……”
“아는 사이이니 괜찮다. 그보다 내 기분이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니, 비켜서서 문을 열도록 하여라.”
소년의 말에 후배 문지기의 얼굴이 굳어졌다.
아무리 아이라고 해도 지켜야 할 선이 있다.
이렇게까지 나오면 봐줄 수는 없었다.
그래도 성년도 되지 않은 어린아이를 때릴 생각은 없었다.
대신 어깨를 잡아 살의를 흘렸다.
“혼나고 싶지 않으면 당장 돌아…… 으아악!”
선배 문지기가 깜짝 놀랐다.
소년이 후배 문지기의 손목을 붙잡더니만, 그대로 꺾어버리는 동시에 뒤편으로 던져버린 것이었다.
어린아이와 노인, 그리고 여자를 조심하라는 강호의 격언이 떠올랐다.
“비상! 비상!”
스릉!
선배 문지기가 검을 뽑으며 외쳤다.
소년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 외관은 언제나 문제를 일으키는군.”
소년의 손이 흐릿해지더니, 선배 문지기가 윽 하고 신음을 흘리며 앞으로 픽 쓰러졌다.
땡땡땡!
문지기의 외침이 닿았을까, 무림맹 안측에서 비상을 알리듯 종소리가 시끄럽게 울어댔다.
소년은 육중한 두께를 자랑하는 철문을 손으로 가볍게 밀어내며, 안으로 들어섰다.
“침입자다!”
“비상! 비상! 비상―!”
과연 무림맹 본부답게 반응이 재빨랐다.
온갖 곳에서 무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방금 지나온 곳은 물론이고 뒤편의 담장까지 무사들이 포위했다.
“어린아이?”
소란을 듣고 온 경비대장이 당혹스러워 했다.
암천회가 습격이라도 한 건가 생각했는데 고작 한 명, 그것도 성년도 되지 않은 소년이었다.
등허리까지 오는 머리카락은 하나로 땋았고, 눈매가 조금 날카롭지만 잘생겨 호감을 절로 불렀다.
분위기 또한 평범했다.
어떠한 기도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발걸음이 묘하게 위풍당당했다.
‘아니, 방심하지 말자.’
어쩌면 소년은 미끼일 수도 있었다.
또한 강호에선 상대방이 방심을 일으키는 외모일수록 조심하라 하지 않았는가.
괜히 당할 수도 있었다.
어쩌면 키가 작은 노마두가 역용술의 힘을 빌린 것일지도 모른다.
“맹주는 어디에 있는가?”
“정신 똑바로 차리고 포위해라! 침입자가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어도 방심하지 마라!”
“맹주, 남궁위무는 어디 있는가?”
“닥쳐라! 너야말로 누구냐!”
“이런, 그러고 보니 소개를 안 했구나.
오랫동안 사람들과 이야기 하지 않아서 그런지, 기본적인 예의를 깜빡 잊고 말았네. 용서해 주게나.”
“미친놈!”
하나부터 열까지 이상했다.
단신으로 정문을 통해 쳐들어온 것도 괴상망측했지만, 저 어조도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기분이 안 좋다고 소개도 없이 대뜸 물어보다니…… 그 점엔 사과하지.”
소년이 포권하며 인사했다.
“당장 제압하……”
“기다리게.”
경비대장의 명령을 내리려던 참이었다.
“맹주님!”
무림맹주, 남궁위무가 제갈상과 걸어 나왔다.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던 호위대가 남궁위무의 앞을 가로 막아섰으나, 남궁위무가 손을 들어 저지했다.
“맹주.”
소년이 남궁위무를 보고 인사했다.
“건방진 놈!”
“감히!”
상천칠좌, 무림맹주 남궁위무는 강호에서도 수많은 무인들에게 존경받는 무인이자 어르신이다.
그런 사람을 웬 어린아이가 아무렇지 않게 불렀으니 반응이 격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나 그 다음 무림맹주의 말에 사람들은 입을 다물며 경악하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선배.”
‘선배라고?’
경비대장을 눈을 휘둥그레 떴다가 이내 경악했다.
그리고 그제야 눈앞의 소년이 누군지 알게 됐다.
“궈, 권……”
누군가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권동제(拳童帝)!’
혈마 다음으로 오래된 절대고수.
그 검성에게조차 선배로 불리는 노인.
상천칠좌, 권동제였다.
고향 땅을 밟은 일행은 뢰주항을 떠나 그대로 북상, 무림맹으로 귀환 도중 어떤 소식을 듣게 된다.
“자네, 최근 소란에 대해서 들었는가?”
“강호의 소란이 어디 한두 가지인가.
그리 물으면 뭘 말하는 건지 모르네.”
“무림맹의 흑영부일세, 흑영부.”
“흑영부? 그건 또 뭔가?”
“이름 그대로 무림맹, 아니 정파의 검은 그림자일세.
듣자하니 무림맹은 필요에 의하면 사람을 납치하여 지하뇌옥에서 고문을 가해 심문한다더군.”
“아니, 언제적 소문을 듣고 온 건가?
자네 혹시 과거에서 미래로 온 사람은 아니겠지?”
바로 흑영부에 대한 소문이었다.
남해에 다녀온 사이에 여러 일이 있는 모양이었지만, 그중에서도 단연 신경 쓰이는 건 흑영부였다.
무림맹이 정보 통제를 한 탓에 흑영부에 대한 이름 자체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다만, 뒤편에서 사도나 마도와 다를 것 없는 짓을 저지른다는 소문은 뒷소문처럼 떠돌고 있었다.
“최근에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이야기니 그리 비꼬지 말게나. 어쨌거나, 그 흑영부에 대한 게 아무래도 사실인 모양일세.”
“허어, 참…… 무슨 근거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가?
과거 무림맹에서 음해하기 위한 헛소문이라고 공표했을 뿐더러, 별다른 증거도 나오지 않지 않았는가?”
“허허, 이 사람 순수해서 어쩌나! 그 말을 그대로 믿나? 설마하니 관료들이 청렴결백하고 백성들을 위해서 일하고 있다는 걸 믿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
정파는 당대 최고의 권세를 누리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혈교에 연달아 마교와의 전쟁에서 승리했을 뿐만 아니라, 영웅의 활약으로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다.
소문을 최초에 들었을 땐 다들 헛소문 취급했다.
그러나 그 다음 말에 반신반의하게 됐다.
“증거가 있네.”
“증거가 있어? 무슨 증거?”
“독룡, 당명인이 얼마 전에 정파무림을 배신하고 나오지 않았나.
아무래도 그 원인이 흑영부에 있는 모양일세.
듣자하니 흑영부에 소속됐다가, 상부에서 내려온 독으로 인한 고문 등을 수행하다가 버티지 못하고 나왔다 하더군.”
“아니, 자네야말로 순진한 거 아닌가?
당명인은 암천회의 수뇌이지 않은가. 그런 자의 말을……”
“증인이 아니라 증거일세. 당명인이 그에 관련된 서류를 제시한 모양인데, 보통이 아닌 모양이야.”
“……그게 정말인가?”
천추성의 우두머리, 당명인은 어릴적부터 흑영부로서 교육받았다.
성년이 된 이후로는 당가의 가주를 대신해서 흑영부에 몸을 담고 거의 모든 일을 도맡아 했다.
정파 무림맹에게는 불행하게도 당명인은 우수해도 너무 우수했는지라, 알고 있는 것이 보통이 아니었다.
문제는 그 당명인이 적으로 돌변한 것이었다.
흑영부 소관이 당가에 집중된 것이문제였다.
아무도 더러운 일을 맡고 싶지 않다 보니, 흑영부원은 각자 소속이 달라도 지휘부는 당명인에 집중됐다.
이는 후에 무림맹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게 된다.
소문이 돌자 무림맹은 단연 전면 부정하였다.
“당명인은 암천회의 수뇌이며, 오랫동안 정파 무림을 속여 온 배신자다. 감언이설로 정파 무림의 결속력을 약하게 만들려는 수작이다.”
정도인이란 청렴결백해야 한다.
정도라는 건 곧 옳은 길이니 이 일을 긍정하면 정체성이 무너지리라.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군요.”
제갈상은 기다렸다는 듯이 정보 대결에 힘썼다.
칼이 아닌 말과 붓으로 하는 전쟁의 시작이었다.
당명인이 배신한 이후로 언젠가는 이렇게 될 걸 예상했다.
도리어 ‘이제 와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얼마 뒤 제갈상은 암천회가 왜 그동안 뜸을 들였는지 몸소 깨달을 수 있었다.
“정파의 위선을 드디어 깨달았나?”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 소위 명문지파라 불리는 이들이 뒤에선 권위를 이용해 구린 짓을 저지르지.”
“솔직히, 그동안 숨겨온 거네만…… ”
“강호의 동도 여러분, 들어주십시오!
삼 년 전 제 아비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납치당해……”
“개방의 고수……의 죄를 공론화하는 바입니다.”
정파인 사파인 할 것 없었다.
전역에서 흑영부를 시작으로 정파의 어둠을 비난하는 말이 들끓었다.
문제는 단순히 바람잡이로 인한 거짓이 아니라 무려 삼 할 정도가 진실이었다는 점이었다.
천추인 당명인을 포함하여 천추성은 무림 깊숙한 곳까지 침투하거나 중요 인물을 포섭한 상태였다.
대부분 권위자인 만큼 아는 것도 많았고, 이는 소중한 정보로 이용됐다.
“바람은 이 정도면 충분한 거요? 약속은 지켜주시오.”
“물론이다.”
암천회는 사람의 마음을 기가 막히게 잘 파악했다.
사람의 욕심이나 불만을 잘 파악하고, 간교하게 속여 타락시켰다.
최초엔 약간의 정보만 넘기는 정도였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대담해져 기밀에 준하는 것까지 넘겼다.
그리고 후에 이는 결국 약점으로 적용되어 어쩔 수 없이 따를 수 없게 됐다.
그 외에도 무공 비급으로 유혹하거나 혹은 흑영부처럼 납치로 가족을 인질로 잡아 말을 따르게 했다.
오래 전부터 밑밥을 깔아두고 해온 일인지 과정이 부드러웠다.
“거짓말이란 진실을 조금이라도 섞어야 제대로 된 효과를 발휘하는 법이다. 삼 할 사 할 정도면 두말할 것 없지. 그 일부만으로 거짓말이 전부 진실이 된다.”
후에 일부가 거짓으로 밝혀져도 상관없었다.
“그래서, 흑영부가 있어 없어?”
“없는 건 아닌데……”
“그럼 맞는 말인 거지!”
아무리 어쩔 수 없다는 이유가 있다곤 해도, 그건 결코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
합리화에 불과할 뿐이다.
무림맹은 정도를 걷는 자로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했다.
그건 부정할 순 없었다.
일부 소문은 과장되긴 했으나, 논란의 중심인 흑영부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사람이란 눈앞에 있는 걸 그대로 믿는 어리석은 동물이며, 그 숫자가 많아지면 대중심리가 적용한다.
“내 그럴 줄 알았다니까.”
“하여간 대가리들 중 제대로 된 이들이 없어!”
“어쩌면 암천회는 무림의 혁명을 불러들일 이들이 아닐까?”
심지어는 암천회를 지지하는 이들까지 나타났다.
논란의 시초가 된 당명인은 여론의 반응을 보곤, 감탄했다.
“……대단하군.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자고로 선행이란 잘 알려지지 않고, 악행은 알려지는 걸 넘어 증폭되기 마련이지. 사람이란 별거 아닌 것에도 무언가를 미워하는 증오의 동물이다.”
천기가 서류를 읽어 내리며 냉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