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四章 (185/254)

상황이 썩 좋지 못했다.

몸에 가해지는 수압이나 공기 문제를 생각하면 위험한 행동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버텨내기 위해서 검에 독을 주입하려던 걸 멈췄다.

‘아래로 내려간다!’

이무기 역시 이대로 가다간 안 되겠다는 걸 깨달았는지 방향을 아래로 틀어 심해로 바꿔 움직였다.

‘안 돼!’

꽂힌 검에 무게를 실어 위로 올렸다.

캬아아앗!

수직으로 내리꽂히던 이무기가 다시 방향을 틀었다.

거의 직각으로꺾이는 수준의 전환이었다.

그 다음으로도 몇 차례 심해로 내려가려는 시도는 있었으나 그때마다 고통이 느껴져 할 수 없었다.

결국 이무기는 포기한 채 방향을 돌려 다시 수면 바깥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푸하아!”

쪼그라들었던 폐가 다시 움직인다.

공기를 들이 쉬고 내쉬면서 꽉 막혔던 뇌도 뻥 뚫렸다.

그러나 안심하기에는 일렀다.

옆에서부터 이무기의 몸통이 엄습했다.

“……”

대범한 행동이었다.

아무리 보호받지 못하는 눈이 공격당했다곤 하지먄 자칫 잘못하면 스스로 다친다.

주서천은 순간 끝까지 버틸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무게에 속도를 더한 힘은 그야말로 자연재해다.

괜히 버티려다가 치명상이라도 입으면 곤란했다.

검을 빼내 회수한 뒤, 호신강기를 펼쳐 막아냈다.

빠-악!

이무기의 몸통이 채찍이 되어 주서천을 후려쳤다.

주서천은 몸통에 정통으로 맞고 나가떨어졌다.

퍼어억!

수면 위를 물수제비의 돌처럼 튕겼다.

최초에 등이 부딪친 순간 뼈가 부러질 뻔했다.

그야말로 순수한 괴력.

어떠한 내력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음에도 호신강기가 없었다면 죽었다.

크으읏!

입가에서 신음소리가 절로 튀어나왔다.

아프긴 아픈데 그래도 어디 한 군데 부러지지 않고 살았다.

날아가던 도중 공중에서 제비를 돌아 착지해 다시 바다 아래로 처박히는 꼴은 면했다.

캬오오오오오!

이무기가 괴성을 토해내며 살의를 내뿜었다.

바다의 제왕이라는 고래조차 겁내며 도망치기 바빴다.

‘이대로 가다간 끝이 나지 않는다.’

약점은 눈 혹은 입 안이다.

문제는 적수가 영물 중의 영물, 이무기라는 점이었다.

바보같이 약점을 보여줄 리 없다.

그 증거로 이무기는 언제든지 잠수할 수 있도록 머리를 낮췄다.

주서천과 이무기는 서로를 노려보며 마주 봤다.

방금 전까지 폭풍처럼 몰아치던 파도가 가라앉았다.

백구의 울음소리도 얄궂은 날씨의 중얼거림도 없다.

그저 고요함만이 내려앉아 있을뿐.

망망대해에 영물과 인간의 시선이 맞닿았다.

콰앙!

다시 한번 굉음이 터지면서 파도가 출렁였다.

고요를 깬 것은 이무기였다.

쐐애액!

꼬리부터 몸통까지가 채찍이 됐다.

물 분수를 일으킨 이무기의 몸뚱어리가 측면에서부터 공격해 온다.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운다.

마치 태산이 움직인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부웅!

‘어디까지 버텨내나 보자!’

발뒤꿈치를 들어 수면을 박차 몸을 날렸다.

주서천이 서 있던 자리에 이무기의 몸통이 떨어졌다.

쿠아아앙!

물기둥이 위로 치솟았다.

일곱 빛깔의 무지개가 떠오르며 그 아래로 물방울이 우수수 떨어졌다.

주서천은 물난리를 뚫고 나와 등평도수로 물 위를 달렸다.

쾅! 콰아앙! 콰앙!

이무기는 주서천을 쫓았다.

만리장성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몸을 이용해서 수면으로 떨어졌다가 치솟는 걸 반복했다.

‘후웁!’

이무기도 이무기지만 주서천도 보통이 아니었다.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잘도 피해냈다.

또한 회피에만 집중한 게 아니다.

오른손에 꼬나 쥔 검으로 몸통이 다가오면 검식을 펼쳤다.

물방울을 베어 가를 때마다 매향이 물씬 퍼진다.

이십사수매화검법이 물 위에서도 위력을 자랑했다.

검신에 비춰진 빛이 번쩍일 때마다 비늘 위로 무수한 흠집이 생겼다.

그러나 여전히 베지는 못했다.

‘위에서부터 만중검으로 찍어 내려야 하나?

아니면 입 안에 억지로 들어가서 독으로? 아니면……’

움직이면서 생각을 멈추지 않는다.

이무기를 토벌할 방법을 몇십 번 강구한다.

그러나 마땅한 해결 방안이 나오지 않아 문제였다.

설마하니 무형의 강기가 통하지 않을 줄이야.

‘이렇게 된 거 이판사판이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몸을 돌려 이무기와 대치했다.

주서천은 타오르는 눈을 빛내며 검에 힘을 주었다.

‘억지로라도 붙어서 눈과 입에다가 공력을 전부 쏟아내……’

캬아아아!

그때였다.

대치하던 이무기가 돌연 고통에 몸을 뒤틀었다.

무슨 일인가 하고 살펴보자 이무기의 몸에 박혀 있는 삼지창을 볼 수 있었다.

“남해용왕……?”

삼지창의 주인은 흰 수염을 휘날리는 노인이었다.

남해용왕을 본 주서천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삼지창을 보고 놀란 기색을 보였다.

‘창이 박혔다고?’

현경의 성취를 이루어야 손에 넣는 무형의 강기도 통하지 않던 비늘을 꿰뚫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역린(逆麟)을 노려라!”

남해용왕이 주서천의 의문을 풀어주었다.

“거꾸로 붙어 있는 비늘, 그게 바로 약점이다!”

‘그렇구나! 역린!’

전설상의 용도 약점이 없는 건 아니다.

목 밑에 거꾸로 난 비늘이 유일한 급소로 전해져 내려온다.

다만 일화에 따르면 역린은 목 혹은 턱 밑에 있다고 했는데 삼지창을 보니 그것만은 아닌 듯했다.

“용에겐 역린이 하나뿐이지만,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에겐 여럿이에요! 잘 찾아보도록 하세요!”

남해용왕이 아닌 적수수가 대신 답했다.

“……”

주서천의 눈이 바뻐 움직인다.

눈과 입 안만 주시하던 시야가 사방팔방으로 움직여 몸을 훑었다.

훑어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안법을 응용해서 비늘이란 비늘은 샅샅이 뒤져봤다.

절대고수의 신체능력이 빛을 발휘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미세하게 난 역린을 찾을 수 있었다.

남해용왕과 적수수의 말대로였다.

“고맙다!”

주서천은 감사해하며 스스로를 나무랐다.

‘멍청하긴!’

하나를 보느라 전체를 보지 못했다.

용왕과 용미의 조언에 안 보이던 것이 보였다.

이무기의 기나긴 몸통 일부분의 역린이 잡혔다.

“하아아……!”

깊숙한 곳에서부터 대해와 같은 내력이 용솟음쳤다.

미증유의 힘이 아지랑이가 되어 피어올랐다.

수면이 움푹 들어갔다가 넓게 퍼졌다가 치솟는다.

발아래의 수면이 주서천을 중심으로 회오리쳤다.

‘간다!’

쿠아아아앙!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굉음이 터졌다.

굵은 물줄기의 기둥이 위로 솟구쳤다.

후폭풍을 쏘아내며 저공비행했다.

깃털처럼 가벼운 몸이 수면에 닿지 않고 일직선을 그려내며 날아갔다.

마치 유성처럼 긴 궤적을 그려낸 주서천은, 굽이진 이무기의 몸통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셋.’

시간이 멈춘 듯이 느려졌다.

동공이 축소되면서 역린을 비추었다.

푸슛!

그야말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몸통을 지나치는 동시에 검을 출수하여 역린만을 얇게 베었다.

전과 같은 금속음은 없었다.

그 대신 세 개의 역린이 떨어져 나가면서, 핏줄기가 솟구쳤다.

캬아아아아악!

이무기가 샛노란 눈동자를 부릅뜨며 괴성을 질러댔다.

여태껏 들을 수 없었던 고통에 찬 비명이다.

휘리릭!

주서천은 힘껏 발길질해 선회했다.

곡선을 그리듯 진로를 바꾼 그의 몸은 파도처럼 출렁이는 이무기의 몸통에 착지했다.

아직 속도가 전부 줄지 않아서 발밑바닥이 쓸렸다.

수분 덕에 타거나 하진 않고 미끄러졌다.

“쿠오오오오오―!”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뱉었다.

용의 울음소리가 절로 터져 나왔다.

그저 멈추려고 소리를 지른 것만이 아니다.

후위로 쭉 미끄러지면서 몸통 위를 보고, 검을 내질렀다.

푹푹푹!

자색섬광이 번쩍일 때마다 핏줄기가 튀었다.

아홉 번이나 연달아 쏘아낸 자하개벽이 역린을 뚫었다.

몸집이 몸집인 만큼 상처 부위도 컸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핏줄기가 아니라 폭포처럼 보였다.

몸 이곳저곳에서 난 검상에서 흘러나온 핏물이 콸콸 쏟아지면서 바다 위를 붉게 적셨다.

쿠르르!

땅이 흔들린다.

아니, 이무기의 몸이 흔들렸다.

곡선을 그려내던 길이 굽이졌다.

위아래 옆으로 굽어져 엉망진창이 됐지만 주서천은 개의치 않았다.

난리 통에도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놀라울 정도의 평형감각을 보여주면서 균형을 잡았다.

오른발을 축으로 삼아 몸을 휙 돌렸는데도 튕겨 나가지 않았다.

기세를 타서 목으로 향했다.

‘어릴 적 날 살려준 것은 고마우나, 미안하게 됐다!’

여러 기억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소년은 청년이 되어 이무기 앞에 나타났다.

인면지주처럼 말이 통했더라면 대화라도 했을지 모르겠지만, 척 봐도 그럴 상대로 보이진 않았다.

“쿠오오오오오!”

사람의 한계를 넘어선 성량을 낸다.

이무기의 울음소리에 견주듯 용의 외침을 터뜨리며 몸을 날렸다.

아래를 힘껏 박차며 용이 승천하는 것처럼 위로 솟구쳤다.

그 위에는 하늘 대신 이무기가 있었다.

노리는 것은 하나, 머리 근처의 역린이었다.

쐐-액!

어떠한 검초도 들어 있지 않은 순수한 찌르기다.

힘껏 울부짖고, 앞으로 쭉 뻗었다.

흔들림 하나 없는 올곧은 직선을 그려냈다.

위기를 느낀 이무기가 급히 몸틀었지만, 늦었다.

역린이 둘로 쩍 갈라지면서 구멍이 생겼다.

샤아아아아아!

비통에 찬 울음소리가 바다에 울렸다.

결국 위용을 보여주던,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가 쓰러졌다.

느릿하게 휘청이던 그 육중한 몸집이 힘없이 수면 위로 떨어졌다.

쿠웅!

바다 위에서 보면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용으로 착각될 정도의 크기를 자랑하는 이무기가 쓰러진 걸 보면 신성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아무리 역린을 알려줬다곤 하지만요……”

방금 전 난리에 몸을 피했던 적수수가 넋 나간 얼굴로 질린 듯이 중얼거렸다.

남해용왕도 비슷했다.

사람 같지도 않은 괴물과 싸웠다는 사실 자체가 섬뜩했다.

한편 문제의 주서천은 이무기의 머리 위에 홀로 서서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설마……?”

운기를 이리저리 바꿔보기를 몇번 주서천은 무어라 중얼거리다가 이무기의 머리 위에 손을 짚었다.

용후는 평범한 음공이 아니었다.

용심체공인 용후는, 곧 용의 일부분이었다.

최후에 용후를 내뱉으며 일격을 가한 뒤, 이무기는 울음소리를 내면서 쓰러졌다.

그리고 그 순간 청각에서부터 뇌로 어떠한 감정이나 생각이 전해졌다.

용이 되지 못한 원통함, 몸이 찢기는 고통, 한낱 인간에게 패배했다는 굴욕감 등 여러 가지였다.

신기한 건 말로 표현할 수는 없어도 그 감정이나 생각 등을 ‘이해’했다는 점이었다.

혹시 하는 마음으로 운기방법을 용후로 바꿔 집중했다.

“……!”

머릿속의 상념과 기억이 홍수처럼 범람했다.

영험한 기운을 가지고 태어난 영물한 뱀도 그 영물에 속했다.

일반개체보다 똑똑하고 힘이 세며 재빨랐다.

시간이 지날수록 영력이 늘어나면서 수명이나 몸집도 커져갔다.

간간이 욕심에 눈이 먼 인간과 마주쳐 목숨을 잃을 뻔한 적도 있었으나, 기지를 발휘해 살아남았다.

백 년이 넘어갔을 때부터 체구가 조금씩 커졌다.

한번 물면 먹잇감을 단번에 마비시키거나 즉사시키는 독이 생겼으며, 숲이나 강, 바다에서도 적응했다.

보다 강한 개체를 찾아서 잡아먹었다.

덤비는 자가 있으면 혼쭐을 내주었다.

생물을 꼬리 아래에 뒀다.

오백 년째가 되는 날 뱀은 더 이상 뱀이 아니라 이무기가 됐다.

지성이란 게 생기고 도(道)를 쌓게 되면서 이무기는 용이라는 이름의 진리를 엿보게 된다.

어디서 알게 되거나 한 게 아니다.

생물로서의 본능이며 영혼에 새겨진 목표이자 감각이었다.

그 후로는 많은 것이 바뀌었다.

더 이상 숲이냐 강의 왕 따위에 연연하지 않게 됐다.

난폭했던 성질도 줄어들었다.

왕성했던 식욕도 줄면서 굳이 먹잇감을 찾아다니지도 않게 됐다.

가끔 입이 심심하면 찾는 정도였다.

몇십여 년, 아니 그 이상의 세월동안 중원을 돌아다니다가 흘러 흘러 한 장소에 도착했다.

영험한 기운의 집합체이자 수중 동굴, 바로 수령선과가 열리는 신목이 있는 곳이었다.

신목에는 어떠한 열매가 열려 있었다.

이무기는 홀린 것처럼 열매를 집어삼켰다.

그 순간, 또다시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몸이 붕 뜨고 구름 위를 올라가는 듯한 그 기억이 온몸을 가득 채운다.

쾌감을 넘어선 무언가의 감각이었다.

아쉽게도 그 이상의 것을 보지는 못했다.

진리로 향하는 문에 머리만 겨우 내밀고 다시 돌아왔다.

정신을 차리니 육신도 기도 마음도 몰라볼 정도로 늘어났다.

하지만 그런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용이 되고 싶다.

다시 한번 그 진리에 다다르고 싶다.

영혼에 각인된 그 본능이 그리 부르짖었다.

반사적으로 신목의 열매를 하나 더 찾아보았지만 발견할 수 없었다.

대신 그 싹을 찾을 수 있었다.

결실이 열리려면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당장 먹을 수 없는 것이 아쉬웠지만 어차피 남는 게 시간이니 기운을 흡수하며 기다리기로 했다.

대부분이 수기(水氣)인지라 동굴의 내부보단 외부의 수중에서 흡수하는 것이 더 효율이 좋았다.

신목의 열매가 품은 기운이 생각 이상으로 커서 그런지 시간이 제법 걸렸다.

진리의 앞부분을 잊지 않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 정리하려 하니 더 걸렸다.

그렇게 물속에서 약 몇십 년 동안을 대강 흡수한 다음 새로운 둥지가 된 수중동굴로 되돌아갔다.

신목의 과실은 여전히 다 자라지 못했다.

성장의 속도도 제각각이어서 아쉬운 점이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신목의 열매, 수령신과의 기운을 갈무리하는 데 지친 참이었다.

깊은 잠을 청하기로 했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른다.

그저 오랜 시간이 흘렀다.

도중에 이상한 꿈을 꾸기도 했다.

웬 어린 인간이 나타나선 여의주(如意珠)를 품에 안고 있는 광경이었다.

그걸 구경하다 다시 잠들었다.

그리고 정신을 다시 차렸을 때, 이무기는 아연실색했다.

없다.

용이 될 수 있는 수단이 사라졌다.

몇백 년의 세월이 흘러 성숙하게 익었어야 할 열매가 없었다.

수중동굴을 포함해 주변을 샅샅이 뒤져봤지만 발견할 수 없었다.

화가 날 틈도 없었다.

그저 필사적인 기분뿐이었다.

다시 기나긴 세월을 기다릴 수는 없었다.

어찌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던 도중 남해에서 어떠한 기운이 잡혔다.

신과의 모체가 되는 나무, 신목이었다.

이무기는 또 하나의 신목에 희망을 품고 남해로 떠났고, 도착한 장소는 다름 아닌 남해용문이었다.

‘과연, 그렇게 된 건가.’

섬서 근처에 잠들어 있던 이무기가 어찌하여 이 먼 남해까지 흘러들어온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상위의 개체인 용으로 승천하기 위한 열쇠가 수령신과였다.

그런데 주서천이 수령신과를 낼름 해버린 탓에 또 다른 신목을 찾아 헤맬 수밖에 없었다.

고생한 끝에 해남도, 남해용문의 수중동굴에 도착한 건 좋긴 했는데 문제는 입구가 너무 작았다.

결국 고심 끝에 대공동의 외벽을 들이받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용을 향한 집념이었다.

이로서 전생에 알려지지 않았던 진실을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었다.

‘하나인 줄 알았던 수령신과가 둘이었던 건 그러한 이유였나.’

수령신과는 원래부터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다.

미래에 어찌하여 하나만 발견되는지 추측해 봤다.

‘이무기의 기억에 의하면 용으로 승천하기 위해서 수령신과를 둘이나 준비했다.’

여의주나 다름없는 수령신과.

이무기는 수령신과로 용이 될 계획을 세웠다.

수백 년을 공들여서 수령신과를 길렀다.

첫 번째, 아니, 정확히 말해선 두번째의 수령신과를 복용한 뒤 원활한 흡수를 위해 동굴에서 나간다.

그리고 기운의 갈무리를 끝낸 뒤 다시 되돌아 세 번째이자 마지막의 수령신과를 먹으려 했다.

하나 본래 역사의 이무기 또한 아연실색한다.

우연찮게 흘러 들어온 무림인이 가져가 버린 게 문제였다.

이로 인해 오늘날처럼 용궁을 찾게 된다.

‘그런 거라면 해남검파를 비롯한 남해의 문파가 전란의 시대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게 설명된다.’

해남도가 넓어 봤자 섬에 불과하다.

세력 다툼이라 해도 삼사십 년을 넘을 수는 없었다.

전란의 시대라는 난리 통에서도 연락이 제대로 없던 것도 설명할 수 있었다.

당시의 이무기도 이번처럼 신목으로 된 용구자주를 찾기 위해서 외벽을 후려쳤을 것이 분명했다.

녹회문과 남해용문, 나아가 왜구의 침략 등 복합적인 사정이 겹쳐 결국 중원을 돕지 못했을 것이다.

‘허, 참.’

검을 쥔 손에 힘이 풀렸다.

평소처럼 마무리를 지으려 했으나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의도한 건 아니다.

저러한 사정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동정심이 절로 생길 정도였다.

“미안하다.”

발장식지(機長食之) 이마해치(爾馬矣勅).

먹기는 발장이 먹고 뛰기는 말더러 뛰라고 한다더니만, 그 말이 딱 맞았다.

최소 수백 년을 신목을 지켜가면서 수령신과를 길러내면서 용의 꿈을 꿨는데 사람이 다 가져갔다.

그야말로 기구한 삶이었다.

신목이 사람의 손에 의해 열매를 맺지 못하는 아홉 개의 기둥이 된 것을 안다면 미칠지도 모른다.

“너무 원망 마라.”

신목의 열매 수령신과에게 주인이란 없다.

열매가 잘 자라도록 지켰다곤 하지만 냉정히 말하면 사람은 물론 동물도 천운이 닿지 못하면 갈 수 없는 곳이니 가만히 내버려 둬도 잘 자랐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마음을 독하게 먹을 수 있었다.

“날 그때 살려줘서 보내준 건 고맙지만, 그땐 너 역시 제정신이 아니라서 그러지 않았느냐. 아마 깊은 잠에 빠져 있지 않았더라면 나 역시 죽었을 거야.”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손에 쥔 검에 다시 힘을 팍 주었다.

그러나……

“끄응!”

결심하기를 몇 번째인지 모른다.

힘을 주었으나 결국 숨통을 끊지 못했다.

주서천은 몇 번을 망설이다가 결국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히 호기심이 생겨선 이게 뭐람.’

대화는 하지 못했지만, 기억이나 감정 등 온갖 상념을 읽어버린 게 문제였다.

어쩌면 용후란 건 용이나 그에 준하는 생명체와 소통하기 위한 무공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유약해졌나.’

동정심에 적을 살려 두는 건 어리석은 행동이다.

실제로 전란의 시대에서 살려줬다가 죽을 뻔한 적이 있었다.

사정 봐주지 않고 죽여야 했다.

그다지 지혜롭지 못한 선택인 것을 알고 있는데도 동정을 베풀기로 했다.

‘자, 받아라. 용을 향한 집념에 대한 경의다.’

주서천은 이무기에게 내공을 주입했다.

혹시라도 성질이 꼬이지 않도록 수기를 골랐다.

“뭐하는 짓인가!”

남해용왕이 눈치채고 소리쳤지만, 주서천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눈앞에 펼쳐진 바다처럼 끝없는 양의 내공이었다.

전부는 아니다.

만약을 대비해 반 정도는 남겼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회복하기에는 충분했다.

역린이 다시 돋아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출혈이 멈추고 상처 부위가 느릿하게 아물기 시작했다.

‘수령신과는 없다.

네가 들이받던 곳에 남은 것은 신목의 잔재뿐이다.’

내공의 주입이 끝나고 용후로 말을 전달했다.

듣는 것도 가능하면 말하는 것도 가능하리라.

정확한 대화는 불가능해도 의미 전달이 가능했다.

‘봐주는 건 이번 한 번뿐이다.

괜한 복수할 생각은 하지 마라.

만약 이를 어긴다면, 그때는 정말로 목숨을 각오해야 할 테니 말이야.’

경고를 위해서 살의를 담았다.

그러자 이무기에게서 수긍의 감정이 전해져 왔다.

일단 표면적으로는 거짓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면 됐다. 누가 널 건드리지 않는 이상 난동도 피우지 마라. 영물이니 알아들을 거라 믿는다.’

악인이 이를 이용할 수도 있으니 사람을 무조건 공격하지 말라고 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화를 풀 거면 왜구…… 해적에게 해.’

이무기는 인면지주처럼 웬만한 사람보다 비상하다.

왜구를 설명하지 않아도 뜻은 이해했을 터.

“그러면 잘 가라.

사람 없는 곳에 숨어서 상처나 치유해.”

말 없는 대화가 끝났다.

주서천은 이무기의 몸에서 내려와 착지했다.

샤아아아아-.

”응?”

돌아보지 않고 떠나려 했는데 이무기가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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