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三章 (184/254)

고전을 면치 못하는 건 적해장사만이 아니었다.

해남검파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야말로 용의 비늘이었다.

검강으로 베어도 베이지 않는 게 문제였다.

호신강기를 두른 느낌이었다.

문제는 외공이다 보니 호신강기처럼 내공을 소모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지칠 기색이 안 보였다.

불행 중 다행인 건 적해장사는 힘이 센 걸 제외하곤 공격이 단조로워 피하기 쉽다는 것이었다.

이렇다 할 절초를 펼치지도 못했다.

방어에 치중되어 있다 보니 공격이 약한 게 약점이었다.

“아무래도 합공해야겠네요.”

단리화의 검신에서 푸르스름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다가 검의 형태로 굳었다.

“허 참, 중원에는 기인기사와 고수가 모래알처럼 많다고 하더니만 이 정도일 줄이야.

화산파의 제자도 제자지만 그대도 만만치 않구나.”

“해남검파의 장문인께서 칭찬해주시니 영광이에요.

다만, 아무리 저라도 검신께 비견될 정도는 아니랍니다. 후후.”

말은 그래도 기분이 좋아 보이는 단리화였다.

해남검파주라면 대대로 이름 높은 강자이자 검수다.

강자에게 인정받으니 안 좋을 수가 없었다.

“이 용린을 무시하다니, 배짱 한 번 좋구나!”

적해장사가 으름장을 내며 위로 솟구쳤다.

“흐랴압!”

용린은 마치 투석기가 된 듯 위에서 떨어졌다.

콰아앙!

모래사장이 완충 역할을 했는데도 굉음이나 충격이 대단했다.

마치 고래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가 떨어진듯, 모래의 파도가 크게 출렁이며 주변을 뒤덮었다.

“뒈져라!”

적해장사가 위일해를 노리고 일권을 뻗었다.

그냥 주먹이 아니다.

용린으로 덮인 주먹이다.

내가중수법은 없으나 순수한 위력만으로도 보통이 아니다.

무엇보다 지형적으로 유리한 면에 있었다.

위일해는 왼손에 쥔 검을 돌려 검신을 오른쪽 세 손가락으로 짚고 살포시 누르며 수비식을 취했다.

“큿!”

쿠웅!

주먹이 검신에 부딪친 순간 몸이 크게 떨렸다.

그야말로 괴력이었다.

신음이 절로 나왔다.

충격에 의해 몸이 가라앉는다.

충격을 못 버텨서가 아니었다.

모래사장 탓이었다.

발목까지 깊게 파였다.

지형이란 게 생각보다 중요하다.

모래 위라는 이유만으로 평소의 제 실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가 없다.

무공의 기초는 하체이며 보법이다.

검수의 경우는 발걸음이 더더욱 중요하다.

화경에 이르는 고수라 경험이나 무위로 대충 보완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치명적인 건 마찬가지였다.

호신강기나 강기를 줄기차게 뽑을 수 있다면 문제는 되지 않지만, 누구처럼 내공이 무한한 게 아니다.

승부를 낼 수 있는 확실한 순간에 강기를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파바바밧!

위기의 순간, 측면에서부터 검기의 파도가 덮쳐와 위일해를 도왔다.

단리화의 칠십이파검이었다.

채채채채챙!

수십여 개의 검 줄기가 무수히 교차하면서 그물을 형성한다.

적색비늘 위로 흠집이 순식간에 늘어났다.

적해장사는 밀어붙이는 걸 포기하고 얼굴을 구기면서 뒤로 급히 물러났다.

“끄응!”

유리한 지형이긴 하나 적수가 만만치 않았다.

“어머나.”

단리화가 적해장사의 호흡에서 이상을 발견했다.

“숨 쉬는 게 도중에 힘이 벅차 풀죽은 것처럼 불안전한 걸 보니, 지친 것 같은데…… 맞죠?”

외공을 수련한 자는 아무래도 호흡이 중심인 내공보다 지구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방어나 힘이 대단하다고 한들, 쉽게 지치니 그게 또 문제였다.

“그러면 이계 슬슬 끝날 때가……”

샤아아아-!

단리화의 목소리는 돌연 울려퍼진 괴성에 묻혔다.

“……?”

단리화도 위일해도 당황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아니, 이 주변은 아니었다.

정확히말하면 해안 너머의 바다, 여섯 척의 배가 위치한 수면이었다.

소리가 바다 측에서 들려온 건 분명한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 이 소리는……”

적해장사가 갑작스레 이상한 반응을 보였다.

여태껏 두려움은커녕 살의와 투기를 줄창 뿜어대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으며, 널찍하던 어깨가 좁아지고 목은 움츠렸다.

무언가를 크게 두려워하는 모습이었다.

이상한 건 적해장사만이 아니었다.

여태껏 잘만 싸우던 남해용문 무리도 싸움을 멈추고 두려워했다.

“바, 바다가 노하셨다……”

“히이익!”

“요, 용이시여! 부, 부디 고정하시옵소서!”

덩달아 해남도 세력의 무인들도 의아해하면서 바다를 살폈다.

“저건……?”

예의 무표정이던 제갈수란도 놀란 기색을 보였다.

콰아아아! 끼이익.

“으아악! 흔들린다!”

바다가 분노했다.

그 외의 표현이 없었다.

몇 겹의 파도가 이어서 출렁이고, 때때론 배의 측면을 힘껏 후려치며 밀어치기까지 했다.

선상 위의 무인들이 바닥을 굴렀다.

하마터면 튕겨져 나갈 뻔했다.

난간을 잡아서 살았다.

“으아아아악!”

제갈승계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비명을 질렀다.

초련은 제갈승계를 허리춤에 끼고 껄껄 웃었다.

“뱃놈들이 바다는 사나우니 뭐니하면서 아무나 갈 수 없는 곳이라고 떠들더니만, 아무것도 아니구먼!”

“아냐! 아냐! 무섭잖아! 안 좋아! 안 좋다고!”

제갈승계가 초련의 허리를 잡은 채 비명을 질렀다.

울기 직전의 모습이었다.

“이때다!”

노동력을 대신하던 해적들이 바다로 몸을 던졌다.

이 난리에 바다로 몸을 던지는 건 자살 행위지만, 배 안에서 버텨도 마찬가지다.

실컷 노동력으로 부려지다가 관아로 붙잡혀 가면 어차피 사형이다.

수공을 익혔으니 차라리 바다가 낫다.

“어딜 가……?”

화벽승이 놓쳐버린 해적을 보고 소리 지르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해수면에 보이는 그림자 탓이었다.

처음엔 구름이나 고래인 줄 알았다.

하나 구름이나 고래치곤 너무나도 길었다.

무언가가 올라오려 한다.

“아무거나 붙들어―!”

화벽승은 재빠른 판단을 내렸다.

그리고 곧바로 재앙이 배를 덮쳤다.

콰아아아!

무언가가 수면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 몸체는 얼마인지 감히 추측할 수 없을 만큼 길었다.

몸통의 굵기 또한 상당하다.

사람은 그 크기와 길이에 압도되어 어쩌지 못했다.

바다로 뛰어든 해적은 몸집에 맞고 정신을 잃어 수면 아래로 떨어졌다.

“요, 요, 용?”

제갈승계는 얼어붙은 채 말을 더듬었다.

초련도 놀란 얼굴로 정면을 멍하니 바라봤다.

세로로 갈라진 동공은 샛노랗다.

물방울에 반짝이는 비늘 위로 파도가 쳤다.

이리저리 꼬인 몸체는 반은 물 밖에 있고, 나머지 반은 수면 아래에 있었다.

“아니, 뱀이다.”

물음에 답한 건 난간에 착지한 주서천이었다.

주서천은 물에 젖은 머리를 뒤로 넘기며 웃었다.

다만 웃음과 다르게 그 얼굴은 긴장으로 가득했다.

“거 의 십삼 년, 십사 년 만인가……?”

과거의 기억이 머릿속으로 지나쳐갔다.

수중동굴, 목재로 된 용구자주, 울음소리.

그리고, 용이라 착각될 크기의 뱀.

“오랜만이다.”

수령신과의 파수꾼과의 재회였다.

사람들은 공황에 빠졌다.

해남검파도 남해용문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중원인도 남해인도 뱀의 위용에 압도됐다.

“해, 해신이시여!”

“용신께서 나오셨다!”

“이럴 수가!”

해남도인은 대부분이 어업에 종사하고 있다.

설사 본인이 하지 않는다고 해도 가족이나 일가친척 중에선 몇몇 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뱃사람이 믿는 미신을 접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믿게 된다.

바다에는 여러 신앙이나 미신이 있으나 그중에서도 손꼽히는 건 단연 바다의 신인 해신과 용왕이었다.

해남검파와 녹회문이 남해용문과 적대해 괜히 민심을 잃은 게 아니었다.

남해용문은 문파이자 종교다.

그리고 그 용왕의 전신이 바로 용이다.

그런데 용이 눈앞에 나타났으니 기겁하지 않으면 이상하다.

“정말로 우리는 잘못을 하고 있던 것인가?”

“욕심으로 바다를 노하게 만든 것이라면……”

해남검파에 협력한 중소문파부터 시작해서 하나씩 전의를 잃기 시작했다.

저런 걸 보면 싸울 수 없다.

제갈수란이 침체된 분위기를 느끼고 재빨리 외쳤다.

“머리를 잘 보도록 하세요! 용이 아니에요!”

용과 뱀은 비슷하면서도 생김새가 다르다.

또한 몸에 다리가 붙어 있어야 하는데 저 뱀은 없었다.

거대한 몸체만 보면 용으로 착각할만했다.

하필이면 머리가 배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

무인이라면 조금만 더 집중하면 보겠지만, 사람들에겐 그럴 여유가 없었다.

불행 중 다행인 건 남해용문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아니, 비슷한 걸 넘어서 정도가 심했다.

몇몇 이는 머리를 조아리고 몸을 떠는 이도 있을 정도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죠?’

제갈수란은 바다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주 공자, 조심해요.’

사람과 뱀은 서로를 바라봤다.

사람의 키만 한 샛노란 눈동자에 주서천이 비쳐졌다.

주서천의 눈에도 뱀의 머리가 보였다.

‘용구자주의 원자재는 수령신과의 신목(神木)이 틀림 없다.’

남해용문의 대공동을 보자마자 친숙함이 느껴졌다.

낯설면서도 낯설지 않은 기묘한 감각.

기시감과 이질감이 뒤섞인,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게 됐다.

‘비록 장소는 다르나, 어릴 적에 간 곳과 같다.’

신목이 기둥이 된 것만 제외하면 같은 환경이었다.

주서천은 수면 위로 올라오기 전, 남해용왕에게 바다가 노한 건 언제부터인지 물었다.

‘약 십 년 정도 됐다.’

시기도 알맞았다.

전에 본 뱀이 맞았다.

아니, 시기 따윈 사실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몸의 감각과 기억이 전에 본 영물이라 외치고 있었다.

저 압도적인 위압감과 눈을 보면 분명하다.

‘문제는 왜 섬서 근처에나 있어야할 놈이 이 먼 남해 바다의 수중동굴까지 왔냐는 점이다.’

강물에서나 사는 뱀이 바다로 나온건 영물이니 그리 문제는 되지 않는다.

그러나 거리가 너무 멀어 이상했다.

지리상 섬서에서 남해를 오려면 장강을 지나서 동해로 빠져나와 남하해야 한다.

만약, 남해의 인근 해역을 떠돌아다녔다면 또 모른다.

헌데 이상한건 용궁, 그러니까 수정동굴의 외벽을 십 년 이상을 들이받은 점이었다.

샤아아아아!

‘지금은 한가하게 생각할 때가 아니다.’

과거도 과거지만 현재에 와서 봐도 대단했다.

몸집이나 귀청이 찢어질 정도의 괴성. 온 살이 떨렸다.

칠각사나 인면지주보다 위의 영물로 보였다.

“용왕과 그 꼬리여! 보았느냐!”

주서천은 눈앞의 대영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리쳤다.

“십여 년 동안 용궁의 기둥을 무너뜨린 건, 바다의 분노도 용도 아니다! 한낱 미물일 뿐이다!”

주서천은 간야자에게 뱀에 대한 존재를 전해 듣자마자 처리하겠다면서 용궁을 뛰쳐나왔다.

당연히 용을 신성시하는 남해용왕과 용미가 무슨 짓을 할 생각이냐면서 사색이 된 채 뒤따라 나왔다.

노인과 여인은 수면 위로 머리만 내민 채 뱀의 얼굴을 살폈다.

“심해에 가려져 있어 머리가 아닌 몸밖에 보지 못했을 뿐, 그 실체는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다!”

영물이 된 뱀이 오백여 년 도를 쌓으면 이무기가 되고 천 년이 되는 해에는 용이 되어 승천한다 한다.

몸체만 보면 용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발이 붙어 있지 않고 아직 외관도 뱀인 걸 보면 용은 아니다.

상징인 여의주 또한 없었다.

“그런……”

적수수가 당황한 눈초리로 이무기를 올려다봤다.

남해용왕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남해용문이 신성시하는 건 용이지 뱀이나 이무기는 아니다.

물론 용의새끼라고도 불리는 이무기 역시 나름대로 신성시하긴 하지만 사람에 비견될 정도는 아니다.

남해용문의 역사는 오로지 ‘용’ 밖에 없었다.

그동안 확인을 하지 않으려 했던 건 아니다.

그러나 여러모로 문제 탓에 힘들었다.

용궁은 지하에 위치해 있다.

그 지하에서 좀 더 내려가야 용구자주가 자리 잡은 대공동이 나온다.

외부에서 들이받는 이무기를 확인하려면 심해 밑바닥까지 내려가야 하는데, 수압 탓에 할 수가 없었다.

공기가 문제가 아니다.

숨이야 얼마 정도는 참을 수 있다.

문제는 빛 한 줌 없는 암흑과 수압이었다.

또한 자칫 잘못하면 해류에 휘말려서 아무리 수공을 연공했다고 한들 살아 돌아올 수가 없었다.

주서천 정도 되는 절대고수야 좀 더 버틸 수는 있으나 아무래도 수공이 주력이 아닌지라 주의 깊었다.

그래서 조금 거리를 둔 채, 남해용문에게 삼지창을 빌려와 심해 아래의 이무기를 맞춰서 유도했다.

“당장 배를 돌려! 도망쳐!”

주서천은 각 배의 선장이 들을 수 있도록 소리쳤다.

전설에 의하면 이무기는 생물의 왕이며 물의 지배자이다.

괜히 용의 전신인 존재가 아니다.

애초에 집채만 한, 아니, 산으로 느껴질 몸집을 정면으로 승부하는 건 자살 행위다.

개조된 대형선박이라고 해도 꼬리 한 번 휘두르면 뒤집어지리라.

“도, 도망쳐요?”

제갈승계가 그게 가능하겠냐는 듯이 물었다.

“내가 대신 상대할 테니 걱정 마라!”

주서천이 난간 밖으로 몸을 던졌다.

“형님!”

웅웅웅!

‘선수필승!’

검신에서 흘러나온 검광이 회전한다.

물살만이 아니라 대기의 흐름도 거세게 움직이며 파도쳤다.

‘자하개벽!’

검을 시원스레 쭉 뻗었다.

검광은 자색으로 물들었다가 사라졌다.

무형의 강기가 회전하며 쏘아졌다.

용조의 경우엔 제갈수란이 걱정돼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용궁에서도 무너질까 봐 조심했다.

그러나 지금 이곳에선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여섯 척의 선박이 남아 있긴 하지만 움직이지 못하는 것도 아니니 크게 신경 쓰며 싸우지 않아도 된다.

우르릉!

회전하는 벼락이 이무기의 머리를 후려쳤다.

샤아아아악!

이무기가 머리를 흔들며 괴로워한다.

몸도 뒤척였다.

움직일 때마다 파도가 크게 치며 찰싹였다.

“탈 수밖에 없어.”

제갈승계가 초령의 옆구리에 껴선 외쳤다.

“이 큰 파도에!”

“조종간을 돌려엇―!”

“철수! 철수! 노를 꺼내라!”

돛을 걷고 작살 대신 노를 젓는다.

용, 아니 이무기의 난동에 휘말리지 않도록 전력으로 배를 움직였다.

다행히 파도를 타고 재빠르게 물러날 수 있었다.

다만 그만큼 물살이 거칠어 난리도 아니었다.

선박이 크게 떠올랐다가 아래로 떨어진다.

선박의 우수함을 알리듯, 충격에도 부서지거나 하진 않았다.

그 대신 선상 위에 있던 이들이 구르며 비명을 터뜨렸다.

“허!”

주서천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무형검강을 맞았는데도 멀쩡하다고?’

머리를 꿰뚫을 기세로 검을 내질렀다.

그러나 얼굴에 흠집만 남았을 뿐, 조금의 상처도 나지 않았다.

이무기에게 외상이 없다는 걸 확인한 주서천은 경악하면서 수면 위로 착지했다.

물이 찰팍일 뿐, 발이 아래로 가라앉지는 않았다.

만중검의 묘리를 역으로 운용해 몸을 가볍게 한 다음 등평도수로 느긋하게 발걸음을 내디딘다.

“어쩌면 생각보다 더 성가시……”

부웅!

“……”

무심코 아래를 봤다가 흠칫했다.

시커먼 그림자가 위쪽으로 무시무시한 속도를 내며 올라오고 있었다.

“큿!”

얼른 벗어나려 했으나 늦었다.

그전에 이무기의 몸체가 아래에서부터 치고 올라오며 몸을 후려쳤다.

콰아아아!

육중한 몸뚱어리가 올라오면서 폭음과 굉음이 터졌다.

맞은 건지 튕겨 나간 건지 모를 정도다.

몸이 하늘 높이 붕 떠올랐다.

웬만한 고수라 할지라도 기절하거나 뼈가 부러져 꼼짝도 못 했을 것이다.

주서천은 공중에서 허우적거리다가, 몸을 몇 차례 뒤집어 균형을 잡고 무게를 늘렸다.

쐐―액!

몸이 검처럼 수직으로 떨어지며 이무기의 몸통 중 한 곳에 떨어졌다.

쿠우―웅!

몸을 우지끈 밟자 요란한 소리가 났다.

그러나 소리에 비해 이무기는 멀쩡하다.

‘저 정도 되는 높이에서 천근추의 수법에 만중검의 묘리까지 섞어 떨어졌는데도 멀쩡하다.

비늘만 단단한 게 아니다.’

그저 큰 것만이 아니다.

상상 이상으로 두껍다.

또한 몸을 후려치는 감각은 있었는데, 내상을 입히진 못했다.

‘만년한철과 다름없다.’

만년한철은 내가중수법도 잘 통하지 않는다고 한다.

괜히 전설상의 금속이 아니다.

그야말로 전설에 걸맞는 영물인 이무기였다.

‘포기하지 마라. 아직 여러 가지 수가 남아 있다.’

비늘을 박차고 몸통 위를 달렸다.

거칠다기보다는 매끄러워서 빙판 위를 미끄러지듯이 움직였다.

‘녹안만독공!’

머리 위에서 굵은 빗방울이 쏟아져 내렸다.

파도의 잔재 속을 뚫고 나온 그의 왼쪽 눈동자가 옅은 녹색으로 번뜩였다.

하단전에서부터 흐르는 인면지주의 독기가 구석구석 뻗어간다.

검신에 흐르는 아지랑이의 색이 바뀐다.

기경팔맥을 돌아서 머리 위의 좌안까지, 준비가 끝나자마자 검을 아래로 내려뜨리고 몸통을 그었다.

카가가가강!

그러나 독기로 이루어진 검도 베지 못하면 무의미하다.

“제기랄!”

욕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금강불괴였다.

어릴 적에 이놈에게 살아남은 게 기적이었다.

캬오오오오오오오!

귀청이 찢어질 정도의 굉음.

울음소리만으로도 해일을 만들 기세다.

사람도 동물도 공포에 떨었다.

“……!”

주서천은 몸통을 전부 달리지 못하고 옆으로 튕겨져 나갔다.

이무기가 도중에 몸을 틀어버린 것이다.

무슨 일인가 하고 확인하려는 순간, 몸이 굳었다.

쩌억.

과거, 수령신과의 파수꾼이 아가리를 벌린다.

입 안은 아직 뱀 그 자체다.

송곳니가 위협적이었다.

“아뿔……”

콰득!

이무기의 아가리가 닫혔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저 몸집으로 잘도 저리 움직일 수 있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안 돼-!”

제갈수란이 절규 어린 비명을 내질렀다.

중간부터는 전장을 보는 것도 잊고 정신없이 구경했다.

내공으로 시력을 올려 멀리 볼 수 있었다.

무공보다는 진법에 특기인 그녀이지만 그래도 오룡삼봉답게 기본은 한다.

세가에서 지원해 준 영약도 있으니 내공도 그럭저럭 많아 좀 더 세세히 볼 수 있었다.

단리화의 얼굴도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대, 대장……”

화벽승이 사색이 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으그그그극!”

이무기의 아가리 안에서 소리가 들렸다.

방금 전 까지 위용 넘쳤던 울음소리가 아니라 사람의 것이다.

굳게 닫힌 입이 천천히 열린다.

이무기도 당황스러운 눈초리였다.

위와 아래입이 떨리는 걸 보면 저항하는 게 보였다.

그러나 노력과는 다르게 입이 쩍 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입천장에 검을 꽂고 아가리를 벌리려는 주서천이 보였다.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무는 힘도 대단하지만 여는 힘도 대단했다.

대해와 같은 공력을 전부 근력으로 돌려 아가리를 벌린 다음, 천장에 고정한 검을 뽑아 뒤로 물러났다.

콰직!

결국 이무기는 애꿎은 허공만 씹었다.

‘헛소문이 아니라 정말로 검신이란 말인가?’

‘상천칠좌가 사람이 아니란 것은 들었지만……’

‘정녕 사람이란 말인가?’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은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누가 이기나 보자!’

주서천은 이무기의 주둥이를 붙잡고 매달렸다.

“하앗!”

힘을 주자 팔 근육이 부풀어 오르며 힘을 준다.

몸에 진동을 실어 주둥이 위로 올라온 뒤, 재빨리 이무기의 눈을 찔렀다.

푸욱!

‘됐다!’

손끝에서부터 찌른 감각이 느껴진다.

속으로 환호를 지르며 눈알에 찔러 넣은 검을 쑤셔 넣으려 했다.

샤아아아―!

그러냐 이무기가 가만있지 않았다.

이무기는 타오를 듯한 고통에 괴로워하며 발버둥 쳤다.

대롱대롱 매달린 주서천도 덩달아 흔들렸다.

‘어림없다!’

검 손잡이를 꽉 쥐고 찰싹 달라 붙는다.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

늑대처럼 물고 늘어질 생각이었다.

샤아아앗!

남해에 울리는 분노의 울음소리.

이무기는 찰거머리 같은 인간이 떨어지지 않자, 화를 내면서 수면 아래로 머리를 처박았다.

콰아앙!

풍덩이 아니라 화약을 터뜨린 것처럼 폭음이 났다.

햇빛을 막을 정도로 파도가 친다.

평소라면 물고기 떼가 있어야 했겠지만, 이미 바다의 지배자의 등장에 이 근방 해역을 떠난 지 오래였다.

콰과과과과!

이무기는 바닷속을 헤엄쳤다.

한가히 유영하는 게 아니다.

머리에서 주서천을 떨어뜨리기 위해 거칠게 헤엄쳤다.

‘크으읏!’

시야가 빙글 돈다.

눈앞의 광경이 빠르게 바뀌었다.

고속으로 헤엄치다 보니 수압도 보통이 아니었다.

보통, 아니 절정의 고수라 해도 진작 떨어졌을 것이다.

주서천도 수인공이 아니었다면 버티지 못했다.

‘독을…… 아니야, 안 돼 그랬다간 수인공의 운기가 꼬여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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