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권-第一章 (182/254)

적수수가 눈을 형형하게 빛내며 공세에 나섰다.

파바밧!

꼬리를 흔들 듯 하체를 움직이며 헤엄치는 모습은 마치 사냥감을 발견한 상어를 연상케 했다.

한순간에 주서천의 앞에 나타난 적수수는 오른 다리를 있는 힘껏 휘둘렀다.

부웅.

수중에선 물의 저항 탓에 움직임이 제한된다.

속도나 힘 모두 줄어든다.

힘이 약해지는 이유였다.

하나 수공은 내공으로 이 물의 저항을 일부분 무시한다.

수중에서 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연유였다.

콰-아!

또한 상승의 수공은 한 술 더 떠 물의 저항이 적용되지 않을뿐더러, 압력을 위력에 높이는 데 이용한다.

남해용문의 수룡미각(水龍尾脚) 또한 그리하였다.

물에 의하여 힘도 속도도 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오른 발차기는 막대한 위력을 내며 주서천을 덮쳤다.

적수수는 주서천이 우각(右脚)에 맞고 나가떨어질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무슨……!’

그녀의 오른 다리는 허우적거리듯 수류를 갈랐다.

‘오만은 무형지독의 또 다른 이름이다.’

몸을 비틀어 발길질을 피한 주서천이 눈을 빛냈다.

오성에 이르는 수인공은 수룡미각만큼 대단하진 않다.

수공을 연공했으나, 한계는 존재했다.

하나 무위가 기본적으로 높다 보니 전력을 내진 못해도 화경에 상응하는 무력은 충분히 낼 수 있었다.

초절정과 화경의 고수의 차이가 한없이 높듯, 화경과 현경 사이의 벽 또한 까마득한 차이가 난다.

‘후웁!’

몸을 튼 상황에서 검을 내질렀다.

수인공의 능력을 발휘하여 물의 저항을 최소화해 위력을 높였다.

검신을 휘감은 공력이 물살을 가르면서 적수수의 옆구리를 찔렀다.

‘……’

적수수는 입술을 질끈 깨물곤 왼다리를 움직였다.

생각이 닿기도 전에 몸이 먼저 위기에 반응했는지 그 속도가 제법 빠르다.

슈슈슈숙!

방금 전처럼 크게 휘두른 게 아니다.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위아래로 물장구질했다.

슉슉슉!

수중전투의 묘미는 무공만이 아니다.

바로 지형, 아니 수형(水形)을 이용하는 전법이 있었다.

땅 위에서라면 발길질을 힘껏 한들 바람이 생기는 것만으로 끝난다.

그러나 물속에선 전혀 달랐다.

급격하게 빨라지는 물의 유속.

그로 인해 일정하던 물의 흐름이 이리저리 휘몰아치며 변화를 부른다.

바로 바다회오리였다.

어지럽게 엉킨 수류가 각 방향에서 검신을 두드렸다.

일직선을 그려내던 검이 잠시 흔들렸다.

그사이, 적수수는 수류에 몸을 맡겨 후위로 급히 물러났다.

‘크읏!’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다른 곳도 아닌, 수중에서 위기를 느낀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인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인정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

‘합공하세요!’

스스스스슥!

백여 명의 남해용문도가 한꺼번에 움직였다.

마치 물고기 떼를 보는 듯했다.

사람으로 이루어진 바다회오리의 중심 속, 주서천은 대해와 같이 끊이지 않는 내공을 끌어올렸다.

‘휘말리지 않도록 먼저 움직여야 한다.’

사람은 결코 대자연을 이길 수 없다.

그러나 때때로 사람은 이 대자연을 이용한다.

백여 명에 이르는 남해용문도가 그리하였다.

인위적인 해류(海流)를 만들어 낸 공격은 부담스러웠다.

비록 바다 전부를 통제하지는 못했으나, 그 일부분을 조종한다는 것이 대단했다.

주서천은 마치 빙판 위를 미끄러지듯, 거센 해류를 타고 쭉 나아가 남해용문도의 복부에 검을 꽂았다.

부르륵!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하고 치명상을 입은 남해용문도가 숨을 참지 못하고 거품을 냈다.

‘용궁의 인어라고 하더니만, 결국은 사람이군.’

수공을 익힌 무인에 불과했다.

머리를 슬쩍 드니 사방팔방에서 눈을 희번뜩 뜨고 몰려드는 구십구 명의 남해용문도를 볼 수 있었다.

‘독을 쓸까?’

왼쪽 눈에서 녹색 빛이 일렁였다가 사라졌다.

‘아니야. 괜히 잘못돼서 그 용궁이라는 곳의 간야자가 중독되거나, 혹은 위에서 신난 승계가 바다에라도 떨어진다면 낭패다. 독은 그만두자.’

쐐―액!

고민이 끝나기 무섭게 삼지창이 목을 노려왔다.

휘리릭!

몸을 틀어 삼지창을 간단히 피한 뒤, 주서천은 검을 수평으로 반원을 그렸다.

크르르륵!

남해용문도가 가슴에 그려진 혈선을 부여잡으면서 고통스러워했다.

손에 쥔 삼지창도 떨어졌다.

주서천은 검을 쥐지 않은 손으로 삼지창을 낚아챈 뒤, 팔을 뒤로 내빼고 힘을 팍 주었다.

잘 단련된 이두박근이 부풀어 오르면서 힘줄이 돋았다.

‘하앗-!’

숨을 내쉬진 않는다.

그래도 속으론 기합을 터뜨리고 왼팔을 힘껏 내지르면서 삼지창을 던졌다.

쐐애애액!

‘……’

적수수는, 소름이 끼쳤다.

대각선을 그려내면서 날아오는 삼지창.

그 속력은 과연 수중에서 던진 것일까 의심될 정도였다.

마치 폭발을 일으킨 것처럼, 물거품을 창대 끝에서 뿜으며 날아오는 삼지창은 남해용문도를 내팽개치면서 적수수의 심장부를 정확히 노렸다.

‘위험……!’

적수수는 다시 다리를 꼬리처럼 움직여 피하려 회피기동을 하려 했으나, 이미 늦은 이후였다.

푸욱!

‘아악!’

몸을 필사적으로 틀어 심장은 빗나갈 수 있었지만, 왼쪽 어깨 죽지를 허용하고 말았다.

‘용미!’

‘네 이노옴!’

‘감히 누구에게 창을 던졌느냐!’

분노에 찬 남해용문도가 주서천에게 창을 뻗었다.

위, 아래, 양옆에서 날아오는 창은 이십여 개였다.

‘모이는군.’

주서천은 아직 남해용문도가 많이 남았음에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바라보다가 창이 접근해 온 것을 보고, 제자리에서 몸을 돌려 회전했다.

투두둑!

이십에 이르는 창날이 서로 부딪쳤다.

금속끼리 부딪치는 마찰음이 아니었다.

둔탁한 무언가였다.

‘후우……’

모여든 창날은 마치 그물망처럼 얽혔다.

주서천은 그 그물망 아래에 박쥐처럼 매달려 무릎을 굽혔다.

‘간다!’

발뒤꿈치를 든 다음 창으로 된 그물망을 밀어 치면서 몸을 날렸다.

위로 뛰어오른 게 아니다.

아래로떨어졌다.

팔과 다리를 붙여 속력을 더해 해저로 향한다.

수심이 깊어질수록 수압이 몸을 뒤덮는다.

약 삼 장마다 두 근의 무게씩 늘어났다.

그러나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호신강기를 둘러 압력을 배재하고, 수인공의 운기법으로 최소화했다.

쿠웅!

수면 밖에서 흘러나오던 햇빛이 바다에 흡수되어 사라지려 하는 순간, 밑바닥에 도착했다.

‘대체 뭐하는 거죠……?’

적수수는 주서천을 내려다보며 당혹스러워했다.

무슨 의도인지 모르니 혼란스러워 할 뿐이었다.

‘설마!’

그 설마였다.

쿠르르르!

주서천이 짓밟고 있던 해저는 아직떨어진 충격이 채 가시지 않아 여진(餘震)을 토해내는 중이었다.

암흑 속에서 숨어 있던 심해어가 깜짝 놀라며 해구 아래로 도망치려던 순간, 주서천이 솟구친다.

콰아아.

‘너희가 바다를 이용하겠다면, 나역시 바다를 이용하겠다.’

용천혈에서부터 내공을 뿜어내 추진력을 얻었다.

제갈승계가 쏘아냈던 해적선의 작살이 수면에 구멍을 낸 것처럼, 해류에 기다란 구멍을 내며 올라갔다.

그저 일직선으로 올라가는 것만이 아니다.

내력을 최대한 뿜어내 주변환경에 영향을 끼쳤다.

녹안만독공의 용독술처럼 응용하여 독 대신 순수한 진기만을 이용하며 부력(浮力)에 몸을 실었다.

또한 곧은 선이 아니라 방향을 중간에 틀면서 빙글빙글 돌았다.

움직임에 따라 회오리가 만들어졌다.

마치 고래가 숨을 토해내듯, 물기둥이 되어 해저에서부터 머리 위에있는 남해용문도를 휩쓸었다.

‘사람이 이 정도 되는 힘을 낼 수 있을 리가 없어요!’

적수수의 표정이 공포로 얼룩진다.

감히 피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신화 속에서 용왕의 아홉 아들 중 셋째, 포뢰(蒲牟)가 두려워했던 거대한 생물, 고래 그 자체를 보는 듯했다.

아무리 물고기 떼라 할지라도 고래앞에선 무용지물이다.

그 거대한 몸집과 아가리엔 속수무책이었다.

쿠구구구!

고요함으로 가득 찬 바다가 폭풍으로 가득 찼다.

아래에서부터 올라온 굵은 물줄기에 남해용문도는 버티지 못하고, 거기에 휩쓸려 함께 치솟았다.

콰아아아앙!

천지가 무너지는 듯한 폭음.

귀청이 떨어지는 크기에 뇌까지 흔들렸다.

뇌만이 아니었다.

인근 해역에서대기 중이던 여섯 척의 배도 파도에 크게 출렁이며 비명을 내질렀다.

“으아아악!”

“용왕께서 분노하셨다!”

“해신이시다! 바다의 신님이 노하셨다!”

그것은 기둥이었다.

그저 거대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물기둥이 아래에서부터 몇 장 높이로 치솟아 시야를 가렸다.

비가 내리듯이 빗방울이 아래로 떨어지고, 일곱 빛깔의 무지개가 아름다운 광경을 만들어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한가하게 구경할 시간은 없었다.

“사, 사람이 떨어진다!”

물만이 아니었다.

사람이 수면을 후려치면서 가라앉았다.

볼 것도 없이 남해용문도였다.

아래에서부터 가해진 해류에 정신없었던 그들은 눈을 뜨자마자 공중에 있다는 걸 깨닫고 허우적거렸다.

그러나 결국 애꿎은 허공만 발길질할 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끌어당기는 힘에 의해 아래로 떨어졌다.

퍽! 퍼억!

“끅!”

“꺽!”

수 장 높이에서 떨어졌는데 멀쩡할 리 만무했다.

찰싹이 아니라 둔기에 맞은 것처럼 소리가 났다.

아픈 게 아니라 죽은게 아닐까 의심될 정도였다.

“쏴!”

육지의 인간은 악마였다.

푸슈슈슈슛!

파도에 의해 흔들린 배였으나 선상위에서 대기 중이던 재갈승계는 눈을 부릅뜨면서 명령을 내렸다.

그의 명령에 초련 등 금의검문 무사는 명령을 하달해 다시 한번 작살을 쏟아냈다.

꾸르르륵!

수면 아래에서 물거품이 떠올랐다.

거품만이 아니었다.

시뻘건 핏물도 여기저기서 떠올랐다.

“이, 이거 정말 괜찮은 건가?”

화벽승은 수면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질겁했다.

혹시나 주서천이 저기에 휘말리지 않을까 싶었다.

하나 그 걱정도 잠시, 곧 휘몰아칠 바다의 거센 파도에 선박의 기둥을 붙잡고 명령을 내리느라 바빴다.

삼지창으로 인해 구멍이 난 팔에서 피가 흘렀다.

출혈을 막으려 안 그래도 몇 없는 천을 찢어 상처 부위를 감싸고, 점혈로 출혈을 막았다.

‘저런 터무니없는 자가 도대체 어디에서……!’

적수수는 입을 꽉 깨물고 도망쳤다.

그녀는 마지막까지 어떻게든 버텨내 아래에서 위로 향하던 무지막지한 해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인근 해역에서 벗어났다.

부하를 버렸다며 비난받아도 어쩔 수 없었다.

지금 당장 용궁으로 돌아가 이 위기를 알려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전부 몰살당할 판이었다.

해안가의 용린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있지만, 용궁이 바로 근처이니 굳이 멀리 돌아갈 필요는 없었다.

약 이각 정도를 필사적으로 헤엄쳤을까, 불행 중 다행으로 성공적으로 도주할 수 있었다.

“하아, 하아……”

수면 위로 머리를 내밀자마자 공기가 코와 입을 통해서 폐에 도달했다.

지친 마음으로 눈을 힘겹게 뜨니 수백, 아니 수천 명을 수용할 정도의 크기의 동굴이 나타났다.

햇빛은 없었으나 천장이나 벽에 밤하늘의 별처럼 무수한 수정에서 흘러나오는 광채가 있었다.

“과연, 용궁의 정체란 수중동굴이었나.”

“……!”

적수수는 몸을 흠칫 떨며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그녀의 시선 끝에는 주서천이 서 있었다.

“히, 힉……!”

나름 무의 극의까지 이룬 용미가 가녀린 비명을 내지르면서 몸을 웅크리고 눈과 입술을 깨물었다.

주서천은 적수수를 흘겨보지도 않고 지나쳤다.

‘전설의 신비문파라 해서 정말로 인어들이 사는 수중도시라도 되는 줄 싶었는데…… 역시나.’

무저갱처럼 깊디깊으며 드넓은 동굴이었다.

유령곡 지부도 이 정도 되는 크기는 아니었다.

출입구라곤 적수수가 안내한 물웅덩이뿐이었다.

신기한 건 새하얀 빛과 푸르스름한 빛이 조화를 이루는 수정들이었다.

곳곳에 크고 작은 수정이 있다.

머리를 들어 천장을 보면 수정 반, 바위 반 섞인 석순이 띄엄띄엄 자리잡고 있었다.

고개를 내려 정면을 보니 호화스러운 궁전이 보였다.

정황상 용궁인게 분명했다.

“안내해 줘서 고맙다.”

애초에 목적은 남해용문이 아닌 간야자였다.

그래서 일부러 용궁으로 안내하도록 적수수를 놓아준 뒤, 기척을 감춘 채 일정한 간격을 두고 따라왔다.

상처 탓인지 아니면 공포 때문인지는 모르나 적수수는 추격이 붙은 줄모르고 남해용문까지 친절하게 안내했다.

부-오-.

소라 고동 소리가 용궁에서부터 흘러나왔다.

두 번, 세 번, 네 번……횟수가 늘어날수록 크기가 커졌다.

곳곳에서 경고를 울리듯 고동이 울려퍼진다.

침입자를 눈치챈 것이 틀림없었다.

“보, 보, 보낼 수는 없는데……!”

적수수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주서천의 이십 보 바깥에서 맴돌았다.

당장 습격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방금 전 당한 것이 있어 차마 그러지 못했다.

용미로서 체면을 다 구졌음에도 몸이 따라주질 않으니 발만 동동 굴릴뿐이었다.

그사이 주서천은 정면에 붉은색에 용무늬가 그려진 화려한 정문 앞으로 위풍당당하게 걸어갔다.

쿠웅!

문 앞에 도착하기도 전, 육중한 크기를 자랑하는 문이 갈라지면서 열렸다.

무겁다 보니 속도가 느렸다.

용궁 너머에서 흘러나오는 적의와 살의를 보면 적어도 항복의 의사는 아닌듯 했다.

부-오오-.

가슴을 울리는 고동 소리가 마지막에 길게 늘어졌다가 멎는다.

동시에문도 완전히 개방됐다.

“용미!”

“괜찮으십니까!”

“뭐 하느냐! 당장 의료진을 불어와라!”

문이 열리자마자 보인 건 갑옷으로 무장한 십여 명의 남해용문도였다.

남해용문의 본거지치곤 숫자가 적어 의아했으나, 현 상황을 생각해보면 그리 이상한 것도 아니다.

아무리 남해용문의 무위가 대단하다 할지라도 총 전력 전에 인력을 아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육지의 인간 따위가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오려 하느냐!”

“꺼져라!”

“해벌이 내릴 것이니!”

무심코 실소를 흘릴 뻔했다.

‘그럼 여긴 바닷속이냐?’

위치가 정확히 어딘지는 모른다.

그러나 모양새를 보아하니 어떤 섬의 지하인 듯했다.

신체 시각으로 대충 이각을 넘게, 그것도 제법 빠른 속도로 헤엄쳐 왔으니 분명하리라.

남해 용문주는 어디 있지?

“어허!”

남해용문 무리에서 분노 섞인 탄식이 흘러나왔다.

“뚫린 입이라고 잘도 말하는구나! 아무리 육지의 인간이라고 한들, 사해의 용왕 전하를……”

“됐다!”

용궁 안측에서부터 노기로 찬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어찌나 큰지 동굴 전체가 울릴 정도였다.

“알현을 허가하마!”

“명을 받들겠나이다!”

척.

열 사람이 한 몸이 된 듯 예를 갖췄다.

“따라와라!”

눈초리가 부리부리한 사내가 위협하듯 삼지창을 내밀었다.

주서천은 서슬 어린 창날에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붉은 비단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걸었다.

‘그나저나, 누가 만든 건진 모르겠지만 정말……’

용궁 내부의 바닥은 바깥처럼 울퉁불퉁하고 습기 가득한 돌바닥이 아니었다.

대리석은 아니나 석회암으로 잘 다듬어진 바닥은 평평하고 넓다.

수정의 재질로 된 구조물은 고풍스러움과 아름다음을 빛내 정말로 용궁을 보는 듯했다.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진 용을 휘감은 기둥의 조각을 세세하게 뜯어보면 예술이란 말이 절로 나왔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벽화나 구조물도 화려해졌다.

얼마 걷지 않아 끝자락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서 와라, 육지의 인간이여.”

“남해용문의 주인인가.”

척 봐도 눈에 띄는 용모였다.

노인임에도 팔 척을 가뿐히 넘어서는 신장에 통나무 굵기의 팔뚝, 부풀어 오른 근육은 압도적이었다.

대체적으로 이십 대에서 삼십 대인 남해용문도와는 달리 노년이니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신선처럼 길게 늘어뜨린 수염에 눈썹과 다르게 한 올도 없는 머리 위에는 금으로 된 금관이 있다.

붉은 빛깔 장식물과 어울러져 특히나 돋보였다.

주름살과 굳은살로 가득한 손에는 황금으로 된 삼지창이 기둥처럼 우뚝 서 있다.

‘황제가 남해용문에 대해 알면 눈이 뒤집어지겠군.’

스스로를 왕이라 칭할 뿐만 아니라 행색도 왕이다.

아무리 무림이라고 해도 선을 넘어섰다.

반역죄로 잡혀가도 할 말 없는 수준이었다.

무림과 상관하지 않으려는 관부라도 개입을 안 할 수가 없다.

이들이 중원에 진출하지 않기를 바랐다.

“바다를 어지럽힌 것도 모자라 허락 없이 이 용궁에 침입하다니, 자비를 구하지 말지어다.”

남해용왕이 거구를 천천히 일으켰다.

“기다리시오.”

주서천은 손바닥을 내밀어 대화를 요청했다.

남해용문도가 주서천의 무엄한 태도에 발끈하며 무어라 말하려 했으나, 남해용왕이 손짓으로 막았다.

“싸우기 전에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습니다.”

“물어볼 것?”

“예. 혹시 이곳에 간야자라는 야장이 있지 않습니까?”

남해용왕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굳이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는 반응이었다.

“전 간야자를 데리러 왔습니다.”

“간야자를 데리러 왔다?”

“예. 그의 기술이 필요하여……”

“참으로 뻔뻔하기 그지없구나!”

남해용왕이 수염을 휘날리며 노성을 터뜨렸다.

그 얼굴은 붉으락푸르락 해졌고, 이마에는 퍼런 핏줄이 툭툭 튀어나왔다.

눈의 실핏줄도 피어올랐다.

산만 한 몸집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의.

더 이상 협상은 불가능했다.

“너희 육지의 인간이 욕심으로 인해 바다를 노하게 만들어 용구자주(龍九子柱)를 무너뜨려 이 사달이 났거늘, 이제 와선 야장까지 빼앗아 용궁을 박살내려 드느냐! 천인공노할노옴―!”

남해용왕은 분노와 증오로 이성을 잃었다.

어떻게든 진정시켜 보려 했으나 무의미할 듯했다.

‘용구자주를 무너뜨려?’

주서천은 눈살을 찌푸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된 거지?’

해남검파와 녹회문이 오래 이어진 다툼으로 인해 세력이 약해질 때쯤, 남해용문이 등장했다.

정황상 해남도를 양분하는 세력이 약해지자 틈을 노려 정복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어디까지나 확신이 아닌 추측에 불과하긴 했으나 신비성 높은 추측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등장한 연유가 설명되지 않는다.

물론, 욕심으로 인해 해남도의 정세를 어지럽히기는 했다.

하지만 그런 걸로 바다가 노하거나 하진 않는다.

남해의 바다나 날씨가 지랄 맞은거야 하루 이틀이 아니다.

기문진 역시 날씨가 대변화를 겪으면 변한다.

반대로 남해용문이 등장한 후로 인위적인 기문진이 늘어나면서 바다의 흐름이 변했다.

‘누군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

여태껏 남해용문이 거짓을 고한 줄 알았는데, 눈앞의 반응을 보아하니아무래도 아닌 모양이었다.

하나 그건 해남검파나 녹회문도 마찬가지다.

거짓을 고할 연유도 없을뿐더러, 무엇보다 이 수중동굴에 찾아올 정도의 능력도 되지 않는다.

수공이 없는 건 아니나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 탓에 남해용문의 뒤를 쫓지 못해 고생하지 않았는가.

지금에 와서는 알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눈에 밟히는 문제는 여럿이지만, 아무래도 한가하게 생각할 여유는 없는 것 같군.’

쿠웅!

남해용왕이 석회로 된 바닥을 차며 몸을 날렸다.

‘간야자의 소재를 잃을 수 있으니, 죽이진 않는다.’

죽이는 것보단 살리는 게 어려운 법.

그러나 수중도 아니고 지상이니 그리 어려울 것까진 없다.

그 대신 장소가 장소인지라 동굴이무너지지 않도록 적절한 조절이 필요했다.

“크랴압!”

포효하는 남해용왕.

손에 쥔 삼지창이 휘황찬란한 빛을 내뿜으면서 한일 자를 그렸다.

쐐애액!

삼지창 앞을 가로막는 건 없다.

대기가 세 갈래로 갈라지면서 길을 연다.

그 목적지는 머리였다.

“후웁!”

숨을 들이쉬고 검을 아래에서 위로 올린다.

째-앵!

검과 삼지창이 부딪치면서 마찰음을 토해냈다.

동굴 내부가 금속음으로 웅웅 울릴 정도였다.

소리도 소리지만 위력도 대단했다.

발이 움푹 파였다.

‘과연, 남해용왕이라 칭할 정도의 수준은 되는구나.’

인사 겸 받아봤는데 순수한 위력만으로도 보통이 아니었다.

강기가 없음에도 손이 떨릴 정도였다.

“제법이로구나!”

남해용왕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가, 표정을 다시 원래대로 되돌리며 삼연속 찌르기를 날렸다.

쾅! 쿵! 쿠웅!

푹푹푹이 아니다.

부딪칠 때마다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큰 충격이 전해졌다.

화려함은 없으나 빠르고 강맹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무위만 보자면 천하백대고수 상위권에 이른다.

‘하지만……’

그뿐이다.

빠름이나 위력만으론 상천칠좌 정도는 되지 않는다.

이게 한계다.

더 이상의 탐색전은 무의미했다.

검신에 기를 휘감는다.

물이 얼음처럼 굳어진다.

검기가 아닌 강기를 실었다.

“후웁!”

숨을 폐 깊숙이 크게 들이쉬고, 

“쿠오오오오!”

힘껏 내뱉으면서 용의 울음소리를 토해냈다.

“……!”

사자후에 견주는 용후.

사해의 용왕은 그 울음소리에 압도된 듯 몸을 잠시 움찔거렸다.

용후의 성취가 극성은 아니나, 그래도 현경의 절대고수가 내공을 힘껏 끌어올려 효력은 충분했다.

심장이 옥죄이고 몸은 마비된 것 같다.

머리는 지끈지끈 아파 왔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주서천은 삼지창과 맞댄 검을 힘껏 휘둘렀다.

채앵-!

길게 늘어지는 금속음.

삼지창은 검강에 잘리지 않고 튕겨나가는 것으로 끝났다.

삼지창이 명검, 아니 명창(名槍)이라 그런 게 아니다.

창날에도 붉은빛으로 일렁이는 강기가 있었다.

“무슨……?”

남해용왕의 얼굴은 경악으로 가득찼다.

그런데 그 경악의 정도가 보통이 아니었다.

어째 무위만으로 놀란 건 아닌 듯했다.

“네 이놈! 도대체 정체가 무엇이냐!”

“화산파의……”

“그 울음소리는 필시 용문의 실전된 용후일 터! 그 무공은 어디에서 손에 넣었느냐!”

‘……하?’

주서천도 남해용왕의 외침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용후가 실전된 무공이라고?’

그게 뭔 헛소리냐고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음신, 아니 그놈의 암천회는 안가는 곳이 없어요.’

음신은 중원만이 아니라 강호의 음공이란 음공은 전부 수집했다.

용후도 그중 하나였다.

아무래도 그 출처는 영 좋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바다를 어지럽힌 것도 모자라서 본 문의 무공까지 훔치다니! 내 너를 갈기갈기 찢어 죽여버리겠다아!”

‘쉬운 일 하나 없다더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상황이 꼬일대로 꼬였다.

“우오오옷!”

남해용왕의 분노의 일갈.

귀청 떨어지는 외침이 터진 직후 삼지창이 하단을 노렸다.

주서천은 삼보 퇴보해 삼지창을 가벼이 피했다.

그러나 반격에 나서진 못했다.

싹!

바닥을 내리친 삼지창이 튕기듯 위로 솟구친다.

무식하기 짝이 없는 초식에 비하여 나쁘지 않은 기교다.

세 발자국 퇴보해 삼지창을 피한다.

턱 끝을 스치듯이 아슬아슬하게 지나갔다.

창은 거리상으로 유리함을 지닌다.

하나, 동작이 큰 탓에 한번 접근하면 틈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

주서천은 그 틈을 노렸다.

남해용왕이 한 손이 아닌 두 손으로 내질렀던 탓에 가슴이 비었다.

용연의 검극이 흉부 정중앙을 노렸다.

째앵!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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