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十二章 (181/254)

“중원에서 온 일행분을 극진하게 대우해라.”

위일해는 감사함을 표하며 그에 맞는 대접을 했다.

여러모로 은혜를 빛지기도 했지만, 바다 건너에서 온 일행들의 대부분이 막 대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정파의 후기지수인 오룡삼봉이야 두말할 것도 없었으며, 신의의 이름을 들었을 때는 두 귀를 의심했다.

또한 이의채와 사업 관련으로 여러가지 이야기를 했다.

“교역 말이오?”

“얼마 전 대접해 주신 남해의 열대과일과 해산물이 일품이더군요. 남해검문만 괜찮다면, 저희가 대신 맡아 중원과 남해도를 오가며 장사를 하고 싶습니다.”

해남도도 예전엔 교역이 나름대로 활발했다.

주변의 기문진이나 변덕스러운 바다 탓에 접근성이 영 좋지 않아 힘드나, 열대과일 등의 희귀성이나 맛 덕분에 도리어 가치를 높이는 역할을 했다.

다만, 녹회문과의 다툼을 시작으로 남해용문이 등장하자 중원과의 교역이 끊기다시피 했다.

이를 눈치챈 이의채는 해남도의 교역 권리를 독점할 수 있다는 걸 깨닫고 사전작업에 나섰다.

“폐쇄된 교역로를 다시 맡아준다는 건 고마운 일이나, 남해용문과의 다툼이 해결되어야 가능한 일이오.”

“걱정하지 마십시오.

주서천 대협께서 해결해 주실 겁니다.”

이의채는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금의상단 해남지부를 준비했다.

한편, 해남도는 중원인의 방문에 화제가 끊이지 않았다.

해적 소탕과 나란히 선 화제는 미인이었다.

“히야, 얼굴 좀 뽀얀 것 좀 보소.”

“청성파와 제갈세가의 봉황의 미모가 상천에 견줄 정도라 하더니만 저정도일 줄은 몰랐네.”

“용궁에 산다는 선녀가 실존한다면 저 여인들이 아닐지……”

해남도는 열대 기후다.

사계절 내내 태양이 뜨겁다보니 하나같이 건강하게 그을린 구릿빛 피부였다.

남해용문의 경우에는 워낙 특이하다 보니 제외였다.

피부는 둘째 치고 머리색부터 물빛이다.

대체적으로 외모도 뛰어나긴 했으나, 해남검파나 녹회문에게는 바다의 악마로 두려움 받았다.

일반 사람들에게도 사람이 아닌 신비와 경외의 대상이었다.

해남도는 이렇게 갖가지 소란 속에서 다양한 변화를 겪으면서도 남해용문과의 전쟁을 대비했다.

그리고 열흘 후, 주서천이 수련을 끝내고 나왔다.

* * *

남해용문, 용궁.

용의 몸을 휘감은 듯한 기둥이 양옆으로 서 있다.

그 사이엔 붉은 비단이 쭉 이어져 있었으며, 그 끝에는 계단에 이어 황금으로 된 왕좌가 위치해 있었다.

왕좌에는 허연 수염을 신선처럼 기르고 체구가 장대한 노인장이 근엄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노인의 양옆으론 물빛을 띠는 머리카락의 미녀가 파초 형태의 부채를 들고 인자하게 웃고 있었다.

그러나 그 웃음도 용궁을 흔드는 노성에 놀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도대체 얼마나 기다려야 하느냐!”

남해용문주, 남해용왕의 수염이 진노로 떨렸다.

“정의 손톱을 자른 놈이 버젓이 육지 위에서 숨을 쉬며 살아 있는 것에 화가 머리끝까지 나는데, 아직도 기다려야한다는 말이냐?”

“용왕이시여, 부디 고정하시옵소서.”

좌용녀(左龍女)가 남해용왕을 진정시켰다.

“아시다시피 간야자가 용궁의 보수를 무사히 끝낼 수 있도록, 인력이 동원됐지 않았사읍니까.”

우용녀(右龍女)가 설득하듯이 재설명했다.

“그러니 용조의 복수는 후로 미루는 것이……”

“급보이옵니다!”

그때였다.

용문이 거칠게 젖혀지면서 전령이 달려왔다.

“무슨 일이냐!”

“해안에 해남검파 및 중원의 무림인들이 집결 중인 모습이 포착됐다고 하옵니다!

그 밖에도 인근 해역에 배 몇 척이……”

남해용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얼굴은 분노와 살의로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욕심으로 바다를 노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죄를 인정하지 않고 검을 뽑아들다니…… 참으로 어리석구나.

더 이상 기다릴 것도 없다. 전면전을 준비해라.”

“하, 하나 폐하. 현재 간야자를 돕느라 인력이 부족하여……”

“그러면 보수를 잠시 멈추면 되지 않느냐!”

남해용왕은 불같이 화를 내면서 명을 내렸다.

“이제 기다림 따위는 됐다!

용궁의 신하들은 어서 출정을 준비하거라!”

“명을 받들겠나이다!”

남해용왕의 앞, 용궁의 무사들이 답했다.

* * *

해남도, 남해안.

“슬슬 꼬리를 문 것 같네요.”

단리화가 먼 곳을 바라보며 웃음을 지었다.

“이런 게 낚시의 묘미인 걸까요.”

“……”

전수국은 멀리 떨어진 수면 위에 떠오른 머리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다들 준비해라!”

전수국은 대기 중인 해남검파에 신호를 보냈다.

그리곤 다시 해상 위를 살피더니 감탄했다.

“정말로 나타날 줄이야……”

“우리 쪽 모사는 대단히 유능하거든요.”

단리화가 옅게 웃으면서 눈을 가늘게 떴다.

마치 생선을 보고 어찌 요리할까 고민하는 것 같았다.

“참으로 대단하오.”

시간을 되돌려 얼마 전, 주서천은 준비를 끝내고 나오자마자 위일해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제는 단연 남해용문과의 전쟁이었다.

“도와주는 건 고맙네만, 솔직히 말해서…… 어떻게 싸워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네.”

남해용문은 바다와 해변에선 무적이었다.

그걸 아는지 결코 땅을 밟으려 하지 않았다.

해남검파도 바보는 아니다.

강파로서 자부심은 있어도 불리한 싸움을 할 정도로 오만하지도 않았다.

그동안 어떻게든 육지로 유인하려 했는데, 따라오지를 않으니 답답할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안 싸우자니 해남도의 비난이 거세지고, 바다로 나가지 못하면 생계가 곤란해지니 어쩔 수 없이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제갈 소저, 모사께서 계시니 사해갱진은 더 이상 문제 되지 않습니다.”

“전에 들었으니 그건 알고 있네.

하나, 그건 남해용문 측 또한 알고 있지 않나?”

“그건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제갈수란이 대신 물음에 답했다.

“전의 경험으로 인해 사해갱진을 돌파한 사람은 저와 주 공자, 두 사람뿐이에요.

아마 남해용문 측에선 단순히 우연으로 치부하며 간과하고 있을 가능성이 클 거예요.”

남해용문이 정말로 전설상에 등장하는 신비문파이고, 역사가 오래됐다면 그럴 가능성은 더더욱 컸다.

오랫동안 무너지지 않은 힘을 소유하면 사람은 자만하고 오만해지기 마련이다.

제갈수란은 그 빈틈을 파고들었다.

“그렇다면 해변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건데…… 미안하네만, 해남검파의 전력이 그리 많지가 않네.”

해남검파는 녹회문과 오랫동안 싸워왔을 뿐만 아니라 남해용문 탓에 피해를 많이 입었다.

어쩌면 전생에서 전란의 시대에 참전하지 않았던 것도 이와 같은 연유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적의 전력을 해상과 해변으로 분산시킬 생각이에요.”

“각개 격파하겠다는 말인가? 하지만……”

위일해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너무 조심스러운 건 아니냐는 생각도 들겠지만, 전혀 아니었다.

남해용문은 그만큼 강대한 문파였다.

특히나 바다 위에서 얼마나 괴물같이 강한지는 경험을 통해서 뼛속 깊이 알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해선 바다에선 해남도 사람들조차 힘을 제대로 내지 못한다.

바다는 수공의 영역이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바다는 저희에게 맡겨 주십시오.”

“저희?”

주서천이 엄지로 뒤를 가리켰다.

좌중의 시선이 한 곳에 모였다.

“엣헴!”

제갈승계가 콧대를 세우고, 가슴을 쫙 폈다.

남해용문의 전력은 무려 육백여 명 정도였다.

어지간한 대문파 수준이다.

이 정도 되는 수의 고수가 강호에 나오지 않은 게 신기할 노릇이다.

용궁 앞, 출병 전 육백여 명은 대기 중이었다.

“보고 드립니다!”

수면 위로 올라가 정찰을 한 남해용문도의 외침.

“해남검파와 그에 찬동한 중소문파를 합해 해안에 삼백여 명 정도가 집결했습니다!”

“그리고?”

“인근 해역, 용궁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해역에 배 여섯 척 출현!”

“흐트음……”

머리카락을 등허리를 넘을 정도로 길게 기르고, 신장이 작은 여인이 눈을 가늘게 뜨고 생각에 잠겼다.

용미(龍尾) 적수수(赤水水).

해남용문의 용의 꼬리라 불리며, 얼마 전 빈자리가 된 용조와 견줄 정도의 고수였다.

그녀의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용린(龍麟).”

“말해라!”

용린, 적해장사(赤海壯士).

바다의 천하장사라는 이름답게 팔 척에 이르는 키에 우락부락한 근육을 지녔다.

얼굴은 몹시 험상 궂으며, 푸르른 수염은 아무렇게나 자랐다.

연령대는 다른 해양문도처럼 젊어 보였다.

용조, 용미와 마찬가지로 남해용문의 고수다.

“사백 명을 데리고 해안을 맡아 주세요.”

“사백? 크하하핫! 괜찮겠나!”

적해장사가 유쾌한 웃음을 터뜨리며 답했다.

“육지도 아니고 바다인걸요. 만용을 부린 육지의 인간들에겐 이백 명도 과할 정도에요.”

적수수가 눈웃음을 지었다.

남해용문에서 수공이 제일 능한 이가 바로 용미다.

기동성이나 바다에서의 무위는 남해용왕을 제외하곤 따라올 자가 없었다.

괜히 용의 꼬리가 아니다.

“아무래도 저희 전력을 분산시키려는 목적인 것 같네요. 별로 의미는 없지만요.”

적수수가 차갑게 웃었다.

해남도, 남해안.

뜨거운 햇볕 아래, 머리카락이 바닷바람에 나부낀다.

해남검파를 중점으로 모인 중소문파 무사들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결코 무더위 탓이 아니었다.

“남해용문……!”

파도가 해변을 찰싹 후려치고 도망친다.

수면 아래가 훤히 보일 정도로 맑은 해수면 아래에서 나온 건 조개같은 것이 아닌 사람이었다.

약 사백여 명에 이르는 남해용문도가 살의로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해남검파와 마주 봤다.

“하하하!”

적해장사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뜨렸다.

‘멍청한 것들!’

남해용문이 밟는 육지는 오로지 해안뿐이었다.

해남도의 해안 곳곳은 남해용문의 영역이다.

용궁을 코앞에 둔 해안이야 두말할 것도 없었다.

굳이 사백 명 정도를 데리고 올 필요도 없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사해갱진이다!”

적해장사가 목청껏 소리쳤다.

대놓고 무얼 하겠다고 광고하는 꼴이었으나, 어차피 사해갱진의 발동은 일순간이라 별로 상관없었다.

마침 나 죽여 달라고 모래사장 한가운데 있었으니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기다렸던 비명을 들려오지 않았다.

필시 해남검파의 제자들이 모래 늪에 빠지게 되면서 아비규환이 펼쳐졌어야 했으나, 조용하기만 했다.

호기롭게 외쳤던 적해장사가 무안해질 정도로의 고요함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지금이다!”

해남도 측 총지휘권을 지닌 위일해가 외쳤다.

“남해의 악마들이 바다에 돌아가지 못하도록 해라!”

“우오오오!”

“남해의 평화를 위하여!”

남해검파를 시작으로 함성이 터졌다.

바닷가를 서성이던 백구가 깜짝 놀라 도망칠 정도의 크기였다.

“쯧!”

적해장사가 당혹스러워하는 것도 잠시였다.

“상관없다! 어차피 육지의 인간들 따위 우리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퍼억!

적해장사는 손뼉 대신 주먹을 맞붙여 소리를 냈다.

“죽여라!”

용린의 명령에 남해용문도가 반응했다.

““바다의 평화를 위하여!””

““용왕을 위하여!””

““용궁에 영광 있으리!””

““육지에게 해벌을!””

남해용문과 해남검파가 격돌했다.

채채챙!

“크악!”

“악!”

비록 사해갱진이 제 기능을 상실했다 할지라도 남해용문은 기죽지 않았다.

격렬한 기세로 싸웠다.

남해용문의 강함에는 군더더기가 없다.

바다가 아닌 해변 위에서도 강력한 무력을 자랑했다.

개개인의 무력도 대단한데 수까지 우위에 있다.

결코 쉽지 않은 상대였다.

만약, 해남검파만이라면 얼마 가지도 못하고 전멸을 면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저력은 전과는 달랐다.

주서천의 해적 소탕은 다양한 결과를 불러왔다.

그중에는 민심만이 아니라 중소문파의 지지도 있었다.

그 덕분에 백에 이르는 무사의 지원을 받았다.

또한 제갈세가와 청성파의 정예의 도움도 받았다.

특히나 눈부신 활약을 하는 건 단연 화경에 이르는 고수, 파검봉 단리화였다.

단리화가 칠십이파검을 펼칠 때마다 천하의 남해용문도도 고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외에도 해남제일검과 제이검까지 참전했다.

그야말로 총력전에 어울리는 전력이었다.

모래사장 위에서 싸우는 데다가 수적으로 불리하기는 해도 그럭저럭 대응할 수 있었다.

“네 이놈들!”

용린의 분노가 해안가를 덮쳤다.

적해장사의 모습은 어느새 변해 있었다.

용조, 적오의 팔처럼 온몸이 비늘로 뒤덮여 있었는데 마치 찰갑(札甲 : 비늘갑옷)을 착용한 듯했다.

팔 척에 이르는 신장인 만큼, 마치 신화 속에 나오는 천상계의 무장처럼 보였다.

“용린외공(龍麟外攻)!”

남해용문의 용린에게만 주어지는 독문무공으로서 내공이 아닌 엄연한 외공이다.

수련하면 피부가 비늘처럼 변하며, 사용 시 온몸을 뒤덮는다.

그야말로 용린이라는 별호에 걸맞은 무공으로 단단한 방어력을 자랑했다.

“크하압!”

적해장사가 팔을 크게 휘둘렀다.

부웅!

“커허억!”

퍼억!

고작 팔을 휘둘렀을 뿐이었다.

해남검파의 제자 둘이 팔에 후려 맞고 바닥에 처참하게 굴렀다.

팔에 맞은 부분이 시퍼렇게 부풀어오른 걸 보아하니 뼈가 부러진 것이 분명했다.

“자, 와……”

슈욱!

적해장사가 눈살을 찌푸리면서 뒤로 물러났다.

그가 휘두른 팔의 표면에는 긴 검상이 남겨졌다.

“이노옴……”

“그동안 네놈들의 손에 쓰러진 사형제들의 원한, 이 해남제이검 전수국이 되갚아주겠다.”

전수국이 좌수로 검초를 펼쳤다.

해안에서 격전이 치러지고 있을 무렵, 해상에선 사기를 고양시키기 위한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둥! 둥! 두둥! 둥! 둥! 두둥!

일정한 박자에 맞춰서 고수(鼓手)가 북을 친다.

여섯 척의 배가 일정한 대형을 유지하고 해수면 위에 멈춰 섰다.

용궁의 바로 위였다.

‘어떻게 안 걸까요?’

수심 십오 장.

용미, 적수수가 이끄는 이백 명의 남해용문도는 여섯 척의 배 아래에서 섣불리 오르지 못하고 대기했다.

‘용궁수호진(龍宮守護陣)의 생문은 어찌 알고……’

해남도 근방엔 기문진이 여럿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악명 높은 것이 최근 등장한 용궁수호진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예부터 있었으나, 그저 바다의 무서움이며 자연재해로 인식되었을 뿐이었다.

어쨌거나, 용궁수호진이 있어 남해용문은 오랫동안 외부의 접근을 차단하고 신비문파로 있을 수 있었다.

남해용문이 그동안 발견되지 않은것도 이 용궁수호진 덕분이었는데 문제는 얼마 없는 이 생문을 해남도의 누군가가 찾아 들어온 것이었다.

‘설마하니 내부에 배신자가…… 아니, 그럴 리가 없어요.’

용궁수호진의 중요성은 두말할 것도 없는지라, 그에 관한 건 기밀에 붙여졌다.

생문에 대해서 아는 것도 남해용왕과 용조, 용린, 용미밖에 없었다.

용조나 용린은 무공만으로 오를 수 있는 지위가 아니다.

사문에 대한 충의심도 필수로 요구됐다.

‘함정일까요?’

적수수는 신중한 성격이었다.

혹시나 그물 같은 게 펼쳐져 있지 않을까 확인해 봤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사실 그물이 있다 해도 그리 문제될 건 아니다.

일반 무인이라면 모를까 수중에서 제 힘 이상을 발휘하는 남해용문도는 그물 따위 손쉽게 끊고 자른다.

‘어차피 고민해도 답은 나오지 않아요.

이렇게 된 거, 몇 명 잡아서 추궁하도록 하죠.’

적수수는 결심한 눈으로 위를 올려다보며 몸을 움직였다.

몸을 흔들며 헤엄치는 모습은 전설상의 인어와 같기도 하고, 마치 용의 꼬리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백에 이르는 남해용문도도 적수수를 따라가다가, 그녀의 지시에 여섯 등분으로 나눠져 배로 향했다.

푸하!

“올라왔다!”

선상 위, 아래를 내려다보던 금의검문 무사가 외쳤다.

나머지 다섯척의 배에서도 외침이 퍼졌다.

“선측(船側)을 공격하세요!”

적수수가 머리를 내밀자마자 명령을 내렸다.

선미와 후미 그리고 용골의 경우는 단단하다.

선저판(船底板 : 배밑)의 설계도 대강 그렇다.

평평하며 넓고 두껍다.

큰 배라면 더더욱 그랬다.

측면에 구멍을 뚫어 가라앉히는 편이 나았다.

그래도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여 절반은 머리를 내밀지 않고 선저판 아래에 몰려들어 공격하려 했다.

그러나

“개(開)!”

남해에 울리는 청년의 목소리는 제갈승계였다.

좌륵! 좌르륵! 좌르르륵!

선박의 측면, 좌현과 우현에 네모난 창이 열렸다.

혹시 노라도 나와 회피 기동을 하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건 크나큰 착각이었다.

“쏴!”

콰앙!

폭음, 아니 굉음이었다.

귀청이 떨어질 정도로의 굉음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소리가 아니었다.

작살이었다.

한 척당 수십여 발에 이르는 작살이 화살처럼 쏘아지며 하늘, 아니 바다를 뒤덮었다.

“커헉!”

“아아악!”

무언가 있을 줄은 알았으나, 예상치 못한 공격에 남해용문도는 당황하면서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러나 대부분이 피하지 못하고 몸에 작살이 꽂혔다.

아무리 수공에 능하여 인어라 불리는 남해용문도라 할지라도, 비정상적인 속도로 쏘아진 작살, 그것도 한 척당 백여 발에 이르는 공격을 전부 피하진 못했다.

천만다행으로 따로 빼둔 백 명의 남해용문도는 피해 없이 살아남았으나, 피해가 적은 건 아니었다.

“도대체……!”

살아남은 소수, 적수수가 경악했다.

배를 침몰시키려고 몸을 수면 밖으로 내민 게 패인이었다.

작살이라 해도 수면 아래로 들어가면 얼마 가지 않고 힘을 잃지만, 위에 있다는 게 문제였다.

심지어 한 척도 아니라 여섯 척이 동시다발적으로 쏘아댔으니, 수백여 발의 작살이 빗발쳐서 내렸다.

“성공이다! 성공!”

제갈승계가 선상 위에서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핫핫핫, 역시 꼬맹이야!”

초련이 허리를 젖히며 크게 웃었다.

“비, 비겁해요!”

적수수의 얼굴이 치욕으로 일그러졌다.

“이런 게 기관이라는 거야!”

제갈승계가 허리에 손을 앉고 씩 웃었다.

정파인이 본다면 욕을 퍼부을 전법이었다.

적수수는 입술을 깨물며 수면 아래로 잠수했다.

“핫핫핫!”

전쟁의 준비를 한 건 주서천만이 아니었다.

주서천이 수공을 수련하는 동안, 그 외의 사람들도 여러 가지를 준비했다.

제갈승계나 이의채가 대표적이었다.

“형님, 이거 잘하면 개조해서 쓸수 있겠는데요?’

방준에게서 빼앗아 온 여섯 척의 해적선.

원래는 이의채가 상단의 수송선으로 사용하려고 했으나, 확인해 보니 해적선은 이리저리 개조되어 있었다.

수군에 대항하려는 전선(戰船)이었던 것.

제갈승계는 이를 보고 기관을 설치해 병기로서 탈바꿈시켰다.

화약은 관부의 통제를 받다 보니 제갈세가나 금의상단의 힘으로도 대량으로 구하기에는 힘들다.

그래서 작살을 대신해서 이와 같은기관 장치를 부착했다.

작살을 구하긴 어렵지 않았다.

“작살을 전부 달라고?

아니, 그러면 우린 뭐 먹고 살라고? 아무리 해적의 소탕을 도와주었다곤 하지만 외부인이 말이야……”

“이 정도 금액은 어떻습니까?”

“금의상단 만세! 내 전부터 중원인과 호형호제하는 게 꿈이었소! 혹시 누가 괴롭히면 말만 하시오!”

이의채의 돈지랄 앞에 다들 앞다투며 작살을 줬다.

사전에 개조된 해적선인지라, 조금만 손보는 것으로 완성됐다.

인력은 해적들이 있으니 상관없었다.

금의상단의 무사들은 감시역 및 호위로 여섯 척의 배로 나뉘어 지휘를 맡고, 소리를 질렀다.

‘그런……!’

적수수가 치를 떨면서 선박의 아래로 이동했다.

‘사, 상관없어요. 시간이 조금 걸리는 게 흠이지만, 이 아래에 있으면…… 꺄악!’

적수수는 측면에서 파고드는 검에 놀라 황급히 물러났다.

마치 육지에서 보법을 펼치는 것처럼 보였다.

‘……?’

순간 등골을 스치고 지나가는 오한에 적수수는 몸서리치면서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그곳엔 소매 자락에 매화가 그려진 도복 차림의 청년, 주서천이 눈을 빛내고 있었다.

적수수는 주서천을 보고 놀랐다가, 조소를 흘렸다.

‘어리석군요!’

수공은 바다 위에서도 강함을 자랑하지만, 아래에선 그 힘이 대폭 늘어난다.

또한, 아무리 대단한 무인이라 할지라도 수중에선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기 힘드니 그 격차는 크다.

‘저희의 영역으로 온 걸 후회하게 해드리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