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도가 중원의 최남단에 있다곤 하지만, 그렇다고 바다를 건너는 데 몇날 며칠 걸리는 건 아니다.
최남단으로 가는 게 어렵지 바다를 건너는 데 소요되는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았다.
길어 봤자 이틀, 짧으면 하루다.
태풍을 만나면 날씨가 방향이 틀어지거나, 혹은 기문진의 생로를 찾아 돌아가야 해서 시간이 좀 걸리는 것뿐이었다.
일행의 배는 하루 하고도 한 나절 뒤의 새벽에 도착했다.
해남도의 성도인 해구(海口)였다.
“이게, 무슨……”
일행은 배에서 내리자마자 눈살을 찌푸렸다.
바닷바람을 타고 온 것은 짙은 혈향(血香)이었다.
그것도 상당한.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모래사장 앞으로 펼쳐진 건 바람에 춤추듯 움직이는 야자나무였다.
열대기후 지역인 해남도는 일 년 내내 사계절이 여름이다.
그러나 여유롭게 해남도의 여름을 만끽하면서 휴가를 보낼 수는 없었다.
“대장, 어떻게 할 거요?”
초련이 허리춤에서 검을 빼들며 물었다.
“……음.”
무작정 해남도로 온 것만은 아니다.
그래도 정파에 속하는 해남검파에게 도움을 받을 생각이었다.
“모사께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주서천이 제갈수란에게 질문을 돌렸다.
제갈수란은 주서천의 물음에 잠시 고민하다 싶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답을 내놓았다.
“무슨 일인지 파악은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만약, 도움이 필요하다면 도와주고 해남도의 정세나, 주변 정보를 알 수 있으니까요.”
“좋습니다.”
주서천이 고개를 끄덕이곤 지시를내렸다.
“정찰은 최소한의 인원으로만 하도록 하겠습니다.”
선박을 지켜야 할 사람이 필요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선원만으론 부족했다.
중원에서 데려온 금의상단 소속 무사들을 남겼다.
약 팔십여 명 정도 되는 수이니 걱정할 필요는 없을 듯 싶었다.
“가시죠.”
* * *
흰 모래 위가 핏방울로 벌겋게 물든다.
녹색의 야자수림 군데군데에는 시신이 굴러다녔다.
해남도의 상쾌한 야자수 바람은 비릿한 향을 옮겨 후각을 찔렀다.
“크아악!”
해구 인근, 남도강.
남해와 연결된 강과 해변의 모래사장 사이에서 비명과 금속음이 연달아 터져 나온다.
끼-룩.
백구 떼가 시체더미 위를 원형으로맴돌았다.
그 아래에는 병장기를 휘두르는 무인들로 가득했다.
“제기랄!”
빼빼 마르고 크지도 작지도 않은 신장을 지닌 해남검파의 중년 고수, 전수국은 욕설을 내뱉었다.
전수국의 적의로 이글거리는 눈동자에 비춰지는 건, 물빛 머리카락을 찰랑이는 청년이었다.
그 외에도 해남검파와 적대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머리색이 물빛을 띠어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남해용문(南海龍門)……!”
“남해제이검(南海第二劍)이라는 별호는 허명이 아닌 것 같으나 여기까지다. 이곳 남해에서, 특히나 물을옆에 둔 나, 용조(龍瓜) 적오를 이길 자는 없다.”
적오의 호언에 전수국의 수염이 파르르 떨렸다.
‘함정에 빠질 줄이야……’
해남검파와 남해용문은 적대, 아니 전쟁 중이었다.
전수국은 바로 얼마 전 남해용문의 은거지에 관련된 정보를 듣고 습격을 준비했다.
사문의 정예를 데리고 습격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정보가 고의로 흘린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됐다.
이백여 명의 정예가 순식간에 백여명으로 줄어들었고, 그에 반면 남해용문의 전력은 끊이지가 않았다.
“사람의 욕심과 어리석음으로 바다를 노하게 만들어 용궁을 어지럽힌 죄, 엄히 물을 것이니.”
“헛소리!”
전수국은 노성을 내지르며 적오의 말을 일축했다.
“신비문파인 척하면서 몸을 사리고 있다가, 본 파와 녹회문(鹿回門)이 다툼으로 세력이 약해진 걸 노리고 나온 주제에 어디서 뻔한 거짓말로 우롱하려 하느냐!”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군. 참으로 뻔뻔하도다.”
적오의 산호색 눈동자가 살의로 번뜩였다.
“이 어리석은 인간들에게 용왕의 벌을 내려라.”
“용왕의 벌을 내려라!”
남해용문의 문도들이 함성을 외쳤다.
“적오!”
전수국이 적오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뛰쳐나갔다.
“용의 손톱이 곧 벌이 되리라.”
적오가 역시 몸을 날려 전수국과 격돌했다.
“후웁!”
선공은 전수국이었다.
해남검파의 무공은 하나같이 좌수검(左手劍)으로 검을 기울인 뒤 번개같이 휘두르는 것이 특징이었다.
한번 휘두르면 무조건적으로 상처를 보며, 살초가 다분하다 하여 음독하다는 연유가 되기도 하였다.
실제로 초식을 펼치면 반드시 상대에게 상처를 입히기도 해서 틀린 말은 아니었다.
또한, 무림에서도 흔치 않은 좌수검으로 검까지 기울여서 휘두르다보니 일반무학과 워낙 상이하여 옛적에는 정도에서 어긋난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던 시절도 있었다 한다.
그래도 꼿꼿이 정도를 표현하며 의협을 중시한 결과 정파의 명문지파가 될 수 있었다.
번쩍!
전수국의 손에서 검푸른 빛과 함께 해남검파의 절기가 펼쳐졌다.
쾌검임에도 그 기세는 강대하였다.
해남검파의 절기인 남해삼십육검(南海三十六劍)의 일초로서 남해의 장대한 물결이 산을 순식간에 무너뜨린다는 해소산붕(海鳴山崩)이라는 검초였다.
‘과연, 남해제이의 검이구나.’
광오한 태도를 보였던 적오도 전수국의 검초에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눈부실 정도로의 빠르기도 보통이 아니건만, 몸을 덮쳐오는 강대한 기세는 압도될 정도이다.
하나 적오도 만만치 않은 건 마찬가지다.
그 전수국을 벼랑까지 밀어붙였던 장본인이 바로 적오다.
용조, 적오의 동공이 파충류의 것처럼 세로로 쩍 갈라졌다.
집중한 순간, 시간이 느리게 흘러갔다.
검푸른 빛을 뿜어낸 검신이 동공에 비춰졌다.
일초를 펼친 그 순간에 검신에 강기를 실은 게 보였다.
“후웁!”
적오의 손 역시 눈보다 빨랐다.
동물을 넘어선 감각이 전수국의 쾌검에 반응해 수직으로 솟구쳤다.
채애앵!
검과 손이 부딪쳤거늘, 이상하게도 금속끼리 부딪치는 마찰음이 들렸다.
심지어 불똥까지 튀었다.
전수국은 검신이 충격을 받고 부르르 떨자, 이를 뿌득 갈면서 적오의 손을 훑어봤다.
그 손은 사람의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살색의 피부 같은 게 아니었다.
붉은색을 반사시키는 비늘이 손목까지 둘러싸고 있었다.
손 또한 끝이 뾰족했는데, 벽화에서나 나오는 용의 발톱을 닮았다.
‘남룡조수(南龍凰手)!’
언뜻 보면 소림사의 용조수의 아류라 볼 수도 있으나, 전혀 그렇지 않다.
완전히 다른 체계의 무공이다.
어떠한 원리인지는 모르나, 남룡조수를 수련하여 상승에 이르면 손이 점차 용의 것을 닮게 된다.
그저 형상만이 아니라, 비늘까지 돋는다.
더 신기한 건 내공을 불어넣을 경우에만 변화한다는 것이었다.
“쯧!”
전수국이 혀를 차며 검을 휘두른다.
겉만 보면 사방팔방으로 휘두르는 것 같으나 그 안에는 상승의 묘리가 섞여 있다.
일생이 녹아든 남해삼십육검이 차례대로 초식을 이으면서 적오를 압박했다.
“어림없다!”
적오의 눈이 이리저리 바삐 움직인다.
손톱에 맺힌 적색강기가 전수국의 검강을 튕겨 내거나 막아냈다.
남해제이검과 용조의 격돌은 숨 쉬는 걸 잊을 정도로 격하게 이루어졌다.
콰앙! 쾅!
강기가 부딪칠 때마다 그 충격파가 파도처럼 출렁이면서 주변의 야자수가 크게 흔들리며 춤을 췄다.
그 단단한 야자열매조차 버티지 못하고, 중간에 산산 조각나며 바닥에 떨어져 박살이 났다.
과즙이 핏방울에 뒤섞여서 썩 좋지 못한 냄새를 냈다.
하나, 이 격전도 그리 오래 가진 못했다.
강기란 건 대량의 내공의 집합체다.
절대의 무기인 만큼 소비되는 양도 어마어마했다.
연달아 쓴다면 화경의 고수라 할지라도 금방 바닥을 보이기 마련이다.
일각의 시간이 흐르기도 전에 내공의 한계를 보이기 시작했다.
먼저 지친 건 전수국이었다.
“쿨럭!”
전수국이 피를 울컥 토해내며 뒤로 물러났다.
내공의 부족에 검강이 도중에 옅어지면서 조강의 충격을 고스란히 맞았다.
내상이었다.
남해제이검의 낯빛은 혈색이 부족한지 창백하게 질렸다.
척 봐도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대사형!”
해남검파의 제자들이 비명을 질렀다.
‘낭패다.’
치명상까지는 피했지만, 내공이 바닥이 났다.
적오 같은 화경의 고수와 더 이상 싸울 수 없었다.
‘과오구나.’
전수국은 자책하면서 후회했다.
남해용문과의 전쟁을 끝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 그만 섣부른 판단을 하고 말았다.
사문의 최정예이니 어찌할 수 있을 것이라며 과신했다.
아니, 오만에 빠지고 말았다.
‘여기서 전멸한다면 해남검파의 미래는 없다.’
어떻게든 물러나야만 했다.
하지만 그게 가능했다면 함정이란 걸 깨달았을 때 진작 했다.
“도망칠 궁리를 하는 것 같으나, 소용없다.”
적오가 전수국의 내심을 꿰뚫고 말했다.
“이 주변은 남해용문이 자랑하는 사해갱진(沙海抗陣)을 준비해 두었다.
지원 병력은 물론이고 날개라도 달려 있지 않은 이상 개미새끼 한 마리 다가오지 못할 것이다.”
사해갱진은 남해용문이 자랑하는 기문진이다.
모래사장에서만 펼칠 수 있는 제한이 있으나, 그만큼 강력하기 짝이 없었다.
사해갱진이 발동하면 그 주변 일대가 마치 개미지옥처럼 모래 구덩이로 변하는데, 발을 잘못 디디기라도 하여 빠지면 다시는 위로 올라올 수 없었다.
심지어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깊숙히 빨려 들어가는 구조인지라, 발버둥 치면 목숨만 잃을 뿐이었다.
신법의 고수라 할지라도 정작 발걸음을 늘릴수록 더 빨려 들어가니, 살 수 있는 방법이 전무했다.
이 기문진 탓에 후퇴도 하지 못했으며, 초기에 잘못 대응하여 수십 명이 빠져 죽었다.
“이럴 수가……”
“으으으!”
“이대로 죽는 것인가?”
해남검파의 제자들의 얼굴에 패색이 짙어졌다.
전수국의 얼굴도 좋지 못했다.
판단을 잘못해 함정에 빠진 어리석음을 저주하며 절망에 잠겼다.
적오가 손을 쥐락펴락했다.
손가락뼈가 맞물리면서 우드득하고 요란스러운 소리를 냈다.
“죗값을 치루거라, 어리석은……”
“실례합니다!”
그 순간, 외부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모두가 멈췄다.
해남검파도 남해용문도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귀신에라도 홀린 얼굴이었다.
몇백여 명의 무인들의 시선이 한곳에 몰렸다.
“……?”
그곳은 불과 몇 각 전까지만 해도 해남검파의 제자들을 잡아먹었던 모래사장 위였다.
문제는 그 위에 남녀가 산책이라도 하듯이 느긋하게 걸어오고 있다는 점이었다.
“무슨……?”
전수국은 순간 꿈을 꾸나 싶었다.
절망이 너무 깊어 환각을 보는 건 아닐까 싶었다.
그 정도로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특히, 두 남녀 중 여인은 선녀가 아닐까 싶을 정도의 미모를 지니고 있었다.
의심은 더더욱 깊어졌다.
“거기!
좌수검을 보아하니 해남검파인 것 같은데, 맞습니까!”
“예? 예, 예…… 그렇소만……”
전수국은 귀신에 홀린 것처럼 답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전수국의 태도에 뭐라 하지 않았다.
대부분이 비슷한 심경이었다.
혹시나 남해용문의 또 다른 기문진에 걸려든 건 아닐까 싶었으나, 적오의 태도를 보니 아닌 듯했다.
애초에 다 이긴 싸움에서 이런 번거로운 짓 따위 할 이유가 없었다.
“혹시 도움이……”
“주 공자. 이 앞에서부터는 우로 칠 보(步)에요.”
“아, 네. 거기,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청년이 선녀에게 무어라 듣곤 양해를 구했다.
“……?”
적오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사해갱진은 남해용문의 기문진 중에서도 손꼽히는 기문진이다.
아무나 돌파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헌데 웬 남녀가 나타나선 산책하듯이 걷고 있다.
상식에서 벗어난 광경에 인지 부조화가 일어났다.
남녀는 사해갱진를 건너왔다.
그리고 남자가 전수국에게 물었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그, 그렇소만……”
전수국이 귀신에 홀린 듯 대답하자, 남자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리곤 적오를 향해 검을 겨누며 말했다.
“안녕, 난 주서천이고 이쪽은 모사이신 제갈수란 소저라고 해. 지금부터 너희를 개박살 낼 거야.”
그 누구도 주서천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말을 못 알아듣는 건 아니었다.
해남도가 최남단에 있다곤 해도, 외국이 아니니 방언이 있을망정 언어는 같다.
그저, 지금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주서천?’
어디서 들어본 이름이다.
근데 워낙 현 상황이 어이없어서 떠올리지 못했다.
“허……”
길게 이어진 침묵을 깬 건 적오였다.
“무슨 수로 사해갱진 내부로 진입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오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무래도 미쳐 있는 모양이로다.”
고작 단 두 사람이었다.
사해갱진 안으로 무사히 들어은 건 둘째치고도, 고작 둘밖에 되지 않는데, 박살 내겠다고 선언했다.
아무렇지 않은 저 의기양양한 태도를 보아하니, 분명 정신이 나간 것이리라.
“그곳에 가만히 있거라, 광인들이여.
남해제이검의 목부터 빼앗은 뒤, 사해갱진에 어찌 들어온 것인지 추궁하도록 하마.”
적오는 주서천과 제갈수란을 무시했다.
“……!”
전수국은 적오의 말에 무언가를 깨달은 표정을 지었다.
“누구인지는 모르나, 사해갱진을 자유로이 돌아다닐 수 있다면 부디 사형제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주게나!
그동안 이 내가 시간을 끌도록 하겠네!”
지원 병력은 없었으나, 그래도 생로를 찾았다.
지금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누가 도와주든 상관없었다.
어둠 속에 피어난 빛은 희망 그 자체였다.
“그걸 보고만 있을 줄 아나?”
적오가 어림없다는 듯, 턱짓으로 주서천과 제갈수란을 가리켰다.
“포위해라!”
외곽에 위치한 남해용문의 십여 명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해남검파가 돕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주서천과 제갈수란이 전수국에게 말을 걸려고 중심부에 다가온 탓이었다.
“무리해서라도 저 두 사람을 보호해서 빠져나가라!”
전수국이 적오를 경계하면서 소리쳤다.
“하지만, 대사형!”
“얼른!”
전수국은 가망이 없다는 걸 깨닫고 스스로를 희생하기로 마음먹었다.
섣부른 판단의 속죄였다.
“부디 사형제들을 부탁……”
한껏 비장한 목소리로 외치려던 전수국이었으나, 그 말도 의지도 닿지 못했다.
서걱!
주서천이 움직였다.
눈을 껌뻑이자 본 건 남해용문도의 팔이 잘리면서 공중으로 둥실 떠오른 장면이다.
“무슨……”
오른팔을 잃은 남해용문도가 얼빠진 소리를 내뱉었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인식하지 못했다.
팔이 잘렸음에도 그 감각이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 듯했다.
또한, 고통에 비명을 지를 틈도 없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시야가 빙글 돌아갔다.
의식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본 건 목이 잘린 몸이었다.
‘아홉.’
한 발을 축으로 삼아 몸을 돌린다.
굳이 목이 잘려나가는 걸 확인할 필요도 없다.
감각이 증명했다.
아홉의 남해용문도는 아직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다.
뇌가 인식할 수 있는 속도를 넘겨버렸다.
해남검파의 쾌검에 익숙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눈이 따라갈 수 없었다.
반응속도도 늦었다.
화경을 넘어선 현경이라는 절대경지의 신체능력이니 따라가지 못하는 것도 이상한 건 아니다.
주서천은 제갈수란이 다치지 않도록 전력을 냈다.
겸사겸사 해남검파도 전원 구할 생각이었다.
쐐액!
용연이 섬광을 내뿜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대기층에 구멍을 내면서 공기를 찢는 소리를 토해냈다.
푹!
남해용문도의 목 정중앙에 바람구멍이 났다.
“끅!”
외마디 비명을 흘리며 목을 부여잡는 남해용문도.
그러나 성대에 구멍이 나버려 그이상 무어라 말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며 제자리에 무너져 내렸다.
남해용문은 그제야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느낀 듯, 정신을 번쩍 차리고 움직였다.
타앗!
남해용문은 해남검파를 전멸시키려 만반의 준비를 했다.
전수국같이 정예에 걸맞은 전력을 데리고 왔다.
그러다 보니 이 자리의 남해용문도는 하나같이 실력자들이었다.
또한, 남해용문은 현 해남도를 양분하는 세력 중 하나답게 평균적으로도 무력이 높았다.
이를 증명하듯, 주서천을 포위한 여덟 명의 남해용문도는 사방팔방으로 흩어지나 싶더니 합격진을 형성했다.
그 연결 동작이 부드러우면서도 재빨랐다.
“하앗!”
여덟 명이 하나 되어 움직인다.
기합만이 아니다.
동시에 내지르는 삼지창이 동시에 한 곳을 노렸다.
남해용문의 수류삼창(水流三槍)이었다.
‘꽤나.’
하나하나가 물줄기가 된 창은 모여 폭포가 됐다.
마치 머리 위에서 폭포가 쏟아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주서천은 수류삼창에 속으로 감탄했다.
여덟 명이서 명령 없이 이렇게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건 그리 쉽지 않다.
심지어 무공의 수준도 높았다.
하나 버텨내질 못할 정도는 아니다.
아무리 개개인의 무력이 높고 합격진이 대단하다고 해도, 이 정도에 당한다면 어디 가서 상천칠좌라 못 말한다.
쿵!
창이 닿으려는 순간, 모래사장 바닥이 움푹 파였다.
주서천이 제자리에서 솟구치면서 망이 흔들렸다.
채채챙!
하나 된 삼지창이 서로 맞물리며 부딪치면서 소음을 냈다.
목표가 조금이라도 빠르게 피했다면 도중에라도 방향을 틀었겠지만, 절묘한 순간을 노린 탓에 어쩔 수 없이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만중검.’
천변의 묘리를 이용해 운기를 전환한다.
다른 것을 제외하고 무거움에 집중해 천근추를 사용했다.
공중에 나비처럼 날았던 주서천은 벌처럼 쏘는 게 아니라, 거대바위로 변해 창 위로 떨어졌다.
“뭔……”
사람의 무게가 아니었다.
남해용문도는 어찌할 겨를도 없이 삼지창이 눌리는 걸 느꼈다.
콰아아앙!
“크읏!”
“아아악!”
천지가 무너지는 듯한 굉음.
모래사장이 뒤집어지면서 누런 안개가 주변을 뒤덮었다.
다리를 지탱할 지반이 무너지자, 남해용문도는 버텨내지 못하고 균형을 잃으며 넘어졌다.
또한 충격파에 이기지 못하고 날아가 바닥을 구르기까지 했다.
어떻게든 끝까지 버텨내려던 이도 무사하지 못했다.
무인답게 삼지창을 놓지 않으려던 것이 화근이 됐다.
무게와 충격을 이기지 못해, 삼지창이 구부러지면서 손목도 함께 꺾였다.
우드득.
뼈가 부러지고, 살을 꿰뚫어 튀어나왔다.
핏줄기가 모래에 섞여 묻혔다.
“콜록, 콜록.”
제갈수란이 작게 기침했다.
“이런, 죄송합니다.”
주서천이 검을 휘둘러 모래구름을 치워냈다.
어떻게든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거리를 두었는데, 전력을 다하느라 생각보다 모래구름 범위가 넓었다.
“제갈 소저, 괜찮습니까?”
주서천은 제갈수란의 앞으로 이동해 손부채질 하며 남아 있는 모래구름이 오지 않도록 조정했다.
공적인 자리도 아닌지라 호칭도 소저로 바뀌었다.
제갈수란은 주서천이 코앞까지 다가오자, 순간 뺨을 살짝 붉혔다가 원래대로 되돌리며 말했다.
“…… 그, 저보다는 앞을 신경 써야……”
뒷말을 잇지 못했다.
대신 경고가 현실이 됐다.
언제 몸을 날렸는지는 모르나, 적오가 주서천 앞으로 당도했다.
인사하려고 몸을 옮긴 건 아니었다.
‘위험하다.’
해남제이검은 지쳤다.
어차피 가만히 놔둬도 알아서 제풀에 쓰러진다.
굳이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문제는 새로 등장한 정체불명의 청년이었다.
척 봐도 어린 데다가 경지도 보잘 것 없어서 무시하려고 했다.
헌데 그게 아니었다. 그 반대였다.
‘고수다.’
아무리 봐도 약관이다.
화경의 고수, 그것도 상승에 위치한 자신보다 고수라는 게 믿겨지지 않았다.
그러나 방금 전 보인 신위는 무어란 말인가?
두 눈으로 직접 보고도 믿기지 않지만, 동물적인 감각이 위험하다고 경고를 울리고 있었다.
이성으로는 수긍 가지 않아도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적오는 본신의 무위를 끌어냈다.
‘단숨에 끝내야 한다!’
적오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손끝에서 시작한 붉은 기의 실 가닥은 손가락을 타고 손목까지 휘감아서 얼음처럼 굳혔다.
오각형으로 변한 비늘은 마치 갑옷을 두른 듯했으며, 그 몸을 둘러싼 강기에선 가공한 위력을 냈다.
적오의 세로로 갈라진 동공에서 살의가 뿜어져 나왔다.
“크하아압―!”
적오가 폐 깊숙이 숨을 들이쉬었다가 토해냈다.
마치 사자후, 아니, 용후를 터뜨리는 듯했다.
위압적인 것은 기합만이 아니다.
힘껏 뻗은 남룡조수는 대기층을 갈기갈기 찢으며 주서천을 덮쳤다.
‘대단하군!’
수류삼창도 수류삼창이지만, 남룡조수는 수준을 달리한다.
주서천도 적오만큼 놀랐다.
‘남해용문이라고?’
생소한 이름이었다.
전생에서도 들어본 적 없었다.
눈앞의 적오도 마찬가지였다.
천하백대고수 중에서 남룡조수처럼 특징적인 무공은 들어본 적 없었다.
헌데 그 들어본 적도 본 적 없는 무인이 천하백대고수이자 해남검파의 고수를 밀어붙였다.
결코 가벼운 마음으로 볼 적이 아니었다.
‘제갈 소저가 있다는 걸 잊지 마라!’
제갈수란을 걱정해서 자리를 옮긴 게 족쇄가 됐다.
혹시라도 다칠까 봐 신경이 쓰였다.
‘중후함을 실어, 아래에서 위로 친다!’
무거움.
흔들리지 않고, 무너지지 않으며, 밀리지 않는 무거움이 요구되는 상황이었다.
운기를 곧바로 변경했다.
콰아아.
적오가 용처럼 날아선 발톱을 앞으로 쭉 뻗는다.
쐐-액!
주서천도 왼 발을 내디디며 검을 뻗었다.
‘허초?’
적오의 산호색 눈동자에 이채가 어렸다.
주서천의 검은 정면이 아닌 아래로 향했다.
‘무엇을 노리는 것이지?’
적오는 검강과 조강의 격돌을 예상했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서로 동귀어진 할 뿐이다.
혹시나 동귀어진은 허초이고 도중에 아래를 막으려고 방향을 급격히 꺾게 해 내상을 유도하는 건 아닐까.
찰나 동안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적오는 고민 끝에 이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만약 허초에 속아 내상을 입는다면 얻는 건 없고 잃기만 한다.
이렇게 된 것, 배짱을 보이기로 했다.
하나, 그 다음 이어진 초식은 적오의 예상과 달랐다.
팟!
주서천의 검이 직각으로 번개같이꺾였다.
아래에서부터 위로 크게 솟구쳤다.
쩌억!
“……”
적오의 눈이 찢어질 듯이 커졌다.
강고의 방어를 자랑하던 적색 비늘이 손쉽게 갈라졌다.
중지 끝이 반으로 갈라지며 손이 둘이 됐다.
적색비늘 내부로 피부와 살, 뼈의 단면도가 순서대로 보였다.
‘조강과 수강이 이리도 쉬이 잘리다니?’
남룡조수는 조법이자 수법이다.
강기를 펼치면 자연히 중첩되어 나타났다.
그만큼 내공의 소모도 두 배였으나, 적오에겐 상관없었다.
그는 남해용문에서도 심후한 내공을 지녔다.
헌데, 그 강기의 중첩이 너무나도 쉽게 잘렸다.
‘아니,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적오의 낯빛에 패색이 감돌았다가 사라졌다.
“대단하군.”
주서천은 적오를 보고 솔직하게 감탄했다.
조수공(瓜手功)의 고수가 손을 잃는다는 건 치명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착함을 잃지 않으며, 도리어 투기를 내뿜는 모습은 칭찬할 만했다.
‘살을 주고, 뼈를 깎는다!’
검을 아래에서 위로 올리다 보니 동작이 커졌다.
가슴이 열렸으니, 확실한 승기를 얻은 거나 다름없다.
위로 올라간 검을 회수하려고 해도 너무 늦다.
위력을 얻은 만큼 힘을 준 탓에 너무 위로 올라갔다.
고수 간의 싸움이 한 순간의 차이만으로도 결정된다는 말은 이런 상황을 뜻하는 것이다.
적오는 고통을 등한시하곤, 공력을 왼손에 전부 실었다.
곧장 열린 가슴을 공격하기 위해 움직였다.
하나……
“무슨……!”
적오의 각오 어린 눈빛이 당혹함으로 일그러졌다.
검수라 생각했던 적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손에서 검을 놓았다.
공중에 떠오른 검이 풍차처럼 휘리릭 회전한다.
동시에 주서천의 소맷자락이 펄럭이면서 무언가가 나왔다.
하나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두사람이 워낙 접근해 있는 탓이었다.
오로지 적오만이 볼 수 있었다.
소맷자락의 어둠 속에서 뿜어져 나온 비수를.
퓨붓!
오른쪽 소매에서 나온 비수는 적오의 적색비늘을 뚫진 못했다.
그 대신 스쳐 지나가 어깻죽지에 꽂혔다.
그 탓에 적오가 전력을 다한 왼손의 방향이 꺾여버렸다.
끝이다.
유령곡의 자객도 울고 갈 만한 실력이었다.
앞으로 고꾸라지려는 적오의 품 안으로 파고들며, 왼손에서 나왔던 비수를 잡아 앞으로 쭉 내밀었다.
푸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