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三章 (172/254)

‘전력을 담아낸 무형검강을 막아냈다.’

방금 전의 검격은 그저 빠르게 휘두른 것만이 아니다.

절대적인 절삭력을 자랑하는 무형검강을 담았다.

그것도 상당한 공력을 실었다.

호신강기를 두른 것도 아니고, 공격을 흘린 것도 아닌데 막아냈다.

그 놀라운 사실에 주서천도 잠시 당황할 정도였다.

그 순간의 감정을 추스르기도 전에 요광의 공격이 당도하려 한다.

“흣!”

요광이 사납게 웃었다.

뒤로 내뺀 오른팔에 쥔 창대의 끝이 화염에 휩싸였다.

스윽.

창의 길이가 검만큼 줄어든다.

덕분에 지근거리에서도 창이 찌르기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됐다.

“크하아아아압!”

요광의 입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사자후와 비견될 정도의 소리였다.

펑!

요광의 창이 힘 있게 뻗는다.

대기층에 연달아 구멍을 냈다.

짧아졌던 창의 길이가 동시에 늘어났다.

화르륵!

창끝을 휘감았던 화염이 개화하듯 펴지면서 뿜어졌다.

그 기세가 악마의 혀가 넘실거리는 것처럼 사나웠다.

공기를 찢어발기고, 태워버리는 창격이 주서천의 흉부를 노렸다.

‘위험하다!’

피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그래서 호신강기를 끌어 올려 두꺼운 막을 만들어 냈다.

콰-앙!

“뭔……!”

주서천이 당황을 금치 못했다.

속도나 파괴력, 전부 화경의 수준을 상회했다.

무위의 이질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크읏!”

주서천은 신음을 토해내면서 뒤로 쭉 밀려났다.

그가 밟고 있던 지면에 기다란 발자국이 났다.

심지어 화첨창에서 뿜어져 나온 열기가 지면을 뜨겁게 달구었다.

“화첨창으로 펼친 육합신창(六合神槍)의 일합(一合)을 상처 하나 없이 막아내다니, 과연 상천칠좌로다.”

요광이 옅은 감탄사를 흘렸다.

“육합신창?”

주서천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창신(槍神)의 육합신창?”

“그렇다.”

“아니, 이 미친놈들이 대체 무공을 얼마나 숨겨둔 거야?”

황궁무고에 천하의 무공이 전부 잠들어 있다고 했는데, 암천회를 보니 아무래도 맞는 말인 모양이었다.

군부에 양가창법이 있다면, 무림에는 육합신창이 있다 할 정도로 절세의 신공에 드는 창법이었다.

그리고 그 창법의 창시자이자 과거무림의 천하제일인이었던 절대고수가 바로 창신이었다.

다만 언제 활동했는지도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고, 무엇보다 진전을 잇는 사람이 없어 유실되어 버렸다.

“그리고……그거 설마……”

주서천은 말을 삼키며 요광의 갑주를 하나하나 뜯어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불안감이 묻어났다.

검강을 막으려면 같은 강기여야 한다.

용연 정도 되는 명검에 기를 두르면 막는 것도 약간 정도는 가능했다.

그래도 저 갑주처럼 아무렇지 않게 막는 건 불가능했다.

무형검강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단, 위와 같은 경우가 아니어도 막아낼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나 그 방법이란 것이 화경이나 현경의 경지를 이룩하는 것만큼 어려웠다.

아니, 경우에 따라서는 전자의 경우가 더 쉽게 느껴질 수 있을지도 몰랐다.

“만년한철! 만년한철이구나!”

강철 위에는 현철(玄鐵)이 있고, 그 위로는 백련정강(百鍊精鋼)과 한철(寒鐵)이 존재한다.

한철이 만 년에 걸맞을 만큼 수많은 세월을 묵으면 이 만년한철이 된다.

그 이명(異名)은 내무강기(內無强氣).

만년한철로 된 검은 강철을 두부처럼 자를 수 있고, 구속구로 쓰이면 절대고수조차 꼼짝할 수 없다.

그야말로 내공의 소모가 필요하지 않은 강기였다.

실제로 구속구의 경우, 무림맹의 지하뇌옥과 소림사의 참회동에 각각 하나씩 존재했다.

문제는 결코 만년한철이 흔한 것이 아니라는 것.

순수하게 만년한철로 된 검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뭐 저딴 게 있지?’

어이없음이 승천해 선인의 뺨을 후려칠 정도였다.

“장비빨!”

화첨창에 만년한철로 된 갑주만으로 현경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게 해줬다.

그것만으로도 대단했다.

‘설마, 전부 만년한철로 되어 있는건 아니겠지?’

만년한철은 워낙 회소하다 보니, 검에 조금 섞거나 혹은 비교적 양이 적게 드는 구속구에 쓰였다.

눈앞의 흑철갑 정도 되는 양을 모으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어떤 미친 자가 그따위 짓을 하겠는가.

차라리 분산시켜서 무구를 여러 개 제작하는 것이 낫다.

“아무래도 여기까지인 것 같군.”

요광이 살의를 거두고 물러났다.

주서천은 무슨 꿍꿍이냐는 듯 요광을 쳐다봤다.

“천기가 말하더군. ‘주서천은 눈치가 빠른 편이니, 시간을 끌다가 패가 보일 때쯤 돌아오라.’ 라고.”

“시간을 끌어?”

주서천이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다.

“원한다면 더 싸워 줄 수 있지만, 일행과 얼마나 떨어졌는지 참고하기를 바란다.”

“……”

“승부는 다음으로 주서천.”

미뤄야겠구나, 요광이 칠성사병들과 어둠 속에 녹아들었다.

“쯧!”

주서천이 혀를 차면서 몸을 돌렸다.

“소령! 파검봉과 탐색대원의 구출 및 호위를 우선으로!”

“명.”

“웅권협은 포박해라!”

주서천이 눈치를 보고 있던 이출을 발로 뻥 찬 뒤, 일행이 있는 곳을 향해 몸을 날렸다.

주서천이 예상한 대로 천기는 인면지주의 수렵을 예상했다.

곁에 당가의 소가주가 있었으니 당연했다.

“생각한 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서룽협 내부의 기문진, 인면지주의 서식지는 천기에게 있어 손바닥 위에 놓여 있는 본거지였다.

인면지주는 도감부의 관리하에 둔 영물이니 당연했다.

무형지독의 재료 겸 내단으로 특히 신경 쓰는 것도 있었다.

제집처럼 파악하고 있는 본거지에다가 탐색대의 부대주는 암천회가 심어둔 첩자이자 천추성이었다.

눈엣가시 같은 놈에게 타격을 입히기에는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하늘 위에 하늘이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마.”

웅권협이 전해 준 정보를 토대로 작전을 계획했다.

주서천의 합류가 늦어진다는 점을노렸다.

“노이요지(怒而挑之).”

손자병법의 시계편에서 말하기를, 상대를 분노하게 만들어 적의 진영을 흔들어 놓으라고 하였다.

주서천이 분노를 삼키지 못하게 하고, 이성을 망가뜨려 상황 판단 능력을 빼앗는 게 진정한 목적이었다.

즉, 본래의 목표는 주서천 본인이 아니라 그 주변인들, 낙소월을 비롯한 화산파였다.

그래서 주서천이 화산파에 합류하지 못하도록 전력을 분산시켰다.

후에 도착할 주서천이 상황을 들을 수 있도록 금의검문을 남긴 것 또한 천기의 의도대로였다.

“둘 중 택일해야 한다면 조금이라도 손이 필요한 아군을 선택해야 하지.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사문의 전력이야 매화검수도 있고 하니 믿을 수 있지만, 청성파나 무림맹을 파악하기에는 정보가 부족했다.

그래서 도움이 더 필요할 것 같은 곳을 택했다.

웅권협의 경우 어디를 택해도 상관없었다.

화산파와 합류하면 습격에 가담하면 그만이고, 그 반대편일 경우 주서천의 발을 묶는 데 집중하면 된다.

요광은 중간 지점에서 대기하다가 탐색대가 나뉜 것을 확인하고 화산파가 아닌 반대편이 있는 곳을 택했다.

그리고 예상한 대로 주서천이 미끼를 물었다.

“화산파에서 얼마 없는 연이 무참히 살해당한다면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복수귀가 될지도 모르지.

그거야말로 바라는 바다. 또한, 그 성가신 독봉도 처리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로다.”

당가가 주서천과 동행하지 않을 것 또한 예상했다.

주서천 개개인의 무력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눈앞에 누군가 있으면 신경 쓰여 달리는 데 방해가 된다.

웅권협은 계획을 전해 듣고 과연 이게 정말 성공할까 의구심을 품었다.

그만큼 도박성 짙은 작전이었다.

만약, 의도와는 달리 사문을 중시해 화산파를 택하면 어찌하겠는가.

그러나 그건 괜한 걱정이었다.

“주서천은 영웅이다.

현실을 모를만큼 순수하거나 이상주의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눈앞에 보이고 힘이 닿는다고 생각하면 선의를 우선하여 움직이지.”

설사 화산파를 택하고 당가를 반대편에 보내도 상관없었다.

당혜를 처리해도 충분한 이익이다.

그래서 요광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자마자 후퇴했다.

“주서천. 본회와 척을 진 것을 후회하게 해 주마.”

* * *

“하아, 하아……”

낙소월이 거친 숨을 토해냈다.

“숙여!”

쐐액!

낙소월이 무릎을 굽히자마자 머리위로 무언가가 지나갔다.

앞을 보니 암기가 거미의 턱에 꽂혔다.

“고마워요!”

거미와 격돌한 지도 어언 이 다경이 흘렀다.

쉬지 않고 싸워왔지만 어째 거미는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둠속에서 끊임없이 기어 나왔다.

부상자는 물론이고 사망자도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만약, 도중에 지원이 도착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그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졌을 것이다.

“끙, 밑도 끝도 없이 몰려드는군.”

손일산이 거미의 머리를 발로 뭉개며 눈살을 찌푸렸다.

안 그래도 많은 주름살이 늘어났다.

그 옆에는 산처럼 쌓인 거미의 사체로 가득했다.

“좋지 않습니다.”

몽각이 어두운 안색으로 말했다.

그의 호흡 또한 불규칙해졌다.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기시작했다.

지쳤다는 증거다.

아무리 대문파의 제자이고 매화검수라고 한들, 내공에는 제한이 있다.

수백을 넘는 거미를 처리한 시점에서 내공이 바닥을 보였다.

“큰 것들도 문제지만, 작은 것들도 문제야.”

담향이 성가시다는 듯이 검을 휘둘러 바닥을 훑었다.

잡초 사이로 숨어 있던 거미 무리가 피를 뿌렸다.

몸집이 늑대만 한 대형거미와 다르게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거미처럼 손톱만 한 크기였다.

처음에는 그 크기를 보고 안심했으나, 극독을 품고 있을 것이라는 당혜의 경고에 생각을 바꾸었다.

사각사각!

사방이 거미 천지였다.

나뭇가지 위에서 거미가 떨어지고, 잡초가 무성한 대지에선 독거미가 자객처럼 은밀하게 다가왔다.

문제는 대형거미가 신경 쓸 틈도 없이 공격해 온다는 점이었다.

“헉, 허억!”

질풍십객, 조춘의 안색이 그리 좋지 않았다.

낯빛이 샛노랗게 질리기 직전이었다.

숨이 상당히 거칠었다.

“끄응.”

왕일 또한 마찬가지였다.

반응속도가 눈에 띄게 줄었다.

화산파나 개방, 당가의 경우 명문지파답게 하나같이 내공이 출중했으나 금의검문의 경우는 아니었다.

상왕의 재력으로 약간의 영약 정도는 지원을 받긴 해도 한계가 있었다.

경지도 차이 나니 별수 없다.

키에엑!

동물의 감은 날카롭다.

영물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어떤 사냥감이 약한지, 지쳐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대형 거미 중 하나가 조춘을 노리고 덤벼들었다.

“으, 으악!”

조춘이 뒤늦게 눈치채고 비명을 질렀다.

거미의 다리가 낫이 되어 조춘을 찍으려는 순간, 옆에서 섬광과 함께 검이 들어왔다.

“하앗!”

낙소월이 당찬 외침과 더불어 검을 직각으로 꺾었다.

하단에서 상단으로 올라오며 다리를 베었다.

대형거미가 캬륵, 캬르륵하고 비명을 내질렀다.

고통이 분노로 전환되면서 여섯 개의 눈이 번뜩였다.

사람이라면 치명적이겠지만, 거미에게 다리는 여덟 개.

아직 일곱 개나 남았으니 싸우는 데는 충분하다.

분노를 머금은 다리가 낙소월을 노리고 동시에 휘둘러졌다.

위에서 아래로, 좌에서 우로 향한다.

부피에 걸맞게 힘껏 움직이자 공기가 터지며 무거운 소리를 내뿜었다.

“위험……”

조춘이 경고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채채채챙!

낙소월의 검이 현란한 움직임을 보였다.

웬만한 고수가 아닌 이상 좇을 수 없는 빠르기였다.

화살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다리를 아무렇지 않게 쳐내는 그 위용은 입이 절로 벌어지게 만들었다.

완벽하게 막아냈을 뿐만 아니라, 다리를 잘라 내거나 튕겨내 균형을 무너뜨려 공격까지 가했다.

허리까지 늘어진 머리카락을 흩날리면서 펼치는 검초는 살벌하면서도 아름다워 무심코 넋이 나갔다.

결국 조춘의 목숨을 위협한 대형거미는 낙소월의 검격을 버텨내지 못하고 쿵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낙소월은 날숨을 내뱉곤 고개만 살짝 돌려 물었다.

“괜찮으세요?”

“가, 감사합니다.”

조춘이 아직 넋 나간 얼굴로 대답했다.

‘주 대장이 부럽다.’

무공도 무공이지만 미모가 보통이 아니었다.

먼지 바닥에 구르거나 거미의 피에 젖어도 빛이 났다.

낙소월에게 관심을 받는다면 질투의 대상이 되겠지만, 문재는 그 대상이 무림제일 영웅인 주서천이다.

누가 봐도 잘 어울리는 선남선녀라서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다.

“위험해!”

감상에 젖어 있기도 잠시였다.

“……”

낙소월이 경고를 듣고 고개를 휙 돌렸다.

그녀의 동공이 놀란 듯 축소됐다.

‘이런!’

시간이 멈춘 듯이 천천히 흘러간다.

눈앞에 사체가 된 거미의 뒤편으로 수풀 속에서 무언가가 날아왔다.

빛이 반사되지 않도록 도신을 검게 칠한 비수였다.

하나도 아니고 대충 봐도 이십여 개를 넘었다.

파바밧!

낙소월의 검이 번개같이 출수됐다.

고개만 살짝 돌린 채라 즉각 반응이 가능했다.

숨을 멈추고 기맥을 순환하는 내공에 힘을 불어넣었다.

상당한 공력이 용솟음치면서 속도를 올렸다.

채채챙!

비수중 반은 어찌어찌 처리하는 데 성공했다.

나머지 반이 문제였다.

“어딜!”

경고해 준 장서은이 섬광을 내뿜으면서 검풍을 쏟아냈다.

반 중에서 또다시 반이 날아갔다.

퓨붓!

“읏!”

낙소월의 입술에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몇 자루밖에 남지 않아 어찌어찌 피해냈지만, 전부는 아니었다.

팔뚝부분을 스치고 지나가 버렸다.

“낙 사매! 괜찮아?”

장서은이 걱정으로 가득 찬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네, 전 괜찮……”

낙소월은 말을 잇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낙 사매!”

“비켜.”

당혜가 몸을 날려 낙소월에게 당도했다.

“매복이다!”

손일산이 비수가 날아온 방향을 보고 외쳤다.

그 외침에 화산파가 날아오듯이 모여들어 낙소월을 보호하듯 빙 둘러쌌다.

나머지도 뒤따라왔다.

“상태는 어떻습니까?”

몽각이 정면에서 시선을 떨어뜨리지 않고 물었다.

“좋지 않아요. 비수에 극독을 발라두었어요.”

당혜가 낙소월의 옷깃을 젖히며 안을 살폈다.

쇄골에서부터 목 아래까지의 피부색이 변하고 있었다.

진맥을 해 보니 몸의 열은 펄펄 끓고, 기맥에 침투한 독기가 느껴졌다.

“제 목소리 들려요?”

당혜의 물음에 낙소월이 고개를 미미하게 끄덕였다.

“좋아요. 가부좌를 틀고 운기조식을 하도록 하세요.

등 뒤에서 제가 도울 테니 해독에 집중하셔야 해요.”

낙소월은 당혜가 말한 대로 가부좌를 틀었다.

낯빛은 새하얗게 질렸고, 땀은 폭포처럼 쏟아졌다.

“호법을 부탁드릴게요.”

당혜는 낙소월의 등에 손바닥을 올리고 집중했다.

“첩첩산중이로구나.”

담향이 혀를 차며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이 쥐새끼 같은 놈들, 당장 나와라!”

장홍이 열 받았는지 살의 어린 목소리로 소리쳤다.

“크흐흐!”

이에 답변하듯 음산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좌중의 시선이 수풀 너머 근원지로 향했다.

“틈이 보이지 않아 고생했지만, 그래도 만혈독(萬血毒)에 중독됐으니 됐다.”

쿵, 쿠웅!

수풀이 흔들었다.

아니, 숲 전체가 흔들렸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진동이 느껴졌다.

“무, 무슨……”

탐색대원들의 안색이 시체처럼 새하얗게 질렸다.

그들의 눈에 비치는 건, 태산처럼 느껴질 정도로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는 초대형 거미였다.

보는 것만으로 그 위엄에 지배당할 정도의 크기였다.

족히 한 장은 되지 않을까 싶은 높이였다.

순간 그들은 목소리의 주인이 거미인가 싶었지만, 잘 보니 아니었다.

머리 위로 노인이 앉아 있었다.

옷인지 누더기인지 모를 것을 뒤집어썼는데, 역사 속으로 사라진 고문으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혈독노인?”

손일산이 노인을 보고 흠칫 놀랐다.

“클클클, 노부를 용케도 알아보는구나.”

“혈교의 대마두가, 왜……!”

탐색대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혈독노인은 악명 높은 혈교의 고수이며 주술사다.

정혈대전 이후로도 아직 중원 곳곳에 혈교의 잔당이 숨어 있다곤 했지만, 여기서 볼 줄은 몰랐다.

손일산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가, 곧 무언가 깨달은 듯 이를 뿌드득 갈며 소리쳤다.

“암천회로구나!”

“정확히 맞췄다.”

암천회는 각 세력에 간자를 심어두었다.

몇몇은 회유하기도 했다.

혈독노인이 후자의 경우였다.

혈마가 중원을 침공하기 전부터 천기성의 일원으로서 각종 주술로 암천회를 지원해 왔다.

“저 둘만 내버려 두고 물러난다면 특별히 너희를 고통 없이 죽여주마.”

혈독노인이 인심 쓰듯이 말했다.

살려둘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혈교의 마인답게 눈앞의 무인들을 주술의 재료로 사용할 생각이었다.

“헛소리!”

“쯧쯧쯧. 상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받겠단 말인가.

참으로 어리석구나.”

혈독노인이 왼손을 들었다.

소매가 걷히며 피부 위에 새겨진 기형학적인 그림과 글자가 드러났다.

사각사각!

주변을 포위한 거미가 조금씩 늘어난다.

그 외에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칠성사병이 나타났다.

“너희를 처리하는 데……”

“반 시진도 안 걸린다.”

서걱!

혈독노인은 기이한 경험을 했다.

눈앞에 평생을 함께한 손이 회전하면서 돌아가는 것이 보였다.

아직까지도 손에 감각이 남아 있어, 마치 꿈을 꾸는 듯했다.

“뭐가……?”

“말 많이 하다가 일 망치라고 천기가 가르치디?”

누군가가 등을 보이며 혈독노인을 가렸다.

주변에서 그 누군가를 반기는 목소리를 내뱉었다.

“좋은 말 할 때 인면지주 내려두고 가라.

그거 내거다.”

도감부장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말이다.

“은공!”

왕일의 낯빛이 환해졌다.

“과연, 저 젊은이가……”

손일산은 검신을 만나는 건 처음이다.

들어본 적은 있어도 본 적은 없었다.

“주서천?”

혈독노인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손이 잘렸는데도 고통스러워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빨리 왔구나.”

인면지주의 서식지, 기문진 내부는 한낮인데도 언제나 어둡다.

앞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울창한 밀림 지대를 뚫고 오는 건 서식지를 제집처럼 돌아다녔던 도감부원도 쉽지 않았다.

요광과 부딪친 것을 감안하면 더더욱 늦을 수밖에 없거늘, 이상하게도 일찍 도착했다.

“클클클, 뭐…… 상관없다. 목적은 달성했으니.”

혈독노인은 왼 손목을 짚어 피를 멈췄다.

손을 잃었음에도 전혀 개의치 않아 하는 모습을 보였다.

“당가의 봉황이 독을 다루는 솜씨가 제법이라곤 들었지만, 그래 봤자 계집이니라.”

‘걱정이다.’

주서천은 고개만 살짝 돌려 낙소월을 살폈다.

그리 좋아 보이진 않았다.

해독을 돕는 당혜의 표정도 안좋았다.

독봉이라 일컬어지는 독공의 대가가 애를 쓰는 걸 보면 생각 이상으로 위독한 건 아닐까 걱정됐다.

“노부의 만혈독은 한낱 미물이 아닌, 애뇌산의 독물들에게서 피를 뽑아 제조한 것으로……”

“닥쳐라.”

혈독노인이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하자, 주서천이 거슬린다는 듯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그저 차갑게 쏘아붙인 것만이 아니다.

몸에서부터 흘러나온 기세가 주변을 집어삼켜 압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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