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二章 (171/254)

퍼어억! 키엑!

거미가 고통으로 가득 찬 비명을 내질렀다.

“어허! 시끄럽다!”

손일산의 굳은 살 가득한 손에 쥐여진 봉이 날았다.

퍽! 퍼억!

오 척 가량의 장봉을 휘두를 때마다 거미의 다리는 부러지고, 머리는 터져 곤죽이 됐다.

아무리 몸집이 크다 할지라도, 무림 고수 앞에선 별 소용없었는지 힘을 잃고 쓰러졌다.

쉬이이익!

그러나 영물은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눈앞의 거미를 죽이기 무섭게 옆에서부터 공격이 들어왔다.

“아, 아니…… 이놈이……!”

거미는 항문 근처의 방적 돌기에서 거미줄을 내뿜었다.

새하얗고 끈적끈적한 실이 손일산을 덮었다.

점성(帖性)이 얼마나 대단한지, 고수인 손일산이 잠깐 꼼짝 못 할 정도였다.

캬앗!

근처의 또 다른 거미가 손일산이 무력한 걸 노리고 덤벼들었다.

호흡을 맞춰 합공하는 게 영락없는 사람이었다.

“어딜!”

그러나 합공하는 건 사람도 매한가지다.

서걱!

매화검수, 담향의 검이 손일산을 위협한 다리를 잘랐다.

키이잇!

거미가 듣기 싫은 울음소리를 냈지만, 고통에 발버둥치지만은 않았다.

눈앞의 적의 숨통을 끊기 위해서인지 아직 남아 있는 일곱 개의 다리를 열심히 놀렸다.

파바밧!

다리를 휘두르는 속도가 제법 빠르다.

겉모습만 거미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다.

그러나 그건 담향 역시 마찬가지다.

회수한 검을 다음 초식으로 이어 검격을 선사했다.

쐐애액! 서걱! 스걱!

그림을 그리듯 허공에 그어지는 선은 사선(死線)이 됐다.

거미의 머리가 조각나며 바닥에 쿵 떨어졌다.

“끙! 이거 원, 못난 모습을 보이는군.”

손일산이 거미줄을 풀어내며 미안하다는 듯이 사과했다.

“괜찮습니다. 아무래도 이 거미줄은 봉과 상성이 좋지 않은 듯 싶습니다.”

담향이 거미줄을 대신 잘라주며 답했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거미줄이 상상이상으로 끈적하고, 내뿜는 양도 상당했다.

호신강기를 두르면 손쉽게 막아낼 수는 있으나, 인면지주도 아니고 주변을 가득 메운 거미의 거미줄을 막으려고 일일이 사용할 수는 없었다.

그랬다간 몇 번 쓰지도 못하고 내공이 바닥나 금방 쓰러진다.

타앗!

“허!”

그러다 보니 개방도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였다.

검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개방의 무공은 대부분이 봉법이나 장법, 권법 등 타격에 집중되어 있어서였다.

공격으로 거미를 쓰러뜨리는 건 어렵지 않았으나, 문제는 거미줄이었다.

수도 많으니 몹시 성가셨다.

“저리가!”

장서은이 질색하며 검초를 펼쳤다.

어찌나 싫은지 눈물까지 찔끔 흘릴 정도였다.

“꺄아!”

거미가 장서은을 덮치듯 무서운 속도로 기어 왔다.

“사저!”

장서은은 몸이 쑥 당겨지는 걸 느꼈다.

혹시 최초에 납치된 탐색대원처럼 거미에게 끌려가나 싶었지만, 다행히도 착각에 그쳤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사매인 낙소월이 팔 하나로 감싸 안은 것을 알 수 있었다.

낙소월의 반대쪽 손은 놀지 않았다.

주서천이 건네준 검을 힘껏 내질러 거미의 턱 안에 꽂아 넣었다.

입 안은 물론이고 그 안의 뇌에 구멍을 만들어 숨통을 끊었다.

“괜찮아요?”

낙소월이 걱정스러운 듯 장서은을 살폈다.

“어쩌지, 사매. 이 사저는 사매에게 반할 것 같아.”

“그건 좀 봐주시겠어요?”

낙소월이 쓴웃음을 지었다.

“사매도 정말로 대단하구나…… 평범한 거미라면 모를까, 이렇게 큰 걸 보고도……”

장서은은 한탄하며 낙소월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일단 어찌어찌 싸우고는 있으나, 평소의 실력의 반 정도밖에 발휘되지 않았다.

거미는 혐오스럽다.

평소에는 작고, 자세히 보지 않으니 상관없다.

헌데 이렇게 보니 정말로 끔찍했다.

혹시 펄쩍 뛰기라도 하면 어쩔까.

상상만 해도 주화입마 직전이다.

“괜찮으시겠어요?”

“안 괜찮아. 그런데 어쩔 수 없지.”

장서은이 검을 들었다.

매화검수가 거미 탓에 아무것도 못했다고 하면 비웃음 당할 일이다.

무엇보다 목숨을 건 상황이 아닌가.

떨리는 가슴을 추스르며 기어 나오는 거미를 봤다.

“힘 한 번 들지 않고, 거미를 날뛰지 않게 해치울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진심으로 존경할거야.”

부르르.

눈앞의 거미가 갑자기 몸을 떨더니 바닥에 쓰러졌다.

몸집이 몸집인 만큼 쿵 소리가 났다.

낙소월은 깜짝 놀란 얼굴로 장서은을 쳐다봤고, 장서은 역시 입을 가린 채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금의검문과 당가다!”

“독봉, 당혜다!”

그녀들의 의문은 얼마 가지 않아 풀렸다.

“언니!”

장서은이 당혜를 보고 눈물을 주륵주륵 흘렸다.

주서천은 신속하게 이동했다.

머리카락은 바람에 휘날리고, 소맷자락도 너풀거렸다.

지면을 박찰 때마다 주변의 풍경이 휙휙 바뀐다.

“으윽……”

그때였다.

북동 방향에서부터 누군가의 신음 소리가 들려 왔다.

‘여긴가?’

전속 전진하는 와중에도 방향의 전환은 신행백변 덕에 자유로웠다.

균형을 잃는 모습이 조금도 없었다.

약 반 리 정도를 달렸을까, 고목나무에 등을 기댄 채 붕대로 상처를 감고 있는 중년인이 보였다.

그 앞으로는 탐색대원으로 보이는 시체가 네 구 보였다.

“괜찮소?”

“당신은……!”

중년인이 주서천의 얼굴을 알아보고 놀랬다.

“검신!”

“웅권협께서는 괜찮소?”

대원의 얼굴을 하나하나 알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부대장인 사람의 얼굴은 초상화로 외웠다.

“그리 많이 다친 건 아닙니다.”

이출이 쓴웃음을 지으며 주서천이 건넨 손을 잡고 일어났다.

“어떻게 된 일이오?”

“그게……”

이출이 곤란한 듯 말꼬리를 흐렸다.

“시간이 없으니 요약해서 보고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이출을 포함한 무림맹 소속 무사 스물.

단리화가 포함된 청성파 제자 열.

전력이 분산되어 서른이 되어 버렸지만, 전원이 실력자로 구성된 그들에게 두려울 건 없었다.

그러나 안으로 따라간 순간, 악몽이 시작됐다.

“그 영물, 아니 마물(魔物)은 끔찍했습니다.

사람만큼의 영리함을 지녔고, 센 힘과 거미줄을 지녔지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덮쳐오는 그들은 그야말로 악몽이었습니다.”

이출이 끔찍하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 보려 발버둥쳤으나, 저희는 속수무책으로 당했습니다. 수하를 잃어버렸지요.

그리고……”

“그리고?”

주서천이 이출의 다음 말을 재촉했다.

“도저히 믿기 힘드시겠지만, 파검봉께서 거미의 독에 당해 미치기라도 한 것인지, 아군을 공격했습니다.”

“……”

주서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무슨 짓이냐고 외쳤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말없이 검을 휘둘러 왔지요.

그 탓에 전원이 혼비백산하여 뿔뿔이 흩어졌고, 지금 이 상황에 온 것입니다.”

붕대를 다 감은 이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하를 보는 그 눈은 죄책감으로 가득 찼다.

“흠……”

“최악으로, 그녀가 거미의 독에 당해 미쳤거나 혹은……”

“배신할 가능성.”

“그렇습니다.”

이출의 얼굴에 암운이 끼었다.

“알겠소. 일단 그녀를 찾도록 하지요.

혹시 어디로 향했는지 방향을 알 수 있겠소?”

“예. 저쪽입니다.”

“일행과는 반대 방향이군.”

좋지 않다. 점점 더 멀어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두고 볼 수는 없는 일.

“움직일 수 있겠소?”

“저 웅권협, 검신의 명성만큼은 아니나 그래도 맹 내에서 나름 고수입니다.”

이출이 팔을 움직여 멀쩡하다는 듯 불룩 튀어나온 상완근을 보였다.

“다행이오. 그러면 갑시다.”

타앗!

이출이 가르친 방향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가 뒤처지지 않도록 속도를 줄였다.

‘파검봉, 단리화.’

스물아홉에 화경에 오른 천재.

역시 전란의 시대라는 걸 절로 생각하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전생에서도 영웅호걸 중 일인으로서 활약한 여인이었다.

오십 때쯤 암천회와의 싸움에서 사망했다.

만각이천이나 상왕만큼 시대를 풍미하거나, 대단한 업적을 세운 정도는 아니지만 고수로 이름을 알렸다.

“검신!”

이출의 경고 어린 목소리가 상념을 깨뜨렸다.

눈앞을 보니 나뭇가지나 고목 주변에서 습격을 준비 중인 대형거미가 보였다.

전부 일곱 마리였다.

“그냥 달리시오.”

주서천은 눈썹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하, 하지만……”

“괜찮소. 날 믿으시오.”

다리로 순환되는 내력을 줄이기는커녕 높였다.

순간적인 속력도 자연스레 올라가며 빨라졌다.

‘탄검음.’

중지를 구부려 힘을 모으고, 검신을 후려쳤다.

째애애앵!

손가락을 튕겨 공력을 내뱉자, 검신이 위아래로 출렁였다.

마치 파도와 같은 모양새였다.

키이이익! 쉬이익!

검에서 뿜어져 나온 음파가 주변 숲을 슥 훑자, 숨어 있던 거미 무리가 괴로운 듯 몸을 비틀거렸다.

‘위치 파악.’

눈동자가 사방팔방으로 움직였다.

네 번을 움직인 것만으로 일곱 마리 전부 어디 있는지 확인했다.

“하나.”

스쳐 지나가듯이 검을 휘둘렀다.

경공을 멈추지 않고 가볍게 휘둘러 마치 춤사위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슥.

거미의 몸에 혈선을 긋는다.

서걱!

장난치듯 휘두른 것처럼 보여도 그 위력은 장난 따위가 아니었다.

육중한 몸집이 깔끔하게 양단됐다.

“둘, 셋, 넷.”

팡! 파방!

검을 휘두른 오른손 대신 왼손의 중지를 세 번 튕겼다.

탄검음이 아닌 자하지였다.

손가락 끝에서 내뿜어진 자색의 선은 화살처럼 쏘아져, 균형을 잡으려던 거미의 머리에 구멍을 냈다.

“앞에……!”

이출이 정신없는 와중에도 경고를 해 줬다.

이동방향 앞에 장애물이 있었다.

족히 몇백 년은 산 거목이었다.

그 나뭇가지 위에 거미가 보였다.

“다섯, 여섯, 일곱.”

쐐애액!

검을 위에서 아래로 힘껏 긋는다.

이번에는 제법 크게 휘둘렀다.

검에 자색으로 두른 강기가 보였다.

쩍!

“……!”

이출은 말을 잇지 못했다.

상천칠좌가 사람의 한계를 넘어선 괴물 같은 경지란 걸 알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주서천이 거목에 부딪치기 전에 검을 휘둘렀다.

조금 거리를 두었는지라 벨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러나 괜한 걱정이었다.

검에서 뿜어져 나온 압력이 대기를 가르고 지나가 거목을 장작처럼 쪼겠다.

끼이익!

거미의 비명이 아니었다.

수백 년을 살아온 거목의 몸이 둘로 나뉘며 지르는 비명이었다.

쿠웅! 짹짹짹!

양단된 거목이 양옆으로 쓰러지자, 그 충격으로 주변에 서식하던 새들이 놀라 위로 날아올랐다.

그 외에도 거목이 쓰러지는 곳에 살던 벌레나 소동물을 비롯해 사람을 위협했던 거미도 깔려 죽었다.

‘이, 이럴 수가!’

이출은 입을 찍 벌린 채 다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천둥이 쳤다.

주서천과 대면했을 때, 과연 이렇게 젊은 사람이 상천칠좌인 검신이 맞을까라는 의심이 들었다.

그러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이러한 무위가 가능한 건 상천칠좌 밖에 없다.

“속도를 올리지.”

주서천은 이출의 목덜미를 낚아챘다.

“예, 예? 으아악!”

기분 나쁜 바람이 뺨을 후려 쳤다.

‘아직까지 시체는 없다.’

경공을 극성으로 펼쳐 무작정 달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주변을 확인하면서 달렸다.

챙! 채앵!

반 각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앞에서 금속의 마찰음이 들렸다.

누군가가 싸우고 있는 것이 틀림 없었다.

남만의 밀림처럼 울창한 숲을 헤치자, 안이 무저갱처럼 암흑천지인 동굴을 앞에 둔 터가 나왔다.

“찾았다.”

주서천이 입으로 소리 내며 제자리에 멈춰 섰다.

뒷덜미를 잡은 채로 데려온 이출도 내려 두었다.

“파검봉!”

이출이 적의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그 시선 끝에는 거미에 포위된 채 홀로 서 있는 단리화가 있었다.

“……”

단리화가 이출의 목소리를 듣고 머리를 돌렸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만 매섭게 떴다.

그동안 험한 일을 겪었는지 도복 군데군데가 찢겨져 있고, 드러난 피부에선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손에 쥔 검에선 서늘한 예기가 고요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저기 있다.’

주서천은 단리화의 등 뒤에 위치한 동굴에 집중했다.

거미줄에 돌돌 말린 채 천장에 매달린 사람들이 보였는데, 인원수를 세어 보니 탐색대원이 틀림없었다.

“미치기라도 한 것이냐, 단리화!”

이출이 주먹을 꽉 쥐고 고함을 질렀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동료를 공격한 것이냐?”

“……”

이출의 물음에도 단리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주서천과 이출을 번갈아 볼 뿐이었다.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나! 설마하니 당명인처럼 정파를 배신이라도 한 건가, 파검봉이여!”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

이출은 거미만 아니라면 당장이라도 뛰쳐 나갈 기세였다.

사각사각!

“포위됐나.”

불리한 상황임에도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주서천.

예리해진 감각 속에서 주변 일대의 움직임이 잡힌다.

수십은 족히 넘었다.

“오룡삼봉 중 일룡과 일봉이 배신을 하다니……”

이출은 오룡삼봉의 배신에 개탄했다.

“무언은 곧 긍정. 아무래도 그녀를 정파의 배신자로서 처단해야 할 듯 싶습니다.”

그는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기세로 일 보 전진했다.

“들어라, 파검……”

“그만.”

이출이 몸을 돌려 의아한 눈으로 쳐다봤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는 표정이었다.

“웅권협, 연기는 그만해라.”

“예……?”

“이 숲은 그대가 말한 것처럼 마물로 가득하다.

먹이가 상처를 입은채 혼자 남아 있다면 결코 그냥 둘 곳이 아니지.”

인면지주의 사냥을 위해 지역 특성이나, 이곳에 서식하는 영물이나 맹수에 대해서 공부하고 왔다.

친절하게도 독왕이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고, 배를 타고 오면서 당혜가 설명해 준 덕에 파악을 완료했다.

“거, 검신께서는 무언가 오해를……”

“그리고 부상을 입은 것치곤 너무 잘 따라오지 않았나.

만약 만나기 전까지 정말 처절하게 싸운 것이라면, 그만한 내공이 남아 있지 않아야 정상일 텐데.”

웅권협은 고수이지만 대문파 출신으로 영약의 지원 같은 건 받지 않았다.

기연 역시 없었다.

이럴 경우 내공의 양은 평범하기 마련이다.

경공이란 건 알다시피 내공의 소비가 크니, 싸운 이후라면 사용할 수 없는 것이 정상이었다.

“그건……”

“파검봉께선 점혈법에 당하신 거요?”

주서천이 이출을 무시하고 단리화에게 물었다.

단리화는 주서천의 물음에 신기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옅게 웃으면서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아무래도 아혈(啞穴)을 짚여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도착하자마자 동료가 잡힌 걸 보며 화를 냈다면 모를까, 그녀를 배신자로 모느라 너무 혈안이 됐다.”

주서천이 코웃음을 치며 이출을 흘겨 봤다.

“……크윽!”

이출은 더 이상 숨길 생각이 없는지, 얼굴을 일그러뜨리곤 주서천에게서 멀찍이 떨어졌다.

“그리고……”

스으윽.

주서천이 내기를 외부로 발출했다.

“커, 커헙!”

이출은 적의를 내뿜으려다가, 주서천에게서 흘러나온 기에 압도되어 꼼짝도 하지 못했다.

숨은 턱턱 막히고 털이란 털은 쭈뼛 섰다.

마비독에 중독된 것처럼 몸을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은 곧 온몸을 적셨다.

키익! 키이잇! 쉭!

이 일대를 포위한 거미 무리도 겁을 먹었다.

자고로 동물이란 건 감이 예리해 사람보다 민감하기 마련.

주서천이 기도를 풀자 끔찍하게 싫어했다.

조금씩 엉금엉금 기어 접근하려던 거미 무리는 경기를 떨 듯이 경계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림자 속에 숨어 기회를 엿보지 말고 얼른 튀어나와라, 암천회.”

“호오.”

뚜벅뚜벅.

동굴 안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그걸 시작으로 주변의 기척도 움직였다.

숨죽이고, 맥박까지 늦춰 은신하고 있던 칠성사병이었다.

대충 세어 봐도 오십이 넘어가는 인원 수였다.

“설마하니 이렇게나 빠르게 간파할 줄이야.”

사납고 위엄 어린 목소리였다.

“천기니까.”

주서천이 당연하듯이 답했다.

“천기라면 반드시 무언가를 준비할 놈이다.”

천추의 정체가 밝혀졌다고 해도, 천추성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아직 그들의 정체는 밝혀지지 않았다.

아무리 암호를 개편하고, 비밀리에 움직여도 어디선가는 정보가 새어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탐색대의 모집도 말만 기밀이지만 사실 완벽하게 숨길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천추성 중 누군가가 토설할 것이라 생각했다.

중원이나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기문진 안에 위치한 인면지주의 서식지.

이보다 좋은 습격 장소는 없다.

“언제나 말하지만……”

주서천이 검에서 자색의 아지랑이가 흘러나왔다.

“무림의 뒤편에 암천회가 있다면.”

주서천이 조소를 흘렸다.

“암천회의 뒤편에는 나, 주서천이 있다.”

“오만하구나, 주서천.”

철그럭.

동굴 안에서 사람이 나왔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전신에 두른 흑철갑(黑鐵甲)이 쇳소리를 내뱉었다.

‘갑주……?’

사슬갑옷, 쇄자갑도 아니고 그렇다고 철을 엮어 만든 산문갑도 아니었다.

아무리 무림인이 방어보단 회피에 집중해 보법을 중시하다 보니 갑옷에 대한 지식이 없다지만, 눈앞의 갑주는 일반적인 상식을 넘어선 외형을 지녔다.

일반적인 갑주와 다르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철갑으로 둘렀으며, 투구는 갑옷과 일체화한 것처럼 보였다.

철은 각지고 뾰족해 섣불리 만지면 베일 것 같았고, 눈 부위는 뚫려 있으나 그 내부는 보이지 않았다.

‘저게 뭐지?’

머릿속의 기억을 뒤져봤지만 나오는 건 없었다.

‘심상치 않다.’

외관이야 두말할 것도 없고, 불길한 기색이 역력했다.

“요광이냐.”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정체는 유추할 수 있었다.

두뇌인 천기가 나설 리는 만무하고, 천추인 당명인 역시 무공 특성상 전면전에는 맞지 않다.

암천회주일 가능성도 전무하지는 않으나 최후의 결전을 앞에 둔 구심점이 쉽게 나설 리는 없었다.

흑철갑의 무인은 긍정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좌르륵!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손도 대지 않았거늘, 어떻게 된 영문인지 투구가 전 방향으로 접히면서 걷혔다.

“전부터 이야기는 들었으나 이렇게 얼굴을 맞대는 건 처음이구나.”

요광이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요광, 파군.’

암천회, 병(兵)의 수뇌.

‘화경…… 인가?’

경지를 가늠하려 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일단은 화경으로 보이기는 한데, 눈앞에 안개가 끼인 것처럼 흐릿하고 무언가 이질감이 느껴졌다.

동수거나 고수일 경우와는 좀 다르다.

하수인 건 확실한데 찜찜한 기분이 사라지지 않는다.

‘상황이 그리 좋지만은 않다.’

주변의 기척만 대충 세어 봐도 오십. 근처에는 또 대형거미가 있을지도 모르고, 요광까지 있었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신속한 판단을 내렸다.

“파검봉”

“……?”

“신호를 내리면 동굴 안으로 달려서 대원들을 구하고 깨우십시오. 불가능하면 그냥 내버려 두고 숨으십시오.

만약, 전원이 사망할 경우 후퇴하십시오.”

끄덕.

“그럼 가겠습니다.”

주서천이 오른발을 들었다.

“하압!”

폐에서 크게 들이쉰 숨을 힘껏 내뱉는다.

다리를 두르듯이 회전한 진기가 용천혈까지 닿았다.

내공의 운용으로 만중검에 맞춰 늘어난 체중이 날숨에 맞춰서 폭발했다.

빠드득.

지면이 발에 의해 움푹 들어간 순간, 반경 일 장 안의 대지가 쩍쩍 갈라지며 낮게 가라앉았다.

콰-앙!

주서천의 진각(震脚)이 압도적인 힘을 낳았다.

고막이 찢어질 정도의 굉음과 함께 폭발이 일어났다.

발목까지 자라난 잡초가 무더기로 뽑혀 나갔고, 그 아래의 바위도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위로 치솟았다.

누런 먼지구름이 피어오른 순간, 그림자가 튀어나갔다.

단리화였다.

“흠!”

요광이 어림없다는 듯 팔을 쭉 뻗었다.

그 손에는 언제 쥐었는지 모를 한 자루의 창이 들려 있었다.

당장이라도 타오를 듯한 붉은색과 금색의 조화로 이루어진 장창이었다.

“어딜!”

주서천이 예상했다는 듯 손가락을 튕겨 자색의 선을 내뿜었다.

세 줄기의 자하지가 요광의 창을 후려쳤다.

째앵!

창대가 자하지의 충격을 받고 휘었다.

그러나 단순히 휜 것만으론 끝나지 않았다.

화르륵!

창날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더니만 불꽃을 토해냈다.

조금만 닿아도 피부가 익을 만한 열기였다.

“……!”

단리화가 몸을 내던진 동시에, 공중에서 검을 휘둘렀다.

부웅!

돌풍, 아니 겁풍이 불어 불꽃의 방향을 뒤집은 덕에 통구이 신세는 면할 수 있었다.

“그건, 설마……”

요광을 가운데에 둔 주서천이 대경했다.

“화첨창(火尖鏡)?”

“보는 눈이 있군.”

화첨창.

전설에서나 전해지는 신병이기이자, 법보다.

전해져 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창의 길이가 여의봉처럼 자유자재로 늘었다 줄었다고 하며, 불을 내뿜는다고 한다.

“정말로 있었다고?”

말 그대로 전설 혹은 신화에나 나오는 무기.

과거 무림에 존재했다는 기록이 있긴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낭설로 취급받는 물건이었다.

“이상한 것에 놀라는군.”

요광이 담담하게 말했다.

“고작 스물하나에 화경에 이어 현경이라는 경지를 이룩한 자도 있거늘, 창 한 자루가 뭐 그리 대수라고.”

요광은 현경의 조건에 대해선 잘 모른다.

하나 무인으로서 그 경지가 얼마나 아득한지는 알고 있었다.

주서천이 상천칠좌, 검신으로서 활약하고 있음에도 아직도 믿지 않는 사람이 있다.

현경은 그만큼 말도 안 되는 경지였다.

“……”

스스슥!

그사이 칠성사병이 주서천의 포위를 끝냈다.

개양성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요광의 친위대답게 한 명 한 명의 기도가 보통이 아니었다.

“마음 같아선 일대일로 승부를 내고 싶으나, 천기의 명이 있어 그러지 못하는 게 아쉽구나.”

요광이 영 달갑지 않은 어조로 말했다.

“걱정 마라.”

주서천이 왼손을 들었다.

“그렇게 될 테니까.”

파바밧!

칠성사병의 뒤편, 열 명 분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소령.”

“예.”

주술로 여인으로 성장한 소령이 답했다.

“칠성사병을 처리해라.”

“존명.”

소령을 비롯한 열 명의 유령이 움직였다.

그 혹은 그녀들이 움직일 때마다 사방에서 비명이 터졌다.

혹시 몰라 데려온 유령들이 도움이 됐다.

선박의 무게가 버티지 못할 것 같아 많이 데려오진 못했다.

“요광.”

주서천이 차가운 눈으로 요광성의 우두머리, 파군을 담았다.

“이곳의 너의 무덤이다.”

파앗!

주서천이 유성이 됐다.

그 몸놀림은 번개와 같았다.

‘후웁!’

잔상을 남기면서 사라진 그 몸은 요광의 눈앞에 나타났다.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을 자랑하는 속도다.

슥!

휘두르는 소리조차 짧았다.

대기가 둘로 갈라지면서, 검이 매끄럽게 빠져나와 요광의 팔을 노렸다.

콰드득!

요광의 오른발이 뒤를 향한다.

발이 지면을 끌면서 발자국을 길게 만들어냈다.

오른손에 쥔 창 역시 발과 함께 뒤로 쭉 빠졌다.

찌르기를 위한 자세.

그러나 너무나도 늦었다.

검신의 검은 진작 지척까지 다가와 그의 왼쪽 어깨를 노렸다.

‘안 피해?’

주서천의 눈동자에 이채가 서렸다.

그 눈에 비춰지는 건 피하기는커녕 왼팔을 들이대는 요광이었다.

째애애앵!

명검, 용연이 요광의 좌완갑(左腕甲)에 부딪치며 금속음을 토해냈다.

고막이 울릴 정도로의 크기였다.

그 소리는 뒤편의 동굴을 통해서 증폭됐고, 동료를 끌어내리던 단리화가 괴로운 듯 귀를 막았다.

‘막았다.’

주서천의 얼굴이 석상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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