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권-第一章 (170/254)

인면지주의 탐색행이 결정됐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당가 내에서도 임무는 기밀로 붙여졌고, 합류하는 인원도 소수의 고수로 정해졌다.

당혜를 비롯하여 절정 및 초절정 경지가 열 명이었다.

한편, 주서천은 그사이 무림맹 본부와 화산파, 금의상단 순으로 서신을 보내 이 사실을 보고한다.

“인면지주?”

“황당하군.”

무림맹 수뇌부의 반응은 미묘했다.

“정말로 있기는 하나?”

인면지주는 전설에서나 나오는 영물이다.

기록이나 목격담이 없는 건 아니지만, 워낙 오래된 탓에 불확실했다.

단순한 미신의 경우일 수도 있다.

“확신할 수는 없으나, 칠각사의 사례를 생각하면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생각됩니다.”

독혈곡의 왕이자 영물인 칠각사.

몇 년 전, 단하성은 그 지옥에서 살아 돌아와 인정받았다.

“아무리 검신이라지만, 쓸데없는…… 어흠, 확실치도 않은 일에 인력을 투입하는 건 좀 그렇지 않나.”

“그 검신이 결정한 것이라면 분명 무언가 있겠지요.

섣부른 판단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미파의 경인사태가 주서천을 지지했다.

그 외의 장로들 또한 대부분이 협력 의사를 보였다.

무림맹은 지난 전쟁에서 대패할 뻔했으나, 검신 덕에 희생을 최소화하고 승리를 취할 수 있었다.

소림사나 아미파처럼 마도와 척을지닌 세력은 물론이고 정파 대부분이 주서천에게 구은을 입어 호의를 보이면서 그의 행동에 지지를 보였다.

설사 빚을 지지 않았다고 해도, 정파의 영웅이며 상천칠좌나 되는 인물의 요청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사람을 모으도록 하시오.”

남궁위무가 장로진의 의사를 확인하고 명령을 내렸다.

인면지주 탐색대 모집은 은밀하게 진행됐다.

또한, 생각보다 상당한 고수가 모이게 됐다.

화산파의 경우는 매화검수까지 동원했다.

너무 과하지 않을까 싶지만, 이에는 타당한 연유가 있었다.

“주 사질이 보내온 서신에 의하면, 함정이 도사리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함정?”

“인면지주의 소재에 대해서는 천추, 당명인도 알고 있다고 합니다.”

“과연…… 무형지독을 저지하려는 걸 예측하고 있을지도 모르겠구려.”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었다.

손자병법에서 말하기를, 약점을 공략하라 했다.

주서천에게 있어 무형지독은 이 약점에 해당했다.

아무리 방심했다고 한들, 그래도 위험한 건 마찬가지다.

괜히 대처하려고 움직인 것이 아니었다.

황천 앞까지 가서 그 너머에 있을 염라대왕과 대면할 뻔했으니 경계해야 하는 건 당연했다.

암천회, 천기라면 이 사실을 충분히 예측하고 있을 터.

그래서 만약을 위해 고수의 도움을 요청했다.

* * *

장강의 물길을 따라가다 보면 삼협(三峽)이 나온다.

삼협은 험준하기로 소문난 장소이며 동시에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곳으로도 이름이 알려져 있다.

최초의 구당협(麗塘峽)을 지나면 한 폭의 명화처럼 아름답기 그지없는 무협(巫峽)이 나왔다.

그리고 이 두 곳을 지나면, 둘과 달리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에 기괴한 서룽협(西陵峽)에 들어선다.

양쪽으로 늘어선 가파른 절벽 탓에 해를 가려 대낮임에도 어둡고, 그 위에 자리 잡은 울창한 수풀에서는 원숭이인지 귀신인지 모를 것의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또한, 강물은 혼탁하여 수면 아래가 전혀 보이지 않았고, 물살은 어찌나 거세고 빠른지 난폭했다.

“아가씨, 도착했습니다!”

당혜의 호위 무사, 원대식이 환하게 웃었다.

주변에선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탐색대의 합류 지점을 찾아오느라 정말 온갖 고생을 다 했다.

말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수준이다.

‘삼협의 물살이 격랑이라 익히 들었지만, 설마하니 이 정도일 줄이야……’

‘발을 잘못 딛기라도 했으면 끝장이었을 거다.’

‘으으으, 아직도 간담이 서늘하군.’

구당협의 산만 한 돌덩이, 염여퇴(溫源推)를 볼 때는 가슴이 철렁 주저앉았다.

좁아진 강폭을 포함해 유속이 빠르다 보니 노련한 선주가 모는 튼튼한 선박조차 안심할 수가 없었다.

엄여퇴에 부딪쳐 배가 박살이 나거나, 혹은 뒤집힌다는 일화를 들었을때는 소름이 다 끼쳤다.

아무리 명문지파의 무림인이라고 한들, 수공을 수련하지 않은 이상이 거센 물결에 빠지면 답도 없다.

도중에 약간의 위기가 있긴 했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다시 봐도 정말 신묘하군.”

“여기가 아직 서룽협 안이라고?”

“도저히 같은 곳이라는 게 믿겨지지 않아.”

일행은 아직 서릉협을 빠져 나오지 않았다.

나오기는커녕 위치상 한가운데에 있다.

사천의 금사강(金沙江)에서부터 일행을 태우고 온 선박은 서릉협의 굽어진 절벽 앞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정박한 장소의 수면은 삼협답지 않게 고요했다.

“대자연이 만들어낸 기문진이라고 하더니만, 그 말이 사실일 줄이야……”

주서천도 선박 아래의 수면을 보고 감탄했다.

삼협이 새벽 시간대에 접어들면, 운무에 젖으며 천지조화가 일어나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는 말이 있다.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 삼협의 경관이 그만큼 몽환적이고, 절경인가 보구나 하고 받아들였다.

그러나 사실은 전혀 달랐다.

소문은 사실이었다.

구당협, 무협, 서릉협.

장강의 삼협은 하나의 거대한 기문진이었다.

당가의 선조는 우연찮게 이 기문진 안에 숨겨진 장소를 발견했고, 그곳에서 인면지주를 찾았다고 한다.

“돛이 바람에 내려지지 않도록 잘 고정하고, 정(碇 :닻)도 꼼꼼히 확인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당혜의 지엄한 명령에 당가의 무사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문제가 없는지 꼼꼼히 확인한 다음, 계단처럼 되어 있는 절벽 면을 타고 위로 올라갔다.

일행 전부 최소 절정 이상 되는 고수다 보니 딱히 문제는 없었다.

수면 위보다는 차라리 절벽이 나았다.

보기만 해도 위태로운 절벽 면을 등반하고 위로 올라오자 울창한 수풀이 나왔는데, 무척 어두웠다.

남만을 절로 연상시키는 광경이긴 했는데, 분위기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음험하고 기분 나빴다.

이각 정도를 걷자 수풀 너머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

당혜가 고개를 휙 돌려 주서천을 쳐다봤다.

“금속음.”

주서천이 질문에 답하듯이 중얼거리곤 뛰쳐나갔다.

그 몸놀림이 가히 번개와 같았다.

“크아아악!”

수풀을 헤치자마자 피가 튀었다.

주서천은 가슴이 꿰뚫린 무사의 뒷덜미를 잡아서 뒤로 뺀 다음, 반대쪽 손으로 검을 출수했다.

키에엑!

‘키에엑?’

짐승의 울음소리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그 의문은 금방 풀렸다.

눈앞에 나타난 건 정말 짐승이었다.

머리가슴과 배로 구분되는 몸집이 보였다.

머리에는 여섯 개나 되는 눈이 달려 있었는데, 붉게 빛났다.

또한, 일곱 마디로 된 다리는 머리가슴에 붙어 있었으며 도합 여덟 개였다.

거미였다.

그것도 그냥 거미가 아니라, 무려 오 척이나 되는 키를 지닌 거미였다.

‘거미라고?’

거미는 이렇게까지 크지 않다.

서장에서 넘어온 회귀한 거미조차 커봤자 손바닥만 한 정도다.

어린아이보다 큰 거미라니, 그런건 들어본 적 없었다.

‘아니, 놀라는 건 나중이다.’

주서천은 경악과 불신을 잠시 옆으로 내려놓고, 손을 움직여 검을 재빠르게 휘둘렀다.

아무리 괴물 같은 거미라고 한들, 검신의 검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검격 몇 번에 몸이 조각났다.

‘화산파의 주서천이오!”

주서천이 외치며 주변을 둘러봤다.

“주서천?”

“검신!”

“주서천 대협이다!”

여기저기서 환성이 들렸다.

주서천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거미의 형상을 한 괴생물체 무리와 대적하고 있는 무인들이었다.

“은공!”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왕일!”

금의검문의 질풍십객 중 필두, 질풍검 왕일이었다.

주서천은 왕일에게 달려가 그를 괴롭히고 있던 거미를 일검에 양단했다.

 “허어!”

왕일은 주서천의 등장에 기뻐하면서도, 비교조차 불가능한 검 솜씨에 혀를 내두르며 경악했다.

“다른 사람들은 아직 안 도착했나?”

참고로, 탐색대는 결성된 후 집결한 적이 없었다.

각 세력에서 고수를 동원한 건 성공적이었으나, 서로 거리가 떨어진 곳에 장소하고 있었다.

게다가 서룽협이 최적의 합류 지점인지라 그냥 목적지에서 합류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기문진 내부의 출입 방법은 무립맹의 개편된 암호문을 이용하여 사전에 전달해 두었다.

그러나 금의검문 외의 세력이 보이지 않았다.

“은공 일행 외에 전원이 집결했으나, 지금은 헤어졌습니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좀 깁니다. 하앗!”

왕일은 검마나 유령을 제외하곤 금의검문에서 손꼽히는 고수였다.

영약도 지원을 받아서 실력이 좋았다.

주서천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전력을 가하면 거미의 다리를 두 번에서 세 번 만에 자를 수 있었다.

“보통 거미가 아닙니다!”

금의검문의 무사가 질린 듯이 소리쳤다.

크기도 크기지만, 단단함도 보통이 아니었다.

“컥, 컥!”

그사이에 금의검문의 무사 하나가 목을 붙잡고 괴로워했다.

낯빛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감정이 격해져서 그런 게 아니라, 중독된 중세였다.

“해독!”

예!”

주서천의 뒤를 따라온 당혜도 눈앞의 광경에 어이없어 했지만,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고 도움을 주었다.

당가 소속 무사들이 금의검문과 화합을 맞췄다.

중독된 부상자를 보호해 해독에 신경 쓰거나, 혹은 암기를 이용하여 뒤에서부터 보조했다.

“흥.”

당혜가 평범한 아낙네였다면 혐오스럽게 생긴 거미, 그것도 오 척이나 되는 크기에 비명을 지르면서 혼절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림에서도 소문난 여장부, 그것도 온갖 독충으로 가득한 당가의 여인이 아닌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상대했다.

거미가 펄럭이는 소매 속에서 튀어나온 암기를 맞고 몸을 마구 뒤틀며 다가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기겁하기는커녕 침착하게 옆으로 피해서 제압하거나 심지어 손바닥으로 후려쳐 쓰러뜨리기도 했다.

키리릭! 케륵!

한편, 거미 무리는 사람의 등장에 달갑지 않은 듯, 사납게 울부짖었다.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햇빛 한 줌 들어오지 않는 어둠 속에서 붉게 번뜩이는 눈빛은 섬뜩했다.

하나둘씩 늘어난다 싶더니, 어느새 이 주변 일대를 가득 채울 정도로 많아졌다.

“전원! 귀를 보호해라!”

주서천은 경고를 날린 뒤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폐를 통해서 들이쉬었던 공기가 내부에서 순환하며 변화했다.

내공이밀어낸 공기가 입 밖으로 나왔다.

“쿠오오오오오오-!”

주서천은 이 주변은 물론이고 삼협을 울릴 정도의 성량으로 용후를 사용했다.

쿠오오오오오!

울창한 숲 너머 삼협에 메아리 칠 정도로 용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키릭! 키리릭! 키잇!

당장이라도 덤벼들 것만 같았던 기세의 거미 무리가 멈칫했다.

하나같이 주춤하는 반응을 보였다.

“호오, 안 물러난다고?”

웬만한 무인도 전의를 잃을 정도로 내력을 담았다.

내쫓을 생각으로 용후를 사용했거늘, 경계하거나 멈출 뿐 도망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전부 영물이란 말이지?”

주서천의 눈이 욕망으로 번들거렸다.

“어디, 내단 좀 있나 보자!”

가지고 놀 생각은 없었다.

상황이 좋지 않은 듯하니 빨리 끝낼 생각으로 몸을 움직였다.

주서천은 대해와 같은 내공을 끌어올려 검기도 아닌 강기로 검신을 두른 다음 화려하게 휘둘렀다.

파바바바밧!

굳이 초식을 펼칠 것도 필요 없었다.

아무리 영물이라고 해도 그건 너무 과하다.

주서천은 한 줄기의 빛이 되어 어둠 속에 숨어 있는 거미 무리의 사이를 누비며 검을 움직였다.

서걱!

도끼로 쪼갠 것처럼 양단되는 거미의 몸뚱어리.

어찌나 깔끔히 잘렸는지 피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주서천은 숨을 쉬는 것도 잊은 채, 예리한 감각 속에 들어오는 기척을 찾아 학살했다.

“이것이, 검신인가……!”

“보이지도 않는군.”

“허, 참.”

“여태껏 싸워온 게 바보 같게 느껴질 정도야.”

금의검문도 당가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눈을 껌뻑이면 여기저기서 거미의 고통에 찬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야말로 신속이었다.

잔상조차 재대로 못 볼 정도로 빠르고 대단해, 인지부조화가 일어날 정도였다.

참고로 그 와중에 혹시 있을 내단을 신경 써서 그런지, 초반을 제외하곤 전부 찌르기만으로 죽였다.

키에엑! 크룩크룩!

그제야 거미 무리도 공포를 느꼈는지, 멀리서부터 도와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하던 것들도 줄행랑을 쳤다.

주변 일대의 청소를 끝낸 주서천은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채, 검을 집어넣고 왕일에게 다가갔다.

“어디 다친 곳은 없나?”

“더, 덕분에 멀쩡합니다.”

“다행이군. 여기에서 무슨 일이 있었지?”

“그게……”

왕일이 회상에 잠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한 시진 전.

“우욱……”

장서은이 샛노란 낯빛인 채로 헛구역질했다.

“괜찮으세요?”

낙소월이 걱정스러운 눈길로 쳐다보며 사저의 등을 손으로 조심스레 쓰다듬어 주었다.

“아니, 전혀 괜찮지 않아……”

“아무렇지 않은 네가 정말로 부럽다……”

장홍도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서릉협의 물살을 거슬러 오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일 줄이야.”

삼대제자이면서 매화검수로서 산전수전을 겪은 몽각의 얼굴조차 피곤한 기색으로 역력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돌아가도 안전한 경로를 택할 걸 그랬나……”

담향 역시 마찬가지로 힘든 듯, 푸념 섞인 중얼거림을 흘렸다.

“으으……”

“최악이군.”

매화검수의 통솔 아래, 화산파에서 차출된 스물다섯 명의 화산파 제자들 또한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인면지주의 서식지로 들어가는 길은 한두 군데가 아니다.

입구도 여러 개였다.

화산파의 경우, 구당협과 무협을 지나기보다는 서릉협 끝자락에서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더 빨랐다.

다만, 그 과정이 무척 험난했다.

안 그래도 난폭하고 걷잡을 수 없는 장강의 물줄기였는데, 거슬러 올라가니 그 정도가 더 심했다.

“엄한 규율 하의 절도로 이름난 매화검수조차 이겨내지 못하니, 서릉협의 물살은 명불허전이로다.”

헛헛헛!

봉부난발의 늙은 거지가 놀리듯이 웃었다.

일곱 개의 매듭은 노인이 개방의 장로라는 걸 증명했다.

“금주봉개(禁酒棒t§) 어르신께서는 여전히 짓궂으시군요.”

묘령의 여인이 요염하게 웃었다.

“아……!”

장홍은 힘든 와중에도 묘령의 여인을 보는 데 바빴다.

눈에 띄는 건 단연 암청(暗靑)을 띠며 찰랑이는 단발과 오밀조밀하고 뚜렷한 이목구비였다.

입꼬리는 살짝 올라가 여유가 묻어나는 웃음을 만들어내고, 우수에 찬 눈빛은 호수처럼 잔잔했다.

신체의 선이 무척 유려하고 얇아, 툭 치면 부러질 것 같은 느낌이 묻어났다.

‘파검봉(波劍鳳), 단리화(段里花).’

오룡삼봉 중 일봉(一鳳).

후기지수 중에서도 단연 배분이나 연령이 높다.

청성파 장문인의 사손으로서, 여인의 몸으로 스물아홉에 화경이 된 터무니없는 천재로도 알려져 있다.

비록 천재를 넘어선 괴물, 검신의 이름에 가려졌으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무림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을 정도로 유명인이었다.

청성제일미로 삼봉 중에서 성숙한 미색을 뽐내고 있으며, 여인이라고 얕보았다가 주 무공이며 청성파의 절기인 칠십이파검(七十二波劍)에 무너진 고수가 한둘이 아니다.

다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문에서 폐관 수련하느라 최근에는 이렇다 할 활약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입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화제의 인물이었다.

“그나저나, 검신과는 동행하지 않으신 모양이네요.”

단리화가 멀리 보듯 눈썹 위에 손을 올리고 주변을 슥 둘러봤다.

“사천의 금사강에서부터 온다 하였으니, 나중에 올 거다. 그 전까진 주변을 탐색하도록 해야겠군.”

개방의 칠결제자, 금주봉개 손일산이 답했다.

“그 전에 잠시 통성명이라도 하는 편이 좋을 듯 싶습니다.”

무림맹 소속 고수, 웅권협(熊拳俠) 이출이 나섰다.

“부대주인 웅권협 이출이라고 합니다.”

이출이 포권으로 인사했다.

별호와 다르게 곰처럼 생기지는 않았다.

어디에서나 볼 법한 중년 사내였다.

무림맹을 필두로 개방과 청성파, 화산파가 차례대로 소개했다.

“금의검문 소속 지, 질풍검 왕일입니다.”

왕일은 주변의 눈치를 보면서 멋쩍은 웃음을지었다.

‘하 참. 은공께서 고수를 모집했다곤 하지만 설마하니 이 정도 되는 인물이 모일 줄이야.’

매화검수야 말할 것도 없으며 손일산이나 단리화, 이출까지 무림에서도 내로라하는 고수들이었다.

전원 천하백대고수로 화경에 이른다.

그 외에도 각 세력에서 동행한 무림인들 또한 최소 일류의 무인이었으며, 절정이나 초절정도 수두룩했다.

도합하면 구십여 명에 이르는 무인들이었다.

왕일도 무림에선 질풍십객의 수장으로서 나름대로 이름을 날리긴 했지만, 눈앞의 사람들 정도는 아니다.

통성명이 끝나자 이출이 막 입을 열려던 차였다.

“그러면……”

“뒤!”

말을 잇기도 전, 손일산이 고함을 내질러 경고했다.

부웅!

‘……’

이출은 고함을 듣자마자 몸을 움직였다.

명색의 천하백대고수답게 그 몸놀림은 몹시 재빨랐다.

전을 뒤집듯 몸을 등 뒤로 돌렸다.

상체는 젖히듯이 뒤로 넘겼다.

덕분에 상단을 노린 공격을 피했다.

부우웅!

소리가 묵직했다.

마치 몽둥이를 휘두른 것 같았다.

그러나 이출의 시야에 잡힌 건 몽둥이 같은 게 아니었다.

몽둥이보다 더 흉악한 거미의 발이었다.

문제는 그 발을 지닌 거미가 범만한 크기였다는 것이었다.

“어딜!”

경고로 이출을 살린 손일산은 쏜살같이 튀어나가 봉을 앞으로 힘껏 밀어냈다.

대기에 구멍을 낸 봉은 혐오스럽게 생긴 거미의 머리를 정확히 명중시켰다.

퍽! 키에에엑!

거미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뭔……”

탐색대 전원이 입을 떡 벌렸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건 그렇다 쳐도, 일단 급습의 주인이 맹수만한 크기의 거미라는 것에 놀랐다.

“으아악!”

“아악!”

감정을 추스르기 전에 양 방향에서 비명이 들렸다.

탐색대원이 넘어진 채 수풀 너머로 미끄러지듯 움직였는데, 자세히 보니 발목이 실로 묶여 있었다.

“거미줄!”

“인면지주!”

아무래도 굳이 탐색은 필요 없을 듯 싶었다.

인면지주인 줄은 모르나 그에 준하는 영물이자 마물, 거미가 있다.

“개방과 화산파는 좌로 간다!

옹권협! 대원을 구출하고 중간에서 합류한다!”

손일산이 크게 외치며 몸을 날렸다.

그 뒤로 개방도와 화산파 제자들이 뒤를 따랐다.

“무림맹과 청성은 우로 가겠소!

금의검문은 후위를 부탁하겠소이다!”

몸을 바로잡은 이출도 뛰쳐나갔다.

그 뒤로 무림맹 소속 무사들을 비롯해 청성파가 뒤따랐다.

“뒤따른다!”

왕일이 검을 뽑으며 몸을 날리려 했다.

“안 됩니다!”

질풍십객의 일원, 조춘이 외쳤다.

왕일이 무슨 일인가 하고 뒤를 본 순간, 얼굴을 걸레짝처럼 일그러뜨렸다.

어느새 거미 무리에게 사방으로 포위된 상태였다.

“그리고 마침 은공께서 와주신 참입니다.”

“머리를 썼군.”

주서천이 눈살을 찌푸렸다.

“의도적으로 전력을 분산시켰을 뿐만 아니라, 유도까지 했다.”

“머리요? 실례하오나 주 대장. 아무리 몸집이 크기는 하지만, 한낱 미물이 아닙니까?”

조춘이 설마 하는 표정으로 믿기지 않는 듯 물었다.

“거미는 머리 좋기로 유명하니 주의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영물이라면 더더욱이요.”

당혜가 조춘의 물음에 대신 답했다.

“이 몸집에 머리까지 비상하다니……”

원대식이 거미의 사체를 보고 침음을 흘렸다.

“어찌할까요?”

왕일이 주서천에게 의견을 물었다.

‘어디로 가야 하지?’

화산파와 개방은 좌측으로 갔다.

무림맹과 청성파는 우측으로 갔다.

거미의 목표가 전력의 분산과 각개격파라면, 서로 돕지 못하도록 거리를 떨어뜨릴 의도가 분명했다.

정황상 한 곳만 추적할 수 없었다.

현재 일행도 둘로 나뉘어져 쫓아야만 했다.

‘……좋아.’

상황이 급하다 보니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왕일.”

“예, 은공!”

“당혜를 따라서 화산파와 개방을 쫓도록.

인면지주건 거미건 간에 보통 놈들이 아니니까 방심하지 말고, 전력이 분산되는 걸 조심해라.”

“명대로 하겠습니다.”

주서천이 고개를 돌려 당혜를 쳐다봤다.

“그쪽을 부탁할게.”

“혼자 갈 셈이야?“

당혜가 걱정인지 불만인지 모를 얼굴로 물었다.

“상천칠좌를 얕보지 마.”

“…… 해독약은, 필요 없어?”

“묘하게 친절한데…… 당가의 가주께 몇 가지 받은 게 있으니까 괜찮아.”

“그래.”

인면지주는 아니나 이 거미 무리는 하나하나가 강하고 성가시다.

괜히 전력을 분산할 필요는 없었다.

무엇보다, 혼자서 행동하는 게 더빠르고 편하다.

차라리 이렇게 나누는 편이 나았다.

“나중에 보자.”

주서천은 당혜에게 인사하고 몸을날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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