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장강의 거센 물살처럼 빠르게 흘러간다.
여름이 끝나가고 가을이 왔다.
나뭇가지 위의 초록 잎이 알록달록한 단풍으로 물들어 가는 계절이다.
안휘, 무림맹.
“오느라 고생 많았다.”
남궁위무가 인자하게 웃으며 주서천을 반겼다.
“사문을 들르느라 조금 늦었습니다.”
주서천이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아니다. 죽은 줄만 알았던 제자가 살아 돌아왔으니, 당연히 얼굴을 비추고 와야 하지 않겠느냐.”
종전 후 무림맹 본부에서 부름을 받았다.
주서천의 생존과 더불어 상천이 된 것을 축하하는 한편, 앞으로의 일을 상의하기 위함이었다.
수면 위로 부상한 암천회, 그들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자문을 구하려면 의견이 필요했다.
주서천도 마침 할 말이 있어 승낙했으나, 그 전에 화산파로 되돌아가야 해서 바로 갈 수는 없었다.
무림의 안위도 신경이 쓰이지만 그동안 괜한 걱정을 끼친 스승이 걱정이었다.
그래서 서신으로 양해를 구한 다음 화산에 들렀다 오느라 불가피하게도 시일이 걸렸다.
“무림맹을 대표하여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구나.”
남궁위무가 진지한 얼굴로 허리를 살짝 숙였다.
“아, 아닙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무림맹주, 그것도 상천칠좌의 절대고수다.
주서천도 적잖게 당황하며 손사래 쳤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않는가.
최초의 격돌에서 패퇴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목이 절로 움츠러들더군. 그 주서천이 살아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맹주라는 체면도 잊고 방방 뛰었네.”
농이 아니라 진담이었다.
그만큼 상황은 심각했다.
최초의 격돌 때 패퇴한 것도 모자라 무림맹 주요 고수가 전멸하다시피 중상을 입었다.
특히나 상명진인의 사망소식을 확인했을 때는 가슴이 철렁 주저앉았다.
당분간 식음을 전폐했을 정도로 상황은 심각했다.
“무림맹주로서, 그리고 정파의 한 사람으로서 검신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리네. 그대는 영웅일세.”
남궁위무가 극진한 예우를 표했다.
“낯 간지럽게 왜 그러십니까. 적당히 좀 해 주십시오.”
주서천이 팔을 벅벅 긁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정파의 영웅, 그것도 검신께서 이리도 당황하시다니, 제법 회귀한 광경을 본 것 같습니다.”
제갈상이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두 분 다 한 사람을 괴롭히니 재미있습니까?”
“결코 괴롭히는 것이 아닙니다. 저 역시 진심이니까요. 그 증거로……”
“아까 집무실로 안내하시는 동안 실컷 괴롭히지 않았습니까. 마음은 알았으니 좀 봐주십시오.”
주서천이 질린 듯이 손사래를 쳤다.
“영웅께서 그러라면 그리해야지.”
남궁위무가 머리를 들고 능구렁이같이 웃었다.
“그러면 본론으로 들어가, 보고를 드리겠습니다.”
제갈상이 입가에 웃음을 지우고 간략히 설명했다.
“정마대전의 뒷정리는 딱히 문제없이 끝났고, 암천회의 공표 또한 수월했습니다.
솔직히, 훼방이 들어올것이라 생각했는데 이상할 정도로 문제가 없더군요.”
“무림맹과 사도천, 그리고 흑도의 하오문이 작정하고 존재를 끄집어냈으니까요.
천기라면 아마 제지가 무의미하다고 느끼고, 그 시간과 노력을 다른 곳에 투자했을 겁니다.”
“말 나온 김에 묻는 것이지만, 도대체 무슨 수로 사도천주의 마음을 움직인 건가?”
서로 공표 시기가 맞물렸다.
물론, 그 전에 소문이 있었으니 겹치는 것 자체는 이상하지는 않다.
“이 늙은이의 눈에는 사도천도 우리처럼 암천회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을 뿐만 아니라, 마치 예전부터 준비한 것처럼 느껴졌네. 또한, 전에 보내온 서신에 사도천이 협력할 것이라 말하지 않았나.”
남궁위무만이 아니라 제갈상도 이점을 궁금해했다.
우연치곤 너무나도 공교로웠다.
“아…… 패신군과 좀 아는 사이입니다.”
사실을 밝혔다간 귀찮아질 것 같아서 대충 말했다.
“패신군이라면 그 패신군 말입니까?”
제갈상이 눈을 크게 떴다.
사파의 영웅, 그리고 음신에게서 상천의 자리를 빼앗은 패신군은 무림에서도 장막에 둘러싸인 인물이다.
친분이 있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전에 내부와 외부로 협력자가 존재한다고 말했지요?”
“듣긴 들었네만, 설마 그 패신군이었을 줄은 몰랐네. 놀랄 노자로군.”
남궁위무가 감탄을 금치 못하며 중얼거렸다.
사실을 알게 되면 무슨 표정을 지을지 궁금했다.
“뭐, 그런 겁니다. 다음 보고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남궁위무와 제갈상이 패신군과의 관계를 궁금해하는 눈치였으나, 주서천이 재촉하니 물을 수 없었다.
또한 본론 역시 중요하다 보니 나중을 기약해야 했다.
“독룡…… 당명인의 행방이 묘연합니다.”
“언제부터입니까?”
“종전 다음 날…… 그러니까, 주대협께서 생존한 소식이 전해진 날입니다.”
예상한 대로였다.
반대로 아직까지 무림맹에 남아 있더라면 무슨 함정인가 하고 의심했다.
“당명인이 무림맹의 배신자, 천추입니다.”
“후우……”
남궁위무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갈상의 표정도 별로 좋지 못했다.
“예상한 대로군……”
그다지 놀랄 것도 없었다.
주서천의 최후를 목격하고 보고한 장본인이다.
그런 사람이 생존 소식을 듣자마자 사라졌다.
바보라도 무언가 이상하다는 건 안다.
“그래서 어찌된 영문인지 조사했는데,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흔적 하나 없더군요.”
“도대체 어떻게 된 건가? 그와 무슨 일이 있었지?”
남궁위무가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또 다른 목격자였던, 홍고 역시 입적했으니 이제는 장본인에게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다지 대단한 일은 아닙니다.
독룡이 배신자였고, 당시 바보 같았던 제가 함정에 보기 좋게 걸려든 것이지요.
그보다, 말 나온 김에…… 저 역시 할 말이 있습니다.”
남궁위무와 제갈상의 시선이 주서천에게 고정됐다.
“암천회가 어떠한 곳인지에 대해서…… 그리고, 칠성사의 요광과 천기와, 암천회주에 관해서입니다.”
머릿속으로 천마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정말인가?”
남궁위무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되물었다.
“드디어 알아내셨군요.”
암천회.
수뇌는 물론이고 전체적인 구성조차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곳.
무림정복이라는 목적 외에는 제대로 밝혀진 것 하나 없다.
무림맹 외에도 여러 무림단체에서 조사해 봤지만 이렇다 할 정보는 없었다.
“예. 개양…… 천마에게 들은 정보이니 틀림없습니다.”
천마는 힘에 굴복한다.
그래서 암천회주에게 머리를 숙이고 개양이 됐고, 주서천에게 사실을 전달했다.
비록 그 심정은 사악하나, 마교의 사상이자 신념을 끝까지 관철했다.
“그 천마조차 암천회의 수뇌에 불과하다니, 다시 생각해 봐도 믿기지 않는군.”
남궁위무가 감탄사를 뒤섞어 말했다.
옆의 제갈상도 동의하듯 고개를 위아래로 주억거렸다.
놀라움도 놀라움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사대세력 중 마교의 수장을 밑으로 둔 그의 저력이 두려웠다.
“전에도 말했다시피, 요광은 황궁에 있습니다.
또한, 암천회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다지 놀랄 것도 없군. 옥문관을 누군가의 개입 없이 열고, 혈교의 군세를 보냈으니 말이야. 그만한 일을 요광 혼자할 수 있을리 없을 노릇이니……”
“그리고…… 암천회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의 뿌리는 황궁에 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는 홍무제(洪武帝) 시절의 관료들이지요.”
“홍무제? 홍무제라면 명의 태조(太祖)가 아닌가.”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군요.”
제갈상이 예상외라는 듯이 놀란 표정을 했다.
홍무제가 숨을 거둔 지 약 이십여 년밖에 되지 않았다.
초대 황제의 재위 기간이 삼십 년이라는 걸 생각하면, 길어 봤자 오십 년 밖에 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놀라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오십 년이라면 짧은 시간은 아니네만, 그리 긴 시간도 아니로군.”
남궁위무가 등을 기대며 수염을 매만졌다.
“무림맹과 사도천, 마교와 혈교…… 무림의 사대세력을 비롯하여 중원의 각 단체를 농락하고, 상계를 휘어잡았으며 오호도독부의 관료까지 움직일 정도의 힘을 쌓아 올린 이들치곤 짧다고 생각됩니다.”
제갈상이 동의하듯 의견을 덧붙였다.
“맞습니다. 그들이 축적한 힘에 비해서 그 역사는 그리 길지 않은 편입니다.”
혈근경이나 뇌계의 무공부터 시작해 각종 법보나 무공 비급, 그리고 도감부의 영약과 영물 관리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외부로 유출되면 피바람을 불게 할 보물들 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손실된 절대자의 무공비급이나 영약은 결코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오십 년이 짧지는 않다고 하지만, 솔직히 이 모든 걸 쌓아올릴 정도는 되지 않는다.
세간에선 암천회가 백 년 혹은 이백 년 동안 무림 정복을 위해서 준비했다거나, 혹은 인간이 아닌 괴물이나 신선이 개입한 것은 아닐까라는 허무맹랑한 소문이 떠돌 정도였다.
주서천 역시 암천회가 창설한 시기를 전해 듣고 의구심을 품었으나, 내막을 알게 되면서 수긍했다.
“홍무제의 행적 중 건국 외의 유명한 것을 꼽으라 하면, 어떠한 것을 택하시겠습니까?”
“숙청입니다.”
명태조 홍무제와 숙청은 빼놓을 수 없는 관계다.
홍무제는 중앙집권 독재 체제를 확립하고 절대 권력을 휘둘렀는데, 이를 훼손하지 않고 유지 및 강화를 위해서 숙청을 가했다.
이 과정의 규모가 상당했다.
그게 어느 정도였냐면, 건국되기 전 동고동락한 측근은 물론이요 심지어 개국공신까지 가리지 않았으며 권신들과 일가족을 포함해 무려 삼만 명에 이르렀다.
“삼만?”
남궁위무가 깜짝 놀랐다.
홍무제의 숙청에 대해서 조금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하니 이 정도 규모일 줄은 몰랐던 눈치였다.
무림과 관부는 상호 간에 관여하지 않는 주의다 보니 세세한 것까지는 알 수 없었다.
“홍무제는 신하를 불신했습니다. 개국공신이나 혁혁한 공을 세운 노장조차도 숙청에서 벗어나지 못했지요.
이에 관료들은 공포에 덜덜 떨어야 했습니다.”
아무 이유도 없었던 건 아니었다.
숙청에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우선, 홍무제는 왕족이 아닌 가난한 농민 출신이었다.
정말 찢어지게 가난해 온갖 고생을 다 했다.
그 당시 나라는 워낙 막장으로 치달아 있었는데, 그는 그 내막인 부정부패한 탐관오리를 혐오했다.
황제가 된 이후로 부정부패를 철저하게 감시하고 처벌에 임하는 데 적극적으로 힘썼고, 그 덕에 부정부패가 없다시피 사라지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
또한, 이처럼 출신이나 재산 등이 미천하다 보니 우습게 보일 여지가 많아 숙청을 통해 황제로서의 권위를 보여줘야만 했다.
그리고 시대를 풍미한 왕조라 해도, 공신 탓에 제대로 된 힘 하나쓰지 못하고 신하에 의해 좌지우지 당하다 멸망하는 경우가 허다하니 이를 경계했다.
“명이 세워진 이후 크고 작은 수많은 숙청이 홍무제가 재위하는 동안이루어졌습니다.
몇몇은 관직을 내려놓고 낙향이나 은거하려 했으나, 홍무제는 이조차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홍무제는 백성과 신하는 오직 황제를 위해서 행동하여야 한다고 황명을 내렸는데, 신하의 경우 나라, 곧 황제를 위한 일을 대충 하거나 관두면 장본인을 포함한 집안까지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허, 홍무제가 백성에겐 명군이요. 신하에겐 폭군이라 칭해진다더만……”
남궁위무가 신음을 흘렸다.
“아, 혹시……!”
제갈상이 무언가 눈치챈 듯 눈을 크게 떴다.
“암천회란, 당시 홍무제의 숙청을 두려워한 신하들의 모임이었습니까?”
“맞습니다.”
암천회(暗天會)!
무림을 농락한 이 비밀스런 단체의 뿌리는 사실 무림이 아니었다.
도리어 관여하지 않는 관부에 있었다.
암천이란 그 당시 신하들에게 펼쳐질 미래였다.
이들은 어떻게든 대비해 살아보려고 손을 잡기 위해 모임을 갖는데, 그게 바로 지금의 암천회이다.
“홍무제는 몰래 첩보조직을 키워 조금이라도 권세가 있거나, 혹은 야망이나 능력이 출중해 황권에 침범할 수 있는 신하를 일거수일투족 살펴보게 했으니……”
여러 의문들이 풀렸다.
흩어진 조각이 짝을 찾아 맞춰졌다.
“아!”
남궁위무도 눈치챈 듯 무릎을 탁쳤다.
“관부의 영향이 닿지 않는 곳, 홍무제의 의심을 피할 수 있는 무림을 택한 거로군!”
홍무제 시절에도 무림은 논외에 속했다.
북방의 오랑캐를 비롯해 남만의 대월국 등 외세의 적이 워낙 많지 않은가.
괜한 충돌은 피하고 싶었다.
무림인보다는 원나라의 잔재나, 토착 세력이 더 신경 쓰였다.
내버려 두면 무림도 관여하지 않으려 하고, 무엇보다 성가신 도적의 토벌을 대신해 주니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무림을 신경 쓸 시간에 언제 모반을 꾀할지 모르는 신하에 집중하는 것이 더 나았다.
“과연, 그랬나. 이제야 이해가 가는군.”
남궁위무가 감탄사를 흘리며 눕혔던 몸을 세웠다.
“암천회에 동조한 이들이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나, 고위 관리가 여럿 있었다면 무림을 위협할 만한 세력을 순식간에 만드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을 겁니다. 돈도 돈이고 권력도 권력이지만, 황궁무고(皇宮武庫)가 있지 않습니까.”
제갈상이 정리된 생각을 말로 옮겼다.
황궁무고.
무림을 포함한 천하의 법보를 비롯해 무공비급이나 병기서, 그 외에도 각종 무기를 보관하는 장소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 황궁무고가 중원의 역사 그 자체라 할 정도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점이었다.
소문에 의하면 미신에 집착한 진시황이 온갖 기서나 법보, 무림의 것을 수집한 것이 시초였다 한다.
그 후로 왕조에서 왕조로 이어졌다 했으며, 지금에 와서는 애석하게도 닫힌 채 버려졌다시피 했다.
홍무제는 공을 세운 신하가 무고에서 무공비급이나 명검을 요구해 권세를 키울 것 같아 경계했다.
그래서 차라리 문을 걸어 잠그고 폐쇄했다.
“한두 사람이라면 모를까, 관료 몇이 작정하고 하나씩 빼어온다면 어렵지 않았을 겁니다.
무엇보다 현 황제 폐하가 어릴 때부터 무인적 기질이 남달라 황궁무고에 관심을 보였으니, 문제없었을 거고요. 그 틈을 노렸을 겁니다.”
신하, 특히나 무관이 황궁무고에 관심을 가지면 의심부터 하고 반대하지만 친족의 경우에는 달랐다.
그들이 힘을 키우면 곧 황권이 강화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현 황제처럼 친족들은 허가했다.
“황궁무고 안에 있는 것을 몰래 빼오다니, 제정신인가?
절도나 횡령의수준이 아니라, 자칫 잘못하면 모반죄네.”
“그런 건 사소한 문제입니다.”
주서천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홍무제의 신하, 관료들의 경우는 능력과 존재만으로 의심을 받아 숙청의 대상이 됐습니다. 개국공신까지 쓸려나가는 판국에 어느 누가 무사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었겠습니까. 살려면 뭐든지 해야 했을 겁니다.”
이러한 생존욕구는 결과적으로 암천회에 많은 기여를 하게 된다.
목숨 걸고 과감하게 행동한 덕에 축적되는 재물이나 힘 또한 그만큼 상당할 수 있었다.
“후우…… 머리가 지끈해지는구나.”
남궁위무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꾹꾹 눌렀다.
한 번에 너무나도 많은 걸 들었다.
무엇보다 관부가 개입한 건 무림사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전례가 없으니 앞으로가 걱정이었다.
“잠깐……”
남궁위무가 손을 내려놓았다.
그 얼굴에는 아직 의문이 남아 있었다.
암천회의 탄생 배경이나 저력에 대한 건 어느 정도 해소됐다.
하지만 여기에서 새로운 의문을 낳았다.
“암천회가 홍무제의 숙청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나온 것이라면, 지금의 암천회는 무엇인가?”
결과적으로 암천회의 목적은 거의 성공한 게 맞다.
목적에 실패해 발각됐다면, 홍무제 성격상 그냥 넘어갈 리가 없었다.
잔존한 것만으로 성공을 의미한다.
암천회의 주체는 맹강처럼 신분을 숨기고 무림에 녹아들어 은거했을 것이 분명했다.
“어찌하여, 황제의 숙청에서 살아남기 위한 곳이 무림 정복을 꾀하게 된 건지도 이해가 안 가는군.”
남궁위무가 주서천에게 설명을 요구하듯이 쳐다봤다.
제갈상은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다.
“앞으로 할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제 추측입니다.”
천마는 목숨이 끊기기 전 핵심만 집어서 설명해 줬다.
전부 듣기에는 시간이 충분하지 못했다.
“암천회가 여태껏 드러나지 않았던 걸 보면, 소기목적을 달성한 건 확실합니다. 입회한 관료나 신하들 대부분이 관부에 닿지 않는 곳으로 은거하는 데 성공했겠지요. 그러나 전부는 아닐 겁니다.”
“과연.”
제갈상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중얼거렸다.
남궁위무만 답답한 듯이 그 다음 말을 닦달했다.
“암천회는 존재만으로도 역모에 해당합니다.
누군가는 남아서 그 비밀을 끝까지 숨겼어야 했죠.”
암천회의 근간이 되는 홍무제의 신하들은 일찍이 사라졌다.
무림인지 아닌지도 모를 곳으로 은거했다.
숙청에서 벗어나려고 온갖 불경한 죄를 저질렀으니, 밝혀질 것을 두려워해 속세와 연을 끊었을 터다.
“이후 잔존한 것은, 황궁무고와 홍무제 시절 신하들의 권세로 이루어진 무림의 비밀무력단체. 그리고 이를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된, 남은 자입니다.”
무림 역사상 전무후무했던 전란의 시대.
평화가 찾아온 뒤로도 암천회주에 대해선 알 수 없었다.
아니,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 맞았다.
아무리 무림이라 할지라도 암천회의 탄생배경과 그 과정이 밝혀진다면 역모에 휘말릴 수 있으니까.
“그 남은 자란 것이……”
“암천회주겠지요.”
“대체 그는 누구인가?”
“암천회주는……”
한림원(翰林院).
당(唐)나라 현종(玄宗) 초기에 설치된 관청으로, 그 유서는 깊다.
지금에 와서는 황제의 칙령을 다듬거나, 문서를 담당하는 등 각종 학문에 관련된 일을 맡고 있다.
과거시험의 합격자 중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거두어야 들어갈 수 있으며, 무려 내각대학사까지 배출했다.
그야말로 나라에서도 손꼽히는 천재들만 모인 곳이라 할 수 있으나, 애석하게도 그 취급은 좋지 않았다.
“백절불요(百折不燒)하여 한림원에 들어오면 뭐하나. 뒷방 늙은이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늘.”
“그러게 말일세.”
한림원 역시 홍무제의 숙청에 벗어나지 못했다.
중원에서 공부로 내로라하는 인재들이 모인 곳이니 내버려 둘 리 없었다.
먹물이 종종 핏물이 됐다.
야망에 뜻을 두지 않아도 능력이 우수하면 숙청당하니 한림원 입장에선 매우 억울했다.
그나마 대부분 직급이 낮아 타 기관에 비해선 피해가 적은 것을 위안으로 삼아야 했다.
하나 한림원의 상황은 홍무제가 숨을 거두고 난 뒤인 오늘날에도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아아, 내전의 결과만 달랐어도……”
“쉿, 입 다물게. 자네 미쳤나?”
불과 이십여 년 전만 해도 이 나라는 내전으로 몸살을 앓았는데, 홍무제 사후 황위 계승이 연유였다.
홍무제는 장남이었던 의문태자(懿文太子)를 황태자로 책봉하나, 의문태자가 그만 먼저 죽고 말았다.
그 뒤 황태자의 후보로 현 황제가 대두됐으나, 당시 좌천선(左贊善)한림학사(翰林學士)가 아들이 죽으면 손자가 이어야 한다며 반대해 손자인 건문제(建文帝)가 황태자로 책봉되어 곧 제위에 올랐다.
이때만 해도 한림원, 아니, 학자들의 시대였다.
건문제가 어릴 적부터 학문을 좋아한 덕에 학자들이 곁에서 보좌하며 힘을 키울 수 있어서였다.
시간이 지나 황위에 등극하자, 어릴 적부터 곁에서 보조하던 학자들은 자연히 정부의 요직을 차지한다.
이후 막강한 군권을 가져 황권을 위협할 수 있는 숙부들, 번왕(藩王)의 세력을 약화하려는 정책을 펼친 건문제가 그렇지 않아도 조카에게 황위를 빼앗긴 숙부들과 격돌하면서 그 규모는 걷잡을 수 없도록 커져 대대적인 내전으로 번졌다.
그러나 결과가 그다지 좋지 못했다.
학사의 푸념에도 알 수 있다시피 건문제가 패배하고 행방불명됐다.
이로써 달콤하고 짧았던 학자의 시대는 막을 내린다.
측근들 대부분은 현 황제에게 숙청되어 사라졌다.
“자네는 어찌 생각하는가, 녹존(祿存)?”
“예?”
한쪽 구석에 앉아 서적을 정리하던 삼십 대 중반의 한림원 학자, 녹존이 머리를 들어 반응했다.
“예는 무슨 예인가. 넋두리를 듣지 않았나.”
“이 후배야 나랏일에 뜻을 두고 장원 급제한 것이 아니라, 가난에서 벗어나 재산 좀 모으고 싶은 것인지라 무어라 말씀드리기가 힘듭니다.”
녹존에게 야심이란 너무나도 먼 개념이었다.
누군가는 큰 뜻을 품고 과거를 봤을지 몰라도, 그는 전혀 아니었다.
괜한 정치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고, 그냥 성실하게 일해 녹봉 좀 받아가며 편히 살다 눈을 감고 싶었다.
관지도 한림원에서 제일로 낮은 직급인 종칠품 검토(檢討)였다.
“그런가?”
종육품 수찬(修撰)인 선배 학자가 재미없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무어라 하지는 않았다.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박혀 넋두리나 하는 자신들과 다를 것 없으니 말이다.
“그럼 저는 슬슬 일어나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신세 많이 졌습니다.”
“신세?
아아, 그러고 보니 자네 근무일이 금일까지였나……
그만 깜빡 잊고 있었군그래. 미안하네.”
“괜찮습니다.”
“여태껏 정말 수고 많았네. 그래, 낙향한다고?”
“그동안 모아둔 걸로 느긋하게 지내보려 합니다.”
“사고만 당하지 않았더라면 좀 더 길게 있었을 텐데…… 참으로 안타깝군그래.”
“어쩔 수 없지요.
그러면 정말로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나중에 연이 닿으면 또 만나세.”
녹존은 몇 차례 대화를 나눈 뒤, 한림원을 떠났다.
관직에서 물러나는 게 예정되어 있던 만큼 그 과정은 깔끔했다.
인사도 사전에 끝내 문제없었다.
딱히 미련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한림원을 나와 저잣거리로 나왔다.
약 이각 정도를 걸어 골목에 들어서자마자, 낯짝이 험상궂은 왈패 무리가 길목을 앞뒤로 막았다.
“이보게, 외팔이 형씨.
가진 게 제법 많아 보이는군그래.”
척 봐도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앞으로 걸어 나와 비릿하게 웃었다.
눈동자에는 외팔이 학자를 비췄다.
“방수찬이 보냈나?”
녹존이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물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인사를 나눴던 한림원의 선배 학자가 방수찬이었다.
“……”
왈패 무리의 우두머리가 얼굴을 구겼다.
어떻게 알고 있냐는 듯이 묻는 것 같았다.
녹존은 귀찮다는 듯이 하나 밖에 없는 손을 들었다.
푹! 푸욱! 푹푹!
“끅.”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도망치지 못하도록 길목을 막고 있던 왈패 무리가 돌연 픽픽 쓰러졌다.
‘자, 잘못 걸렸다!’
우두머리의 낯빛이 백지장처럼 창백해졌다.
그는 흑도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만큼 눈칫밥이 상당했다.
얼른 도망치려고 몸을 움직이려 했으나, 이미 언제 나타났는지 모를 흑의인에게 잡힌 이후였다.
“저, 전부 말하겠습니다!”
무언가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낀 우두머리의 판단은 빨랐다.
“들을 것도 없지.”
녹존이 흥, 하고 코웃음 쳤다.
“저녁 시간 때쯤,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을 위해 상당한 재산을 비축한 학자풍의 중년을 털라 했나?”
‘……’
“어차피 종칠품 밖에 되지 않고, 그마저 관직에서 물러나 뒤탈이 없을 것이니, 안심하고 습격해서 재산을 약탈해 나누어 갖자고?”
마치 머릿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맞는 말이라서 뭐라 답해야할지 몰랐다.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머리를 굴렸다.
“됐다.”
“잠……”
서걱!
우두머리가 다급하게 무어라 말하려 했지만, 이어지지 못했다.
그 머리가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독 검토님.”
“됐다.”
“천기님.”
“그래.”
암천의 두뇌, 천기가 답했다.
“사주한 놈을 잡아옵니까?”
“아무리 직급이 낮아도 현직에 앉아 있는 관인을 건드리는 것은 성가시다. 내버려 둬라.
그것보다는 회주를 찾아뵙는 것이 먼저다.”
“존명.”
명시한 장소에 도착하니 선객이 있었다.
“요광.”
“천기인가.”
부복한 채 대기 중이던 요광이 일어났다.
“한림원 학자 행세를 그만두었다고 하던데, 그럴 필요가 있었는지 궁금하군. 이것저것 편하지 않았나.”
한림원은 임무가 임무인 만큼 황제나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지방 세력의 움직임도 알 수 있다.
종칠품인 검토로서 열람 권한은 낮아도 듣는 것이 많아지니, 이를 필두로 암천회로 따로 조사하면 된다.
“신분이 노출됐으니 별수 없다.”
천기가 이를 뿌드득 같았다.
“노출되다니?”
“보나 마나 천마, 개양이 주서천에게 패배하고 핵심 정보를 불었을 게 분명하다.
이 이상 한림원에 남아있는 건 의미가 없다.”
양날의 검 수준이 아니다.
손잡이가 없는 검을 쥔 채로 휘두르는 것과 다를 것 없었다.
괜히 마교와 협력하기를 꺼려한 게 아니다.
전장에서도 골칫덩이지만, 누군가와 대결해 패배하면 거리낌 없이 기밀에 준하는 정보를 말할 것 같아서였다.
“그런가.”
놀랄 만도 하지만 요광의 반응은 무덤덤했다.
“그러면 감숙성 도지휘첨사(都指揮왔事) 노릇도 여기까지군.”
“그동안 수고 많았다, 파군.”
감숙성 도지휘첨사, 파군.
육 척하고도 약 삼 촌 가량의 장신에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턱 선이 굵직하면서도 날렵한 미남이었다.
곧 쉰 살이 되나, 겉모습은 아직 서른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정갈한 무복 차림을 했는데, 척 봐도 날렵하고 탄탄한 근육을 지닌 걸 알 수 있었다.
머리카락은 전장에서 잡혀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한 것인지, 짧은 편이었다.
수염도 없었다.
그가 바로 칠성사의 병(兵)의 요광이었다.
참고로 도지휘첨사란 정삼품에 이르며 각 성마다 네 명이 있었다.
이들은 각기 관리(管理), 전비(戰備), 훈련(訓練), 둔종(屯種)을 담당했는데, 요광은 훈련을 담당했다.
평상시에는 북방의 오랑캐를 상대하기 위해 관군의 훈련을 맡은 무관이었다.
그러나 그 실상은 중앙정부의 눈을 피해서 관병을 지속적으로 빼내 칠성사병으로 만들어내는 물밑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음, 정보의 출처가 개양이라 한다면……”
“이 몸 또한 알려졌겠지.”
천기와 요광이 거의 동시에 부복했다.
“고개를 들어라.”
황제 못지 않게 화려한 의자 위.
“재미있지 않느냐?”
암천회주가 천기와 요광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무림맹주나 사도천주조차 회의 그림자조차 발견하지 못했거늘, 겨우 화산파의 사대제자 따위에게 회의 수뇌가 반절이나 당하다니 말이다.”
결코 재미 있지 않았다. 그 누구도 웃을 수 없었다.
천선을 시작으로 천권, 도감부장, 개양이 순차적으로 당했다.
칠성사와 도감부를 합해 네 명이었다.
“그뿐만 이겠느냐. 정파는 물론이고 사파 또한 어떤가.
웬 은거고수가 나타나서는 깽판을 쳐놓았지.”
패륜아, 담리백의 반란.
그러나 그 반란은 보기 좋게 실패로 돌아갔다.
사도팔문이 반으로 토막 났으나, 그래도 계획된 것에 비해선 피해가 크지 않았다.
원래라면 사도천주와 그 외의 전력 역시 큰 피해를 입었어야만 했다.
“……”
암천회주의 입가에 희미하게 맺히던 웃음이 지워졌다.
예전이라면 여유를 잃지 않았어야 할 얼굴이 걸레짝처럼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표정에 묻어나는 감정은 분노와 치욕이었다.
수면 아래에서 몸을 숨기고 중원무림을 지켜보던 암천회가 타인에 의해서 수면 바깥으로 튕겨졌다.
약간의 실마리조차 용서하지 않던 암천회주다.
그러나 천마를 굴복시키기 위해 직접 나서야만 했다.
천마가 뇌가 근육만 가득한 머저리였다면 또 모르겠지만, 그게 아닌지라 정체가 밝혀질 수밖에 없었다.
또한 마교라는 단체를 움직이고, 무림을 원활하게 정복하기 위해서는 몇몇 기밀을 알려줘야만 했다.
입회가 늦어지고 신뢰하기도 애매했던 개양이 주요 정보를 알고 있던 연유였다.
그러나 결과가 이렇게 될 줄은 알았겠나.
“됐다.”
구름이 걷히면서 달이 머리를 내밀었다.
달빛이 내리쬐면서 암천회주를 밝혔다.
암천의 지도자의 얼굴은 위엄 있었다.
굵직굵직하고 시원하게 뻗친 눈썹은 용미와 같았고, 세월의 풍파의 흔적이 남겨진 피부는 거칠지만 이렇다 할 잡티는 없었다.
두툼한 입술에선 고집이 느껴지고, 콧날은 베일 것처럼 매서웠다.
목선을 타고 어깨에 살짝 닿는 검은 머리카락은 뒤로 넘겼는데 널찍한 이마에서 사내다움이 느껴졌다.
“도찰원(都察院) 손영관(遜嘉貫)으로서의 삶도 끝이다. 앞으로는 무림인으로서 나서주겠다.”
‘……’
“황궁무고에서 쓸 만한 것들을 가지고 나오겠으니, 전쟁의 준비를 하도록 하라.”
“존명.”
“한림원 검토 녹촌, 감숙성 도지휘첨사 파군, 도찰원 경력 (經歷) 손영관……!”
남궁위무가 신음 섞인 한숨을 토해냈다.
“천기나 요광이야 그렇다 쳐도, 암천회주의 정체는 예상외로군. 비록 직접 보진 못했으나 천마를 굴복시켰다고 해서 도독(都督) 정도 되는 대장군이나, 혹은 절대 권력의 황자라도 되는 줄 알았는데……”
도독이라면 오호도독부의 정 일품에 해당하는 최고 군직의 대장군이다.
“도독이었다면 도리어 의심과 경계가 심해 운신에 훼방이 됐을 겁니다.”
제갈상이 설명했다.
도독은 군대를 얼마든지 동원할 수 있는 지위다.
최고 군직인 만큼 경계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황권뿐만 아니라 관료 모두에게 견제받는 수준이었다.
애초에 황제의 숙청에서 벗어나고 숨기 위한 암천회가 도독 정도 되는 관료를 데려올 리는 없었다.
“황자도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현 황제는 조카의 피로 제위에 오르자마자 그 관계자를 숙청했지요.
자식들의 경우에는 암천회의 발회 시기를 생각해 보면 나이가 어린 편입니다. 또한 계승권 다툼으로 주목을 받을 터이니, 이 역시 맞지 않지요.”
황제의 자식으로서의 삶은 생각보다 잔혹하다.
황위에 뜻이 없다 할지라도,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황태자가 즉위한 뒤 숙청을 행하는 건 흔했다.
“그에 비해 도찰원은 최적의 선택입니다.
손영관, 암천회주의 관직인 경력은 비록 종육품밖에 되지 않으나 감찰기관인 도찰원의 기록을 담당하는 관리이니까요.”
도찰원은 감찰이나 혹 관리의 임무수행능력을 평가하다 보니 타 관청에 비해서 권한이 높은 편이었다.
설사 직급이 위여도 도찰원 소속이라는 걸 들으면 저자세로 나오거나 바짝 긴장하곤 했다.
“과연, 기록을 담당한 관리라면 감찰어사에게서 황제에게 보고되거나 혹은 조사 중인 정보를 약점 삼아서 이것저것 이용할 수 있었겠군.”
남궁위무가 호오, 하고 감탄을 흘렸다.
“경력 위로도 정이품의 도어사(都御司), 정삼품의 부도어사(副都御史), 정사품의 첨도어사(致都御史)가 있으나 이들은 도독만큼 궁의 내부에서도 권세가 강하고 정치판에 깊게 끼어 있으니 방해였을 겁니다.”
제갈상이 말을 끝내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급습하고 싶군.”
남궁위무가 아쉬운 듯이 입맛을 다셨다.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상황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천기는 한림원을 나와 행방불명됐고, 도지휘첨사인 요광의 경우 얼마 전 도지휘사가 낙마로 사망하여 경계가 심합니다. 도찰원은 말이야 할 것도 없는 데다가…… 무엇보다 지금쯤 신상이 알려진 것이라 예상하고 활동하고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