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九章 (166/254)

최근에 들어서는 이의채는 상왕이라 칭해진다.

상단의 몸집이 커진 이후로 여러 사업을 성공시켰으며 이름난 상단을 인수해 능력을 인정받았다.

주서천이나 무곡의 훈련으로 단련된 금의검문이 표국을 대신해 준 덕에 상품의 손실도 없어 손해도 줄었다.

표국을 따로 이용할 필요가 없어 지출도 줄었다.

게다가 무곡이 간간이 상단의 적이나 골칫덩이를 해결해 주니 딱히 문제가 없었다.

무엇보다 주서천 덕에 무림맹을 비롯한 명문지파의 교역이나 지역 상권을 독점하다시피 한 게 컸다.

또한 정혈대전 이후로 무림맹이 어려워지자 무상으로 해 주거나 혹은 값싸게 도와준 적도 있어 호의를 살수 있었다.

“전에는 돈에만 환장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인 것 같네.”

“그래. 무림맹이 어려울 때마다 도와주지 않나.”

그렇지 않아도 최근 상계를 주름잡으며 정파무림에서도 지지를 받기 시작한 금의상단이었는데, 검마가 활약해 주니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었다.

금의검문 또한 주서천이나 무곡이 방문해 임시 교두로서 활동한다는 소문이 돌자 방문자도 급증했다.

그 외에도 최후에 목숨을 걸고 시간을 끌려던 지일광 등의 활약이 밝혀져 명성을 드높이기도 했다.

한편, 현 무림에서도 특히 소란의 중심 인물인 주서천은 지휘 막사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천마에게 승리한 뒤, 회귀의 부작용 탓에 거의 쓰러지듯 잠들어 주변인들에게 걱정을 끼쳤으나, 푹 자고 일어나 최적이라 할 정도로 몸 상태가 좋아졌다.

참고로 정마대전이 끝난 뒤, 부상자를 모아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통째로 빌린 인근의 마을을 거처 삼아 휴식을 취하게 했다.

다만, 며칠이 지났음에도 주서천은 방문자를 극히 제한한 채 방 밖으로나가지 않고 박혀 있었다.

“주서천 대협께선 괜찮으신 거요?”

“제가 대협을 위해서 약을 가져왔소.”

“한 번만 보게 해주시오.”

“우리 대협 어떻게 해……”

“누가 누구 대협이니?”

“흐아앙, 주 가가!”

“가가? 이 미친 것이?”

주서천의 거처 앞으로 수백 명이 모였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 매일매일 수백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마교가 패퇴하고 무림맹이 승리하자, 곳곳에서 기회를 노리던 이들이 몰려들어 축하 인사를 걸어왔다.

속셈이 뻔했으나 구원 물자도 가져왔는지라 대놓고 욕할 수는 없었다.

“상천칠좌가 되니까 주목이 보통이 아니로군.”

패신군이야 워낙 인상이 험악하기도 하지만, 함부로 접근할 수 없는 분위기를 내서 귀찮음을 피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선망과 존경을 받는 검신의 경우에는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다.

예전에는 이런 자리를 부러워하곤 했는데, 정작 당사자가 되니까 좋은 것만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해야 할 일이 많다.’

머릿속으로 천마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목숨이 끊기기 전, 천마는 승자에 대한 보상이라며 암천회에 대해서 축약해 알려 주었다.

수뇌인 개양이 직접 알려준 만큼 정보의 질이 보통이 아니었다.

‘암천회도 암천회지만, 따로 우선해야 할 일이 있다.’

주서천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정마대전은 끝났지만, 모사인 제갈수란이 할 일은 많다.

마교의 잔당을 소탕도 해야 하고, 그 외에도 전장에 남아 시신의 회수라거나 혹은 백성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야 했다.

또한 현장의 지휘관으로서 보고도 따로 해야만 했다.

참고로 모사미봉도 정마대전으로 명성을 떨쳤다.

이제 여인이라며 무시하는 사람은 없었다.

비록 일차 격돌 시에 뼈아픈 패배를 맛보았지만, 그래도 그 후로 적절한 판단과 지휘로 무인들에게 인정받았다.

“최근, 모사의 표정 변화가 참으로 재미있구려.”

은하노사가 허허 웃으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

제갈수란이 문서 위에서 놀리던 붓을 멈췄다.

무슨 말을 하냐는 듯, 그녀의 얼굴에는 의문이 묻어났다.

“검룡, 아니. 검신의 생존 소식을 들었을 때는 사모하는 이가 살아 돌아온 것처럼 기뻐하시더니만, 그가 거처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소문을 듣자마자 안절부절 못하며 걱정하는 모습이 참으로 신선하오.”

은하노사가 재미있다는 듯이 짓궂게 웃었다.

평소에 워낙 무표정하고 웬만한 일에도 놀라지 않는 모사다.

지금도 그렇지만 첫 만남에는 워낙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아 사람보단 인형에 가까웠다.

그러나 결코 인형 같은 게 아니었다.

시간을 보내보니 그저 감정 표현에 서툰 것이란 걸 알게 됐다.

또한, 주서천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보이는 반응이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

아무렇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귓불이 불그스름해진 걸 보니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영웅이자 상천을 만나려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다 보니, 그 탓에 지금쯤 꾀병을 부리고 있는 것일거요. 그러니 모사께선 걱정할 것없소.”

은하노사는 제갈수란을 안심시키려는 듯이 말했다.

그러나 정작 제갈수란은 어떠한 대꾸도 하지 않았다.

멈췄던 붓을 움직이며 글을 써내려 갈 뿐이었다.

표정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늙은이의 짓궂음에 당황하지도 않았고, 반발하지도 않았다.

자칫 잘못하면 무례하게 비쳐질지도 모습이다.

그러나 그녀가 공적일 때를 제외하곤 별말을 하지 않는 성격이란 걸 잘 알고 있어 별로 개의치 않았다.

제갈수란은 다시 산더미처럼 쌓이려는 서류 더미에 집중했다.

이상하게도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주 공자가…… 지금쯤, 잘 쉬고 있으려나?’

주서천은 몰래 거처를 빠져나왔다.

혹시라도 도중에 사라진 것이 알려져 소란을 일으키지 않도록 밖의 무사들에게 출입을 통제시켰다.

어차피 하루 이틀 정도 밖에 되지 않으니 괜찮다.

“좋아. 일단 복수를 한다.

문어 대가리…… 아니, 파계승을 쳐 죽인다.’

무림맹이 머무르는 마을에서 동쪽으로 한나절 정도 경공으로 달리면, 한적한 산이 나온다.

주서천은 산 중턱에 앉아 검을 이리저리 살피면서 홍고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홍고를 이대로 내버려 둘 수 없다.’

아무리 소림사 인재를 무수히 배출시키고 훗날 암천회주와의 결전에서 활약해도 눈감아 줄 수 없었다.

아니, 이제 와선 그러한 미래가 펼쳐질지도 의문이었다.

지금에 와선 너무나도 많은 것이 변했다.

홍고는 신권이 아닌 미쳐버린 땡중에 불과하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여러모로 맛이 가버렸다.

아무리 소림을 위해서라고 해도 그렇지 제 사부를 죽이는 패륜을 저질렀다.

심지어 암천회와 결탁하지 않았는가.

정파를 배신한 것이나 다름없으니 더 이상 간과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홍고의 악행에 대해 모든 걸 알고 있는 날 내버려 둘 리 없으니까.’

그래서 어제 저녁 복귀한 소령을 통해 몰래 만남을 원한다고 서신을 보냈다.

만약 오지 않는다면 검신의 이름을 내세워 진실을 밝힐 것이라 협박했으니 거절하지 못할 것이리라.

쐐—액!

팔짱을 낀 채로 잠시 상념에 잠겨있을 때, 대기가 찢기는 소리가 나면서 이윽고 폭음으로 바뀌었다.

쿠웅!

아름드리나무 한가운데에 구멍이 났다.

족히 수십 년 정도는 될 법한나무가 옆으로 기울여 쓰러졌다.

처참한 몰골로 옆으로 쓰러진 나무를 본 주서천의 표정은 북풍한설이 불 듯 몹시 차가웠다.

파바바밧!

정면과 측면에서부터 권격이 빗발치듯 쏟아진다.

공격 하나하나에 강기를 실어 대기가 다 떨렸다.

스릉!

허리춤에서부터 용연이 매끄럽게 빠져나왔다.

검신이 햇빛을 반사하기도 전에 신속하게 권격을 쳐냈다.

쿠우웅!

권격에 실린 공력이 보통이 아니다.

웬만한 고수도 모골이 송연할 정도의 위력이었다.

검에 부딪칠 때마다 그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졌으나, 주서천은 물러서기는커녕 흔들림 하나 없었다.

손목을 까딱이고, 팔을 성실하게 움직이는 것만으로 공격을 하나도빠짐없이 막거나 튕겨냈다.

“인사치곤 과하지 않나.”

주서천의 매서운 눈매가 정면을 향했다.

“홍고.”

현 소림방장, 홍고가 반장한 채 모습을 나타냈다.

“살아 있었구려, 주 시주.”

어떠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

부처의 자애 따윈 조금도 묻어 있지 않았다.

승려라기보다는 칼처럼 예리한 검수인 양 느껴졌다.

“천하의 소림 방장께서 기습을 가하다니, 너무한 거 아니요?”

주서천은 홍고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농을 섞어 던졌다.

그러나 그 분위기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야심한 시간이다 보니, 혹여나 음기에 이끌려 온 귀신이 아닌가 싶어 확인 차 날린 것뿐이외다.”

“귀신은 그렇다 쳐도, 사람이라면 어찌할 뻔했습니까?”

“사람이라면 주 시주일 것이 뻔하고, 이러한 공격은 가볍게 쳐낼 것이니 상관없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이렇게 멀쩡하시지 않았습니까?”

“허어, 과연 소림방장. 그 혜안에 몹시 감탄하는 바입니다. 그래서 직접 제 사부를 죽인 거요?”

말을 끝낸 순간, 이 일대를 집어삼키는 진득한 살의가 느껴졌다.

얼마나 대단한지 주변의 화초가 머리를 숙이고 동물과 곤충 할 것 없이 달아나 도망쳤다.

홍고의 얼굴은 물론이고, 목 밑까지 격양된 감정 탓에 붉으락푸르락해졌다.

피부 위로 퍼런 핏줄이 툭 튀어나왔고, 손에 쥔 염주 알이 부들부들 떨렸다.

표정은 참혹히 일그러졌다.

“긴말하지 않겠다, 파계승.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고 있느냐?”

주서천은 홍고의 살기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사문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네놈은 터무니없는 짓을 했다. 전대 방장이며 스승을 죽였을 뿐만 아니라, 암천회와 결탁해 무림맹의 정보를 팔아 넘겼다.”

“……소림을 위한 일이었소.”

“소림을 위해서였다고?”

주서천이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그대 역시 그 자리에 있었으니 잘들었을 거 아니오.”

홍고는 차가운 눈으로 주서천을 쏘아붙였다.

“철권마, 방불통. 그 마두를 놓아주었다면 소림은 연달은 실패에 비웃음당하고 무시 받았을 것이 분명하오. 이를 시작으로 도태되고, 결국은 쇠락……”

“그 더러운 입 다물어라, 홍고.”

주서천의 차가운 목소리가 홍고의 말을 잘랐다.

“뭐라고? 도태되어 쇠락해? 소림을 위해서라고?”

어이없다는 듯이 흘러나오는 헛웃음.

“헛소리하지 마라.”

주서천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 어떠한 이유를 갖다 붙여도 네가 저지른 짓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악행이다.”

“소승의 말이 틀렸다는 거요?”

홍고가 눈을 부릅뜨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친 자가 아닌 이상 누가 그 말에 공감하겠나.”

주서천은 냉소 짓곤 그 다음 말을 이었다.

“확실히, 홍고 네놈이 말한 대로 철권마를 그대로 놓아주었으면 소림사는 우습게 보였을지 모른다.

무림이란 어떤 곳보다 은원을 중시하는 곳이며, 또한 그로 인해 돌아가는 곳이니까.”

은혜와 원한.

현생은 물론이고 전생의 경험을 통해 그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사사로운 감정 하나로 전장의 판결이 뒤바뀐 적도 몇 있었다.

중요한 작전 도중 복수에 눈이 멀어 차질을 빚게 한 사람도 있었고, 반대로 과거의 행동 덕에 빚을 갚는다면서 생각지도 못한 도움을 준 이도 있었다.

정파와 사파, 그중에서도 정파 무림의 경우 이로 인해 평가가 좌지우지되니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홍고의 말이 구구한 변명으로 느껴질지는 몰라도 사실 자체가 틀리지는 않다.

“그러나 그게 패륜을 저지르고, 사문과 정파를 속이고 배신한 행위를 용서해 주는 것은 아니다.”

“그뿐만이 아니오.”

홍고는 조금도 물러나지 않고 반박했다.

“철권마가 반성하고 용서를 구한 것이 거짓이라면, 소승의 행동은 옳은 거요. 애초에 대마두의 말 따위를 믿는다니, 그게 어디 얼토당토 않은 말입니까?”

철권마, 방불통.

종전한 후에도 그에 관한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사대호법 중 유일하게 생포한 서패호법을 고문해 보며 추궁해 봤으나 ‘모른다.’라는 대답 밖에 없었다 한다.

사실 이 또한 흑영부 관할이다 보니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었다.

당명인의 손이 닿았을 확률이 컸다.

반대로……

쐐애액!

홍고가 말을 잇지 못하고 반사적으로 주먹을 아래에서부터 위로 올려쳤다.

눈동자에 검신이 맺혔다.

째앵!

목을 노리고 파고든 검이 주먹에 맞고 위로 튕겨 나갔다.

검신이 달빛이 뒤섞인 서슬 어린 빛을 내뿜는다.

홍고가 눈동자를 바삐 굴렸다.

다음으로 들어올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서 시선을 검에 집중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올바른 대처다.

그러나 예상 자체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커허억!”

퍼어억!

주서천의 주먹이 홍고의 턱에 제대로 꽂혔다.

예상치 못한 공격이었다.

시선이검에 집중된 사이 사각을 노렸다.

그것도 검이 아닌 주먹을 택했다.

화산파의 제자라면 검수.

별호 또한 검신이 아닌가.

설마하니 일권을 내지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홍고의 몸이 공중으로 붕 떴다가 지면에 처박혔다.

“헛소리하지 말라 하지 않았나.”

주서천이 싸늘한 눈길로 홍고를 내려다봤다.

“어쩌다 이렇게 미쳤나, 신권이여.”

홍고는 한때 희망이고, 우상이었다.

화산파의 혼한 제자인 주서천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신권 덕에 훗날 소림사는 여러 인재들을 배출하여 보다 많은 사람들을 돕고, 구원하는 결과를 낸다.

또한 암천회주와의 결전에서도 목숨 걸고 치명상까지 입히는 쾌거까지 이루었다.

영웅 중의 영웅이었다.

그래서 전에 봤을 때 성정이 영 좋지 않아도 분명 나아질 것이라 믿고 존중해 줬다.

또한 걱정해 줬다.

또한 괜한 간섭으로 신권의 운명이 뒤바뀔 것이 마음에 걸려 그냥 내버려 두기까지 했다.

“흐……”

홍고가 불길한 웃음을 흘리면서 몸을 일으켰다.

그 목소리가 몹시도 음산했다.

“그래서, 소승을 죽이기라도 할 생각입니까?”

“……”

“그대가 정말로 무림의 평화와 안녕을 걱정하고, 암천회를 무너뜨릴 생각이라면 소승을 죽여서는 아니되오. 아니, 반목을 일삼는 것 또한 피해야 하지요.”

무승의 안광이 음험하게 빛났다.

“무림맹. 아니, 현 무림은 앞으로의 싸움에 중소문파의 힘 하나 아까워할 정도로 여력이 부족하오.

그런 와중에 소림 방장이 일 년도 채 되지 않아 입적한다면, 소림은 물론이고 정파 무림은 전례 없는 혼란을 맞이할 거외다.”

북두소림, 천년소림은 괜히 있는게 아니다.

비록 신승이 입적하여 절대고수를 잃었다고 할지라도, 그 명성이나 저력은 여전하다.

정마대전에서의 활약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소림의 나한을 비롯한 무승은 정말로 강했다.

정파의 기둥이라거나 희망이라는 말은 헛말이 아니다.

소림이 무너지면 정파 무림의 불안도 급증할 터.

“걱정하지 마십시오.”

홍고가 주서천에게 다가가 옆에 멈춰 섰다.

“필요로 인해 잠시 협력했을 뿐, 더 이상 그들과 손을 잡을 생각은 없습니다.”

홍고는 진심이었다.

“암천회처럼 불온한 세력이 무림정복을 하도록 내버려 둘 생각은 없습니다.

의심이 간다면 감시를 붙이든 말든 마음대로 하십시오.”

‘얼마든지 죽일 수 있는데도 죽이지 않았다.

내가 방장인 이상, 주서천은 나를 죽일 수 없다.’

이는 확신이었다.

홍고는 정말로 더 이상 암천회와 손을 잡을 생각이 없었다.

그의 삶의 가치는 소림의 번영에 있었다.

반대로 암천회를 발판으로 삼아서 무림의 위기를 구원해 소림을 고금제일의 문파로 만들 생각이었다.

“살다 보면 어쩔 수 없는 경우란 게 있지 않습니까.

소승이 그랬던 것처럼, 주 시주께서도 그런 경우일 뿐입니다.”

주서천은 영웅이다.

힘만 앞세우는 치기 어린 영웅이 아니라, 현실을 아는 진정한 영웅이었다.

그렇기에, 무림을 위해서라도 방관자가 되어야 한다.

홍고는 손에 쥔 염주 알을 엄지로 굴리곤, 주서천의 옆을 지나쳤다.

그리고 다음 발을 내디딘 순간.

“커허억!”

홍고가 피를 울컥 토해냈다.

그 얼굴은 걸레짝처럼 일그러졌고, 눈에는 불신과 경악이 맺혔다.

“이, 이게 뭔……!”

믿을 수 없는 눈으로 아래를 내려다봤다.

흉부를 꿰뚫고 나온 검이보였다.

“왜, 소설처럼 무슨 대단한 종막이라도 맞이할 줄 알았나?”

“어, 어째……서……?”

“근시일 내 무림맹에서 어떠한 공표가 있을 것이다.”

주서천은 홍고의 답변을 듣지 않고 말을 이었다.

“신승의 제자, 현 소림 방장 백보권승의 암살 사실과 그 흉수, 암천회에 대해서다.”

“……!”

“홍고, 네놈의 말에도 확실히 일리가 있다.

이 전란에서 소림 방장이 연달아 입적한다면 무림은 혼란에 맞이하겠지.”

“그럼, 왜……!”

“소림을 믿으니까.”

주서천이 고민하지 않고 답했다.

“소림사는 유구한 역사 속에서 정파의 태두로서 수많은 일들을 해왔다. 신승께서 그래 왔던 것처럼, 불법을 전파하고 자비를 베풀어 수많은 사람들을 구했다.”

소림사가 괜히 존경을 받는 것이 아니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주서천이 힘을 주며 검을 비틀었다.

“커헉!”

“신권. 아니, 미친 중이여.

그대의 잘못은 소림을 믿지 못하고 저버린 것이다.”

홍고는 팔을 들었다.

굳은살 가득한 손으로 흉부에 꽂힌 검을 잡으려 했으나, 결국 잡지 못했다.

목에서부턴 피가 들끓었고, 폐는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찢어질 듯이 아파왔다.

툭. 투둑.

손목을 휘감은 염주가 끊어지면서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졌다.

“…… 흉…… 를……”

회광반조(回光返照).

숨이 끊어지기 전 그 눈은 어떠한 빛보다 더한 열망으로 빛났다.

숭산을 향하는 그 눈에는 죄책감이나 분노 등이 아닌 미련 밖에 없었다.

홍고는 없는 힘까지 쥐어짜내 주먹을 휘둘렀다.

“후우웁!”

푸화악!

최후의 저항은 아니었다.

홍고는 미치기라도 한 것인지 제 가슴에 꽂아 커다란 구멍을 냈다.

“흉수를…… 명확…… 히…… 하십시오……”

홍고가 힘없는 발걸음을 내딛는다.

검이 빠져나오면서 처참하게 찢겨진 내장이 후두독 떨어졌다.

그 뒷모습에서부터는 어딘가 모를 광기가 느껴졌다.

“……소승의…… 죽음……을……이용해…… 소림을……”

다음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아직까지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홍고의 최후였다.

‘미친놈.’

주서천은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 *

바야흐로 현 무림은 격동의 시대이다.

오늘날처럼 무림사에 남을 만한 시대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백보권승이 죽었다!”

“아니, 소림에 무슨 악운이라도 낀거요?”

“소림사라기보다는 정파가 아닌가?”

“정마대전이 끝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허어, 이 무슨 비극인고……”

정마대전의 활약으로 기뻐하기도 잠시, 소림사는 방장의 입적으로 또다시 시련을 겪게 된다.

“방장 사형!”

“나무아미타불……”

소림사는 물론이고 정파 무림이 비통에 잠겼다.

홍고는 미쳐 있었으나, 짧은 시간 동안 소림사를 위해서 다방면으로 노력하여 평이 나쁘지 않았다.

괜히 다음 대 방장으로 추대된 게 아니다.

내부에서야 두말할 것도 없었고, 외부도 그럭저럭 좋았다.

사실 무림 세력에 한해선 사문에 대한 자부심으로 인한 무례한 언사 탓에 평이 그다지 좋진 못했다.

그러나 그 외, 특히 백성들에겐 인기를 자랑했다.

홍고는 소싯적부터 마두나 도적의 토벌과 구휼을 중시했다.

그가 방장이 된 이후로는 더더욱 늘어났다.

소림을 향한 평이나 명예를 중시한 탓이었다.

그 덕에 백성들의 지지와 존경을 받을 수 있었다.

‘미치지만 않았더라면……’

그래서 일부러 진실을 숨겼다.

사문을 비롯한 백성들에게 지지와 존경을 받던 위인이다.

그것도 다른 누구도 아닌 소림사 방장이다.

홍고가 말했던 대로, 진실이 밝혀진다면 그 후폭풍은 결코 버텨낼 수 없을 것이다.

‘정말로 어쩔 수 없는 일이야.’

그 광승(狂僧)이 영웅으로 남는 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소림사와 무림을 위해서라도 숨겨야만 했다.

“그나저나, 백보권승이면 그래도 천하백대고수가 아닌가. 흉수가 대단한가 보지?”

“아직 정마대전의 뒷정리 도중이라고 했는데…… 마교인가?”

“아닐세. 내 듣자하니 암천회라 들었네.”

“암천회? 또 뭔 헛소문을 듣고 온 건가?”

얼마 지나지 않아 무림맹과 사도천에 서신이 도착한다.

각각 검신과 패신군의 이름으로 된 서신이었다.

‘암천회의 공표를 준비할 것.’

무림맹과 사도천은 기다렸다는 듯이 움직였다.

일단은 물밑 작업을 위해서 소문을 퍼뜨리는 데 집중했다.

갑작스레 공표하면 혼란만 부추길 뿐이다.

“무림의 불온한 세력에 대해서 알고 있나?

그들은 몇십 년 전부터 무림을 정복하기 위해 준비했다 하네.”

“삼 년 전, 혈근경을 둔 전쟁이 있지 않았나.

그래, 그 칠검전쟁 말일세. 듣자하니 내막이 있다더군.”

“내막? 무슨 내막?”

“그, 있지 않는가. 암천회라고.”

“암천회? 참 나, 자네 그따위 헛소문을 믿는가?”

“솔직히 나도 긴가민가했는데, 그에 대한 소문이 한두 가지가 아닐세. 듣자하니 무림맹과 사도천 내부에서도 그들의 이름이 몇 번이나 거론됐다고 하네.”

“그게 정말인가?”

“사돈의 팔촌에게 들은 것이니 분명하네.

어쨌거나, 칠검전쟁의 원인이 된 혈근경이 사실은……”

과거에 화두가 된 대형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나왔다.

칠검전쟁부터 시작해서 사문반란, 그리고 정혈대전과 정마대전까지. 현 무림사에 남을만한 굵직굵직한 사건 중에서 암천회의 이름이 거론됐다.

처음에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

강호의 소문은 과장되거나, 신비성 없는 걸로 유명하다.

그러나 다른 곳도 아니고 출처가 무림맹과 사도천이라고 알려지자 그때부터 소문에 힘이 실렸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무림은 암천회에 대한 화제로 가득 찼다.

무림맹과 사도천, 그리고 흑도인 하오문까지 나서서 작정하고 퍼뜨린 소문이니 퍼지는 거야 당연했다.

암천회는 급속도로 퍼지는 소문을 어찌할 수 없는 건지는 몰라도, 딱히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무림 전역에 암천회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자, 무림맹과 사도천은 거의 동시에 암천회의 존재를 인정하고 공표한다.

“허, 참! 정말일 줄이야!”

“어디 소문이 한둘이었나.난 예전부터 예견했네.”

“칠검전쟁, 사문반란, 정혈대전, 정마대전!

무림의 사대세력이 전부 한곳에 놀아났다는 게 정말인가?”

“아직도 믿어지지 않아……”

무림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사실로 인해 받은 충격은 실로 헤아릴수 없을 정도였다.

어쨌거나, 이 충격적인 사실로 인해 무림은 격변을 겪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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