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八章 (165/254)

서-걱!

대마두의 생전의 마지막 말은 의혹과 경악이었다.

그 몸이 둘로 쩍 갈라졌다.

얼마나 깨끗하게 베였는지 피 한 방울 흐르지 않아, 마치 냉동고기 같았다.

“무슨!”

“허어!”

무림맹도 마교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전호마가 일검에……?”

천마에 가려져 있으나, 부교주 전호마도 무림에서 손꼽히는 고수다.

천하백대고수 중에서도 최상위였다.

“저 대마두가 지쳐 있던 건가?”

“헛소리하지 말게. 난 저자가 나타난 것조차 보지 못했어.”

“도대체 뭔 일이 벌어진 거지?”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인지부조화까지 생겼다.

다들 당혹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허……”

주서천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

사실, 무곡의 실력은 소문으로만 들었지 이렇게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다.

역시 명불허전이었다.

대단한 초식을 펼친 건 아니다.

검에 무형의 강기를 두른 다음 단순히 휘두른 것에 불과했다.

아니, 단순하다는 말은 맞지 않다.

그 일검에는 무공의 극의를 넘어선 깨달음이 녹아 들어 있었다.

그 일검의 움직임은 군더더기 하나없이 깨끗하였고, 바람보다 빨랐다.

정말 세상을 자른 것 같았다.

파괴력만으로는 정사마 최고인 마교의 강기가 조금도 위력을 내지 못하고 베여서 흔적 없이 사라졌다.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검을 감상하고 놀라는 여유는 나중이다.

주서천은 고개를 젓고 등을 돌려 무림맹 측을 향해 소리쳤다.

“이분의 존함은 무곡이라 합니다!

실력과 신분은 이 주서천이 검룡의 이름을 걸고 보증하니, 정파의 동도들께서는 믿고 따라주십시오!”

주서천이 외치자 사람들의 눈빛이 변했다.

“검룡의 보증이라고? 그러면 당연히 믿고말고!”

“무곡? 혹시 금의상단의 무곡이면, 전광검귀가 아닌가. 그, 돈에 환장한……”

“어허! 분명 헛소문일 것이 분명할걸세.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저 주서천 대협께서 보증한다 하지 않나.”

“주서천 대협께서 저리 극진하게 대하는 사람은 별로 없소. 필시 대단한 무인이 틀림없을 거요.”

“그 부교주가 일검에 베이는 걸 보지 않았나?”

무림맹의 잔존한 무인들에게 있어 주서천은 단순한 영웅이 아니었다.

어떠한 희망도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을 타파한 구원자요, 포기한 목숨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었다.

설사 마두를 데려와서 아군이라 해도 믿을 기세였다.

“가자-!”

”와아아아!”

누군가가 고함을 내지르며 몸을 날리자, 그 뒤로 정파의 무인들이 함성을 내지르면서 따랐다.

마교 역시 부교주가 당하자 놀란 나머지 주춤거렸으나, 그것도 잠시였다.

들끓어 오르는 열기에 흥분했는지 만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최종전에 임했다.

한편, 주서천은 허리는 꼿꼿이 세우고 턱은 오연히 보이도록 살짝 들었다.

아무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허장성세였다.

‘제기랄 천기가 근처에 있을 텐데……’

시시각각 변하는 전황을 보다 확실하게 알 수 있도록 근처에서 보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마음 같아선 이 주변을 살살이 뒤지고 싶은데, 문제는 그만한 힘이 없다는 것이었다.

‘유령들을 데려왔으면 좋았겠지만……’

사정상 유령곡은 다른 곳의 일처리를 하느라 동원하지 못했다.

소령에게 부탁한다고 해도, 혼자로는 무리가 있다.

무엇보다 천기이니 붙은 호위가 보통이 아닐 터.

‘안 돼, 의식이……’

결국 서 있지 못하고 몸이 앞으로 기울여졌다.

툭.

“어……?”

넘어지려던 찰나, 누군가가 안아 몸을 지탱했다.

꺼져가는 의식을 가까스로 붙잡고, 희뿌옇게 일그러진 시야를 확인하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어서 와요, 사형.”

낙소월이 눈을 글썽이면서 환하게 미소 지었다.

주서천은 낙소월과 마주 봤다가, 이내 웃었다.

“다녀왔어.”

천기는 분노로 들끓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살아…… 있었다고……?”

저 가증스러운 얼굴을 모를 리 없다.

그럴 리 없다고 몇 번이나 현실을 부정해 보지만, 소용없었다.

생김새와 실력이 모든 것을 증명했다.

정파의 영웅, 검룡 주서천은 무공이 워낙 특징적이다 보니 사칭하려 해도 사칭할 수가 없었다.

현 무림에서 자하신공을 펼칠 수 있는 인물은 장문인 정휘련과 무공교두인 주서천 밖에 없었다.

화산오장로 역시 구결을 알고는 있으나 어디까지나 알고만 있을 뿐 운용은 불가능했다.

아니, 애초에 현 무림에서 천마를 정면승부로 이길 수 있는 자가 얼마나 있겠는가.

‘주서천! 주서천! 이 개새끼!’

화를 참으려고 해도 참을 수가 없었다.

혈압이 올라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오르고, 뒷목이 당겼다.

이는 뿌드득 갈리고 손은 어찌나 세게 쥐었는지 손톱이 살을 파고들면서 핏줄기가 주르륵 흘렀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남은 거지?’

오로지 한 사람을 죽이려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했다.

희생이나 손해를 감수해서라도 죽이려 했다.

심지어 웬만하면 나서지 않는 천추까지 꺼냈고, 몇 없는 비장의 독의 사용 허가까지 내렸다.

몇 번이나 경고하면서 확인 사살까지 요구했다.

마지막에 변수가 발생해 시신을 확인하지 못한 것이 찝찝했지만, 그천추가 중독까지 확인하고 심장을 꿰뚫었으니 신선이 와도 살리지 못할 것이라 말했다.

‘설마 천추와 홍고가 배신이라도 한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설명이 되지 않는다.

‘……’

천기는 가슴은 분노로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었지만, 머리는 그럭저럭 차가웠다.

전혀 예상치 못한, 황당한 경우임에도 전장을 살피며 머리를 굴렸다.

‘천추는 회에 등을 돌리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와 버렸다. 애초에 그자가 그럴 리가 없지만……’

그래도 완전히 배제하는 건 좋지 않았다.

만약을 위해 배신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다.

‘아니, 어쩌면…… 현경의 그 심상구현이라는 것일 수도 있겠구나.’

암천회주는 천기가 무도에 마음이 없다는 걸 듣고, 현경에 관해서 비교적 자세히 가르쳐 주었다.

만약 그가 무인이었다면 혹시 모를 경우를 대비하여 스스로 깨우치게 만드는 것이 좋았겠지만, 그것도 아니니 계획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되도록 알려주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아직 서른도 되지 않은 나이에 현경의 성취를 이룬다는 것은 말도 안되나, 

‘잠깐, 주서천이 남만에 다녀왔었지?’

천기는 도감부장이 불로불사의 영약, 구희의 신단을 확인하기 위해서 남만으로 떠났던 걸 떠올렸다.

‘설마 그걸 빼앗은 건가? 이런 개……’

무심코 욕설을 담은 고함을 내지를 뻔했다.

“주서천. 도대체 무슨 억하심정이 있다고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앞길을 막는 게냐.”

천기는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전생에 무슨 원한이 있다고……”

잔뜩 있다.

천기는 이를 뿌드득 갈면서 원망의 눈길로 주서천을 쳐다보다가, 시선과 함께 등을 휙 돌렸다.

“……돌아간다.”

뿌드득!

개양, 천마가 패배한 순간 승패는 결정됐다.

볼 것도 없이 무림맹의 승리요, 마교의 패배였다.

유일하게 통제할 수 있던 사람이 사라진 이상 마교는 암천회의 손길에서 벗어나 버렸다.

심지어 전광검귀, 무곡의 등장에 약간의 승산조차 사라졌다.

‘무곡……’

천기는 무곡의 이름을 머릿속에 새겼다.

그에 대해서 몰랐던 건 아니다.

도리어 잘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을 원수, 주서천에 대해 조사하다 보니 알게 됐다.

과거에는 회의 훼방이 된 금의상단의 주요 인물이다 보니 모를 리가 없었다.

하나 이 정도의 고수일 줄은 몰랐다.

천기도 부교주가 일검에 갈라지는 걸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또, 이렇게……”

정마대전을 성공하려 여러 손해를 감수했다.

무리수까지 던졌는데 결국은 실패로 끝났다.

천기는 걸음을 멈춰 서고 고개만 살짝 돌려 아쉬운 눈길로 주서천을 힐끗 살폈다.

사매의 품에 안겨 있는 그의 모습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얼굴에는 피곤이 가득하고, 안색은 파리했다.

처리하려면 지금이 호기였지만, 그러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

‘곧 있으면 도주한 본대가 무당파와 합류해 돌아올 시간이니 섣불리 접근할 수가 없다. 별수 없군.’

그의 주변에 매화검수를 비롯한 몇몇 고수가 보인다.

저곳을 억지로 돌파하기에는 힘들다.

호위와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준비한 칠성사병들을 보내기에는 위험성이 너무 컸다.

‘두고 보자, 주서천!’

천기는 나중을 기약하며 몸을 완전히 돌렸다.

그리고 약 이각 뒤, 예상한 대로 무당파와 합류한 무림맹이 도착한다.

“으음?”

“이게 어떻게 된……”

약 반 시진 전, 근방에서 대기 중이던 무당파는 도망치듯 달려온 본대를 보고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는 걸 깨달았다.

아니나 다를까,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상황은 최악이었다.

그래서 제갈수란에게 방향과 길만 대충 듣고, 경공에 능한 정예들만 따로 빼서 다급히 달렸다.

발에 불이 나도록 경공을 극성으로 펼친 덕에 생각보다 빨리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죽여라!”

“비켜!”

“아아악!”

무림맹은 인원은 천여 명이나, 부상자까지 합하면 실질적인 전력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에 비해서 마교는 숫자로도 우위에 있었고 무림에서도 내로라하는 마두도 많이 남아 있었다.

누가 봐도 무림맹이 위기에 빠져 밀려야 할 상황이었는데, 직접 보니 그렇게까지 심각하진 않았다.

무림맹은 마교에게 안정적으로 대응하고 있었다.

“이제 이 북사호법, 아니! 엄구유가 교주다!”

엄구유가 잘린 팔을 적당히 붙이며 외쳤다.

‘아차, 이럴 때가 아니다.’

당황하기도 잠시.

얼른 도움을 주기 위해서 몸을 날렸다.

소맷자락이 바람에 휘날리며 펄럭였다.

허리춤에서 뽑아든 검을 꼬옥 쥔채 달려 나가 앞에서부터 덮치려는 순간, 보다 재빠른 공격이 있었다.

“돕겠……”

서걱!

엄구유의 머리가 반으로 쪼개졌다.

목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이마에 선이 그어지더니 잘려버렸다.

수평으로 깔끔하게 잘려져 그 안의 뇌가 보였다.

불마공의 유일한 약점은 뇌다.

뇌가 파괴되면 죽는다.

복사호법, 엄구유의 허무한 죽음이었다.

“흠.”

무곡이 무표정으로 검을 빙글 돌려 고쳐 잡았다.

“허어……?”

졸지에 닭 쫓던 개 신세가 된 무당파의 고수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정신 팔려 있을 때가 아니다!”

태극검, 운광이 어리둥절한 무당파의 제자들을 보고 으름장을 놓았다.

“태극검이다!”

“지원이다!”

여기저기서 환희에 젖은 외침이 터졌다.

몇몇은 긴장이 풀렸는지 제자리에 주저앉는 사람도 있었다.

그 틈을 노리는 마교도가 있었으나, 근처의 동료가 도와줬다.

“정신 차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죽어랏!”

“사형제의 복수!”

여기저기서 고함과 비명이 난무했다.

“제, 제기랄……”

사대호법 중 유일한 생존자, 동환호법 귀소환마가 주춤거리면서 도망칠 궁리를 했다.

‘도망쳐야 한다!’

마교도라고 도주가 없는 건 아니다.

짐승도 위기를 감지하고 승산이 없다는 걸 깨우치면 도망치기 마련이다.

마교 역시 마찬가지였다.

귀소환마는 주변의 눈치를 보다가, 마교의 군세가 눈에 띄게 사라지자 냅다 등을 돌려 도망쳤다.

그를 시작으로 아직 마성에 완전히 물들지 않거나, 혹은 고통으로 정신을 차린 마교도의 탈주가 시작됐다.

힘의 정점을 비롯해 지휘할 사람들이 없으니 통제가 될 리 없었다.

결국 약 반 시진 뒤, 삼천에 이르는 마교도는 풍비박산이 나 꽁지 빠지게 도망쳤다.

“우와아아아!”

“이겼다아!”

“무림맹의 승리다!”

그렇게, 수많은 희생을 낳은 정마대전이 끝났다.

홍진은 감격에 겨운 얼굴로 눈물을 흘렸다.

“나무아미타불.

그야말로 부처님께서 도우신 것 같습니다.”

천만다행이었다.

최악의 결과는 피했다.

천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희생양으로 삼은 이후로 마음이 쭉 불편했다.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그래서 누구보다 빠르게 달려왔다.

제발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살아있기를 바랐다.

“심지어 검룡 대협이 살아 있지 않았습니까.

그야말로 기적이 따로 없……”

홍진은 말을 잇지 못하고 흠칫 놀랐다.

눈앞의 홍고에게서 불길한 기색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사…… 형……?’

홍진은 차마 홍고를 부르지 못했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살의는 보통의 것이 아니었다.

쿵쿵.

가슴이 불길하게 뛰었다.

하마터면 손이 나갈 뻔했다.

아무리 무승이라하지만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살기는 그 범주를 벗어나, 너무나도 불길했다.

“……”

홍고는 아무 말 없이, 그저 굳게 다문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다만 얼굴을 참혹하게 일그러뜨렸다.

마치 악귀나찰과도 같아서, 만약 그 표정을 보았다면 무심코 헉 소리를 내며 놀랐을 것이다.

“아……”

지축이 뒤흔들린다. 지진이 아니었다.

후에 도착한 본대와 함께 터뜨리는 함성이었다.

기뻐서 웃는 사람, 우는 사람이 있다.

슬퍼서 우는 사람, 소리치는 사람이 있다.

지쳐서 잠든 사람, 붕괴된 사람이 있다.

끝까지 검을 쥐고 죽은 사람이 있다.

사형제와 전우를 껴안고 침묵한 사람이 있다.

그 사이에서 주서천은 눈을 감았다 떴다.

그다지 푸르지 않지만, 그래도 어둡지 않은 하늘 아래, 무림맹의 깃발이 펄럭이는 것이 보였다.

“억.”

잠시 감상에 젖어 있으려던 찰나, 등 뒤에서 누군가가 껴안았다.

무슨 일인가 하고 몸을 돌리려 하던 찰나, 허리를 휘감은 손이 올라와 고개를 붙잡고 억지로 꺾었다.

시선이 정면으로 돌아가니,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는 낙소월이 보였다.

“눈치 없게 누구인지 물어보지는 마세요.

그리고 조금 질투 나긴 하지만, 이번에는 양보할게요.”

꼬집, 고개를 튼 손이 뺨을 마구 잡아당겨 왔다.

주서천이 괴롭다는 듯이 소리를 질렀지만, 손을 억지로 떨어뜨리진 않았다.

등이 축축하게 젖으면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와서, 어찌할 줄 모르고 그냥 한동안 서 있었다.

그 대신, 당혜의 손등을 가볍게 토닥여 주었다.

정마대전 종전 소식이 무림에 퍼지고 얼마 뒤.

상천칠좌는 여전히 칠좌로 남았다.

천마의 빈자리를 주서천이 대신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입을 모아 그를 검신(劍神)이라 불렀다.

* * *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왔다.

비록 언제 깨질지 몰라 불안한 평화였으나, 그래도 숨을 돌릴 수 있는 귀중한 한때를 즐길 수 있었다.

규모가 규모다 보니 어딜 가도 정마대전에 대한 이야기뿐이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화제가 되는 건, 단연 죽은 줄만 알았던 주서천의 생존 소식이었다.

“검룡이 살아 있다더군.”

“뭣? 그게 정말인가?”

사람들도 처음에는 헛소문으로 치부했다.

무림맹이 정파의 영웅의 이름을 이용해 지원금을 받아내려는 속셈이 아닌가 하는 말이 있었던 탓이다.

전쟁 도중이니 사기를 떨어뜨리지 않고, 거짓된 희망을 불어넣으려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목격자가 한둘이 아니었고, 천마의 결전 탓에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천마가 검룡에게 패배했다던데?”

“허? 농담치곤 너무 터무니없네만……”

“아니면 혈마 때처럼 어부지리로 이긴 것 아닌가?”

이 대결 역시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죽은 줄만 알았던 사람이 돌아온 건 그렇다고 쳐도, 서른 아니, 이제 막 약관에서 벗어난 무인이 상천칠좌를 정면대결로 이겼다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거짓치고는 목격자가 너무 많았다.

무림맹에서만 수백여 명, 마교는 네 자릿수였다.

소문은 사실이었고 무림을 경악에 빠뜨렸다.

하나같이 귀를 의심하고, 몇 번이나 의아해할 정도였다.

아직까지 반신반의하는 사람들이 무더기로 있을 정도로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중원은 물론이고 새외까지 격동했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그 여파는 적지 않았다.

정파무림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혈교에 이어 마교에게 승리한 것도 모자라, 영웅이자 희망이었던 주서천이 절대고수가 되어 돌아왔다.

정파인들은 만면에 웃음을 머금으며 두 팔 벌려 환호했다.

“무림맹 만세!”

“주서천 대협 만세! 화산파 만만세!”

“검신(劍神) 주서천 만세!”

“섬서, 화산파. 역시 그러실 줄 알았어!”

정휘련은 주서천의 생존 소식에 무릎을 탁 치며 소리를 질렀다.

장문인 체면도 잊은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암, 그렇고말고. 그놈이 그리 쉽게 죽을 리 없지!”

단약사, 영진이 껄껄거리며 웃어댔다.

그를 비롯한 화산오장로도 하나같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로 다행이네.”

“유 사형, 축하드립니다.”

“사제도 한시름 놓았겠구먼.”

화산파 사형제들이 주서천의 스승, 소유검 유정목을 찾아가 인사를 건냈다.

“감사합니다.”

유정목은 살짝 웃는 얼굴로 인사에 답했다.

사실 다른 사람들처럼 크게 기뻐하고 있지는 않았다.

제자의 생존을 어렴풋이 알고 있어서였다.

정확히 말해서는 믿고 있었다는 것이 맞았다.

‘그리 쉽게 죽을 아이가 아니니까.’

어릴 적부터 비상했던 아이다.

또한 수림구채, 도수창병 때 행방불명됐을 때도 멀쩡히 살아 있었다.

게다가 제자에 대한 소식 중에서 절벽에서 떨어져 시신을 찾지 못했다는 걸 듣고 확신했다.

“휴우, 정말로 다행이로다.”

지검옹 학송이 천만다행이라며 안도했다.

불과 얼마 전에 전대 장문인을 허무하게, 그것도 너무 일찍 잃지 않았나.

그 와중에 미래이자 희망인 주서천의 사망소식을 듣고 이젠 어째야 하나 싶었다.

실제로 그 파급력이 상당했다.

언제나 사문 앞에서 길게 줄을 잇던 손님들이 크게 줄었던 탓이었다.

화산파가 최고라며 아이를 맡긴 극성 부모들이 찾아와 항의한 일도 있었다.

속가제자들의 지원이 잠시간 끊길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게다가 다들 복수에 눈이 멀어 불안했는데, 덕분에 진정됐다.

이번 일로 신경이 쓰여 머리털도 빠졌었다.

무엇보다 호사인 건 검신의 배출이었다.

상천칠좌, 절대고수의 배출은 곧 사문의 힘이요 영향력이다.

아무리 전성기라 평가받아도 정작 당대에 절대고수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전성기는 끝이다.

구파일방이며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대문파, 화산파라도 다를 건 없었는데, 천만다행으로 주서천이라는 불세출의 천재 덕에 전성기를 이어갈 수 있었다.

안휘, 무림맹 본부.

“좋았어!”

남궁위무 역시 체면도 잊고 좋아했다.

무림맹 상층부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축제 분위기였다.

일차 격돌 때부터 좋지 않았던 결과를 듣고 침체에 잠겼었다.

군사진이 밤을 새가면서 전황을 어찌 타파할지 토론했지만 나아질 생각을 못했다.

결코 좋지 못한 상황이었다.

남궁위무가 직접 나설 정도였으나, 최후의 보루로 남아야 했다.

패신군이 합류한 사도천도 신경 쓰였다.

별수 없이 다리를 떨어대며 소식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상명진인의 사망소식에 가슴이 철렁 주저앉았고, 특히 귀한 손자인 창룡 남궁선유가 사경을 헤맨다는 걸 듣고는 얼굴에 패색이 짙어졌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신세를 보고 무엇이 무림맹주냐며 원망하고 있을때, 믿을 수 없는 소식을 듣는다.

검룡. 아니, 검신과 천마와의 대결.

극적인 때 주서천이 살아 돌아와 모두를 구했다.

“그래. 그 녀석이 그리 쉽게 죽을 리는 없지!”

남궁위무도 주서천의 죽음에 의문을 지녔었다.

현경이 옆집 개 이름도 아니고 그리 쉽게 죽을 리는 없었다.

아무리 마교의 사대호법이나 무력부대가 합공을 했다지만, 찜찜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주 대협…… 참으로 대단하구나.’

제갈상도 경악과 감탄을 금치 못하며 생각했다.

눈을 감으니 어린 시절의 주서천이 떠올랐다.

그때도 무언가 범상치 않았지만, 설마하니 서른도 되지 않아 상천에 오르는 성취를 이룰 줄은 몰랐다.

‘그 덕에 수란이가 목숨을 구했구나.

나중에 감사 인사를 꼭 드려야겠어.’

오라비로서 누이를 걱정하지 않을리 없었다.

특히나 사이좋던 제갈남매다.

마음 같아선 그 위험한 최전선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럴 수가 없었다.

제갈상은 가슴을 쓸어 넘기며, 앞으로의 정리를 위해서 무림맹주에게 말을 걸었다.

사도천.

“뭐?”

사도천주가 어이없어 했다.

“다시 말해 봐. 뭐라고?”

“주서천이 살아 돌아왔습니다.”

“허, 참. 끈질긴 녀석이군.”

사도천주도 주서천을 좋아하지 않는다.

패신군의 정체를 알면 거품을 물 사람 중 하나였다.

꽤나 지난 일이지만 최초의 악연은 귀주에서 였다.

나름대로 준비한 양동작전이 주서천 탓에 실패하고, 대패를 거두게 되자 앙심을 품게 됐다.

이후 수림구채를 이용하여 어찌어찌 죽였나 싶었지만, 그때도 멀쩡하게 살아 돌아와 실패했다.

게다가 몰라보게 성장하게 되면서 암살이 어려워졌고 심지어 어디 한곳에 툭하면 짱 박혀서 건드리기가 부담스러워졌다.

그 후로는 사도천에서도 이런저런 일이 생겨서 신경쓰지 않게 됐다.

눈에 계속 밟혔지만 별수 없이 내버려 두었다가 어느 날 죽었다는 걸 듣고 손뼉을 치며 좋아했었다.

그런데 사지 하나 잃지 않고 멀쩡히 돌아왔다.

심지어 절대고수가 됐으니 짜증이 안 날 수가 없었다.

‘정말로 그 나이에 심상을 구현했다고?’

짜증도 짜증이지만, 의문이 안 생길 수가 없다.

과거의 상천들처럼 주서천이 현경의 성취를 이루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목격자가 한둘도 아니고, 수천 명이 보는 앞에서 천마와 대등하게 맞붙었다 하니 믿을 수밖에.

“봉우리조차 생겨나지 않도록, 그때 싹을 짓밟아뒀어야 했는데……”

사도천주가 아쉬운 듯 입맛을 쩝쩝 다셨다.

정마대전에 관련된 소문은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끊이지가 않았다.

그 양은 대해(大海)와도 같았다.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고 하지 않았나.

무림 전역을 몇 번이나 돌 정도로 전파 속도가 빨랐다.

다만, 소문이 전부 진실된 건 아니었다.

강호의 소문은 대부분 와전되거나 과장되기 마련이었다.

헛소문이 반 이상일 정도였고 그중에서 사실로 판명된 것은 소문에 비해 그다지 많지 않았다.

“금의상단의 무곡에 대해서 알고 있나?”

“알다마다. 검신, 주서천이 보증한 무인이 아닌가.”

“부교주 전호마와 북사호법 엄구유가 일검에 당했다던데……”

그중에서도 무곡에 대한 소문은 몇 없는 사실 중 하나였다.

대마두가 둘이나 당해 단숨에 주목받았다.

과거 별호 전광검귀도 옛 것이 됐다.

한동안 금의상단을 위해서 일하기도 했고, 소속이 소속이다 보니 별호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 워낙 활약하기도 했고, 그 검신이 치켜세워 주니, 재평가 받는 건 당연했다.

이번 전장에서 묵묵하게 검만 휘두른 것도 인상적이었고, 적 대부분을 일 검에 참살해 새 별호가 붙었다.

검을 끝없이 연마했다 하여 검마(劍摩)였다.

“내 듣자하니 금의상단주가 무림의 평화를 걱정하여, 검마를 보냈다고 하던데……”

“그 황금충…… 아니, 상왕(商王)이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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