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五章 (162/254)

콰앙!

반경 오 장의 지반이 뒤집어지고 무너졌다.

바닥에 널려 있던 시체들이 빨려들거나 튕겨져 나갔다.

“대화가 먼저가 아니다! 폭력이 먼저다!”

갈라진 균열 사이에서 시커먼 아지랑이 같은 것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다 싶더니, 격렬하게 움직였다.

“뭐, 뭔……”

내공이 어찌나 심후한지, 겉으로 새어나오는 기운이 눈에 확연히 보였다.

다들 그 기운에 압도됐다.

“설득이 먼저가 아니다! 굴복이 우선이다!”

자갈이나 모래가 세계의 법칙을 무시했다.

시커먼 아지랑이에 맞춰서 공중으로 두둥실 떠올랐다.

“자고로 말이란 건 승자는 말하고, 패자는 듣는 것!

지금 누가 승자인지 알지도 못하는 놈이 지껄이는 게 말이나 되느냐!”

천마는 광소를 터트리며 말을 이었다.

“크하하하! 들어라!

난 딱히 마도를 증명하러 온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복수하거나 혹은 정복하러 오지도 않았다!

복잡한 철학이건 사상이건 그따위 것은 잘 모른다!”

마교의 절대고수의 머리카락이 공중에 떠오른다.

그의 뒤론 수많은 악귀들이 잔혹한 미소를 지었다.

“그저, 싸우러 왔다!”

무림인, 아니.

사람들은 그를 보고 천마(天魔)라 부른다.

천마는 강하다.

이에 대해서는 거짓도 과장도 없다.

애초에 힘이 곧 진리라는 정신 나간 교리가 전부인 동네이다. 안 강할 리가 없었다.

마교의 교주 역시 대대적으로 최고수가 맡았다.

시대에 따라 가지각색의 이름을 지닌 상천칠좌에 이르는 절대고수에 빠지지 않는 이름일 정도다.

“겁먹지 마라!”

곡야인이 외쳐 정적을 깨뜨렸다.

“현 마교 교주, 천마는 순수한 무위로 교주의 자리에 앉은 것이 아니다!”

마교의 교주가 되려면 ‘힘’이 필요하다.

다만 이 힘이라는 것이 순수한 마공에 한정되어 있지는 않다.

독살은 기본이요, 미인계나 온갖 약 등이 사용되는 암살도 포함되어 있다.

변소나 침실을 기습하기도 한다.

역대 교주들 중에선 이와 같은 방법을 통해서 천마가 된 경우가 심심찮게 있었다.

마도 외에는 결코 인정할 수 없는 수단이지만, 신기하게도 이곳에선 잘만 통했다.

괜히 상식에서 벗어난 마도라 배척받는 것이 아니었다.

일반인은 상상할 수 없는 그 이상의 환경이다.

현재의 천마 역시 순수한 무력만으로 교주에 오른 건 아니었다.

전대의 교주는 여타 마교처럼 중원을 침공했다가, 그만 치명상을 입고 대패해 물러났다.

그 탓에 십만대산에서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고, 그 뒷자리를 차지하려 여러 마인들이 혈전을 버렸다.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진 싸움의 끝은 어이없게도, 허무하게 자멸하는 것으로 그 막을 내렸다.

그리고 당시 그 바로 밑의 고수였던 한 마인이 어부지리로 교주가 됐고, 마교의 독문마공인 천마신공을 수련하여 강해졌는데 그게 바로 지금의 천마다.

“설사, 태극검께서 안 계셔도……”

“흠, 뭐 맞는 말이다.”

“……!”

곡야인이 숨을 흡 하고 삼켰다.

‘언…… 제……?’

남궁선유는 앞에 나서 있었으니 그렇다 쳐도, 곡야인의 경우에는 부대의 측면에 있어 거리가 있었다.

헌데 이게 웬일.

눈을 껌뻑인 사이에 천마의 신형이 사라졌다가 코앞에 나타났다.

경악한 것은 곡야인만이 아니다.

그 외의 무림맹의 고수들 또한 제 눈을 의심했다.

“겨우 그 정도인가.”

천마가 대놓고 실망스러운 기색을 보였다.

말이 번지르르하기에 모처럼 실력이 어떤가 싶어 나서 봤는데, 기대조차 되지 않았다.

“천마잠형술(天魔潛形術)……!”

곤륜파의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마교의 교주인 천마인 만큼, 그 무공도 유명하다.

형체가 완전히 사라져, 육안으로는 확인이 불가능하고 오로지 기감으로 느낄 수 있는 신법이다.

어디서나 느낄 수 있는 기분 나쁜 마기이나, 대성에 이르면 그조차 희미해져 기감이 낮다면 파악이 불가능했다.

“아무래도 한둘로는 날 만족시킬 수 없을 것 같군.”

천마가 손이 근질거리는지 조금씩 움직였다.

“한꺼번에 와라!”

천마가 발을 힘껏 굴렀다.

쿠아앙!

발이 지면에 부딪친 순간, 폭발이 일어났다.

용천혈에서 솟구친 마기가 바닥을 완전히 박살 내버렸다.

균열 사이로 피어오르던 마기가 성난 소처럼 마구 날뛰면서 줄기차게 뛰쳐나왔다.

“후으웁!”

숨을 들이쉬는 천마.

하복부에 힘을 주고, 오른팔을 뒤로 크게 젖혔다가 쫙 편 손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탄(彈)!’

손바닥 앞에 순간적으로 모인 마기가, 팔을 앞으로 뻗는 순간 원형으로 커졌다가 앞으로 쏘아졌다.

콰지지지직!

과연 사람이 맞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손바닥에서 뿜어진 장력만으로 그앞의 지면이 크게 흔들렸고, 모래알과 함께 사람의 몸이 떠올랐다.

“크……흐어억……!”

곡야인을 필두로, 그 뒤에 선 개방도들이 장압(掌壓)에 버텨내지 못하고 뒤로 나가떨어졌다.

그 숫자가무려 오십이었고, 뒤에 있던 오십도 휘말렸다.

“으아악!”

어이쿠!

“케헥!”

정파인들은 죽어도 바닥을 구르지 않는다.

그러느니 차라리 죽음을 고를 정도로 싫어한다.

헌데 천마 앞에선 그따위 고집은 전혀 통하지 않았다.

다들 볼썽사납게 바닥을 굴렀다.

몇몇은 버티려다가 끝내 내상을 입고 피를 울컥 토해내곤 정신을 잃었다.

일장(一掌). 고작 일장에 백여 명이 쓰러졌다.

경천동지할 위력에 무림인들이 대경했다.

“파천수라장(破天修羅掌)!”

교주의 독문마공은 아니지만, 마교에서도 손꼽히는 절세의 마공으로 꼽힌다.

세 초식으로 나눠져 있는데, 하나하나가 절세의 신공이라 불릴 정도였다.

“천마를 포위해라!”

은하노사가 황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 말에, 각 문파의 고수들이 뛰쳐 나갔다.

은하노사부터 시작해 화산의 위지걸, 소림의 홍고와 홍진, 청성파의 백궁자, 공동의 지일광 등 내로라하는 고수들로부터 매화검수나 십팔나한 등 정예 부대들이 모였다.

전력이 이렇게 한 곳에 집중된다면 위험하나, 적이 적인지라 어쩔 수가 없었다.

십팔나한이나 매화검수 등의 정예들은 마교의 고수들이 끼어들지 못하도록 주변을 경계했다.

그 안으로는 무림맹 최고수들이 천마를 둘러쌌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 심심풀이가 되지 않겠느냐.”

“오만하시구려, 천마!”

홍진이 불쾌한 듯 눈썹을 찡그렸다.

“또 가만히 내버려 두면 쫑알거리겠지.

무림맹, 아니 정파인들은 말이 많아서 탈이도다.”

천마가 시선도 돌리지 않은 채, 팔을 수평으로 들었다.

스르릉!

이 장 밖에서부터 검이 날아와 그의 손에 잡혔다.

‘허! 무슨 허공섭물이……’

‘굉장한 흡입력이구나.’

무림맹 고수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허공섭물이야 내공만 받쳐주면 얼마든지 쓸 수 있다.

그러나 나름 거리가 있는 곳에서, 순식간에 끌어올 정도의 속도를 내는 것은 고난이도다.

“자아, 가마.”

마교 교주의 눈이 시뻘겋게 번뜩였다.

“내 친히 초식을 알려주도록 하겠다.”

천마가 손잡이를 꽈악 쥔 순간, 여태껏 보지 못했던 시커먼 마기가 폭풍처럼 몰아치기 시작했다.

“천마삼검(天魔三劍) 제일식(第一式).”

잿빛으로 물든 머리카락이 바람에 거칠게 흔들렸고, 주변의 무림맹 고수들은 바짝 긴장했다.

“천마현신(天魔現身).”

스윽.

더 이상 눈 뜨기 힘들 정도의 압력이었으나, 어느 순간 뚝 하고 멈추더니만 검으로 빨려 들어갔다.

무림맹 고수들이 의아한 눈을 뜨는순간, 천마가 획, 하고 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섬(閃).”

그러나 그 검의 위력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번쩍!

어둡고 시커멓지만, 그것은 빛이었다.

암흑이 번쩍였다는 것을 뇌에서 인식한 순간 검압에 짓눌렸다.

쿠와아아아앙!

바람이 불었다. 돌풍을 넘어선 폭풍이었다.

불길할 정도로 시커먼 검은 아지랑이는 대자연 속에 녹아들었고, 그의 앞에 있는 것을 모조리 박살내고 파괴했다.

‘맙소사!’

‘무슨 이딴……!’

‘크흐읏!’

지반은 뒤집어지고, 흙먼지는 회오리처럼 솟아올랐다.

무림맹 고수들은 호신강기를 펼쳐 막아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은 버텨내지 못했고, 내공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소진됐다.

입가에는 핏줄기가 주르륵 흘렀고, 지면에 깊게 파인 다리는 뒤로 쭉 밀려났다.

나름대로 깨끗하게 유지했던 무복 역시 바람에 심하게 흔들리다가, 여기저기 상처가 생겨 엉망이 됐다.

“크아아악!”

“으아악!”

사 장.

무려 지근거리 사 장 앞이 쑥대밭이 됐다.

그 범위에 속해 있던 무인들은 무림맹 마교도 할 것 없이, 검압에 휩쓸려서 나가 떨어지거나 두 동강 나서 즉사했다.

“크하하하!”

천마의 시원하다는 듯 내지르는 웃음소리.

“제법 괜찮은 시작이로다!”

“죽여라!”

무림맹 고수들이 누가 외칠 것도 없이 동시에 덤벼들었다.

천마의 무위에 본능이 경종을 울렸다.

파바바밧!

은하노사의 공세가 제일 먼저 천마를 덮쳤다.

구부렸던 손가락을 연달아 튕겨내자, 은하적성지가 유성처럼 궤적을그려내는 줄기를 쏟아냈다.

그 숫자가 무려 여섯이나 됐는데, 안에 실린 공력이 대단한 건 당연하고 특히 강기가 실려 있었다.

그것도 한 방향으로 쏘아지지 않고, 회오리처럼 나선형으로 회전하면서 여섯 개의 방향에서 한 지점을 노렸다.

천마는 소름끼치도록 번들거리는 눈동자를 데구르르 굴려서 위치를 확인한 뒤, 제자리에서 회전했다.

그냥 돈 것만은 아니었다.

검은 그냥 두고 남은 손을 쫙 펼친 채 몸과 함께 힘껏 돌렸다.

파아앙!

천마의 손바닥이 은하적성지를 후려쳤다.

비껴 친 것도 아니고, 정면으로 부딪쳐서 튕겨내 버렸다.

빨려 들듯이 날아오던 줄기는 허무하게도 손바닥에 부딪치자마자 공중으로 비산하면서 사라졌다.

아직 끝난 것만은 아니었다.

“흐랴압!”

홍고가 사나운 기합을 터뜨리면서 일권을 내지른다.

백보 바깥에서 내지르는 일권. 백보신권이었다.

당연히 권강이 실려 있고 그 위력이 범상치 않았다.

천마는 호오, 하고 나지막하게 감탄을 흘려내며 시커먼 검강을 휘감은 철검을 아래에서 위로 그었다.

흉부를 노리고 온 백보신권의 잔영이 사라졌다.

휘리릭!

공격이 끝나기 무섭게 세 고수의 신형이 덮쳐든다.

좌우와 후위에서 파고드는 시점이 거의 동시였다.

“후웁!”

백궁자의 청운적하검이 좌측에서부터 가공할 살기를 내뿜으며 파고들었다.

“하앗!”

위지결의 이십사수매화검법도 우측에서 쾌속으로 찔러왔다.

그리고 후위를 노린 것은 홍진이었다.

‘연대구품!’

맨 처음 덮친 것은 셋이었으나, 열둘로 나뉘었다.

홍진의 신형이 흐릿해지더니만, 본체 외에 아홉여 개의 분신이 나타나며 전 방위로 감싸서 포위했다.

무엇보다 각자 서로 항마십삼장이나, 초식이 하나하나 다른 것이 장관이었다.

‘끝이다!’

설사 상천칠좌라는 절대고수라 할지라도, 이 정도 되는 합공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화경에 가까운 초절정, 지일광을 제외한 나머지는 화경의 고수들로 이루어졌다.

그러니 이번만큼은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고.

그렇게, ‘착각’ 했다.

“이제야 할 만하지 않느냐!”

마귀의 광오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목숨이 달린 상황에도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고, 여전히 광오한 자세로 초식 명을 외우는 천마.

그러나 그 초식을 알고 있다 해도, 어떻게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증거로 무림맹 고수들이 일제히 얼굴을 굳혔다.

악몽이 펼쳐졌다.

“흐, 하, 하, 하!”

지옥에서부터 들려오는 마귀의 웃음소리.

그 웃음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시간이 멈춘 듯이 느리게 흘러간다.

백궁자와 위지결의 검을 비롯해 홍진의 항마십삼장이 닿기도 전, 그사이에 변화가 일어났다.

천마의 몸이 안개처럼 흐릿해지더니만, 그 육신이 동일한 열둘로 나누어졌다.

소림에 연대구품이 있다면, 마교에는 천마군림보가 있다.

대성하게 되면 열둘까지 늘어나며, 연대구품과 마찬가지로 허상 같으면서도 실체를지니고 있다.

그 증거로 홍진처럼 초식, 아니.

심지어 검법이나 장법 등 다양한 무공으로 반격했다.

백궁자의 청운적하검이 천마의 검에 튕겨 나갔다.

위지결의 이십사수매화검법도 저지당했다.

연대구품으로 아홉 명의 분신을 추가적으로 만들어냈던 홍진 역시, 각각 검과 주먹 손바닥에 맞았다.

그리고 멈췄던 시간이 되돌아온다.

째재재쟁! 퍼퍼퍽! 쾅! 콰앙!

“커헉!”

“크흐읏!”

무림맹의 현 전력들이 전부 무너졌다.

근처의 무림인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무슨 일이 일어난 지도 알 수 없었다.

시간을 측정하기에는 너무나도 짧은 순간이었다.

그 광경을 본 무림인들은 이리 생각했다.

상천칠좌에, 순위를 매겨야 할지 모른다고.

덜덜덜.

어떠한 경우에도 공포에 사로잡히지 않았던 제갈수란 역시도, 이번만큼은 떨지 않을 수 없었다.

시선을 내려 보니 손이 떨려오고 있었다.

“……!”

제갈수란은 고운 입술을 질끈 깨물곤, 떨리는 손을 잡아 가까스로 진정시켰다.

“우……”

터져 나오기 직전의 목소리.

“우와아아아아아!”

그것은, 수천이나 되는 마교도의 함성이었다.

“역시 교주님이셔! 과연 천마시구나!”

“하하하핫!”

“무림맹 고수란 작자들이 다 누워버렸군!”

마교 측은 비웃음을 뒤섞은 조롱을 던졌다.

무림맹 측은 굴욕감에 시뻘겋게 달아오르기보다는, 그 안색이 하나같이 백지장처럼 창백해졌다.

‘어떻게 하지?’

제갈수란의 낯빛도 하얗게 질렸다.

절대적인 무위가 아직 건재한데, 전력을 잃었으니 방법이 없었다.

몸을 막 돌려 퇴군을 신속하게 행한다고 해도 천마의 존재 탓에 그럴 수가 없다.

도망이나 제대로 칠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무리를 해서라도, 마교와 접촉을 최대한 피했어야…… 아니야, 애초에 천마의 등장부터가……’

그녀의 머릿속으로 수십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용케 잘 섞이지 않고 혼란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어떻게든 이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서 갖은 생각을 했으나, 이렇다 할 것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해 내. 그러지 않으면 죽어.’

제갈수란은 모기만 한 목소리로 중얼거렸지만, 그렇다고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머릿속에서 몇 가지 구상을 해보지만, 끝내 실패한다.

이렇게 정마대전의 막이 내리는 것일까.

절망감에 사로잡힌 절체절명의 순간.

자그마한 기적이 일어났다.

“움직여!”

휘잉.

제갈수란은 낭랑한 목소리에 무심코 머리를 들었다.

그녀의 시선 끝은 허공에 떠오른 공으로 향했다.

포물선을 그려내며 올라온 두 개의 쇠공이 서로 부딪치곤 각각 천마의 앞과 마교의 무리에 떨어졌다.

퉁퉁퉁. 데구르르.

“응?”

마교의 무리들이 얼빠진 목소리를 내뱉곤, 쇠공의 정체를 알아보려 접근하려던 찰나 폭음이 터졌다.

쿠와아아아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쇠공이 불꽃을 토해내더니, 그 속에서 수천 개의 강침을 쏘아냈다.

“으아악!”

“끄아아악!”

“아악!”

방금 전까지만 해도 웃음을 짓고 있던 마교도들이 처절하기 짝이 없는 비명을 내질렀다.

지옥의 마귀들은 없었고, 그 대신 강침에 만신창이가 되거나 불꽃에 타들어가는 고깃덩이가 있었다.

쇠공이 마교의 무리 한가운데에 떨어진 탓에, 그 피해도 막심했다.

반경 오 장이 전부 휘말려 버렸다.

절망에 젖어 넋을 잃고 있던 무림맹 측 무인들도 깜짝 놀랄 만큼의 위력과 굉음이었다.

“으음!”

한편, 나머지 쇠공은 폭발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불발은 아니었다. 그 반대로 성공했다.

푸쉬쉬쉬!

겉 표면이 갈라지며 균열이 생기더니, 잿빛으로 된 연기가 뿜어져 나오면서 주위 일대를 집어삼켰다.

천마 역시 그 안에 휘말렸는데, 독에 대한 내성이 나름 있었으나 혹시 몰라 호신강기를 얇게 펼쳤다.

파바밧!

연기 속으로 몇몇 신형들이 뛰어들었다.

천마는 손을 올려 탄지공을 날리려다가 그만두고, 일부러 놓아주듯이 가만히 지켜보았다.

“퇴각합니다!”

누구보다 먼저 정신을 차린 제갈수란이 명령을 내렸다.

은하노사도 뒤늦게 상황을 깨닫고 외쳤다.

“퇴각! 퇴각하라!”

무림맹 측 전력이 몸을 번개같이 돌려 물러났다.

마교도가 쫓으려 했지만, 눈앞에 넓게 펼쳐진 연기도 문제였고 뒤편에서 일어난 폭발로 우왕좌왕했다.

천마는 후위를 눈짓으로만 살핀 뒤, 다시 정면의 연기 너머를 바라보면서 코웃음을 쳤다.

“그래도 명색이 화경이라고 명줄은 다 붙어 있었구나.

뭐, 데려간들 어차피 도움이 되겠냐만은……”

얼마 지냐지 않아 그 옆으로 인기척이 느껴졌다.

“무엇이냐.”

“재정비하여 추격하라는 전달입니다.”

암천회의 칠성사병이었다.

“왜 놓쳤냐고 묻지는 않더냐?”

“예.”

“뭐, 묻는다면 천기가 아니지.”

이 난장판 속에서 추격을 한다고해도, 움직일 수 있는 건 천마나 혹은 부교주 등의 주요 대마두 밖에 없었다.

그러면 안 그래도 통제 불능투성이인 마교도를 움직이기가 힘들어진다.

또한, 아무리 천마나 마교의 최고수들이라 해도 몇천이나 되는 무인들과 동시에 싸울 수는 없었다.

천마도, 천기도 그걸 간파하고 일부러 바로 추격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당가의 새로운 암기인가. 참으로 기묘하군…… 들어보지 못한 걸 보니, 천추도 몰랐던 건가.”

천마가 눈을 가늘게 떴다.

“최근의 후기지수들은 참으로 뛰어나군그래……”

육천오백 중 무려 이천오백이 당했다.

시신의 수거는 물론이고 중상자조차 데려오지 못했다.

무엇보다 크나큰 피해는 주요 전력이었다.

남궁선유, 홍진, 백궁자, 위지결, 곡야인.

무려 다섯 명이나 박살이 났다.

사지가 잘리거나 치명상을 입지 않았지만, 그래도 중상이었다.

“덕분에 살았어요.”

제갈수란이 당혜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뇌광독향으로 마교의 일부분을 떼내었던 그녀가 뒤늦게 도착하지 않았다면 필시 전멸했으리라.

“어떤 수를 쓴 것이지요?”

“천뢰구라는 비밀병기에요.

마지막 남은 걸 사용했으니, 더 이상 기대하지 마세요.”

당혜가 미간을 좁히면서 답했다.

남만에서 식인부족과 대결했을 때 사용됐던 병기.

워낙 무림 생리와는 맞지 않아 원래는 안 쓰려 했다.

그러나 그녀는 주서천의 죽음 이후, 폐관에 들면서 예비용으로 하나 만들어 두었다.

여러 개를 만들어 두었다간 유출되거나 이것저것 귀찮아질 수 있어서 딱 하나만 숨겨 뒀다.

“아쉽군요.”

제갈수란이 천뢰구에 대해서 물은건, 문제 삼으려 한 것이 아니라 다음 전략에 쓰일 수 있을까 해서다.

‘사천 명……’

초기의 전력에서 무려 반절이 당했다.

마교도 역시 피해가 상당해 보였다.

대충 세어봤지만, 동일하게 이천을 잃은 듯했다.

목숨을 아끼지 않는 동귀어진의 기세이고 마성에 한번 휩싸이면 주변을 돌아보지 않은 특성 덕이다.

이차 격돌 시에 오천 오백이었으니, 아마 이천 오백쯤 줄어들어 삼천 정도 남았을 터.

최초에 일만의 숫자였으니, 전력의 숫자만 보면 역전한 것이니 최상의 숫자였다.

그러나 상황은 그러지 못했다.

무림맹 측의 사기는 이제 더 떨어질 곳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락까지 떨어졌고, 마교는 하늘을 찔렀다.

무엇보다 이제 더 이상 싸울 수 있는 고수들의 숫자가 없었다.

“매화검수는 어떤가요?”

“열 명의 사형제가 당했어요. 무엇보다, 검장께서……”

낙소월이 어두운 안색으로 머리를 좌우로 저었다.

“백팔나한은……?”

“아직 건재하니 걱정 말게나.”

홍고가 자신감 있게 소리쳤다.

당장이라도 돌아가서 싸울 수 있다는 표현을 했다.

‘안 돼……’

제갈수란은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패색이 짙어 어찌할 줄 몰랐다.

중상을 입은 주요 전력은 화인의원이 붙어서 이동 중에도 응급조치를 취하고 있으나 상황이 안 좋았다.

“쫓아라-!”

“죽여!”

무림맹과 마교의 큰 차이점은, 부상자를 대동하느냐 안 하느냐다.

그 증거로, 거리를 벌렸다고 생각했던 마교도의 모습이 저 멀리 끝에서 보였다.

“무당파가 코앞이거늘……”

은하노사가 안타까운 듯이 중얼거렸다.

어찌할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을때, 동행하던 지일광이 급작스럽게 멈추었다.

그러자 주요 인물들을 비롯해, 부대도 따라 멈췄다.

“일검칠살?”

“……모사, 무당파와의 거리는 얼마나 되오?”

“……그리 멀지는 않을 거예요.

그쪽에서도 멈추지 않고 오고 있다면, 아마 한 시진에서 두 시진 정도……설마……?”

제갈수란이 무언가 눈치챈 듯 눈을크게 떴다.

“시간을 끌겠소.”

지일광이 앞이 아닌 뒤를 보며 몸울돌렸다.

“일검칠살!”

은하노사가 주름 가득한 눈살을 찌푸렸다.

주변에서도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 방법 밖에는 없소. 전부 가진 못하오.

조금이라도 시간을 끄는 사이, 최대한 달려 무당파를 도우시오.”

“하지만……!”

“그게 유일한 방법이란 것은 모사가 더더욱 알고 있지 않소. 아마 나보다 먼저 생각했을 거요. 다르오?”

제갈수란은 부정하려고 입을 열려다가 말았다.

그의 말대로였다.

그 외에 방법이 없었다.

차라리 무당파가 지척에 있었더라면 함께 버텨보기라도 했겠지만, 도박성이 너무 짙다.

제갈수란은 계산에는 철저하고 냉정하다.

그만큼 무당파의 위치를 거의 오차 없이 파악할 수 있었다.

“승낙한 걸로 알고 있겠소.”

지일광이 검을 높이 들며 외쳤다.

“시간이 없으니 짧게 말하겠다!”

좌중의 시선이 한 곳에 모였다.

“복마검의 사제, 지일광! 무림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이 자리에서 한몸 불태워 보려 한다!”

그 누구도 불가능하다고 토 달지 않았다.

“하나, 나 혼자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죽을 것은 뻔히 아는 영웅들 중, 혹 누가 도와주지 않겠나!”

누구도 섣불리 나설 수 없었다.

여기에서 남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기에.

“괜한 말은 하지 않겠다! 희생이란 오로지 자신만이 결정할 수 있으며, 강요로 할 수 없는 행위다!”

지일광은 일부러 사문의 이름을 꺼내지 않았다.

안 그래도 적은 사형제들을 휘말리게 할 수 없었다.

“여기서 나서지 않는다고 욕하지 않겠다!

원망하지 않겠다! 부끄럽게 여길 것도 없다!

이곳에 남는 것은바보천치인 것이니 죄책감을 갖지 말게나! 정파의 동도들이여!”

지일광은 일부러 눈이 마주치지 않도록, 등을 보였다.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나, 말재주는 없고 시간도 없다! 그러니, 남을 사람은 남고 갈 사람은 가라! 이상!”

챙!

지일광이 머리 위로 든 검을 지면에 박았다.

“……”

어떠한 말소리도 없었다. 그저 고요하기만 했다.

“그대의…… 희생을 잊지 않겠네, 일검칠살.”

은하노사는 혈기 대신 지혜가 있었다.

이곳에 모두가 남을 수는 없다.

특히나 필요한 사람들은 한시라도 빨리 도망쳐야 했다.

“살 일도 별로 없는 늙은이가 남아야 하거늘……”

“최후에 남을 사람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은하노사까지 빠진다면 본대의 주요 전력이 너무나도 비어버린다.

이곳이 뚫리면 막아야 했다.

“소림의 무승들이 도와줄 거요.”

홍고가 말하자, 백팔나한 중 이 할이 앞으로 나섰다.

그 뒤로 정의심이 투철한 무승들이 좀 더 나서려고 했지만, 홍고가 이를 칼날같이 제지했다.

‘활약이야 아까 전에 확실히 했고, 도와도 남는 것이 별로 없으니 차라리 나중에 무당파와 합류해서 천마를 무찌르고 정마대전을 끝내는 것이 명예를 높이는 데 더 이득이다.’

홍고의 눈은 승려답지 않게 음험하게 빛났다.

그 뒤로 반 이상의 움직임이 있었다.

다들 서두르려는 듯, 경공술을 펼쳐 떠나갔다.

지일광은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다가, 빠져나갈 사람들은 빠져 나갔을 때쯤 몸을 돌려 뒤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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