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잘못됐는지는 모른다.
환영미라진을 믿고 마음을 놓아서 그런지, 아니면 천기가 어떤 수를 썼는지, 혹은 마교의 설명할 수 없는 광기로 인한 집념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 어떠한 연유인지는 모르나 무림맹은 마교에게 따라잡혔다.
“마교다!”
후위에서 곡야인의 경고 어린 외침이 들렸다.
“제기랄! 환영미라진이 실패했다! 수가 그대로야!”
“썅!”
“어떻게 된 거지?”
여기저기서 욕설이 들렸다.
그 소식은 하나로 합쳐진 본대 전체에 퍼졌다.
“여전히 팔천인가요?”
제갈수란은 당황하기보다는 최악의 가능성부터 파악하는 데 신경 썼다.
만약 뇌광독향으로 분산된 전력까지 붙는다면, 상황이 생각보다 안좋아진다.
“아닙니다!”
휴우.
누군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나 표정이 그다지 좋지는 못했다.
“상명진인! 어딜 도망가느냐아!”
부교주, 전호마의 도발 어린 외침이 들렸다.
“어쩔 수 없네요. 준비하도록 하죠.”
멈추지 않고 퇴군하기에는 너무 아슬아슬하다.
그래서 대군을 멈추고, 마교와 마주 보기로 했다.
“드디어 멈췄구나!”
마교도의 얼굴이 환희에 젖었다.
“하하하! 지긋지긋한 추격전도 끝이다!”
“죽여라!”
이차 격돌이 시작됐다.
제갈수란은 안력을 높여 마교의 군세를 훑어봤다.
천만다행으로 천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천마 역시 운광 진인과의 결전을 위해 힘을 비축하는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교의 사대호법은 동, 서, 남, 북까지 해서 네 명이다.
서패호법과 남양호법이 죽었으니 둘이 남았다.
북사호법은 도중에 뇌광독향 탓에 뒤로 물러났고 나머지 한 명, 동환호법은 부대에 있었다.
“귀소환마(鬼笑幻魔)다!”
동환호법(東幻護法) 귀소환마.
웃음소리가 귀신과 같다고 붙여진 이름이었다.
“히히히.”
귀소환마는 온갖 환공이나 사공에 능했다.
“으히히히!”
“하하핫!”
“크헤혜헤헤!”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마교만이 아니다.
무림맹도 웃고 있었다.
수십, 수백 명이 단체로 웃는 광경은 보는 이가 다 섬뜩했다.
원기고마공(元氣柏魔功)이라는 마공으로 갖은 방법으로 원기를 고갈시켜 죽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
방금 전은 소공(笑功) 화소망정(花笑妄情)이라는 마공으로서, 이름 그대로 웃게 만들어 죽인다.
“갈!”
사자의 울음소리가 화소망정을 끊어 버렸다.
소림의 사자후다.
“흥, 땡중이냐.”
귀소환마가 불만인 듯 눈을 찡그렸다.
그 눈에 비치는 건 소림 방장 홍고였다.
“마교의 동환호법이여. 오늘 불법 앞에 무릎을 꿇을 것이다.”
“쯧!”
귀소환마가 성가시다는 표정으로 혀를 찼다.
환공 계열은 특히나 소림과 상성이 좋지 않다.
일부러 부딪치지 않으려고 했는데, 귀신같이 냄새를 맡고 앞을 막아섰다.
“뭐, 됐다.
땡중들이 음욕을 탐하는 모습도 볼만하지 않겠는가.”
“오오!”
엄구유가 눈앞의 광경에 웃음을 지었다.
“북사호법? 저자가 왜 여기에 있나!”
무림맹 무사들이 엄구유를 보고 흠칫놀랐다.
분명 뒤처져 있어야 할 엄구유가 어찌 된 영문인지 와 있었다.
“성질 뻗쳐서 왔다!”
엄구유는 피로 젖은 손을 까딱이면서 답했다.
못 해 먹겠다고 지휘를 내려놓다니.
어이가 없었다. 겁을 먹고 도망친 것도 아니다.
그저 성질을 못 이기고 내버려 뒀다.
“나 혼자만 빼고…… 오!”
엄구유가 목을 뒤로 확 젖혔다.
옆에서부터 날아온 검이 턱 끝 살을 베고 지나갔다.
“위지결!”
엄구유가 환호했다.
“그래! 이래야 살맛 나지!”
엄구유는 허리춤에서 검을 빼들어 힘껏 아래에서 위로 그었다.
위지결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검을 공중에서 반바퀴 돌린 뒤 휘둘러 엄구유의 검을 튕겨 냈다.
째앵!
금속끼리 부딪치면서 불꽃이 튀었다.
“정파의 위인께서, 그동안 너무 꽁지 빠지게 도망친 거 아니었나? 흐흐.”
엄구유는 진정으로 기뻐하면서 공세를 퍼부었다.
제정신이 아님에도 검초를 확실하게 펼치는 결 보면, 미친놈인지 미친 척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위지결은 엄구유가 퍼붓는 검을 하나하나 맞받아쳤다.
“검장!”
매화검수가 도우려고 위지결을 불렀다.
“방해하지 않게 해라!”
엄구유의 외침에 마교도가 매화검수에게 달려들었다.
전호마가 상명진인을 덮쳤다.
“호랏!”
전호마가 팔을 앞으로 쭉 뻗었다.
손가락은 반쯤 구부렸는데, 마치 짐승의 발톱과 같았다.
상명진인은 전호마의 공격을 막기 위해 검을 아래로 향했다가, 직각으로 쳐 올렸다.
그 모습이 마치 용이 승천하는 것처럼 보였다.
째애애앵!
상명진인의 검과 전호마의 손가락이 부딪쳤다.
서로의 장기인 검과 손에는 강기가 실려 있다.
“태허도룡검(太虛屠龍劍)!”
“색혈마조(索血魔順)!”
각자 동시에 입을 모아 서로의 절기를 부른다.
용의 형상을 띠는 곤륜의 검, 태허도룡검.
금석도 두부 으깨듯이 부순다는 손, 색혈마조.
“아쉽구나, 아쉬워!”
전호마가 입맛을 다시면서 손에 힘을 줬다.
꽈아악.
검신을 맨손으로 잡고 있는데도 아무런 상처 하나 나지 않았다.
검을 으깰 듯이 압력을 가했다.
그러나 상명진인의 검은 조금 흔들릴 뿐, 흠집 하나 생기지 않았다.
결국은 서로의 강기 대결.
내력이 먼저 떨어지는 자가 패한다.
“흠.”
상명진인이 침음을 흘리면서 전호마의 손을 튕겨 냈다.
‘역시 마공. 여전히 힘은 무식하구나.’
공력을 정면으로 부딪친다면, 유리한 건 마교다.
일반적으로 마공은 내력의 밀도가 짙다.
순간적인 파괴력 역시 우세해있다.
정면 대결은 피해야 한다.
“어딜 도망치느냐!”
전호마가 몸을 웅크렸다가, 쫙 피며 튕겨 나갔다.
활등처럼 굽었다가 튕겨 나가는 궁신탄영과는 좀 달랐다.
마치 날개가달린 것처럼 공중으로 높이 날아오르더니, 상명진인을 아래로 두고 습격했다.
“흡!”
상명진인은 몸도 돌리지 않은 채 지면을 튕기듯이 박차며 위로 올랐다.
“하하!”
전호마가 기다렸다는 듯이 눈을 번쩍이더니만, 지면에 닿기도 전에 몸을 틀어서 위로 비상했다.
호익마공(虎翼魔功)이라 하여, 정말로 날개가 달린 것처럼 공중에서 방향 전환과 이동할 수 있다.
비록 순간적이긴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대단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쐐액!
색혈마조가 허공에서 펼쳐진다.
“흐웁!”
상명진인이 허공에서 몸을 뒤집어서 피했다.
공중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무공은 호익마공만이 아니다.
곤륜파에는 운룡대팔식(雲龍大八式)이라는 절세의 경신법이 있었는데, 한 번에 여덟 번까지 몸을 뒤집어서 방향 전환이나 이동을 가능케 했다.
그에 비해 호익마공은 한 번 밖에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반응 속도나 이동 거리가 좀 더 우수했다.
용호쌍박.
그야말로 용과 호랑이의 대결이었다.
“크하앗!”
전호마의 팔 근육이 부풀어 올랐다.
굽어진 손가락 끝에 실린 시커먼 강기의 색이 보다 짙어졌다.
휘익!
검신을 잡아 으깨려던 색혈마조.
아쉽게도 닿지 못하고 손가락 끝만 검신을 스치고 지나갔다.
카가가강!
손가락이 스치고 지나간 곳에 불꽃이 튀었다.
검신에도 미세하게나마 흠집이 생겼다.
상명진인이 다시 공중에서 몸을 뒤집으면서 검을 회수하고, 검을 쏘아낼 준비를 했다.
그리고 운룡대팔식으로 몸을 뒤집음과 동시에 절초를 날렸다.
‘끝이다!’
눈부신 빛줄기를 남기며 쏘아지는 찌르기.
“하하!”
나름 회심의 공격이었으나, 닿지는못했다.
전호마가 몸을 뒤로 던지면서 바닥을 굴러 피했다.
공중에서 지면으로 떨어진 늙은 용과 늙은 호랑이는 서로를 노려보곤, 틈을 봤다.
“오늘은 살아 돌아가지 못할 게다.”
상명진인이 전호마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아……”
전호마가 입꼬리를 비틀어 웃었다.
“그 말대로다!”
몸을 낮췄다가, 굽힌 무릎을 쫙 피며 튀어 나간다.
전호마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접근해 오자 상명진인도 하복부에 힘을 주고 내력을 최대한 끌어모았다.
‘아마도 전력을 쏟아낸 일격.
아슬아슬한 순간에 맞춰서 피하고, 그틈을 노린다.’
상명진인은 전호마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주변의 움직임을 지우고 손과 발, 눈빛까지 살폈다.
휘이이익!
자신의 생각대로였다.
전호마가 팔을 뒤로 젖혔다가, 있는 힘껏 휘두르면서 절초를 쏟아 냈다.
‘이겼다!’
휘리릭!
상명진인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가, 손이 닿으려는 아슬아슬한 순간에 맞춰서 몸을 빙글 돌렸다.
동시에 그가 쥐고 있던 손도 반원을 그려 냈고, 검신이 늙은 호랑이의 목을 동강 내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커허억!”
상명진인이 몸을 순간 움찔거리더니, 피를 울컥 토해 냈다.
“이, 비겁한……!”
피로 얼룩진 수염이 파르르 떨렸다.
중원 밖에서 오랫동안 마교의 위협을 지켜 왔던 나이 든 영웅은 검에 난도질됐다.
“허어, 비겁하다나 그 무슨 소리인가.”
전호마가 비릿하게 웃으면서 상명진인의 검을 잡었다.
꽈아아악.
빠직!
손가락에 힘을 주자, 강기를 잃은 검신에 균열이 가면서 조금씩 부서지기 시작했다.
“마두라면서 서슴없이 합공을 가하는 건 정파의 특기가 아닌가. 나 역시 그러하네.”
쨍그랑!
상명진인이 쥐고 있던 검이 산산조각 나며 떨어졌다.
전호마는 상명진인의 가슴을 발로 차서 무너뜨린 뒤, 다 들으라는 듯이 소리 높여 외쳤다.
“곤륜의 상명진인은 죽었다!”
부교주, 전호마가 히죽 웃었다.
그 뒤로 마교도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아직도 너희의 천하라고 생각하느냐?”
“아니! 이제는 마교의 천하로다!”
군대에서 장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개개인의 무력이나 지휘도 중요하지만 진정한 가치는 바로 아군의 사기에 있다.
“사람을 쏘려면 먼저 타고 있는 말을 쏘고, 적을 사로잡으려면 먼저 적의 왕을 사로잡으라.”
사인선사마(射人先射馬) 금적선금왕(擔敵先摘王).
불교에선 사람이건 벌레이건 생명의 가치는 동등하다 했지만, 전장에서는 다르다.
만약 장수가 전사한다면 적의 사기는 높아지고, 아군의 사기는 낮아진다.
심하면 지휘계통이 엉망이 되고 혼란에 빠질 수도 있었다.
무림도 마찬가지다.
이름 높은 고수가 죽게 되면 그만큼 사기에 영향이 간다.
상명진인의 죽음이 알려지자, 무림맹의 기세가 한층 줄어들었고 마교의 위세는 높아졌다.
“지금을 노려……됐다.”
천기는 마교도를 움직이려다가 말았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더더욱 미쳐 날뛰며 밀어붙인다.
“장문인!”
“으아아아아!”
증오는 힘이 된다. 그리고 목숨을 깎는 행위다.
무림맹의 주축을 이루던 곤륜파는 장문인을 잃자 눈이 돌아갔다.
그렇지 않아도 마교에 깊은 원한이 있는 곤륜파인데, 장문인까지 잃으니 이성을 유지하지 못했다.
“진정하세요!”
제갈수란의 낭랑한 외침이 전장에울렸다.
“진정하게!”
은하노사나 곡야인 등, 각 문파의 고수들도 어떻게든 진정시키려고 소리를 질러봤지만, 소용없었다.
“갈!”
홍고의 사자후가 터졌다.
적이 주춤하는 데 도움이 되긴 했지만, 아군은 달랐다.
여전히 진정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사형, 혹시 지치셨습니까?”
홍진이 이를 보고 의아해했다.
소림의 사자후에는 사람의 잡념을 없애주고, 마음을 진정시켜 주는 청명함이 있다.
헌데 그 누구도 반응을 보이지 않으니, 이상함을 느끼는 것도 당연했다.
“갈!”
홍진이 다시 외쳤다.
홍고의 사자후보다는 박력이 적으나, 목소리에 실린 법력이 주변을 바로잡았다.
홍고는 말없이 목젖을 쓰다듬다가, 다른 손으로 일권을 내질러 눈앞의 마교도의 머리를 박살 냈다.
“타락할 대로 타락했구나, 소림의 방장이여.”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그 모습을 본 천마가 혀를 찼다.
“아니, 방장이라 칭하기에도 안타깝도다.
저래서야, 소림의 땡중조차 아닌 그저 마도인이 아니던가.”
홍고의 주먹과 외침에는 힘이 있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마교도가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확실히 그 무력이나 박력은 대단했다.
그러나 소림의 승려처럼 보이지가 않았다.
“쯧쯧쯧. 신승과의 대결을 기대했는데…… 참으로 아쉽군.”
천마가 입맛을 다셨다.
“그나저나, 하수 등의 잡졸을 소림에 배치하였는데, 그와 결탁했는가?”
“그래. 소림이 보다 쉽게 이름을 높일 수 있도록, 도와주기로 했다. 그 대가로 여러 가지를 눈감아 주거나, 소림 외의 정보를 요구했다.
뭐, 굳이 그 요구가 아니더라도 홍고 저 미친 중이 잘못을 깨우치지 못하고, 헛된 이념에 잠겨 허우적거린다면 좋지 않나.”
홍고는 부처의 자비보다는 아수라의 힘을 택했다.
그 힘으로 마교도를 손쉽게 무너뜨리고, 타 정파에 비해 피해가 적다면 더욱 힘에 취할지 모른다.
‘어차피 마교도가 얼마나 죽을지 알 게 뭔가.’
통제할 수 없는 군대 따위, 양날의 검조차도 되지 않는다.
손잡이 없는 검을 휘두르는 것이지만, 무기가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쓰는 것뿐이었다.
천마는 그의 말을 듣고, 재미있다는 듯이 유쾌하게 웃어 넘겼다.
전황은 천기가 의도한 대로 흘러갔다.
소림사는 수월하게 대응하며 뒤로 물러나는 반면, 그 외는 격전을 치루면서 퇴군했다.
문파는 참고로 피해는 곤륜파가 제일 심했다.
뒤늦게 정신을 차렸지만, 아직 반 정도는 복수에 미쳐 있었다.
‘이대로…… 지는 것인가?’
창룡, 남궁선유가 침음을 흘렸다.
중앙 본대에 위치한 그는 무림맹의 전체적인 움직임을 보고, 패색이 짙어질 수밖에 없었다.
설마하니 마교에 이리도 밀릴 줄은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아니!’
남궁선유의 검이 마교도의 심장에 꽂혔다.
“무림맹은 지지 않는다!”
젊은 영웅, 후기지수의 외침이 전장에 퍼졌다.
“무림의 평화와 의협심은 무너지지 않는다!”
사기가 제법 가라앉았다.
전체적인 분위기도 좋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남궁선유는 무릎 꿇지 않고, 용기를 내어 주변을 이끌 수 있도록 노력했다.
“넘어진다면, 다시 일어나면 그만이지 않겠는가!”
창룡의 외침이 정파인들의 고막을때렸다.
“설사 죽는다 할지라도, 집에서 기다릴 가족과!
친우와! 형제가 살 수 있다면! 결코 후회 따위는 없다!”
“……!”
그의 목소리가 조금이라도 닿은 것일까.
침체되어 있던 무림맹 무사들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와아아아!”
“제기랄, 그래! 어디 해 보자고!”
창룡의 말이 도움이 됐다.
“……”
위지결은 손에 쥔 검에 힘을 꽉 주었다.
“검성은 손자 복이 많으시군.”
은하노사가 손가락을 구부리며 기를 모았다.
“저 어린 것에게서 용기를 얻다니……”
노인을 앞에 둔 중년인이 부끄러운 듯이 웃더니만 날렵한 몸놀림으로 전장을 휩쓸면서 검을 휘둘렀다.
검이 지나간 자리에는 마교도가 피를 흩뿌리면서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하나같이 급소를 노린 살초로 위력이 상당했다.
“청성검객(靑城劍客) 백궁자(柏宮子)!”
“청운적하검(靑雲赤霞劍)이다!”
청운적하검은 무림에서도 살벌하기로 이름난 검법으로, 그 검이 번쩍일 때마다 붉은 노을이 저무는 것처럼 당한 자들이 피를 흩뿌리면서 쓰러져 갔다.
“맞는 말인 것 같소.”
곡야인도 마교도 둘을 동시에 깨부수며 씩 웃었다.
“타하앗!”
“일검칠살!”
얼마 전 정혈대전에서도 이름을 알린 공동파의 고수, 일검칠살 지일광이 기합을 터뜨렸다.
그 손에 마교도는 허물어지듯이 쓰러져갔다.
“와아아앗!”
고수들의 활약에 무림맹 소속 무사들이 환호했다.
최근, 무림맹은 재앙의 연속이었다.
신승이 입적하고 정파의 영웅이 사망했다.
그리고 그 정파의 영웅이 무림을 도와달라고 연설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충격이 더더욱 컸다.
칠검전쟁와 정혈대전.
연달아 터진 전란으로 인해 마음은 지쳐 갔다.
무엇보다 이대로 무사히 끝난다 할지라도, 사도천이 최근에 결탁한 패신군과 공격해 올 것이 두려웠다.
그 불안감과 공포가 정신을 깎았다.
발걸음을 뒤로 물러나게 만들었다.
검을 쥔 손에 힘을 풀게 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대로 싸워도 남는 것이 있을까.
희망이 사라지자 마음도 천천히 꺾여 갔다.
그러나 그 순간.
창룡의 외침을 시작으로 고수들이 나섰다.
어느 때보다 더 믿음직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마두를 발 아래로 두고,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이름 있는 무공의 위력을 손수 보여주었다.
꺾여버렸던 갈대가 다시 천천히 일어선다.
허리가 곧추 세워지고, 손에 풀렸던 힘이 들어갔다.
‘그래, 할 수 있다.’
‘어차피 무뇌아들 밖에 없는 마교도다.’
‘저 잔혹한 놈들을 이대로 보낸다면, 내 가족과 친구는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정파에겐 의협심이 있지 않은가. 약자를 돕고, 신의를 중시하는 것이야말로 사람의 도리이다.’
꺼져가는 촛불처럼 희미했던 불꽃이 활활 타올랐다.
허물어졌던 신념이 다시 굳어졌다.
“더 이상 물러서지 않겠다!
중원의 평화를 짓밟을 수는 없을 것이다!”
정파인들은 하나같이 결사의 각오를 하고, 입으로 함성을 내지르려고 했다.
“무립맹의 동포여! 강호의 동도여!”
천지가 뒤흔들 정도의 그러한 함성.
수천 명이 한꺼번에 내미는 결사의 외침을 힘으로 전환하려 한다.
“가……”
무림맹은 새로운 영웅, 창룡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 말은 굉음에 묻혀 듣지 못했다.
콰아아아앙―!
사람들은 지금 일어난 상황을 인지하지 못했다.
마치 투석기가 떨어진 듯, 무언가가 위에서부터 아래로 처박히더니만 폭음을 냈다.
누런 흙먼지가 구름처럼 피어오르더니, 안개가 되어 주변의 시야를 가렸다.
무엇이 떨어진 것인지는 보지 못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 정체보다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무림인들의 가슴을 들끓게 했던 남궁선유였다.
검룡의 뒤를 이어 새로운 희망과 미래가 될 검성의 손자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걸까.
그 의문은 곧바로 이어지는 외침에 해소됐다.
좋지 않은 쪽으로.
“그것 참 말 많구나.”
머리가 웅웅 울릴 만한 목소리.
무언가가 등골을 훑고 지나가 소름이 다 끼쳤다.
뭉게뭉게 피어오른 먼지의 안개가 사라지면서 나타난 것은 한 눈에 봐도 범상치 않게 생긴 미남자였다.
탁한 잿빛을 띠는 머리카락에 시커멓게 물든 흰 자, 그리고 섬뜩하게 번뜩이는 붉은 눈이 보인다.
그가 나타나자 하늘도 놀란 것일까, 잘만 내리쬐던 햇빛이 사라지고 시커먼 구름이 대신 가득 메웠다.
“……어째……서 ……”
제갈수란은 입술에 피가 나도록 세게 깨물었다.
그녀만이 아니다.
여기 있는 모두가 그리 생각했다.
분명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상천칠좌의 대결은 한 끗 차이로 승부가 난다.
확실치는 않으나 고수들끼리의 대결은 언제나 그러하니까.
그러니 상식대로라면 대기하고 있어야 했다.
실제로도 여태껏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힘을 비축하느라 일부러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그렇다면, 마교의 이름 없는 군사의 전략인가?
아니 틀렸다.
으드득.
천기가 이를 꽉 깨물었다.
“이래서, 마교란 것들이 싫단 말이다……!”
천기는 암천회주가 이 자리에 있기를 빌었다.
천마의 폭주를 막을 수 있는 건 회주 밖에 없었다.
“하하하, 미안하군.
그러나 그대도 그리 말하지 않았는가.
‘적이 그럴리 없다고 생각했을 때보다 쉬운 것이 없다.’ 라고!”
천마가 들으라는 듯이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도 상황에 따라서다.
태극검이 언제 올지 모를 상황.
만약 도중에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또 하나의 대계가 무너진다.
“천, 마, 아……!”
군사의 존재야 알고는 있겠지만, 그래도 저리 대놓고 말하니 짜증이 솟구쳤다.
정말 못 해 먹겠다.
“하나 저들이 본좌를 이리도 거슬리게 하는데 어찌하겠는가.”
천마가 거추장스럽다는 듯 발을 휘둘렀다.
퍼억!
상천칠좌의 등장에 잠시 넋을 잃고 있는 사이, 잊고 있었던 새로운 희망이 바닥을 어이 없이 굴렀다.
“……”
“차, 창룡!”
남궁 대협!
무림맹 측에서 경악 어린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망연자실한 얼굴로 절망에 빠져 손에 쥐었던 힘을 풀었다.
창룡, 남궁선유의 몸은 더 이상 회생불능으로 보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로 범벅이었고, 관절은 꺾였는지 기이한 방향으로 뒤틀렸다.
검도 전부 부서졌다.
얼굴은 피와 흙으로 뒤범벅이 되어 알아볼 수가 없었다.
“들으라!”
천마가 발을 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