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十二章 (157/254)

패신군은 그 존재만으로도 수상쩍다.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갑자기 나타나더니만, 또 땅으로 꺼진 것처럼 사라졌다.

그러다가 이 년이 지나자 다시 등장해 음신을 살해하고 상천칠좌에 대신 올랐다.

사실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허무맹랑한 이야기고, 거짓말이라고 하기엔 왜 굳이 거짓말을 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

사도천주의 고민은 깊어져만 갔다.

일각이 지나고, 반 시진이 금세 지났지만 주서천은 가만히 있었다.

“내 솔직히 말하면, 패신군의 말을 믿기는 힘드오.”

“나 역시 터무니없는 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소.”

“그러나 굳이 그러한 거짓말을 하는 것 역시 이해가 안 가는 바요. 솔직히 반신반의, 아니 의심하는 바이나…… 그럴 입장도 아니라는 것 역시 알고 있소.”

사도천주는 거짓이란 걸 알아도 거절할 수 없다.

지금 사도천이 처한 상황이 좋지 않아 그렇다.

“사도팔문은 사도사문으로 줄었고, 그중 소음문은 문주를 잃어 봉문한거나 마찬가지가 됐소.

빈자리를 새로이 채우려 해도, 내단검문처럼 될 것 같아 쉬이 그러지 못하고 있소이다.”

폭섬도문이 망하고 내단검문이 들어섰다.

그런데 들어오고 얼마 되지도 않아 뒤통수를 쳤다.

그렇지 않아도 내부 상황이 불안정하다 보니 섣불리 결정할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 정혈대전과 정마대전이 연달아 일어나서 기회를 얻나 싶더니만, 또 재앙이 일어났소.”

사도천주는 주서천을 가리키며 대놓고 말했다.

“문밖에 모여든 사파인들은 사문내란 때 영웅으로 활약한 패신군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소. 툭 까놓고 말해서, 천주로서의 입지가 불안정하게 됐소.”

사도천주는 공포 정치를 펼쳤다.

원래부터 성격이 그랬듯, 송곳니를 드러낸 이들을 용서치 않고 사돈에 팔촌까지 잡아서 족쳤다.

반란의 주역이 된 사도사문은 당연히 풍비박산 났고, 그 재산을 전부 몰수해 보수 비용에 사용했다.

그리고 다시는 덤비지 않도록 엄벌을 내렸는데 이게 생각보다 그리 효과 있지는 못했다.

지금 당장은 힘으로 굴복시켜도, 천주의 측에 선 사도사문이 약세해진다면 이야기가 또 달라진다.

그리고 결국 지금처럼 패신군이라는 사파의 새로운 강자가 등장하니 상황이 여러모로 복잡해졌다.

“그러니 두 가지 약속을 해 준다면 나 역시 그대의 말을 믿고 얼마든지 돕도록 하겠소.”

“말해 보시오.”

“하나는 추종자를 모아 사도천에 귀속시킬 연설을 해 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천주의 자리에 관심이 없다는 의사의 표현과 나를 도우라는 명을 내리는 거요.”

“과연.”

사도천주의 걱정은 패신군의 신진세력이다.

당장 바로 앞의 추종자들만 해도 제법 모였고, 그 외에 사도천 영역권에서도 그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

만약, 담리백처럼 반란이 일어난다면 이번에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리라.

“얼마든지 그리하겠소.”

사도천주는 패신군이 흔쾌하게 승낙하자 놀랐다.

“……정말이오?”

의구심을 갖는 것도 당연하다.

말이 약속이고 협상이지, 패신군입장에선 득이 될 것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기의 명성을 보고 온 추종자들이 사도천주의 산하로 들어가는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사도천과 맞먹는 독립 세력도 만들 수 있는 상황이었다.

비록 기존 세력과 싸워야 하겠지만, 그걸 감안해도 매력적임에는 부정할 수 없다.

“천주를 향한 도전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소.

믿지 안 믿을지 자유지만, 사도천의 권세는 필요 없소.

반대로 서로 싸워서 암천회와의 결전에서 문제가 된다면 그게 더 골치외다.”

“흐음.”

“그쪽도 조건을 제시했으니, 나 역시 제시하겠소.”

사도천주가 긴장하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무림맹주도 암천회에 대해 알고 있소.

그쪽에도 협력을 요청해 두었으니, 나중에 신호를 보낸다면 암천회에 대하여 공표하고 정사가 힘을 합해 싸우도록 도와주시오.”

“허어…… 그게 정말인가? 아니, 정말이오?”

무림맹주가 옆집 개 이름인가.

정파 무림의 대표이자 절대고수 검성이다.

오대세가 중 남궁세가의 전대 가주다.

“그럼 정말이지 거짓이겠나이까. 그러니 철저히 준비하도록 하시오. 그리고 사도천 내부에는 아직도 암천회의 배반자가 있을지 모르니 조심해야 할 거요.

이건 개인적으로 조사해 본 명단이오.”

사도천주는 주서천에게 종이를 건네받고 감탄했다.

사도천은 이제 별로 없었지만, 무림맹은 아직 많았다.

“허어, 오악검파에 독룡…… 아니, 백보권승?

소림사 방장이 암천회라고?”

홍고의 이름을 보자 눈이 찢어질 듯이 커졌다.

“그자는 아직 추측이니 참조만 하시오.

그리고 오늘 내로 다 외우고 불태우는 게 좋을 거요.”

주서천은 볼일 다 봤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잘 말해둘 테니 걱정하지 마시오. 무슨 일있다면 따로 연락하겠소.”

“……잠깐.”

사도천주는 나가려던 주서천의 발걸음을 세웠다.

‘설마 눈치챘나?’

주서천이 흠칫 놀라면서 반사적으로 턱을 매만지며 인피면구를 확인했다.

“얼굴에 쓴 인피면구야 진작 눈치챘소.”

사도천주가 마음이라도 읽었는지 지적했다.

아무리 솜씨가 좋아도, 역시 노련한 사도천주의 눈길을 피하는 건 불가능했던 모양이다.

조금 아쉬웠다.

“당신, 정말로 정체가 뭐요?”

만약, 아주 만약에.

패신군이 정말로 진실을 말하는 것이라면 어째서 이런 일을 하는지가 궁금했다.

절대고수에 능히 오를 수 있는 무력이 있음에도, 거짓된 신분으로 가렸다.

속내를 떠봐도 권세에 욕심이 있는 것 같진 않았다.

주서천은 사도천주의 의아한 눈빛을 바라봤다가, 바람 소리와 함께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지나가던 검수. 그리고……”

화산파의 사대제자.

“그냥, 도와주는 사람.”

주서천.

패신군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소기의 목적을 이루고 나오자, 문앞에 모여 있는 사파인들이 보였다.

아까보다 더 늘었다.

개미 떼처럼 까맣게 물들었다.

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들어라!”

상천칠좌의 외침에 사파의 무인들이 고개를 든다.

“시대가 변하려 한다!”

사대 세력의 시대는 끝났다.

“지금 내가 무슨 의미로 이야기하는 것인지, 잘 모를 것이다! 그러니 기억만 해 둬라!”

무인들은 귀를 기울였다.

“정도도, 사도도, 마도도 아닌 위협이 존재한다!

그들이 무림을 엉망으로 만들고, 없애려 하고 있다!”

정말로 뜬금없는 말에 사람들이 의아해했다.

“그래서 나 패신군은 사도천에 소속되어, 천주와 손을 잡고 함께해 그들을 막아 보려고 한다!”

내심 무언가를 기대했던 사파인들은 실망했다.

‘결국 변하는 건 없는 건가.’

‘패신군이 음신 대신에 자리를 잡은 것뿐이다.’

‘패국은 사도천이 다 해 먹겠다는거 아니야?’

멋대로일지는 몰라도 약간은 기대했다.

무언가 다른 것을, 새로운 걸 보여줄 줄 알았다.

패신군이 보여 준 행보는 사파에게 매력적이었다.

“그러니까!”

콰앙!

패신군이 발을 굴렀다.

“도와다오!”

사파의 무인들 눈을 크게 떴다.

패신군이 허리를 숙였다.

보잘것없는 삼류 인생의 무사들에게도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숙였다.

상천칠좌다. 절대고수다.

부탁을, 하고 있었다.

“아직 전부 말하지 못하는 것을 사과하겠다.

다만, 조만간 무림이 위기에 빠진다면 도와다오.”

미묘한 부탁이었다. 진실은 가려졌다.

사정상 전부 말할 수 없었다.

밑도 끝도 없이 정말로 뜬금없는 말이었다.

다들 받아들이지 못했다. 당연하다.

받아들이 면 그게 더 이상하다.

그래서 그저 부탁만 했다.

“뭐…… 패신군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

“그런데 정말로 위기란 게 있긴 한거요?”

“아니, 그보다 순 거짓말 같은데……”

반응은 여러 가지였다.

실망하거나, 반신반의하거나, 돌아서거나, 믿어주는 사람 등 다양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도 괜찮았다.

머릿속에 강렬하게 기억되고, 훗날 도움을 준다면 그만이었다.

또 이렇게 사파인들이 많이 모일 일이 없을지 모르니 미리 해 두는게 좋았다.

그래도 상천칠좌 정도 되는 절대고수가 허리를 숙이니 나름대로 진실성이 부여된 모양이었다.

무인이란 족속이 워낙 자존심도 높은 데다가, 고수가 되면 더 심해진다. 사파도 마찬가지다.

그런 사람이 쉽게 고개 숙이니 떨떠름한 반응이었다.

‘떡밥은 뿌려 두었다.’

정말로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 * *

“……안 돼.”

꾸욱.

언제부터, 잘못된 것일까.

무림맹 전선 지휘관, 모사미봉 제갈수란은 입술을 질끈 깨물며 바보같은 판단을 후회했다.

시간을 되돌려…… 일차 격돌이 있을 때다.

일만이 약간 넘는 마교의 군세가 덮쳐 왔다.

그러나 그대로 덮쳐 올 줄은 몰랐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일만이나 되는 병력을 동시에 움직이는 행위는 매우 어리석은 짓이다.

설사 제대로 된 전술을 구사한다고해도, 정작 중요한 명령이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아서다.

아무리 곳곳에 연락 체계를 준비해서 전한다고 해도 실시간으로 변하는 군단을 움직이는 건 쉽지 않다.

싸움이 정신없이 펼쳐지기 때문에 그사이에 명령을 받아 행동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즉 명령을 내려도 그걸 확인할 지가 의문이며, 또한 확인하고 반응해도 제 때에 맞춘 건지도 모른다.

특히나 마인들처럼 툭하면 이성을 버리고 마성에 지배되는 이들을 일만이나 통솔하는 건 불가능했다.

당연히 격돌 전에 아군의 사기를 높이고 적의 사기를 낮추기 위해 일만을 보여 주고, 각기 부대로 흩어져서 공격해 올 것이라 예상했다.

제갈수란만이 아니라 그 외에 군사진도 그리 생각했다.

이 계산에는오차가 없었다.

그러나……

그다음 보여 준 마교의 행동은 전혀 달랐다.

“하하하하핫!”

“좋아, 좋아! 죽여라!”

“저 여자는 살려 둬라! 끝나고 범한다!”

아수라장.

일만이 조금 넘는 마교도가 파도가 되어 덮쳤다.

사전에 병력을 분산시켰던 무림맹은 당황했다.

“모사의 탓이 아니다.”

상명진인이 멸시 어린 눈으로 시커먼 파도를 보았다.

“상식이란 건 사람에게 있는 것이지, 짐승에게 있는 게 아니니까.”

무림맹은 삼군(三軍)으로 나뉘었다.

좌군(左軍)에 이천, 우군(右軍)에 이천, 중앙의 본대(本隊)가 삼천이었다.

예상대로라면 각각 분산된 전력이 따로 싸워야 했다.

그러나 마교가 이를 무시하고 일만으로 덮쳐 왔다.

심지어 하필이면 중앙의 본대였다.

좌군과 우군이 혼비백산하면서 본대로 복귀하는 모습이 보였다.

“하하하.”

일만의 교도의 뒤편.

언덕 위에서그 광경을 오만하게 내려다보며 웃는 자가 있었다.

아무렇게나 자라난 머리카락은 목을 살짝 덮는 정도이며, 탁한 잿빛을 띠었다.

입가에 맺힌 웃음은 어딘가 모르게 사악해 보인다.

그 얼굴은 왕족처럼 기품 있고 위엄 있게 잘생겼는데, 흰자가 시커멓게 물들고 눈동자가 붉었다.

가까이서 보든 멀리서 보든 사람과는 먼 모습이었다.

“정말로 네 말대로 되고 있구나, 천기.”

미남자가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며 머리를 옆으로 돌렸다.

“흥, 당연한 소리를.”

천기가 코웃음을 치며 전장을 내려다봤다.

“낡아 빠진 사고방식을 가진 놈들만큼 쉬운 놈들은 없다. 아마 지금쯤 ‘원래 생각이 없는 놈들이니까’ 라고 생각하겠지.”

“오호. 그러면 정사의 영웅들은 사고방식이 낡지 않다 보니 암천의 두뇌께서 당하신 거군?”

꿈틀.

천기의 이마 위로 힘줄이 돋아났다.

“입조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천마.”

천마(天魔)!

상천칠좌의 일인이자, 마교의 교주!

십만대산의 주인이며 지배자이다.

“하하하, 너무 그러지 말거라. 이래봬도 본좌는 그대를 나쁘게 생각하고 있지 않으니까.”

천마는 짙은 웃음을 흘리곤 앞을 살폈다.

마치 신이 아래를 굽어보듯, 무림맹과 마교의 격전을 내려다보면서 아쉽듯이 중얼거렸다.

“지략 역시 힘의 또 하나의 형태이거늘, 갖지 못해 참으로 아쉽구나.

마교의 힘이라는 건 마공에 한정되어 있다 보니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제대로 된 게 나오지 않는다.”

마교에서 실컷 강조하는 힘이란 결국은 순수한 폭력이다.

그리고 손쉽게 얻을 수단은 마공이다.

그렇다 보니 지략이 있을 수가 없다.

무뇌아라고 욕을 해도 딱히 부정할 수가 없었다.

‘다리가 좀 차가워지려면 극마나 탈마에 오르게 되니, 굳이 써야 하나 의문이고…… 애매하구나, 애매해.”

천마가 아쉬운 듯이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고생 많았다, 천기여. 그대 덕에 이곳 중원의 땅을 별 탈없이 신속하게 밟을 수 있었다.”

중원으로의 침공은 언제나 골칫덩이다.

마교의 명령 체계는 교주의 역량에 따라 다르다.

정말로 압도적인 신위를 보여 준다면, 별다른 사고 없이 따르게 되어 있다.

일반 사람들은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어떻게 힘만 강하다고 그런 게 가능하냐며 의문을 제기한다.

하지만 그 법칙이 적용되는 게 마교였다.

누군가 묻는다면 도리어 왜 불가능하냐며 이상해한다.

어쨌거나, 절대적인 명령을 내리는 경우는 역대 천마들 중에서도 그다지 많지 않다.

애석하게도 이번 대의 천마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하다 보니 자질구레한 문제가 터지곤 했다.

마성을 제어하지 못해 서로 싸우거나, 혹은 성욕을 참지 못하고 도중에 빠져나와 누굴 강간하거나, 그 외에도 감정을 제어하지 못해서 온갖 사고를 쳤다.

중원에 다 도착할 때쯤에는 교도의 숫자가 줄거나 군량이나 병기의 관리에 실패해 문제가 생긴다.

누군가가 이런 걸 철저하게 관리하고 그래야 하는데 그동안 그럴 사람이 없었다.

학사를 고용해도 금세 죽여 버리거나 고문하거나 강간해 버리니, 정말로 답이 없는 집단이었다.

교리라곤 힘이 곧 법이라는 것 밖에 없으니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천기가 칠성사병까지 동원해 도와준 덕에 여러모로 문제 없이 도착할 수 있었다.

“너희는 정말로 이해할 수 없는 짐승들이다.”

누가 듣는다면 천기 보고 미쳤다며 경악을 금치 못할 것이다.

천마가 누군가.

십만대산의 주인이자, 마두의 우두머리이며 그 누구보다 포악하고 사악한 괴물이다.

그런 자에게 짐승이라고 말하는건, 나 죽여 달라고 외치는 것과 다를 것 없었다.

“본좌, 아니 우리가 할 말이다.”

천마는 분노 대신 소름 끼치는 웃음을 보였다.

“무림(武林)의 무(武)는 어차피 힘이 아닌가.

힘으로 증명하는 사회이거늘, 가치를 힘에 두는 게 뭐가 이상한가?”

천마가 하하하, 웃으며 언덕 아래로 떨어졌다.

“본좌 역시 힘에 굴복했기에 여기에 있도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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